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0m 이상급 4개의 산 봉우리를 넘다
1. 일자 : 2009. 2. 28 (토)
2.
장소 : 민주지산 (1242m)
3.
행로 및 시간
[도마령(10:35,843m, 각호산 1.6km) -> (상용정) -> 각호산(11:24, 1186m, 민주지산 3.4km) -> 십자로 갈림길(11:48) -> 119 7지점(12:23) -> 무인대피소(12:44) -> 민주지산(12:57, 1242m, 석기봉 3.5km) -> (중식, 13:25 출발) -> 삼두마애불(14:37) -> 석기봉(14:35, 1240m, 삼도봉 1.4km) -> 삼도봉(15:20, 1177m, 황룡사 4.4km) -> 삼마재골(15:44) -> 응주암 폭포(16:11) -> 잣나무
숲 삼거리(16:38) -> 황룡사(16:50) -> 주차장(17:00)]
4.
동행 : 홀로 / 산죽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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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지산 산행 개요 >
태백산 산행 이후 근 한달
여 만에 묻지마 버스를 타고 민주지산에 올랐다. 도마령에서 출발하여 각호산,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을 거쳐 물한계곡으로 하산하였으며, 15km 거리를 6시간 30분만에 주파하였다. 도마령에서
각호산까지 초반 1시간은 계속되는 오르막으로 힘겨웠으나, 그
후는 능선길을 오르 내리는 비교적 편안한 산행이었다. 대부분이 완만한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능선 산행이었지만
총 거리가 15km로 길었으며 길 사정도 얼음이 녹아 펄 길이 많아 여간 신경이 쓰이질 않았다. 이 모든 것을 행복한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것은 종주 산행 내내 우측으로 펼쳐지는 덕유능선과 백두대간 길의
장엄함 일 것이다. 이들은 산행 동안 나와 길을 같이 했으며 언제 보아도 나를 따듯하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반나절이 조금 넘는 시간에 1100-1200급 4개의 산봉우리를 넘었던 것은 쉽게 다시 오질 않을 경험이었고, 앞으로
잦아질 장거리 산행에 대한 자심감도 갖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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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령에서 각호산 >
산죽산악회가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황간 IC를 경유하여 오늘 산행 들머리인 도마령에 도착한 것은
10:30분. 옛날 칼 찬 장수가 말을 타고 넘은 것에서 명명된 도마령은 843m 높이로, 따뜻한 겨울 햇살을 받으며 나를 산의 품에 넘겨
줄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도로에서 바로 이어지는 예쁘게 단장한 계단 길을 따라 오늘의 산행을 시작하였다.
< 도마령 산행
들머리 / 각호산 바위 전망대에서 본 덕유능선 >
오늘 산행을 준비하며 산악회에서
제시한 행로가 너무 긴 것이 아닌가 하며, 고수들의 산행기를 살펴 보았고, 그 중 도마령에서 황룡사까지를 7시간 40분 만에 종주한 기록이 비교적 상세했다. 그러나, 평소 애용하는 100대 명산 수첩을 근거로 소요시간을 추정해 보니
쉬지 않고 걸으면 6시산 남짓이 소요될 듯 하다. 차이가
크다. 어떤 것이 맞을지 나중에 확인해 보자. 확실한 것은
어느 것을 근거하든 도마령에서 각호산까지의 오르막 길과 석기봉 암봉이
오늘 등산의 고비일 것임에는 이견이 없다. 도마령에서 언덕을 오르자 상용정이라는 멋진 정자가 보인다. 공들여 만든 정자로 도마령에서 쉬어가는 객에게 좋은 전망을 제공해 줄 것 같다. 초입이라 바로 길을 재촉한다. 도마령이 843m 각호산이 1186m이니
350m의 고도를 한 시간 동안 오를 것이다. 상용정을 지나며부터 길은 본격적으로 오르막이다. 중간 중간 아주 짧은 평지길이 있기는 하나 대체로 가파른 된비알이다. 리본
쉼터을 지나고도 한참을 오르니 사방이 트인 바위 전망대가 나온다. 바로 위 각호산 정상도 보인다. 이름 모를 산군들의 파노라마가 장엄하게 펼쳐지는데, 남서쪽으로 멀리
희미하게 눈길이 이어지는 곳이 덕유산 설천봉의 스키 코스다. 흉물스럽게 산을 파헤친 모습이 아쉬웠으나, 그곳이 덕유능선의 시작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확실한 랜드마크가 되어 주고 있다.
덕유능선 앞쪽으로도 마치 물결치듯 산들의 여울이 일렁이고 있다. 민주지산이 명산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이곳에서 바라보는 덕유능선의 풍광이 가장 큰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어 오른 각호산 정상. 잡목의 막힘이 없어 전망바위 보다 한 수 위의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 등산의 고도를 잡아 먹는 오르막은 이것으로 마무리 된다는 생각에 다시 힘이
솟는다. 한참 동안 주변 경관을 바라본다. 이곳까지 50분이 체 안 되었다. 빠른 행보다.
