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장안구에 있는 화장실 문화전시관 해우재. 변기 모양의 디자인이 독특하다.
사색의 공간을 지향하는 K-화장실
대한민국은 세계에 자랑할 것이 제법 있는 나라가 됐다.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어나길 바라는 게 낫다던 나라가 민주화와 산업화를 이루어 당당히 선진국 대열에 올라선 것은 그 첫째가는 자랑이다. 이틀 전 총선거에서 여야는 상대를 향해 그 업적을 망치는 세력이라고 삿대질을 했으나, 이제는 결과에 승복하고 나라의 발전을 위해 힘을 합치라는 국민의 명령을 따르게 될 것이다.
그 토대 위에서 K-팝을 앞세운 K-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으며, 사회 인프라측면에서도 지하철과 고속열차, 인천공항, 청계천 등 효율성, 접근성, 안전성, 환경성 등에서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시설들이 자랑거리를 더해가고 있다.
여기에 소리 없이 세계적인 명물로 추가된 것이 한국의 화장실 문화다. 이것은 외국인들로부터의 찬사에 앞서 해외 나들이 길에 그곳의 화장실을 들러본 한국인의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화장실은 한국이 최고”라는 말로 평가가 나 있는 터다.
그런 난감했던 화장실 경험은 개도국에서만이 아니라 구미 선진국에서도 흔히 겪는다. 쉽게 찾을 수 있는 공중화장실이 없는 데다, 웬만한 민간상업시설이나 공공시설의 화장실을 개방운용하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이들 나라에선 출입통제로 여행객이 사용할 수 없다.
최근 미국의 시사 주간지 타임이 전한 세계 최대도시 뉴욕의 화장실 실상을 보면 한국의 화장실의 우수성을 실감할 수 있다. 미국의 공중화장실은 인구 10만 명당 8개꼴로, 인구 800만 명의 뉴욕 시에 화장실이 1,000개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 화장실 문화를 선도하는 도시가 수원시인데, 인구 120만 명의 수원에는 공중화장실이 640개, 즉 10만 명당 53개로 미국보다 약 7배나 많다. 이는 수도 서울을 비롯한 여타 도시에서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미국에선 이 같은 화장실 절대 부족현상으로 빚어지는 부작용이 크다. 특히 급박뇨나 급박변이 수반되는 내장염증(Inflammatory Bowel Disease:IBD) 환자들은 외출을 할 수 없을 지경이라고 한다. 그들은 사회생활은 물론 취미생활도 못해 고독감과 우울증으로 시달리게 된다. IBD 환자만이 아니라 임산부, 노인, 유아를 데리고 나온 부모는 물론, 배달원, 택시운전사 등 직업적으로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종종 그런 곤경에 처한다.
상업시설의 화장실은 고객전용제가 대부분이어서 맥도널드 가게의 화장실을 이용하려면 하다못해 물 한 병이라도 사야 한다. 테어도오·시겔이라는 사람이 뉴욕의 화장실지도 앱을 만든 것도 이런 열악한 화장실 사정 때문이었는데, 이 지도앱은 구글의 지도 가운데 세계에서 가장 많이 찾는 지도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의 화장실 부족은 일차적으론 주정부나 공공기관의 투자부족에 기인한 것이다. 민간 기업이나 상업시설들이 화장실 확장을 꺼리는 데는 화장실을 마약과 성범죄의 온상으로 간주하는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한다. 그 결과 길바닥에 대소변을 보는 사태가 흔해져, 위생불량으로 인한 질병유발의 악순환의 원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화장실 사태가 악화하자 주 정부들이 잇달아 IBD환자에게 화장실을 무료 이용하게 하는 법을 만들고 있고, ‘크론 & 대장염 재단’이라는 민간단체가 ‘급해요(We Can't Wait)'라는 화장실 개방캠페인을 백화점, 서점, 교회, 식료품점 등을 대상으로 벌이고 있다고 한다.
현재 한국의 화장실이 선진국들에 비해 양호하다고는 하지만 한국도 한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여느 개도국이나 마찬가지였다. 농어촌은 물론 대도시에도 푸세식 화장실이 대세였다. 냄새나고 불결해서 화장실과 처갓집은 집에서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던 나라였다. 유흥가 뒷골목은 방뇨장이 되기 일쑤였다.
여기에 개혁의 바람을 일으킨 화장실 선각자가 고 심재덕 수원시장이었다. 한국이 2002 한일 월드컵을 유치하던 1996년 수원경기 유치사업의 하나로 시작한 화장실 혁신 캠페인은, 공중화장실 확충과 공중도덕 지키기를 통해 호텔식 화장실로 바꾸는 게 목표였다.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다’는 유명한 구호가 화장실에 등장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이 캠페인이 전국으로 퍼졌고, 나아가 세계로 뻗어나가 2007년 세계화장실협회(WTA)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심 시장은 이 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고, 역대 수원시장이 회장을 맡아 그의 유지를 기리고 있다.
한국은 이제 화장실 인심이 세계에서 가장 후한 나라가 됐다. 정부의 화장실 개방화 정책이 동참하는 민간시설 및 공공기관에 화장실 용품을 지원하는 방법으로 정착됨으로써 화장실이 넉넉해졌기 때문이다. 가게에선 물건을 안 사는 고객에게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게 했고, 상당수 공공시설의 화장실도 개방 공간으로 활용된다.
심 시장은 자신의 사저에다 화장실문화전시관을 지어 수원시에 헌납했다. 전시관 건물부터 좌변기 모형으로 만든 이곳에는 화장실과 관련한 많은 자료들이 조형물과 함께 전시돼 있다. 그의 일생은 이처럼 온전히 화장실에 바쳐졌다.
이 전시관의 이름은 ‘해우재(解憂齋 : 근심을 푸는 곳)’인데 보통 사찰에서 해우소(解憂所)로 불리던 이름을 공양의 뜻을 가진 재(齋)로 바꿔 경건함을 더했다. 화장실을 단순한 배설장소가 아니라 사색하는 장소로 격상시키려 했던 고인의 뜻이 담겨 있다.
먹는 것과 배설하는 것이 똑같이 신성한 것임을 깨닫게 한 것은 심재덕이 우리에게 끼친 선한 영향력이다. K-화장실은 접근성과 청결성이라는 기초인프라를 갖췄을 뿐 아직 개선돼야 할 부분이 허다하다. 여기에 한국적 예절을 입혀서 진정한 자랑거리로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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