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 하중동의 관곡지가 우리나라 최초의 연꽃 전래지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물왕저수지와 갯골생태공원 등과 연계한 관광벨트를 만들어 수도권 시민들의 주말 휴식공간 및,
관광명소로 가꿀 계획인 관곡지,
연꽃은 절정이 지났지만 각종 수련도 피고 가시연도 이제 막 피어
그 두터운 베일속에 가리운 고운 색감을 보이고 있었다.
아쉬운 것은 주차장이 따로 없어 도로에 차를 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조금만 가면 물왕저수지가 나오고 멋진 라이브 카페들이 많아
관곡지를 돌아본 후 들려볼만하다.
**관곡지의 유래:
관곡지는 조선왕조 전기의 명신 강희맹(姜希孟, 1424 ~1483)과 인연이 깊은
530여년 된 유서 깊은 연못이자,
중국에서 채취해 들여온 연꽃 씨가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재배돼
전국으로 연꽃을 확산시킨 연꽃 전래지이기도 하다.
강희맹은 조선왕조 세종 때의 진주 출신으로 경사(經史)에 밝고 문장이 뛰어나
신숙주 등과 함께 세조실록’을 편찬했으며 이조판서와 좌찬성 등을 역임했다.
세조 9년(1463년) 중추원 부사로 진헌부사가 되어 명나라에 사신으로 간 강희맹은
그곳에서 처음 본 연꽃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남경에 있는 전당지(錢塘池)라는 연못에서 연꽃 씨를 채취해 갖고 돌아왔다.
이 연꽃 씨앗은 강희맹의 사위이자 사헌부감찰을 지낸
권만형의 집 옆 관곡지라는 연못(지금의, 시흥시 하중동 208)에서
처음 재배돼 나라 전역으로 널리 퍼져나가게 된 것이다.
조정에서는 이를 계기로 세조 12년(1466년)부터 당시 관곡지가 소재한 안산을
연성(蓮城)이라는 별호로 불렀으며,
여섯명의 관곡지 연지기를 두고 이들에게는 각종 부역과 포세, 양곡세를 면제해 주었다고 한다.
지금의 연성동 동명과 시흥시의 향토문화제인 연성문화제 명칭,
시흥관내의 연성초등학교·연성중학교 등의 교명은 이같은 안산 별호에 연유한다.
정조 21년(1797년)에는 정조가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묘소 화성 현릉원을 참배하러 가는 행능길에
안산 관아에서 유숙하면서 이 지방 관내의 선비들을 대상으로 과거를 실시하게 됐다.
이때의 과거 시제가 ‘연성(蓮城)’이었다. 강희맹이 사신으로 중국 남경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전당에서 붉은 연꽃 씨를 채취해 온 사실을 시로 쓰라는 시험인 것이었다.
그만큼 임금까지도 관곡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다는 증거다.
연꽃은 흔히 불교를 상징하는 꽃으로도 알려지고 있다.
못 속의 더럽고 탁한 흙탕물 속에서 자란 연꽃은
그 더러움에 젖지 않고 세속을 초월한 듯한 청아함과 고결한 모습으로 피어난다.
이는 불자(佛子)가 세속에 처해 있어도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고 아름다운 성불(成佛)로
꽃처럼 피어나야 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상징한다.
아울러 보살은 홀로 자신의 안락을 위하여
열반의 경지에 머물지 않고 중생의 구제를 위하여
온갖 죄업과 혼탁함이 있는 사바의 세계로 뛰어드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연꽃은 꽃이 핌과 동시에 열매가 그 꽃 속에 자리를 잡는다.
꽃은 열매의 결과인 것이다.
관곡지옆 이집은 사유지로 안동권씨의 종손집
첫댓글 시흥관곡지에 이런 연꽃 핀곳이 있다네 한번 가봐야 되겠네
정말 멋있다 시흥 어디에가 이런 멋진곳이 있다냐 구경가보았으면.....
너무아름답다 그말만 할수있을뿐 가보고싶다 언제쯤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