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목사님
(나 2:8)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도다
[원어중심 성경강의] 나훔 32번째 ‘파나’, ‘돌이키다’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니느웨는 예로부터 물이 모인 못 같더니’ 예, 니느웨는 우리죠, 우리는 연못가에 엎어져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병자들인데, 예로부터, ‘민’이라는 전치사가 앞에 있고 ‘욤’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그러니까 ‘날’로부터, 진리의 빛을 받는 때가 욤이죠, 날이죠. 진리의 빛을 받은 때로부터 진리가 모이는 ‘못’, ‘베레카’에서, 십자가 들고 가라고 하시는 주님의 진리의 말씀을 듣는 ‘복’, ‘베라카’를 받는 복된 자가 된다고 했죠. ‘이제 모두 도망하니’ 성도는 그 율법에 가증한 것으로부터 달아나서, 하나님의 산, 성전으로 피하는 자가 되는 거죠.
서라 서라 하나
아마드, 아마드. ‘아마드’, ‘서다’라는 뜻인데 이 아마드에서 ‘암무드’, ‘기둥’이 나왔다고 했죠. 기둥 ‘십자가’예요. 여호수아서 3장 16절 합독하시겠습니다.
(수 3:16-17)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물이 ‘그쳤다’는 말, 그리고 17절에서 굳게 ‘섰다’라는 말이 ‘아마드’죠. 그러니까 ‘흘러내리던 물이 그쳤다’라고 하는데, 이 위로부터 내려오던 ‘마알’이 ‘위로부터’, ‘야라드’, ‘내려오던’ 물, 물이 ‘아마드’, ‘섰다’라고 하는 거예요, 물이 섰다. 그러니까 위에서부터, 위는 하늘로부터죠,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물이에요. 그 위의 물, 진리의 말씀이신 주님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위에서 내려오시죠, 위에서부터 오셔서 흘러 내리던 물은, 주님을 뜻하는 거예요, 그 물이 요단 강물로 보여지는 거란 말이에요. ‘야르덴’, ‘내려오신 분’ 주님을 가르쳐주는 소재란 말이에요, 요단이. 그래서 이스라엘이 남쪽으로 바로 올라가지 않고, 동쪽으로 올라갔다가 굳이 요단을 건너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죠. 대적자였던 우리가 동에서부터 서로 들어가는 그 모습까지 같이 보여주는 거죠.
아랫물인 나에게 내려오던 그 위의 물, 그 진리의 물이, 그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났다’라고 했어. 사르단이라는 거는 제가 지도를 넣어놨죠. 사르단, 요게 아담 성읍이 밑에 있고 사르단이 있고 그리고 요단강이 쭉 내려오면 염해가 나오죠, 아라바 염해, 그리고 가나안이라고 쓰여진 데 요쯤이, 여기가 가나안 땅인데 요 글자가 있는 데쯤이 여리고가 되는 거예요.
(왕상 7:46) 왕이 요단 평지에서 숙곳과 사르단 사이의 차진 흙에 그것들을 부어 내었더라 라고 해요.
‘차진 흙에 그것들을 부어내었더라’ 그것들의 내용은 역대야 4장 16절에 나와요.
(대하 4:16-17) 16 솥과 부삽과 고기 갈고리와 여호와의 전의 모든 그릇들이라 후람의 아버지가 솔로몬 왕을 위하여 빛나는 놋으로 만들 때에 17 왕이 요단 평지에서 숙곳과 스레다 사이의 진흙에 그것들을 부어 내었더라
스레다가 사르단이에요. 놋으로 만들 때 그러니까 놋을 부은 거예요, 부어낸 건 놋이란 말이에요. ‘그것들을 부어 냈다’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놋’은 ‘네호셰트’, 율법이죠, 율법을 이야기하죠, 그러니까 사르단은 율법을 의미하는 거예요. 그리고 사르단이란 말 자체는 ‘차르’라는 말, ‘좁은, 고통, 대적’이라는 뜻이죠. 그리고 차르는 ‘차라르’라는 말에서 왔어요. ‘묶다, 좁다, 속박하다’ 그러니까 율법에 묶인 상태, 속박받는 상태라는 의미인 거예요. 사르단이라는 것 자체는 율법의 의미가 있는 거고, 숙곳, ‘숙곳’은 ‘숙코트’라고 하는데 이거는 ‘사카크’라는 말에서 왔어요.
(애 3:44) 주께서 구름으로 자신을 [가리사]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게 하시고
그러니까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거죠. ‘아난’, ‘구름’으로 ‘사카크’ ‘가려요’ 진리가 가려진 상태, 그러니까 사르단이나 숙곳은 율법으로 성전에서 쓸 것들을 만들던 곳이라는 그런 의미가 있는 거죠.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 라고 하는데
‘메오드’ 그리고 ‘라하크’라는 거죠, ‘매우 멀다’ 진리에서 매우 먼, 그 아담, 아담이라는 우리, 우리 이야기하는 거죠. 우리라는 그 율법의 성전 변두리에 쌓아 올린다, 일어나서 쌓아 올린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대하여 일어나서, 십자가로 서서 한 곳에 쌓이는 그 물이, 위에서 내려온 물, 주님이 이렇게 십자가로 서시는 거를, 다시 한 번 요단강을 건너서 가나안 들어가는 그 장면에서 한 번 더 가르쳐주는 거예요.
일어나서 한 곳에 쌓이고
하나, 하나의 ‘네드’, ‘쌓아올린 것’, 쌓아 올린 것도 십자가의 의미라고 했죠. 쌓아올린 것으로 쌓인다, 쌓인다도 ‘쿰’이에요, ‘서다’라는 거예요, 십자가로 선다는 거죠. ‘아마드’와 같은 의미죠. 이렇게 ‘말씀이 육신되어 내려오신 주님이 십자가에 달렸다’라고 하는 거예요.
(출 15:8)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데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서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언덕같이, ‘언덕’이 ‘네드’예요, 서는 것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주의 콧김’은 ‘루아흐 아프’라고 해요, 성령이에요, 코의 성령이라고 하는데 ‘코’, ‘아프’, 그러니까 물이 쌓이는데, 물도 역시 말씀이고 진리예요. ‘쌓인다’는 말은 ‘아람’이에요, 아람, ‘쌓다, 모으다’라는 뜻인데 ‘쌓아올린 것’을 ‘아렘’이라고 해요, 이것도 ‘더미’에요, 그래서
(렘 50:26) 먼 곳에 있는 너희는 와서 그를 치고 그의 곡간을 열고 그것을 [곡식더미]처럼 쌓아올려라 그를 진멸하고 남기지 말라 라고 하는데
곡식더미라고 했는데 곡식더미가 아니라 그냥 더미라고해요, 쌓아올린 더미. 그러니까 ‘먼 곳에 있는 너희가 와서’라고 했는데 먼 곳, ‘먼 곳’이라는 거는 ‘케츠’예요, 케츠라는 거는 ‘종말’을 뜻하는 거예요. 시편에도 나의 종말이라고 하죠.
