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무노조 신화, 그 감추어진 진실
삼성그룹 무노조 신화, 그 감추어진 진실
“세계일류 경영성과 뒤엔 숨막히는 사연 있다”
신노사문화 대통령상을 받았던 삼성그룹이 조직적인 노동자탄압을 일삼아왔던 기업문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있다.
무노조 신화를 이끌어오고 있는 삼성그룹의 저력에 그동안 재계는 높은 관심을 보여왔다.
빈틈없는 인사관리와 후한 복지혜택으로 일컬어지는 삼성의 노무관리는 매년 되풀이됐던 임단협과 최근 주 5일제 근무안을 놓고 노동조합과 갈등을 빚고 있는 타그룹에게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무노조 신화의 뒷면에는 알려진 것과는 전혀 다른 진실이 숨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삼성그룹이 무노조 신화를 이어오고 있는 감추어진 진실을 폭로한 것이다.
특히 노조설립을 목적으로 회사내에 유인물을 배포했다는 이유로 노동자들이 납치, 감금, 폭행당한 사실과 구조조정에 의한 정신적 압박감을 견디지 못해 투신·음독자살한 사례 등은 무노조 신화라는 화려한 외모와는 전혀 다른 내면을 보여주고 있어 충격적이다.
더구나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며 선전하고 있는 삼성의 경영성과는 결코 경영진의 뛰어난 능력이 아니라 조직적인 노동자 탄압의 산물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에 노동조합의 첫 봉화를 올린 곳은 삼성중공업 창원 2공장이었다. 현대로부터 한국중공업의 중장비 사업부를 인수, 가동을 시작한 창원 2공장 노동자들은 높은 생산성에 비해 형편없이 뒤바뀐 임금체계와 열악한 노동강도를 이기지 못해 결국 87년 8월 파업과 함께 노조설립을 위한 행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노조설립 신고서 등 서류를 창원시청에 접수한 이들은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루전날 10여명의 이름으로 이미 노조설립 신고서가 접수돼 있었던 것이다. 복수노조 설립이 허용되지 않았던 노동법을 악용한 유령노조를 삼성은 먼저 설립해 버렸던 것이다.
삼성중공업 유령노조설립 이후 삼성그룹은 노조의 불모지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삼성은 결코 노조를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적자경영을 이유로 2천여명에 달하는 직원들을 정리해고했던 삼성생명은 오히려 흑자경영이었음이 드러나 해고자들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지금도 삼성본관과 이건희 회장 자택 등지에서 1인 시위를 통해 해고의 부당성을 알리고 있다.
특히 1977년 제일제당 여성 노동자들에 의한 노조건설이 폭력으로 무산된 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노조를 인정할 수 없다”던 삼성그룹 창업주 고 이병철 회장의 선언이 사후까지 삼성그룹의 노무관리를 이끌게 됐던 것이다.
유령노조에 의한 노조설립 저지는 비단 삼성중공업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1년 5월 삼성에스원 노동자 5명에 의해 서울 중구청에 제출된 노조설립 신고서는 20분 먼저 회사기술팀 과장이 강남구청에 설립신고서를 제출, 반려되었다.
또 같은 해 10월에는 삼성코닝에서 분사된 아텍엔지니어링 노동자들이 수원시청에 제출한 노조설립 신고서 역시 5분 먼저 제출된 회사측의 유령노조에 의해 무산됐다.
그러나 이같은 유령노조에 의한 노동자들의 노조설립 방해공작에도 삼성그룹은 신노사문화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당시 삼성해복투는 성명서에서 “삼성재벌은 복수노조를 이용한 노동조합설립을 행정관청과 야합하여 원천봉쇄하는 것은 물론 노동조합을 설립코자 하는 지도부를 납치, 감금, 강제해고, 강제해외발령, 강제사직 등 온갖 탄압을 자행하고 있다”며 신노사문화 대통령상 수상은 “노동자 탄압에 삼성재벌과 김대중 정권이 한 몸임을 과시했다”고 비난했다.
유령노조 설립이 아니더라도 삼성그룹 계열사들의 노조설립 시도는 뚜렷한 이유없이 신고서의 반려 등으로 좌절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일주일만에 깃발을 내린 삼성생명서비스 노조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1999년 10월 서울 영등포구청에 제출된 삼성생명서비스노조 설립 신고서는 노조 해산조항과 관련 규약상 문제가 있다는 이유로 신고필증이 교부되지 않았다.
이에 서류를 보완 11월초 노조설립 신고필증을 교부받았다. 그러나 삼성생명서비스노조는 오래가지 못했다.
신고필증 교부 일주일만에 해산신고서를 접수시킨 것이었다.
이유는 회사측이 제공한 당근이었다. 삼성생명서비스노조는 설립 직후 가진 회사측과의 협상에서 요구조건이 모두 수용될 경우 노조를 해산하겠다고 함으로써 결국 해산신고서를 접수시켰다.
회사측의 회유와 협박 등 당시 숱한 의혹이 제기됐지만 노조원 2백2명 스스로 자진해산을 결의, 삼성그룹의 첫 노동조합의 깃발은 꺾이고 말았다.
현재 재판이 진행중인 송수근(삼성SDI 노사협의회 위원)씨의 사례는 개인을 대상으로 한 삼성그룹 노무관리의 전형이다.
97년과 98년을 노사협의회 노동자 위원으로 활동했던 송수근씨는 지난 98년 회사측의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반대, 항의시위를 한 혐의로 징계해고되었다. 이는 98년 11월 노사협의회 노동자 위원장 당선이 확실시되자 미리 해고했다는 의혹으로 이어졌다.
