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거리 시장의 봄 향기

[홍재석]

육거리 시장의 봄 향기

송원 홍재석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다가온 봄 향기는 상큼하고 청량하다. 청산 녹수를 생각하면 계곡 물소리도 정겹고 시원하게 들린다. 지루했던 겨울잠에서 깨어난 온갖 만물들도 새로운 춘분(春分)의 계절을 맞이하고 있다. 완연한 훈풍에 냉이는 이미 앙증맞게 하얀 꽃을 피웠다. 이제 들녘의 봄 향기는 쑥이 쑥 나와 아낙네들의 치마폭에 싸여 애용을 받지 않는가.

봄꽃 향기에 취하려고 벌 나비와 더불어 앞을 나선 화창한 봄 날씨는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심란하여 산과 들을 찾아 집을 나서고 삼삼오오 산책을 즐긴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멀리 가는 것도 좋지만 가까운 재래시장을 찾아 좌판 위에서 아기자기한 봄 향기에 취해 봄도 어떠할지……

나는 매년 봄 향기를 느끼기 위해 늘 고장의 재래시장을 먼저 찾은 세월은 이제 60년이 넘었다. 처음 1955년도 봄으로 그동안 수많은 아름다운 경험과 사랑의 추억이 새삼 자랑스럽게 느껴진다. 내가 이 고장에 첫발을 디딘 곳은 남문로 조흥은행 앞 “홍문 당” 이였다. 당시는 이곳이 가장 길이 넓은 번화가로 보은방면 버스정류장이었단다. 은행, 금방, 양장점, 다방, 목욕탕, 여관, 약국, 문방구, 고무신가게, 포목점이 있던 곳이다. 청주의 재래시장은 5일 장으로 2. 7 장날이면 서문동과 남주동으로 청주약국까지 이어졌다.

무심천 변에 우시장이 있었고 목물 전 옆으로는 식당가로 군침 도는 내음으로 오가는 인정은 시끌벅적했다. 남주동 사거리를 중심으로 여인들이 옹기종기 좌판을 펼쳐놓고 있었다. 더욱이 정성으로 가꾸어온 채소류를 팔고 있는 모습은 소박하고 순수했다. 지금도 눈에 선하고 내게는 눈물겨운 추억의 사연을 않고 있다.

나는 그때 대학을 입학하고 친척 집에 있다가 처음으로 자취생활을 시작할 때다. 자취용품을 남주동 시장에서 물통 한 개에 다 들어갈 정도의 식기류와 생필품을 사면서 인연이 되었다. 당시 가정형편은 계모의 슬하로 도리없이 자림을 결심했다. 남주동 사거리 잡화상 사장님께 고학(苦學)의 뜻을 설명하고 지도를 받았다. 도매가로 책가방 두 개에 성양, 비누, 양초를 가득히 사 왔다.

시내버스가 없을 때라 다음날 토요일 새벽부터 무거운 가방을 양손에 들고서 시내를 벗어나려고 십 리 정도를 걸었다. 그곳에서부터 농촌 마을 집집의 개를 울리면서 가방 속의 물건을 팔았다. 현금보다 후덕한 쌀로 받아 온종일 매고 다니니 쌀이 두 자루였다. 남주동 쌀 상회까지 끈으로 지고 약 이십 리 길을 걸어왔다. 고학을 결심한 대가는 혹독했지만, 다음날 일요일까지 이틀 동안의 소득은 한 달 생활비가 되었다. 힘겨운 일이지만 자신감이 생기고 의욕이 넘쳤다. 하지만 농번기로 인해 한 달간 네 번 하고 말았다. 그 후 대학교 학생처장의 배려로 오후 3시부터 근무하는 인쇄소 취업으로 학교에 다녔다. 그때 얻은 인고(忍苦)의 힘으로 신접살림도 남문로 시장 근처에서 시작하고 내 집 마련의 꿈도 삼 년 동안에 할 수 있었다.