(시 39:4)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이게 ‘케츠’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마지막 때, 종말의 때’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민 케츠’라고 하죠. ‘종말로부터 그에게 오라’ 라고 하는 거예요. 너희는 와서라고 하는데, ‘종말로부터’, ‘레’라는 그런 말이 나와요. 그러니까 그에게, ‘레’는 여격이니까 ‘그를 위하여’ 또는 ‘그에게’ 이렇게 된단 말이에요, ‘그에게 오라’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그를 치고 그의 곡간을 열고’라고 하는데, 치고라는 말은 없어요, 그에게 오라, 그에게.
근데 ‘그에게’라고 하는데 이게 여성이에요. ‘라’ 할 때 ‘레’ 전치사와 ‘하’라는 말이 있는데 3인칭 여성 단수란 말이에요. ‘그 여자는’이라고 하는데 여자는 바벨론을 얘기해요. ‘그 여자의 곳간’이라고 하는데 ‘바벨론의 곳간’을 여는 거예요. ‘아렘’, ‘더미’를 여는 거예요. 그걸 ‘쌓아올려라’라고 할 때는 ‘살날’이에요, 살날. ‘쌓아올리고, 높이고, 찬양하다’는 뜻이 살날인데 쌓아올리고, 높이고, 찬양하는 건 뭐예요? 십자가죠, 십자가 얘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렇게 살랄한 걸 ‘술람’ ‘사닥다리’라고 하는 거죠. 야곱이 꿈에 본 사닥다리가 술람이란 말이에요. 그게 십자가의 의미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아렘’은 ‘네드’와 같은 의미인 거예요, 더미가.
전부 더미로 나오는데, 이게 그러니까 ‘십자가에 달아라’ 이런 뜻인 거예요. 십자가에 다는 거니까 바벨론을 죽이는 거죠. 그러니까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요’, 할 때 그 큰 성이란 말이에요, 바벨론. 그러니까 바벨론인데 그 바벨론은 또 누구라 그랬어요? ‘이 성전을 헐라’라고 하셨잖아요, 주님이. 무너지는 큰 성은 주님이란 말이에요. 바벨론은 주님을 또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인다’라고 하는 건, 성령에 의해서 주님이 십자가로 달리는 거, 그걸 물이 쌓인다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요단강이 지금 물이 선다라고 하는데 이게 같은 의미란 말이에요. 주님이 십자가로 달리는 거예요. 그 물이 서는 거, 진리의 말씀으로 오신 주님이 십자가로 서는 걸 또 가르쳐주는 거예요. 주의 콧김에 물이 쌓이되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나고’, ‘파도’, ‘나잘’, ‘흘러내리는 거’ 흘러내리는 것이에요, 분사형이에요. 나잘의 분사형을 파도라고 번역한 거예요, 흘러나오는 거, 흘러나오는 거는 진리란 말이에요. ‘흘러내리는 진리가 언덕같이, 십자가 같이 일어선다’라고 하는 거예요. ‘나차브’ 역시 ‘서는 것’이라고 했죠, 서는 것, 십자가로 선다라고 했잖아요. ‘파도가 언덕같이 일어선다’라는 건 그 흘러내린 진리가 쌓아올린 것, 십자가로 나차브 선다라고 하는 아마드와 같은 의미죠, 나차브도. 십자가로 선다라는 그런 말씀이고
큰 물이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라고 하는데
큰물은 ‘태홈’이에요, ‘깊은 물’인데 태홈,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할 때 태홈이란 말이에요. 그 깊음은 주님이 ‘깊은 곳에 그물 던져라’고 하는 그 깊은 곳, 진리를 이야기한단 말이에요. 큰 물, 진리가 그 ‘바다 가운데 엉기니이다’ 바다는 우리, 율법이잖아요, 그 율법 가운데 응축된다라고 하는 거죠, 진리가 나온다라고 하는 거에요, 바다 가운데라고 하는데 ‘바다’는 ‘얌’이죠. ‘가운데’라는 것도 ‘레브’예요. 레브는 ‘마음’을 얘기해요, 바다의 마음이에요. 그러니까 우리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의 그 마음 안에 ‘카파’, ‘응고된다’라고 하는 거죠. 카파, ‘응고시키다, 굳히다’.
젖이 압착되면 버터로 응고된다라고 했잖아요. 젖은 율법이고, 율법이 고난을 받아, 압착되는 건 고난받는 이야기, 십자가 이야기란 말이에요, 십자가 죽음을 죽으면 진리가 된다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으면 그리스도가 되시고, 우리의 두 마음,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으면 진리의 새 사람이 된다라고 하는거죠. 여호수아서로 가서요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라고 해요.
‘얌’, ‘바다’죠. 아라바 바다, ‘아라바 바다’라고 하는데 ‘아라바’가 ‘에레브’와 같은 글자예요. 에레브에 모음, ‘카메츠’하고 ‘헤’ 이게 붙으면 여성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이걸 만약 빼고 보면은 에레브와 같은 글자예요,
아라바는. ‘저녁’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율법의 바다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게
온전히 끊어지매 라고 하는데
이게 타맘, ‘타맘’이 ‘완성하다’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온전히 끊어진다고 하는데 ‘타맘’이라는 동사하고, ‘카라트’ 라는 동사가 연이어서 나와요. 그러니까 완성되고 ‘카라트’, ‘잘라 베어진다, 언약을 자르다, 맺다’ 이런 뜻이에요. 그러니까 타암, 완성된다라고 하는데, 이거는 ‘테텔레스타이’로 완성되는 거 , ‘십자가의 죽음’으로 완성되는 거, 그걸 이야기하는 거죠. 온전히 끊어진다, 그 물이 완전히 끊어졌다, 주님이 완전히 죽으셨다는 거예요.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죽으심으로 그리스도로 나오시는 거죠. 그러니까 그걸로 구원을 이루어 주시는 일인 거예요. 그리고 카라트, 언약을 완성시켜주시는 거죠. 십자가에서 주님이 완전히 죽어주시고 죽음으로 완성되는데, 이게 언약 맺는 거다라고 하는 거예요.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
여리고성이죠, 여리고성은 무너져야 할 그 율법의 성이죠, 우리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여리고 앞, ‘앞’이라고 하는데 이건 ‘네게드’예요. 여리고의 맞은편, 그러니까 대적의 의미가 있는 거에요, 율법의 성에 대적해서 건너고,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맨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하라바, ‘하라바’라고 하는데 ‘마른 땅’ 이게 구원의 땅이죠, 구원의 땅으로 굳게 섰고 그리고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요’, ‘아바르’, 건너가면 그게 ‘이브리’, ‘히브리인’이라고 했죠, 건너가면. 그러니까 우리 안에 흐르는 그 율법의 강이 말라버리면 그러면 율법이 소멸되고 진리가 남는 구원의 땅이 되는 거죠, 그게 마른 땅이에요.