특히 송수근씨는 항의시위 전날 회사 직원들로부터 강제 납치돼 감금된 상태에서 시위중단 압력을 받았을 뿐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은 회유와 협박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송수근씨를 지지하며 노조설립의 뜻을 함께 했던 윤모씨는 삼성그룹에 다니는 친인척들이 사직압력을 받는 한편 수원으로 인사조치 후 곧 말레이시아로 발령을 받았다. 장모씨 역시 강제사직서를 요구받으며 2차례에 걸쳐 납치와 감금, 집단폭행을 당했으며 이모씨와 김모씨는 중국 발령과 장기출장조치를 당했다.
삼성캐피탈 노조설립은 납치, 감금, 폭행등 이런 이유로 좌절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1년 8월 삼성캐피탈 노동자들은 서울 중구청에 노조설립 신고서를 제출하고 신고필증을 기다리던 중 회사관리자들이 노조 지도부를 납치, 감금하고 3일 동안 잠을 재우지 않는 등의 협박과 회유로 결국 좌절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구조조정을 통한 강압적 강제해고’의 예는 IMF 외환위기로 인한 우리 사회의 단면이 삼성그룹을 통해 조명되고 있다.
이에 따르면 삼성은 98년 한해 계열사 노동자 4만여명을 정리해고했다. 특히 삼성의 경우 이건희 회장에 의해 진출이 결정됐던 삼성자동차사업에 대한 실패의 책임이 노동자들의 정리해고로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2001년 8월 삼성SDI와 삼성전자서비스에 근무했던 이모 차장과 김모 사원이 구조조정 압박을 견디지 못해 투신자살한 한편 올 1월에는 삼성SDI 울산공장 야산에서 강압적 구조조정 스트레스로 박모 과장이 음독자살했다
.
또 경영적자라며 1천7백23명을 정리해고한 삼성생명은 이후 1년 동안 1천6백52명을 신규 채용 및 계열사로부터 전입함으로써 현재까지도 부당해고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삼성생명은 정리해고 당시 퇴직금을 제하고도 9백56억원의 당기순이익이 발생, 미운 털이 박힌 직원들을 내보낸 것 아니냐는 의혹을 샀다.
이처럼 적자라던 삼성생명이 흑자였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발표되자 삼성생명 해고자들은 현재까지도 삼성 본관 및 이건희 회장 한남동 자택 등에서 부당해고임을 알리는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삼성생명은 부당해고를 호소하는 신문광고에 대한 명예훼손 고발과 가족협박, 그리고 재직자들에 대한 해고자 접촉 금지령 등으로 맞서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삼성생명이 이들 해고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은 약 30여건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삼성그룹의 노무관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내부 문건에는 1987년 8월 삼성경제연구소가 작성한 ‘345지침’과 1998년 7월 25일 인격구조조정T/F 명의의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시나리오 및 대응방안’ 등이 그것이다.
345지침’은 노조설립 분위기가 가장 활발한 3월과 4월 그리고 5월을 주의하여 노조결성을 저지해야 한다는 의미로 알려지고 있다. 복수노조 금지조항을 철저히 활용하고, 시청 및 군청, 경찰서 등에 삼성 관계자를 두고 매월 급여를 지급하여 적극적인 협조를 얻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 가히 충격적이다. 또 노조결성 움직임이 나타났을 경우 노조설립 관련 서류를 담당하는 시청 근무조 3명을 두고, 만약을 위해 담당 공무원을 돈으로 매수, ‘준삼성직원화’하라는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결국 삼성그룹이 노동조합을 막기 위해 거대한 망을 조직하고, 이 망 속에 시청과 군청, 경찰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345지침’은 말해주고 있다.
인력 구조조정에 따른 시나리오 및 대응방안’(이하 대응방안) 문건은 정리해고에 의한 가상 상황별 대응 시나리오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즉 사내낙서, 유인물 살포, 집단반발, 집단행동, 언론제보 등 내부소요 상황에 따른 행동지침과 퇴출인력 선정에 대한 항의, 퇴직위로금 상향 요구시, 퇴직불응시, 퇴직후 노동청 방문시, 퇴직후 출근 투쟁시 등 퇴출 상황에 대한 행동지침 등이다.
삼성그룹은 이처럼 구조조정에 의한 정리해고에 반발하는 해고자 대응을 위해 구조조정T/F팀을 운영하며 24시간 당직부장 체제를 가동했던 것으로 문건에 나타나 있다.
이들은 퇴직인력을 관리하는 한편 모임 및 단체의 일일 활동 감시를 강화하고, 간부 비상훈련을 월 1회 실시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또 일명 ‘번개팀’이라는 행동대까지 운영했던 것으로 명시돼 있다.
"도덕경영, 인간중심의 경영을 선전하고 있는 삼성그룹이 2000년대에 들어와서도 법에 의해 보장된 노동조합을 설립하려 한다는 이유로 납치, 감금, 폭행 등 노동자의 인권을 유린하는 실탄압사례가 폭로됐다”또 IMF 외환위기를 빙자한 구조조정 과정에서 삼성노동자 2명은 투신자살, 1명은 음독자살한 것에서 보여지듯 평생직장, 남녀차별이 없다던 선전 뒤에서 자행됐던 삼성재벌의 구조조정은 삼성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음을 알렸다.
특히 삼성 내부문건을 통해 이같은 탄압이 결코 삼성만으로는 가능하지 않았으며 권력과의 유착이 있었음이 드러났다.
◆ 일요시사(경제)8월6일자 342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