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의 복지선교, 돌봄 복지와 돌봄 마을로!!" = (에큐메니안 연재(12)『코로나19 문명 전환기의 생명망 목회와 돌봄 마을』 나눔사, 2022=
한국교회의 복지선교는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민중 선교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토대로 한국교회는 1987년부터 1997년까지 사회복지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냈으며, 이후에는 다양한 모습으로 발전을 거듭했다. 그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80년대 초부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각 지역에는 민간 탁아소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한다. 1980년대 공단과 빈곤 지역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탁아소들은 가난한 노동자의 아이들도 건강하고 즐겁게 생활하고 배울 권리가 있다는 꿈에서 시작되었다. 이는 오늘날 지역과 마을을 대상으로 한 사회복지 활동의 맹아라 할 수 있다.
이 일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들은 젊은 기독교 여성 운동가들이었다. 이들의 노력 끝에 1989년 「아동복지법 시행령」이 개정되어 탁아시설에 관한 규정이 만들어지고, 1990년 12월 국회에서 「영유아보육법」이 통과되어 이듬해 1월 공포되는 쾌거를 이루며 아동복지 역사의 새 장이 기독 여성으로부터 열리게 된다.
탁아소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아이들에게 방과 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공부방’이 출현했다. 탁아소와 공부방은 한국 지역 사회 복지와 교육의 중요한 전달체계를 확보하는 데 큰 영향력을 끼쳤다. 이러한 결과를 얻기까지 각 지역의 기독 여성, 작은 교회, 그리고 신념으로 뭉친 탁아소와 공부방 교사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다. 한마디로 기독교 여성 신앙인들의 열정의 산물이었다.
각 지역에 설립된 공부방은 2004년 1월 29일에 개정된 「아동복지법」에 의해 ‘지역아동센터’라는 법정 아동복지시설 중 하나가 되었다. 명칭의 변화에서 엿볼 수 있듯, 처음에는 공부방이라는 이름으로 어린이들의 학습을 지원하는 기능만 부각되었지만, 이후로는 명실공히 어린이들을 위한 종합복지센터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사회복지시설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이다.
특히 IMF 구제금융 이후 2000년대 지방자치 시대로 진입하면서 부천의 경우 60여 개의 지역아동센터와 15개의 작은 도서관이 각 동네에 세워졌다. 이들은 부천의 시민사회와 함께 마을과 지역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교육과 복지 전달자가 되었다.
1990년대 실업 극복 국민운동, 자활 운동과 지방자치의 본격화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 이후에 대량실업 문제가 발생하고, 신자유주의 체제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박으면서 고용 불안과 빈곤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이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가와 시민사회의 주도로 사회적 경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다.
그 흐름 가운데 하나인 실업극복국민운동위원회는 출범 당시 국민 의식 개혁, 실업 기금 모금, 실업자 구호 및 자활 지원, 민․관 협력 사회안전망 구축, 21세기 사회보장 기틀 마련을 5대 과제로 내걸었다. 이후 자활사업이 제도화되는 과정에서 특별취로사업과 창업 지원, 공공근로 일자리 지원 등의 사업으로 실업 극복 운동과 결합한다. 이를 통해 실업 극복 운동은 ‘사회적 일자리’로 개념화된다.
이러한 실업 극복 국민운동과 자활 운동 등은 각 도시와 마을에 있는 작은 마을교회와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던 노동복지단체 및 지역의 복지단체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에 대해 부산장신대 황홍렬 교수는 ‘이러한 실업극복운동과 자활사업은 당시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던 민중교회들을 통해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교회의 지역 복지 운동에 커다란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였다.’라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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