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에 색을 칠하는 것도 여행이다
자신의 집을 공개한 가구 디자이너는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후 집 안팎의 벽 색깔을 바꾼다. 여행 과정에서 소금처럼 남은 인상적인 색감은 벽에 고스란히 반영된다. 집에는 유독 거울이 많다. 주변 경치를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한 포석이다. 햇볕 쨍하고, 바람 불고, 비 오고, 눈 내리는 풍경은 방 안쪽에 걸린 거울들을 통해 작가의 가슴에 들어온다. 미술을 전공한 피렌체 출신의 작가는 이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았다. 파르네세 Farnese 궁전 가까이에 있는 자신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가구들과 물건들, 그리고 크고 작은 소품의 조화를 그녀는 이 집에서 먼저 시험한다. 흰 색의 램프는 어떤 장식의 가구와 잘 어울리는지, 분홍색 천을 덧댄 의자는 어떤 타일 위에 놓였을 때 그 색감이 더욱 온전하게 발현되는지 그녀는 수학 문제를 푸는 학생처럼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하여, 그녀의 집에는 세계 각지에서 발견한 수공예품들과 자신이 만든 가구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녹색을 좋아합니다. 자홍색과 잘 어울리는 이 색은 일상에 활력을 줍니다. 보랏빛이나 자홍색 등 다양한 색의 양탄자도 좋아하고, 의자의 쿠션을 여러 가지 색으로 장식하는 것도 좋아합니다. 새로운 시도를 하고 물건들을 옮기다 보면 방의 표정이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변화하는 것을 실감합니다. 우리 일상도 이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여행을 떠나면, 운동을 시작하면 지하실처럼 어둑한 일상에 볕이 듭니다.” 디자이너는 주방에 특히 마음을 썼다. 주방의 가구들은 카라레(Carrare, 이탈리아 토스카나에 위치한 도시 이름으로 이곳의 대리석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대리석에 어울리게 맞춤 제작되었다. 테라스에는 밀짚으로 만든 베트남식 종 모양의 소품을 두었고, 군데군데 자신이 직접 만든 철제 탁자와 의자, 슬레이트 판을 두었다.
이탈리아의 가구 디자이너 일라리아 미아니
Ilaria Miani가 티베리스 강 남쪽, 바티칸 Vatican과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 지구) 중간에 위치한 자신의 작업실 겸 집을 공개했다. 다양한 색조로 우아하게 빛나는 4층 건물은 디자이너의 영감과 기호에 의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있었다. 디자이너는 이곳에 팔라초라키오 Palazzolaccio란 이름을 붙였다. 흔히 고급스러운 빌라나 리조트에 붙는 이름이지만 비교적 아담한 규모의 이곳에도 이 ‘명패’는 잘 어울린다. 식당 겸 서재에 놓인 탁자는 적갈색 철제 받침과 페인트칠한 상판이 있고, 탁자 위에는 그녀가 영감을 얻는 소중한 물건들이 펼쳐져 있다. 프랑코 안젤리 Franco Angeli의 그림 아래에는 접이식 테이블과 의자, 헵워스(Hepworth, 간결하고 유기적인 추상 형태를 추구한 영국의 작가)의 램프가 있고, 그 주변에는 일라리아 미아니가 만든 은도금과 래커 칠을 한 세라믹 꽃병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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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서민지구에 위치한 일라리아의 집 외관.
2, 10 철재 탁자와 베트남 스타일의 인테리어 소품으로 꾸민 작업실은 심플하되 감각적이다.
3 17세기부터 존재했던 건물임을 증거 하는 듯한 오래된 인테리어 소품.
4 등나무 아래 자리한 야외 테라스. 주방 가구들 대부분은 카라레 대리석의 분위기에 맞게 맞춤 제작했다.
5 마루와 바닥은 집의 원형 그대로 두었으되 벽을 페인트칠하고 터 그 안에 ‘감각’을 더했다.
6 형이상학파를 세운 이탈리아 화가 데 키리코 De Chirico의 원작을 따라 마우리치오 리가스 Maurizio Ligas가 그린 집의 외관.
