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시작하며
무협이 기반으로 하고 있는 세계, 강호(江湖)로 또 혹은 무림(武林)으로 불리는 이 세계는 실제 존재했던 중국의 현실과 겹치기도 하고 겹치지 않기도 하는 묘한 장소, 묘한 시간에 위치한 세계를 가리킨다. 그래서 현실이라고도, 또 가상이라고도 할 수 없는 중간적 존재층위(存在層位)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또 이 세계는 그 존재층위만큼이나 묘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환상문학이 작가의 상상력에 거의 모든 존재근거를 의지하고 있는 것에 비해 예로부터 전해온 어떤 형태(그것 또한 누군가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진 것일텐데도)가 상당한 형태를 선지정(先指定)하고 있어서 그것을 무시할 수가 없다.(예를 들어 말하자면 소림사를 도교문파로 그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전해 내려온 그 형태, 그 무림의 모습만이 전부가 아니라 상당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이 그 형태를 다듬고 위치를 지정해주기를 기다려 주고 있기도 하다. 구대문파에 소림과 무당, 화산과 아미파가 안 들어가면 이상해지지만 그 외의 문파는 작가가 정하기 나름이라는 식이다.
이런 존재의 중간성, 작가적 자유재량의 중간성이 무협을 쓰고, 또 읽게 만드는 중요한 매력 중의 하나가 아닐까. 완전한 미지(未知)도, 기지(旣知)도 아닌 흔들리는 세계, 모든 것이 눈에 들어올 듯 모습을 드러낸 상태 같지만 막상 잡으려 들면 가물가물 사라지는 신기루같은 세계, 한 편 익숙하면서도 항상 낯선 모험의 땅. 이것이 무림이다.
아래에 서술한 이야기들 중에는 역사도 있고 전설도 있으나 대부분은 그동안 창작되어 온 무협소설 속에 나오는 이야기다. 무협작가들이 만들고, 독자들이 믿어주면서, 혹은 속아주면서 형성된 세계라는 것이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그냥 재미로나 읽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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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문파방회의 분류
강호무림은 크고 작은 문파(門派)와 방회( 會)로 구성되어 있다. 홀로 떠돌며 협행을 하는 협사 또한 빼 놓을 수 없는 강호무림의 구성요소이지만, 그리고 주로 단체보다는 개인에게 시선을 주는 것이 무협소설의 주된 경향이지만 방파조직을 빼고 무림을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조금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사람이 모여 방파를 이루고, 방파가 모여 무림을 이루니' 방파조직이야말로 무림의 기본구조인 셈이다.
강호무림에 등장하는 무림방파와 방회조직은 아래 다섯 가지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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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육단체류(敎育團體類)-명문정파(名門正派)
<사원辭源>에 의하면 방( )은 원래 화( :세간), 군(群:무리)의 의미이고, 파(派)는 사물의 구별이라는 의미. 그래서 방은 여러 사람이 공동의 이익, 혹은 명분을 위해 모인 집단을 말하는 것이고, 파는 역사적인 근본을 가지고 전승하는 집단을 의미한다. 현대의 단체로 말하자면 파는 학교나 종교집단처럼 수행하고 학습하는 단체, 방은 회사같은 단체인 셈이다.
파를 학교로 보면 졸업생이 나오게 마련이고, 강호무림이라는 사회로 진출해 활동하면서 성공한 졸업생도 나오게 될 것이다. 협객의 본분이라 할 '행협장의(行俠仗義;협을 행하고 의를 지키다)'를 하여 이름을 날린 졸업생이 많게 되고, 그렇게 오랜 세월을 이어오며 전통이 쌓이게 되면 그 파는 '명문정파'가 되는 것이다.
무협에서 명문정파로 분류되는 문파로는 소위 구대문파(九大門派)가 대표적인데, 이 이름이 처음 등장한 것은 중국의 무협작가 와룡생(臥龍生)의 1958년작인 <비연경룡飛燕驚龍>이었다. 여기에서 와룡생은 처음으로 명문정파를 아홉 개로 분류하고 구대문파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 이전의 무협작가들도 명문정파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수는 넷에서부터 일곱 개까지 다양했고, 거기 들어가는 문파들도 다양했다.
이외에 세가(世家)와 산장(山莊) 등도 명문정파의 하나로 꼽히는데, 이 경우는 가족공동체적인 성격의 문파를 말하는 것이다. 같은 성을 가진 가족이 중심이 되고, 그 친족과 고용인들이 구성원이 되는 형태의 가문이 대를 이어 유지되는 경우를 세가라고 부른다. 중국무협에서는 사천당문(四川唐門), 남궁세가(南宮世家) 정도가 자주 보이는 이름이며, 한국무협에서는 하북팽가(河北彭家), 제갈세가(諸葛世家), 운몽세가(雲夢世家), 진주언가(珍州彦家), 광동진가(廣東陳家), 서문세가(西門世家), 신창양가(神槍楊家) 등을 추가해서 팔대세가(八大世家)라는 이름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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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야심단체류(野心團體類)-사파마교(邪派魔敎)
정복무림(征服武林), 일통강호(一統江湖), 독패천하(獨覇天下)...
김용의 <소오강호>에서 동방불패가, 와룡생의 <비연경룡>에서 이창란이, 동방옥의 <종학금룡>에서 모통야가 하고자 했던 것이 이것이었다. 무림을 정복해서 얻어지는 실익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등장하면서부터 끝날 때까지 오로지 이것을 외치며, 온갖 음모를 꾸며 주인공의 할 일을 만들어주는 단체가 바로 이것이다. 사실 이런 세력이 처음 등장한 무협은 <비연경룡>이었다고 한다. 와룡생은 국공내전에 져 대만으로 쫓겨간 장개석 휘하의 군인출신인데 대만 국민당 정부가 중국 공산당에 대해 느끼는 위협을 이런 사파마교의 광적인 무림정복 야심으로 상징화해서 표현했다는 설도 있다.
하여간 와룡생 이후 이런 류의 단체가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하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이런 단체가 주인공의 적으로 나오지 않는 무협소설이 거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마교(魔敎)가 이런 부류의 대표적인 단체인데 사실 마교라는 것은 대단히 억울한 이름이다. 중국의 역사에서 마교는 하나의 종교집단, 혹은 하나의 단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역사상 무수히 많은 종교들이 조정에 의해, 또 백성들에 의해 마교라고 규정되고, 배척받고, 혹은 신봉되었다.
마교라는 단어는 처음에는 당나라 때 페르시아에서 건너온 마니교(摩尼敎;조로아스터교에서 갈려나온 종파)를 마교(摩敎)라고 부르는데에서 변화된 단어로, 당시 마니교가 농민들의 불만을 대변해 농민반란을 주도하자 조정이 아예 마교(魔敎)로 규정하고, 이를 신봉하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마니교를 대표하는 단어로 사용되었다.
나중에 마교는 불교의 미륵신앙(彌勒信仰)에서 출발한 미륵교(彌勒敎), 당송 당시 세력을 떨쳤던 명교(明敎)와 백련사(白蓮寺) 등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는데, 이들 종교가 하나같이 '끽채사마(喫菜事魔)'를 한다, 즉 채소만 먹고 마귀를 섬긴다. '혹세무민(惑世誣民)', 즉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현혹시킨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런 사교(邪敎)가 없지 않았다. 그러나 조정이 이들 종교를 금지시킨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이들 종교가 마니교처럼 당시 조정의 수탈에 반란을 일으킨 농민집단의 정신적 지주였기 때문이었다.
