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진은 이별로 인해 우울했다. 혜성과 헤어지는 것이, 정말 이렇게 끝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포기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자꾸 불쑥불쑥 치미는 억울함이 있었다. 내가 왜 혜성이랑 헤어져야 되는데? 왜 그 미친 새끼한테 혜성이를 보내줘야 하는데? 게다가 그 미친 새끼는 제 손을 이렇게 만들었다. 저는 피해자였다. 피해자인데, 나 혼자 이렇게 불쌍해지고 끝나는 건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비참하게 끝을 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래도 끝내줘야 한다는 걸 이성적으로는 알고 있었다. 혜성은 에릭과 함께 있으면서 아마 안정을 찾을 것이다. 저는 몸과 마음을 다 혜성에게만 바치면서 살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잘해보겠다고 말했지만, 아마 평생을 가도 에릭이 혜성에게 헌신하는 것만큼은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비참했다.
“야, 이 씨발새끼야.”
그래서 진은 에릭의 얼굴을 보자마자 욕을 내뱉었다. 에릭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못마땅한 표정을 했다.
“적어도 인사는 먼저 하시죠.”
“내가 니 면상에 똑같이 안 쑤셔주는 걸 다행으로 여겨.”
진은 제 손을 치켜들면서 말했다. 에릭이 제 손등에 칼을 꽂았던 걸, 그대로 에릭의 저 잘난 얼굴에 되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랬다간 정말 치정싸움이 되겠지. 물론 지금까지도 치정싸움에 가까웠던 건 사실이지만. 그러나 에릭은 진의 위협이 조금도 무섭지 않았는지 피식 웃었다.
“저를 보러 왔다고 해서, 좀 놀랐네요. 앉죠.”
에릭이 의자를 권했다. 진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국에서 활동하는 에릭의 소속사를 찾아오면서, 진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참을 인자를 새기려고 했다. 어쨌든 이대로 물러나게 되는 건 싫었지만, 마무리는 짓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에릭에게 사과는 받을 생각이었다. 그 사과가 진심이든, 아니든. 아마 진심으로 사과를 받을 순 없겠지만, 그래도 에릭한테 그놈의 ‘제대로 된 경고’만 받고 도망치는 것처럼 보이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진은 퇴원하자마자 에릭의 소속사를 찾았다.
“차 드려요?”
에릭이 물었다.
“이미 직원한테 필요없다고 했어.”
진은 거절했다. 에릭이 주는 것이라면 뭐든 받고 싶지 않았다. 소속사 한켠에 마련된 게스트룸이었다.
“그래요...”
에릭은 별 뜻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는 진을 바라보았다. 제 손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전혀 죄책감없는 표정으로 진을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에릭을 보면서 진은 정말로 에릭이 ‘괴물’임을 직감했다. 적어도 상대방이 왔을 때 우쭐해하거나, 아니면 살짝 어색해하느 모습이라도 보여야 하는데 에릭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아주 평온하고, 심지어는 조금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 날 그렇게까지 해서 혜성이 옆에서 쫓아내고 싶었냐?”
진이 시비조로 물었다. 그러자 에릭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결국 또 그 소리에요?”
“내가 오른손에 평생 힘주지 못한다는 거, 알기나 하냐?”
“제가 무슨 상관이죠?”
에릭이 물었다.
“저랑 아무 상관없는 얘기를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건가요?”
“뭐!? 이 개같은....”
“당신의 오른손은 당신 팬들에게나 신경쓰일 일이지, 난 아녜요. 사실 난 당신 테니스엔 조금도 관심 없거든요.”
에릭은 아무렇지도 않게 진의 말을 자르면서 다리를 꼬았다.
“혜성이도 이거 알아?”
“당신 오른손 얘기요? 글쎄요. 혜성인 요새 외부와 차단되어 있어서요.”
에릭은 살짝 고개를 틀었다.
“당신도 아시다시피, 혜성이는 지금 예민하거든요. 안좋은 이야기들을 굳이 알게 할 필욘 없잖아요.”
“혜성이가 나한테 미안해하고, 그러면서 내 생각 하는 게 싫은 거겠지.”
“피곤하네요. 소모적일 뿐인 이런 이야기.”
