죗값 치르기
염혜순
그날따라 전화기에서 들려오는 딸아이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나까지 소리를 낮추어 “뭐하니?”하고 물었다. “죗값 치러요.”한다. “죗값?” “공부해요, 나 지금 도서관.”
도서관이라는 말에 놀라 얼른 전화를 끊었다. 근데 공부가 죗값이라고? 순간 푸욱 하고 웃음이 터진다. 그래 그건 분명 죗값을 치르는 일이다. 엄마가 공부하랄 때 안 하고 논 대가, 그 죗값으로 딸애는 남을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사니 이제 공부를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곱지 못한 내 심사로 갑자기 고소한 기분까지 들어 소리 내 한참을 웃었다. 왠지 모르게 통쾌하다.
둘째가 고등학교 배정을 받고 나서 염려했던 일이 터졌다. 하필 그 학교로 내가 발령이 난 것이다. 이제 3년을 모녀가 한 학교를 다녀야 한다. 순탄치 않으리라 예상했던 대로 딸애와의 3년은 만만치 않았다. 그 처음은 이랬다.
공부엔 별 관심 없는 녀석은 첫 시험 보고 오던 날 나에게 선언 했다. “내가 이제부터 남 잘 때 못 자고 남 놀 때 못 놀고 공부해 봐야 S대는 못가겠지. 잘해야 A대나 B대 갈 텐데, 엄마, 나는 그냥 남 놀 때 놀고, 남 잘 때 자고 편하게 대학 가야겠어. 그러니 나한테 자꾸 스트레스 주지 마.” 그 말에 나는 온 몸의 힘이 다 빠져버리는 것 같았다. 학생들 입시지도에 최선을 다 하는 나에게 이 무슨 가혹한 말인가. 나는 너무 기가 막혀 아무 말도 못하고 끙끙 앓아누웠다.
나를 말없이 쳐다보던 남편은 둘째를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속까지 빼 닮은 두 사람이 얼마 후 돌아오더니 그토록 당당하던 딸이 슬그머니 내 발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엄마 내가 열심히 할게. 아프지 마.” 하면서. 둘 사이 무슨 말이 오간 건지 알 수 없지만 그날의 일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딸애의 자유로운 영혼은 한 길로만 가기 바라는 내 희망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러던 그 애가 공부를 하니 죗값 치르는 게 맞나 보다.
이제 딸애는 열두 살 딸을 둔 아이엄마로 일하면서 살림하면서 바쁘게 산다. 간혹 손녀딸 일로 내게 하소연을 하면 나는 웃는다. 학원시간 30분 전에야 숙제를 한다던 손녀딸은 시간 안에 숙제를 다 못하겠다고 울기 시작했단다. 나 오늘 늦는다고 선생님한테 전화해 달라고 해 놓고는 울면서 숙제를 한다고 속 터져 죽겠다는 전화를 했다. 네 딸은 내 딸보다 낫다고, 그래도 네 딸은 숙제라도 하지, 너는 “숙제 못함 어때? 손바닥 한 대 맞지 뭐.”하던 애가 아니었냐고 기름을 부었다. “아휴 엄마까지 왜 이래? 정말.”하는 말이 들리는데 나는 이미 소리 내 웃고 있었다. 딸애도 지은 죄가 있으니 고소해서 웃는 엄마를 따라 웃고 말았다. 그래도 아이를 기르며 엄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고 고백 할 줄도 알고 지은 죄가 무엇인지 알고 죗값도 치루니 지난 세월 속상했던 일들이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다.
웃자고 던진 딸애의 말에 문득 내 죗값은? 하는 생각에 멈칫해 진다. 순간 온갖 장면이 머릿속을 스친다. 밥 먹기 싫다고 엄마 속 썩이던 일부터 친구들과 작당하고 여럿이 커닝하던 일, 거스름돈 더 받은 거 알면서도 시침 떼고 나왔던 일. 너무 많아 생각이 엉킨다. 사실 학생 때 공부 안하고 부모 속 태우는 게 어디 우리 둘째 딸만 짓는 죄겠는가. 아니 죄라고 할 것도 없이 ‘범생’이 아닌 나 같은 사람의 평범한 일상일 것인데.
생각해 보니 사람 사는 일이 어쩌면 죄의 연속인가 싶다. 죄 없이 사는 일이 가능하긴 한 것인가. 그래서 예수가 간음하던 여인에게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했을 때 아무도 돌을 던지지 못했던 것은 아닐까.
자식에게도 죄 될 일도 꽤나 많다. 미숙한 엄마가 되어 갈팡질팡 살면서 내 욕심이 앞서 아이를 몰아세운 적은 얼마나 많던가. 그러면서도 나는 지극히 올바른 부모인 냥 자기 의(義)에 빠져 있었던 무지의 죄, 오만의 죄, 게다가 그런 모든 것을 합리화 하며 자신을 속이고 주변을 속인 죄. 나열하자면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느 드라마 대사에서 ‘알고 지은 죄 백 가지, 모르고 지은 죄 천 가지 만 가지’라던 말이 기억난다. ( 드라마 디어마이프렌즈의 대사) 알고도 짓고 모르고도 짓는 그 숱한 죄 속에서 우리가 제대로 죗값을 치루며 사는 건 얼마나 되는지. 죄가 죄인 줄 알고 그것을 고백하는 것도 용기이고 지혜가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야말로 용서 받는 첫걸음이 되지 않을까.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신 앞에서 내 크고 작은 죄를 다 고백한다면 신도 큰 소리로 웃으며 안아주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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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엄마한테 다녀와야겠다. 뭐가 그리 바쁘다고 한동안 엄마한테 전화도 안 드렸는지. 세상에서 부모에게 지은 죄가 제일 크단다. 사골 국물에 된장 풀어 배추 듬뿍 넣고 끓여 들고 엄마 뵈러 가야지. 엄마랑 맛있게 밥 많이 먹고 와야겠다. 오늘은 나도 죗값을 좀 치러야겠다.
[조선문학 2023년 6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