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5. 22. 주일 오전. 필그림교회
셈의 후손들
[본문] 창세기 10:21-25
전에 우리가 노아의 후손에 대해 살펴보았었는데, 야벳의 후손과 함의 후손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야벳의 후손은 대개 아라랏 산에서 동쪽으로, 그리고 또 북쪽으로 올라가서 흑해 북쪽 해안을 타고 서진하여 오늘날 유럽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중에는 다시 아르메니아 쪽으로 내려온 민족도 있고, 저 북쪽으로 가서 러시아 쪽으로 간 민족도 있습니다. 함의 후손은 아라비아와 이집트와 리비아로, 그리고 시날 평지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라랏 서쪽에 있는 아나톨리아로 갔습니다. 또 시돈 지역으로 가기도 하고, 가나안 땅에 들어와 살기도 했습니다. 가나안 일곱 족은 다 함의 후손들입니다. 이제 노아의 남은 한 아들은 셈(Shem)입니다. 셈도 아들딸들을 낳아서 여러 민족을 이루었는데, 창세기 10:21-31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선 21절에 보면 셈에 대해 두 가지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에벨 온 자손의 조상이라고 말합니다. ‘에벨(Eber 또는 Heber)’은 셈의 후손 중 하나입니다. 셈의 아들 아르박삿의 아들 셀라의 아들이 에벨입니다. 만일 이 사이에 생략된 세대가 없다면, 에벨은 셈의 증손자가 됩니다. 왜 셈을 소개할 때 그 증손자인 에벨의 조상이라고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에벨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에벨에게서 히브리 민족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 에벨의 후손 중에서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이 아브라함을 불러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아브라함에게 있고, 이 아브라함은 에벨의 후손입니다. 그리고 에벨은 셈의 후손입니다. 그래서 셈은 에벨의 조상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 보면, 셈은 야벳의 형이라고 말합니다. 대개 셈은 첫째 형이고, 함은 둘째이고, 야벳은 셋째 곧 막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노아의 아들들을 말할 때에는 항상 셈, 함, 야벳의 순서로 말합니다(창 6:10, 9:18, 10:1, 대상 1:4). 물론 셈, 야벳, 함의 순서로 보는 사람들도 있고, 이와 정반대로 함, 야벳, 셈의 순서로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셈도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들의 이름이 22절에 나와 있습니다.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라고 합니다.
‘엘람(Elam)’은 후에 엘람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살던 지역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엘람은 바벨론 동쪽, 티그리스 강 하류 동쪽에 있습니다. 수사(Susa)가 그 중심 도시입니다. 북쪽에는 메대가 있고 동쪽에는 페르시아가 있습니다. 오늘날 이란 남서쪽에 있는데 이라크와의 국경이 가깝습니다. 산악 지대라 사람들이 사납고 용맹하였습니다. 이 엘람은 셈의 아들입니다. 따라서 엘람은 셈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 ‘앗수르(Asshur)’는 바빌론 북쪽에 있었습니다. 티그리스 강 유역인데 오늘날 이라크 북부에 있습니다. 우리나라 자이툰 군대가 주둔했던 모술이 옛날 앗수르에 속했던 곳입니다. 니느웨가 모술 바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앗수르도 셈의 아들이요 셈족이라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후대에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북쪽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나라가 바로 앗수르입니다. 그래서 앗수르는 이스라엘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그 앗수르가 셈족입니다.
따라서 셈족이라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는 한민족은 셈족이라고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민족(조선)은 chosen people이라고 엉뚱한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예를 들면 유석근, 「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p.53). ‘조선(Chosun)’과 ‘chosen’은 스펠링도 다를 뿐 아니라 전혀 관계없는 말입니다. 옛날에 (고)조선이 건국될 때에는 우리나라에 영어가 들어오지도 않았고, 조선이란 이름은 영어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셈족이라고 다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엘람과 앗수르도 셈족입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다수 부족은 파슈툰 족인데 셈족입니다. 히브리어와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지방마다 원로(장로)들이 있어서 원로회의에서 중요한 것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따라서 셈족이라고 다 좋은 것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 ‘아르박삿(Arphaxad)’은 어디인지 불분명합니다. 요세푸스는 아르박삿은 갈대아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룻(Lud)’이 누구일까요? 대개는 소아시아의 루디아(Lydia)로 생각합니다. 루디아는 한 때 부요한 왕국이었습니다. 사데가 그 중심지인데 황금이 많이 나던 곳입니다. 미다스의 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등 전설의 본고향입니다.