에릭은 그렇게 말하면서 한숨을 쉬었다. 진은 에릭의 눈빛이 순간 무거워지는 것을 발견했다. 지난번, 진을 협박할 때도 저 비슷한 눈빛이었다. 진은 저도 모르게 상처가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에릭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건 자존심상 절대 허락하고 싶지 않은데, 제 상처는 저도 모르게 그 날의 에릭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영화라고 생각해보죠.”
에릭의 목소리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당신은 내가 무슨 짓을 한다 해도 죽지 않을 거에요. 내가 당신을 때리거나, 아니면 당신에게 총을 쏘거나, 심지어 어딘가에서 떨어뜨려도 당신은 어떻게든 살아나겠죠. 그러다 아마 당신이 회심의 일격이라도 날리면 난 쓰러질거고요. 그런 다음에 당신은 혜성이를 데리고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거에요. 이제 다 괜찮아, 이런 소리나 하면서. 관객들은 안심한 표정으로 일어나서 극장을 나갈 거고.”
진은 에릭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에릭은 정말 진이 불쌍하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나에요.”
“..... 뭐?”
“그리고 내 영화의 엔딩은 해피엔딩일 거고.”
에릭은 어깨를 으쓱했다.
“당신에겐 배드엔딩이겠지만, 대부분의 영화가 그렇듯이 한 쪽이 모든 걸 얻으면 다른 한 쪽은 모든 걸 잃죠. 안 그래요?”
“.......”
“이제 알겠어요? 당신이 여기까지 와서 쓸데없는 말이나 하는 게 얼마나 소모적이고 의미 없는지?”
에릭은 그렇게 말하면서 진을 바라보았다. 진은 에릭을 노려보고 있었다. 넌 졌으니까 닥치고 있으라는 얘기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에릭에게 진심이 아니어도 좋으니까 사과받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에릭에게 사과를 요구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어불성설이었다. 진은 한숨을 다시 한 번 크게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한국 뜬다.”
진의 말에 에릭이 흠, 하고 중얼거렸다.
“떠날 거라고, 이 개잡놈아.”
“행운을 빌어요.”
에릭은 성의없이 인사말을 건넸다. 진은 한숨을 쉬었다. 진작에 이런 놈인 걸 알고는 있었는데.
“..... 니가 주인공이든, 내가 주인공이든 상관 없어. 사실 그렇게따지면 우리 둘 다 조연 아니겠냐? 혜성이가 주인공이지.”
“맘대로 생각해요.”
“어쨌든 니가 혜성이한테 미쳤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려고. 솔직히 나, 니가 내 손 이렇게 만든 거 죽을때까지 용서 못 해. 아니, 안 해. 하려고 노력할 맘도 없어. 너는 그냥, 나한텐 영원히 미친놈이고 개새끼고 씨발새끼야.”
에릭은 진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진은 계속 말을 이었다.
“근데 내가 너, 이거 그냥 묻어주는 거? 신혜성한테까지 너 개새끼 만들기 싫어서 그래.”
“......”
“생각같아서는 혜성이한테 지난번처럼 다 까놓고, 너 개새끼로 만들어서 복수하고 싶은데, 그게 너한테 복수하는 게 아니라 혜성이한테 또 미친 짓 하는 것 같아서 그냥 덮어주는 거야. 널 용서했다거나, 잊어주겠다거나, 그런 거 아니라고. 알아들어?”
“알아들었어요.”
에릭은 대답했다.
“그러니까 너, 신혜성한테는 미친 짓 안 할거라고 약속해.”
“내가 왜 당신에게 그런 걸 약속해야 하죠?”
“약속해.”
“.....”
“그러면 군말없이 떠날테니까.”
진의 말에 에릭이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약속할게요.”
어이가 없었다. 너무나도 순순히, 에릭은 진에게 약속했다.
“혜성이를 해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에요. 난 혜성이를 사랑하니까. 심지어 나 스스로보다도 혜성이가 더 중요한 사람이에요. 절대 혜성이 다치게 안 해요. 상처받게 하지도 않을 거고. 그러니까 자신있게 약속할 수 있어요.”
이 새끼는 미친놈이라 자존심도 없나보다. 진은 어이가 없어서 에릭이 순순히 고개를 숙이고 진에게 약속하는 것을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아마 나한테 사과해. 그러면 혜성이 앞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거야. 라고 말한다면 에릭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진의 손을 잡고 사과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안해요.”
