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고구려를 탐내는 진짜 이유 -19-

[서훈]

.최치원의 시대

혹자들은 흔히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고난 자질과 인격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아마 똑같은 사연이라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기 때문일 것입니다. 같은 행복도 사람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고, 같은 불행도 사람에 따라느끼는 바가 다를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자질과 인격에 따라 목표하는 바가 다르고, 성취하려는 바가 다르며,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달라지는 것이 곧 인생이라 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자질과 인격만이 삶을 결정한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때와 장소 그리고 환경 등과 같은 조건이 삶을 결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한석봉이 20세기 미국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요? 또 아인슈타인이 15세기 조선에서 태어났다면 어떤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남다른 인격과 자질을 갖춘 사람들이니 나름대로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면서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같은 업적을 남길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자질과 뛰어난 인격을 갖추었더라도 때와 장소와 환경이라는 조건이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20세기 미국의 한석봉이나 15세기 조선의 아인슈타인은 불우한 천재로서의 삶에 만족해야 할 가능성이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21세기 미국은 한석봉 같은 사람에게 서예가로 성공할 기회를 주기 힘든 나라이고, 15세기 조선은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에게 과학자로 성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기 힘든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삶은 때때로 자질이나 인격보다 시대적 배경, 문화적 조류, 정치적 상황에 의해 좌우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최치원이 12살에 당나라로 간 것이나 황소의 난을 통해 이름을 천하에 알리게 된 것도 신라의 관리로 봉직하게 된 것도 끝내 가야산으로 은둔하게 된 것도 그에 합당하는 배경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는 신라와 당과 발해가 정치·경제·문화·사회적으로 화려했던 과거를 마감하며 망국의 조짐을 드러내던 시대에 태어났고, 본격적인 혼란이 계속되던 시대에 활동했으며, 혼란이 완전히 수습되기 전에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혼란을 방관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거기에서 그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요? 그 내막을 자세히 알 수 없지만 황소를 토벌하자는 격문을 짓고 정치개혁안으로 보이는 시무십여조를 올린 것으로 보아 천부경을 번역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신라와 당은 대체 어떤 나라였을까요?

신라는 고구려가 멸망하고 난 뒤, 당을 몰아내고 반도의 패자로 군림했습니다. 이어 찬란한 문화를 꽃피우며 이 땅의 평화를 가져왔지요. 하지만 영원한 제국은 존재하지 않는 법. 신라는 날이 갈수록 향락적이고 퇴폐적인 길을 걸었습니다. 말기에 이르러서 왕위계승의 원칙이 무너지고 정쟁에서 밀린 귀족들의 자손과 6두품 이하 계층은 깊은 산중에 은둔하거나 세상사에 초연한 삶을 추구하였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국교인 불교를 배척하고 노장老莊과 도교를 수용하는 기반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이는 삼교가 귀일하던 당나라 사상이 유입된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신라의 골품 제도는 등용을 제한하고 있었습니다. 즉, 진골은 17관등 중 5위에서 1위까지 오를 수 있었지만 6두품은 6위가 한계였으며, 그 외의 출신은 벼슬이 제한되었습니다. 능력이 있더라도 등용의 길은 험난했던 것이지요. 특히 6두품은 득난得難이라 할 정도였습니다.

원효元曉나 최치원과 같이 뛰어난 인재들은 모두 6두품이었습니다. 그리고 6두품 이하는 등용할 때, 학문의 고하를 가렸지만 그나마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불만은 대단했습니다. 그런데 당나라 관직을 받으면 쉽게 등용될 수 있는 길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때 마침, 당나라는 외국인에게 빈공과賓貢科를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신라의 인재들은 너도나도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고자 했습니다. 그 결과, 당나라 문화는 더욱 신속히 유입되고 있었습니다. 특히 최치원이 태어나던 시기에는 청해진을 근거로 활약하던 장보고가 죽은 이후, 신라의 재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렀으므로 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서라벌에 있는 귀족들은 혼란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왕위계승을 놓고 다툼을 벌이는 일에만 관심을 두었으니 나라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기만 했습니다. 결국 신라의 기반은 총체적으로 와해되어가고 있었던 것이지요. 한편, 당나라는 반란에 의해 세워진 나라였습니다. 원래 수隋나라 양제煬帝는 도참설을 신봉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시중에는 다음과 같은 소문이 떠돌았다고 합니다.
장차 노군(老君)의 자손이 세상을 다스린다.
- 양씨장멸(楊氏將滅) 이씨장흥(李氏將興) -'

