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쫄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나는 조금 특별한 집에 살고 있다. 주택의 형태로 치면 빌라. 흔한 다세대 주택이지만 아이를 함께 키우자고 모인 사람들이 직접 지은 흔치 않은 집이다. 열 네 세대(14)가 살고 있고, 한 채의 커뮤니티룸(1)이 있다고 해서 ‘14+1=15’, 일오집이라고 한다.
공동 주택은 보통 이미 지어진(지어지기 전이라도 디자인이 정해진) 집을 구입한다. 일종의 기성품이라면 일오집은 맞춤집이다. 각자가 집에서 구현하고 싶은 로망을 조금씩 담았다. 디자인도 다 다르다. ‘나중에 돈 벌면...’하고 미루었던 집에 대한 바람들은 함께 하면서, 바로 지금 가능한 일이 되었다. ‘아이가 뛰어놀 커다란 마당이 있었으면. 수영장이 있으면 무더운 여름도 금방 지나갈 텐데. 텃밭이 있다면 상추도 심고, 오이도 심고. 헬스장 가기 귀찮은데 연예인들처럼 헬스룸 하나 갖는 건 어떨까?’.... 이런 바람들은 모두 현실이 되었다. 10년 전 이야기다.
처음에 집을 지을 때 꽤 화제가 되었다. 신문에 기사가 났을 때다. 기사를 읽고 나서 깜짝 놀랐다. 집이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일오집 같은 집들이 늘어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꺼이 취재에 응했다. 개인 공간을 열어야하는 불편을 감수하고서, 내 나름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악플이 절반 이상인 것이다. ‘10개월 안에 싸우고 절단난다에 내 손목을 건다.’(무슨 손목씩이나 걸 일인지)부터 좋을 때는 좋은데, 싸우면 지옥이 될 거라는 말이 대부분이었다.
처음엔 화도 나고 기분이 상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왜 열 네 세대가 모여 살면 오래 못가 지옥이 될 거라고 생각할까? 그것은 아마도 타인, 집단에게 입은 상처 때문은 아닐까? 특히 학교. 나는 학교를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부정적으로 심어준 주범으로 의심하고 있다. 너무 많은 인원이(나 때는 한 반에 60여명의 아이들이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너무 가혹한 활동-가만히 앉아서 남의 말을 들으며 공부를 하는-을 주로 하는 곳. 그곳이 학교였으니 단체생활에 대한 첫 경험이 썩 좋을 수 없다.
갈등.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반드시 겪게 되는 과정이다. 심지어 내 안에서도 겪을 수 있는 것이 갈등인데, 그것이 무섭다면 어떻게 개인이, 공동체가 성장할 수 있을까? 갈등을 겪더라도 조정할 수 있다는 믿음, 서로 회복불가의 상처를 입지 않고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사람이, 타인이, 삶이 두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경험이 없다면, 일오집 같은 공동체 주택에 사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겠다.
갈등을 지혜롭게 극복한다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가능하기는 한 걸까?
세월호 특별법 서명을 받던 곳에서 일군의 노인들이 서명대 집기를 부수고 유가족들에게 욕설을 퍼붓는 일이 있었다. 그 고통스러운 소동이 끝난 후 행패를 부리던 노인 중 한 명과 얘기를 나누게 됐다. 나는 그 소란에 대해서 묻지 않고 “고향이 어디세요?” 물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오래전 세상을 떠난 아내와 살았던 시절로 갔다가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아들과 며느리 이야기로 옮겨왔다. 거리에 버려진 장롱 같은 그의 삶을 듣다가 눈물이 차오르기도 했다.
한참 만에 노인이 불쑥 말했다.
“내가 아까 그 아이 엄마(세월호 유가족)들한테 욕한 건 좀 부끄럽지.”
“그런 마음이셨군요. 그러셨군요.”
<당신이 옳다>에서 소개된 일화다. 지은이 정혜신은 노인의 ‘나’ 이야기에 주목했다. 그것은 존재 그 자체를 바라보는 공감이다. ‘노인이 보였던 합리성도 사실은 자기 존재가 주목받은 후에 생긴 내면의 안정감에서 나온’ 것이라 말한다. 노인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학교에서 주목받지 못하는 청소년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정혜신은 소멸해가는 나를 살릴 수 있는 것이 ‘공감’이라고 말한다. 공동체 운영의 중요한 원리도 다르지 않다고 깊이 동의한다.
일오집에 산 지 올해로 10년이 된다. 사람들은 TV에서 보았다고, 정말 진짜로, TV에 나온 것처럼 좋기만 하냐고 묻곤 한다. 혹시 말 못할 어려움이 있는데 방송에서는 못 한 이야기가 있지 않느냐고. 그렇게 좋기만 한 공동체는 있을 수 없다고.
물론 공동체의 어려움은 당연히 존재한다. 그런데, 그것은 아이를 함께 키운다는 이득을 위해 꾹 참아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와 자녀의 성장을 위해 겪는 의미 있는 과정, 도전 같은 것이다.
일오집은 10개월이 아니라 10년째 잘 살고 있다. 쫄지 마라. 가능하다.
첫댓글 아... 안돼~ 추월당하지는 않으리라 다짐했건만... 아직까지 당신이 옳다라니ㅜㅜ 다시 분발해봅니다.
와... 소희 샘, 그 유명한 '공동주택'을 짓고 사는 분이셨군요! 일오집 인터뷰하러 부산 가야겠어요!
아 저도 공유주택에 관심 많아서 일오집 눈 여겨봤었는제 안쏘니 선생님이 살고 계시다니!!!! 선생님 얘기가 더더 궁금해집니다~ 선생님의 매력은 어디까지!
부산이라 취재오기 더 좋답니다. 그 핑계로 놀러오기. 관심 고맙습니다. 화제성에 살짝 얹어 갑니다ㅋ
길에 버려진 장농 같은 삶이라는 표현이 좋아요 그리고 공동체 생활의 어려움은 존재하나 아이를 위해 꾹 참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성장을 위해 겪은 의미있는 과정이라는 문장도 좋고요. 쫄지마라. 가능하다.까지 쌤의 매력이 흘러넘치는 글이네요
선생님의 매력이 뿜뿜 느껴지는 유쾌한 글이예요~ 그 안에서의 생활을 다음에도 풀어주실 수 있을까요~? ^^
네, 그럴까요? 나중에 한 번 더 써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