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쪽 중앙에서 보니 몇 겹의 원주가 제일 앞에 있는 원주만 보이도록 완벽한 기하학적 작품이다.
알렉산드리아에서 가져온 오벨리스크 앞에서 모이기로 하였는데, 소나기가 쏟아진다. 어쩔 수 없이 오른쪽 회랑 끝부분으로 피하여 기다렸다.
다음은 쇼핑. 조그마한 기념품 가게에서 로마에 온 기념으로 탁자에 놓을 수 있는 원형 콜로세움 조각판을 10유로에 샀다. 우리가 가는 가게에는 한국인 종업원이 꼭 있어서 불편하지 않다.
저녁식사는 한식이란다. 외국에서 먹어보는 한식은 어떨까? 궁금하다.
40여분 달려서 한국식당에 도착하였는데 일반인은 받지 않고 오직 단체 관광객만 받는 그런 식당처럼 꾸며져 있다. 된장찌개가 메뉴다.
맛이 별로였다.
아마도 한국을 떠난지 이틀밖에 되지 않아서, 그런가 보다. 아니면 그 집 음식이 맛이 없던지. 확실히 모르겠다. 식사후 전직 가이드라는 남자(역시 성악전공)가 들어와서 올리브로 만든 비누를 설명하고 선물용으로 사라고 한다. 상당히 비싼 것 같은데 몇몇은 산다.
관광 첫날인데도 밤에 잠을 설치기 때문인지 무척 피곤하다.
[이태리여행 둘째날- 피렌체]
어제 밤은 천둥번개가 치고 비가 매우 많이 오는 것 같았다. 내일 관광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하고 걱정을 많이 하였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날씨가 맑아지는 것 같다. 유럽날씨는 우리의 여름이 건기(乾期)이고 가을 겨울이 우기(雨期)라고 한다. 오늘은 6시반, 7시반,8시반 작전이다.
아침식사후 가방을 챙겨서 호텔앞에 나서니 대형버스가 와 있다. 오늘부터는 로마를 떠나기 때문에 대형버스로 이동하게 되어 있다.
버스기사는 20대 초반의 그러나 30대 중반쯤 되어보이는 '쥬세페'라는 뚱뚱한 청년이다. 인상이 꽤 좋다. "본 조르노 쥬세페" 쥬세페도 역시 "본 조르노"
현지 가이드는 어제와 같은 유학생. 목소리도 좋지만 다정하고 재미있게 진행하는 모습이 아주 친밀감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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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로 접어 들었다.
박정희대통령시절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할려고 할 때, 지형이 비슷한 이탈리아의 고속도로를 보고 와서 그대로 만들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독일의 아우토벤을 견학하였는데, 우리나라 지형과 너무 맞지 않아 이탈리아를 택했다는 이야기다.
고속도로를 한참 달리는 동안에도 고속버스는 보이지 않는다. 관광버스와 소형 승용차 뿐이다. 유럽은 기차가 발달되어 고속버스가 없다고 한다. 그리고 관광버스들의 속도가 시속 100km를 넘지 않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버스에 운행을 자동기록하는 전자 칩이 있어서,교통경찰이 현장에서 적발하지 않아도, 그 칩만 체크하면 위반내용을 언제든지 확인할 수가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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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자연히 속도를 지킬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좋은 시스템인 것 같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수도권의 일부 톨게이트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관광버스들은 톨게이트를 정차하지 않고 바로 통과한다.
즉 하이패스 시스템을 운용하는 것 같다. 이것 역시 이태리에서 도입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 하나 특이한 것이 차량들이 전부 대낮인데도 전조등을 환히 밝히고 운행한다는 사실이다. 이태리 뿐만아니라 유럽전역에서 시행하고 있단다. 교통사고예방에 좋은 결과를 얻고 있다고 하니 우리도 빨리 도입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니 주위의 집들이 전부 산(거의 100~200m의 구릉) 위에 지어져 있다. 가이드가 "왜 그럴까요?"하고 퀴즈를 낸다. 맞히는 사람에게는 포도주 1병 약속. 여러가지 답이 나왔으나 정답은 전염병 예방 목적이란다. 격리효과는 거둘 수 있을 것 같다. 한 때 유럽은 페스트(흑사병) 때문에 많은 인원이 사망을 하였다.
산위에 집을 지으면 외적의 침입때에도 좋은 방어수단이 될 것 같다.
색다른 풍경이다. 그리고 마을마다 제일 꼭대기에는 성당이 있다. 성당보다 높게 지을 수 없는 관습이 있었나 보다. 좌우의 구릉지대에는 경사면에 포도밭과 양들을 키우기 위한 목초지가 펼쳐진다. 피렌체가 위치한 토스카나주(州)는 가죽제품이 유명하다. 그러고 보니 '토스카나'라고 많이 들어본 것 같다. '토스카나'라면 어린 양의 가죽으로 만든 제품을 우리들은 '토스카나'라고 하지않은가!! 토스카나라는 말이 이 지역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구나!!
그 만큼 가죽제품중에서도 명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모두 몇 대(代) 혹은 수십 대 동안 가업으로 이어져 내려오기 때문에 자긍심과 기술적인 노하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가죽제품은 비를 맞아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한다. 가죽을 가공할 때 수공으로 가죽을 두드려서 압축하기 때문에 방수가 된단다.
약 3시간정도의 거리를 달리기 때문에 가이드의 이야기는 끝이 없다. 피곤할 텐데!
토스카나지역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탈리아 남부지방에서는 명품가구가 많이 생산되는데, 이태리는 젊은이들까지도 몇 대 조상들 때부터 사용하던 가구를 대대로 물려받아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랑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유럽에서는 오래된 것을 귀하게 여기는 모습들이 보기에 좋다. 그것은 그만큼 오랫동안 사용해도 끄덕없다는 것, 즉 품질이 그만큼 좋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가 포도주하면 프랑스를 떠올리는데, 유럽사람들은 이태리산을 즐겨 찾는단다. 질 좋은 포도는 이태리에서 생산이 많이 되고 따라서 좋은 포도주도 생산되는데, 마케팅면에서는 프랑스에 뒤지기 때문에 우리들은 포도주하면 프랑스를 떠올리는 것이다. 일부의 이태리산 포도는 프랑스로 가서 포도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또 일부는 이태리 포도주가 프랑스로 건너가 프랑스제로 팔리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태리의 기후조건이 여름에는 비가 아주 적고 햇볕이 강하여 40도이상으로 고온이기 때문에 당도가 높아 포도 재배로는 최적지인 것이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집에 전화를 하였다. 그동안 전화카드를 사용할 지 몰라서 못하였는데, 카드 뒷면을 자세히 보니 사용방법이 잘 설명되어있다. 큰 딸 숙주가 전화를 받는다. 여기 시간이 오전 10시 20분이니, 한국시간으로는 오후 5시 20분이다. 몇 일만에 통화를 하게되니 반가웠다. 아내가 전화를 받아서 '우리는 재미있게 구경 잘하고 있으니, 밥 잘 챙겨먹고 있으라'는 당부를 한다. 전화를 하고 나니 마음이 가벼워 졌다.
가이드의 설명은 계속된다.
지역간 갈등은 여기에도 있다고 한다. 갈등의 종류가 우리와는 다르지만......
이태리는 북쪽과 남쪽의 갈등. 북쪽지방(중부이북) 피렌체, 베네치아, 밀라노등에서는 높은 수입(1인당 약 40,000불)을 올려서 많은 세금을 내는데, 로마이남의 남쪽지방사람들은 놀고 먹으면서(1인당 6,000불이하의 수입) 수익을 가로채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 때는 남쪽에 공장이 없어서 그런가 하고 여러가지 특혜를 주어서 공장을 유치했는데 몇 년 지나지 않아서 다시 북부지역으로 공장을 철수하더란다. 직원들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사람들은 나라를 둘로 나누자하는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피렌체에 거의 다 온 것 같다. 30분이면 도착한다.
피렌체에대한 설명을 이어간다. 피렌체는 르네상스를 꽃피운 도시이며, 이곳에서 태어나서 배출해낸 유명한 인물로는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로, 단테, 마키아벨리, 갈릴레이 갈릴레오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고, 그들이 성공하기까지 메디치라는 유명한 가문의 후원에의하여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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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는 외곽의 도로옆에 섰고, 거기서 우리는 내려서 걸어들어갔다.
어제부터 역시 소매치기를 주의해야 한다고 내릴 때마다 당부하는 가이드의 이야기를 들으며 걸어들어갔다. 300m 정도 걸어가니 광장이 하나 나왔다.
이름하여 시뇨리아광장.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이따가 시간을 줄 테니 그 때 찍고 우선 식당으로 가자고 하였다.
사이 길을 얼마쯤 가니, 조그마한 식당이 나왔다. 이곳에는 큰 식당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스파게티와 함께 돼지고기 스테이크와 감자등이 나왔다.
그리고 가이드가 내는(?) 포도주 한 병- 퀴즈를 맞혔기 때문에. 돌아가며 조금씩 맛을 봄. 포도주와 곁들여 먹으니 더 향취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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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후 우리는 "신곡" 의 저자인 단테의 생가를 방문하였다.
공사중이어서 한 쪽은 가리개가 쳐있었다. 평범한 집이다. 그 앞에는 단테와 베아뜨리체가 사랑을 나누었다는 조그마한 성당이 있었다.
단테는 피렌체 태생이지만 반대파에 몰려 타향생활을 하였고 결국은 타향에서 외롭게 죽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죽으면서도 나를 피렌체에 묻지 말라고 하였고, 그 뒤 피렌체 사람들은 사죄하는 뜻으로 피렌체에서 경비를 대고 단테의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300~400m 쯤 갔을까? 굉장한 건물이 보였다.
산타마리아델피오레성당, 즉 "꽃의 성모마리아"성당이었다. 100m가 넘는 높이의 돔형 예배당과 80m가 넘는 지오토 종탑, 8각형의 산 지오반니 세례당.......
그 웅장함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전통적인 로마네스크 건축기법으로 지어진 피렌체의 두오모(제일 큰)성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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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네스크 건축기법은 예배당, 종탑, 세례당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예배당 안에 들어가보니 전체적으로 어두웠다.
창문이 있어야할 자리에 성인들의 조각품이 놓여져 있어 창문의 수가 적었고, 창문이 있어도 스테인드그라스로 되어있기 때문에 어두울 수 밖에....
산 지오반니 세례당의 전면 문은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고 불렀다 한다.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아래 부분은 색이 많이 퇴색되어 있었다. 아마도 사람 들의 손길을 타서 그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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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뇨리아광장으로 다시 와서 자유시간을 가졌다. 사진도 찍고 아르노강과 베끼오다리까지 구경하고 20분후에 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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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200m 옆에 아르노강이 있었고, 거기서 300m앞에 베끼오다리가 보였으나 직접 가 보지는 못하였다.