다음에 ‘아람(Aram)’은 그리스 사람들이 ‘쉬리아(Syria)’라고 불렀으며, 로마 사람들은 ‘수리아(Syria)’라고 불렀습니다.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 사이의 초원 지대입니다. 다메섹도 그 한 도시이며, 그 북쪽 지역도 아람입니다. 오늘날 요르단과 시리아가 이에 해당됩니다. 나중의 이스라엘 역사에 보면, 아람은 이스라엘 동북쪽에 있어서 늘 이스라엘을 괴롭혔습니다. 자주 쳐들어와서 죽이고 약탈했습니다. 그런데 아람도 셈족입니다. 같은 셈족끼리 서로 싸우고 괴롭혔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우리나라 주위를 보면, 중국 북쪽과 일본은 크게 보면 같은 민족(북방 민족)입니다. 그런데 같은 민족끼리 다투고 싸웁니다. 멀리 있는 다른 민족이 괴롭히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저 미국과 유럽 사람, 아프리카 민족이 우리를 괴롭힌 일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멀리 있는 사람들과 잘 사귀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경계해야 한다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23절에 보면 아람의 아들들 이름이 나와 있습니다. “아람의 아들은 우스와 훌과 게델과 마스며”라고 합니다.
‘우스(Uz)’는 욥의 거주지로 유명합니다. 욥기 1:1에 “우스 땅에 욥이라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라고 말합니다. 이 우스는 에돔 땅에 있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다 에돔에서 왔습니다. 그렇다면 우스는 가나안 남쪽 지역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에 ‘훌(Chul)’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릅니다. 요세푸스는 ‘훌’이 아르메니아를 세웠다고 하는데 알 수 없습니다.
다음에 ‘게델(Gether)’은 어디인지 모릅니다. 요세푸스는 ‘박트리아’라고 말합니다. 현재 이란 동쪽 끝과 아프가니스탄 지역인데 알 수 없습니다.
다음에 ‘마스(Mash)’는 어딘지 잘 모릅니다. 대개 ‘마시우스(Masius)’ 산과 관계있다고 보는데 확실치 않습니다. 마시우스 산은 아르메니아와 메소포타미아 경계에 있습니다. 현재 지명 Tur Abdin이라고 합니다.
다음에 24절에 보면, 아르박삿의 후손들 이름이 간단하게 나옵니다.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으며”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벨’은 아르박삿의 자손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에벨’에서 ‘히브리’란 말이 나왔습니다. ‘에벨’은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로 시작하는데(히브리어 글자 ‘아인’), 영어로는 Eber 또는 Heber로 표기합니다. ‘히브리’란 말도 원래는 목구멍에서 나는 소리로 시작하는데 ‘이브리’입니다. 그래서 ‘에벨’과 ‘히브리’는 원래 자음이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25절에 보면, “에벨은 두 아들을 낳고 하나의 이름을 벨렉이라 하였으니 그 때에 세상이 나뉘었음이요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이며”라고 합니다.
에벨의 두 아들은 ‘벨렉’과 ‘욕단’이었습니다. ‘벨렉(Peleg)’은 ‘나뉨’이란 뜻입니다. 그 때 세상이 나뉘었다고 하는데 무슨 뜻일까요? 이것은 창세기 11장에 나오는 바벨탑 사건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홍수 후에 사람들이 동방으로 옮겨오다가 ‘시날 평지’를 만났는데 기름지고 좋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벽돌을 구워서 성을 쌓고 높은 탑을 쌓았습니다. 소위 바벨탑입니다. “우리가 흩어짐을 면하자! 우리 이름을 빛내자!”고 하면서 높은 탑을 쌓았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보시고 진노하셨습니다.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라고 했건만 흩어지기 싫다고? 그러면 안 되지!”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습니다. 서로 알아듣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공사를 중단하고 온 땅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의 사건을 여기에 “그때 세상이 나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벨의 한 아들의 이름을 ‘벨렉’이라 지었는데 ‘나뉨, 분리’란 뜻입니다. 이 벨렉의 후손에게서 아브라함이 나옵니다.