송말의 혼란과 원나라의 종교적 분위기로 인해 몽고치하에서는 유례없이 많은 종교들이 부흥, 난립했다. 왕중양(王中陽)이 전진교(全眞敎)를 세우고 일곱 제자를 거느린 때가 이 때고, 라마교(喇 敎)의 극성기가 또한 이때였다. 한편으로는 사교, 혹은 마교라 불리는 종교집단들도 많이 일어나 절강(浙江)의 모니교(牟尼敎;마니교를 의미), 강서(江西)의 금강선(金剛禪), 게제제(揭 齊), 태주(台州)의 백의불회(白衣佛會) 등을 비롯한 많은 단체가 마교라고 불리웠다. 그러니 결국 마교라는 것은 그것이 민중종교(民衆宗敎)든 혹은 사이비 종교든 조정이 지정해서 금지시킨 종교단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협에 등장하는 마교는 상기한 의미대로일 수도 있고(김용의 <의천도룡기>에서처럼), 아닐 수도 있다(역시 김용의 <소오강호>, 소슬의 <마교>, 금강의 <천마경혼>에서처럼).
이후자의 경우 마교는 조정이 붙인 이름이 아니라 스스로 붙인 이름이다. 스스로 마도(魔道)를 지향하는 단체인 셈이다. 금강이 <천마경혼> 서장에서 단언한 것처럼 '태초(太初)에 악(惡)이 있어 저주(詛呪)로 천하를 피(血)에 잠기게 하고자 하니 이를 마(魔)라 부르며, 이 마의 추종자들이 모여 거대한 힘을 형성한 것이 전율(戰慄)과 공포(恐怖)의 상징인 마교의 시작'이라는 식이다. 김용의 <의천도룡기>가 독자들에게 널리 알려지기 전에는 거의 대부분의 무협소설이 이 개념의 마교를 등장시켰다. 그러나 이것을 단순히 허구라고 볼 수만은 없다. 사이비 종교, 특히 악마주의(惡魔主義)의 전통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금을 통틀어서 존재해 왔다. 그런 류의 종교단체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이름이 마교라고 한다면 이해하지 못할 설정은 아닌 것이다.
실제로 후자의 마교와 비슷한 성격의 단체로 역사상 실존했던 종교가 배교(拜敎)다. 이 것은 원래 도교 종파의 하나인데, 방술(傍術)과 부적(符籍), 악마주의적인 의식으로 혹세무민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배교가 중심소재로 등장한 일은 중국무협보다 오히려 한국무협에 많았다.
이런 부류의 단체들을 사파(邪派), 마도(魔道), 흑도(黑道)로 분류할 수도 있는데, 사실 각자 쓰임이 약간씩 다르다. 배교처럼 사이한 의식을 치르는 종교단체 등을 사파로, 일통강호를 외치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단체를 마도로 부른다고 대충 정의할 수 있다. 이 2번의 단체는 사파, 마도의 부류라고 볼 수도 있겠다. 흑도는 이들보다 조금 더 광범위한 분류이니, 위 1번과 5번의 일부를 포함한 정파가 아닌 나머지 모든 단체가 흑도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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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정치단체류(政治團體類)-비밀결사(秘密結社)
비밀결사 단체는 정당(政黨)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의기(義氣)로 결합하는 것은 주의(主義)로 결합하는 정당의 성격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삼불사(三不社), 천지회(天地會), 홍화회(紅花會), 가로회(哥老會), 대도회(大刀會) 등 실제로 반청복명(反靑復明) 운동을 했던 단체들이 이런 류로 분류된다. 그리고 무협에 등장하는 이런 류의 단체는 위에 언급한 몇 개에 불과하고, 그 대부분이 반청복명을 기치로 삼는다. 한국무협에서는 이런 류의 단체가 잘 등장하지 않는데, 한국 독자들에게는 반청복명이라는 주제가 별 감흥을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무협에 간혹 등장하는 단체로 이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은 소위 정권찬탈의 목적에서 만들어진 단체다. 황제의 아들들 중에서, 혹은 형제들, 때로는 대신들이 이런 목적을 가지고 사병을 키워 세력을 늘린다는 설정이 그것인데, 금강의 <절대지존>에서부터 시작된 황궁무협에 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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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반항단체류(反抗團體類)-녹림산채(綠林山寨)
녹림(綠林)은 흔히 산적들을 말하는 걸로 받아들여지는데, 강도, 도적 등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다. 세상이 어지러워지면 영웅호걸은 녹림으로 모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녹림은 단순한 범죄자 집단이 아니라 항상 반항적, 반체제적 색채를 띠고 있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임꺽정이나 홍길동, 장길산 같은 부류인데, 역사적 기록으로 봐서는 일개 떼강도 집단의 우두머리에 불과하지만 민중의 신화 속에서는 의적으로 전해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편하겠다. 양산박(梁山泊)이 대표적인 단체로 꼽아진다.
<한서漢書>에 의하면 서한(西漢) 말기에 왕광(王匡), 왕봉(王鳳) 등이 7~8천의 사람을 모아 호북(湖北) 당양(當陽)의 녹림산(綠林山)에서 봉기를 했다고 하는데, 이후 산중에 사람이 모여 도당을 이루고, 관부(官府)에 반항하여 재물을 약탈하는 조직을 녹림이라 부르게 되었다. 위에 언급한 것처럼 일개 도적일 수도 있고, 실제로 의적일 수도 있는 조직이다.
양우생의 <대당유협전>에 나오는 철마륵대채(鐵摩勒大寨), <광협, 천교, 마녀>의 경경의군(耿京義軍), 황이(黃易)의 <복우번운>에 등장하는 노교방(怒蛟 ), 한국무협에 자주 나오는 녹림십팔채(綠林十八寨), 장강수로십팔타(長江水路十八舵), 황하수로연맹(黃河水路聯盟) 같은 것이 이 부류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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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직업단체류(職業團體類)-생업방회(生業 會)
역사상 실제로 한 분야, 혹은 동종업종 종사자들은 조합같은 것을 만들어 공동의 이익을 도모하고, 이권을 지키곤 했는데, 이런 조합의 중국적 형태가 방( )이다. 역사상으로도 실재했고, 무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단체가 거지들의 모임인 개방( )이다. 그리고 무협에는 잘 안나오지만 조방(漕幇)은 조운(漕運)의 권리를 독점하여 실제로는 상당히 강력한 조직이었다.
이런 부류로 소금밀매 권리의 해사방(海沙 ), 나룻배 권리의 강하방(江河 ), 포역(捕役;포졸)들의 친목조직 격인 육선문(六扇門;이것이 나중에는 관부에 봉사하는 무림인 전체를 가리키는 명사가 되었다) 등이 있다.
황이의 <대당쌍룡전>에는 말을 기르는 비마목장(飛馬牧場), 대장간 조직인 동명파(東溟派), 상인 모임인 용유방(龍遊 )이 나온다. 서효원의 <대자잭교>에 등장하는 생사교(生死敎)처럼 청부살인을 업으로 하는 자객(刺客) 집단도 이에 들어간다고 할 수 있고, 묘강오독문(苗疆五毒門), 만독곡(萬毒谷)같은 독공의 전문집단, 환희루(歡喜樓)니 쾌활림(快活林)같은 홍등가 집단, 상가를 보호해주고 보호세를 받는 건달집단인 순의방(巡衣 ), 개방과 같은 의미로 쓰여지는 궁가방(窮家 ) 등이 이에 속한다.
현대 일본의 야쿠자, 혹은 중국의 삼합회(三合會)처럼 한 지역을 장악하고 그 지역 지하경제를 주도하는 조직적 범죄집단은 원래 위 4번 부류에 들어가야 옳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협에서는 녹림과 이런 류의 단체를 따로 생각하고 이 둘이 흑도를 구성한다고 보는 관행이 있으니 이런 류의 단체도 여기 5번에 들어간다고 말할 수 있다. 풍운회(風雲會), 십이비붕방(十二飛鵬 ), 파천맹(破天盟), 흑수당(黑手堂) 등등의 이름이 등장한 경우가 있다.