< 각호산 정상에서 >
<
각호산에서 민주지산 >
몇 년 전 산 서적을 본격적으로
탐구할 때 마주친 ‘민주지산’이라는 이름은 왠지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었다. 민주투사들이 자주 오르는 산? 여자 이름
같기도 하고, 산 이름에 ‘之’자가 붙은 것도 특이하고, 흔치 않은 넉자짜리 산 이름이라니, 그만큼 낯설고 귀설은 이름이다. 그 유래가 궁금해 다시 조사해 보니, ‘岷周之山’전체적으로 민두루한 육산인 데서 그 유래가 왔음이 정설일
것이다.
각호산 정상에서 곧바로 험한 밧줄 길이 이어진다. 아픈 어깨 때문에 가뜩이나
몸을 살이고 가는데 가파르게 이어지는 암벽을 보니 한숨이 나온다. 줄을 잡는 것 보다는 가급적 험해도
바위를 딛고 내려선다. 곧이어 각호산 이정표가 나온다. 민주지산까지는 3.4km, 1시간 30분 여가 소요될 것이다. 오를 때는 몰랐는데 날이 따듯해 지며 길가에 얼음이 녹고 있다. 길이
점차 뻘 길로 바뀌고 있고, 중간 중간 오르내림은 계속되지만 육산 특유의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오르막 보다는 이곳 같은 능선 길의 완만한 내리막이 내겐 제격이다.
<
민주지산으로 향하는 산죽 길 / 특전사의
아픔이 깃든 무인대피소 >
뻘 길에 신경이 쓰이지만, 간간이 이어지는 산죽길의 푸르름이 싱그러움을
준다. 새로운 희망이 돌아나는 느낌이다. 한참을 지나니 십자로
갈림길이 나온다. 민주지산까지 아직 2.9km가 남았다 한다. 이어지는 ‘119 신고 7지점’, 오랜만에 나타나는 인공 구조물이다. 이곳에서 20여분 거리에 무인대피소가 있었다. 1998년 4월초 이곳 부근에서 천리행군 중이던 특전사 6명이 쏟아지는 눈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동사한 곳에 대피소를 지었다 한다. 폭설과 강풍, 자연현상의
예기치 못함과 낯선 길 사정과 체력의 고갈 등이 나은 참사이다. 4월초에 폭설이 내린 것도 특이하지만
최고의 체력을 자랑하는 특전사 대원이 그것도 6명씩이나 사고를 당한 것은 정말 이레적이다. 이 사고를 備忘 하고 혹시나 있을 유사 사고를 대비코자 대피소를 지어 놓은 것이다. 안을 들여다 보니 제법 너른 평상에 페치카도 있다. 다만 주변에
버려진 쓰레기 더미가 안타갑다.
민지지산 휴양림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지나 마지막 오르막을 기어 오르니 드디어 민주지산 정상이 나타난다. 12시 55분. 도마령
출발 2시간 20분 만에 정상에 올랐다.
< 민주지산 정상에서 1 >
지금까지로 볼 때, 고수들의
산행기 보다는 100대 명산의 소요시간 안내가 정확한 듯 하다. 이곳
민주지산 일대는 동으로 한반도의 허리춤이 되는 추풍령을 딛고, 한반도 남반부를 동서로 갈라놓는 덕유산을
연계하여 북쪽으로 천만산과 각호봉을 이고 충청도와 전라도의 사이에 둘러치는 석기봉, 삼도봉까지 장장 20km가 낙낙한 산맥을 이룬다.
정상에서 사진 한 장 찍고 식당 자리를 찾아 나선다. 정상부근에는 따스한 햇살이 쏟아지고 마른 풀이 우거져 더욱 포근한 기운이 감돈다. 준비한 점심을 푼다. 힘겨운 산행 끝에 맛보는 도시락은 언제나 맛나다. 입으로는 음식을 먹고 눈으로는 산들의 전경을 즐긴다. 행복감이 절로
든다. 혼자라는 아쉬움도 있지만 호젓하게 즐기는 여유가 생겨 좋다.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든다. 내가 자리한 곳이 명당인가 보다. 밥을
먹고 옷을 챙기는데 입고 온 면티가 땀에 흠뻑 젖어 있다. 이래서 산에서는 기능성 옷이 필요한가 보다. 후미진 곳에서 면티를 벗고 복장을 간단히 하니 마음도 시원하다. 아쉬운
듯 덕유능선과 백두대간 길을 뒤로 하고 석기봉으로 길을 나선다.
