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집에는 과수원이 있었다. 산밑에
80그루 정도 심겨져 있었고 그것이 우리 가족의 생업을 이끌어
나가는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어머님은
낙과된 사과를 장터에 나가 팔았는데 군(郡)내에 있는 면(面)
단위 5개시장에 사과를 광주리에 담아 머리에 이고 팔려고 다니
셨다. 십리도 넘는 꼬불꼬불한 산길을 지나 시장 터 한 모퉁이
에 쪼그리고 앉아 하루종일 팔아봐야 몇 푼 되지도 않은 것을
허기도 때우시지 않으시고 돈을 모으셨다. 그렇게 어머님이
고생하셨기에 우리 4형제는 모두 고등교육을 받고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남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 형제들을
오늘날 이렇게 살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부모님의 은덕과 보이
지 않게 생계의 한몫을 잘 해낸 사과나무의 고마움이 기억
속에 깊이 숨쉬고 있다.
그 시절에 주종을 이룬 사과들은 국광,홍옥,니시끼, 유과이,
골댄, 인도(니시끼와 유과이는 일본이름 같은데 우리 이름은
모름) 이었으며, 유과이는 제일 먼저 익었고 완전히 익지
않더라고 그리 신맛이 나지는 않으며, 니시끼는 색깔은 곱고
향기는 좋지만 맛은 별로 였고, 골댄은 익으면 노란빛을 내고
향기도 좋고 당도도 높았으며, 홍옥은 유과이 다음으로 빨리
익고 색깔이 곱지만 완전히 익기 전에는 신맛이 많았다. 인도와
국광은 가장 늦게 익는데, 인도는 익어도 붉은색은 띄지않고
녹색에서 연한녹색으로 변하고 당도가 높아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편이었고, 그래도 제일 기억이 남고 맛이 있는 것은
국광이라고 생각된다. 무난하게 많이 먹을 수도 있고 가을에
서리가 내릴 때 아침에 나무에 달린 사과를 따서 먹으면 시원하
고 사과 질도 단단하여 그 맛이 일품이었다. (이것은 내가 어릴
때 느낀 것을 기억에 더듬어 적었음)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우리집에서 가꾸던 사과나무를 내력도 모
르고 사과니 능금이니 하면서 부르고 지냈는데 사과의 내력을 한
번 찾아 보았다.
사과나무는 쌍떡잎식물 장미목 장미과의 낙엽교목이며,
사과는 고대 그리스나 로마 사람들에 의하여 애용되었고 재배종
은 유럽 전역에 전해졌다 .유럽에서 개량된 사과나무는 17세기
에 미국에 전파되어 더욱 개량되어 사과나무재배는 미국의 주요
산업으로 발전되었다. 동양에서는 중국에서 1세기경에 재배한
기록이 있으며 그 당시의 것은 능금(林擒)이라 불러 한국과 일본
에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늘날 재배되고 있는 사과나무를 한국에서 최초로 심었던 사실
이 기록으로 남은 것은 1884년부터이고 그 후 1901년 윤병수가
선교사를 통해 사과나무 묘목을 얻어 원산 부근에 과수원을 조성
하여 좋은 성과를 얻은 것이 경제적 사과나무재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1906년 서울 뚝섬에 원예모범장을 개설하고 각종
개량 과수묘목을 들여올 때 사과나무를 많이 심었다. 그 후 재배
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고 한다. (출처: 두산세계대백과)
위와 같이 사과의 내력에 대하여 알아 보았으나, 어릴 때 즐겨
먹던 사과의 맛은 접할 수가 없다. 품종개량으로 그 시절의 사과
나무는 모두 잘려나갔고 부사니 아오리니 생소한 이름을 가진
사과들이 시장에 즐비하게 장식하고 있으니….
단맛이야 그 때 보다 좋은지 몰라도 어렵게 살던 그 시절의 추억
의 사과 맛은 사라진 지 오래다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답글
수정
삭제
스팸처리
54 문학방
국광, 홍옥 너그들 다 어디갔노?
울사니
추천 0
조회 69
08.07.01 22:26
댓글 6
북마크
번역하기
공유하기
기능 더보기
다음검색
첫댓글 친구들은 보리를 갖고 가고 복이는 농사를 하지않으니 10원짜리<빨간색>하나들고 가면 험다리 한~잘개이 메고 왔지. 문환이 너네 집에도 바꿔 왔지 .그래도 너희 능금밭이 들머리니깐 멀리가면 메고오는데 똥줄 나는기라 맞제? 10원 큰 돈인기라 840원내고 3박4일 서울수학여행 선~~하게 댕거왔서이까네 840원이 머ㅡ그리 큰돈이라고 3분에2가 수학여행 못했다 아이가. 크기는크다" 지개자네집" 에 지개 맞추는데 30~40원 했서이까네 .오징어큰거5원3원 했다아이가 .참 불쌍한 농촌사람들 ....그어려운 생할속 우리들..... 그래서그런지 도시애들 보다 우리는 그리운 우정이 그립고 보고싶은 모양일새 .
그 맛나든 능금 글 잃는동안 입안에 침이 한 가득 고이네 ...길가에 사과 큰물 지나고 떠내려온 사과도 주워 먹었는데,,,,
지금도 반쯤 썩은 홍옥이 먹고 싶을때가 종종 있다네...침 나온다.ㅋㅋ
똑 같은 시대을 살은 우리는 정말 정겹다. 엄니 졸라서 보리 한되 얻어 가지고 냉수지 가서 대문에다 대고 능금있능개?하고 외치면 먼저 덩치 큰 개가 튀어 나와짓는다. 그러면 우리는 식겁을 먹고 다른집으로가서 외친다.능금있능개......무섭게 짓던 똥개?는 누구의 입으로?.... 그분은 건강히 아직도 생존해 계실까?고맙다 친구야 아련한 추억을 되살려 줘서....
사라진추억이야말로 당도높은 추억이아닐까싶네..능금말 나한테는 하지를말거래이, 부모님고생은 말로어찌 표현할까만 난 능금나무밑에서 약치는 호수 줄 땡길때가제일싫었다아이가, 글치만 지금내가있어 부모님께감사또감사!!!!
호수 줄 땡길때 미리 우리집에 오너라 하머 내가 갈낀데 나는 능금 험다리 싫큰 먹고 옥이도 싫큰보고....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