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문화관광: http://tour.mokpo.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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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남서부 무안반도의 남단에 있는 시.
연혁
자연환경
노령산맥에서 뻗어나온 지적산(芝積山 : 189m)·부주산(浮珠山 : 141m)·대박산(大朴山 : 156m)·양을산(陽乙山 : 156m)·입암산(笠巖山 : 121m)·유달산(儒達山 : 228m) 등이 저평한 구릉성 산지를 이루며 시내 곳곳에 흩어져 있다. 이들 산지 사이로 바다를 메워 만든 평야가 넓게 펼쳐져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시가지와 공단이 들어서 있다. 유달산은 영산강·삼학도(三鶴島)와 함께 지역을 대표하는 자연경관을 이룬다. 삼학도는 1968년 육지와 연결되면서 부두로 조성되었고, 영산강 하구는 1981년 영산강유역개발계획의 하나로 영암군 삼호반도와의 사이에 방조제가 축조되면서 영산호로 바뀌었다. 한편 고하도(高下島)·눌도(訥島)·달리도(達里島) 등 천연의 방파제 구실을 해주는 섬들로 근해의 물결이 잔잔하고 수심이 깊어 천혜의 항만조건을 고루 갖추고 있다.
인구
1949년 시로 개편될 당시만 해도 호남지방 제일의 상업 중심지로 그 세력권에 신안군·무안군·해남군·진도군과 제주도까지 포함되어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지역 중심지로서의 기능을 광주광역시로 많이 빼앗기고 항구로서의 기능도 크게 약해졌다. 그러나 더딘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지리적으로 다도해를 끼고 있고 수륙교통이 편리하여 인구가 계속 증가해왔다. 인구추세를 보면 1965년 15만 7,382명, 1970년 17만 7,801명, 1975년 19만 2,927명, 1980년 22만 1,856명, 1985년 23만 6,078명, 1990년 25만 3,423명으로 계속 증가했으나, 1995년 23만 9,571명으로 감소세를 보였다. 또한 1975~95년의 20년간 인구증가율도 24.2%로 한국 시부(市府)의 인구증가율로는 낮은 편에 속한다. 행정동별로는 행정·상업 중심지인 용당동·산정동·동명동·이로동 등의 상주인구율이 높은 반면, 연동·충무동·북교동·대반동·죽동 등의 도서와 시 외곽지역의 인구는 점차 감소하여 인구의 도심집중현상이 나타난다. 시가지는 현재 시역의 약 2/3를 차지하는 해안매립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목포시의 경제사정이 좋았던 일제강점기 때 시가지가 무질서하게 팽창되어 업무·주거·상업 등 도시기능이 제대로 분리되지 못했으므로 도시공간이 좁고, 교통·주택·상하수도 시설 등 도시기반시설이 부족한 형편이다. 하당·매립 지구의 택지개발은 1999년에 완료되었으며 옥암 지구는 2003년에 착공할 예정이다.
산업과교통
지방산물의 집산지이자 연안어획기지로 성장해온 목포는 총취업인구 중 3차산업 종사자 75.3%, 2차산업 종사자 12.4%, 1차산업 종사자 12.3%로서 상업과 서비스업이 발달해 있다. 총경지면적 13.29㎢ 가운데 논이 3.99㎢, 밭이 9.3㎢이며, 경지율은 28.9%이다(1996). 농업가구는 전체가구의 0.2%에 불과하며, 주요농산물은 쌀 외에 무·배추·고추·딸기·포도 등이 생산된다. 수산업은 1897년 개항 이후 인근 다도해의 어업기지로 발달했으며, 조기·병어·민어·새우·갈치 등이 어획된다. 연안의 간석지에서는 꼬막·굴·대합 등의 양식업과 제염업도 행해지고 있다. 풍부한 노동력과 편리한 교통을 바탕으로 어업도구·도자기·양조업 등의 전통산업이 발달해 있으며, 1972년 석현동공업단지와 1990년 산정동농공단지 등이 조성되면서 공업이 점차 활기를 띠어 1996년 현재 남양어망·행남사·조선내화·보해양조 등 총 178개의 기업이 입지해 있다.
