저는 1985년 3월7일 서울 명동 성모병원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남들이 그러니 그렇게 믿을 뿐이죠.
그리고 중림동 가명유치원을 다니고 유치원1년만에 중퇴를 했습니다.
행사를 하는데 노래를 불러야 했습니다. 남들앞에서 노래부르는게 굉장히 스트레스였습니다. 부끄러웠거든요.
그래서 중퇴를 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는 어머니의 제안이었습니다. 미국어를 배우지 않겠냐는 것이었지요.
그래서 유치원을 중퇴하고 미국어학원(?)에 다녔습니다. 정확히 기간은 모르지만 꽤 다닌 것 같습니다.
원어민 선생님과 노래도 배우고 미국어를 그 때는 유창하게 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아무튼 취학할 나이가 되어 아현동에 있는 소의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1-5, 2-2, 3-3, 4-3, 5-2 까지 다니다가 여의도초등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
그래서 여의도초등학교에서 5-4, 6-4로 졸업했습니다.
여의도중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하고 여의도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졸업했습니다.
경기대학교 자연과학부에 지원한 것이 예비 151번이라서 서대문에 있는 재수학원에 등록했습니다.
그런데 경기대에서 연락이 와서 경기대에 합격했습니다.
아마도 6차교육과정에서 7차교육과정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많이들 재수를 선택한 것이 이유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04학번으로 자연과학부 식품생물공학과에 입학했습니다.
KCC라는 학생단이라는 단체에서 교환학생을 보내주고 외국을 가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신청해서 합격했습니다.
2학기에 카자흐스탄으로 4개월 교환학생을 다녀왔습니다. 러시아어를 배웠습니다.
05년도에 2학년 1학기를 학부제이기 때문에 수학과를 다녀봤습니다. 고등학교 수학을 생각했지만 교수님은 영어로 혼자 수업하셨습니다.
학사경고 받았습니다. 1.67
05년 8월 16일 육군 의정부 306보충대로 입대하였습니다. 신병교육대에서 20사단 61여단 12전차대대로 전입하였습니다.
07년 8월 15일 전역하였습니다.
바로 복학하고 싶었으나 아버지께서 사업의 실패로 인하여 경제적인 지원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파주 달력공장 홍일문화에서 1달 일하다가 아버지의 제안을 받고 그만두고 나와서
철도청과 관계된 아저씨의 소개로 아버지와 노가다 10일 하였고 노가다는 일을 못해서 짤렸습니다.
일을 하면서 운전면허의 필요함을 느꼈고 그동안 번 돈으로 운전면허1종보통을 전문학원에서 땄습니다. 70만원정도 들었습니다.
크린서비스청이라는 청소업체에서 2008년 2월까지 3개월 일했습니다.
이 돈으로 08년도 기숙사비를 내고 책값과 식사비용을 해결하며 장학금을 타기위해 노력했습니다.
목표는 4.5였지만 교양을 잘못 선택하여(삶의 철학적 이해) B+하나를 받게 되었고 4.36을 받고 전액 장학금을 탔습니다.
제가 기초생활수급자였기 때문에 4.0만 넘으면 한마음 장학금A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학기에도 4.0을 넘기고 싶었으나 아쉽게 공부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어서 3.8을 받았습니다.
혼신을 다해서 4.36을 받았지만 방학이 되고 성적을 받은 후 장학금도 받았지만 그 좋은 기분은 3일도 가지 않았고
도대체 내가 새벽6시부터 밤11시까지(중앙도서관 개관시간) 공부해서 남은 지식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지만
전혀 생활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남는 것 없는 오로지 "학점을 위한 시험을 위한 지식" 만이 남아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이유 즉, 동기부여가 줄어들게 되었고 3.8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셨는지 단지 운이 좋은 것인지 내가 이명박대통령을 잘 뽑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미래드림이라는 장학금을 정부에서 주게 되어서 일정학점이상(3.0? 정확히모름)만 받으면 기초생활수급자는
모두다 전액장학금을 주는 제도가 생겨서 저도 그 혜택을 받고 전액장학금 타게 되었습니다.