모두 도망하니 서라 서라 하나 돌아 보는 자가 없도다 라고 하는데
도망하니는 누스라고 했죠. ‘누스’는 ‘달아나다’. 이게 헬라어로 ‘퓨고’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멸망에 가증한 것들이, 율법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 보면은 산으로 도망하라라고 했죠. 산이, 하나님 성전이고 그곳으로 피하라 라는 거죠, 누스. 그러니까 율법에서 피해서 ‘서라 서라’, ‘아마드’ ‘십자가로 서는 거’ 그게 구원인 거죠. 이 모든 게 우리 안에 진리의 생수로 오셔서 풍성하게 넘치는 그 연못, 베레카로 만들어주신 은혜로 가능한 일이다라고 했죠.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다’라고 해요. ‘아인 파나’라고 합니다. 파나, 파나가 히필 분사형으로 쓰였어요. 그래서 ‘돌아보게 되는 자가 없다’라고 하는 거죠. 성경에 보면 지금 서라 서라 하는데 돌아보는 자가 없다라고 하잖아요. 예, 근데 성경에 보면 서지 말라고 하는데 돌아보는 자가 있었죠. 창세기 19장 17절 합독하시겠습니다.
(창 19: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예, 이게 내용 자체는 조금 반대되지만 나오는 말들은 나훔서하고 지금 굉장히 비슷하죠. ‘도망하라’라고 하고 ‘머물지 말라’라는 말이 ‘알 아마드’예요. ‘아마드’, ‘서지 말라’는 거예요. 들에 머물지 말라고 할 때, 서지 말라, 그리고 산으로 ‘도망해서’ 이게 나훔서에서는 ‘누스’지만 여기는 조금 달라요, ‘말라트’라고 합니다, 같은 의미예요.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라고 천사가 당부했는데,
(창19: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기둥이 되는 거죠. ‘네치브 멜라흐’, ‘네치브’가 ‘기둥’이고 ‘멜라흐’가 ‘소금’이죠. ‘소금은 언약’이라고 하죠, 소금 언약이라고 하죠. 그래서
(레 2:13)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니라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이라고 해요, 소금은. 하나님의 ‘베리트’, ‘언약’의 ‘멜라흐’, ‘소금’이라고 하는 거예요.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라고 해요.
‘소제’는 ‘민하’라고 합니다, 민하는 선물이에요, 선물이면서 제물이에요. 선물이면서 제물은 뭐예요?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가 선물이죠, 선물이고 제물이죠. 거기에서 빼지 못한다 ‘로 샤바트’, ‘샤바트’가 ‘그치다, 쉬다’라는 뜻이에요, 그 ‘선물이 쉬지 않는다’는 거예요.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이게 쉬지 않는다는 거죠. 이게 안식일이 하신 말씀이에요. 삽바톤, 삽바톤이 히브리어로 ‘샵바트’죠, ‘안식일’이란 말이에요. 이게 사바트 ‘그치다, 중지하다’에서 나온 말이잖아요. 빼지 못한다는 말이 ‘로 샤바트’란 말이에요. ‘그치다, 중지하다’, ‘그치지 않는다, 쉬지 않는다’는 거죠. 그 소금의 언약이, 그 선물이, 쉬지 않는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제까지 일하시니
‘에르가조마이’ 요게 ‘아바드’의 역어로 쓰인단 말이에요, 70인역본에서. ‘아바드’, ‘ 일하다, 섬기다’는 뜻이죠. 구원의 언약이 창조의 섬김을 계속해서 해주시는 그 내용이죠.
창조라는 것 자체, 하나님의 새 창조잖아요, 하나님은 새 창조를 향해서 가고 계신데, 그걸 위해서 역사를 운행하고 계신데, 새 창조의 의미는 뭐예요? 새 창조는 뭐 하는 거죠? 죽이는 거죠. 그러니까 ‘창조를 위해서 쉬지 않으신다’ 라고 하는 거죠, ‘로 샤바트’.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쉬지 않고 우리를 죽여주신다’라고 하는 거예요. 요게 요걸 이해하셔야 되는 거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하시는 새 창조의 사역은 죽여서 살리기 위해서, 우리의 두 마음을 박살내고 뒤엎어서 새 땅으로, 새 마음으로, 만들어주시는 거, 이걸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 인생도 괴롭고 비극이 되는 거고, 그걸 이해하면은, 온통 감사가 나오게 되고 찬송할 수가 있게 되는 거죠.
모든 소제에 소금을 치라 라고 하는 말씀은
‘모든 선물이 언약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하나님의 그 변치 않는 언약, ‘소금 언약’이라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언약, 약속이 변치 않는다’라는 그걸 가르쳐주는 소재잖아요, 소금이. 변치 않는 하나님의 그 약속이, 자기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하나님 나라로 성전으로 만드는 일이잖아요. 자기 백성을 하나님 나라로 만든다는 거는, 하나님 나라라는 것 자체는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곳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이 항상 이루어지는 곳이죠, 그래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계속 묻고, 찾는 자들의 나라인 거예요, 하나님 나라, 그게 하나님 나라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죽인다고 하셨는데, 우리를 죽이는 건 우리의 두 마음, 율법이에요. 그래서 내 뜻을 죽이면은, 그러면 하나님의 선하신 뜻만 남는단 말이에요, 그래서 모든 것이 말씀인데, 모든 것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하신 말씀인데, 그 말씀들이 우리에게 올 때, 그게 하나님의 뜻을 찾으면 구하면, 그러면은 나를 죽여서 살리는 구원의 말씀으로 깨달아지게 되는 거란 말이죠. 근데 그걸 구원의 뜻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으로 깨닫지 못하면, 그러면 하나님 왜 이러세요? 나한테 왜 이래요 뭐 이러면서 하나님 원망 불평하게 되는 거죠.
