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 있을 때도 마음이 뒤섞이면 아무 데나 손을 뻗어 가로수를 만진다. 날 때부터 거칠고 죽어서도 따듯한 나무의 살갗은 번번이 초면의 행인을 위로한다.
숲을 만나는 방법
세계적인 대문호가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숲에 갔더니 우리 집 뒷산과 다를 게 없었다. 숲을 만나는 방식이 틀렸던 거다. 사진을 찍으러, 관광을 하러 가는 게 숲이라면 우리는 별 볼일 없는 침입자에 불과해진다. 숲은 인간 따위 필요 없는 완벽한 유기체니까. 그래서 숲을 만나는 방법을 다시 생각했다. 자세를 고치니 대단한 세계가 열렸다.
Leave No Trace 흔적 없이 여행하기
최근 등산, 캠핑 붐이 일면서 문득 '숲이 버거워하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뭇가지 꺾지 않기, 쓰레기 버리지 않기 등 유치원 수준의 실천으로 숲을 지킬 수 있을까? 주말이나 휴가 때면 여행객으로 포화 상태가 되는 숲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을까?
그러던 중 전 세계적으로 번지고 있는 환경운동을 발견했다. 바로 LNT(Leave No Trace), 즉 '흔적 남기지 않기'다. 198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우리나라에서는 몇 년 전부터 등산이나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조금씩 퍼지고 있는 중이다. LNT는 인간이 자연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며 여행하는 7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기
구성원을 4~6명 이내로 제한한다. 우르르 몰려다니다 보면 훼손이 더 쉬운 법. 구성원이 많다면 작은 그룹으로 나누는 것도 방법이다.
음식은 쓰레기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한다. 먹고 남은 음식물 쓰레기는 반드시 되가져온다. 찝찝하다는 이유로 흙 속에 묻기도 하는데 썩어서 퇴비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지도와 나침반을 이용하자. 산악회에서 등산로에 묶어놓은 리본들은 등산객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하지만 이 또한 흔적을 남기는 일이다. 또 돌탑 쌓기, 나무에 색칠하기, 깃발 설치 등은 흔적 없는 여행에서 경계해야 할 일들이다.
견고한 지면이란 확실한 탐방로, 야영지, 바위, 자갈, 마른풀 또는 눈 위를 말한다. 기존에 조성된 탐방로와 야영지를 사용해 자라고 있는 식물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 특히 텐트는 작고 가벼운 것일수록 땅과 식물에 주는 피해가 적다.
호수와 계곡으로부터 약 60m 이내의 야영을 피한다. 자칫 물을 오염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쓰레기와 남은 음식물은 물론 가지고 간 물건은 '모두' 가지고 와야 한다. 숲 속에 버린 쓰레기를 대신 치워줄 사람은 없다. 배설물은 식수, 야영지, 탐방로에서 약 60m 떨어진 곳에 15~20cm가량의 구덩이를 파 그 안에 묻는다. 발효가 되지 않아 썩거나 암모니아의 영향으로 나무에 피해가 갈 수 있다.
숲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다. 빈틈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루며 생명이 숨 쉬고 있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작은 하나라도 따로 움직이게 되면 생태계는 조금씩 파괴될 것이다.
모닥불은 숲에 오랜 시간 영향을 끼칠 수 있으므로 경량의 스토브로 요리하고, 등불을 이용해 불을 밝히자. 단, 허락된 곳에서만 준비된 화로를 사용할 수 있다. 또 절대 맨 바닥에 불을 피우는 일이 없어야 한다.
현지에서 땔감을 구해야 한다면 손으로 꺾을 수 있는 나무토막을 사용하자. 그리고 불을 끈 후에 땐나무와 숯은 모두 재로 만든 다음 식은 재들을 분산시켜 완벽하게 정리한다.
야생동물을 따라가거나 가까이 가서는 안 되고, 음식물을 주어서도 안 된다. 이러한 행동은 야생동물의 자연적 습성을 바꾸고 그들의 건강을 해치게 될지 모른다. 특히 번식기, 둥지 짓기, 새끼 키우기 또는 겨울나기와 같은 민감한 시기에는 야생동물을 피하는 것이 좋다. 숲에서 만나는 동물들의 삶을 존중해준다.
큰 목소리와 소음을 내지 말자. '야호' 소리도 다른 이에게 소음이 될 수 있다. 숲 속에서는 사람이 아닌 자연의 소리가 우선이다. 산에서 무거운 짐을 든 사람과 만나게 된다면 내리막길 편에 서서 상대방에게 길을 양보하자.
Backpacking Light 걷자, 가볍게!