< 산들의 파노라마 / 민주지산 정상에서 2 >
<
민지지산에서 석기봉 >
내림 길로 들어서 머지 않은
곳에 쪽새골 갈림길이 나온다. 도상 연습에서 산행이 힘들면 이곳에서 물한계곡 쪽으로 탈출할 생각을 했던
곳이다. 다행히 체력은 아직 여유롭다. 최근 등산 잡지에서
산행 시 체력 안배에 관한 글을 읽었는데, 오를 때 40%, 하산
시 30% 그리고 나머지 30%는 비상시를 위해 비축해 두어야
한단다. 산행 사고의 대부분은 무리한 산행에 의한 탈진과 저체온증에서 발생하는데 체력을 너무 소진하면
결국 불행한 사고로 이어진다 한다. 오늘 6시간 이상의 장거리
산행에서 나의 체력을 한 번 시험해 보자. 앞으로 있을 설악산 종주 산행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쪽새골 감림길을 지나며 부터는 별다른 이정표가 없다. 석기봉까지는 3.5km 짧지 않은 거리다. 길은 더욱 질퍽거린다. 등산화와 바지 아랫단은 흙으로 범벅이다. 이런 길을 쉼 없이 터벅터벅 걷는다. 걸음을 멈춤이 오히려 어색할
정도로 걷기에만 매진한다.
< 석기봉 정상에서 >
민주지산 출발 1시간 만에 석기봉 암봉 밑에 도착한다. 가파른 암괴에 매달린 밧줄을 보니 전의가 상실된다. 우회길로 돌아
든다. 우회길도 만만치 않다. 얼음은 녹지 않은 사면 길을
돌아드니 ‘석기봉 삼두마애불’이라는 표지와 함께 암괴가 보인다. 한 몸에 세 개의 머리를 새긴
불상이라 하는데 모습을 찾기가 쉽지 않다.‘石寄峯’ 기이한 암괴 덩어리인 석기봉은
불상위 바위군이다. 정상에 올라오니 전망이 시원하다. 지나온
민주지산이 아득히 멀리 있고 가야 할 삼도봉이 부드러운 길을 따라 끝에 서 있다.
< 삼두마애불 앞에서 / 하산
길에 올려다본 석기봉 >
<
석기봉에서 삼도봉 >
내려서며 올려다 보는 석기봉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다른 위치에서 사물을
볼 때 내가 알던 것 과는 다른 모습이 보인다. 세상사 이치인가 보다.
석기봉에서 삼도봉까지의 길은 이제까지보다 더 온순한 능선길이다. 다만 쉼 없는 4시간의 산행에 다리가 뻐근하다.
< 삼도봉 정상에서 >
중간에 정자 삼거리에서 응주암골을
빠지는 갈림길을 지나 30여 분을 걷자 삼도 화합탑이 서 있는 삼도봉 정상이 나온다. 전국적으로 ‘삼도봉’이라
명명된 산은 많으나,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가 나뉘는 이곳이 진정 삼도봉일 것이다. 둥근 공을 머리인
인 상징물이 각기 다른 세 방향을 보며 포효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혹자는 인공의 냄새가 지나치다 하나
시간이 지나면 이 탑도 자연과 동화할 것이니 그리 염려할 바는 아닐 것이다.
<
삼도봉에서 황룡사 >
산악회 버스 출발시간은 5시 30분. 저녁 먹을
시간의 여유를 생각하니 시간이 빡빡하다. 서둘러 길을 나선다. 아무리
바빠도 눈 앞에 펼쳐지는 백두대간의 파노라마는 담아 두어야지 하는 생각에 카메라를 누른다. 삼도봉에서
삼마재골까지 20여 분은 백두대간 길이다. 짧지만 색다른
경험을 한다. 이곳 역시 내가 언젠가 하게 될 백두대간 종주 시 다시 들른 곳이라 생각하니 색다른 기분이
든다.
삼마재골 사거리를 지나며부터
길은 본격적인 계곡 하산 길이다. 초입은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길은 여전히 진흙탕이다. 이런 길을 1시간 넘게
내려 갈 생각을 하니 까마득하다. 5시간이 넘는 산행에 내 다리가, 이제는
본인 생각도 좀 해 달라고 보챈다. 그래 힘들겠지 조금만 더 가자.
고도가 급격히 낮아짐을 느낄 때 길도 순해 진다. 좌측 계곡의 물소리가 세차다. 물한계곡이다. 물이 한없이 많아 붙여진 이름일까? 이 모진 가뭄에도 저리 물살이
세찬 것을 보니 명불허전임을 다시금 실감한다. 경사도가 낮아짐에 따라 길에 돌이 많아 진다. 너덜 수준은 아니지만 발바닥에 무리가 온다. 하산 길이 왜 이리
길까 하는 생각이 들 무렵 우렁찬 소리와 함께 응주암폭포가 자태를 드러낸다. 얼음 사이로 내리꽂는 물살이
세차다. 밑에는 너른 소가 형성될 정도로 규모가 작지 않다. 겨울날에
보기 힘든 색다른 모습이다. 응주암 폭포를 지나고 한참을 더 가서 용소 앞 개울을 건넌 후에야 물한계곡
유원지의 너른 길이 나온다. 잣나무 숲이 인상 깊은 삼거리를 지나자 우측으로 황룡사에 절집 지붕이 보인다. 생각보다는 크지 않은 절집이다. 들어갈 볼 힘이 없다. 5분 여를 더 내려오자 물한계곡 돌탑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