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겨울 바람...>
봄이 오는 길목의 산길에
얇은 얼음 밑장으로 아득한 옛 풍경이 서성거렸다.
하늘은 청명한데 바람 매서운 그런 날.
살쾡이의 숨겨 둔 발톱 맨치로
산중 바위 뒤에 숨어 있던 돌바람은
얼마나 매섭게 달려 들던지
청녕 파란 하늘에 질렸다.
얼얼한 탱초에 매운 된장맛 같던 그 날.
나그네는 시절을 찾아서 길을 나선다.
경주 내남 망성리에서 본 남산.
경주다.
그 몸으로 천년을 말했다,
눈뜬 장님모습의 편안한 그를 본다.
차츰차츰 산의 이치를 살핀다..
고위산.
자불고 있는 골동품같은 산.
뱃심 없는 남산자락에 걸린 고위는
민민한 듯 하나 오를 수록 버겁다.
용정계곡
질금질금 흐르는 노인의 콧물같은 겨울 계곡.
삼도천을 건너...
노자돈 대신 공양물을 누군가 올리고 갔구나.
저승에 가면 삼도천에 모여 이승의 옷을 모두 벗는다지...
뒷도련을 움추린 山客이
황새다리 모양으로 징검돌을 성큼 건너고 있다.
옛날이면 산에서 캔 나물을 버들고리에 담아 이고 오간 길이건만...
山神이 노하면 액이 낀다.
산신제를 했건, 시산제를 했건,
무당이 상사굿 춤을 추었건 말건,
맨들한 판석 위에 차려진 떡과 과일은
틀어진 구신을 부를 것이고,
조상도 달랠 것며,
이 산을 넘나 드는 산객을 지킬 것이다.
나그네는 산신이 주신 음식을 베낭에 냅다 집어 넣고
산 중턱쯤에서 쉬면서 음복했다.
밤새 개울에 모셔진 과실은 모두 얼어 있었다.
사과의 맛은 질컨질컨 했고,
귤의 낱알은 달달했으며,
떡은 얼음장이고, 과실은 시원했다.
바위와 물
누운 황소 엉덩이 같이 펑펑한 바위에 얼음물이 슬며서 흘러 간다.
버려진 초상.
얼굴이 익다.
추풍에 낙엽 떨어질 때 봤을까?
어디선가 본 듯한 이녁은 목아지가 댕강 잘렸고나.
제 몸뚱아리는 남 주고
남산 자락에 혼백 떠돌며 사람 인심을 향해 넉 놓고 웃고 있다.
그 주위에
잘린 참수를 맛 본 막걸리와 세물世物이 널려 있고...
돼지 머리.
무고한 죽음과 웃음.
귀는 꼬꼬히 섯고,
눈섭과 뭉실한 털은 죄다 밀렸다.
툭 퉈어 나온 코와 턱밑은 정鋌에 맞았는지 벌겋다.
死者는 몸으로 말한다고 했던가.
나그네의 목을 따고 털을 밀면
저 몰골 보다야 이쁘겠지.
쓴 웃음이 돈다.
계곡.
아무도 없는 계곡.
가만히 귀 귀울여 보면
순한 황소가 꼬리로 파리를 쫏 듯
척척~ 딱딱~ 골짜기를 친다.
나무가지 부러지는 소리같은...
산과 바위
사내 대장부로서 차마 부러지질 못하고
녹다가 통큰 바위로 일그러졌다.
남산은 온통 마사 바닥에 돌이다.
돌에 박힌 소나무만 사시장철 푸르다.
경주 남산.
추위에도 눈빛은 살아
차운 바람이 까치 걸음으로
싸~ 하고 달려 온다.
세찬 겨울바람을 부르는 남산.
바람을 미는 나그네.
무서운 풍파에 된 맛을 본 나그네는
세사를 등지고 유량께나 한다고
꼴값을 떨며 손을 흔들고 산다.
죽네 사네 북망산천을 오르는 비련한 자.
암벽.
쓸게 빠진 자여.
산은 왜 오르나?
바람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고
이슬 먹은 풀잎처럼 낮춘 산.
오를 수록 낮아 지는 산.
山은 이치를 그렇게 가르친다.
세찬 인생길에
아비등에 메달린 새끼 돌고래 모습의 암벽.
허리띠에 은전 한닢 못 찬 나그네는
빽빽 우는 처자妻子 바위를 짊어 진 고행길 아니던가.
소리 없는 동행자.
막걸리 주막집을 해 보고 싶다는 이녁.
수감방과 꼭 같이 꾸민 그 곳에서 짠밥과 술을 마시는 체험식 주막은
곤한 심사를 달래주는 낭만촌이 될 듯합니다.
부디 꿈을 이루소서.
암벽에 박힌 소나무.
질긴 세월.
목숨이 누가 더 긴지
생물과 암벽이 견주는 忍苦.
동아줄에 메달린 기구한 인생사.