Ⅲ. 구파일방(九派一幇)으로 거명되는 이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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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림사(少林寺)
소림사를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로 꼽는데 이의를 가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떤 무협작가는 소림사에 달마가 온 때(서기 527년)를 무림탄생의 원년으로 쳐서 무력(武曆)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달마 오신 날로부터 몇 년이라는 식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무림의 기원을 헤아리는 일 자체가 의미 없기도 하지만, 그 기준을 달마대사에 잡는 것에도 문제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달마대사는 사실 무술의 창시자로서가 아니라 선종불교(禪宗佛敎)의 대종사로서 더욱 유명하다. 그가 만들어 후세에 전해졌다는 그 유명한 역근경(易筋經)과 세수경(洗髓經)도 청나라 때 만들어진 위작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달마와 소림사에 관련한 이야기는 후세에 만들어져 덧 씌워진 전설이 대부분인 것이다.
소림사는 하남성(河南省) 등봉현(登封縣)에서 서북쪽으로 30리 숭산(嵩山) 소실봉(少室峯) 중턱에 있다. 원나라 때 한 번 홍건적에게 점령당해 절을 비워두었으며, 청나라 때 또 한 번 불태워졌다. 그래서 현대에 남아있는 소림사는 원래 규모의 몇 분의 일에 불과하다고 한다.
고루(高樓)는 원(元)나라때의 초조암(初祖庵)이며, 본전(本殿)은 송(宋)나라때의 목조건축이다. 본전의 내부에는 인왕(仁王), 용(龍)등을 부각한 석주(石柱)가 있다.
그밖에 다수의 당송(唐宋)이후의 석비, 동위(東魏)의 삼존불(三尊佛), 북제(北齊)의 조상(彫像)등이 있다.
본전의 앞에는 소림사의 승려들이 권법을 수련했다는 상석(床石)이 있고, 경내의 깊숙한 곳에는 역대 고승들의 묘와 석탑이 숲의 나무처럼 서 있는 탑림(塔林)이 있다. 이 외에도 각종 무공비급과 불교의 경전들을 보관한 장경각(藏經閣), 소림사를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접대하는 지객당(知客堂), 소림사의 노승(老僧)들이 보다 높은 불법을 수도하는 계지원(戒持院)의 양심당(養心堂), 소림의 제자들의 규율을 감독하는 계율원(戒律院), 소림사의 장문인이 기거하는 방장실(方丈室), 방장실을 앞뒤로 에워싸고 있는 팔대호원(八大護院), 영화로도 익히 알려진 소림고수들의 무공연습실인 소림삼십육방(少林三十六房), 소림의 절정고수들인 십팔나한(十八羅漢)들의 거처인 나한전(羅漢殿)등이 많이 알려진 장소들이다.
이외에도 작가, 혹은 작품에 따라 선대 고승들의 유골과 유품을 모아 놓은 조사전(祖師殿), 장로원 격인 장생전(長生殿), 계율을 어긴 승려들을 가두는 참회동(懺悔洞)등이 무협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소림사의 장문인(掌門人)은 방장(方丈)이라고 부른다. 방장이라는 칭호는 원래 천축의 유마거사(維摩居士)가 처음 호칭한 말로, 고승들이 사방 한 장(丈:3미터) 정도 되는 좁은 밀실에서 도를 수련한다는데서 유래된 것이다.
대체로 방장 밑에는 그를 호위하는 팔대호원(八大護院)이 있는데 그들중 우두머리는 감원(監院)이라고 한다.
사대금강(四大金剛)이나 십팔나한(十八羅漢)은 자주 등장하는 것이고, 그들외에 십계십승(十戒十僧)이 있다. 십계십승이란 불교에서 승려들이 지켜야할 열 가지 계율(戒律)을 관리하는 열 명의 승려들을 말하는데 이들의 절 안에서의 위치는 상당히 높았다. 십계란 살계(殺戒), 투계(偸戒), 망어계(妄語戒), 기어계(綺語戒), 음계(淫戒), 주계(酒戒), 악구계(惡口戒), 탐계(貪戒), 진욕계(嗔欲戒), 치계(痴戒)의 열 가지로, 이를 주관하는 승려들을 각기 살계승, 투계승 등의 명칭으로 불렀다.
소림사의 영약으로는 무림제일의 성약(聖藥)이라고까지 불리우는 '대환단(大還丹)'과, 그보다는 조금 떨어지지만 역시 놀라운 효능을 지닌 '소환단(小還丹)'이 있다.
소림장문인의 신물은 녹옥(綠玉)으로 만든 지팡이인데 흔히 '녹옥불장(綠玉佛杖)'이라고 한다.
소림사의 무공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역근경>과 <세수경>인데 후세에 만들어진 가짜로 보인다. 또한 무협소설 속에 나오는 소림무공과 현존하는 소림무술은 같은 것으로 보기 어려울만큼 차이가 있으며, 소림사를 시조로 하는 현대 권법유파들 또한 적지 않은 수이니 그것들을 일일이 해설하는 것은 어렵다. 여기서는 이름을 열거하는 것으로 그치자. 그리고 무협소설 상에 등장하는 소림무공에 대해 해설을 붙이는 것 또한 무의미한 일이다. 그 상당수는 전설에 의존하며 나머지 대부분은 작가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야기했지만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소림사는 현실과 가상의 집합체이며, 무술 또한 그러하다. 여기서는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무공의 이름만 열거하는 것으로 그치겠다.
소림사와 더불어 무림의 태산북두(泰山北斗)로 운위되어 온 무당파는 역시 소림사와 마찬가지로 종교와 무술의 양면으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그리고 청대의 무협들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신화가 덧 씌워져서 역사적 실체를 알아보기 어렵다는 것도 소림사와 같다.
이연걸이 출연한 영화 <태극권>에서 우리는 장군보라고 하는 사람이 소림사에서 추방되어 방랑하다가 태극의 원리에서 출발하는 내가권의 시조가 되어 이름도 장삼풍(張三豊)으로 개명하고 무당파의 개파조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볼 수가 있었다. 이와 정확하게 일치하지는 않지만 중국무협작가 김용의 <의천도룡기>에서도 비슷한 전개를 볼 수 있었다. 단지 개명한 이름이 여기에서는 장삼봉(張三峰)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도장을 열어 무당태극권(武當太極拳)을 전수하는 단체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설화에 가까운 이야기라 어디에도 그 증거가 없는 실정이다.
무당산은 호북성 균현(均縣: 오늘날의 단강구(丹江口)시) 남쪽에 있다.
태화산(太和山)이라고도 불리우며 산의 대부분은 운모편암(雲母片巖)으로 이루어져 있어 괴이한 봉우리와 굽이쳐 흐르는 계곡을 생성해내고 있다. 주봉(主峰)은 천주봉(天柱峰)이고 그 72개의 봉우리가 종을 엎어놓고 솥을 세워놓은 모양으로 드문드문 모여 있다. 그 중에서 유명한 것은 금동봉(金童峰), 옥녀봉(玉女峰), 향로봉(香爐峰), 납촉봉(臘燭峰), 오로봉(五老峰), 전기봉(展旗峰) 등. 이외에도 36개의 기암, 11개의 동굴, 3개의 물웅덩이, 9개의 샘, 10개의 못, 9개의 우물이 있다.
그외에도 무당산은 삼상산(蔘上山), 선실(仙室), 사라산(謝羅山), 태악(太嶽), 대악(大嶽) 등의 이름으로도 불리워 졌고, 도교에서는 북극진무현천상제(北極眞武玄天上帝)가 있는 산이라 하여 성지로 숭배되었다.
도교종파로서의 무당도는 당나라때부터 있었다. 후에 부침을 거듭하다가 명대 영락제 이후 부흥하였으며. 이떄부터 전진교와 정일교의 영향을 받았으며 현재는 전진교 계통의 세력이 강한 모양이다.
무술적 전통으로 말하자면 송나라 때부터 명초까지의 어느 기간 중에 장삼풍, 혹은 장삼봉이라 불리우는 도사가 무당산에 있었고, 이 사람이 내가권을 창시했다고 알려졌다.
