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아동문학동인회 이야기>
<은방울> 37호를 읽고
최춘해
내가 교단아동문학동인회 간사를 맡았을 때가 1965년이다. 51년 전 이야기다. 내가 간사를 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인쇄판으로 낸 <은방울> 21호(1965년 7월 1일 발행)와 27호 (1965년 12월 1일 발행) 두 권이 남아 있고, 다달이 냈던 등사판 동인지는 한 권도 없다. 그때 간사는 1년간씩 맡았기 때문에 1966년도에는 대구의 유상덕 회원께 인계를 했다고 생각된다. 내가 간사를 맡고 있을 때 중앙일보 최종율 문화부 기자가 내가 근무하는 상주 사벌초등학교에 찾아와서 교단아동문학동인회에 대해서 취재를 해서 중앙일보 문화 란에 특집으로 전면 기사를 냈었다. 그 시사가 실린 날짜도 모른다. 그때 쓴 일기도 못 찾겠다. 67년 8월 17일에 쓴 ‘은방울 37호를 읽고’라는 글이 남아 있어서 그대로 옮겨 보겠다. 아마 내가 간사를 유상덕님께 인계한 뒤에 유상덕 간사께서 나한테 청탁을 해서 쓴 것 같다.
은방울 37호를 읽고
아직은 자신 있는 작품을 못 쓰기에 남의 작품을 보는 눈도 밝지 못합니다. 간사님께서 특집으로 꾸밀 원고로 37호 작품 평을 해달라는 청탁을 받고 망설이다가 간사님의 청에 순종하기로 했습니다. 둔한 사람의 잡담이라고 생각하시고 잘못 본 점이 있더라도 양해하실 줄 믿고 붓을 들어보겠습니다.
‘편지글 동무’(엄기원)- 모략, 중상, 갈등이 많은 현실에서도 한결같이 어린이만은 착하게 키워보겠다는 숭고한 정신에 머리 숙여진다. 이웃을 사랑하고 동무로 삼고 싶은 마음 ‘편지글 동무’도 그런 인생관에서 태어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곡이라도 붙여 보고 싶다. ‘편지글 동무’보다 ‘잔디밭’을 더 좋게 생각한다.
‘섬 아이’ (옥미조)-‘섬 아이’ ‘금붕어를 바라보며’ 두 작품 다 어린이를 아끼고, 마음에 조그만 상처도 주어서는 안 되겠다는 보드라운, 엄마 같은 마음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작품을 쓰는 정신이나 요리하는 솜씨가 한결같이 자기 세계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
‘가을밤 소리’(이광두)-이 시를 어린이들에게 주었다고 생각할 때 얼마만큼 감동을 줄 것인가? ‘잡힐 듯/ 잡힐 것만 같은 //귓속에만 맴도는/ 내 혼잣소리’ 이 구절에서 분명한 느낌이 다가오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동시는 초등학교 학생만 읽으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요만한 저항과 깊이는 있어야 되리라고 생각한다. ‘가을밤 소리’, ‘9월’ 두 작품 다 37호 작품 가운데 가작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싣고’ (김상문)-한 편 한 편마다 많은 말이 함축되어 있으면서 비약이 심하거나 억지가 없이 이미지를 잘 형상화해 가고 있다. 잔재주를 부리던 동시에서 이만한 품위와 무게를 갖춘 작품이 되어야 하리라고 생각해 본다.
‘기둥고사리’ (김수만)-깊숙한 산골 냄새가 풍기는 작품이다. ‘수줍은 꿈을 꾸는 고사리// 바구니를 메고 오는/ 풋내음 밴 /산골 아이를 기다리는/ 마음’ 순수한 마음이 깃들어 있다. 끝 연에서 너무 안이하게 맺은 느낌이 든다.
‘버드나무’ (손근호)- 초등학교 3,4학년들이 흔히 쓰는 작품이고 또 이런 작품을 어느 지상에서 한 번 읽은 듯하다. 우리 성인 작가가 이런 글을 쓰서 될는지?
‘회전그네’ (박영규)-상이 좀 약한 듯하다. 박영규형의 평소 작품 수준에 못 미치는 작품인 것 같다.
