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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지막한 동산을 뒤에 두르고 널찍한 들판을 내려다보는 시골마을 어귀에는 흔히 아름드리 고목나무가 찾는 이를 반긴다. 서정적인 우리 농촌의 대표적인 풍경이다. 아늑한 그의 품안은 뙤약볕 여름농사에 지친 농민들의 안식처이며, 마을의 크고 작은 일을 결정하는 여론광장이었다.
대부분 옛날에 당산제를 지내던 당산목으로서 수백 년, 때로는 천년을 넘겨 살아 왔다. 그러나 한국전쟁과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고목이 수난을 당했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 전통문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이런 고목들은 우리의 소중한 문화자산으로 잘 보호되고 있다.
우선 고목나무의 기준부터 알아보자. 간단히 말해 지름 약 한아름(둘레 150cm, 직경 50cm)에 나이 100년 정도면 고목으로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아무리 자라도 팔목 굵기를 넘기기 어려운 관목이나, 수십 년으로 수명(樹命)을 다하는 벚나무 종류도 있으므로 대체로 우리 주변에서 큰 나무로 쉽게 만나는 소나무, 느티나무, 은행나무 등을 대상으로 한 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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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심기가 한창인 5월에 흰 꽃을 피우는 이팝나무. 전남기념물 184호 순천 평촌리 이팝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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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수 고목 중 느티나무가 절반 이상
우리나라의 고목들은 대부분 산림청의 지도 감독을 받아 각 지자체에서 ‘보호수(保護樹)’란 이름을 붙여 관리하고 있다. 조금 구체적으로 알아보면 보호수는 ‘산림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47조’에 따라 시·도지사나 지방산림청장이 판단해 지정한다.
대상은 노목(老木)·거목(巨木)·희귀목(稀貴木) 등이며, 지정기준은 산림청 예규 ‘자생식물 및 산림유전자보호림 관리요령’에 의하여 미리 정해 둔 수종별 나무의 크기와 나이에 따른다. 예를 들어 소나무의 경우 적어도 나이 200년 이상, 지름 1.2m 이상이며 느티나무는 나이 300년 이상, 지름 2m 이상을 기준으로 한다. 다만, 수령 100년 이상의 노목, 거목, 희귀목으로서 고사 및 전설이 담긴 수목이나 특별히 보호 또는 증식가치가 있는 수종은 이 기준에 불구하고 보호수로 지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2010년 말 기준 1만3,374그루의 보호수가 있으며 수종별로는 느티나무가 7,331그루(54.8%)나 되어 전체 보호수의 반이 넘는다. 다음이 소나무 1,425그루(10.7%)이며 이어서 팽나무 1,300그루(9.7%), 은행나무 763그루 (5.7%), 회화나무 351그루(2.6%), 왕버들 301그루(2.3%), 향나무 223그루(1.7%), 기타 1,680그루(12.6%)의 순서로 이어진다. 기타는 100여 수종이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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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연기념물 못지않은 강릉 연곡면 삼산1리 보호수 소나무. 높이 28m에 둘레는 두 아름이 훌쩍 넘는다. / 줄기의 가운데가 모두 썩어버리고도 싱싱하게 잘 살아가는 홍천 북방리 화계초등학교 대룡분교의 복자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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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로서의 고목 162그루
보호수로 지정되면 국가가 관리하는 보호 리스트에 올라가니 함부로 훼손할 수 없다. 이름 없는 고목나무는 우선 보호수라는 자그마한 벼슬이라도 얻기를 바란다. 그래야 못된 사람들의 톱날을 피해 하늘이 준 수명을 다할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높은 벼슬을 얻어 귀족 고목나무가 되면 더욱 안전하다. 귀중한 문화재로 대접받는 천연기념물과 시·도기념물로 지정받는 것이 나무나라 최고의 영예이며, 천수를 다할 수 있는 절대조건이다.