전설에 의하면 이 사람은 몽고군 100여명과 단신으로 싸워 모두 죽인 일도 있다고 한다. 또 일설에 따르면 이 사람은 귀신 쫓는 일에 능해서 민간의 인기를 얻었다고도 한다. 이 두 가지는 다른 일 같지만 사실 아주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도교에서 검(劍)이라고 하는 것은 무기 이전에 신성한 법기(法器)로 다루어지기 때문이다. 검에 능한 장삼봉이 이것으로 무기를 삼아 이민족과 싸우고, 한편으로는 귀신을 쫓았다는 것은 모순되는 일은 아닌 듯하다. 소림사가 권법과 곤법으로, 무당파가 장법(掌法)과 검법(劍法)으로 유명하다는 것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불교에서 몽둥이, 도교에서 검이라는 것은 종교적 필요에 의해 흔히 사용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락제는 1412년 칙령을 내려 무당산에 현천옥허궁(玄天玉虛宮), 태현자소궁(太玄紫 宮), 흥성오룡궁(興聖五龍宮), 대성남암궁(大聖南巖宮)외 5개의 도관을 건립하게 하고 각 도관에 많은 전답을 하사하였으며 면세특권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로 혹은 없어진 것도 있고, 새로 세워진 것도 있어서 현재 무당산에는 8개의 궁(宮)과 2개의 관(觀), 36개의 암당(庵堂), 72개의 암묘(巖廟), 39개의 교량 등이 있다. 이 건물들은 400평방킬로미터에 걸쳐 분포되어있고 직선으로는 70킬로미터나 뻗어 있다.
균주성(均州城) 정락궁( 樂宮)에서 금정(金頂)에 이르는 길을 중심선으로 놓고 한 마리의 승천하는 용처럼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금정(金頂)은 용의 머리에 해당되며, 우진궁(遇眞宮)에서 태화궁(太和宮)에 이르는 건물은 용의 몸통에 해당된다. 또한 정락궁에서 현악문(玄岳門)에 이르는 길은 용의 꼬리에 상응한다. 팔선관(八仙觀)을 포함해 몇 개의 다른 건물들은 용의 왼쪽 발톱에 해당되고 호구교(蒿口橋)를 비롯하여 다른 두 개의 조그마한 사원은 용의 오른쪽 발톱에 해당된다는 식이다.
가장 유명한 곳은 자소궁(紫 宮)인데 이천 개의 방이 있는 사원이다. 건물을 지을 수 있는 평평한 땅이 부족했기 때문에 봉우리 곳곳에 사궁문(使宮門), 비정(碑亭), 숭대(崇臺) 등의 건물을 짓고 수백개의 계단으로 이어 놓았다. 자소궁 뒤에 우뚝 솟아 있는 전기봉(展旗峰)은 철색을 띠고 있고 마치 바람에 흔들리는 검은 깃발과 흡사하다. 이 깃발은 도교의 내용 중에서 상제의 명에 의해 북(北)을 다스리도록 명을 받은 현무의 검을 깃발을 상징한다.
3층 높이의 거대한 석대(石臺) 위에 건축된 자소궁의 대전(大殿)은 두 개의 처마를 가진 웅장한 목조 건물이다. 이것은 앞뒤, 좌우에 각각 5개의 방을 갖는 정사각형 구조인데 바닥에는 유리처럼 맑은 회색 벽돌을 사용했다. 벽감(壁龕)에 위치해 경배를 받고 있는 옥황대제(玉皇大帝)는 양쪽에 각기 서 있는 금동(金童)과 옥녀(玉女)에 의해 시중을 받고 있다. 벽감 앞에는 동으로 된 팔대수(八大帥)의 동상과 다른 신선상이 서 있다.
현악문(玄岳門)은 무당산의 북쪽에 면한 산길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명의 가정(嘉靖) 31년(1552)에 세워졌는데 무당산의 첫 번째 관문이다. 물고기와 학의 조각이 새겨진 석조건물로 수형신(獸形神) 장식이 있고 지붕 마룻대에는 팔선(八仙)의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다. 관문 위의 중간 부분에는 각각 1/3미터의 크기를 가진 "치세현악(治世玄岳)"이라는 4자가 새겨져 있다. 이 글자는 북(北)을 지배하는 현무(玄武)를 지칭하고 있다.
명 영락 14년(1416)에 건설된 금전(金殿)은 목조 건물 양식을 모방해 동으로 만들어졌으며 높이 5.5미터, 너비 5.8미터에 앞뒤로 4.2미터 크기다. 왕좌(王座), 공기(供器) 등은 모두 금으로 도금된 놋쇠로 되어 있어 그 우아하고 화려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왕좌에 있는 동으로 만들어진 진무(眞武)의 동상은 도교 경전에서 묘사되고 있듯이 맨발에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좌우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금동(金童)과 옥녀(玉女)는 각각 책과 보물을 손에 쥐고 있고 그들의 입은 옷은 명 나라의 복식을 따르고 있다. 앞면의 좌측에는 수장군(水將軍), 우측에는 화장군(火將軍)이 보위하고 있다. 이들 역시 명 나라의 복식을 하고 있다.
기타 무협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으로는 무당파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검을 풀어놓고 올라간다는 해검지(解劍池), 그 검을 걸어놓는 괘검수(掛劍樹), 무당파의 중심으로 알려진 상청궁(上淸宮) 등이 있다.
광동여유출판사(廣東旅游出版社)에서 1992년 출간된 <중국무술(中國武術)>이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언급이 있다.
-아미권은 사천(四川)의 아미산(峨嵋山)을 중심으로 하는 권법계열이다. 사천이 남방에 속하는고로 남권(南拳)의 2대 권계중 하나로 인정된다.(참고로 남권의 다른 하나는 남소림권(南少林拳), 남권에 상대되는 북권(北拳)의 2대 권계는 소림권(少林拳)과 태극권(太極拳)이다.)
아미산은 중국 불교의 사대 명산중 하나로 보현보살(普賢菩薩)이 도량을 세운 곳이다. 사천 중부에 위치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공래산(空崍山)과 닿아있고, 청성산(靑城山)이 멀리 바라보인다. 남쪽에는 소상(小相), 대량(大凉)의 양산이 있고, 동쪽으로는 민강(岷江)이, 서쪽에는 대도하(大度河)가 흐른다. 높은 봉우리들이 험준하게 백리에 걸쳐 깔려있다.
아미산에는 사원이 많은데, 그 대부분은 선종(禪宗) 계열이다. 아미산의 화상들은 서로 빨리 성취하기 위해 서로 다투는 상무적(尙武的) 기풍이 있다고 하나, 사료는 거의 남은 것이 없다. 명대에 왜구에 대항해 싸운 것으로 유명한 장군당순지(唐順之;1507-1560)는 <아미도인권가(峨嵋道人拳家)>라는 한 수 시를 남겼는데, 아미권법의 신묘한 점을 잘 묘사해 놓았다.
"한 도인이 나타나서, 심산의 흰 원숭이에게 받은 신기를 펼쳐 보였다. 말하기를 묘당의 가을기운처럼 높고, 늙은 느티나무처럼 고요하다고 했다. 홀연 한 발을 들어 걷어차니 암석이 부숴져 모래가 되어 흩날렸다……"
당순지는 지근거리에서 보고 눈에 보듯 또렷이 그 신법과 보법, 타법, 호흡법을 묘사했는데, 소위 백원권법(白猿拳法)을 본 것이다.
청나라 강희원년(1662)에 와서 무학의 큰 스승인 오수(吳 ;1611-1695)가 <수비록(手臂錄)>에 부록으로 정직여(程直如;?-1645)의 <아미창법(峨嵋槍法)>을 붙여놓았다.
정직여의 말에 의하면 그는 이 창법을 아미산의 보은선사(普恩禪師)에게서 배웠다고 한다. <아미창법>은 치심(治心), 치신(治身), 의정(宜靜), 공수(攻守), 심세(審勢), 형세(形勢), 형근(戒 ), 도수(倒手), 찰법( 法), 파제기(破諸器), 신수법(身手法), 총요(總要) 등 13편으로 되어있으며 전부 창법의 심오한 부분들을 논한 것이다.