특히 1981년 영산강 하구둑의 건설은 부족했던 공업용수를 공급해줌으로써 이 지역의 공업발달에 크게 기여했다. 1996년에 완성된 대불공업단지는 단지 내에 공단, 기술정보 센터, 주거, 유통 센터 등을 설치하고, 기계장치제조업·조립금속·석유화학·제철·제강·비금속공업 등 중화학공업을 유치하고 있다. 목포시는 일제강점기에거점도시의 하나로 성장하면서 호남지방에서 생산되는 쌀·누에고치·면화 등을 일본으로 반출하고 또 일본에서 가공된 물품을 들여오는 무역항으로 알려져왔으나 해방 후 그 기능은 침체되었다. 1996년 현재 중앙·동부 등 상설시장 4개와 농업협동조합과 수산업협동조합이 각각 1개소가 있으며, 목포어시장은 조기·갈치·멸치 등의 수산물 거래가 많기로 이름 나 있다. 일찍부터 도시화되고 지역의 경제기반이 주로 상업이었기 때문에 음식점·술집·숙박업 등의 서비스 업소가 많다.
유물,유적,관광
시내에는 국가지정문화재(보물 1, 사적 1, 중요무형문화재 1), 도지정문화재(유형문화재 1, 기념물 2), 문화재자료 3점 등이 있다. 고인돌·동검 등 청동기시대의 유물·유적이 출토되었으며, 이충무공기념비(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39호)를 비롯하여 목포시사(木浦詩社 : 전라남도 기념물 제21호)·고하도이충무공유적(高下島李忠武公遺蹟 : 전라남도 기념물 제10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그밖에 안호성지·유달성지·노적봉·유달산봉수지 등이 있다. 건축물로는 준르네상스식 건축양식으로 알려진 목포시립도서관(사적 제289호)이 있다.
도내에서 가장 먼저 그리스도교·신학문·현대기술 등과 같은 개화문물을 받아들인 곳이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2년 미국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정명여자학교와 1897년 설립된 무안공립소학교(지금의 북교초등학교)이며, 이어서 목포제일중학교·목포상업중학교·이로소학교 등이 세워졌다. 1996년 현재 유치원 52개소, 초등학교 23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15개교와 목포해양전문대학·목포전문대학·성신간호전문대학·목포대학교가 있으며, 장애자를 위한 특수학교 1개교가 있다.
목포문화원과 목포예총지부에서는 매년 10월 문화예술제를 함께 열어 지방문화와 예술을 계승·보급하고 있으며, 목포시립도서관, 방송국지국(KBS·MBC), 향토문화관, 측후소, 체육관 등이 있다. 예로부터 문인·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된 고장이기는 하지만 일찍이 도시화·근대화 되었기 때문인지 전승되는 전통문화의 양과 종류가 많지 않다. 민속놀이로는 목포문화예술제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줄다리기·널뛰기 등이 있다. 설화는 〈삼학도전설〉·〈나불도와 갓바위 전설〉 등 지명유래담이 주종을 이룬다. 민요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요는 없고 몇 가지 의식요와 유희요가 전하며, 〈탕건바위노래〉·〈꿩서방노래〉·〈놀개노래〉·〈유선가〉 등이 전해온다.
교육과문화
도내에서 가장 먼저 그리스도교·신학문·현대기술 등과 같은 개화문물을 받아들인 곳이다. 최초의 근대 교육기관은 1902년 미국 선교사에 의해 설립된 정명여자학교와 1897년 설립된 무안공립소학교(지금의 북교초등학교)이며, 이어서 목포제일중학교·목포상업중학교·이로소학교 등이 세워졌다. 1996년 현재 유치원 52개소, 초등학교 23개교, 중학교 13개교, 고등학교 15개교와 목포해양전문대학·목포전문대학·성신간호전문대학·목포대학교가 있으며, 장애자를 위한 특수학교 1개교가 있다.
목포문화원과 목포예총지부에서는 매년 10월 문화예술제를 함께 열어 지방문화와 예술을 계승·보급하고 있으며, 목포시립도서관, 방송국지국(KBS·MBC), 향토문화관, 측후소, 체육관 등이 있다. 예로부터 문인·예술가들이 많이 배출된 고장이기는 하지만 일찍이 도시화·근대화 되었기 때문인지 전승되는 전통문화의 양과 종류가 많지 않다. 민속놀이로는 목포문화예술제에서 행해지는 강강술래·줄다리기·널뛰기 등이 있다. 설화는 〈삼학도전설〉·〈나불도와 갓바위 전설〉 등 지명유래담이 주종을 이룬다. 민요의 경우에는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동요는 없고 몇 가지 의식요와 유희요가 전하며, 〈탕건바위노래〉·〈꿩서방노래〉·〈놀개노래〉·〈유선가〉 등이 전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