하늘은 푸르고
청명하기 그지 없는 세월일지라도
사람이 푼수를 잃으면 팽팽한 자일을 붙잡을 수 밖에 없고나.
아마 명데로 못 살란갑다...
외로운 소나무.
산밑은 조용한데,
산을 올라서니 회오리 바람이 드세다.
세찬 바람속에 우뚝 선 소나무의 절개는 마냥 굳세다.
숫제 팽팽한 자일을 놓고 소나무가 될란다.
돌에 박힌 소나무.
가바위에 바람을 피해.
가차 없는 돌개바람을 피해
돌숲에 숨는 사이,
그 돌풍은 어깨를 이은 띠 역활을 했다.
내남 들판.
가장 잔인한 미물은 인간이고,
가장 고귀한 것은 산하다.
도도히 흐르는 저 강산은
말 없이 덮어 둔다.
저 멀리 산기슭에 망성이 보인다.
절집의 스님.
비를 든 스님은 세사를 쓸까?
사람이 싫어 산으로 가고,
그 사람은 사람을 다시 찾기 마련.
山神을 달래는 천룡사.
옆컨에 집체만한 바위가 있다.
치성으로 기도 드리는 보살은 보이지 않고
바람만 일었다.
야문 뼈다구를 드러낸 베롱나무가 절을 지키고 있다.
竹山
산과 대나무,
억세 지붕이 어우려진 풍경,
등나무가 겨울 풍경을 꿉는 꼬신네를 토한다.
천룡사지와 석탑.
대나무와 장독이 있는 풍경
대숲이 깊어
보이지 않는 그곳에는 새들이 노래를 한다.
새와 꿩이 어울려 논다.
한가로이 장독은 도열했다.
竹山의 소리.
모진 바람에 일렁인다.
오랜 세월을 흔들거리며 쏟아 내는 소리는
싸~싸~
그 뿐이다.
목이 휘게 기우는 키 큰 대나무는,
춘풍아~
하며 슬픔같은 소리를 낸다.
하늘과 대숲이 붙어 애닮피 운다.
녹원정사 마당.
山中 綠圓靜舍.
푸른동산의 고요한 집.
이름좋아 불로초로다.
동동주와 된장 맛이 좋아 사람이 바글바글 한다.
햇볕에 꼽꼽히 마른 메주가 가지런하다.
주인장.
털털하고 넉살스런 표정이 오래된 메주덩이 같다.
밥이 하늘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주인장 왈
'하루 세끼만 굶어 보이소' 한다.
녹원정사의 표정.
방안 이불을 무릎팎에 덮고 방문을 삐끔 연다.
눈인사를 나누고 세세히 보니
절름발이도, 애꾸눈도 곰보 째보도 아닌 연판 스님상이다.
녹원정사는 이녁을 보고 하는 말이지 싶다.
밥먹는 방....
서막을 걷었다.
벽에 걸린 미인도가 가리마 선을 끗는 머리손질을 끝내고 객을 맞는다.
언 물속의 비단잉어 유영처럼 잠행하는 낮은 목소리의 아낙은 분홍색 카텐을 들쳐 보았다.
그 속에는 이불이 개여 있었다.
동동주와 먹걸이.
아귀 아가리 같은 방안에 오봉 밥상이 들어 왔다.
동동주 반 차베기에,국, 쌈배추가 먼저 들어 왔고,
여덞가지 나물찬에 쌈장 둘, 동치미, 삽삽한 된장찌개등 열네가지가 들어 왔다.
1인분 오천원, 동동주 반되 3천원.
절집 밥 같다.
목공예방.
좋은 날 한번 없는 나무가
다시 분홍빛으로 태여났구나.
내려 오는 길에...
자화상.
일그러진 나무.
生과 같이 한 자신의 面面.
자신의 얼굴을 책임지란다.
얼굴이 따게지고,
입이 비틀어 지고,
도끼로 난도질 당한 역정 세월.
깍이고, 파이고, 두드려지며 지겹게 다듬겨 왔다.
지나고 보면 고초는 꿈이였으나
역시 꿈 꿀데가 좋더라.
고초와 마디가 유달리 많았던 나그네의 자화상을 본다.
기와집.
수년 전 이 집을 지을 당시에 둘러 본 적이 있어 발길이 닿았다.
균형.
세월 묻은 놋쇠그릇.
산을 내려와서 본 골동품 가게.
골동품 가게 안.
오댕가게의 동네 아낙들.
국물로 몸을 녹일 겸 구멍가게로 들어 갔다.
어제밤에 누구집 제사에 멧상들 며느리가 안 왔다느니,
사내들 빈둥거리는 꼴 눈뜨고 못 봐주겠다는 둥
아낙들의 시시콜콜한 얘기는 콩 뽁 듯 했다.
옥수수 뽁기.
옥황상제 드실 물을 다릴라나.
연탄난로를 안고 아낙들은 옥수수를 뽁고 있다.
망성교.
