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을 앞에 두고
교사 최영철
사막의 빈 가슴을 부여 안고
오늘처럼 봄비 내리는 날에는
어딘가 선술집에 가서
낯술에 취해 실컷 울어나 봤으면,
이승의 인연한 모든 業들에
복사꽃 화사한 마음으로 연연해 하지만
언젠가는 한 줌 연기로 화할 것을.
실가지로 너울대는 내 넋은
창변에 맺히는 빗방울만 보아도
곧장 홍수 같은 울먹임을 터뜨릴 듯
착한 아내와 더불어
한 뙈기 뜰에 라일락 한 그루 심고
땀 흘려 장미 넝쿨 올리면
화안한 봄 날 그 어느 날엔 가는
꽃은 피겠지.
情恨에 가슴 에는 아내여
우리는 참꽃 빛이 화안히
한 밭으로 흐르던
아련한 유년 시절을
손잡고 뛰놀았지.
갓서른 물풀 같은 마음으로
그 無明의 줄기
허위허위 덧없이 부여잡고
취하면 순수와 시대의 영웅을
떠벌리고 해도
유년의 꿈결같은 평화경은
다시는 올 수 없어.
열 이레 전 불면의 봄 밤바다
댓잎 속 신라의 천 년 무덤 아래
핀 앵두꽃 망울 보고도
눈물 떨구었지.
앵두꽃 이우는 밤마다
이름 없는 죽음을 몽상했었지.
술 한 잔 앞에 두면,
내 열 이레 해의 찢기고 헤진 넋이
소금기 저벅이는 사막으로 내팽개쳐 진 듯.
내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누구나 다 그의 가슴마다
정말이지
한 줌의 소금이 채워져 있나 보다
백 필 질긴 명주실로
이승에 인연한 업들이여
정말이지 눈물 뿐, 허망 뿐.
그 진한 빛깔로 스러지고 싶어.
1985. 봄
포항고등학교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교지<영일만> 창간호 게재
카페 게시글
검색이 허용된 게시물입니다.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