숲을 여행하는 가장 보편적인 방법은 '걷기'다. 제주도부터 지리산까지 우리나라의 모든 땅은 다양한 난이도의 걷기 코스로 이루어져 있다.
도보 여행의 방해꾼이 있다면 바로 무거운 가방이다. 여행 전날 불필요한 물건들을 잔뜩 챙기며 이삿짐을 싼 적은 없는지, 그 물건들 중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은 없었는지, 배낭의 무게를 줄이면 쓰레기를 줄여줄 뿐 아니라 체력 부담이 줄어들고 그만큼 자연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 무엇보다 '흔적 없이 여행하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실천할 수 있다.
어느 할머니의 지혜로운 하이킹
가방가벼운 하이킹의 본보기가 될 만한 사람은 바로 67세에 하이킹 생활을 시작한 엠마 게이트우드(1888~1973)다. 그녀는 3,500km에 달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3회 종주한 전설적인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여성 단독, 최초의 쾌거이기도 하지만 그녀가 전설이 된 이유는 따로 있다. 게이트우드 할머니는 직접 만든 헝겊 자루에 몇 안 되는 가재도구를 넣고 미국 전역의 수많은 트레일을 종주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식량과 물을 포함한 짐의 무게를 9kg 이하로 제한해 4개월을 쉬지 않고 걸을 수 있었다고 한다. 짐의 무게를 줄이는 것이 체력을 효과적으로 안배하며 오래 걸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인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2000년대에 들어 백패킹(Backpacking : 1박 이상의 야영 생활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떠나는 등짐 여행)을 즐기는 사람들 사이에서 경량 백패킹, 즉 BPL(Backpacking Light)이라는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았다.
간소한 차림으로 자연과 만나다
배낭을 가볍게 하면 무릎과 허리, 발목에 부담이 줄어들고 걸음걸이에도 여유가 생겨 험한 길도 무난히 걸을 수 있다.
반면 무거운 배낭은 무의식적으로 편한 땅을 찾게 하고, 이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게 할 수 있으며 트레일을 필요 이상으로 넓히게 된다. 같은 기능이라면 짐을 꾸릴 때 작고 가벼운 물품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 무겁고 부피가 큰 일반 수건 대신 흡속건을 챙기자.
두껍고 딱딱한 밑창의 하이컷 등산화 대신엔 가벼운 로우컷 신발을 고른다. 하이컷 신발은 바위 능선이나 얼음 위에선 발목과 발바닥을 고정시켜줘 이롭지만, 가볍고 부드러워 땅을 덜 손상시키는 로우컷 트레일 러닝화로도 평지는 물론 웬만한 산을 오르내리는 데 문제가 없다.
1박 이상의 야영에서
배낭 무게를 줄이는 방법 10kg이 넘는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하이킹은 이제 그만! 울트라 라이트 하이커의 기본 배낭 무게는 필수품(물, 식량, 연료 등)을 제외하고 약 4.5kg(봄, 가을 기준)이다. 뉴스펀딩의 독자들도 도전해보시길.
1. 모든 물품의 무게를 파악하자.
직접 무게를 달아보면 어떤 물품들이 배낭을 무겁게 하는지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무게를 맞출 수는 없다. 마치 다이어트를 하듯이 조금씩 줄여나간다.
2. 무거운 것부터 감량하자.
3대 품목(배낭, 쉘터, 침낭이나 매트)의 무게부터 줄여라. 3대 품목 무게 합계가 2.5kg~3kg이 목표! 취사도구와 식량, 물도 감량 여지가 많은 품목이니 필요한 만큼만 챙기자.
3. 장비를 다용도로 사용하자.
다운재킷을 침낭과 조합해 침구로, 레인판초를 배낭커버와 타프로, 발포매트를 등판 없는 가벼운 배낭에 말아 넣어 프레임 겸 등판 패드로 사용해 보자.
4. 자신의 능력과 여행지의 상황을 파악하자.
능력이 부족하면 장비로 보완하고, 여행지의 상황에 따라 장비를 가감하라. 단, 지나친 경량화는 경계할 것.
나 홀로 캠핑!
캠핑은 늘 누군가와 함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좋은 사람들과 밤새 고기 굽고 술잔을 기울이거나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는 것이 캠핑 낭만 그 자체니까. 하지만 좋은 술도 자꾸 마시면 질리는 법. ‘오롯이 자연에 동화되고 싶어! 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구’ 또는 ‘시끌시끌한 캠핑에 지쳤어’라는 생각이 들면 혼자 떠난다. ‘나는 고독한 캠퍼’라는 약간의 허세까지 더해지면 이유는 완벽하다.