벨렉의 아우의 이름은 ‘욕단’인데 아라비아 여러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유석근 목사는 우리 한민족은 욕단의 자손이라고 주장합니다. ‘욕단계 선민’이라고 주장합니다. 벨렉 자손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바벨탑을 쌓아 범죄했지만, 욕단은 무리를 이끌고 동쪽으로 이주하여 한반도에 도달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한민족은 ‘또 하나의 선민’이다, ‘감춰진 선민’이라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이 ‘드러난 선민’이라면 한민족은 ‘감춰진 선민’이라고 주장합니다(「또 하나의 선민 알이랑 민족」, 2010, pp.89-139).
그러나 이런 주장은 굉장한 무리가 따릅니다.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성경에 ‘감춰진 선민’이란 것은 없습니다. 잘못된 교회나 이단들이 이렇게 주장합니다. 동방정교는 감춰진 전통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의식주의와 미신으로 흘렀습니다. 가톨릭교회도 전통의 이름으로 마리아를 숭배합니다. 이에 반해 개신교는 드러난 계시,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합니다. 한민족이 셈족 후손이란 증거도 없고, 더구나 욕단 후손이란 것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유석근 목사는 거의 소설 쓰듯이 써 내려가는데 굉장히 재미있고 사람을 흥분시킵니다.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나라에서 혈통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혈통 때문에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12-13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3:7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혈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고 생명을 얻는 것이지 셈족이라고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다. 욕단 자손이라고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셈의 후손들 중에는 아라비아 족들이 많습니다. 또 엘람과 앗수르와 아람 등도 있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을 침략하고 괴롭히고 멸망시킨 민족들도 있습니다. 따라서 혈통적으로 셈족이라는 사실은 구원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과도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고 복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날에도 그렇습니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어느 민족이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한국 사람은 복 받고, 일본 사람은 복을 못 받고 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복을 받고 은혜를 얻는 것입니다. 중국 사람도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을 잘 섬기면 복을 받고 발전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이제 예수님을 믿기 싫다고 예수님을 떠나가면, 불교나 이슬람이나 다른 종교를 믿으면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러분이 어떤 가정에서 태어나고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더라도 복 받고 못 받고는 자기가 하기 나름입니다. 자기 스스로 성경 말씀을 펴서 많이 읽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또 그 말씀을 지켜 행하면 복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하게 의롭게 행하고, 부지런하고, 부모의 말씀을 잘 듣고 행하는 자는 복을 받아서 잘 되고 형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 여러분, 어린이 여러분, 그리고 학생 여러분, 큐티 잘 하고 있나요? 요즘 잠언의 말씀을 읽고 있는데, 그 잠언의 말씀을 잘 읽고 한 절 한 절 줄긋고 외우고 마음에 새기면 큰 은혜가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행하면 다 복을 받고 형통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환경을 탓하지 말고, 부모와 가정을 탓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읽고 지켜 행하여서 다 복을 받고 형통한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늘 못하고 뒤처지고 실패하고 낙오자가 되지 말고, 부지런하고 열심을 내어서 남들보다 잘 하고 뛰어나고 형통하여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 길이 열려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고,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다 하나님의 말씀을 펴서 읽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함으로 큰 복을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첫댓글 참으로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노아가 가나안에 대해 저주한 예언을 하나님의 싸인으로 알고 돌이켜 회개의 삶을 요구하는 인간의 책임으로 이해할 수 있나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을 좀더 이해할 수는 없는가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라 ... 참 어려운 주제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이 맞고요, 또한 인간 편에서 보면 전적으로 인간의 책임입니다. 그 인간의 책임이란 것도 결국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고백하면서, 우리로서는 최선을 다해 우리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도리입니다.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이 둘은 충돌하지 않고 병행합니다. 이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고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예) 삼상 17장 35절과 37절 비교.
사무엘상 17장 35절 :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사무엘상 35장 37절 : 또 다윗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사울이 다윗에게 이르되 가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기를 원하노라
개역개정 성경에서 발췌하였습니다. 여기에 들어오시는 모든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