화가 난 양제는 이연李淵과 그의 아들 이세민李世民을 탄압했습니다. 이연 부자는 이에 항거하여 반란을 일으켰지요. 반란은 성공했고 이어 당제국이 세워졌던 것입니다. 수를 이은 당나라는 정관지치貞觀之治(627-649)와 개원지치開元之治(713-741)를 잇는 130년간 보기 드문 태평성대를 열었습니다. 특히 당태종은 고대로부터 계승된 학술적 성과를 총결산했으므로 당나라 문화는 크게 성숙할 수 있었습니다.

당태종은 오경五經이 성인의 시대에서 멀리 떨어졌다는 점에 착안하여 오류가 많은 부분을 바로 잡도록 했지요. 이에 많은 석학들이 약 25년간 경전을 정리하는 동안 특히 역에 관한 연구에 골몰했습니다. 오경 중에서도 으뜸이 역이라고 믿은 까닭이었습니다.

이 때 집필된 책이 주역정의周易正義이고 민간의 이정조李鼎祖는 유사 이래의 역을 집대성했다는 주역집해周易集解를 저술했습니다. 그런 만큼 당나라 문물은 크게 발전하였지만 결과적으로 유·불·도 삼교가 각기 그 특징을 잃고 서로 융합되는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잠시 이를 입증하는 이정조의 언급을 살펴보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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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교의 기원과 9류의 관건을 깊이 탐구하니, 실로 나라를 열고 집안을 이어 자신을 닦는 올바른 술법이다. 복상(卜商)이 입실하여 미언(微言)을 전수받은 이래 전주(傳注)한 이가 백가(百家)로 천고에 면면히 이어져 왔다. 마침내 천착하기에 이르렀으나 심연의 깊이는 헤아리지 못하였다. 오직 왕필(王弼)과 정현(鄭玄)만이 연이어 세상에 크게 행하였다.

정현은 천상(天象)을 참고하고 왕필은 인간사를 해석하였다. 그렇지만 역의 도리가 어찌 하늘과 인간 어느 한쪽에 편중되고 구애되겠는가? 후학들로 하여금 분란이 일어나게 하여 각각 좁은 소견을 연찬케 하였으니 이에 원류를 변별할 수 없는 과오를 저질렀다. 천상은 멀어 찾기가 어렵고 인간사는 가까워 쉬 익히게 되니 속된 노랫가락에 흡족하여 빙그레 웃게 된다. 바야흐로 분류하여 모음이 바로 여기에 있음인저!
----(주역집해周易集解의 서문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당나라 문화의 특색은 유·불·도의 삼교가 귀일하는 경향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당나라 때는 불교가 전파되고 도교의 종교화가 완성되는 시기였습니다. 지배 계층은 유학의 이념을 따르면서도 불교와 도교를 정치투쟁에 이용했지요. 원래 당나라가 유·불·도를 용납했던 것은 정치적 상황 때문이었습니다.

즉 당태종은 몇 차례 왕자의 난을 평정하는 동안 도사 왕원지王遠知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황제에 오른 뒤, 상청파의 도사들을 국사國師로 삼았지요. 이어 노자는 태상현원황제로 높이고, 노자 어머니를 선천태후로 받들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태종의 며느리 측천무후는 불교를 우대했으며, 현종은 다시 도교를 높였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는 동안 삼교는 점차 융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주역은 도가와 불가의 논리로 해석되기도 하고, 불경은 도가의 논리로 해석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각 시기마다 3교의 지위는 조금씩 달랐습니다. 처음엔 도교가 존숭되었지만 유학은 곧 지위를 회복하였고 또 불교가 범람하면서도 도교가 성행했습니다.

인문학 분야의 성과는 별로 없었지만 자연과학 분야는 크게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가령 천문역법에서 이순풍李順風은 혼천의로 황도, 적도, 지평의 경위를 측정했고, 승려인 일행一行은 대연력大衍歷을 만들었습니다. 수학 분야에서는 왕효통王孝通의 집고산경緝古算經, 이순풍은 십부산경十部算經을 저술하므로써 수준을 높였습니다. 그러는 한편 약학, 약물학, 지리학에서도 일정한 성과를 보였습니다. 이러한 과학의 발달은 필연적으로 미신을 타파하며 유물론적 역리철학易理哲學의 발전을 촉진시키는 힘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당나라는 '안사安史의 난(755 - 763)' 이후 점차 국력이 쇠하기 시작했습니다.