여자 혼자 숲으로 캠핑을 간다 하니 다들 한마디씩 묻는다. 집을 그대로 옮겨 놓는 오토캠핑은 짐이 차 트렁크 한 가득이라 솔직히 혼자서는 벅차다. 요즘엔 백패커를 위한 작고 가벼운 장비가 많이 나와 있으니 미니멀한 장비를 준비하면 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텐트와 매트, 침낭. 다른 건 다 포기해도 이 세 가지는 필수다.
그 외 코펠, 버너, 랜턴, 물, 음식. 이것만 있어도 먹고 자는 데는 문제 없다. 조금의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꼭 필요한 것만 가져간다면 5~60l 배낭에 10kg 미만으로도 가능하다.
아무도 없는 숲 속에 혼자 텐트치고 자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함께 있는 캠핑장으로 간다. 주변 텐트에서 들려오는 이런 저런 소리들에 생각만큼 고요하지는 않다. 소형 스피커를 준비해 옆 텐트에 방해되지 않을 정도의 음악을 틀어 분위기를 업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무섭다 생각지 말고 잔잔함을 즐겨보자. 정 무섭다면 옆 텐트 사람과 말을 터놓자. 마음이 잘 맞으면 저녁에 함께 맥주 한 잔 기울이게 될지도.
텐트는 남자가 치는 거 아냐? 한 번도 쳐본 적이 없어서
텐트는 남자 담당이라고? 절대 그렇지 않다. 평소 어깨너머 본 기억을 더듬어 혼자 텐트 치기에 도전해 보자.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최대한 설치가 쉽고 작고 가벼운 알파인 텐트류를 추천한다. 색깔도 알록달록 귀엽다.
텐트마다 조금씩 설치 방법이 다르지만 보통 폴대를 펼쳐서 텐트에 끼우기만 하면 된다. 혼자 자는 크기의 텐트는 여자도 10~20분이면 충분히 칠 수 있다. 텐트 설치 전 동영상을 찾아보거나 한강에서 연습 삼아 미리 쳐보면 좋다.
해가 뜨고 지는 방향을 고려해 출입문의 방향을 정한 후 먼저 바닥의 습기와 오염을 막아줄 그라운드시트를 깔고, 그 위에 이너텐트를 친 다음 플라이를 씌운다. 혹시 비가 올 경우 텐트 월이 축 늘어져 젖은 플라이가 이너텐트에 습기를 전할 수 있으니 스트링을 탱탱하게 당겨주자. 각 잡힌 텐트가 보기에도 좋다.
걱정이 많으면 아무 것도 못한다. 요즘은 많은 캠핑장에 온수 나오는 샤워장이 딸려있다. 물론 전기도 사용 가능하다. 하지만 캠핑까지 가서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아침에 드라이로 머리 말리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하루쯤은 씻는 것을 과감히 포기하고 모자로 버텨보면 어떤가. 평소에도 가끔 안 감지 않나.
다만 잠자리는 정말 중요하다. 평평한 곳을 잘 골라 텐트를 설치해야 한다.(데크면 더 좋다) 바닥에는 쿠션감이 충분한 발포매트나 에어 빵빵한 자충매트를 깔면 등이 배겨서 못 자는 일은 없다.
혼자 가서까지 숲에서 냄새 피우며 삼겹살을 굽고 싶진 않다. 간단히 소시지를 구워먹거나 야채와 계란, 베이컨을 넣어 샌드위치도 만들어 먹는다. 시중에 파는 가루로 된 스프를 챙겨가면 웬만한 카페 브런치 부럽지 않게 한 끼 식사를 차릴 수 있다. 재료는 1인분 분량을 따로 담아 가는 것이 좋다. 간단한 재료와 조리 방법으로 딱 먹을 만큼만 준비해 먹으면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
"자연과 함께하니 외롭지 않아요"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았겠지만, 천만에! 미치게 외롭다! 외로움도 즐겨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나는 아직 내공이 부족해 외로운 게 즐겁지 않다.
하지만 혼자 떠나보니 알겠더라. 늘 옆에 있던 이의 소중함을. 그리고 무엇보다, 무엇인가 혼자서 한다는 것은 그 행위에 집중하게 하는 힘이 있다. 숲과 나 자신을 더욱 세세하게 살피는 하룻밤이 될 것이다. 외로움을 사서 느끼는 데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
먹고 자다 보면 시간 잘 간다. 숲 속이니 피톤치드 쭉쭉 흡입하며 잠도 잘 잔다. 태블릿으로 영화도 본다. 혼자 잘 노는 법 따위는 없다. 그냥 집에서 혼자 하던 거 하면 된다. 그러다 지겨울 때쯤이면 바람소리,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 지저귀는 새 소리도 들린다. 숲에서는 무엇을 굳이 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