정직여와 오수는 명말청초인이다. 당시는 아미파이 무공이 완성되던 시기고, 주로 권법쪽이었지만, 창법 또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림이 곤(棍), 무당이 검(劍)으로 유명한 것처럼 아미 또한 창(槍)으로 대표될 정도였다.
사천성 정부가 발행한 <사천무술대전>의 소개를 보면, 사천성내에 67개 권파가 있고, 1652개의 무예 투로와 276개의 충공법( 功法)이 전해진다고 되어있다. 67개 권파중 사천고유의 것은 28개로 41.79%를 차지하는데 이 28개는 모두 아미권계를 기본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외에 27개권파는 소림권 계통으로 40.30%, 또 2개는 남권권계, 즉 남소림권이고, 형의, 태극, 팔괘장등 무당권 계통의 권법도 사천에 있다.
상기한 언급과 북경체육학원출판사에서 출간한 <아미임제기공(峨嵋臨濟氣功)>에 소개된 아미십이장(峨嵋十二 ), 아미경기공 등이 현재 전해지는 아미파의 흔적이다. 원래 기공수련법 중에서 건강을 위해 하는 도인술(導引術) 등을 연기공(軟氣功)이라 하고 무술로서 하는 것을 경기공이라 하는데 아미십이장은 경기공에 속한다.
그에 따르면 아미십이장은 천(天), 지(地), 심(心), 지(之), 룡(龍), 학(鶴), 풍(風), 운(雲), 대(大), 소(小), 유(幽), 명명(明冥)의 12가지로 분류되며, 동공(動功)보다는 정공(靜功)을 지향한다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한 번 움직이고, 특정한 자세를 유지하다가 다시 움직이는 특정한 투로를 갖는다고 한다.
위에서 아미파의 기공을 임제문의 그것이라고 했는데, 임제문이란 선종불교 계열에 속하는 불교 종파를 이르는 것으로 선종오가(禪宗五家)의 하나로 일컬어졌다. 당나라 때 임제(臨濟) 의현(義玄)이 개창하였는데 '우뢰와 같이 갈(喝)하다'라고 하는 독특하고 준엄한 수단으로 학인을 가르쳐 종풍을 크게 떨쳤다. 이 임제문이 아미파의 근간일까? 아미산에는 현재 대소 400여개의 사원과 그 비슷한 숫자의 도관이 있다고 한다. 그중에 임제문이 주류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실은 확인할 수 없다.
무협소설에서 보여지는 아미파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김용의 <의천도룡기>에서 아미파는 도가(道家)의 문파다. 사마령의 몇몇 작품들에도 아미파는 도가 문파로 나온다. 와룡생의 몇몇 작품, 소슬의 작품들을 보면 아미파는 불가(佛家)의 문파며, 비구(比丘;남승)가 주축, 비구니는 보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온다. 한국 무협에서는 대개 아미파를 비구니들만의 문파로 묘사하는데 언제, 어디서부터 그렇게 고정된 것인지는 모른다.
한국 무협작가 용대운이 정리한 자료에 의하면 아미산에는 예로부터 호랑이가 많아 백성들이 고생을 했는데 사성법사(士性法師)가 호랑이를 퇴치하고 복호사(伏虎寺)를 세웠으니 이것이 아미파의 근간이라고 한다. 그래서 무협소설 속에 등장하는 아미파의 무공에는 복호(伏虎), 즉 호랑이를 굴복시킨다라는 이름이 많이 나온다. 또한 아미파 무공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으로 금정(金頂)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아미산 최고봉인 금정봉(金頂峰)에서 유래한 듯하다.
아미파의 장문영부는 서천보살자(西天菩薩子)로 만들어진 백팔염주(百八念珠).
아미산의 명승으로는 금정(金頂), 만불정(萬佛頂), 청음각(淸音閣), 홍춘평(洪椿坪), 세상지(洗象池), 구로동(九老洞), 나봉암(羅峯庵), 서산벽령관(西山碧靈觀), 상우심사(像牛心寺) 등이 있으며 성적만경(聖積晩景), 나봉청운(羅峰晴雲), 쌍교청음(雙橋淸音), 대평제운(大坪齊雲), 홍춘효우(洪椿曉雨), 구로선부(九老仙府), 상지야월(象池夜月), 백수추풍(百水秋風)의 여덟 가지 절경인 아미팔경(峨嵋八景)이 유명하다.
오대 송초 때에 진단((陳 ;871~989)이라는 도사가 있었다. 자는 도남(圖南), 호는 부요자(扶搖子)이며 진원(眞源 : 지금의 안휘성 박현) 사람이었다. 그는 '잠의 신'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으며 '화산노인(華山老人)'이라고도 했다. 전설에 의하면 화산이 그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송나라 개국군주인 송태조 조광윤(趙匡胤)은 왕위에 오르기 전 화산에 올라갔다가 한 노인을 만나 바둑을 두게 되었다. 노인은 그의 이름을 말하면서 장래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조광윤은 웃으면서 자기가 황제가 되면 화산을 그에게 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과연 그는 황제가 되어 약속을 이행했다는 것이다.
진단은 <지현편(指玄篇)>, <무극도(無極圖)>, <선천도(先天圖)>등을 저술했으며, '내단성선설(內丹成仙說)', 즉 내단을 수련하면 신선이 된다는 사상의 대표적인 주장자로 알려졌다. 이것은 전설에 불과한 것일지도 모르지만 화산파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에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무당파가 무술과 주법(呪法)을 주로한다면 모산파는 부적과 술법을, 화산은 양생(養生)과 연단(鍊丹), 즉 내단을 수련하는 것을 주로 하여 신선이 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특징이 있다.
도교는 크게 남북(南北) 양종으로 나뉘기도 하는데 북종(北宗)은 전진교(全眞敎), 남종(南宗)은 정일교(正一敎), 즉 오늘날의 천사도(天師道)를 말한다. 화산파는 이중 북종 전진교 계통에 들어가며 그 중에서도 천주궁파(天柱宮派)에 속한다고 한다. 그러나 남종인 정일교 계통이라는 주장도 있고, 북종이라도 그 교의가 남종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도 한다. 참고로 말하자면 무당파는 달리 북두궁파(北斗宮派), 모산파는 옥주궁파(玉柱宮派)라고 부른다.
도교사전에는 화산파가 전진교의 지파(支派)로 전진칠자(全眞七子)의 한 사람인 학대통( 大通)이 창시했다는 설과 화산도인 진단이 창시했다는 설을 동시에 제시하고 있다.
덩 밍다오(登明道)가 쓰고 박태섭이 옮긴 <도인(道人, 고려원미디어 出)>이라는 책은 흥미로운 주장을 하고 있다. 저자인 덩 밍다오의 사부인 관 사이홍(1920~)이 아홉 살 때 당시의 화산파 장문인의 13번째 제자로 들어가 수련하고 청말 민국초의 혼란 속을 마지막 무림인으로 살다가 지금 미국에 정착하기까지의 이야기가 이 책에는 담겨있다. 관 사이홍은 화산파의 마지막 후예인 셈이다.
이 책에서는 화산의 도사들이 깨달음과 정신적 해방, 윤회로부터의 해탈, 파괴되지 않는 육신을 갖는 것, 즉 신선이 되는 것은 오로지 양생, 운동, 채식(菜食), 조식기공(調息氣功), 그리고 명상을 통한 심신의 정화에 의해서만 얻어진다고 믿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화산, 화산파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설명, 화산파에서 가르쳤을 법한 도교적 이론들을 상세히 전해주고 있다. 중국의 전설에서나 등장할 법한 이야기들이 쉴새없이 튀어나오지만 아주 아니라고 웃어넘기기에는 지나치게 진지한 이야기들도 많이 있다. 관심 있는 독자는 찾아 보시기 바란다.