육거리에 모여드는 새벽시장을 가보면 그야말로 생기가 넘치고 활기차다. 푸짐한 봄 향기를 맛보며 눈으로도 볼 수가 있는 곳이 재래시장이 아닌가.

나는 지난 3월 20일 춘분 날에도 육거리를 들려 “우룩서원”의 향사(享祀)와 그곳 “타진당(妥眞堂)”은 문효공 하연(河演) 영의정의 영당이다. 안내 입석제막식에 참석하고 봄 향기를 느꼈다. 오는 길에 문의향교 안마당에 가꾸어놓은 시금치와 골파를 뽑아 다듬어 가져왔다. 곧바로 며느리는 향긋한 파무침에 유기농 시금치의 나물 성찬으로 봄 향기의 맛을 제대로 느꼈다.

지금의 육거리 시장은 오늘의 청주시청 앞에 있었던 청주역 청사가 옥산 방향으로 이전되고 나서다. 옛 철로부지를 시내 중심가에 4차선 도로개설로 교통이 편리해졌다. 5통 6달의 시내버스가 모두 육거리를 통과하게 되어 정류장도 8곳이나 있다. 또한, 이십여 년 전에 지역 국회의원의 공약으로 육거리시장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비 가림의 지붕설치는 재래시장 개혁의 선봉이다. 청주의 육거리시장은 전국의 5대 상권의 한곳이며 청주 시민의 많은 이용으로 늘 활기차고 생기가 돈다.

인심도 훈훈하지만, 육거리 시장의 봄 향기는 아낙네들의 옷차림과 손에 들고 있는 올망졸망한 장바구니 속에 담긴 사랑의 봄 향기가 아닐까. 다만 재래시장의 푸짐한 먹거리 물건들이 국내산보다 외국산이 판을 치고 있음이 안타깝다. 국제화 시대라지만 농산물 유통업계의 비리와 무질서한 상도덕이 문제가 아닌가. 생산자 농민들의 울음소리를 외면하는 경매와 도매업자의 행태도 이제는 변해야만 산다. 더욱이 최근에 유통업자들이 새로 조직한 “신선 채소 협동조합”의 각성과 상술이 앞으로의 관심사다.

하루속히 장 바닥 횡포가 근절되고 소비자의 믿음이 쌓이는 재래시장의 질서가 요구된다. 마치 봄 향기처럼 시민들 가슴에 와 닿는 소박하고 순수한 먹거리로서 육거리 시장의 명성을 지켜봄이 어떠할까.

[향담]

'인심도 훈훈하지만, 육거리 시장의 봄 향기는 아낙네들의 옷차림과 손에 들고 있는 올망졸망한 장바구니 속에 담긴 사랑의 봄 향기가 아닐까.' 등 향기롭고 상큼한 봄처럼 좋은 글, 잘 읽어 감사드립니다.

[소율(박재명)]

육거리 시장의 풍경과 인정과 역사를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우록서원 타진당은 현도면에 있는 것이군요...
기회되면 한 번 가 보고 싶습니다.

[霽月임미옥]

'이십여 년 전에 지역 국회의원의 공약으로 육거리시장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비 가림의 지붕설치는 재래시장 개혁의 선봉이다.
전국의 5대 상권의 한곳이며 청주 시민의 많은 이용으로 늘 활기차고 생기가 돈다..."

그곳을 자주 이용하는 시민으로서 긍지를 느낍니다. 감상잘했습니다. 회장님.

[도깨비 1(강대식)]

전국에서 몇째 안가는 시장이 육거리 시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자주 이용하여 활성화 시켜 주는 것이 꼭 필요할 듯도 하고요.
글 잘 읽고 갑니다.

[관조(김학명)]

선생님의 작품에서 삶이 어렵다고 느껴질때는 시장을 가보라는 말이 생각납니다.
옛날 5일장의 기억이 물씬나구요 활력있어 좋습니다.
늘 우리문화 우리 주변의 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