나에게 주신 모든 것은 선물이란 말이에요. 나에게 지금까지 마음에 안 드는 일들 많이 있었죠, 근데 그게 알고 보면 다 선물이었단 말이에요, 예수 그리스도란 말이에요. 진리의 말씀인데, 그걸 나는 선물로 보지 않고 마음에 안 드는 걸로 봤다 그래요, 뇌물로 봤다 그래요, 그걸 뇌물이라고 합니다. 뒤에 나오지만 선물이 아니라 거짓된 선물, 뇌물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성도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깨닫는 것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 통치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우리를 죽여서 살리는 그 십자가 복음으로 그거 하나로 깨달아진단 말이에요. 그게 사랑이고, 그게 새 창조를 위해서 성도에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선하신 일’이란 말이에요, ‘에르곤 아가토스’. 그걸 깨달으면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자가 되고, 그걸 ‘나라’라고 한단 말이에요. 그가 하나님 나라, 천국이란 말이에요. 그 반대는 내 뜻으로 생각하면, 거기가 지옥이에요. 내 안에 다 있는 거예요, 내가 내 뜻으로 판단하면 그건 지옥인 거고, 하나님의 뜻을 찾고 구하고 그래서, 그 뜻을 깨달으면 그러면 그가 천국이라니까요. 그가 ‘나라’란 말이에요.
그거는 이미 죽은 자죠, 자기 뜻이 죽은 자죠, 그걸 죽었다고 해요. 모든 죽음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모든 죽음은, 요 죽음 알려주려고 가르쳐주시는 것들이에요. 나타난 것들은 다 보이지 않는 그 나라의 진리 가르쳐주려고 주신 거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그 죽음을 죽으면 죽음은 더 이상 없다니까요, 그 죽음을 죽으면 더 이상 죽음이 없어요, 그럼 그는 이미 영혼인 거예요, 영혼 속에 들어간 자인 거예요. 그래서 모든 말씀, 그 선하신 뜻 하나로 깨닫고 하나님만으로 기뻐하는, 하나님만으로 기뻐한다라고 우리가 말로는 많이 했지만, 그게 무슨 의미인지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만으로 어떻게 기뻐해요, 하나님이 주시는 뭔가도 있어야지 기뻐하고, 선물이라고 생각하는 거, 그거 많이 있어야지 기쁘지 그거 자꾸 뺏어가시고 그걸 자꾸 털어가 주시면 기뻐할 수가 없었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만으로 기뻐한다는 건, 십자가의 죽음 아니면은 절대로 가능하지가 않은 일인 거죠.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기둥이 됐다 라고 하는데,
아내, ‘아내’는 ‘잇샤’예요, 잇샤, ‘여자’란 말이에요.
(갈 4:24)a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두 여자는 언약이라고 해요. 언약은 옛 언약과 새 언약, 율법과 진리, 예수와 그리스도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가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뒤에 있는 거는 소돔성이죠. 무너져야 할 나의 옛 성전,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 나의 옛 사람이고 옛 성전이란 말이에요. 그 율법, 그걸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됐다, 절대 변하지 않는 그 언약의 기둥, 언약의 십자가가 되었다.
그러니까 무너져야 할 옛 성전을 돌아보면서 언약의 기둥, 십자가가 된 것은 옛 언약이죠, 여자잖아요, 여자. 언약이란 말이에요, 근데 옛 언약이죠, 옛 언약, 예수란 말이에요, 예수가 기둥이 된 거예요, 소금 기둥이 됐단 말이에요. 변하지 않는 그 언약의 기둥이 됐단 말이죠. 주님이 옛 세상을 돌아보면서 멸망하여야 할 나 대신에 십자가로 죽어주신 거란 말이에요. 언약은 전부 예수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시잖아요. 옛 언약 새 언약, 예수와 그리스도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니까 옛 세상을 돌아보고 멸망하는 나, 멸망한다고 했단 말이에요, 돌아보면.
근데 주님이 멸망을 나 대신에 십자가로 죽어주심으로써, 우리가 돌아보지 않는 자로 만들어주는 거예요. 돌아보는 자가 없더라, ‘서라 서라 하나 돌아보는 자가 없더라’, 그래서 돌아보지 않는 거란 말이죠, 그렇게 돌아보지 않는 자로 만들어주신다는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는 계속 돌아보고 있죠. 과거를 돌아보면서 왕년을 돌아보고, 옛 사람의 생각이 여전하고, 옛 사람이 율법으로 여전히 판단하고, 그게 돌아보는 거예요. 판단하고 정죄하는 거, 이게 돌아보는 거예요. 이스라엘은 광야에 나와서 애굽을 그리워했단 말이에요. 애굽에서 즐겨 먹던 것도 추억하고, 틈만 나면 율법으로 돌아가는 걸 즐겨하고 있단 말이에요, 이게 우리 얘기예요, 우리가 그러고 있단 말이에요. 지금 광야에 나왔는데 계속 애굽을 그리워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영원한 소금 언약으로 먼저 기둥이 되어주신 주님이 십자가에 우리를 끌어당겨서 돌아보지 못하게 해주시고, 언약으로 세워지게 해주시는 거란 말이죠. 출애굽기 14장 27절 전반부,
(출 14:27)a 모세가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 라고 해요.
그 '손', 손은 권능이죠. 권능의 '손을 내밀매 새벽이 되어', 새벽은 '보케르'예요, 아침. 아침이 '파나' '되었다'라고. '돌이켰다'. 그러니까 '아침으로 돌이켜졌다'라고 하는 거예요. 아침으로 돌이켜졌다는 건 뭐예요? 저녁이었는데 원래는 아침이었다는 거, 원래 빛이었는데 잠시 어둠을 경험하고 다시 빛으로 돌아간 우리 얘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그렇게 됐다는 거예요.
'바다의 힘이 회복된지라'라고 하는데, 이게 '회복된다'는 말은 '슈브'예요. 그리고 '바다의 힘'은 '얌레 에탄'이라고 해요. '레'라는 전치사에다가 '에탄'이 붙어 있어요. 그리고 그 다음에 '보케르 레파나' 이렇게 나와요. 그러니까 이제 지금 댓구가 두 가지가 나오는 거예요. '얌레 에탄' 그리고 '보케르 레파나'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까 '아침으로 되돌려졌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은 뒤에 해석해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바다가 영원한 것으로', '레에탄' '영원한 것으로' '슈브' '돌이켰다'라고 하는 거고, 그리고 아침이 '보케르'. 아침도 역시 '돌이켜졌다'라고 하는 거죠. 돌이켜지는 것으로 '슈브' '회복됐다'라고 하는 거예요. 슈브,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뜻대로 회복됐다라고 하는 거죠. 슈브는 회개의 의미가 있단 말이에요, 되돌아왔다라고 하는 거예요. 새벽이 됐다는 말이 이제 '파나', 파나의 의미가 이렇게 '되돌려졌다'라는 그런 의미가 있어요, 돌이켜졌다.