화산은 섬서성(陝西省) 화음현(華陰縣)에 위치하는데 그 서쪽에 소화산(小華山)이 있어서 태화산(太華山)이라고도 불린다. 명승으로는 연화봉(蓮花峯), 도교사대동천(道敎四大洞天)이라고 하는 태극동(太極洞), 서현동(西玄洞), 노군동(老君洞), 왕자동(王子洞)이 있고, 무협소설들에서는 연화동 정상에 상궁(上宮)이 있고, 그 앞에 옥녀지(玉女池)가 있다는 식으로 묘사되곤 했다.
<도인>에서는 그 외에 옥주봉(玉柱峯), 사자암(獅子岩), 운문(雲門), 청가평(靑柯坪), 비어령(飛魚嶺), 오리관(五里關), 이선교(二仙橋), 박대(博臺), 전진암(全眞岩), 삼공산(三公山), 남천문(南天門), 피정처(避靜處), 건원동(乾元洞) 등의 이름이 보인다.
홍콩영화 <귀타귀>나 <영환도사> 등을 보면 태극문양이 그려진 모자(이걸 태극건太極巾이라 부른다)를 쓰고 목검을 든 도사가 나온다. 피를 내어 부적을 쓰고, 목검을 휘둘러 주법(呪法)을 행하며, 단을 쌓아 재초(齋醮;도교의 제사)를 올린다. 이 모습이 바로 모산파 도사의 모습이다.
모산파는 달리 모산부록파(茅山符 派)라고도 불렸는데, 민간에는 귀신 쫓는 것을 업으로 삼는 종파로 알려져서 이렇게 이미지가 굳어진 모양이다. 부록파(符 派)란 부(符;부적)를 날려 법(法)을 연출하고(말하자면 술법을 쓴다는 뜻이다), 재초(앞에서도 말한 도교의 제사의식)하여 재앙을 물리칠 것을 기원하는 것을 주로 삼는 도교의 분류인데, 이로써 사람을 구제하고 귀신을 제도함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하기 때문이다.
모산(茅山)은 강소성(江蘇省) 구용현(句容縣) 동남쪽에 있으며 원래의 이름은 구곡산(句曲山)이었으나 한(漢)나라 때 모영(茅盈), 모고(茅固), 모충(茅衷) 삼형제가 이 산에서 득도하여 삼모진군(三茅眞君)이라 불리는 신선이 되었기 때문에 모산이라 불린다.
모씨 삼형제는 이 모산에 상청법단(上淸法壇)을 세우고 모산도파(茅山道派)를 시작하였다. 그러나 교단으로서의 개조(開祖)는 서진(西晉)의 위화존(魏華存)이고 대성한 것은 제9대 종사(宗師)인 도홍경(陶弘景 452~536)이었다.
위화존은 신선통감(神仙統監)에도 나오는 인물로 자는 현안(賢安), 임성(任城) 사람으로 서진의 사도(司徒)였던 위서(魏舒)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도(道)를 좋아하고 선선을 사모하였는데, 24세에 시집을 가서 두 아들을 낳고부터는 방사(房事)를 끊고 재계하였다. 남편이 죽고, 두 아들도 장성하여 독립시키자 이미 나이 83세였는데, 동화제군(東華帝君;도교의 신중 하나)이 내려와 황정경(黃庭經;도교의 경전)과 선약 두 제(劑)를 주었다. 이래서 신선이 되어 후에 남악진인자허원군(南嶽眞人紫虛元君)이 되었다고 한다.
도홍경은 남북조 시대 도가의 한 사람으로 자는 통명(通明), 호는 화양은거(華陽隱居), 화양진일(華陽眞逸), 화양진인(華陽眞人), 시호는 정백선생(貞伯先生)이다. 금기(琴棋;거문고와 바둑)에 능하고 초예(草隸;초서와 예서, 즉 서예)에 뛰어났다고 한다. 벼슬을 하다가 모산에 은거, 산중재상(山中宰相)으로 불리웠으며, 유불도 삼교의 융합을 주장하고 명산을 유람하며 약초를 찾아 본초경집주(本草經集註), 주후백일방( 後百一方)을 짓는 등 의약에도 조예가 있었다.
모산파의 도사로 유명한 사람은 이외에 육수정(陸修靜 406~477)이 있는데, 중국최초의 도교경전 총목(總目)인 삼통경서목록(三洞經書目錄)을 집록, 찬정하고 도교의 의규(儀規)를 완비한 것으로 유명하다. 죽은 뒤 간적선생(簡寂先生)이란 시호가 붙여졌고, 나중에는 북송의 휘종(徽宗)에 의해 단원진인(丹元眞人)으로 봉해졌다. 그는 모산파의 7대 종사로 그의 제자가 8대인 손유악(孫游岳), 이 손유악의 제자가 9대 종사인 도홍경이다.
이렇게 모산파는 그 세가 그리 강하지는 못하였으나 도홍경과 육수정이라는 두 걸출한 도사가 있어서 도교철학적으로는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세가 강하지 못한 것은 그 교단의 세력이 주로 강남지방(江南地方)에, 그것도 귀족을 대상으로 전파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왕조의 비호를 받지 못하였고(중국은 역대로 왕조와 강남 귀족층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민을 향한 선교도 활발하지 않아서(기본적으로 출가수도만 인정하고 계율도 엄했기 때문에 귀족적이었다) 원나라 이후로는 정일교, 즉 후대의 천사도에 흡수되게 된다.
경전으로는 상청경(上淸經)이라는 일군의 것이 있는데, 그중에서 태동진경(太洞眞經)이 대표적이다. 위화존을 비롯하여 몇몇 선인(仙人)이 구술한 것을 적은 것이라 한다.
출가수도만을 인정하는 출가주의의 도교로 존사법(存思法)이라는 일종의 내관법(內觀法)을 중요시하고, 계율도 엄격했다.
그런데 부록파라고 불리워질 정도로 민간에는 축귀 위주의 도교로 알려지게 된 까닭은 육수정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는 도교의 경전을 정리하고 의식을 바로잡으며 신의 계보를 서열에 따라 정하는 과정에서 도교의 원형인 오두미도(五斗米道)의 정신을 계승하였다. 그래서 중요시하게 된 것이 부적을 태운 재를 정화수에 타 마시는 의식이었다. 오두미도가 원래 이것으로 병자들을 고쳐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또한 그 후예인 도홍경은 목검을 휘둘러 천지풍운의 조화를 부리고, 귀신을 쫓는데 능하였다고도 한다. 결국 육수정과 도홍경은 기본적으로 종교사상가였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 하에서 종교적인 색채들이 묻어나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내가권의 창시자로 유명한 장삼봉이 한편으로는 귀신 쫓기에 명수였다는 점과 비교해볼 수도 있겠다.
무협소설 속에서 모산파는 잘 다뤄지지 않고, 몇몇 작품에는 오히려 악역으로 등장한다. 그래서 별달리 체계나 무공명칭에 대해 알려진 것도 없다. 창작하는 사람으로서는 상상의 여지가 얼마든지 열려 있으니 오히려 편하다고나 할까.
지명으로는 대모봉(大茅峰)이 주봉이고, 화양동(華陽洞)이라는 동굴이 있다는 것밖에 알려진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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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곤륜파
곤륜파는 다른 문파들보다 더욱 전설의 문파에 가깝다. 일단은 그 문파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고, 둘째는 곤륜산(崑崙山)이라는 산 자체가 전설의 산이기 때문이다.
<도교사상사전>에는 이렇게 나온다.