지금은 보석가게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있어서 다리위에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없다고 한다. 중앙부위만 바깥을 볼 수 있게 공간으로 되어있는 것이 보였다.
시뇨리아광장으로 오는 길에 우피치미술관을 지나게 되어있는데 미술관 앞에는 가운을 입고 얼굴에는 백색 칠을 한 삐에로가 마치 동상처럼 서있다가 가끔 움직이며 사람을 놀라게 한다.
여행자들중에 경비가 떨어지면 여기서 경비를 마련하기 위하여 이런 일을 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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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뇨리아광장에서 반경 500m내에 베끼오궁전, 우피치미술관, 산타크로체성당, 산타마리아델피오레성당, 단테생가등 피렌체의 유명 유적지가 몰려있다.
시뇨리아광장은 중세의 길드의 장(長)들이 모여서 회의를 하고 의사결정을 하였던 장소이다.
베끼오궁전은 현재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앞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다윗)상의 모조품. 바다의 신 넵투누스의 상, 메디치동상등이 배치되어있다.
산타크로체성당에는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마키아벨리등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시간관계로 미켈란젤로 광장에는 올라가 보지 못하였다. 거기서 보는 피렌체의 전경도 볼 만하다고 하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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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가이드와 아쉽게도 여기서 작별하고 쥬세페의 버스에 다시 올랐다. 베네치아까지는 족히 4시간은 가야한다.
고속도로 중앙분리대 중간 중간에 숫자가 써져 있다. 191, 192, 193.....
이것은 출발지에서의 거리가 아니라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는 다리의 고유번호라고 한다. 사고가 나서 경찰이나 구급차가 출동을 할 때에도 몇 번과 몇 번 사이라면 쉽게 찾아간다고 한다.
고속도로 양편에는 그야말로 대평원이 펼쳐져 있다. 버스로 두 시간이상을 달리는 동안 계속되는 대평원이다. 이탈리아에도 산이 많은데(전국토의 70%- 우리와 비슷하다) 이런 대평지가 있구나!! 거의 포도밭 아니면 해바라기밭이다. 이곳에서는 포도, 올리브기름 뿐만아니라 해바라기씨를 기름으로 만들어 파는 것도 유명하단다.
에피소드 하나 소개하자면 여기의 해바라기는 해를 향하는 것이 아니라 해를 피한단다. 우째 이런 일이! 해가 너무 따갑기 때문이라는데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그러면 왜 '해바라기'인가 '해피하기지'.....
저녁 8시가 되어서야 호텔에 도착하였다. 포인트호텔. 베네치아가 아니고 베네치아에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시골이었다. 여덟시가 넘었으니 모두들 배가 고팠다. 식사는 호텔에 짐을 올려놓은 후 바로 내려와서 마을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시골이어서인지 식당이 꽤 커 보였다. 몇 몇 테이블에는 마을 노인들과 젊은이들이 따로 따로 앉아 식사를 하고 있다. 거의 큰 피자를 한 판씩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도 피자를 먹나보다 하였는데, 다른 음식이 나온다. 독특한 향의 소스와 올리브유를 넣은 야채, 비프스테이크등이고 피자는 한 조각만 준다.
이곳의 피자는 오븐에 구은 것이 아니고 화덕에 직접 구은 것이어서 밑은 약간 탄 채로 나온다. 맛은 느끼하지 않고 괜찮은 것 같은데 일부의 사람들은 실망하는 눈치다. 전에는 피자 한 판씩 시켰는데 손님들(유럽관광객은 주로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기때문에)이 반도 못 먹고 남기는 바람에 식당에서 기분나빠하여서 그 뒤로는 한 조각씩만 준다고 하였다. 자신이 만든 피자가 제일 맛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다보니 그런가??
늦은 식사를 마치고 내일의 일정을 기대하며 잠자리에-
[이태리여행 셋째날- 베네치아, 밀라노]
오늘은 베네치아와 밀라노까지 관광을 해야 하기때문에 바쁜 일정이 될 것 같다.
포인트호텔에서 8시 40분쯤 출발하여 베네치아로 향하였다. 베네치아까지는 약 1시간 반이 소요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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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토주(州)의 주도(州都).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의 무대인 베네치아. 고리대금업(좋게 이야기하면 금융업)이 많이 성행하였던 지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베네치아에대한 나의 사전 지식은 섬이 아니고 해안도시였다. 해안의 일부지역이 곤돌라를 교통수단으로 이용한 것으로 잘못 생각했었다.
베네치아는 118개의 섬으로 이루어지고 400여개의 다리가 있다고 한다. 물길이 가는 블록 하나 하나를 섬으로 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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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에 다가가자 아드리아해가 펼쳐진다.
어제부터 운전기사 쥬세페는 칸소네를 계속 들려준다. 이태리여행을 하면서 칸소네를 들으니 그 맛이 더욱 감미롭다.
베네치아를 둘러싸고 있는 바다를 석호(潟湖)라고 하는데 석호는 해류 ·조류 ·하천 등의 작용으로 운반된 토사가 바다의 일부를 폐색함으로써 바다에서 호소(湖沼)가 떨어져 나오거나, 해안 가까이에서 바람이 모래를 운반하여 호소와 바다를 분리하며 이들 호소는 수심이 얕고 바다와는 모래로 격리된 데 불과하므로, 지하를 통해서 해수가 섞여드는 일이 많아 염분농도가 높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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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롱게토 선착장에 현지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한국의 유명한 코미디언 백모씨의 사촌이라나, 아무튼 친척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좀 독특한 인상의 가이드라고 생각된다. 헤어스타일하며, 말씨하며, 빨간 운동화하며 .....
선착장에는 이집트 터키쪽 크루즈여행을 위한 호화 여객선이 위용을 뽐내며 정박해 있다.
선착장에서 일반 여객선(수상 버스)을 타고 20~30분쯤 갔다.
여기가 베네치아다.
가이드의 안내가 시작되었다. 자신은 원래 빨간 우산을 들고 안내하였는데, 얼마전 안성기씨가 커피 광고를 찍는데 안내하다가 우산을 잃어버려서, 빨간 운동화를 신고 안내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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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앞으로 빨간 운동화를 보고 따라오라고 우스개 소리를 한다. 그리고 여기서는 나만 따라오면 소매치기 걱정을 안해도 된다나! 자신을 잘 알기 때문에 소매치기들도 피한다고 한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어린이 2명을 조교로 임명하고 베네치아 지도를 양쪽에서 들게 하고 설명을 하는 폼이 정말 코미디언처럼 웃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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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를 가로질러 가운데로 S자 운하가 있다.
선착장에서 산 마르꼬광장으로 가는 길에 베네치아에서 제일 넓은 길(광장을 제외하고)이라며 소개하는 길은 너비가 한 3m도 안 될 것 같은 골목길이다.
한참동안 걸어가다가 아치형 다리가 안쪽으로 보이는 자리에 서서 퀴즈를 낸다. 왼쪽은 옛날 베네치아공화국 총독이 살았던 두칼레궁인데 아치형 다리로 이어진 오른쪽 건물은 무슨 건물일까요?
여러가지 대답이 나왔으나 정답은 감옥.
그리고 가운데의 아치형 다리는 "탄식의 다리"란다. 중형을 선고받은 죄인이 감옥으로 가기 위해서 다리를 통과하다가 가운데 있는 조그만 창으로 밖을 보면서 이제 다시는 저 세상을 볼 수 없구나! 하며 탄식을 하였다는 이야기다.
저 유명한 카사노바도 여기에 수감되어 있다가 탈옥을 하여서 감옥 가까운 다방에서 여자를 만났다고 한다. 그 배짱은 역시 카사노바가 아니면 누구도 흉내내지 못 할 것이다.
산마르꼬광장에 들어서니 많은 비둘기가 모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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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 설명에 따르면 그 비둘기들은 공무원이란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저녁에 퇴근을 한단다.....
광장 정면에는 지금까지 보아온 건물과는 상이한 분위기의 성당이 있다.
산마르꼬성당.
지금까지 보아온 성당은 로마네스크양식의 성당이었으나 산마르꼬성당은 비잔틴양식이 많이 접목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화려한 색상과 모자이크 방식의 벽면....
웅장하지는 않지만 세밀하고 화려한 건축물인 것 같다. 마르꼬성인을 기리기 위한 성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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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앞에는 높이가 99m에 달한다는 대종루가 있다.
30분마다 1 번씩 종이 울린다고 하는데 나는 듣지 못한 것 같다. 종루에 오르면 멀리, 세계적인 휴양지로 유명하고 '베니스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섬"과 유리공예품으로 유명한 "무라노섬"이 보인다고 하는데 우리들은 올라가 보지도 못하고 밑에서만 구경.
바포레토(수상버스)를 타고 15분정도면 갈 수 있다고 한다.
비둘기들은 모이를 주는 사람들의 손에, 어깨에 친근하게 올라 앉는다. 처음에는 거북스러웠으나 이내 괜찮아졌다. 모이는 한 봉에 1유로. 아마도 비들기의 수가 몇 천마리는 될 것 같다.
좁은 골목길을 헤치고 들어가니 곤돌라를 타는 곳이 있었다. 간판도 없이 몇 대의 곤돌라가 승객을 태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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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이 모두 스물 한 명이니 5명씩 3대, 6명 1대로 관광. 배의 폭이 좁아서 약간만 움직여도 배가 흔들렸다.
뱃사공(?)은 배의 뒷부분에 올라서서 능숙하게 배를 몰았다. 거리가 얼마나 될까? 약 30분 가량 곤돌라를 탔던 것 같다. 지나가는 배들에 '차오'하고 인사를 ....
좁은 수로를 통하여 운항할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좁은 수로는 약 40m가량되고 바로 폭이 넓은 S자 대운하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버린다.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다.
점심은 중국식. 중국식당 특유의 회전 테이블에 앉아서 느끼한 식사를......
워낙 좁은길들이 미로처럼 엉켜있어서 일행을 놓치면 큰 일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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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匠人)들이 직접 유리공예를 시범보이는 곳을 방문하였다. 물론 유리공예를 전문적으로 생산 판매는 곳은 무라노섬이지만 이곳에서도 생산 판매를 하는 가게가 있었다.
빨간 불속에 긴 봉(파이프)에 유리 원료(?)를 끼워 넣고 가열한 다음 입에 물고 부니까 마치 풍선처럼 부풀어 오른다. 그런다음 집게를 가지고 끝을 잡아 늘리니 금새 말(馬)모양을 한 공예품으로 변한다.