(창 24:23) 이삭이 저물 때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 라고 해요.
'저물 때 들에 나가서 묵상한다'고 하는데, '저물 때' 저물 때가 '레파나'. '레파나 에레브', 아까 '보케르 레파나'랑 비슷하죠, 저물 때. 저녁으로 돌이킬 때, '에레브'가 저녁이죠. '그때 들에 나가 묵상하다가', '사대'에서, '수아흐' '묵상하다'라고 하는 거예요. 여기에 '묵상하다'라고 하는데, 원문에는 '묵상하기 위해서 나갔다' 이렇게 돼 있어요. 그러니까 '수아흐'하기 위해서, '야차'라고 하는 거예요, '나갔다'.
근데 이 '수아흐'란 말이 '묵상하다, 명상하다' 이런 뜻인데, 이게 '슈아흐'라는 말과 같은 글자예요. '슈아흐'가 '낮아진다', '비천하다. 낮아진다'. 비천하다, 낮아진다는 건 뭐예요? 죽는다는 거죠. 십자가 죽음을 죽는다, 죽기 위해서 나갔다라고 하는 거죠. 십자가의 죽음을 죽기 위해서. 이삭이 이게 그리스도의 모형이에요. 저녁에 광야로 나가는 거예요. '사대'는 광야의 축약이라고 했잖아요. 광야에서 십자가 죽음으로 낮아지기 위해서 나갔다라고 하는 거예요.
'눈을 들어 보매 낙타들이 오는지라'라고 해요. '눈을 든다'라고 하는 거는,
(창 22:4)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라고 하는데 진리의 눈을 들어 바라보는 거죠. 낙타들이 오는지라 라고해요.
'가말' 낙타가 와요. 낙타는 율법이죠, 낙타는 율법을 얘기한단 말이에요. 그래서 세례요한이 낙타 털 옷을 입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신부가 오는데 낙타들이 온다라고 하는 거예요, 낙타들이. 율법이 온다라고 하는 거예요. 창세기 24장 24절부터 합독하시겠습니다.
(창 24:64-65) 64 리브가가 눈을 들어 이삭을 바라보고 낙타에서 내려 65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마주 오는 자가 누구냐 종이 이르되 이는 내 주인이니이다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을 가리더라
리브가도 이제 눈을 들어요, 눈을 들고 이삭을 바라봐요. 진리로 보는 거예요. 보니까 어떻게 해요? 낙타에서 내려요. 낙타에서 내리는데, 낙타는 율법이라고 했죠. '나팔', '떨어져'. 이게 글자대로 하면 '다쳐'요. 심지어 나팔은 '죽는다'는 뜻도 있다고 했죠. 그래서 이제 죽음의 의미란 말이에요, 이게. '낙타에서 내려'라는 말도 '알 가멜'이라고 해요, '알 가말'. '알'이란 말은 '~~에 대하여, against'의 의미라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낙타에 대하여 떨어졌다, 죽었다,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 의미가 있는 거예요. 이런 표현 속에 그런 복음을 담아서 준 거란 말이에요. 그리스도의 신부가 그리스도를 만날 때 이렇게 율법에서 떨어져 죽는, 율법에 대하여 죽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종에게 말하되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로 오는 자가 누구냐'. '들'은 '사데'고 '배회하다'가 '카라'. 이 '카라'라는 말은 '만나다'라는 말인데, 이걸 가지고 배회하다라고 했어요. '만나다, 부닥치다'라고 했는데 이거는 밑에 나왔죠. '카라'라는 말, '선포하다'는 뜻 그 '카라'와 같은 글자예요. 글자가 같아요. 그러니까 주님이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서 율법의 신부인 우리에게 오시는 거란 말이, '종이 말하되 내 주인입니다', '아도나이'죠, '나의 주인' 아도나이. 아도나이는 하나님에 대해서 쓰는 말이죠.
그러자 '리브가가 너울을 가지고 자기 얼굴을 가리더라', '차이프'라고 합니다, '너울, 면박'이라고 하는데. 그러니까 얼굴을 덮는 천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라고 하는 거죠. 그러니까 이게 초면에 부끄러워서 내외하는 그런 모습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자기 얼굴을 가렸다는 거는 그 너울로 덮어서 자기 머리를 가려요. 가리면 안 보이게 되죠, 없어졌다는 거예요. 머리가 잘렸다는 거, '내 머리 잘리고 주님이 내 머리 되신다'라고 하죠. 그러니까 머리가 없어졌다는 거는 두 마음이 없어지는 거죠, 나의 판단이 없어진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자 그것만 구하는 자가 됐다는 거예요. 그게 그리스도의 신분인 거죠. 요한계시록 10장 4절 후반부 합독하시겠습니다.
(계 10:4)b 또 내가 보니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목베임을 당한 자들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니
예, '목베임을 당했다'는 말은 '펠레키조', '도끼로 잘렸다'라고 하는 거예요. 너울로 얼굴을 가리는 게 목베임을 당하는 것과 같은 의미예요. 뭐 때문에 목베임을 당한대요? 예수를 증언함과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그러니까 이것 때문에 모든 하나님 백성은 자기의 두 마음을 버리게 되는 거고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고 율법에 예배하지 않고 영과 진리의 예배를 하게 된다라고 하는 거죠. '프로스퀴네오', '경배한다, 예배한다'는 뜻이에요.
이 '프로스'가 '~~을 향하여'고 '퀴네오'가 '입맞춤'이라고 했잖아요. 그리스도를 향해서, 그의 아들을 향해서 입맞춤인 거예요.
이렇게 하나님의 뜻 선하신 뜻 그걸로 깨달아가는 거. 하나님의 말씀은 전부 그걸 위해서 오신 거잖아요.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육신되어 오셨는데 그 말씀은 전부 하나님의 성전 만드시는 선하신 뜻을 담고 오셨단 말이죠. 십자가 복음을 담고 오신 거란 말이죠. 그래서 그 말씀으로 인해서 우리가 목베임을 당하는 자가 되는 거죠. 그 베임을 당하는 게 표면적으로 보면 굉장히 고난받는 일이고 아주 큰일 당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일인 거죠.