‘모내기’ (위영남)-들이 푸르러 가고 하늘에도 무논에도 흰 구름이 둥둥, 순이 눈엔 흰밥이, 아가 눈엔 엄마 얼굴이 둥둥, 개구리가 신나게 행진곡을 불러주고. 눈앞에 훤히 나타나 보이고 둥둥 북을 치며 희망의 나라를 찾아가는 느낌이다.
‘영희’ (허동인)-콩나물 교실에서도 아이들 얼굴을 하나하나 알뜰히 살피는 교육애를 존경하고 싶다. 작품의 기교에 앞서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허동인의 작품 속에서 엿볼 수 있다. ‘제비’는 작품의 깊이가 좀 약한 듯하다. 허동인형은 한격같이 독자적인 세계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우리 마을’ (이영호)-초가지붕, 실 같은 연기, 끄으름내, 갓난애 칭얼거림, 된장 냄새, 삽살이, 소방울 소리 등 모두 평화로운 농촌의 서정곡이다.
‘운동회 준비’ 박승일-운동회 준비로 온통 법석이 된 운동장을 바라본 작품인데, 그 속에서 운동을 하는 아이의 시리를 그렸으면 어떨까? 박승일형의 평소 수준에 미급한 작품인 듯하다.
‘키’, ‘우리 집 번지’, ‘1억5천만 년 훗날의 아이에게’ (신현득)-‘키’에서도 신형의 독특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흔히들 쓰고 있는 사생 시나 서정시가 아니다. 어떤 근원을 파고들어 작가 나름으로 형상화한 작품이다. 자칫하면 용해되지 않고 무리를 범하기 쉬운 작업인데도 용하게 성공시켜 놓았다.
‘1억5천만 년 훗날의 아이에게’는 오늘 하루 이 시간만 생각하는 게 아니다. 복잡하고 바쁜 현실에서도 1억5천만 년 훗날을 머리에 그려보는 것이다. 오늘 이 시점은 역사 속에 한 순간이라는 걸 생각하고 있다. 임시변통으로 얼버무릴 수가 없겠지요.
‘우리 집 번지’는 우주의 섭리를 노래하고 있다. 옛날에서 현대로 이끌기 위해서는 ‘164번지 안에 편히 누우면 은하계가 열린다.’로 다리를 놓았고, 현대 로켓 세상에서 별나라와 왕래될 미래를 그리기 위해 끝 연에 ‘공전을 하면서 손을 흔든다. 별나라에 164번지에서’라고 노래했다. 이렇게 우주를 들먹거리는 굵은 선이다.
‘비 온 뒤’ (유상덕)-시조를 쓰면서 닦은 시어에 영향을 받아 작품 속에 아름답고 고운 말들이 많다. ‘비 온 뒤’ 속에 ‘퐁 포옹’ ‘무지갯빛 햇살’ ‘조로롱 조로롱’ 등이 그렇고, ‘꽃집’에서도 ‘꽃집’, ‘분 발라 주고 연지 찍어’, ‘꽃 속에 묻히면’, ‘나울나울 노랑나비’ 두 작품 다 서정적이다.
‘느티나무 아래 서서’ (박택종)-누나가 그리울 땐 느티나무 아래 서서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가는 누나의 모습을 그리는 조용한 분위기에 빨려들게 된다. 잘 짜여진 가작이다. ‘누나가 그리울 땐/ 난 곧잘/ 느티나무 아래/ 서 있었다.’를 뒤에 다시 반복했는데, 강조하는 뜻이 있겠지만, 끝 부분을 빼면 오히려 여운이 있지 않을까?
‘선생님 눈 속엔’ (김완기)-도서실 운영이라고 하면 으레 김완기라는 이름이 떠오를 만큼 유명해졌다고 생각된다. 당선된 수기가 아니더라도 어린이를 무척 아껴주는 존경할 교육자라고 믿고 있다. 그러기에 항상 어린이를 떠날 수가 없다. ‘눈만 감으면/ 쏙 쏙/ 얼굴을 내밀고/ 쪼르르/ 달려와/ 매어달립니다.’ 어린이의 편에 서서 어린이의 마음을 그렸으면 더 낫지 않을는지?
‘저녁연기’ (이무일)-이 소재로서는 흠 잡을 데 없이 잘 짜여진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어디 흠이 없나 일부러 찾으려고 해도 찾을 데가 없다. 둥근 식탁에 온 식구가 머리를 맞대고 앉아 저녁 식사를 할 즐거운 기대, 엄마, 아빠 지친 팔 다릴 주물러 드리고 싶어 아직은 일찍하다만 저녁연기를 하는 높이 피워 올리자고 했다. 얼마나 따스한 마음인가. 많은 어린들에게 읽히고 싶다.