예쁜 모양의 유리제품이 많았지만 비싸고, 깨질 우려가 있어서 사지 않고 나왔다. 좁은 골목길 양쪽 편에는 조그마한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데 유난히 가면를 판매하는 가게가 많았던 것 같다. 그밖에 가죽의류, 기념품등.... 군데 군데 짝퉁을 파는 흑인들의 모습도 보인다.
광장을 빠져나갈려고 하니, 광장에까지 바다물(밀물)이 차서 그냥 걸어나올 수가 없었다. 40cm 높이정도 되는 간이 철제 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많은 사람이 좁은 다리를 통과할려고 하니 시간이 무척 더디었다. 하수관을 통하여 역류하는 바다물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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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를 빠져나올 때는 옵션으로 1인당 30유로를 내고 수상택시를 탔다. 물론 코스는 올 때의 코스가 아니고, S자 대운하를 통하여 나가는 코스다.
좌우로 기(旗)를 단 관청과 부자들이 살던 저택들, 비알토다리외 여러개의 다리들을 지나서 버스가 기다리는 선착장까지 가게 되는데 운하 끝부분에 산타루치아 기차역이 보인다.
섬에까지 기차가 연결되어있다니!!
운하를 벗어나서는 선착장까지 무지 무지한 속도로 급격한 방향전환을 하며 달린다. 신이 나기도 하였지만 한 편으론 겁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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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가이드와 아쉬운 이별을 하고 우리는 쥬세페의 버스를 타고 밀라노를 향하여 달렸다.
베네치아에서 밀라노로 가는 고속도로의 길가는 어제 피렌체에서 베네치아로 오는 길보다 평지가 넓지는 않았지만 양쪽 편 모두 거의 포도밭이다.
3시간이상 달리는 중간에 휴게소에 들렀다. 거기서 우리는 아내의 시골 고등학교 후배를 만나게 되었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이렇게 만나고 보니 세상이 그리 넓은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내 후배는 남편(공무원)의 직장동료들과 함께 20년 근속 모범공무원으로 뽑혀서 부부동반으로 오게 되었다고 한다.
이 휴게소에서 포도주나 한 병 살까 했는데 그것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 팀은 10박 11일 관광을 하고 있는데, 나폴리에서 시작을 하여 우리 보다 하루를 더 보냈다고 한다. 귀국일은 우리와 같은데 파리에서 하루 더 묵고 런던에서 귀국한다고 한다. 우리는 파리에서 하루를 덜 묵고 그 대신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에서 귀국하게 되는데......
밀라노에 도착하기 전에 면세점 한 군데를 들렸다. 1인당 150유로이상 사면 15%를 할인해 준단다. 지하로 안내하여 내려가니 전부 비싼 명품밖에 없다.
싼 제품은 2층에 있다고 한다. 나와 아내는 내 지갑과 선물용 지갑 2개를 70유로를 주고 샀다. 한 점원 아가씨가 옆에서 150유로이상 사면 15% 할인이니까 자꾸 더 살 것을 유도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만 사기로 하였다. 입장하면서 받은 5% 할인권만 사용하였다. 몇 몇 사람들은 선물해야 할 곳이 많은지 시간을 끌며, 쇼핑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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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바르디아주(州)의 주도(州都)인 밀라노에 도착하니 거의 오후 6시가 넘어서 어두워지기 바로 전이었다.
서둘러서 차에서 내려 밀라노 대성당(밀라노 두오모대성당)으로 걸어갔다. 고딕건물로서는 최고의 건물이다.
한 쪽에는 공사가 진행중이어서 완전한 건물을 보지는 못했지만 대단한 건물이다.
거의 200여년동안 지었으며, 부대시설까지 완공한 것은 1951년이라고 하니 완공하는데 까지는 560여년이 걸린 것이다. 외형상으로 보면 뾰쪽 뾰쪽한 첨탑이 수 백개 아니 천개이상 될 것 같다.
아름다운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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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앞 광장에는 이태리를 통일한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2세의 기마상과 오른쪽으로 기념 갈레리아 아케이드가 웅장하게 서있다.
이 아케이드는 명품 백화점이라고 한다. 아케이드를 지나가니 바로 앞에 라 스칼라극장이 보인다. 성악가들의 꿈의 무대인 스칼라!
외형은 별로 볼품이 없어 보인다. 한 쪽으로는 보수공사중이어서 가리개가 쳐져있다.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발길을 재촉하는데, 좁은 시내의 길 가운데로 전차가 지나간다. 참 유럽에서 또 하나 특색이 있는 것은 시내 도로에 차선이 중앙선 밖에 없다는 것이다.
차선이 없으면 운전하기에 혼란이 오고, 교통혼잡이 더 심할 것 같은데 가는데 마다 중앙선만 있다. 승용차들이 거의 소형차이므로 알아서 2대가 가든지 3대가 가든지 도로 사이즈에 따라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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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마지막 관광 목적지는 스포르체스코성이다. 15세기에 지은 성으로 2차대전때 파괴되어 그 이후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고대미술박물관으로 이용되고 있다는데, 너무 늦어서 입장은 시키지 않고 구경을 마친 사람들만 입구를 빠져나오고 있다.
버스기사인 쥬세페가 안 보여서 한참동안 성(城)앞에 기다리는 동안 스포르체스코성의 조명이 켜졌다. 너무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한참만에 쥬세페가 왔는데, 근처에 화장실이 없어서 몇 백미터 앞에 있는 지하철역까지 갔다 왔단다.
저녁 8시가 되어 있었다. 식사를 위하여 버스를 타고 15분쯤 가니 왕복 10차선 이상된 큰 길이 나왔다. 그리고 건물들도 비교적 깨끗하고 현대식이었다. 버스에서 내려 반대편으로 횡단보도를 건너 가서 식당으로 들어갔다. 지하에 우리 자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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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도 화덕에 구운 피자를 먹을 수 있었다. 어제 먹었던 것 보다 약간 더 큰 것 같다. 맛도 좋았다. 물론 메인이 아니고 후식으로..
밀라노는 일년 내내 전시회가 있다고 한다. 그만큼 여행객이 많다는 소리다. 따라서 호텔을 잡는 것도 어렵다고 한다.
호텔은 식당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밀라노 외곽에 있는 RIPAMONTIE DUE 호텔이다. 규모는 큰 것 같은데 고급스럽지는 않다. 호텔방도 시끄럽다. 공사를 하는지.....
내일은 6시 반, 7시 반, 8시 반 작전이다. 이탈리아를 떠나는 날이다. 계속 잠을 설쳐서 피곤하다.
[스위스 융프라우등정]
오늘은 이태리를 떠나는 날이다. 3일 동안의 이태리 여행은 중 고등학교 역사수업을 연상케 했다. 보이는 것 모두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내용이었다. 우리나라가 부유하게 되어 역사 수학여행을 고등학생때 이런 곳으로 다녔으면 하는 바램이다.
호텔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하는 중에 어제 만났던 아내의 고교 후배를 거기서도 만났다. 한국관광사들이 즐겨가는 관광코스, 숙박지가 있는 것 같다.
식사후에 우리는 쥬세페의 버스를 타고 밀라노를 출발하였다.
스위스 국경까지는 약 1시간 반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밀라노를 벗어나기 전에 쥬세페는 '다리가 여섯 개 달린 이리'를 상징으로 하는 Agip라는 주유소로 들어가서 정차를 하고, 직접 주유기를 들고 주유를 한다. 주유를 마친 다음 불룩 나온 배와 엉덩이를 출렁거리며 뛰다시피 정산소로 달려간다. 여기는 자가 주유(Self)를 통상적으로 한다고 한다. 스위스로 넘어가면 기름값이 비싸지기 때문에 미리 넣는 것이다. Agip 정유사는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가 강가에 버려졌을 때 이들에게 젖을 먹여 키운 이리를 다리가 여섯 개 달린 이리로 묘사하고 그 동물을 상징으로 하는 이태리와 프랑스가 합자한 정유회사이다. 이태리 어디를 가도 쉽게 볼 수 있는 마크다. 아마도 이태리 최대의 정유회사인 듯 싶다.
쥬세페는 올해 23세의 청년이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운전을 배우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버스운전 3년의 경력을 갖고 있다.
그의 아버지도 운전기사이며, 그는 비록 중학교 졸업의 학력이지만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 뿐만아니라 모든 이태리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한단다. 운전을 천직으로 알고, 운전하는데 더 이상의 학교공부가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의 수입은 월급 약 200만원, 팁 200만원 합계 400만원이다. 젊은 운전기사들이 약간 과속을 하는 편이지만 쥬세페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너무 늦게 달려서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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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한지 1시간 30분쯤 되어서 스위스 국경에 도착했다. 베레모를 쓴 국경수비대 요원들이 몇 명이 서 있을 뿐이다. 우리 차에는 올라오지도 않고 운전기사와 몇 마디 나누더니 통과를 시킨다. 스위스 땅에 들어서니 그동안의 분위기와 차이가 난다.
첫째 산이 많다. 주택들도 경사가 급한 산 중턱에 뛰엄 뛰엄 서 있다. 그림에서 늘 보아온 전형적인 스위스 집들이다. 푸른 목초지에는 젖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여기 저기서 요들송이 들리는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쥬세페가 에델바이스, '사운드 오브 뮤직'에 나오는 도레미송등 스위스풍의 노래를 틀어준다. 실제 '사운드 오브 뮤직'은 그 무대가 오스트리아 짤스부르그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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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데 군데 맑은 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나라 스위스는 인구가 약 720만명, 수도는 인구 13만명의 베른(Bern: 독일어로 곰), 면적은 한반도 전체 면적의 '오분의 일'정도된다고 한다.
종교는 개신교와 캐토릭이 거의 반 반 - 캐토릭이 약간 더 많다. 언어는 독일어 70%, 프랑스어 20%, 이태리어 9%, 레토로만어(원주민들의 언어) 1%이고, 4개국어가 국가가 인정하는 공용어이란다. 학생들은 4가지 언어를 공부해야 한다고......
스위스는 우리나라처럼 20세에서 50세까지의 모든 남자들이 병역의무를 갖는다고 한다. 스위스 군인들의 용맹성은 어느 나라와도 견줄 수 없을 정도란다. 로마 바티칸에서는 스위스 출신의 카톨릭 신자들에게만 근위대 입대 자격을 부여한다고....
그 이유는 교황 클레멘트 7세때 야만족의 침략을 받아 교황이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오로지 스위스 출신의 근위병들만이, 끝까지 147명의 목숨을 버리면서 교황을 보호하였고 그 이후에는 스위스 출신만 채용하고 있다고 한다.
국경검문소를 지나 한 시간쯤 후 고타드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화장실은 무료. 오랜만에 무료 화장실을 보았다. 휴게소는 깨끗했다. 시설과 상품진열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 청소되어 있었다.