세례 요한의 목이 잘린 게 그거 가르쳐주는 거란 말이에요. 율법의 목이 잘려나가는 거란 말이죠. 나의 그 두 마음 그 판단이 잘려나가는 거고 그러면 그게 천년 동안 왕 노릇하는 천년 왕국, 그게 내 안에 그 나라가 서는 거죠. 그러니까 하나님 나라란 말이에요.
하나님 나라, 천국은 내 판단에 의한 나의 만족 내가 원하는 게 하나님이 들어주시고 내가 좋아하는 그 선물들을 가득가득 채워주시는 거 그래서 내 마음에 드는 그 행복한 상태 그걸 천국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뜻 성전 만드시는 하나님만으로 감사하고 그 뜻으로 기뻐하는, 그러니까 그게 우리의 선악 판단으로 보면 도무지 기뻐할 수가 없는 것들, 그런 것까지도 감사하는 거, 그게 진리로 깨달아져서 사랑으로 깨달아져서 그걸로 기쁘고 감사하게 된다면 그러면 그가 참된 하나님 나라가 되는 거란 말이죠.
그런 것들 많이 있죠. 도무지 마음에 안 드는 거,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거. 어떻게 하나님 나한테 이렇게 하세요라고 하는 거, 하나님 너무 괴로워요 하는 거, 이런 것들이 우리 인생의 부지기수고 넘친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이게 하나님 뜻을 깨닫게 되면 그건 전부 사랑이고 진리의 생수가 넘치는 일이 되는 거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찬 일이 되는 거고, 기뻐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일이 되는 거란 말이죠. 이 차이가 있는 거란 말이에요. 이게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게 아니고 결단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깨닫게 하심으로써 그래서 '이게 그거였군요', 깨닫고 감탄하는 거예요, 감사하는 거예요. 성도는 그 자리로 가게 된다는 거예요. 그걸 위해서 우리가 이 광야 인생을 산다는 걸 이해하자는 거예요.
내가 모든 걸 기뻐하고 감사하는 자가 돼야지라고 아무리 하고 싶다고 해서 되냔 말이에요. 육을 입고 있는 자는 일차적으로 괴롭단 말이에요, 현상이 나타날 때 괴로워요. 괴로운데, 그게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고 설득하시는 그 말씀에 의해서 그 말씀이 깨달아지고 기쁨으로 바뀌는 거란 말이죠. 그게 이루어지면서 내 안이 천국으로 바뀌는 거란 말이에요. 성도는 그걸 바라보는 자인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렇게 나를 만들어 가셨어요'라고 증거하는 자 증인이란 말이죠.
뭘 할 수 있는 자가 아니에요. 그러니까 감사하고 찬송하고, 이것 하고 싶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니까요. 하나님이 그렇게 만들어주실 때 그때 그걸 깨닫고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군요'를 기뻐하면서 찬송하는 자가 되는 거란 말이죠. 우리에게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여러 가지 일상을 주시는데 그게 내 천국 거기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천성 찾아가는 나그네라는 거 꼭 가르쳐 주시는 거란 말이죠. 그걸 깨닫게 해 주실 때 그걸 '목 잘렸다'라고 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게 은혜란 말이죠, 사랑이란 말이죠.
'들에서 배회하다가 우리에게 오는 자가 누구냐'. '들' '사데', 광야에서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그 광야를 온단 말이죠. 주님이 '할라크' '십자가'의 길로 걸어오시는 거란 말이죠. '이쉬'란 말이에요, '이쉬'. '신랑'이란 말인 거죠. 이쉬가 잇샤를 만나러 오는 거란 말이죠.
(잠 17:8)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 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라고 해요.
'향한다', 향한다는 말이 '파나'예요. 이 말씀은 이 뇌물이라는 낱말이 주는 그 뉘앙스, 뇌물은 나쁜 거잖아요. 근데 그것만 빼고 보면 '형통하게 한다'라고 하잖아요.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네가 어디로 가든지 내가 지키고 너를 지금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마치 이제 축복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은데, 이 '뇌물' 때문에 걸려요. 근데 이 뇌물을 빼고 보면, 이거 주라고 하는 말씀처럼 보이기도 하잖아요. 이 뇌물은 율법사에서, 절대로 뇌물 주지 말라고 하나님이 율법으로 말씀하신 거예요. 신명기 16장 19절 합독하시겠습니다.
(신 16:19)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며 또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이거 '뇌물 받지 말라'는 말씀이죠, 분명하게. 그 이유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한다'라고 하는 거죠. '뇌물'이라는 말은 '쇼하드'라고 해요, 쇼하드. 여기에 '선물'이라는 뜻이 있고 '뇌물'이라는 뜻이 있어요.
성경에서 거의 '뇌물'로 쓰이는데, '너는 재판을 굽게 하지 말며', '재판'은 '미쉬파트'예요. 미쉬파트를 '굽게 하지 말라' 이거. '나타' 하지 말라 '로나타'라고 하는데, 이 '구부리다'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라고 해요. 이게 '로 나카르'라고 해요. '외모로 보지 말라'라고 하는데 '파님'이에요. '파님을 주목하지 말라', 이렇게 되는 거죠, 주목하지 말라. 그러니까 '외모로 사람을 보지 말라'는 게 아니라 '파님, 껍데기로 보지 말라', 그런 의미가 되는 거죠.
'뇌물을 받지 말라'라고 해요, '쇼하드'. 쇼하드를 '로 라카흐', '취하지 말라'라고 해요. '뇌물은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그 지혜자는 '하캄'이에요, 지혜로운 자. '지혜자의 눈을 어둡게 한다'라고 해요, '아와르', '눈멀게 한다'.
그리고 '의인의 말을 굽게 한다', '찻디크'. '찻디크'가 '의로운', 의인이에요. 그리고 '말', '다바르'. '다바르'를 '살라프' 한다, '구부린다', 역시 왜곡시킨다는 거죠. 뇌물이라는 거는 선물이라는 뜻이 있다고 했죠. 근데 여기 선물은 선물인데 거짓된 선물이란 말이에요.
'거짓'이라는 거는 뭐예요? 참의 반댓말이죠. 참이라는 거는 '진리'를 뜻하죠. 그래서 거짓은 율법을 뜻한다고 했죠. 그러니까 뇌물이라는 거는 거짓의 선물, 율법을 얘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거, 나타내 보여주신 건 다 선물이라고 했죠, 다 좋으신 선물. 선하신 뜻, 사랑을 담고 있는 선물이에요. 근데 우리가 그것들을 하나님의 선하신 뜻 하나로 선물로 받지 못하고 오해해서 두 마음으로 율법으로 받죠. 이게 뇌물 받은 거예요.