즉 과거제도로 인재를 등용하므로써 신진들이 관직에 등용되었지만 바로 그 때문에 구세력이 몰락하면서 왕권도 권위를 잃어 갔던 것이지요. 이후 전반적인 침체기에 빠져들면서 민생이 피폐해지면서 반란의 기운이 싹트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황소의 난'을 겪는 동안 당나라는 말기적 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최치원이 태어났을 때 신라는 점차 쇠퇴하고 있었고 당나라는 말기적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의 신라와 당은 발해와 함께 멸망을 재촉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그의 시대는 격변하는 정세 속에 계속되는 혼란의 와중에 있었으므로, 비록 최고의 지식을 쌓은 강한 인내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경륜을 펼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만약 그가 혁명가였다면 천하를 도모할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그는 문장가며 철학자였습니다. 때문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정신세계 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철학자로써 당시 유행하던 미륵사상에 의존하며 하늘만 쳐다보기보다 민족적인 긍지를 되찾고 도덕성을 회복하는 일이 더 시급하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가 진성여왕에게 올렸다는 시무십여조도 그런 시각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을 것이며 천부경 번역 역시 그런 시각에서 이해되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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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가치관

무릇 한 시대의 가치관은 그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법입니다. 다만 지성인들 그 중에서도 미래를 걱정하는 지성인들은 좀 다릅니다. 그 시대의 가치관으로는 어떤 희망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과감히 과거를 탈피하고자 합니다. 즉 새로운 가치관을 찾아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어가는 것이겠지요. 예수, 공자, 노장, 붓다 등도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치원은 그 시대에 과연 어떤 길을 걸어가고자 했을까요?

그걸 이해하려면 그의 학문적 소양이나 사상적 토대를 알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의 학문과 사상적 토대는 분명 신라의 학풍에서 기인했을 것입니다. 그가 12세에 홀로 당나라에 유학을 떠났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 자질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어린 아들이 10년 안에 당나라 과거에 급제하리라고 본 아버지의 판단은 그런 자신감의 발로라 할 것입니다. 이는 오늘 날 우리 자식들을 미국에 유학 보내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어쨌거나 그는 일찍부터 신라의 학문이나 사상을 두루 섭렵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정작 그의 학문과 사상이 완숙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 곳은 당나라였습니다. 그는 훗날 선맥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당나라에서 보낸 16년이라는 세월은 결코 짧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세월은 그로 하여금 이민족 문화에 빠져들게 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물론 신라 외교관으로 지내는 동안 당나라를 찬양하는 문장을 많이 남긴 최치원은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대표적 사대 모화주의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고 있기도 합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주로 문장을 예로 듭니다. 그러나 최치원의 문장이란 주로 외교문서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원래 외교란 상대를 적당히 올려주는 법입니다. 또 당나라는 많은 은혜를 베풀었을 뿐만 아니라 학문적·사상적·정치적 기반과 출세의 기반까지도 제공했습니다.

막강한 실력자의 후원이 있었고 황제의 신임까지 얻었으니 그에게는 굳이 당을 경원해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그는 골품제도로 신분상 불이익을 당할 것이 뻔한 신라로 귀국했다는 사정을 감안해야 겠지요. 그것은 분명 최치원 자신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할 수 있는 나라를 신라로 생각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는 스스로를 가리켜 동인東人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당나라와 신라는 대등하게 보았다는 뜻이 됩니다. 황해를 중심으로 보았을 때. 신라는 동쪽 당나라는 서쪽이므로 동인이란 결국 신라와 당을 동등한 위치로 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때문에라도 우리는 그를 일방적으로 사대 모화주의자라고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대표적 사대모화주의자라는 것은 지나친 감이 있다고 보여집니다. 어쨌든 그는 진감화상비명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도는 사람에게 멀지 아니하고 사람은 다른 실체가 없다. 이로써 동인(東人)의 아들이 불교가 되고 유교가 되는 데에는 서쪽으로 큰 바다를 건너 이중 삼중 통역을 거쳐 유학할 때 목숨은 조각배에 달렸지만 마음은 아름다운 나라로 향하였다.

