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 여섯이 한방에 모여
사랑의 경험을 이야기하자고 한 밤
마른 입술을 오므리며
폴란드 시인이 말했어
사랑 이야기라면 당신들은 우선
유대인을 잊어서는 안 돼! 오슈비엥침!
아우스비츠를 알기 전에 사랑을 말하는 것은
진정한 작가가 아니야
순간 모두는 입을 다물고 말았어
도박판에서 전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새벽처럼
텅 빈 눈으로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어
멀리 두고 온 땅, 조국이라는 말만으로
괜히 눈물이 차올랐어
빌어먹을, 나는 진짜 시인인가 봐!
잘 알아, 하지만 작가가 언제까지
한곳에 못 박혀 있을 수는 없어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인간을 더 깊이 써야 해
그리스 작가인지 터키 작가가 말했어
애절한 근친과 죄와 폭력 들
내 여권 속의 분단과 증오와 노란 리본 들
검고 흰 살과 피 으깨어진 화상의 흔적을
남미와 아프리카와 유럽과 동아시아 작가가
한방에 모여 사랑을 이야기하자고 한 밤
내가 불쑥 말했어
애국심은 팬티와 같아 누구나 입고 있지만
나 팬티 입었다고 소리치지 않아
먼저 팬티를 벗어야 해
우리는 팬티를 벗었어
하지만 나는 끝내 벗지 못한 것 같아
눈만 뜨면 팬티를 들고 흔드는 거리에서 자란
나는 하나를 벗었지만, 그 안에
센티멘털 팬티를 또 겹겹이 입고 있었지
사랑은 참 어려워
사랑은 지옥에서 온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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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작가의 사랑/문정희
김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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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15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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