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의 역사서 내러티브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중심한 것이어야 하며 하나님 우선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성경의 역사적 본문을 설교할 때 당영히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말해야겠다. 그러나 설교자는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적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시는 구원의 의미를 명쾌하게 먼저 드러내야 한다. 왜냐하면 기록된 역사는 하나님의 행동으로부터 묘사되고 그 범위 안에서 인간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은 성령님이 쓰시는 도구(道具)이다.
구속사적 설교란 하나님께서 당신의 구원운동을 구체적인 역사 가운데 진행시켰다는 것을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세속 역사까지도 그의 구속의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시는 것이다. 구속사는 그 본질적 요소로서 역사성을 가진다. 구속사는 역사속에서 역사와 더불어 역사를 통해서 전개되는 구원의 역사이다. 하나님은 그의 구속의 계획을 역사 속에서 이루어 가신다. 그러므로 구속사적 설교를 할 때는 역사적 본문을 기초로 한다. 그렇다면 역사적 본문이란 어떤 의미가 있는가? 역사적 본문이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행위들의 선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구속사적 설교를 할 때 역사적 본문은 선포된 역사와 역사적 선포가 동시에 포함한다. 구속사적 설교를 한다고 해서 그 범위가 좁아지는 것이 아니고 교의적, 윤리적, 역사적, 정치적, 심리적 등 여러 방면으로 접근이 가능하다. 다만 구속사적 설교가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속 행위를 선포하느니만큼 그것은 케리그마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교회에 선포된 케리그마는 인간의 행위나 인간의 모범적인 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하나님의 행위를 선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사적인 설교는 바로 하나님 중심의 설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꼴레의 말처럼 성경은 거룩한 인간의 역사가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이가. 그러므로 역사적 본문을 해석할 때 사람들의 전기를 끄집어 내서 설교를 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도리어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구속적인 행위를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예증적 설교의 입장에서 볼 때, 역사적 상황은 물론 선포되어져야 한다. 다만 핵심적인 문제는 구속사적인 설교는 하나님의 행위는 언제라도 인간을 구속하신다는 것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구속적인 행위를 역사적으로 선포하는 역사적 본문은 매우 신중하게 선포되어야 할 것이다.
역사적 본문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다음과같은 주의가 요청된다. 첫째 구속사적인 설교를 하든지 예증적 설교를 하든지 간에 성경으로부터 설교 본문을 택하는 것은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둘째는 역사적 본문을 설교할 때 분명히 하나의 단위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역사적 본문은 잘 짜여진 단위여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역사적 본문을 선택할 때는 여러 개의 다른 본문을 혼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역사적 사건과 정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병행구의 본문이나 구약의 예언이 신약에서 성취된 내용들을 나란히 읽는 것을 부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설교 본문을 택할 때 적어도 하나의 완전한 사건이 되어야 할 것을 의미한다.
홀베르다 같은 분은 역사적 해석을 종합적 해석으로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역사적 해석은 성경이 쓰여질 당시의 역사적 배경 가운데서 본문을 해석하여 본문의 특유의 의도를 결정한 후에 본문의 목적이라든지, 저자의 특별한 목적을 발견하려는 것이 이 해석이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성경을 풀어갈 때, 성경의 저자가 선포했던 그 역사적 정황에다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역사적 해석은 역사적 정황 또는 역사적 배경 가운데서 그 본문의 의미를 결정하고자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상황과 성경 기록 당시의 독자들과는 거리가 있기 마련이다. 이런 역사적 갭(gap)은 시대와 장소의 차이, 또는 하나님의 구속사 즉 계시의 점진적 성격으로오는 갭이다. 그러므로 이런 갭을 즉석적용으로 무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예증적 설교는 성경의인물과 오늘의 사람들 사이에 얼마나 큰 간격이 있는지를 상관하지 않고 과거와 현재를 직접 비교하면서 동일시 하고있다. 성경의 인물의 삶과 오늘의 삶을 동일시 함으로 어떤 교훈을 발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 차이점을 없애버림으로써 쉽게 실존적 설교, 심리적 설교, 이른바 영해설교, 도덕적 설교 등이 되어 버린다. 역사적 해석은 클라우니 박사의 지적과 같이 성경의 역사적 본문에 나타난 사건들은 성경 계시의 큰 시대구분 속에 있을 뿐 아니라 작은 시대구분 속에 있기 때문에 설교자는 우선 성경 본문의 가까운 배경을 찾고 그 다음에 보다 넓은 시야의 시대적 구분에다 연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유기적 해석이라 함은 성경 본문의 문맥과 관련을 가지고 있다. 설교자는 설교 본문 중에 고립된 단위만을 고집할 수 없고 그 본문을 전후한 이야기를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유기적인 해석의 길이 열려 있다. 성경은 여러 가지 요소들의 집합체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구속사적인 안목으로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단일한 목적으로 통일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본문을 보든지 그것은 하나의 파편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의 큰 흐름 속에 있는 사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예컨대 그리스도의 오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구약의 계시를 해석할 때 이점을 지나쳐 버려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통일성과 연속성이 있으므로 신. 구 양약은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속과 계시의 완성을 향한 시대적 점진성으로 말미암아 부분적인 것이 전체적인 것에, 잠정적인 것이 궁극적인 것에, 옛것이 새로운 것에 종속되어 있다. 결국 구속사적인 설교는 성경에 대한 유기적인 해석을 하게 하고 통일과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중심적인 설교는 성육하신그리스도에 대한 모형을 발견하는데 달려있는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전 포괄적인 증거를, 우리가 신약의 관점에서 보는 그대로 발견해내는 데 달려있는 것이다. 역사적 본문은 하나님의 행동을 선포한다.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선포를 듣는 것은 그리스도의 행동에 대한 선포를 듣는 것이다.
이와같이 구약의 역사서를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에 대해서 나의 견해를 밝히면 먼저 역사적 본문을 취급할 때 인간 편에서의 접근보다 하나님 편에서의 접근을 우선으로 시작한다. 즉 하나님께서 독생자에게 무엇을 하셨고 그리스도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또 그리스도께서 그 주변의 인물을 통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설교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속사이므로 당연히 하나님 중심한 것이어야 하며 하나님 우선의 시각으로 접근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구원을 약속하시고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역사 속에 나타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을 성취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구속을 완성케 한다. 그러므로 설교자가 성경의 역사적 본문을 설교할 때 당연히 하나님과 인간에 대해서 말해야겠다. 그러나 설교자는 인간을 출발점으로 삼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역사적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자 하시는 구원의 의미를 명쾌하게 먼저 드러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