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계 최연소, 최단기 억대 연봉’ ‘연간 신규계약 3백27건’ ‘1백만달러 원탁회의 한국대표’. 미국계 보험사인 푸르덴셜생명 보험설계사인 차태진씨의 이력서에 적힌 기록들이다. 컨설팅회사 샐러리맨에서 보험업계로 전직한지 3년만에 독특한 네트워크 마케팅 기법을 고안해 보험업계의 주목받는 신예 주자로 떠오른 차씨의 다이내믹한 일과 생활을 소개한다.
5평 크기의 집무실과 개인 비서. 벽 한켠에는 방 주인의 캐리커처가 방문객의 눈길을 잡아끈다. 창가쪽 헤드 테이블 위에는 수많은 상패 및 트로피와 각종 경제·경영 서적들이 가지런히 진열돼 있다.
이 방 주인은 인터뷰에 앞서 회사 소개자료와 개인 홍보자료를 사전에 반드시 읽고 오기를 주문했다. 그리고 어떤 질문들을 던질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었다.
“홍보자료를 미리 읽어 오시면 인터뷰에 큰 도움이 될 듯합니다. 사전에 준비도 없이 만나면 기자 분도 저도 다소 불편하지 않을까요. 다른 뜻은 없으니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자료는 퀵 서비스로 보내겠습니다. 제 인터넷 홈페이지도 참조하면 좋고요.”
인터뷰에 앞서 취재원이 자신의 홍보자료를 보내오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경우여서 그에 대한 호기심이 더욱 커졌다. 다음날 약속한 대로 두툼한 홍보 자료가 날아들었고, 사흘 뒤인 지난 2월6일 오후 그의 집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푸르덴셜 생명보험 퇴계로 지점 차태진(車泰進)씨. 33세의 ‘라이프 플래너’(보험설계사)로 푸르덴셜 보험 세일즈맨 4백50명 중 한 사람이다. 세일즈 맨이 어떻게 지점장 방 만한 개인 공간을 갖게 되었는지, 깐깐하다고 여겨질 만큼 철저한 자기관리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그의 세일즈 기록을 보고 곧 사라졌다.
독방까지 제공받는 ‘임원급 보험설계사’
‘보험업계 최연소, 최단기 억대 연봉’ ‘백만달러 원탁회의 (MDRT·The Million Dollar Round Table) 한국대표’. 국내 보험업계에서 그가 쌓은 기록들이다. 95년 12월 미국계 보험사인 푸르덴셜생명에 발을 들여놓은 지 불과 3년만에 이룬 것이어서 더욱 업계의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영업 시작 첫해인 96년은 물론 97년, 98년 연속해 회사 내 영업 실적 1위를 기록했다. 지난해 계약 건수는 3백27건. 휴일을 뺀다면 하루에 1건의 실적을 올린 셈이다. IMF 상황에서도 지난해 자신의 기록을 61%나 경신했다.
보장금액 기준으로 98년 계약고가 4백90억원에 달한다. 이 덕분에 연봉도 2억원대를 훌쩍 넘었고 올해는 3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회사에서는 ‘임원급 라이프 플래너’로 인정받아 개인 집무실도 배정받았다.
또 MDRT 회원자격을 3년 연속 유지하고 있다. MDRT는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에 본부를 두고 있는 엘리트 생명보험 설계사들의 국제적 친목모임. 매년 연간 보험 수수료(초년도 영업수당, 누적수당은 제외)가 5만달러(6천만원) 이상인 사람에게 회원 자격이 주어진다. 세계 보험 세일즈맨들에게는 ‘명예의 전당’으로 통하며 평생 한번 회원이 되는 것도 영광으로 여길 정도다.
그는 국내 업계에서는 최초로 보험 세일즈에 입문한 첫해 MDRT의 회원이 되었다. 지난해에는 위원회에서 임기 2년의 한국 대표 자리를 맡겼다.
“국내에는 MDRT 회원이 71명이나 있습니다. 저도 그 중 한명일 뿐이지요. 저보다 실적이 뛰어난 프로 세일즈맨들도 많습니다. 하지만 위원회측에서는 실적보다 한국의 보험 세일즈 문화를 한차원 끌어올렸다는 점과 앞으로의 가능성을 인정해 대표자격을 주었다고 들었습니다. 젊다는 게 한몫 한 셈이지요.”
고객 구미에 맞는 정보 제공으로 기반 닦아
여기서 잠깐 MDRT 회원의 표준 명세서를 보자. ‘남자, 대졸 이상, 평균 연령 49세, 통산 12년 회원 자격 보유, 수수료 평균 10만9천달러, 연간 1백22건 계약 체결….’
30대 초반의 나이에, 불과 3년 동안 올린 기록은 세계의 내로라하는 보험 세일즈맨들조차 찬사를 보냈다. 그렇다면 그의 세일즈 비결은 어떤 것이길래 ‘한국의 보험문화’를 한 차원 끌어올렸다는 국제적인 평가를 받았을까?