잠시 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길다는 고타드 터널이 나왔다. 스위스를 통하여 이태리로 가는 거의 모든 차량과 반대로 이태리에서 스위스로 가는 거의 모든 차량이 이 터널을 이용한다고. 펀도 1차선의 터널은 너무 좁았다. 전장 17km나 되는 터널이 이렇게 좁게 건설되어서 위험하지 않을까? 2000년인가 2001년인가 이 터널에서 대형 트럭이 정면 충돌하여 화재가 발생하였고 많은 인명 피해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조금 불안하였다. 20분정도 소요.
맑다 못해 푸른 호수가 나타나고, 멀리 알프스의 자태가 보였다가 사라졌다가 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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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elweiss, Edelweiss.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Every morning you greet me. 매일 아침마다 나를 반겨주네.
Small and white, clean and bright, 작고 하얀, 깨끗하고 밝은,
you look happy to meet me. 나를 보는것이 행복한듯 보이는 구나.
Blossom of snow, may you bloom and grow. 눈의 꽃, 언제나 항상 활짝피고 무럭무럭 자라기를
Bloom and grow forever. 활짝피고 영원히 자라나길
Edelweiss, Edelweiss. 에델바이스, 에델바이스
Bless my homeland forever. 우리나라에 영원한 축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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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라켄에서 1시 20분 열차를 타야하기 때문에 적어도 인터라켄에 12시에는 도착하여야 하는데, 쥬세페의 안전운전 덕분에 12시 반이 되어서 도착하였다.
인터라켄(Interlaken)은 인구는 5,000여명, 관광도시로 베른 남동쪽 26km 지점 툰호(湖)와 브리엔츠호 사이에 위치하며, 지명은 ‘호수의 사이’라는 뜻이다.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이름은 Bobbis. 내가 유일하게 식당이름을 기억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들어가서 앉자마자 종업원들이 친근감을 보이며, 웃으면서 주문을 받고 한국말도 가끔 섞어서 하였다. 스테이크와 감자의 메인 디쉬가 나와서 먹기 시작하자마자, 우리 일행의 혼을 완전히 빼놓는다.
월드컵 응원가를 다른 손님들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크게 틀어놓고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뛰어다니며, "오! 필승 코리아"를 부른다. 우리도 따라서 박수를 치며 오 필승 코리아를 불렀다.
식당의 다른 손님들(현지인)도 웃으면서 맞아 주었다. 굉장히 기억에 남는 세레머니였다. 아내는 멋지게 생긴 식당주인(?)과 기념사진을 찍고....
1시부터 면세점에 들러 간단한 쇼핑을 했다. 맥가이버 칼 12유로짜리 1개와 8유로짜리 2개. 스위스는 영국과 함께 유로를 공용화페로 사용하지 않는 나라이다. 여기는 면세점이므로 유로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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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 20분이 넘어서 우리는 인터라켄 오스트역(동역)에서 융프라우를 향한 기차를 탔다. <!-- badtag filtered -->
쯔바이뤼치넨역을 지나 라우터부룬넨역까지는 약 20분정도 비교적 경사가 완만하고, 주위의 풍경이 일반적인 스위스 농가의 모습이다. 일반 가정집의 2층 테라스에는 한결같이 꽃을 가꾸어, 지나가는 우리들을 기분좋게 하고 있다.
라우터부룬넨역에서 클라이네 샤이데크역까지 가는 열차로 옮겨타고 약 40~50분. 경사가 상당히 급하다. 일반 레일이 아니고 중간에 톱니바퀴가 따로 있다. 속도도 느릴 수 밖에 없다. 클라이네 샤이데크역에서는 지붕끝에 매달린 고드름이 기온을 알려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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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마지막 급경사인 융프라우요흐역까지의 터널 여행이 시작되었다.
대단한 공사다. 이런 빙하속에 터널을 뚫어서 철로를 만들다니.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인가! 1896년에 시작하여 1912년 완공. 이 공사를 하다가 사망한 사람만 17명.
16년 동안의 대역사다. 우리나라는 그 때 무슨 일을 하고 있었지? 구에르 첼러라는 철도 엔지니어가 만들었다지! 유럽에서 제일 높은 기차역인 융프라우요흐역은 해발 3,454m이란다.
융프라우요흐역까지 가는 동안 두 번의 정차(아이거반트와 아이스메르)를 하고 5분 정도의 여유를 주었다. 그곳에서는 전망시설이 만들어져 있어 밖을 내다 볼 수 있었다.
코앞에 깎아지른 듯한 빙벽과 알레치 빙하, 만년설의 자태를 볼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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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융프라우를 올려다 볼 수 있는 융프라우효흐역에 도착하여 먼저 고속 엘리베이터를 타고 스핑크스전망대에 올랐다.
해발 3,571m의 유럽에서 제일 높은 위치에 있는 전망대다. 지대가 높아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럽고 아파온다. 숨을 쉬는 것이 불편하다.
전망대 안에는 우체통도 있고, 우리나라 라면도 있고 기타 각종 기념품이 있는데 가격은 아래보다 꽤 비싸다. 여권에 Top of Europe 3,454m라고 새겨져 있는 스탬프를 기념으로 찍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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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얼음궁전이다.
안에는 온통 얼음이다. 바닥에서 천정까지. 그리고 얼음으로 만든 갖가지 얼음 조각품들. 얼음이 녹지 않을까? 의문도 생기는데 아니란다.
절대 녹지 않는단다. 항상 영하 2도씨를 유지하게 설계되어있고, 사람이 잡고 이동하게 설치되어 있는 봉을 통하여 사람의 체온을 따로 저장하고, 그 열을 다른 방의 난방에 활용한다고 한다.
밖으로 나와 눈밭에서 눈을 뭉치고 사진도 찍고 자유시간을 가졌다. 우리는 아내가 가죽장갑까지 준비하여 왔기 때문에 별로 추위를 느끼지 않고 10분 정도 눈을 즐겼다.
아내의 준비성은 항상 나를 편하게 해 준다.
내려올 때는 라우터부룬넨쪽으로 내려오지 않고 클라이네 샤이데크에서 반대편인 그린덴발트쪽으로 내려오게 되어있다.
우리는 그린덴발트에서 쥬세페의 버스를 타고 내려와서 중국형(?) 식당에서 한식을 먹었다.
육계장이라고 내어 놓는데 희멀건하고 다 식어버린 탕이었다. 다른 반찬으로 식사를 하였다.
식당이 2층이었는데 1층이 면세점이다. 특색있는 상품은 없었고 다른 상점들에서 볼 수 있는 것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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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에 밤 늦은 시간에 도착하다. 저녁 9시가 넘어 있었다. 호텔은 앰배서더호텔. 세계적인 호텔그룹이다.
우리나라의 앰배서더와는 다르다. 시설이 썩 좋지 못하였다. 무궁화 3~4개 수준. 그러나 구석 구석에서 절약과 세심한 배려를 엿볼 수 있었다. 화장실에도 조그마한 스팀 라지에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내일 아침은 6시, 7시, 8시 작전이다. 제일 빠르게 출발한다. '아름다운 베른'에서 우리는 아름다운 베른을 맛보지도 못하고 어두운 베른을 호텔 창문으로 바라본다.
[프랑스 파리 첫째날]
베른의 앰배서더 호텔을 나선 시간은 아침 7시 40분이다. 베른의 중앙역에서 8시 30분 열차(TGV)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가야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했다. 시내는 아직까지 가로등이 켜져 있고 어둑 어둑하다.
근면한 스위스 사람들의 분위기를 느낄 수가 있다. 시내에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이 많았다.
쥬세페와는 오늘 여기서, 중앙역에서 헤어져야 한다. 3일동안 그와 같이 여행한 시간들이 무척 길게 느껴진다. 우리들을 아주 편하게 안전하게 안내하여 주었는데 여기서 헤어져야 하니 좀 아쉽다.
가이드의 전언에 의하면 쥬세페가 그동안 한국팀과 함께 한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일본팀, 중국팀과는 많이했는데.
일본팀, 중국팀과 같이 했던 때보다 우리들과 같이 했던 시간이 훨씬 좋았다고 한단다. 우리가 정(情)이 있는 민족인가 보다.
쥬세페는 오늘 여기서 다시 프랑스에서 내려오는 한국팀을 싣고 융프라우,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를 거쳐 로마로, 올 때의 역순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아디오스 쥬세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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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른의 중앙역은 많은 열차와 사람들로 붐볐다.
테제베는 프랑스에서만 타는 줄 알았는데, 스위스에서 타게 될 줄은 몰랐다. 베른에서 파리까지 5시간이 소요된다고 하니 상당히 먼 거리인 것 같다.
테제베는 우리의 KTX처럼 객차의 반은 정방향 반은 역방향의 좌석으로 되어 있다. 나와 아내는 정방향의 좌석을 배정받았다.
우리 일행중 정방향은 우리와 다른 부부 1팀밖에 없다.
밖에는 계속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다.
약 1시간 10분쯤 달렸을까 프랑스 국경으로 접어들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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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보다. 곤색의 제복을 입은 사람 둘이서 한 사람이 각각 한쪽 편을 담당하여 여권을 검사한다.
우리나라의 열차 여객전무가 열차표를 검표하는 것처럼 간단한 여권검사를 하고는 지나간다.
마치 서울에서 부산 가는 것 처럼 모든 수속이 간단하다. 이제는 유럽은 한 나라인 것 같다.
프랑스로 들어서니 좌우의 시야가 넓어지고 넓은 초원지대가 나타난다. 끝도 없는 초원이다. 드문 드문 젖소들이 풀을 뜯고 있다. '아니! 저 넓은 땅을 저렇게 놀리고 있나'하고 생각을 하게 된다. 오로지 초원이다. 논도 없고 밭도 없다. 채소를 가꾸는 농가도 없다.
유럽인들은 채소를 많이 먹지 않는단다. 고기와 약간의 샐러드정도. 그래서 수입을 해서 먹는가 보다. 시속 300km의 속도로 달리는데 속도감을 느낄 수가 없다. 150km정도로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터널도 없다. 다섯 시간의 여행중에 터널은 없었던 것 같다. 오로지 저 푸른 초원위를 달린다는 기분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우리 KTX가 역방향 좌석으로 되어서 그 쪽에 탄 승객들은 어지럽고 거북스럽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여기서는 역방향으로 다섯 시간을 타고 가는데도 어지러움을 호소한다거나 거북하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말을 안 한 것인지??
