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검 3/ 목사님이 담배피는 것 나 봤다?
목사님이 담배피셨서 내가 길 가다가 보았어? 목사안수를 함께 받고 지금도 가깝게 지내는 한 목사가 개척교회를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다시 먼저 섬기던 교회 부목사로 들어간지 얼마되지 않아서 들었던 충격스러운 말이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교회 집사가 목사님이 차안에서 담배를 피우던 것을 보았다고 교회에 소문을 죽 내엇다. 목사가 담배피다니 얼마나 그 소문 잘 나겠는가? 그 목사 이 소리 듣고 잠이 안 오더란다. 하도 어이없고, 기막혀서 억울해서 결국은 하나님이 나가라는 소리라 알고 고향에 가서 개척하여 지금 목회를 잘하고 있다. 다 지나놓고 보면 하나님의 섭리임을 느끼지만 그떄 그 가슴 얼마나 못이 박혔을까?
아마 어쩌면 그런 성도로 부터 기막힌 누명을 쓰고 교회를 도망치듯 나왓던 목사에게는 평생 가슴에 박힌 못이었을 것이다.
나도 처음 개척한 교회 전도사시절에 똑같은 누명을 썼다. 누군가 분명 우리교회 한 청년이 이런 소문을 퍼뜨렷다. 전도사님이 길거리에서 담배피고 가더라...아니 목회를 한다고 개척한 전도사가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고 간다. 하도 기막히고 어이없어서 억울하고 말이 안나왔지만 그 가슴속에 박힌 답답한 터질듯한 마음 누가 알까 그것도 자기교회 청년이 그런 말을 퍼뜨리다니 무슨 뜻일까? 억울하고 분하고 기막히고 그러나 죽어라 이 뜻이다.
점검 4 /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
우리교회에 주일 등록을 하고 등록한 주 수요예배를 나온 젊은 집사가 있었다.
주일에 등록한 집사가 수요예배까지 나오다니 반가와서 인사를 건넨다. 반갑기도 하고 좀 이야기를 나눌려고 옆에 앉았더니 대뜸 나에게 이렇게 묻는 것이 아닌가? 목사님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처음 나온 집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있다니 누가 저렇게 저 집사 속을 뒤집어놓아서 그렇게 증오하는 사람이 있는가 참 젊은 집사가 마음에 상처가 많은 가 보다.
그래서 누군데요... 그렀더니 그 집사 입에서 제가 이세상에서 가장 증오하는 사람은 원종민목사입니다. 아니 언제 봤다고 주일날 등록하고 처음 인사를 나누는 것인데 이 친구가 나를 언제 봤다고 자기가 등록한 교회 담임목사를 등록 기념으로 하는 말이 내가 당신을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한다고 하는가?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차마 그 앞에서는 말은 못하지만 욕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을 겨우참고 예배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도저히 못참겠는 거나 억울하기도 하고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 아니 등록기념으로 자기가 가장 증오하는 사람이 바로 등록교회 담임목사라고 저렇게 말하는 자를 내가 교회성도로 인정해야 할 것인지 잠도 안오고 밥맛도 없고 거의 억울하고 분해서 너무 속상하고 어이가 없어서 3일 밤을 자지 못하고 3일을 거의 먹지 못했다. 도대체 이 일이 왜 일어났는가?
너 죽으라고 ...
죽는 방법은 침묵이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사 53: 7)
예수님의 십자가 지실 때 모습이다. 예수님 죽으실 때 침묵하셨다.
이용도 목사의 아호가 시무언(是無言) 이 뜻은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
그래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 십자가는 이 비밀을 가르쳐준다. 죽어라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 용도목사는 짧은 인생을 무언, 겸비, 기도, 순종을 좌우명으로 삼고 살았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시 37: 7)
이 시간은 하나님이 사건을 일으켜서 우리의 자아를 죽이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이 시간을 통과 할 때는 죽을 만큼 힘들다. 그라나 통과해야 한다. 결국 나는 죽고 예수님만 살아나야 한다. 참 이상하다. 그런데 나 죽으면 변화된다.