그러면서 하나님께 또 뇌물을 드리기도 하죠. 저에게 이런 일이 있는데 이것 좀 어떻게, 이러면서 청탁하면서 뇌물 받쳤잖아요, 많이 받쳤잖아요. 아닌 척하는데 그렇죠. 헌금 내고 십일조 내고 할 때 뭔가 나에게 필요한 게 있을 때 요청을 했잖아요. 하나님께 그게 뇌물 바친 거예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거는 선하신 뜻을 담은 선물이란 말이에요.
근데 여기 70인역에서 이 '쇼하드'의 역어로 쓰이는 헬라어가 '도론'이에요. 도론이 '선물'이에요. 선물이고 '예물'이에요. 마태복음 5장 21절부터 합독하시겠습니다.
(마 5:21-24)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예, '예물' '도론'이란 말이에요. 이게 '쇼하드'의 용어로 쓰인 단어예요.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라고 해요. '옛사람'은 '아르카이오스', 이게 '고대의, 오래된' 이런 뜻인데, '아르케'라는 말에서 유래한 단어예요. '아르케'는 '태초'죠, 이게 '레쉬트 베레쉬트' 할 때. 그러니까 옛 사람은 시내산 이전에 '창세 때부터 말씀하셨다'라고 하는 거예요. '레오' '말씀하셨다'에요, 진리로 말씀하신 거예요.
창세 때 일곱 말씀을 하시죠. 그게 전부 구원의 약속이에요. 그 구원의 언약을 진리로 알지 못하면 '이게 살인이다'라고 형제 죽이는 일, 형제로 오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형제로 오셨잖아요. 그분을 죽이는 살인이다라고 하는 거, 인자로 오신 주님을 죽이는 일.
'그 형제에게 노한다'는 '오르기조'라고 해요. 형제에게 노한다는 거는 노한다는 것 자체, 화낸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 말씀을 사랑으로 깨닫지 못하는 걸 '화낸다'라고 했죠. 그러니까 말씀으로 오신 그 형제, 주님을 진리로 사랑 하나로 받지 못하면 그게 화내는 거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는 것 자체, 그게 살인이다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는 심판을 받게 되고', '크리시스'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예요.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죠. '라가'는 '라카'라고 하는데, '멍텅구리, 바보'라는 뜻이에요. 이게 '리크'라는 말에서 왔어요, 리크. '리크'가 '텅 비었다'는 '헛됨, 공허'라는 뜻이에요. 하박국서 2장 13절에 보면
(합 2:13) 민족들이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과 나라들이 [헛된] 일로 피곤하게 되는 것이 만군의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아니냐
'불탈 것으로 수고하는 것', 나타난 것들을 실제라고 오해하면서 붙잡는 거, 헛된 일. 전부 율법 얘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껍데기로 보는 것들 그걸 실제라고 보면서 그걸로 인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거, 율법적인 수고 이야기하는 거란 말이에요.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고 한다'는 건, 형제로 오신 주님을 율법으로 보는 거고, 이건 어떻게 한대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라고 하는 거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라고 하죠. '라가'라 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이 '모로스'라고 하는데요, '어리석은'. 이게 '지식이 없는 상태'라는 뜻이에요.
'지식이 없다'라는 거는, '지식'은 다트잖아요. 히브리어로 '다트'는 '야다'에서 온 말이죠. 야다는 '하나 되다. 안다'는 뜻이면서 하나 되다는 뜻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과 하나 되어서 아는 거, 그러니까 하나님의 말씀이신 그 형제를 사랑 하나로 알지 못한 상태를 '형제를 미련하다라고 하는 것', 그 일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형제를 라가라 또는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거는, 형제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거고, 그분을 육으로 보고 속에 담긴 진리를 깨닫지 못한 '율법 상태다'라고 하는 거죠.
'그는 지옥불에 들어간다', '퓌르 게엔나'예요, '게엔나의 불에 들어간다'. '이 지옥'이라고 했는데 '게엔나'는 지옥이 아니라 '흰놈의 골짜기'라고 했죠. '게 흰놈' 그걸 헬라어로 음역한 게 '게엔나'예요. 그 게엔나에서 불타는 게 성에서 나온 쓰레기 배설물 그리고 짐승 사체 그리고 연고 없는 시체, 이런 것들이 전부 나라고 했잖아요, 짐승 시체. 내가 이성 없는 짐승이고, 내가 죽은 자고, 마른 뼈고, 전부 내 얘기예요. 내가 해온 모든 게 배설물이고 쓰레기고, 그래서 십자가 형 받은, 사형 판결 받은 하나님 나라의 반역자, 범죄자였고, 그랬잖아요.
전부 불태워버려야 되는 거죠. 성령의 불이란 말이에요, 진리의 불. 진리, 말씀으로 불태운다는 거예요. 지옥의 이미지가 게안나에 나오는데, 그거를 태우는 거는 성령의 불이고, 성령은 말씀이라니까요, 말씀으로 태우는 거예요. 말씀으로 우리의 모든 율법을, 그리고 태워야 할 거, 오래된 그 율법을 다 태워버리는 거란 말이에요.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말씀을 나를 죽여서 살리는 십자가 진리로 온전히 깨닫지 못할 때, 그 사랑 안에 들어가지 못할 때, 그때 불 같은 그 광야의 시험이 나에게 오는 거란 말이에요.
내가 광야에서 불못에 들어간 자고, 불 같은 시험을 받고 있는 거라고 했죠. 이 광야가, 게엔나란 말이, 그러니까 흔히 지옥이라고 하는 그 게엔나, 그거는 이미 내 안에 있단 말이에요. 내 안에서 태워주신다니까요, 태워주시는 건 구원을 주시는 거예요. 지옥의 형벌을 받고 있는 게 아니라 성령의 불로, 진리로. 진리로 내 안에서 오해된 하나님 말씀 그 율법을 다 태워주고 계신 거란 말이죠. 게엔나의 불은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내 안에 오래된 그 율법 완전히 없앨 때까지 하나님은 쉬지 않겠다, 멈추지 않겠다, '로샤바트' 하겠다라고 하시는 거죠.