파리의 리옹역에 오후 1시 30분쯤 도착하였다. 현지 가이드가 우리를 싣고 갈 버스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늦었기 때문에 바로 시내에 있는 한 식당으로 갔다. 파리에대한 첫인상은 건물이 모두 19세기 이전에 지어진 것처럼 전형적인 유럽풍 건물만 있다는 것이다. 요즈음 지은 건물은 하나도 없는 것 같다. 차선도 없어서 조금 무질서하다는 인상이 든다. 주정차도 어렵다
우리가 간 식당은 늦은 시간이어서인지 손님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첫 프랑스 음식을 기대하며 약간 기다리고 있으니 바게뜨를 먼저 주고 다음에 접시에 달팽이 요리를 주었다. 1인당 6개씩. 달팽이 요리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알고 있었으나, 요리가 나오니 조금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옆에는 달팽이를 집을 수 있는 집게와 포크가 놓여있다. 옆에 사람을 보니 집게로 달팽이를 고정하고 포크로 빼내어 먹고 있다. 따라서 해 보았다. 매끄럽게 되지는 않았지만 그런대로 먹을 수 있었다.
나는 식당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에 갔다 왔다. 뒤에 들으니 그 시간에 가이드가 달팽이 먹는 법을 설명했다고 한다.
달팽이에 뿌려져 있는 소스에 바게뜨를 뜯어서 찍어 먹어야 하는데 나는 달팽이만 먹고, 한참을 기다리니 메인 디쉬인 돼지고기 스테이크가 나왔다. 이 음식은 이름은 모르겠지만 집에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대점하는 음식이라고 한다. 서빙을 하는 머리가 벗겨진 20대 후반의 청년은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에 담배를 피운다. 보기에 좋지 않다.
식사후 우리는 파리에서 30~40분 거리에 있다는 베르사유궁전을 향하였다.
궁전 정문앞에는 여러명의 흑인들이 짝퉁들을 팔기 위하여 다가온다.
궁전 정문앞 광장 앞쪽에는 좌우 양쪽으로 상당히 큰 건물이 서있었는데 그곳은 왕실 마구간으로 사용하던 건물이란다. 듣기에는 아마도 얼마전 인기리에 방영하던 "파리의 연인"에서 이 건물을 파티장으로 소개했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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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가이드는 여기 오는 중간에 앞으로의 스케줄을 설명하며, 앞으로의 일정이 빠듯하기 때문에 에펠탑과 세느강 유랍선 탑승을 오늘 밤에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내일 시간적 여유가 많아서 더 많은 곳을 여유를 갖고 볼 수 있다고 하며, 원한다면 1인당 40유로를 내야한단다. 상의해서 통보해 달란다. 1인당 40유로면 우리 부부가 80유로(약 12만원).......
베르사유궁전은 궁전안에서는 정식 가이드 라이센스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설명을 할 수가 없다고 한다. 우리 현지 가이드는 라이센스가 없기 때문에 정문 앞에서 베르사유궁전의 소개 브로쉬어를 나누어 주고 설명을 한 뒤 1시간의 관람시간을 준다. 출구에서 기다린다고 했다.
베르사유궁전은 그 규모면에서 그동안의 어떤 궁전보다 앞선다. 전체적으로 "ㄷ"자 형태로서 오른쪽 입구들어 가서 왕실성당, 헤라클레스의 방, 풍요의 방, 비너스의 방, 다이아나의 방, 마르스의 방, 머큐리의 방, 아폴로의 방, 전쟁의 방이 오른쪽에 배치되어 있고 정면은 거울의 방이, 왼쪽으로는 평화의방, 왕비의방, 귀족의 방, 부속실, 왕비 경호실, 대관식의 방이 있었다.
화려한 천장화, 벽화가 대단했다.
궁전 뒷편은 정원인데 일부만 공개하고 있었고, 잘 꾸며진, 잘 가꾸어 놓은 정원수와 꽃들이 눈에 띄었으나, 에베랜드의 그것과 큰 차이는 못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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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현지 가이드는 아까 제의한 야간 관광에 대해서 우리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우리들은 한결같이 야간 관광은 하지 말고 그냥 예정대로 하자고 이야기하였다.
예상외로 모두들 싫다고 하니, 가이드가 앞으로의 시간사용계획이 빗나갔기 때문인지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다음은 세느강 유람선 탑승이다. 베르사유궁전에서 거의 5시가 가까운 시간에 출발하였다. 가는 동안에 세느강변을 지나가는데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우리가 많이 들어왔던 미라보다리, 콩코드다리등을 지나고 있었다.
세느강 선착장에서 우리는 다섯시 삼십분쯤 유람선을 탈 수 있었다. 유람선에는 현지인은 별로 찾아 볼 수가 없고 거의 동양의 관광객이었다. 우리는 우리나라 관광객이 많은 것으로 알았는데 아니었다. 거의가 중국의 관광객들이었다.
유람선에서는 안내방송을 하는데 불어와 중국어로만 하였다. 가이드의 말을 들으니, 현재 중국에서 오는 관광객은 년간 200만명이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20만명이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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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하원)앞에 있는 선착장을 출발하여 약 1시간 코스의 관광이다. 어둠이 내리는 시간에 유람선이 출발하였다. 뒷편으로는 에펠이 위용을 뽐내며 서있고, 앞에는 알렉상드르 3세다리가 다가온다. 알렉상드르 3세 다리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여신과 페가수스상을 금빛으로 칠하여 남북 끝부분에 배치하고 가로등도 아르누보양식이다. "파리의 연인"에서 나오는 다리이다.
세느강은 파리를 둘로 나누는 강인데 강폭은 한강의 삼분의 일도 안 되는 것 같다. 그런데 강이 좁으면서도 양쪽으로 가까운 곳에 건물들이 있고, 루브르박물관, 노트르담성당, 오르세박물관, 콩코드광장, 에펠탑등의 유명 관광지를 거느리고 있기 때문에 유람선 관광으로는 최적지인 것 같다.
가이드의 제안대로 밤에 야경을 보며 즐기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시테섬에 있는 퐁뇌프다리와 노트르담성당을 지나 생루이섬을 좌로 돌아서 간다.
출발했던 선착장을 다시 지나서 에펠탑을지나고 미라보다리 바로전, 자유의 여신상을 끼고 돌아간다. 이 자유의 여신상은 프랑스에서 뉴욕에 선물한 자유의 여신상에 대한 답례로 보낸 것이라는데 뉴욕의 것에 비하여 초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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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은 흐르고 우리네 사랑도 흘러 내린다. 내 마음 속에 깊이 아로새기리라, 기쁨은 언제나 괴로움에 이어옴을.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손에 손을 맞잡고 얼굴을 마주 보면 우리네 팔 아래 다리 밑으로 영원의 눈길을 한 지친 물살이 저렇듯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사랑은 흘러 간다. 이 물결처럼, 우리네 사랑도 흘러만 간다.
어쩌면 삶이란 이다지도 지루한가. 희망이란 왜 이렇게 격렬한가.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머문다. 나날은 흘러가고 달도 흐르고 지나간 세월도 흘러만 간다. 우리네 사랑은 오지 않는데 미라보 다리 아래 세느강이 흐른다. 밤이여 오라 종아 울려라. 세월은 가고 나는 남는다. <아폴리네르의 '미라보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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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람선에서 내린 시간이 6시 40분. 불이나케 버스에 올랐다. 저녁 예약시간이 너무 지나서 큰 일났다고 야단이다. 여섯 시에 예약을 하였는데(야간 관광을 예상하고) 너무 늦은 것이다.
식당에 도착하니 6시 50분이었다. 한국식당이다.
들어가니 주인 아주머니가 야단이다. 7시에 다른 예약이 있는데 어떻하느냐고 말이다. 이미 테이블에는 반찬이 놓여져 있었고 우리가 앉자마자 육개장을 갖다 준다.
오랜만에 먹는 한국음식이어서 인지 맛이 아주 아주 좋았다. 어제 스위스에서 먹었던 식어빠진 육개장에 비하면 이것은 천상의 음식 그 자체였다.
우리는 평소의 실력대로 10분만에 모두 해치우고 식당을 나왔다. 우리 한국사람들의 식습관은 알아줘야 한다. 결과적으로 7시 다른 예약 손님들에게는 피해가 없었다.
호텔은 노보텔호텔이다. 시설도 규모도 괜찮은 편이다.
[프랑스 파리 둘째날]
노보텔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집에 두 번째이자 마지막 전화를 하였다. 애들이 집에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였지만 숙주가 전화를 받았다. 여기 시간이 여덟 시 십분이니 한국은 오후 세시 십분이다. 별일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회사에도 전화를 하였다.
여덟 시 오십분에 호텔을 출발하여 에펠탑을 향하였다.
러쉬아워이기 때문에 체증이 심했다. 역시 세느강변을 통과하였다. 파리 세느강에는 총 서른 일곱 개의 다리가 있다고 한다. 그중에서 2개는 기차만 다니는 철교이고, 3개는 사람만 다니는 인도교이며, 나머지 서른 두 개가 자동차가 다니는 교량이다.
가이드는 파리의 주택에 대해서도 설명을 한다. 파리에서는 서울과 달리 근교의 아파트는 주로 서민 노동자들 블루칼라들이 살고 있으며, 파리 시내의 아파트는 부유한 층이 살고 있단다. 파리 시내의 아파트는 우리 처럼 시멘트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아니고 중세시대에 지어진 것 처럼 보이는 고전적인 모습이다. 파리시내에서도 부유층이 사는 동네와 몽마르뜨르 언덕처럼 서민들이 모여사는 곳이 있다고 한다.
가이드는 혹시 에펠탑에 늦게 도착할까봐 안절 부절이다. 관광객이 많기 때문에 조금 늦으면 지체하는 시간이 많아진다고 한다.
다행히 아홉 시 사십오분쯤 도착하여 티켓 판매소앞에 우리는 줄을 섰다. 우리 앞에는 수십명 정도의 인원만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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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펠탑은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고, 만국박람회에 맞춰 1889년에 완공을 하였다고 한다. 높이는 약 320m. 3층(우리식으로는 4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층까지는 엘리베이터가 비스듬히 올라간다. 2층에서 3층을 올라갈 때는 고속 엘리베이터가 직선으로 올라간다.
바닥 면적은 가로 세로가 약 70, 80m 정도되는 것 처럼 보인다. 매표소도 철탑이 시작되는 네 군데에 설치되어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 이른 시간이기 때문에 세느강쪽 한 군데에서만 매표하고 있었다.
에펠탑은 아주 굵은 철제(H빔)로 만들어진 것으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가는 철제로 되있다. 그대신에 아주 치밀한 구조다. 저렇게 가는 철제로 어떻게 저런 육중한 철탑이 견딜 수 있는지 불가사의하다.
3층 전망대에 오르니, 파리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파리시는 계획도시라는 것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방사형의 도시다.