여기에서 동인이란 당나라와 신라를 동서로 나누어 보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동인은 민족의 주체의식과 통합니다. 신라는 중국의 동쪽이고 당은 신라의 서쪽이니 서로 대등하다는 뜻으로 결국 중화를 인정하지 않는 셈이 됩니다. 그러한 '동인 의식'은 선맥의 후계자로서의 최치원의 삶과 일맥이 상통합니다. 또 이는 천부경을 남기게 된 배경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쨌든 그의 시대는 그만큼 혼란의 연속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최치원은 18세 때, 유학을 채용하던 당나라 과거에 급제했고, 그의 친형은 승려였고, 후원자 고변은 도가를 존숭했습니다. 또 신라와 당나라는 삼교를 두루 용납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삼교에 접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사상적 중심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혹 삼교 모두에게 적당히 추파를 던지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따로 생각한 바가 있었을까요?
그는 상태사시중장上太師侍中狀에서
"이제 치원은 유문儒門의 말학末學"
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제이부랑별지賀除吏部郞別紙에서는

"오늘도 먼 지방 사람으로서 중니中尼의 생도라 일컫는다. 썩은 선비의 유도로 들추어내기가 부끄럽다. 재능이 없는 선비가 글을 짓다. 마음으로 천리마의 수레를 잡고 우러러 계하에 추창하며 실로 유종儒宗을 귀히 여기어 은혜를 바라고 덕을 그리면서 애닲은 심정을 이기지 못하겠다"

라고 했습니다. 그는 평소 유자를 자처하면서도 유교와 불교의 성격을 가리켜

"공자는 단서를 발명했고 석씨는 극치에 다다랐다(孔發其端, 釋窮其致). 유·불·선을 관통하는 궁극적 이상과 근원을 도라고 한다. 신이 비록 세속의 티끌에 몸을 얽매었으나 신선의 행장에 뜻을 두어 대성하기를 바라고 상달하기를 기약한지라…이하중략…."

고 했는가 하면, 진감선사 대공탑비문에서는
"도가 사람에게서 멀지 아니하고 사람은 이방이 없다. 그러므로 불교를 할 수도 있고 유교를 할 수도 있다"
라고 했으며 구화수대운사소求化修大雲寺疏에서는

"유교의 좋은 가르침을 거양하여 때를 잃지 않고 상고의 풍風을 일으켜 영원히 대동의 교화를 이룬다"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훗날 왕건에게 다음과 같은 글을 보냈다고 합니다.
"신라는 망하고 고려가 일어선다(溪林黃葉 谷嶺靑松)"

이는 그가 삼교를 회통하고 있음은 물론 미래를 내다보는 경륜까지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훗날 심약沈約은 최치원을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공자는 발단發端을 하였고 석씨는 극치가 된다고 하였으니 참으로 큰 것을 아는 이로써 비로소 그와 더불어 지극한 도를 논할 수 있겠다."

그는 904년 가야산 해인사 화엄원에서 법장화상전을 저술했다고 합니다. 이는 선을 추구하는 중국 화엄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선사들의 생애를 기록한 사산비명四山碑銘에서 불교를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또 그는 대숭복사비명과 지증대사적조지답비명을 통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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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건대 왕자(王者)는 조상의 덕으로 후손의 법을 높인다. 정사는 인을 근본으로 삼고 예는 효를 으뜸으로 한다. 인자(仁者)는 백성을 안정하고 정사는 '도'로써 지도한다. 우리 임금의 효치(孝治)가 완성되었다. 부처님의 덕과 나의 힘이 너를 도우리라.