-곤륜산은 현재의 곤륜산계가 아니고 신화전설 속의 성산(聖山)이다. 대지의 중심에 위치하여 하늘의 기둥[天柱]이 된다. 곤륜산에는 계층이 있어, 처음의 양풍산(凉風山)에 오르면 죽지 않게되고, 다음의 현포(懸圃)에서는 영(靈)이 되고, 상천(上天)에 다다라서는 신(神)이 된다. 이렇게 오르는 데에 따라서 차츰 신영력(神靈力)이 높아져서 마침내 천상계의 상제와 교류할 수가 있다. 즉, 곤륜산은 우주의 축(軸)이고, 대지생성의 기점(基点), 신물(神物)생성의 모태이기도 하고, 불사수(不死樹)나 마시면 죽지않는 물이 존대한다. 이와같이 곤륜산은 근원적 실재를 상징하는 '중심'과 관련이 있다. 실재의 곤륜산은 중국 신강성(新畺省) 천산남로 서남쪽의 곤륜산맥(崑崙山脈)을 말한다. 옛적에는 곤륜산의 연맥인 히말라야 산맥과 파미르 고원의 일대를 일컬었다.
중국의 신화에서 곤륜산은 그리스 신화에서의 올림푸스 산과 같은 위치를 갖는다. 신들이 모여사는 땅, 무수한 신선들과 영수(靈獸)들, 용과 천병(天兵)들이 수호하는 산이 곤륜산이다. <봉신연의>에서 강태공이 수도하는 장소도 여기 곤륜산으로 나오며, 일 년에 한 번 신선들이 대회합이 열리는 장소도 여기다. 이런 산을 현실의 산으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비록 실재의 곤륜산이 "서쪽 파미르 고원에서 시작하여 신강, 티베트 자치구 사이의 경계를 이루고, 동쪽으로 청해성(靑海省)까지 이르며, 황하, 양자강의 발원이 된다"라고 해도 말이다.
무협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은 어떤가.
과거의 중국무협, 그리고 80년대 무협에서 보여지는 곤륜파에 대한 설정은 "청해에 있는 실재의 곤륜산에 근거를 둔 도교문파"라는 쪽으로 흔히 그려져 왔다. 소슬의 <벽안금붕>에 보면 장소에 관해서는 청해성, 종교에 관해서는 불교쪽으로 묘사가 되어있고, 운중악은 그에 반해서 장소는 전설의 산이고, 도교의 수도자라는 일반개념으로 곤륜문하라고 주장하고 다니는 도인들이 있다고 <용사팔황>에서 해석을 했다.
사마령의 <표기( 旗)>에는 실재의 곤륜산, 문파는 도교 쪽으로 했다. 한국작가 풍종호의 <경혼기>에서는 곤륜파를 실재의 곤륜산, 문파는 도교, 그리고 특이하게도 곤륜파 내에 오개 분파(혹은 지파)가 있다고 설정해 놓았다. 곤륜검문(崑崙劍門), 곤륜도문(崑崙刀門), 곤륜선문(崑崙仙門), 곤륜비문(崑崙飛門), 곤륜운궁(崑崙雲宮)의 다섯 개 지파가 곤륜파를 구성하고 있다는 식이다.
무협에 등장하는 곤륜파의 무공명칭을 보면 운룡(雲龍)이라는 단어가 많이 나온다. 이것은 소슬의 <벽안금붕>에 등장한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이라는 경공술에 장법을 합친 무공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한다. 그 초식명은 신룡선무(神龍旋霧), 용유자휘(龍遊紫微), 신룡번미(神龍播尾), 운룡삼현(雲龍三現), 운룡무궁(雲龍無窮), 용미초풍(龍尾招風), 용비구천(龍飛九天), 천룡두린(天龍 鱗)의 여덟 개다.
그외에 태허도룡검(太虛屠龍劍), 칠보유홍분심검법(七步流紅分心劍法), 육양수(六陽手), 용호풍운조(龍虎風雲爪), 종학금룡수(從鶴擒龍手) 회련각(回蓮脚) 천기신보(天機神步), 태청용형검(太淸龍形劍), 용형보(龍形步), 금안행운(金雁行雲), 비룡축전(飛龍逐電), 적양공(赤陽功), 도룡신공(屠龍神功), 타륜신공(打輪破功), 갈미구(蝎尾鉤), 낙안권(落雁拳), 사로권(四路拳), 추운권(追雲拳), 통벽권(通璧拳), 운룡금나(雲龍擒拿), 운룡조(雲龍爪), 운학장(雲鶴掌), 홍사장(紅沙掌), 옥룡장(玉龍掌), 선운비뢰장(仙雲飛雷掌), 건천일지공(乾天一指功), 삼음수(三陰手), 종학금룡수(縱鶴擒龍手), 천강수(天 手), 표화탄공수(飄花彈空手), 추명도(追命刀), 팔투도(八套刀), 진류오행도(眞流五行刀), 용비십구도(龍飛十九刀), 청량선(淸凉扇), 투골선(透骨扇), 삼원진(三元陳) 등의 이름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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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공동파( 派)
도가(道家), 속가(俗家), 때로는 불가(佛家)로도 나오는 문파로 9파중의 한자리를 차지한다..
공동산( 山)은 사천성(四川省)과 감숙성(甘肅省)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옛날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가 광성자(廣成子)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런 도가적 전설 위에 근대무협소설의 비조로 일컬어지는 무협작가 환주루주 이수민의 <촉산검협전蜀山劍俠傳>에서는 정파인 곤륜파에 대항하여 싸우는 사파도교로서의 공동파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후의 무협에서는 일관되게 정파로 나오고, 무공명칭에도 복마(伏魔)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한 것을 볼 수 있다.
흔히 사대검파(四大劒派), 혹은 오대검파(五大劒派)를 말할 때는 무당, 아미, 화산과 더불어 반드시 거론되는 문파가 또한 공동파다. 참고로 오대문파라고 할 때는 점창파, 천산파, 청성파 등이 같이 거론되곤 한다.
점창산(點蒼山)은 운남성(雲南省) 대리시(大理市; 과거 대리국이 있던 자리) 인근에 있다. 지역적으로 변방에 속하는 탓인지 9파중 하나로 일컬어 질 때도, 못 낄 때도 있다. 간혹 도교문파로 그려지지만 대체로 속가의 문파로 등장한다.
사일검법(射日劍法)을 대표로 하는 검법이 유명하며, 규율이 엄격하고 목숨보다 검이 소중하므로 검을 잃으면 죽어야 한다거나, 둘씩 짝을 지어 다녀야 한다거나 하는 특이한 규칙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 북서쪽, 관현(灌縣) 서남쪽에 있는 청성산(靑城山)에 위치한 도교문파. 검법으로 유명하다.
청성산은 황제(黃帝)가 이 산을 오악장인(五嶽丈人)으로 봉했기 때문에 장인산(丈人山)이라고도 한다. 도가(道家)에서는 16동천(洞天)의 하나로 잡고 있는데, 그중 보선구실동천(寶仙九實洞天)이다. 장도릉(張道陵), 범장생(范長生), 손사막(孫思邈), 두광정(杜光庭)이 이 산에서 수도를 하였다.
장도릉은 최초의 도교교단인 오두미도(五斗米道)를 만들었는데, 쌀과 비단을 바치면 이것을 모아 빈민을 구제하였고, 대신 부적을 태워 정화수에 타서 마시게 함으로써 병을 고쳐주는, 이른바 신출정일맹위법(新出正一盟威法)으로 유명한 사람이다. 이 오두미도가 나중에 도교남종 정일교가 되었다.
범장생, 손사막, 두광정 등은 모두 도가의 사상가로 이 산에서 수도하여 득도한 것으로 유명한데, 청성파가 정일교 계통의 도교적 전통 위에 이들 선인들의 사적이 덧씌워진 형태의 도교문파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케 한다.
무협에서 그리 심도있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산정상에 호응정(呼應亭)이 있고, 상청궁(上淸宮), 옥청궁(玉淸宮), 원명궁(園明宮), 조양궁(朝陽宮), 청허각(淸虛閣), 조사전(祖師殿), 천사동(天師洞), 건복궁(建福宮), 녹운각(綠雲閣), 천연각(天然閣) 등의 건물이 있다.