먼저 우리가 쉽게 잘 쓰는 말이지만 무엇을 두고 문화재라고 하는지 알아보자. 문화재는 건조물·고문서·그림과 글씨·조각·공예품 등의 유형문화재, 연극·음악·무용·공예·전통기술 등의 무형문화재, 의식주·생업·신앙·연중행사 등에 관한 풍속·관습과 이에 사용되는 의복·기구·가옥 등의 민속자료, 패총·고분·성터·궁궐터·도요지·유물 및 동물, 식물, 광물, 동굴·지질·생물학적 생성물 및 특별한 자연현상을 기념물로 정한다. 이들 중 기념물로 분류되는 문화재에 천연기념물과 시·도기념물이 들어간다. 동식물에서 광물까지 생물현상이 모두 포함되지만 여기서는 식물, 특히 나무 기념물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천연기념물은 문화재청에서 지정하고 관리는 지자체가 담당하는 이중구조이고, 시·도기념물은 광역시 및 각 도에서 지정과 관리를 같이하고 있다. 천연기념물은 국가가 지정하니 더욱 귀중하고 희귀성이 더 있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은 2010년 말 기준 전체 430건이며 식물 252건이고 나머지 동물 및 광물 등이 178건이다.
식물 252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고목나무 162건이고 나머지 90건은 대부분 숲이다. 시·도기념물은 통계가 명확하지 않으나 대체로 고목나무가 130여 건, 숲이 30여 건 정도다.
보호수 1만3,374그루, 시·도기념물 고목나무 130건, 천연기념물 고목나무 162건을 합쳐 등록된 고목나무는 1만3,666건에 이른다. 아직 등록되지 않은 고목나무도 여럿 있으므로 우리나라 전체의 고목나무는 약 2만 그루쯤으로 추산된다. 물론 이 숫자는 인가 근처에 자라면서 여러 가지 전설을 갖고 있어서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고목나무들이다. 숲속에 자연 상태로 자라는 고목나무는 여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녹색재단에서 ‘한국의 Big Tree’라는 사업명으로 백두대간을 필두로 지금도 조사를 하고 있으니 규모와 숫자가 곧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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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나라 시골의 어디에서나 당산목으로 흔히 만날 수 있는 느티나무. 사진은 천연기념물 479호인 장성 단전리 느티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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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나무의 위상 대단
보호수는 이름 그대로 정부의 보호를 받고 있는 나무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행정기관의 보호만 받을 뿐 ‘문화재’라는 반열에 들지는 못한다. ‘시도 기념물’이나 천연기념물이 되어야 비로소 나무 나라 최고의 영예인 문화재 나무가 된다. 고목이 천연기념물의 타이틀을 다는 순간 대접이 엄청 달라진다. 출입을 제한하는 담장이 쳐지고 연간 수천만 원의 예산이 배정되며 유급 관리직원이 임명된다. 아울러서 문화재보호법의 적용을 받으므로 함부로 나뭇가지라도 하나 꺾었다가는 크게 경을 친다.
물론 반드시 단계를 밟아서 올라가는 것은 아니다. 보호수가 시·도기념물이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천연기념물이 될 수도 있고 사람들이 진가를 잘 알지 못하여 이름 없는 나무나라 서민으로 그냥 살다가 어느 날 전문가에게 발견되어 곧장 천연기념물이 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은 1962년 문화재보호법이 발효되면서 일제강점기에 조사해 둔 자료를 바탕으로 매년 2~3건씩 추가 지정해 왔다. 그러나 1982년 11월 4일자로 무려 고목만 53건을 한꺼번에 지정했다. 이후 8건이 해제되어 현재는 45건이 당시 지정된 고목나무로 남아 있으며, 이는 현재 162건의 고목 중 거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이때는 신군부의 독재정권 시절이다. 납득할 만한 지정사유에 대한 설명도 없이 하루아침에 지정해 버린 것이다. 당연히 졸속 지정될 수밖에 없었다. 천연기념물로 값어치를 다시 검토해 보아야 할 나무도 여럿 있다. 이후는 정상을 찾아 매년 2~5건 정도씩 지정되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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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양이 망가진 천연기념물 276호인 남해 갈화리 느티나무. 해제해야 할 대표적인 ‘저급 천연기념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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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목나무의 보존 관리
나무는 일정한 수명을 가진 생물체이니 영구 보존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보호에 정성을 쏟아도 태풍에 분질러지고 넘어지며 병충해에 시달리기도 한다. 아울러서 생명체는 자연 수명이 있다. 하지만 과학적인 방법으로 보존관리를 해나간다면 재해를 줄여서 좀더 건강한 상태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고목나무의 보존관리에 걸림돌은 나무외과수술, 흙덮기(覆土), 땅눌림(踏壓), 생활공간의 협소와 오염 등을 들 수 있다.