세느강변의 다리들, 루브르박물관, 콩코드광장, 노틀담성당, 앵발리드, 신도시인 라데팡스등이 그야말로 내 발아래에 펼쳐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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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보다리 아래에 있는 다리는 철교로구나! 열차가 지나간다. 그래도 다리중에서는 알렉상드르 3세 다리가 제일 눈에 띈다. 다리의 양쪽 끝에는 4군데에 걸쳐 그리스 여신과 페가수스상이 금빛을 띠며
버티고 있다.
그리고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앵발리드의 웅장한 자태도 그만이다.
전망대 안에는 눈 위부분에 빙둘러서 세계각국의 도시의 방향에 맞춰 이름이 씌어져 있고 거리가 표시되어있다. 대한민국은 서울과 부산이 있었고 서울 8,991km라고 표시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니 바람막이가 없이 가장자리에 철망만 쳐져있는 전망대가 있다. 바람이 무지 무지 셌다.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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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를박물관에 도착하니 11시 20분이다. 어마어마한 규모이다. 박물관 광장의 중앙에는 피라미드 모양의 유리로 만들어진 조형물이 놓여있다.
고전과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평이다. 그리고 광장 오른쪽 콩코드 광장방향에는 또 하나의 개선문(카루젤 개선문)이 있다.
드골광장의 에뚜알 개선문보다는 훨씬 작고,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보다도 작은 것 같다.
세계 3대 박물관중의 하나인 루브르박물관.
워낙 넓기 때문에 전체를 관람할 수는 없었고, 그리스시대의 조각품과 그림들을 구경하였다. 조각품중에는 남자와 여자의 아름다운 나신(裸身)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림은 원근법이 도입되기 전 시대부터 이후 시대까지 수 많은 그림이 다채롭게 전시되어 있었고, 그중에서 관람객들의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그림은 역시 다빈치의 "모나리자의 미소"였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어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다.
모나리자의 모델이 누구인가? 그리고 그 배경은 어디인가? 많은 학자들이 연구하고 고민을 하였는데, 확실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모델은 유부녀일 것이다. 이마부분에는 망사로 된 베일이 있고, 그 배경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고향인 피렌체의 어느 지역일 것이다. 눈썹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지워졌을 것이다"라는 추측만 .......
모나리자와 함께 루블의 대표적인 두 작품. 그리스 밀로섬에서 가져온 "비너스(양 팔이 잘려있음)"와 사모트라케섬에서 가져온 승리의 여신
"니케(Nike)-목위 부분과 양 팔이 잘려있음" 두 작품 모두 많이 훼손되어 원형을 찾기는 어렵지만 그대로만으로 훌륭하다. 꼭 살아움직이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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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시내의 한 식당의 비좁은 2층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종업원과 주인이 수시로 다니며, 부족한 것을 채워준다. 특히 바게뜨를.
식사후 파리시내의 면세점으로 인도되었다. 거기에는 많은 중국인, 한국인이 이미 와 있었다. 아내의 후배팀도 거기서 보았다.
우리는 선물을 할 만한 것을 구경하였는데 마땅한 것이 없었다. 청색바탕에 금빛으로 그림을 그린 소형 도자기 액자 1점을 7.8유로에 샀다.
요즈음은 중국 관광객들이 싹쓸이 쇼핑을 한다고 한다. 중국사람들이 지나간 뒤에는 살 것이 없을 정도란다.
개선문으로 향하다.
에펠탑과 함께 파리를 상징하는 개선문. 이것은 에뚜알 개선문이다. 드골광장에 있는 대표적인 개선문이다. 나폴레옹이 건설을 시작하였으나, 완공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측 상단을 가리고 보수공사중이었다.
우리는 짧은 시간을 쪼개어 지하도로 건너가, 샹제리제거리쪽을 보기도 하였다.
그 앞으로는 샹제리제거리가 펼쳐져있다.
샹제리제거리-
파리에서도 부유층이 논다는 샹제리제거리다. 반대로 서민들이 노는 데는 몽마르뜨르란다. 물론 많겠지만. 샹제리제거리는 개선문에서 시작하여 콩코드광장까지 연결되어있다. 그곳에는 극장들과 명품 쇼핑센터, 고급식당들이 몰려있단다.
지금은 낮이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독무대를 이루고 있다. 밤에는 부유한 파리지앵들이 북적대겠지.
대형가방으로 건물의 한쪽면을 완전히 가린 디스플레이가 눈에 띈다. 뤼뷔똥인가?? 얼른 지나가서 자세히 보지 못했다.
샹제리제거리를 따라 버스로 이동하여 콩코드광장의 오벨리스크를 한 바퀴 돌았다. 그 앞에는 해군본부 건물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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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틀담성당으로 향하였다.
노틀담은 Notre(우리들의) Dame(부인, 어머니)을 뜻하는 일반적인 이름이란다. 즉 성모 마리아라는 뜻이다. 따라서 노틀담성당은 여러군데일 수밖에-
파리의 노틀담성당은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틀담의 꼽추"를 영화화하여, 안소니 퀸과 지나롤로브리지다가 열연하였고 그 영화로 인하여 더욱 유명하게 된 성당이다
성당부근에서 버스가 정차를 해야 하는데 교통경찰들 때문에 한 1km이상 떨어진 소르본느대학앞에 정차를 한다.
덕분에 소르본느대학을 볼 수 있었다. "소르본느"는 원래 파리대학교 신학대학의 기숙사겸 연구실에만 소르본느라는 이름이 주어졌는데 지금은 파리대학교를 소르본느로 보통 부른다고 한단다.
걸어서 노틀담성당까지 갔다. 정문앞 광장에서 자유시간-
아내와 나는 성당안을 둘러보았다.
성당의 규모는 로마의 베드로대성당에 비하여 작았으나, 창문마다 별도의 코너를 마련하여 수많은 촛불로 경배하는 모습이 특이하였다.
중앙의 제단에는 밝은 조명을 하여 전체적인 어둠속에서 더욱 빛나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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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제단 앞에는 신도들이 앉을 수 있는 긴 의자가 수 백개이상 놓여져 있고 일부의 관광객들은 기도를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조금 놀랄 일은, 원래의 노틀담성당에는 종탑이 없었다고 한다. 노틀담의 꼽추 영화가 히트하고 나서 이 종탑을 만들었다고 하니 프랑스 사람들의 마케팅능력은 대단한 것 같다. 종탑의 높이 60여m.
내부를 구경하고 나와서 광장에서 잠시 기다렸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원래 파리의 원점(原点)이 이 노틀담 성당앞 광장 중앙이란다.
도시간의 거리를 표시할 때에도 이 광장의 중앙에서부터의 거리를 표시한다는 것이다.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하늘을 보니 저쪽에서 검은 구름이 막 몰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다가 먼저 나온 사람들부터 차가 있는 소르본느대학앞까지 뛰다시피하였다. 비를 맞으며 도착하여 보니 버스가 없는 것이 아닌가.
버스는 한 곳에 기다릴 수가 없기 때문에 주위를 빙빙 돌고 한 10분쯤 후에야 우리앞에 나타났다. 빗줄기가 굵어졌다.
비가 많이 오면 몽마르뜨르에 갈 시간이 없어진다고 한다. 교통체증때문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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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좀 늦더라도 몽마르뜨르에 가기를 원하였다. 한국 사람들은 파리에 갔다 왔다 하면 제일 먼저 몽마르뜨르를 묻는데 파리까지 와서 몽마르뜨르를 안 가면 어떻게 하느냐?
가는 길은 약간 막혔지만 .......
가이드가 에피소드를 한 마디했다. 프랑스에서는 어른과 어린이가 우산이 하나밖에 없는데 비가 올 때 어떻게 하겠느냐?하는 퀴즈를 내었다.
같이 쓴다. 어린이만 씌운다등의 답이 나왔지만, 예상외로 정답은 어른이 쓴단다.
어른 우선주의란다. 어이없는 대답이었다. 농담은 아니겠지.
궂은 비가 내려 주위가 어수선한 가운데 버스가 정차하고 우리는 서둘러서 몽마르뜨르로 향하였다.
올라가는 길은 좁았고 길 양 편에는 주로 서민들이 이용할 것 같은 작은 가게들 - 악세사리 가게, 피자 가게, 옷가게등이 오밀조밀하게 몰려있다.
가게들이 끝나는 곳에서 위를 쳐다보니 산 위에 우뚝솟은 건물이 나타났다.
사크레쾨르성당, 우리말로는 성심성당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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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잔디위에 올려다 보는 성당은 흰빛으로 더욱 신비스럽게 느껴졌다.
이 성당은 보불전쟁에서 패한 프랑스가 국민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하여 전액 모금으로 지은 성당이란다.
비가 계속 내리고 시간적인 여유가 없어서 몽마르뜨르언덕의 여기 저기를 구석 구석 보지는 못하였다.
성당까지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 보고, 가난한 화가들의 자리를 찾아 보려 하였으나, 그곳은 중간에서 오른쪽으로 더 가야 볼 수 있다고 한다. 비는 내리고 집합시간은 다 되고 ......
언덕을 내려가 버스를 타고 공항행. 저녁밥은 도시락이다. 버스에 도시락을 싣고 출발.
공항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는 너무 너무 막혔다. 이러다가 비행기 놓치는 것은 아닌지? 일곱 시가 넘어서 공항에 도착하였다.
체크인하는데 줄이 길 게 서있다. 내 차례가 되어 발권대앞에 서 있는데 나의 예약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아내의 티켓이 먼저 나와서, 나는 옆에서 5분쯤 기다리니 나의 티켓이 처리가 되었다.
컴퓨터 에러인가? 이미그레이션으로 가는데 도시락을 나누어 준다. 비닐 봉지에 넣지도 않은 채, 도시락과 물을 나누어 준다. 시간이 너무 급하여 그렇겠지만 조금 불쾌하다. 탑승대기의자에 앉은 채 도시락 한 개를 펼쳐서 아내와 나누어 먹었다. 처량한 생각이 든다.
저녁 여덟 시 반에 탑승하여 런던까지는 한 시간정도 소요. 에어 프랑스편으로 아홉 시 반에 런던 히드로공항에 도착예정이다.
아니 런던은 여기서 시차가 1시간이 나니까 도착시간은 그대로 여덟 시 삼십 분. 히드로공항에서 이미그레이션에 있는 직원에게 "굿 이브닝"하고 먼저 인사하니 그 직원도 활짝 웃으며 "굿 이브닝"한다. 기분좋은 입국이다.
수속을 마치고 런던시간으로 아홉 시에 로비를 나섰다. 비는 계속 내리고 있다.
버스를 기다렸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데 ..... 10분, 20분, 30분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 가이드는 전화를 걸어본다고 가더니 도무지 연락도 없다.