“국내에서는 아직도 보험 세일즈맨은 그저 자신을 귀찮게 하고 끈질기게 괴롭히는 사람 정도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일즈맨들이 보험 상품 판매만을 목적으로 고객에게 접근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연고에 의한 세일즈도 결국 그런 판매방식의 하나이지요. 하지만 저는 고객들에게 보험 가입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보험업계에서는 흔한 판촉용 선물이나 식사 대접도 안합니다. 대신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정보를 수집해 제공합니다. 제 정보의 가치를 아는 분들은 대부분 스스로 제 고객을 자청합니다. 정보를 통해 훌륭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이지요. 굳이 말하자면 보험 판매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전략적 사고를 하는 셈입니다.”
‘상품을 판매하는 게 아니라 정보를 판다’는 그의 전략적 사고는 실제로 거대한 시스템으로 구축되고 있다. 이는 그가 보험업계에 투신하기 전부터 구상했던 것이다. 그는 91년 서강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3∼4곳의 국내 대기업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그뒤 세계적인 컨설팅 회사인 앤더슨 컨설팅에 취직했다가 베인 앤 컴퍼니 코리아로 자리를 옮겨 각종 산업 분야에 대한 컨설턴트로서의 전문적인 소양을 익혔다.
“컨설팅 회사도 매력적인 회사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맡은 일은 주로 각종 산업의 컴퓨터 시스템을 구축해 주는 일이었는데, 솔직히 경영학과 출신으로 전산 업무를 완벽하게 익혀야 한다는 게 큰 부담이었습니다. 컨설팅 업계에서 제1인자가 되지 못할 바에는 전직을 하자고 생각했지요. 경쟁력 있는 분야로 저는 주저없이 보험 세일즈를 선택했습니다. 프로 세일즈 문화가 정착 안된 미개척 분야로, 컨설팅 업무 과정에서 배운 각 산업에 대한 정보를 바탕으로 고객들에게 접근하면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컨설팅 상대를 기업에서 가정으로 바꾼 것이지요.”
그는 실제로 자신의 고객들과 잠재 고객들에게 그야말로 온갖 정보를 컨설팅하고 다닌다. 보험·금융·주식·채권 등 재테크 정보에서부터 경제 동향·세무·회계·부동산·창업 등 전문적인 경제 정보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고객이 필요한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
그는 자신이 보유한 정보를 피상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야말로 전문가급의 정보 컨설팅을 해준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그의 말을 빌리면 ‘전문가 네트워크’이다. 자신에게 가입한 각 분야의 전문가를 정보 획득의 통로로 활용하는 것이다. 세무 정보가 필요한 고객은 세무사를 통해 정보를 얻어 상담해 주고, 부동산 정보가 필요하면 역시 부동산 컨설턴트에게 정보를 얻어다 상담해 주는 식이다.
정보 네트워크 구축하고 컨설팅 서비스 시작
차태진씨를 축으로 거대한 정보 네트워크가 구축된 셈이다. 이같은 정보 네트워크를 통해 다져진 인간관계가 결국 보험 판매로 연결된다. 그의 이같은 영업 비결이 성공을 거둔 사례 하나.
회사원 A씨의 사무실을 방문했을 때다. 한참 가계 재정 컨설팅을 해주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 회사의 사장이 들어서며 “왜 잡상인을 들였어”라며 화를 버럭 냈다. 그 자리에서는 물러나왔지만 결국 A씨를 가입시키고 난 뒤 그를 설득해 사장을 소개받았다. 자연스레 첫 대면에서 세무 정보를 제공해 주었더니 보험에 가입한 것은 물론 여러 명의 고객을 소개해 주었다. 말하자면 고객이 스스로 고객을 물어다 주는 세일즈 방식이다.
그는 정보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자신의 연봉의 3분의 1을 과감히 투자한다. 보험 세일즈맨으로는 드물게 인터넷 홈페이지(www. lifeinsurance. co. kr)를 개설해 온라인으로 보험정보를 전달한다.
또 한달에 50만원 이상을 들여 전문 서적을 구입하고 10여종의 신문과 잡지를 구독한다. 이를 바탕으로 재테크 정보를 재가공해 2주에 한번씩 6백여명의 고객에게 E메일로 서비스하기도 한다. 개인 비용으로 여비서를 둔 것도 이런 일들을 분담하기 위해서다.
실제로 그의 방에는 각종 재테크 관련 서적, 인터넷 관련 서적들에서부터 전문적인 경제 경영 전문서에 이르기까지 각 방면의 서적들이 빼곡이 꽂혀 있다.
“이런 방식에 익숙하다 보니 연고 판매가 오히려 부담스럽게 되었습니다. 국내 보험회사의 영업 계약 유지율이 평균 50% 안팎인데, 95%대의 계약 유지율을 기록하는 것도 바로 정보 네크워크 덕분입니다.”