외과수술은 고목나무의 가운데가 썩어 커다란 구멍이 생긴 안쪽의 썩은 부분을 긁어내고 우레탄수지로 채워 넣는 것을 말한다. 나무는 부피 생장을 하는 부름켜가 분열한 후 대부분의 세포는 몇 주에서 몇 달이면 대부분 죽어 버린다. 실제로 아무리 굵은 고목나무라도 모든 세포가 다 살아 있는 실제 생존 부분은 부름켜를 중심으로 나비 1~2cm 정도의 고리뿐이다. 따라서 고목나무 속은 썩어서 큰 구멍이 생겨 있더라도 생명에 직접적인 지장은 없다. 심지어 어린이들의 불장난으로 구멍 속을 시꺼멓게 태워버려도 그대로 살아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고목나무의 대부분은 썩은 부분을 긁어내 버리고 우레탄수지로 메워 넣기를 했다. 이런 단순한 메워 넣기를 ‘외과수술’이란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해 버린다. 고목나무 공동(空洞)의 이런 메워 넣기는 생장에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판명되어,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시행하지 않는다.
모든 생물체의 상처는 자연치유가 최선이며 나무라고 다를 리 없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외과수술이란 이름의 고목나무 구멍 메우기는 거의 불필요하다. 그대로 두고 나무가 바람에 넘어지지 않게 받침대를 보강하고 병충해를 방제해 주는 것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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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굵은 뿌리를 자연그대로 노출시킨 천연기념물 281호 남원 신기리 느티나무, 올바른 보호 관리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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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덮기(覆土)는 나무 밑에다 흙을 덮어주는 것을 말한다. ‘북돋우다’는 우리말이 흙으로 나무뿌리를 덮어주는 것에서 기원한 것처럼 나무를 잘 자라게 하는 데는 흙덮기가 꼭 필요한 과정처럼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일반 농작물과는 달리 고목나무는 흙덮기가 오히려 나무에 독이 된다. 나무뿌리가 실제로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은 땅 밑 10~20cm에 뻗어 있는 수많은 잔뿌리들인데, 이들은 지상부와 마찬가지로 숨을 쉬어야 한다. 흙덮기는 통풍을 방해하여 뿌리 숨쉬기를 못 하도록 숨통을 조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고목나무는 굵은 뿌리가 울퉁불퉁 노출된 상태 그대로 놔두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최근 각종 개발을 명목으로 고목나무의 주변에서 환경개선 사업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고목나무의 생리를 이해하고 그에 맞는 친환경 공사가 아니라 보기 좋게 만들고 쉼터의 기능까지 추가한다. 주변에 경계석을 높이 쌓고 수평을 맞추기 위하여 때로는 깊이 1m 이상의 흙을 채워버린다.
이런 공사는 뿌리가 숨을 못 쉬게 하여 고목나무는 서서히 죽어가게 만든다. 그렇다고 나무가 당장에 죽는 것은 아니다. 죽는 데 짧게는 수년, 길게는 20년이 걸리기도 한다. 나무가 죽을 때쯤은 공사업자도 담당공무원도 책임질 필요가 없어진다. 최근 이런 문제를 인식한 문화재청에서는 천연기념물의 복토제거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보호수 등 다른 고목나무들은 지금도 여전히 흙덮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땅눌림(踏壓)은 나무 밑으로 길이 나 있거나 쉼터로 개방되면서 사람들이 너무 많이 출입해 땅이 다져지는 현상이다. 흙덮기와 마찬가지로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뿌리의 숨쉬기를 어렵게 한다.
