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씨기행]평산신씨 | ||||
신숭겸장군의 후예...강진읍 평동리,병영 낙산마을 생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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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성씨-평산신씨(平山申氏)
하지만 숭겸은 고려의 통일을 달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고려 태조 10년인 서기 927년 후백제 견훤군과의 공산전투에서 적군에 포위를 당하게 되자 왕건과 모습이 비슷한 숭겸이 대신 전투를 지휘하다 전사하게 된 것이다. 숭겸은 후삼국을 통일시키는 일등공신였다는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강원도 춘천시 서면에 시조 숭겸의 묘역이 조성돼 있고 출생지인 전남 곡성군에는 덕양서원이 위치해있다. 평산신씨는 신숭겸부터 15대손에서 19개파로 나뉘게 된다. 아를 파조로 하는 밀직공파, 정도를 파조로 하는 봉산윤공파, 정의를 파조로 하는 장령공파, 감을 파조로 하는 현령공파, 개를 파조로 하는 문희공파, 하를 파조로 하는 한성윤공파, 호(浩)를 파조로 하는 사간공파, 연을 파조로 하는 대제학공파, 기를 파조로 하는 온수감공파, 효창을 파조로 하는 제정공파, 호(灝)를 파조로 하는 전서공파, 인기를 파조로 하는 이상공파, 득청을 파조로 하는 판사공파, 유를 파조로 하는 진사공파, 강을 파조로 하는 감찰공파, 시견을 파조로 하는 판윤공파, 도지를 파조로 하는 참판공파, 우방을 파조로 하는 군수공파 등으로 나뉜다.
문희공파는 파조 신개는 세종때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고 고려사편찬에도 참여하면서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에 이르게 된다. 문희공파의 자랑은 임진왜란때 명장으로 이름난 신립이다. 신립의 아들 경진, 경유, 경인 삼형제가 모두 무과에 급제해 인조반정때 큰 공을 세웠다. 특히 경진은 병자호란때 공을 세워 인조때 영의정 벼슬에 올랐다. 조선시대에 무인으로 영의정 벼슬에 오른 인물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사간공파는 세종때 호조판서를 지낸 신호를 중심으로 후손들이 이어진다. 신호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자 이에 반발해 옥새를 숨겨버린 사건으로 유명하다. 호의 후손 민일은 대사성(성균관 정3품벼슬)의 벼슬에 오르고 사철은 영중추부사(정일품 무관벼슬)에 임명된다. 사철의 아들 만과 회 형제는 영조때 나란히 영의정의 벼슬에 오르게 된다. 정언공파는 대표적인 인물은 신흠이다. 인조때 영의정을 지낸 흠은 조선시대 4대문장가로 이름을 높였다. 흠의 동생 감은 임진왜란때 불타버린 왕조실록 복원에 기여했다. 또 흠은 병자호란때 인조에 반기를 들고 심양에 끌러간 익성과 뛰어난 문장가 익전 두명의 아들을 뒀다. 강진에 생활하는 평산신씨는 문희공파와 사간공파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문희공파는 해남에서 생활한 팽으로 시작됐다. 문희공파의 후손은 200여년전 강진읍 평동리에 신근이 이주하면서 관내 생활을 시작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매년 음력 10월 중순 해남군 북평면에서 팽을 기리는 시제와 각 문중별로 도암면 만덕리, 완도군 신지면등에서 각기 시제가 열리고 있다. 사간공파도 200여년전 장흥 북문동일대에서 병영면 낙산마을에서 이주한 초갑이 처음 관내 생활을 시작했다. 초갑의 후손들이 번성해 관내 생활하고 있고 매년 음력 10월 15일경 일요일을 선택해 작천면 까치냇재에서 시제를 준비하고 있다. 평산신씨의 관내 모임도 40여년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평산신씨 화수회는 현재 신재희 회장이 맡아 모임을 이끌고 있고 매년 3월초 종친들의 회합을 주선하고 있다. 평산신씨 출신으로는 광양제철에 근무했던 신계홍씨, 호남대 경상대학장을 맡았던 신동출씨, 토건업에 종사했던 신제국씨, 중앙공업사를 운영하는 신영호대표, 강진군청 행정지원과 신석재과장, 칠량면사무소 신현철면장, 강진읍사무소 산업담당 신윤식씨, 강진군청 투자유치팀 신상식팀장, 강진사랑병원 신용관부장등이 있다.
강진군 평산신씨 화수회 고문을 맡고 있는 신창현(77)씨를 작천면 용정마을에서 만나 문중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신씨는 “예전 병영을 비롯해 많은 지역에서 종친들이 집성촌을 이루면서 생활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각 마을로 분파돼 100여호의 가구만이 강진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종친들의 현황을 소개했다. 이어 신씨는 “평산신씨의 종친들의 단합은 40여년간 이어온 화수회의 역할이 크다”며 “화수회를 통해 지금도 매년 40~50여명의 종친들이 서로 만나 문중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또 신씨는 “현재 화수회장을 맡고 있는 신재희 회장의 노력이 화수회의 활성화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며 “직접 종친회원들의 찾아 다니는 신회장의 노력이 더욱 많은 종친들이 문중에 대한 관심을 갖게 만들고 있다”고 자랑했다. 문중에 대해 신씨는 “선조를 배양한 곡성군 덕양서원을 찾으면 군수와 경찰서장등이 제사에 직접 참여한다”며 “직원들을 시켜 덕양서원을 청소하는 모습을 보면서 훌륭한 선조에 대한 존경심이 우러나게 된다”고 밝혔다. 이어 신씨는 “덕양서원은 매년 2월과 8월에 유림들이 제사를 지내고 있는 곳으로 전남지역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훌륭한 시조에 부끄럼이 없는 자손이 되야한다는 생각으로 항상 생활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신씨는 “매년 종친들이 문중에 대한 관심을 높이도록 화수회에 많은 도움을 주겠다”며 “선조들의 뜻을 기리기 위해 종친들이 서로 힘을 합해 문중제각을 마련하는 일도 필요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