거지 나사로 부자 이야기에서 '부자가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한다'고 하죠. 우리 이야기하는 거예요. 우리가 부자인데, 우리는 불못에 던져졌고, 그 불 같은 광야를 건너가고 있는 중이란 말이에요. 하나님의 사랑 하나로 깨달아지지 않는 그 모든 말씀, 우리에게 주어진 그 모든 일상 자체가, 그 40년 광야 자체가 불못이고 불꽃 가운데란 말이에요. 그게 지옥인 거예요. 거기에서 하나님이 다 태워주시면, 그러면 나는 진리를 깨닫고 새로운 피조물로 나오게 되는 거죠.
'예물을 드리다가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면 그러면 화목해라'라고 하는 거죠.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예물'은 '도론'인데 그거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했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그 선물을 진리로 깨달아라', 그게 '하나님께 올바른 예물 드리는 거다'라고 하는 거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 주셨단 말이죠.
선물은 원래 하나님 거예요. 그러니까 선물로 우리에게 주시는데, 그 선물의 형태를 가지고 우리 일상에 오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육을 위해서 주시는 것들이에요. 근데 우리는 그걸 내 걸로 알았죠. 그래서 소유로 삼았죠. '이게 있으면 좋고, 없으면 괴롭다'라고 했어요. 그리고 있다가 뺏어가면 그러면 불같이 화를 내고 그리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나 다시 하나님 안 본다', 심지어 그렇게 했어요. 정말로 내가 생명같이 여기는 거 그거 뺏어가면 그랬단 말이에요.
근데 그거 전부 하나님이 그걸 통해서 배우라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진리 깨달으라고 잠시 주셨던 것들이에요.
내 거 아니란 말이에요, 선물이었다니까요. 하나님이 주신 선물, 그걸 통해서 우리는 배우면 되는 거였단 말이에요. 근데 우리는 그걸 진리로 깨닫지 못해서 뇌물로 보았던 거죠.그게 왔을 때, 선물이 왔을 때 뜻을 깨닫지 못하고 원망불평하고 괴로워했던 거, 이게 선물을 뇌물로 받은 거고, 뇌물로 내놓은 거 그게 뇌물 주지 말라고 하신 말씀의 진의란 말이에요. 앞에서 본 잠언 17장 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잠 17:8) 뇌물은 그 임자가 보기에 보석 같은 즉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형통하게 하느니라
'임자', '바알'이에요. 바알은 '주인'이죠. 원래 주인이신 하나님이 보기에 '아인' '눈'이란 말이에요. 베 전치사 앞에 있어요. '눈 안에서'. 그러니까 진리로, 진리로 보면 '보석 같은 즉' '에벤 헨'이에요, 에벤 헨. '헨' '은혜', '은혜의 돌이다'라고 하는 거. '에벤', 에벤은 파자하면 '하나님의 아들, 은혜의 아들이다', 하나님의 그 은혜의 아들.
'보석 같은 즉'이라고 했는데 '같은 즉' 없어요. '은혜의 돌이다'. 뇌물은 원래 은혜의 돌, 원래 선한 거, 원래 '은혜의 아들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 아들을 하나님의 선물, 우리가 오해해서 뇌물로 보기도 했지만, 뇌물, 거짓된 선물, 율법으로, 선악의 두 마음으로 판단하면서 보기도 했지만, 그거는 원래 '은혜로 주어지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이 '쇼아드'란 말이 '샤아드'라는 말에서 유래했어요. '샤아드' '선물 주다, 뇌물 주다, 속전내다'. '그 은혜의 아들이 속전이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가 어디로 향하든지', '엘코 아세르 파나'라고 해요. '파나'하는 '모든 것에', '아세르'가 관계 대명서인데, 파나하는 콜, '모든 것' '엘코이'니까 모든 것에 대하여, 반항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그가 향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형통하게 하느니라. 그 진리가, 그 아들이 형통하게 한다. '사칼' '형통' 우리가 원하는 그런 형통이 아니라 '사칼'이에요, '지혜롭다'는 거예요.
(삼상 18:14) 다윗이 그의 모든 일을 [지혜롭게 행하]리라
그러니까 '샤칼'은 '지혜롭다'는 뜻이에요, 원래. 근데 어떻게 하는 게 지혜로운 거예요?
(사 52:13) 보라 내 종이 [형통하리니] '사칼', '내종이 지혜롭다', 이게 '형통하다'라고 우리 번역을 했는데 받들어 높이 들려서 지극히 존귀하게 되리라
십자가에 들리는 거. 이게 '사칼' '지혜로운 거다'라고 하는 거예요, 내 종이 지혜롭다. 내 종 하나님의 종이고 주님이란 말이에요. 주님의 지혜는 받들어 높이 들리는 거, 십자가에서 죽는 거란 말이죠.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라고 말씀하시는데, 뱀처럼 지혜로우라는 말씀은 '장대에 높이 들리는 거'라고 했잖아요. 십자가에서 죽는 게 지혜라고 했죠. '룸 나사', 룸 '올라가고', '나사' '들리는 거'. 높이 십자가로 들어올려지는 것이 '지혜로운 일이고 형통한 일이다'라고 하는 거죠.
'존귀하게 되리라'. '가바 메오드', 메오드'가 '매우'라는 뜻이에요. '가바 매우' '존귀하게 된다'라고 하는 거죠. 스가랴서 4장 7절부터 합독하시겠습니다.
(슥 4:7)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 예, 스룹바벨은, 학개서 2장 23절에 보면요.
(학 2:23)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수룹바벨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에요.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라고 하는데, 율법의 큰 산인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그 진리의 말씀으로 평지가 되게 하고 낮은 땅이 되게 하고,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머리 되시는 돌' '에벤'이란 말이에요. 그 에벤, 하나님의 아들을 내놓을 때에 '은총 은총', '헨 헨',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그는 은혜의 돌이니까 당연히 은총이 있는 거죠. 그에게 구원의 은혜가 있고 구속의 은총이 있는 거란 말이죠.
우리에게 주어지는 그 은혜의 돌, 그 구원의 말씀이 어떻게 주어지고 어디를 향하건, '파나' 어느 쪽으로 향하건 그건 모두 선하신 뜻이란 말이죠. 그건 모두 사랑의 말씀이란 말이죠. 어떤 말씀이 어느 쪽으로 향하건 그 속에 담긴 '헨' '은총', 그 은총 발견하고 기뻐하고 감사하시는 그 하나님의 아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 머리 되시는 그 돌, 하나님의 아들 주시고 은총 주셔서 하나 된 그 하나님의 말씀이 어디를 향하건 십자가로 우리가 설 수 있게 만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