친구가 있는 내남 망성리 월성 이씨 집성촌을 초입하는 다리.
기둥서방 같은 제주도 하루방의 인상이
매운 겨울바람에 일그러져 헛것으로 보인다.
당산 소나무.
썰렁한 바람이 산을 타격하자
나무가 저들 끼리 어울려 흔들린다.
새마을 교회.
선비촌 망성마을 입구.
마당귀의 서당.
서당귀가 이체롭다.
통권을 가르치던 훈장과.
허리를 아래 위로 쪼아리며 글을 읽던 학동이
경운기를 탄 나그네를 맞이 하려고 우루루 나올 것 같다.
서당과 친구집
서당 뒤의 낡은 오막살이가 친구집.
오막살이.
고향지리 친구가 장만해 둔 집.
세월의 때가 줄줄 흘러
명태껍데기 같다.
山河.
강물과 논뚜렁, 또랑길을 따라 경주로 이어지면서
용두레로 물을 퍼 논에 댄다.
두손으로 퍼도 퍼도 남는 형산강 저 물은
남산을 굽이 돌아 삼도천으로 갈까?
월성 이씨 오우당파 종가고택.
오토바이를 타고
과거급제한 이가 온 듯하다.
누각이 고고하다.
오우당.
갓, 망건, 도포를 벗고 올려다 보니
오우당은 나그네를 쏘는 듯이 본다.
이마의 핏줄 같은 써가래가 집을 떠 받치고 있다.
五友堂은
다셋형제의 義를 기린 뜻이란다.
종가집 안채.
달은 차면 기운다 하나,
세월이 흘러도 그 자태는 우아하다.
오우당 사랑채.
곡을 둔 나무와 흙담.석등...
청아 한 뜰의 모습은 나그네를 압도 했다.
오칸 대청마루에 선 아낙.
대청 뒤의 대나무가 고가를 둘러쳐
한산모시처럼 시원스럽다.
별당.
울긋불긋한 꽃밭 사이로
별당아씨와 곤지머리를 한 아이가 달려 나올 듯 하다.
凍, 豊, 無.(동,풍,무)
강아지 한마리 얼씬거리지 않는 망성리.
습찬 과거 시절을 돌아 본 정감있는 마을.
산과 계곡, 강, 들판에 바람이 드센 하루.
계곡의 제수 과일처럼 얼고 단,
그 두가지 맛조차 차라리 바람에 언,
시방세계가 그저 凍, 風, 無...였다.
08. 2. 19 우수
집아,고맙다 배 성 동
.
첫댓글 안가도 가본듯하오. 나 갔으면 산에 못 올라가지. 그래서 안 가길 잘 했지려. 추운데 매서운 추운 바람 맞어가며 뭐하려 갈가? 그래도 갔다 온 소감은 남아있으리다. 고향지리 집도 함 가봐야 겠네요
풍류동님.반갑습니다.오신다기에 많이 기다렸습니다.너른 마당집 뒷뜰 연분홍빛 복사꽃 떨어지고 노랑나비 하늘 하늘 반겨주실때 오실랍니까?^*^
큰형님~ 효동 농장 구경하러 안옵니껴? 주흘마루님 `남산위에 저소나무'는 서울 남산이겠지요? 보고싶습니다.
멋지십니다....
그날 족구 시합, 재미 없더라~ 앞으로 우리팀하고 시합 할려면 멤버 다시 구성 해서 연습 해가꼬 와라~
노천 박물관 경주 남산, 해발 500m에 조금 못 미치는 금오산과 고위산에서 뻗어 내린 약 40여 개의 능선과 골짜기에 신라인들은 천년동안 골마다 절을 짓고 바위마다 불상을 만들었지요. 3시간이면 족히 오르내릴 수 있는 곳 경주의 자랑이지요. 망성리 우리집도 둘러 보고 왔구나? 나중에 집을 지을 때 많은 도움을 요청하리다.
~~~좋은 터 잘 보았습니다~~
수고했습니다 ~
우리 촌동네 뒤에네여 잘보고 갑니다...
아우님~ 요즘 통 안 보이네? 분위기맨, 운동으로 단련된 몸짱님~
잘 보고 갑니다~
ㅎㅎ그리움 남기는 .......
어쩌면 글을 이렇게 잘쓰세요?(((((좋쿠로)))))))
저의 고향도 내남인지라 어릴적 내고향 산천초목 잘 봐수다.아는지역이라 더더욱 새롭내요!!!!
반갑슨니다, 물망초님~ 내남 좋지요, 남산이 곁에 있어서... 고향에 오심 연락주세요~
경주남산을 한두번 다녀 오고서는 경주남산을 안다고 말하면 안된다고 하지요.그만큼 많은 유물과 역사의 장이라 그런것이라 생각되어 집니다.무척 추웠을텐데 이렇게 좋은 사진을 담아 오셨군요.글따라 사진따라 물이 흐르듯 쭈~욱 잘 보았습니다.
정감 넘치는 글.사진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