‘가물’ (이철하)-가물 때 귀로 들은 것, 눈으로 본 것을 그대로 그려 놓았다. 자기의 주관을 삽입하지 않고 주제를 살리려고 의도적으로 쓴 것 같다. 의도한 대로 성공한 작품이다.
(1967년 8월 17일 탈고)
교단아동문학 동인께 보낸 편지를 옮겨 본다.
신현득 선생께
영전을 늦게나마 축하하네. 권태문 선생을 통해서 강릉 연구 발표에서 박수갈채를 받았다는 소식 듣고 기뻤네. 작품집 관계는 먼저 신 선생께 한 번 상의를 하려는 것이 그만 순서가 바뀌었네. 아직 작품집을 내기에는 작품이 어리다는 걸 알면서 감히 일을 시작하게 된 걸 많이 꾸짖어 주게. 작품이래야 지방지나 교육지 구석에 몇 편 발표된 것과 그 외의 것 50여 편을 추려서 묶을 예정일세. 여름방학 때 김종상 선생, 이천규 선생 셋이 서울 가는 편에 이원수 선생을 뵙고 작품 평을 원했더니 그리 나쁜 평은 아니었고, 작품집을 내게 되면 서문을 써 주겠다고 해서 작품집을 내기로 마음을 먹었네. 원고를 서울 미리온 문화사에 보냈는데, 10월 중순경엔 출간이 된다고 답장이 왔네만 제때에 나올는지는 모르겠네. 참 인사 늦었네. 사모님과 아이들 다 무고한가? 그럼 또 자주 소식 전하겠네.
내내 안녕하시길 빌겠네. 66. 9. 30. 최춘매 드림
박택종 선생님께
너무 오래 동안 소식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이리로 옮겨 온 뒤 먼저 소식을 전해 드리는 것이 마땅한데, 오늘 내일 하고 미루어 오던 중 박 선생님의 편지를 먼저 받고 보니 얼굴이 화끈합니다. 얼굴은 자주 못 대했지만 지상을 통해서 선생님의 체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곳에 온 뒤 백일장 같은 데서 김동극님, 김성도님 등 여러 선배님들을 만났었는데, 박 선생님 칭찬을 해 주시더군요. 여가 계시거든 한 번 놀러 오십시오. 제가 거처하는 곳은 바로 신천초등학교 앞입니다. 운동장과 서로 잇닿은 곳입니다. 앞으로 자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자주 만나길 기대하면서 이만 줄입니다. 66. 11. 19. 최춘매 올림
김종상 선생님께
이젠 벌써 겨울일세. 오버를 입어야겠네. 편지 받은 지가 벌써 근 한 달이나 되었네. 그 동안 무척 원망도 했겠지. 그래 그 동안 잘 있었는가? 사모님도 편하시고 인숙이 대열이 그리고 막내 모두 잘 커겠지. 상영교 숙직실에서 자고 올 때 그 이튿날 아침까지 해 놓고 기다렸다니 너무 황송하네. 경북 백일장 큰일을 치러 내느라 무척 힘들었겠네. 13일자 영남일보에서 상주글짓기회 주최 도내 백일장 입상자 명단을 잘 봤네. 이 발표를 보고 내 속으로 눈물을 머금었네. 무일, 천규, 태문, 세준 그리고 양 교감 이렇게 일곱이 이마를 맞대고 작품 심사를 했을 것 생각하니,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내 혼자만 외톨이 되어 떨어져 나온 감이 들어 마음이 울적했었네. 지금도 모두들 자주 만나겠지. 대구에 가거든 서울에 간 누구처럼 되지 마라라고 하던 그 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있네. 도시 생활에 모두가 낯이 설고 서툴러서 적응이 잘 되지 않네. 내대로 바빠서 편지 자주 못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상주 동인들이 자리 잡고 있네. 중앙일보엔 상영학교 아이들 작품이 자주 실리더군. 역시 대가의 지도력이 남다르다는 걸 느꼈네. 부디 몸조심하고 사모님 속 태우지 말게. 이만 줄이네. 66. 11. 19. 최춘매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