7 커튼에서도 ‘색’의 미학은 발견된다. 흰색과 붉은 색의 감각적 조합.
8 오래된 문 옆에 자리한 디자인 제품이 인상적이다.
9 식물과 꽃에서 영감을 얻은 응접실. 장미보다 화려하고 우아하다.
11 욕실 전경. 대리석이 욕조를 둘러싸고 있고, 벽에는 마우리치오 리가스의 그림이 걸려 있다.
12 러시아에서 귀화한 프랑스 화가 폴리아코프 Poliakoff의 작품에 영감을 받아 제작한 자기 세트.
창조하는 것보다 복원하는 즐거움이 크다
테라스는 디자이너의 집에서 중요한 공간을 차지한다. 테라스는 주방과도, 응접실로도 연결된다. 그곳에서 보면 로마의 시가지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한 해 중 여덟 달을 등나무 아래에 앉아 지저귀는 새 소리와 교회의 종소리를 들으며 실외에서 식사를 즐긴다. 인접한 풍경 너머로는 생탕주 Saint-Ange 성이 보인다. 자니쿨레 Janicule 언덕을 마주보고 있는 이곳은 역사 속에서 그 힘을 얻는다. 고대 로마인의 별장이 있었던 이곳은 궁전과 수도원과 정원들이 들어서면서 귀족들을 위한 휴양지가 되었다. 19세기에는 바티칸에 인접한 까닭에 양초 공장을 비롯한 많은 수공업자들이 몰려왔다. 그 후 화가들이 이곳에 정착하게 되었고, 작은 공장들은 예술가들을 위한 아틀리에로 개조되었다.
일라리아는 결혼 선물로 받은 1820년대 한 무명 작가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어 17세기에 스웨덴 귀족을 위해 지어진 궁전의 부속 건물이었던 이곳을 자신의 주거지로 복원했다. 구운흙으로 만든 타일 바닥의 아이디어를 이 그림에서 얻었고, 생탕주 성의 홀은 응접실의 모델이 되었다. 문은 옛 모습 그대로 보전되었고, 나무로 된 천장이 복구되었다. 그리고 집을 방문하는 손님들이 가장 편애하는 베란다의 응접실은 식물과 꽃에서 영감을 얻었다. “내 인생은 이 집에서 완성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로서의 경력의 토대가 된 이곳에 아틀리에를 지었어요. 처음에는 세 개의 층에 창작물을 전시하고 일반인에게 공개했었습니다. 25년 동안 색깔을 다섯 번이나 바꿨어요. 지금까지도 새로운 시도는 늘 이곳에서 행해집니다.”
몇 해 전 베니스를 방문했을 때 그녀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조르조 데 키리코 Giorgio De Chirico의 그림 속에서 자신의 집을 발견한 것이다. 탐구하듯 그 연유에 대해 확인했고, 그녀는 과거 한 형이상학파 창시자가 자신의 집에 아틀리에를 갖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친구 마우리치오 리가스 Maurizio Ligas에게 이 그림을 재현하게 했고, 완성된 그림은 그녀의 침실에 걸어두었다. 일라리아는 줄리아 거리 Via Julia를 지나 티베리스 강을 건너 몬세라토 거리 Via Monserrato에 있는 자신의 가게로 가기 전, 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창조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복원한 부분 역시 많다는 것이 그녀는 가장 마음에 든다. 우리 일상도 그러하기를.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pimage.design.co.kr%2Fcms%2Fcontents%2Fdirect%2Finfo_id%2F41996%2F1192441035172.jpg)
1 화이트 톤으로 꾸민 주방. 컬러는 음식에 알알이 들어 있으므로 이를 방해하는 요란한 인테리어는 의도적으로 자제했다.
2 응접실을 연상시키는 로마식 테라스의 무성함. 옛 방식으로 구운 ‘흙 벽돌’로 바닥을 장식하고 공간 구석구석에서는 무성한 열대 식물이 자라게 했다. 핑크색의 트리폴린 Tripoline 안락의자는 공간 전체를 살리는 화사한 포인트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