대막(大漠)으로 불려지는 고비사막의 북쪽 경계를 이루는 천산산맥(天山山脈)에 있는 문파, 위치상 몽골의 영역 안이라 별로 번창하지 못했고, 구성원 중에는 한족 이외의 민족이 많다고 흔히 그려진다.
산 정상에는 큰 호수가 있어 이를 천지(天池)가 부르는데, 왕모낭랑(王母娘娘)이 목욕을 하는 요지(瑤池)가 바로 여기라는 전설이 있다.
소슬의 <벽안금붕>에서 주인공이 이 천산파의 장문인으로 나오며, 중앙에 진출하려는 변방 문파의 분위기가 잘 그려져있다. 흔히 무협 속에서는 일곱 가지 새들의 동작을 보고 만들었다는 칠금신법(七禽身法)과 쾌검(快劒)으로 유명하다.
섬서성(陝西省) 남부의 종남산(終南山)에 자리한 속가(俗家)의 대표적인 문파. 한 때 전진교(全眞敎)가 여기에 위치했으며, 활사인묘(活死人墓) 등 전진교 개조 왕중양(王重陽)의 사적이 남아 있으나 제자인 구장춘(邱長春)이 징기스칸의 총애를 받는 것을 계기로 교단의 주력이 북경 백운관(白雲觀)으로 옮겨지면서 종남산의 교단은 쇠퇴해졌다. 구장춘의 파를 용문파(龍門派)라 하는데, 이후 전진교의 주력이 된다.
이래서 자리가 빈 종남산에 속가의 문파가 세워졌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몇몇 무협소설에서는 종남파가 도가문파로 나오지만 한국무협들에서는 거의 속가의 문파로 등장한다. 최근 일간지에 연재되는 용대운의 <군림천하>가 이 속가문파인 종남파를 배경으로 쓰여지고 있다.
중국 최남단 해남도(海南島)에 자리잡은 문파. 어느 일파를 말한다기보다는 해남도에 전해지는 무술문파들을 통칭한다고 볼 수 있는데, 무협에서는 그중 좌수검(左手劍)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무협작가 설봉의 <남해삼십육검>이 해남파를 전면적으로 다루고 있다.
소슬의 <아, 북극성>을 비롯한 여러 무협소설에 등장하는 해남파의 지파로 금사도(金沙島), 벽라도(碧螺島), 해남일검류(海南一劍流), 천강문(天 門), 해남적룡가(海南赤龍家), 해남마가(海南魔家) 등이 있다.
사천성 성도(成都) 인근에 있다고 알려진 가문. 무림세가(武林世家)라고 분류되는 가문 중 가장 잘 알려진 이름이다. 고대 중국의 경우 치안은 미약하고 도적은 들끓으니 한 마을, 혹은 가문별로 자치대를 조직하여 스스로의 안전을 꾀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비근한 예로 청말 마적단의 습격을 막기위해 각지에 조직된 자치경비대가 있고, 태극권이 만들어진 동기도 산적들과 싸우기 위해 진가(陳家) 내에 조직된 자치대 안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천당문도 그런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유독 이 가문만 유명한 것은 이곳이 독(毒)과 암기(暗器)를 장기로 삼아 대대로 전해온다고 이야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미상의 <사천당문>이라는 책에(<비룡팔부>라는 제목으로 90년대에 재간되었다) 이 사천당문의 전통과 내부사정, 사천당문의 독과 암기에 대해 소개되어 있다. 고룡의 <회풍무류>에서 주인공은 사천당문을 최대적으로 삼아 싸우는데, 사천당문의 세력을 가장 그럴듯하게 표현한 작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한국무협작가 진산의 <사천당문>에서도 그러한 것을 볼 수 있고, 특히 가문의 전통과 독, 암기의 제조비밀을 지키기 위해 사천당문이 채택하고 있는 독특한 규칙들, 그리고 그 규칙들이 빚어내는 갈등들에 대해 잘 묘사되어 있다. 말하자면 가문의 여자를 시집 보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데릴사위를 들여와서 당씨로 성을 바꾸게 한다거나 하는 것이다.
정확한 위치로 당가령(唐家寧), 혹은 당가타(唐家 )를 거론하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무공으로 특이한 것은 보이지 않고, 독과 암기의 이름만 주로 보이는데, 팔대극독(八大劇毒)과 팔대암기(八大暗器) 등이 있다고 하는데 역시 정하기 나름이다.
9파1방의 1방이 개방이다. 작가에 따라 달리 궁가방(窮家 )이라고도 불리는데, 거지들의 집단이라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다. 또 작가에 따라서는 개방을 북개방(北 )과 남개방(南 )으로, 또 혹은 오의문(汚衣門)과 정의문(淨衣門)으로 나누기도 한다. 오의문도는 더러운 옷을 입고 다니며 주로 구걸로서 생계를 유지하고 정의문도는 깨끗한 옷을 입고 다니고 구걸도 하지만 주로 꽃이나 노래 춤등의 기예(技藝)를 팔아 생계를 유지한다는 식이다.
신분표시에 대해서도 몇 가지 설이 있어서 허리띠의 매듭 수에 따라, 옷에 덧대어 기운 천의 숫자에 따라, 또 혹은 메고 다니는 마대(麻袋)의 매듭 수에 따라 분류한다고 한다. 어느 것이든 아무 표시가 없는 백의개(白衣 )에서 시작해서 일결(一結), 이결(二結)… 순으로 올라간다고 정의한다.
거지는 중국어로 화자(花子), 규화(叫花)라고 부르는데, 무협 속에서는 주로 정파의 의롭고, 익살스런 거지로 등장해서 세익스피어의 연극에서 광대가 하는 역할같은 것을 수행한다. 그러나 역사상 실제의 개방은 그렇게 좋은 단체만은 아니었다. 구걸이라기보다 위협해서 빼앗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구걸하는 방식은 문행(文行)과 무행(武行)으로 나뉘는데, 문행은 귀찮게 해서 구걸하는 것이고, 무행은 폭력을 행사해서 구걸하는 식이다. 무행의 경우를 보면, 규가개(叫街 ), 정두개(釘頭 ), 랍두개(拉頭 ), 사개(蛇 )가 있었고, 문행에는 향개(響 ), 취죽통개(吹竹筒 ), 시개(詩 ) 등이 있는데, 보통 연화락(蓮花樂)이라고 해서 노래를 부르며 귀찮게 하다가 그래도 재물을 안주면 배대강(背大强)이라는 강도질까지 동원하는 것이 이들의 방식이었다.
거지 두목은 화자두(花子頭), 개두( 頭), 규화두(叫花頭), 단두(團頭), 당가(當家) 등으로 부르며, 방내에서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어서 수하들이 받들어 모시기 때문에 거의 아무 일도 않아도 벼슬아치 부럽지 않게 호강을 하며, 주로 경조사에 개방의 대표로 가서 돈을 뜯는 일을 했다고 한다.
장문신표는 취옥장(翠玉杖), 벽옥(碧玉)으로 만든 타구봉(打狗棒;개 쫓는 몽둥이)이다.
개방의 무공은 소슬의 <낙성추혼>에 나오는 타구봉법(打狗棒法)과 타구진법(打狗陳法), 김용의 <영웅문>에 등장하는 강룡십팔장(降龍十八掌), 비서장(飛絮掌) 등이 있다.
Ⅳ. 마치며
위에 소개한 이름들과 그에 대한 설명은 진실보다는 가상, 역사보다는 전설에 더 비중을 두고 작성된 것이다. 허황되고 터무니없는 거짓말로 치부해버릴 수도 있겠지만 소설에서는 때로 현실보다는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허상이 더 의미 있을 때가 있다. 그것이 진실을 드러내는 데에 더 효과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허상들이 그 자체의 생명을 갖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어떨 때 우리는 진실과 가상, 역사와 전설을 구분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그 다음에는 상상력을 발휘하면 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