모두들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무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버스가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두 대가 왔다. 중간에 무슨문제가 생겼나 보다. 우리 가이드가 버스 기사와 한참동안 이야기를 나누더니 우선 뒤에 도착한 버스에 타라고 한다. 먼저 온 차가 다른 곳에서 기다렸다고 한다. 펑크가 나서 늦게 왔다고도 한다. 어떤 말이 진실인지 모르겠다.
하여튼 기분은 좋지 않았지만 버스에 올랐다. 호텔까지는 약 50여분이면 된다고 한다. 어유 또 오십 분이나!!
그런데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버스는 도착할 기미가 없다. 밖에는 억수같은 비가 내리고 바람도 심하게 분다.
모든 차량이 좌측통행을 한다. 그동안 거쳐온 나라에서는 보지 못한 통행방법이다. 일본도 차량이 좌측통행인데.
한 시간 20분쯤 갔을까, 어떤 호텔건물앞에서 정차를 한다. 우리는 모두 여기가 우리가 묵을 호텔인가보다 하고
내릴려고 하였더니 어떤 여자 한 사람이 타고는 다시 출발한다.
그리고는 또 삼 사십 분. 정말 왕짜증이다. 모두 폭발 직전이 된다. 여기 저기서 싫은 소리가 나오기 시작한다. 그 때서야 10분내에 도착한다는 안내를 한다.
그리고 아까 탄 여자가 마이크를 들고 자신이 런던의 현지 가이드라고 소개한다. 모두 기분이 나쁜 상태인데 대꾸를 할리가 없지 않은가! 그 사람도 분위기를 파악하고는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하고, 우리들을 위하여 호텔측에서 따뜻한 차를 각 방마다 준비하여 놓았다고 생색을 낸다. 지금 따뜻한 차가 문제인가?
호텔은 주택가에 위치한 4층의 오래된 건물이었다. 브리태니어 호텔. 꼭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에서나 나오는 낡은 호텔같다. 방에 올라가 씻고 나니, 한 시가 다 되어있었다. 파리시간으로는 두 시. 전압도 안 맞아서 캠코
[영국 런던]
날씨는 아주 청명한 런던의 가을 하늘이다. 바람은 좀 불지만 ....
버스기사는 마음씨 좋은 톰아저씨같은 분위기인 흑인 영국신사다. 나이가 육십은 넘어 보이는 분이다. 팁을 꼬박 꼬박 모아서 부부가 1년에 한 번씩은 꼭 해외여행을 한단다.
현지 가이드는 어제 저녁에 잠깐 인사를 나눈 '양송이'라는 애칭을 가진 아줌마다. 삼십대 중반쯤으로 보인다.
아주 유머가 넘치는 그리고 어린이에게는 카리스마를 과시하는 그런 아줌마다. 그동안에는 하고 싶은 대로 놀던 두 어린이가 꼼짝 못한다.
우리가 보통 이야기하는 "영국"은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가 연합한 국가이다. 정식 명칭은
the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이다. England나 Great Britain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한다.
영국에서는 주택에서 정원이 없거나 좁으면 값이 떨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한참동안 가도 정원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영국의 집들은 우리들의 가옥구조와 달리 집안의 정원이 집 뒤편에 있단다. 이태리에서도 문을 열고 들어가야 비로소 공간을 볼 수 있었다.
현지 가이드는 얼마전에 집을 샀는데, 복덕방에서 최신의 구조를 가진 집이라고 연락이 와서 가 보았더니 십 몇년전에 지은 것이라고 하더란다. 그래도 정원이 넓고, 편리한 집구조여서 사게 되었단다. 영국에서는 보통 몇 십년이란다.
영국은 스위스와 함께 유로를 사용하지 않는 나라인데,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홍보를 하지만 국민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단다. 70%이상의 국민이 파운드화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한단다.
제일 먼저 가는 곳은 타워 브리지이다.
길은 상당히 좁은 편이다. 우리를 타워 브리지옆 조그마한 공원입구에 내려주고는 다른 데로 옮겨야 한다고 한다. 런던에서도 관광버스 기사들은 주차 정차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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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공원 입구로 들어가니 바로 템즈강이 나오고 바로 타워브리지가 보였다.
100년도 더 된 다리가 아직도 끄덕없이 버티고 있다. 중학교 교과서에서 템즈강의 다리를 놓는데 많은 인적 물적 피해를 입었다는 내용이 생각나는데 아마도 타워 브리지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타워 브리지는 가운데 부분이 들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개폐식 다리라고 한다. 간만의 차이가 심하면 7m이상이 나기 때문에 큰 선박이 통행할 때, 들려야 지나갈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을 쪼개어 다리 위를 올라가 보았다. 가능하면 타워위에 올라갈려고 하였는데 뒤쪽 타워에서만 옳라갈 수 있다고 하여 중도 포기하였다.
공원 바로 옆에는 특이하게 생긴 건물을 볼 수 있었는데 그 건물이 바로 런던시청이란다.
강쪽은 둥글게 불룩 나와 있고 반대편은 반대로 오목하게 들어가 있다. 별로 크지는 않지만 빛을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우리나라 구청보다도 작은 사이즈이다.
강바람이 너무 세서 오래 있기 어려웠다. 버스를 타기위해 가는 길에 공원에서 밤을 주웠다. 밤송이가 몇 개 떨어져 있었다.
버스는 내렸던 자리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타워브리지위를 통과하여 템즈강을 건너니 왼쪽에 "런던타워"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피의 탑"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피로 얼룩진 장소라는 뜻인가보다. 에펠탑이나 도쿄타워같이 높은 탑이 아니라 성(城)이다. 한 때는 감옥으로도 쓰이고, 조폐소로도 쓰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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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로 이동하면서 가이드의 설명이 있었다.
영화 "애수"(原題: 워터루다리)에서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리가 만나고 헤어졌던 워터루 다리는 이미 없어지고 지금의 다리는 새로 건설한 新워터루다리라고 한다.
굉장히 커다란 원형 놀이기구가 보인다.
런던아이라고도 하고 런던 휠이라고도 한단다. 2000년 밀레니엄 행사때 개장을 할려고 공사를 하였으나, 완벽한 준비가 안 되어 개장을 연기하는 수모를 당했단다. 높이가 135m나 된다고.....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차례인데 가이드는 반대편 강가로 우리를 인도한다.
국회의사당에 가까이 가면 사진을 찍기 어려우니, 사진이 제일 잘 나오는 곳으로 안내하겠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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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뉴스에서 예전에 "런던에서 박성범이었습니다."라는 멘트를 하던 장소로 안내하겠다고.....
여기 저기 공사중이다.
국회의사당과 빅벤을 버스를 타고 지나가면서 보았다.
바로 옆에 있는 웨스트민스터대성당앞에서 버스를 정차하였다.
우리는 모두 내려서 웨스트민스터대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고, 화장실도 다녀왔다.
웨스트민스터대성당은 영국왕실 행사때 주로 나오는 곳이다.
대관식이나 장례식, 몇 년전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영결식도 바로 여기에서 치뤄졌다.
영국의 건널목에는 사람이 건널 때 누르는 버튼이 설치되어 있다.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하루종일 기다려도 횡단보도에 푸른 신호는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데 영국사람들도 요즈음에는 교통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 것 같다.
젊은이들이 횡단보도에 빨간불일 때도 서슴없이 길을 건너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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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우리는 버킹엄궁으로 향하였다. 버킹엄궁은 원래 버킹엄공작의 집이었다고 한다.
버킹엄궁 중앙에 왕실을 상징하는 기(旗)가 올라가 있을 때는 여왕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오늘은 재수좋게 기가 올라가 있다. 여왕은 해외여행을 자주 가기 때문에 일년의 반이상은 기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한다.
근위대 위병교대식은 이미 끝나 있었다.
버킹엄궁전앞 광장에는 빅토리아여왕 분수대가 높이 세워져 있다. 현재의 엘리자베스여왕의 증조 할머니쯤 되나??
빅토리아여왕은 영국의 번영을 이끌었던 여왕이다.
독일인 어머니의 손에서 자란 그녀는 백부(伯父)의 뒤를 이어받았고, 남편은 알버트공으로 역시 독일인이었다.
두 사람의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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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나는 버킹엄궁 길건너에 있는 공원까지 가 보았다.
거기는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었는데 런던시민들이 드문 드문 여가를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시내 중심가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버스안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트라팔가 광장과 피카디리 써커스 그리고 다우닝가 10번지 수상관저를 얼핏 보고 지나쳤다.
트라팔가 광장에는 수 많은 비들기들이 놀고 있어서 광장앞 분수에도 오물을 뿌려대고 있다고 한다.
여름이면 어린이들이 이 분수에 들어가 물놀이를 하면서 노는데 피부병을 많이 옮긴다고 한다.
피카디리써커스에 관한 에피소드 한 마디-
관광객을 안내하고 있는데 한 사람이 오더니, 써커스 구경은 언제 하는냐고 하더란다. 피카디리 써커스를 본다고 하니까 그것을 곡예 써커스인줄 알고 그렇게 물었던 것이다.
써커스란 몇 개의 거리가 모이는 둥그런 모양의 광장을 말한다고 한다.
가운데 에로스상이 세워져 있다. 런던에서는 약속장소로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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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우닝가 10번지에 있는 수상관저는 대로 안쪽에 있어서 정확히 보지는 못했지만 그저 평범한 관저로 기억된다. 입구에는 경찰관(경호원?) 2명이 서 있을 뿐이었다.
우리나라 청와대와 같은 곳 아닌가!
점심은 한국식당에서 한식으로 하였다.
식사후 부근에 있는 가게에 가서 콜라를 한 병 사려고 하였으나, 유로가 통용이 안 된다. 부근에는 노래방도 있고, 다른 한국식당도 있었다.
식사후 우리는 대영박물관(일본식 명칭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함)을 방문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것 처럼 보이지 않는다.
문안으로 들어가니 좀 넓은 공간이 있었다.
그곳은 전에는 국립도서관이었으나 워낙 장서가 쌓이다 보니 더 이상 진열하지 못하고 다른데로 옮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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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원형의 대형 도서관 한 개만 남겨놓고 있었다.
가이드에 의하면 이 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는 유물들은 어느 것 하나도 대가를 치르지 않고 가져온 것은 없다고 한다.
비싸게 사 왔든지, 싸게 사왔든지. 그 영수증은 모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각 나라에서 자기 나라의 유물을 돌려달라고 하여도 돌려주지 않고 그 대신 언제든지 와서 보라고 한단다. 그래서 입장료는 받지 않고 있었다.