천연기념물의 또 다른 문제점은 주어진 생활공간이 너무 좁다는 것이다. 특히 땅값 비싼 대도시의 천연기념물들은 정말 손바닥만 한 공간에서 겨우 겨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생활오수가 흘러들어 시름시름 죽어가기도 한다. 또 주변의 땅 주인들은 나무가 죽어버리기를 학수고대하고 심한 경우 몰래 독극물을 넣기도 한다. 문화재 주변은 개발에 약간의 제약을 받는 것이 싫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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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 하나에 60억 원이 들어간 돈 먹는 하마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175호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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챔피언 고목나무들
우리나라 고목나무들 중 각 분야 최고 챔피언 나무를 찾아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다. 나무 나이와 굵기, 키, 가장 값비싼 나무로 나누어 알아본다.
나이가 가장 많은 나무 사실 나무의 나이는 정확하게 아는 방법이 마땅치 않다. 대개 나무에 얽힌 전설이나 굵기를 보고 판단한다. 최근에는 주변의 비슷한 나무의 나이테를 조사해 추정하는 통계적인 방법도 있으나 모두 ‘추정’이라는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다. 울릉도 도동 절벽에 붙어 자라는 보호수 향나무가 2,000년이 되었다고 하나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문화재청에서 인정하는 나이가 가장 오래된 나무는 정선 두위봉에 자라는 천연기념물 433호 주목이다. 고도 1,300m쯤의 능선에 3그루가 나란히 서 있다. 가운데가 맏형이며 1,400살이고 나머지 두 그루도 각각 1,100살과 1,200살이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태어난 김유신 장군도 계백 장군도 모두 영욕의 세월을 뒤로하고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지만, 지금도 주목은 두위봉의 터줏대감이다.
가장 굵은 나무 강원도 영월읍 하송리, 동강과 서강이 만나 남한강을 이루는 합수(合水)지점을 바라보는 곳에는 영월 엄(嚴)씨의 시조 엄임의가 심었다는 천연기념물 76호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자라고 있다. 나이는 약 1,300년이 되었다고 하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굵은 나무다.
가슴높이 둘레가 14.8m이니 장정 10여 명이 빙 둘러서서 팔 벌리기를 해야 감싸 안을 수 있다. 일제강점기의 조사 자료에도 나무 높이가 38m, 가슴높이 둘레가 14m로서 ‘조선최대의 은행나무’로 평가했다. 마을 사람들은 나무 속에 신통한 뱀이 살고 있어서 동물이나 곤충이 접근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어린 아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져도 상처를 입지 않으며, 정성을 들여 빌면 아들을 낳는다는 것이다. 청령포에 유배와 있던 단종이 읍내의 관풍헌으로 옮겨질 때, 어린 임금은 이 은행나무에서 은행 몇 알을 따다가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점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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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굵기가 가장 굵은 천연기념물 76호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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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가 가장 큰 나무 경기도 양평 용문사의 천연기념물 30호 은행나무가 우리나라 나무 중에는 가장 키가 큰 꺽다리 나무다. 41m로 거의 14층 아파트에 버금가고, 나무둘레도 11.2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다. 대체로 녹음이 짙은 여름날 산속에 홀로 서 있는 나무는 웬 만큼의 덩치로서는 ‘초록은 같은 색’이니 푸름에 묻혀 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 은행나무는 대자연 속에 자신의 존재가 묻혀 버리는 것을 거부하고 가까이서 하늘을 쳐다보듯이 올려보면 더욱 아득해 내가 한층 왜소해지는 느낌이다. 한때 이 은행나무는 높이 67m로서 동양최대의 나무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
가장 값비싼 나무 경북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의 임하댐 천연기념물 제175호 은행나무는 지금보다 15m 아래,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자라던 나무로서 댐이 만들어지자 수몰 위기에 몰렸다. 조선 선조 때 훈련대장을 지낸 탁순창 공이 심었다는 유서 깊은 나무로서 살려내는 방법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1987년 천문학적인 금액인 23억2,300만 원에 끝자리 숫자가 더 붙는 엄청난 상식(上植) 공사비가 책정됐다. 한마디로 그 자리에서 나무를 위로 밀어 올리는 방식이다.