나는 목회의 핵심은 한가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오직 나를 버리고 예수님!
수없이 외친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느낌 내 의견 내 계획 내 상황 그것이 무엇이든지 내 것은 다 버리고 예수님으로 채우는 것 이것이 목회이다. 이것 배우면 산다. 이것 배우지 못하면 결국 그 목회 내 뜻대로 내 감정대로 하지 주님 뜻대로 하지 않는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십자가에서 우리가 죽어야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하게 된다. 솔직히 내교회하는 목회자 얼마나 많은가 내 교회가 아니라 우리는 주님의 교회를 목회하는 주의 종들이다.
이렇게 오직 예수로 목회할려면 단하나 죽는 법외에는 없다. 나라는 가면을 벗어버려야 한다. 내 자아를 죽여야 한다. 결코 목회는 예수님 이용애서 나 좋으라고 하는것이 아니다.
나 죽고 나 이용당해서 예수님 좋으라고 하는 것이다. 내 욕심 내 명예, 내 자랑 다 십자가에 내려놓아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5: 2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 14)
오직 예수만 자랑! 왜 교회 부흥되어야 하는가 내 자랑 아니다. 오직 예수자랑
예수 십자가 자랑! 오직 예수 밖에 없다.
이 학기에서 십자가에 죽어야 주님은 우리 교회속에 다음일을 행하신다.
마음을 넓혀라
내가 자녀에게 말하듯 하노니 보답하는 양으로 너희도 마음을 넓히라 (고후 6: 13)
왜 우리가 십자가에서 우리의 자아가 죽어야 할까? 큰 교회를 할려면 각오할 것이 별별 성도가 다 들어온다는 것이다. 교회 100명 성도는 재미있다. 그러나 성도가 300명정도가 되어도 벌써 별의 별 성도가 다 들어온다. 내가 살아있으면 목회 못한다.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살아야 내 자아가 죽어야 주님의 맡겨주시는 양이 누구든지 품을 수 잇다.
1000명 목회는 1000명 시집살이, 100명 목회는 100명 시집살이다.
하나님은 때로는 정말 살리고 싶고 양육하고 싶은 양이 있는데 보낼 곳이 없다. 자아가 죽지 아니한 목회자들은 그들을 맡아서 목양을 못한다. 모든 성도들을 주님의 심정으로 목회 할려면 오직 한가지 내 자아가 죽어야 한다.내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으면 그리고 예수마음이 되면 주님은 품을 수 잇는 모든 사람들을 다 맡겨주신다.
그래서 억울해도, 어이가 없어도, 고통스러워도, 침묵하고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교회가 출석 성도가 100명 되면 목회와 성도사이에 이상한 묵약이 생긴다. 해보면 알겠지만 이 시기 정말 가장 좋은 시기다. 교회 너무 재미있다.이쯤되면 누가 들어와서 이 좋은 것을 깨면 어쩌지, 큰 교회만 성도들 텃세가 있는가? 아니다. 작은교회일수록 은연중애 성도들의 텃세가 생긴다. 목회자 속에서도 문제 일으키는 성도보다는 솔직히 말 잘듣는 그리고 열심히 잘하는 성도가 좀 적더라도 그런 성도들과 목회하기를 은근히 즐긴다.
그리고 목회자와 성도 스스로가 여기가 좋사오니 하고 문을 아주 살짝 걸어 잠근다.
아무도 모르게...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교회는 더 이상 부흥을 경험못하고 교화건축해보지도 못하고 나아가서 그 교회속에서도 이모 저모 문제가 터진다. 십자가를 통과할때 주님은 우리의 목양의 마음을 마음껏 넓히신다. 그 넓은 마음이 생겨야 주님이 보내주시는 병들고 힘든 모든 성도들을 품을수 있다. 십자가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현실의 물질세계 한복판으로 우리를 끌고간다. 목회속에서 이 비밀도 배워야 한다. 당신은 물질적으로도 십자가를 통과하였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