1백명의 가입자 중 해약자가 1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중도 해약률이 높은 보험업계에서는 가히 신화적인 기록이다. 연금보험이나 교육보험을 함께 취급하는 국내 생명보험 회사들과는 달리 보장성 보험만을 취급하는 푸르덴셜 생명의 영업방침 속에서 나온 기록이라 더욱 돋보인다.
그가 또 하나 성공비결로 꼽는 것은 ‘농업적 근면성’이다. 1백45주 연속 3건 이상의 계약을 올리고 있는 것도 이 덕분이다.
“1주일에 80시간 이상을 일하는 ‘하드 워커’(Hard worker)입니다.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까지 일하는 농업적 근면성이 없이 프로 세일즈맨이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어쩌면 신세대와 구세대의 중간에 있는 ‘낀세대’여서 가능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인정했듯 그는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부지런히 하루를 달린다. 새벽 6시에 기상해 아침 운동을 한 뒤 8시에 회사로 출근한다. 하숙집에서 회사까지는 걸어서 10분. 아직 미혼이라 시간 절약을 위해 늘 회사 근처에 하숙집을 구한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성공 못한다”
출근 뒤에는 비서와 함께 미팅을 갖고 그날 만날 사람들에 대한 정보를 체크한다. 이미 노트북 컴퓨터에 담긴 고객의 가족상황, 현재와 미래의 소득 및 지출상황, 부채 등을 종합해 고객의 재정현실에 맞는 보험상품을 설계한다. 이어 오후에는 실전(實戰)에 들어가 대개 4∼5명의 고객과 만난다. 그는 승용차는 물론 운전면허조차 없다. 그때 그때의 동선(動線)에 따라 지하철과 택시를 주로 이용한다. 교통사정이 열악한 서울 시내에서 승용차를 이용한다는 것은 자칫하면 한건의 계약을 놓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야말로 중증 ‘워커 홀릭’이다. “프로 세일즈맨도 좋지만 무슨 낙으로 사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그는 “그래도 놀 시간은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일요일에도 회사에 들를 때가 있고 고객을 만나기도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닙니다. 주말을 이용해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영화도 보고 등산도 다닙니다. 술을 더 많이 먹기 위해 담배도 끊었을 만큼 술을 즐기는 편입니다. 두달에 한번쯤은 마산에 계신 부모님을 뵈러 내려갑니다. 제가 열심히 뛰는 것도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소홀히 한다면 의미가 없는 것이니까요.”
이렇게 얘기하면서도 그는 ‘프로 세일즈맨론’을 잊지 않았다.
“의사들은 소득도 높고 사회적 지위도 높지만 환자를 돌보느라 여름 휴가도 제대로 못갑니다. 프로 세일즈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고객들에게 봉사하면서 돈과 명예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개인적 희생은 불가피한 것 아니겠습니까.”
프로 세일즈맨을 자처하는 그에게 불쑥 ‘도대체 보험은 한마디로 무엇이냐’는 원론적인 질문을 하나 던졌다.
“생명보험이란 상품은 인류가 고안해 낸 가장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 즉 가족을 위해 가입하는 이타적인 상품이기 때문이지요. 저는 제 고객이 가입을 결정할 때 진심으로 ‘이 사람은 가슴이 따뜻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생명보험은 고객도 살고 세일즈맨도 사는 ‘윈-윈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침없이 말을 쏟아내면서도 조리있게 말하는 그의 세련된 화법에서 일에 대한 철학과 애정이 그대로 묻어났다.
“자신의 가능성 개발 않는 건 낭비”
그는 요즘 더욱 바빠졌다. 마케팅과 영업기법에 관한 은행 및 기업체의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세일즈 기법에 관한 책도 집필하고 있다. 이것들도 결국 영업활동의 일환이란다.
보험 세일즈맨으로서 그는 원대한 희망을 꿈꾸고 있다. MDRT의 탑 클래스 회원들을 벤치마킹의 상대로 정한 것이다.
“미국의 MDRT 회원들은 그 사회에서 회계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 대우를 받습니다. 그들과 상담하기 위해서는 일정액의 상담료도 물어야 하니까요. 물론 탑 클래스의 경우 연봉도 제 10배 이상 받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험 세일즈맨의 숫자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데 MDRT 회원 숫자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적습니다. 보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자리잡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뛰고 연구하면서 우리 보험문화의 지평을 한단계 높이는데 공헌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가 사무실 책상 액자에 끼워 놓고 암송한다는 광고 카피 구절을 보면 그의 목표는 머지않아 실현될 것 같았다.
“이 세상의 가장 아까운 천연자원의 낭비는 자신의 무한한 가능성을 개발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목표가 낮으면 곧 싫증이 납니다. 목표가 높으면 날아갈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