2008년에는 학자금대출 받았습니다. 370만원
그 이후로 지금 2010까지 계속 전액장학금 받으며 다닐 수 있었습니다. 학점은 4.0, 3.9, 이정도 유지했습니다.
한가지 빼먹은게 있는데 2005년 1학기 1,67 다닌 학기를 유급한 것입니다.
2008년 1학기가 원래는 2학년 2학기이지만 유급하여 완전히 기록을 지우고 한학기 더 다니게 되어 2학년 1학기로 다닙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전역 후부터는 집에서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학기중에 피시방 주말알바를 한 적도 있었고 국가근로장학생이라는
제도가 생긴 후로는 시급 6500원을 받으며 학기중에는 주20시간 방학 때는 주40시간 일하며 돈도 많이 벌고
엠피쓰리, 노트북, 데스크탑 등 여러가지 갖고싶은 물건도 사며 경제적으로 힘들지 않은 생활을 했습니다.
2009년 여름방학부터 했던 것 같습니다. 2009년 여름방학 까지는 밥도 잘 못챙길 정도로 힘든 생활을 하긴 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2010년 여름방학은 남양주시청에서 대학생알바를 하고 돈은 충분하기 때문에
2010년 2학기에는 주2일만 다니면 될 것 같고 돈도얼마 안들고 지금까지의 생활을 보았을 때
제가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기간이 별로 없었고 뭘 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인생이였기 때문에
그리고 직장에 들어가게 되면 앞으로는 더더욱 그러한 기간이 없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지막 하고싶은 데로 할 수 있는 인생에서 장기간의 휴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2학기 학교다니는 2일을 제외한 나머지 5일을 뭘 하고싶은지는 모르지만 제 자신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의 긴(4개월) 휴가를 주고자 합니다.
12월 되고 2학기가 되면 뭘 하고싶은지 뭘 해야할지 몰라서 걱정입니다.
하고싶은 일도 없고 하고싶은 것도 없습니다.
인생의 미시적인 단기간 앞의 미래가 아닌 아닌 거시적인 미래에 대한 걱정도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를 무엇으로 두어야 할까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ㅉㅉㅉ이런댓글 달질말지요
자신이 겪어보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기준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판단해야 할 것 같네요.. 모두가 개개인의 인생을 살고 있으니 뭐라 딱히 답을 내릴 수도 없을 뿐더러... 그 2가지 질문은 고래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생각해오던 화두가 아닌가요.. 저도 아직 답을 내리지는 못했지만.. 그냥 땅에 발을 딛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루를 보낼 수 있다는 것으로 지금은 감사하고 행복해하고 있습니다.. - 한 달에 한 번 만나지만요.. 문자라도 주고 받으니까.. -
거시적 미래에 대한 걱정도 없다 하시니 님 기준이 아닌 제 기준으로는 어려운 문제네요. 인생의 중요 가치를 무엇으로 두느냐는 님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고민을 많이 해 보셔야 할 듯....
너무세세하고 자세하게 적어주셨는데요.. 대학교 졸업하고 나오면서 전공으로 취업하는사람은 100이면 20명 안쪽이고 나머지는 전부 비전공을 선택해서 취업하게 마련입니다. 요즘같은 취업난의 경우 대단한 스팩을 가지고 있지 않는한, 님도 결국 다른분들과 운명을 같이하시게 될것 같습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시절부터 성장과정을 간력하게 적어주셨다고 할수도 있지만, 아무도 님의 초,중,고 시절을 어떻게 보냈나 관심갖지는 않을껍니다. 경기대 식품공학부 나왔다는 짧은 스팩말고는 결국 없잖아요.
인생의 중요한 가치를 무엇으로 하겠는가라는건 스스로 찾아보세요 아 쓰고나니 윗분이 이미 쓰셨네 ㅎㅎ;;
쓴이) 모두들 감사합니다~
굉장히 꼼꼼하시고 무얼 하시면 잘 하실것 같습니다.초등학교 반 까지 기억하시는 분이고 보니...마음 먹음 못하실 것이 없으리라 생각됩니다...힘내시고 조금 더디 간다 생각하시고 길이면 가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