진실로 중(中)을 잡고 천록(天祿)을 길이 하여라. 드디어 지혜의 횃불을 얻어 빛이 오승(五乘)에 통하고 아름다운 음식 맛이 6경에 배가 불렀다. 다투어 천문(千門)으로 하여금 선으로 들게 하고 능히 인(仁)을 일으켰다. 학자들이 혹 말하기를 인도의 교와 공자의 교를 말하는 것으로 흐름이 나누어지고 체가 달라 둥근 구멍에 모난 나무를 박는 것이라고 하여

서로 모순되어 각기 한 모퉁이만 고집한다. 그러므로 여산의 혜원(慧遠)이 논술하여 여래(如來)와 주공(周公)이 비록 출발은 다르지만 돌아가는 것은 한 가지라고 하니 지극한 이치에 통달하였다. 불의 심법은 현하고 또 현하여(玄之又玄), 이름으로 이름할 수 없고(名不可名), 설하려 하여도 설할 수 없어(說無可說) 비록 달(道)를 얻었다고 하나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잃어버려 마침내 바람을 매고 그림자를 포착하기 어려움과 같다.

그러나 멀고 높은 데로 오르자면 가깝고 낮은 데에서부터 하는 것이니 여기서는 글로 표현한들 무엇이 손상될 것인가?
-------------------대숭복사비명의 글이었습니다.----

서문에서 말하기를 오상(五常)을 방위로 나눌 때 동방을 인(仁)이라 하고 삼교의 명칭을 세워 인도를 불(佛)이라 한다. 인심(仁心)이 곧 불이니 불을 능인(能仁)이라고 지칭하는 것은 당연하다. 동국(東國)에 유순한 성원을 인도하여 달가위(達迦衛)의 자비스러운 교해(敎海)에 통하게 하니 이는 진실로 돌을 물에 던지고 비가 모래를 모으는 것과 같이 쉬운 것이다.

도는 밖이 없는 곳까지 모두 융합했고 정(情)은 가운데까지 거의 지나쳤다. 생각컨대 고요한 물이 비단처럼 잔잔하고 높은 산이 햇빛을 쪼이듯한 사람이 대개 있었지만 세상에서는 이를 알지 못했다. 사랑을 욕되는 것처럼 깜짝 놀리도록 하라고 한 노자의 말이 아무런 저의가 없는 것이 아니고 세상에 나아가거나 물러가는 데 스스로 보존하라고 한 공자의 말이 틀림없는가 한다.
------------------지증대사적조지답비명의 글이었습니다.---

이는 분명 삼교를 회통하는 사상을 드러내는 글입니다. 당시 사람들은 그런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드렸던 것 같습니다. 이를 입증하는 것이 성덕왕 때 '지성至誠'이라는 승려가 저술한 보살조상기菩薩造像記에 기록된 다음과 같은 글입니다.

제자는 성세에 태어나 영광된 벼슬을 역임하고 지략도 없이 겨우 국법을 어기는 일을 면하였으나 본성이 산수를 좋아하고 노자와 장자를 소요함을 사모하고 마음속으로 진종을 존중하여 번잡을 피하고 현숙을 바랐읍니다. 67세에 초야로 돌아가 오천언의 도덕경을 읽으며 명위를 버리고 깊은 산속에 돌아가 십칠지의 법문을 닦고 색공이 다하면 함께 죽으려 하나이다.

(제자리님의 요청으로 분량을 확 줄였습니다. 혹시 그렇게 줄인 글이 이따우로 기냐? 하는 생각이 드시는 분이 계시면, 즉각 댓글 주십시오. 다음회는 그 분량을 더욱 줄여보겠습니다.)

[종아니]

최치원 한석봉, 원효 등 우리 역사를 빛낸 분들의 이야기는 학교 다닐 때 맛을 봤고,,, 난향도 난향이지만 한명과 윤철환 곰보랑 나오는 얘기는 언제 해줄라요..^^.글구 서훈님이 못 보셨을까봐 다시 적는데, 없어진 글 보고싶다면 당장 끌고 오겠습니다..^^서훈님의 댓글 때문에 해우소로 옮긴 건 아니니까요..^^

[서훈]

헐~~~ 그냥 웃자고 논 한 번 했는 데...종아니님껜..넝담도 하기 힘들어요...ㅠ,ㅠ

[종아니]

저도 그냥 웃자고 해우소로 쫓아낸 글 끌어올까요? 하고 물어봤는데...서훈님에게는 넝담도 하기 힘들어요...^^

[제자리]

허걱!! 그래도 제겐 길구만이라. ㅎㅎ 조금 더 줄여 주사이다. 그래야 제 돌머리에도 입력이 쪼까 될 거 같아서리..나이가 드니까니 옛것은 싱싱하게 떠오르고 새것은 자꾸 잊어뿐져서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