제일 먼저 본 것은 로제타석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것이다. 고대 상형문자를 해독하는데 큰 기여를 한 돌이다.그리고 이집트 유물과 메소포타미아 유물들, 그리스의 파르테논신전을 그대로 옮겨놓은 방, 미이라들을 볼 수 있었다.
동양에서는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관이 있었고, 우리나라 것은 만든지 얼마되지 않아서 청자 백자 몇 점, 서예 몇 점, 우리나라 가옥구조등 초라한 전시물이었다.
후문 쪽에서 버스는 기다리고 있었다. 버버리매장 쇼핑을 위하여 이동하였다. 워낙 유명한 제품이고 비싼 제품이기 때문에 거의 엄두를 못내고 있다. 우리는 15파운드짜리 머플러(버버리는 아님)를 하나 구입하였다.
오늘 저녁에는 네델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가야하기 때문에 저녁을 먹을 시간이 없어서 다섯 시도 못 된 시간에 저녁을 먹었다. 이탈리아식이었다. 주인도 이탈리아 사람.
히드로 공항으로 이동하면서 알버트 기념관과 기념탑 앞에서 잠시 멈췄다. 알버트공은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으로 42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
빅토리아 여왕은 요절한 남편을 그리며 한동안 모든 집무에서 손을 놓았으며, 그를 그리워하며 죽을 때까지 재혼하지 않았고, 그를 위하여 기념관과 기념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히드로 공항은 유럽에서 제일 큰 공항이다. 그러나 그렇게 크게 보이지 않는 것은 네 군데로 나누어 있기 때문이란다. 공항에서 잔돈을 쓰기 위하여 코카콜라를 한 병 샀다. 처음 한국에서 올 때 네델란드 스키폴공항에서 바닐라향 코카콜라 광고를 보았기 때문에 꼭 마셔보고 싶기도 했었다.
맛은 달콤하고 부드러웠으나 콜라의 독특한 맛을 덜한 것 같다. 잔돈이 남아서 쵸코렛도 하나 샀다. 영국 파운드화는 영국을 떠나면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파운드화는 계산하기도 어렵고 동전을 구별하기도 어려워, 물건을 집은 다음 손 바닥에 동전을 올려놓고 가져가라고 하면 알아서 가져간다.
김과 김치 라면등 부식을 준비해온 우리 일행중에서 어느분이 가이드에게 라면 몇 개를 선물로 주었다. 가이드는 아주 좋아했다. 예전에는 관광을 올 때 많은 분이 부식을 가져와서 돌아갈 때에는 한 보따리씩 주고 가서 집에서 아주 잘 먹었는데 요즈음은 거의 없다고 한다. 오늘은 가족들이 좋아하겠다고 너스레를 떤다.
네델란드 스키폴 공항에 도착하였는데 대전팀의 가방이 하나 도착을 안 하고 서울로 바로 갔다고 한다. 이런 실수도 있구나 !
공항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스키폴 A4 호텔에서 묵게 되었다. 시설이 아주 좋은 호텔이다. 내일이면 우리 집으로 간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호텔에서 유럽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호텔식당으로 갔다.
그 곳에는 많은 투숙객들이 벌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먹었던 어느 식사보다도 성찬이었다. 거의 우리나라 호텔 뷔페수준의 식사였다.
버스기사는 머리가 벗겨진 삼십대 후반이나 사십대 초반의 마음씨 좋은 네델란드 아저씨이다.
8시 30분이 되기 전부터 와서 기다리고 있다. 유럽은 근무시간이 되지 않았는데 미리 나와서 일하는 것이 드문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 가이드가 애를 먹기도 한단다. 하루 일정때문에 일찍 출발해야 할 때에도 말을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오늘의 관광코스는 간단하다. 풍차마을, 다이아몬드 가공회사, 유람선탑승이 전부다. 공항으로 일찍 가야하기 때문이다. 네델란드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풍차와 안네의 일기인데, 안네의 집은 방문계획에서 빠진 것이 못내 아쉽다.
8시 50분에 풍차마을이 있는 잔세스칸스로 향하였다. 아침 날씨는 아주 맑고 상쾌하였다.
암스테르담은 인구가 74만명의 생각보다 작은 도시이다. 한 어민이 암스텔강(江)에 댐을 만들어 정주한 것이 암스테르담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잔세스칸스의 풍차마을은 암스테르담에서 북쪽으로 13km 떨어진 마을로써 18세기에는 700여개의 풍차가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거의 효용가치가 없어져서 관광용으로 서너개만 남겨놓았다고 한다.
주차장에는 버스가 한 대 밖에 없었다. 우리가 두 번째 인가보다. 주차장은 조그만했다. 풍차가 세 개가 보인다. 마을 입구에서 사진사가 들어가는 우리들을 모두 찍는다. 나올 때 원하는 사람에게만 판매한다고 한다. 우리 부부도 포즈를 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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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안내하는 곳은 먼저 나막신을 만들고 파는 곳이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남자 한 사람이 나와서 나막신을 깍는 방법을 시연해 보여 주었다.
기계의 한 쪽에는 나막신 모양의 후레임을 놓고 다른 한 쪽에는 나무 조각을 놓아, 후레임모양대로 움직이니까 나무 조각이 나막신 모양으로 깍인다.
그런 후에 발이 들어갈 수 있도록 같은 방법으로 하고 나니 완전한 나막신 모양으로 된다. 마지막으로 앞의 뭉뚝하게 나온 부분은 조각칼로 잘라낸다.
네델란드는 낮은 지대로 땅이 습지가 많기 때문에 나막신을 신게 되었나 보다.
그 집에서는 나막신 외에 풍차를 모델로 한 액자며, 미니어춰등, 그리고 안내책자,열쇠고리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우리는 7유로짜리 나막신 저금통을 하나 샀다.
그 집앞에는 대형 나막신을 만들어놓아 관광객들이 그 앞에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배려하고 있었다.
바로 옆의 집에서는 먼저 온 다른 팀들 때문에 밖에서 잠시 기다렸다가 들어가게 되었다.
기다리다가 앞의 팀이 완전히 끝난 뒤에는 너무 늦기 때문에 같이 설명을 들을 수 있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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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제조방법을 설명하고 있었다. 우유를 치즈로 만드는 과정과 치즈의 종류를 설명하였다.
치즈는 여러가지 원료를 추가하여, 색상도 다양하게 만들고 있었다. 마늘치즈, 양파치즈등등등. 색상도 노란 치즈, 붉은 치즈, 푸른 치즈등등등. 냉장고에 보관하면 6개월까지 보관할 수 있단다. 치즈를 자르는 칼도, 슬라이스용 칼과 피자에 넣는 잘게 가늘게 자를 수 있는 칼을 선 보였다.
모두들 식품이기 때문에 공항에서 검역에 걸릴 것을 우려하여 사지 않았다.
여기도 중국 관광객이 많이 오는 것 같다. |
풍차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세 개중에 하나는 고장이 나서 멈춰있고 그나마 두 개만 돌아간다.
좀 실망이다. 관광용으로 더 많이 만들어 놓아도 될 텐데....
네델란드 풍차는 날개가 네개다. 앞에는 호수가 있었다. 호수의 물을 뒤로 퍼올리는 것인지, 뒤에 있는 물을 호수로 퍼내는 것인지 모르겠다.
입구로 나가는 동안에 농가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집은 모두 단층인데 뾰쪽한 지붕끝에 피뢰침을 설치해 놓고 있다. 한 두 집이 아니고 모두....
마을 입구에 가니 들어갈 때 찍었던 사진이 쭉 전시가 되어있고 하나 둘 사기 시작한다. 5유로란다.
나는 사기 싫었는데 아내가 사자고 한다. 샀다. 그런데 배경으로 풍차를 넣으면 좋았을텐데, 풍차는 없다.
다이아몬드 가공회사를 방문하였다. 암스테르담이 다이아몬드 가공면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건물 안에는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로 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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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주차장에 내려서 위로 올라가, 길을 건너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중앙에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왕관이 유리관 안에 진열되어있다.
설명을 듣고 있는 다른 팀이 있기 때문에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내부에 있는 매점을 구경하였다. 특별한 품목이 없고 유럽 어느 나라에서도 살 수 있는 상품들이 판매되고 있었다. 스위스 칼도 있었다. 가격은 현지 면세점보다 훨씬 비싼 편이다.
한 참을 기다린 후에야 어느 방으로 안내되어 다이아몬드의 종류와 감정방법등에 관하여 설명을 들었다. 물론 다이아몬드가 좋다. 좋은 것은 다 알지만 너무 고가이기 때문에 무두들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서민들 관광코스에서는 빠졌으먼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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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앞의 유람선 선착장으로 이동하였다. 선착장이 두 군데 있었다. 우리는 오른 쪽에서 유람선을 탔다.
선장은 70대로 보이는 나이가 많은 분으로 행동하는데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베네치아와 파리 세느강에서 이미 유람선을 타 보았기 때문에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운행시간은 1시간 20분. 지루한 코스였다. 암스테르담은 운하의 도시이므로 암스테르담을 알려면 유람선을 꼭 타 볼 필요가 있기는 하다.
운행 코스에는 부자들이 사는 동네가 있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좋은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 집들이 10억에서 15억원짜리 집이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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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델란드는 유명한 유적지나 유물이 없기 때문에 관광수입이 많지 않고, 따라서 관광상품도 적극적으로 개발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네델란드는 패키지여행보다는 배낭여행으로 이곳 저곳을 다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히딩크의 나라 네델란드. 어쩐지 친근감이 가고, 분위기도 우리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오후 2시가 되어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비교적 큰 중국음식점에서. 배가 고팠던 때문인지 맛이 있었다. 큰 음식점에 거의 가득 손님이 있었는데 우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중국손님들인 것 같았다.
유럽의 어디를 가도, 아무리 작은 시골에 가도 중국음식점은 있다고 하니 중국은 대단한 나라인 것 같다.
귀국을 위하여 스키폴공항으로 향했다. 이제 열흘동안의 여행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집으로 빨리 가고도 싶지만 한 편으로 서운한 감정도 생긴다.
공항에 도착하여 면세물건을 사지 않은 사람들은 먼저 체크인하였다. 유럽은 공동체이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 샀던지간에 유럽을 떠나는 공항에서 그동안 산 면세품에대한 세금을 환불하여 준단다. 그러니까 유럽은 한 나라인 것이다.
오후 5시에 출발하는 비행기 탑승시간이 1시간여 남아서 우리는 마지막으로 면세점들을 구경하며, 못 산 선물들을 사러 다녔다. 우리는 쵸코렛 한 통을 사고 쇼핑을 끝냈다. 아내와 내가 비행기 좌석이 떨어져 있었지만 가이드의 조정으로 옆에 앉게 되었다.
네델란드여! 안녕!!
암스테르담이여! 안녕!!
유럽이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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