옮기고 보니 나무는 댐의 건너편에 덩그러니 홀로 자리 잡게 되어버렸다. 다리를 놓아야 한다는 주장들이 나왔다. 다시 34억 원을 들여 오직 은행나무만을 위한 다리가 놓인다. 은행나무 하나에 들어간 총 경비는 57억 원, 여기에다 최근 또 외과수술이라는 이름으로 돈이 더 들어 갔으니 거금 60억 원짜리 은행나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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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키가 가장 큰 천연기념물 30호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 우리나라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천연기념물 433인 정선 두위봉의 주목 3형제. 김유신 장군과 동갑내기 1,400년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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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가 천연기념물 지정되면…
나무나라의 ‘벼슬’… 예산 배정받고 유급직원이 관리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 1조에는 식물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수 있는 기준을 다음과 같이 정해 두었다.
1 한국 특유의 식물로서 이름 난 것 및 그 서식지와 생장지.
2 특수 지역이나 환경에 자라는 특유식물.
3 진귀한 식물로서 보존이 필요한 것.
4 학술상 가치가 큰 명목(名木), 거수(巨樹), 기형목.
5 대표적인 원시림이나 고산식물.
6 진귀한 식물의 자생지.
7 저명한 식물분포의 경계가 되는 곳.
8 유용식물의 원산지.
이처럼 대부분의 기준이 포괄적이고 객관적이지 못하다. 실제 지정유무를 결정하고 판단할 주체가 필요하다. 바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에서 이런 기능을 담당한다. 천연기념물의 지정과 해제를 비롯해 보호 관리 규정까지 막강한 권한을 행사한다.
문화재위원회는 문화재청장이 설치하며 200~300명의 위원이 임기 2년으로 임명된다. 위원은 문화재위원과 비상근 문화재전문위원으로 나누어진다. 실제로 월 1회의 위원회 회의 참석은 문화재위원만 하며 전문위원은 특별히 따로 자문을 받을 때만 부른다. 현재 9개의 분과가 있으며 천연기념물분과는 위원 14명과 전문위원 19명이다.
천연기념물은 식물이 가장 많으므로 전문가 4~5명이 임명되며, 식물 이외에 동물, 광물, 동굴, 지질 등 분야가 넓으므로 분야당 1~2명의 위원이 임명된다. 위원은 전공 관련 대학교수가 대부분이나 최근에는 변호사나 비전공 학자도 여러 가지 명분으로 들어와 있다.
위원의 선발은 흔히 말하는 ‘전문가 및 사계의 권위자’라는 애매한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임기가 2년이지만 20~30년을 계속 맡고 있는 위원도 있고, 별다른 이유 없이 2년 단임으로 끝나기도 한다.
개인이나 단체, 혹은 문화재청 자체에서 천연기념물 지정신청을 할 수 있다. 신청이 들어오면 문화재청 천연기념물과에서 검토한 후 문화재위원이나 전문위원 3명과 문화재청 담당 공무원이 현장 지정조사를 나간다. 나무를 둘러보고 줄기둘레, 키 등 생육상황과 전설 등 관련 자료를 수집해 문화재위원회에 보고하고 이의가 없으면 지정절차에 들어간다.
천연기념물의 해제는 지정과 같은 과정을 밟는다. 그러나 해제가 지정보다 더 어렵다. 고목나무나 숲의 모습은 지정 후 시간이 지나면서 끊임없이 변화한다. 태풍으로 가지가 분질러져 늠름한 모습은 사라지고 몽당비처럼 되어 버렸거나, 늘푸른나무숲이라고 지정을 했는데 관리부실로 현재는 갈잎나무만 있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저급 천연기념물’에도 매년 수천만 원의 예산이 들어가므로 상식으로는 해제가 당연하다. 하지만 오래 두면 회복된다는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담당공무원들은 나무가 완전히 죽어버리기 전에는 좀처럼 해제하려 들지 않는다.
시·도기념물은 각 지자체 문화재위회에서 천연기념물과 같은 과정을 거쳐 지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