에릭은 마치 진을 정말로 아낀다는 듯이 진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그리고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진을 바라보았다. 그 소름끼치는 손길을 피하며 진은 서둘러 게스트룸을 나섰다. 어쨌든, 약속을 받았다. 에릭이 정말 그 약속을 지킬지는 모른다. 하지만 혜성에겐 어쩌면 에릭이 주는 사랑처럼 미친 사랑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혜성은, 제 사랑으로는 언제나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숨막힐 듯이, 온 몸을 바쳐 사랑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 혜성이를 위해 떠날 수 있는 거야.
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다. 그래. 어쩌면 제가 혜성을 위해서 하는 처음이자 마지막일 희생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도 어디 여행이나 다닐까....”
진은 중얼거리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쨌든 오른손이 아예 없어진 것도 아니고, 힘을 제대로 줄 수 없게 되었을 뿐이다. 테니스를 칠 수 없게 된 것 뿐이지만, 어차피 은퇴할 결정을 내린 상태였고. 진은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면서 뚜벅뚜벅 걸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진을 동정과 호기심이 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진은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 돈 많은 백수가 되었다. 모두가 꿈꾸는 생활이 바로 돈 많은 백수라는데. 여행이나 다니면서 마음 정리를 하고 그 다음에 뭘 할지 생각해볼까....
“이 집은 어때?”
에릭은 혜성의 침대에 사진들을 잔뜩 늘어놓았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멋진 장관을 가진 집도 있었고, 정원이 무척 넓고 아름다운 집도 있었고, 바다와는 좀 멀지만 완만한 동산 위에 지은 집도 있었다. 대부분 단촐하고 작은, 아늑한 집이었다. 혜성은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계속 바라보았더니 어떤 것을 골라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혜성이 아무 말도 못하고 사진들만 바라보고 있자, 에릭은 사진 하나를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노란 집.”
에릭이 말했다. 혜성은 그 사진을 집어들었다.
“예뻐....”
노랗게 칠한 벽에 하얀 창문이 달려 있었고, 그 창문 아래로 빨갛고 하얀 꽃들이 앞다투어 피어 있는 집이었다. 그리고 정원엔 나무도 하나 서 있었다. 혜성은 그 나무를 세심하게 바라보았다. 그러자 에릭이 얼른 말해주었다.
“오렌지 나무야.”
“오렌지...?”
“응. 나폴리는 오렌지나무가 잘 자란대.”
에릭의 말에 혜성이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1년 내내 따뜻한 날씨여서, 우리가 행복하게 지낼 신혼집으로는 딱이야.”
“신혼집?”
혜성이 에릭을 바라보았다. 에릭은 살짝 쑥스러운 듯이 웃었다.
“같이 살게 되는 거니까.... 난 신혼집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
“......”
“이 집, 좋아?”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다 좋았다. 모든 사진들이 다 에릭이 신경써서 고른 것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무엇을 골라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에릭이 이 사진을 가리킨 순간, 혜성에게는 그 집이 가장 마음에 드는 집이 되었다. 혜성은 가만히 사진을 바라보았다. 에릭은 웃으면서 사진을 침대 맡에 붙여주었다.
“매일매일 보면서, 빨리 나을 일만 생각해.”
“...... 난 이제 많이 괜찮아졌는걸.”
혜성이 손목을 내밀었다. 혜성은 이제 붕대를 풀었다. 아마 이 흉터는 평생 남게 되겠지만, 그래도 두꺼운 붕대 말고 반창고를 붙이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많이 나아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혜성은 회복하는 기간동안 집과 병원만 왕복하면서 조용히 지냈다. 대중들의 반응도 신경쓰지 않았고, 그러는 동안 소속사와의 재계약 시기도 놓쳐버렸다. 아마 진의 아버지는 기다려주지 않았을 것이다. 동완은 조용히 잘 마무리되었다고 말해주었다. 혜성은 서면으로 잠정은퇴를 선언했다. 다시 연예계에 뛰어들기에 혜성은 너무나 불안정했다.
“사람들이 다들 널 기다려.”
에릭은 그렇게 말하면서 혜성의 반창고 위에 키스했다.
“우리만의 노래를 만들까?”
“응?”
“나폴리에 가면 말이야. 내가 기타를 연주하고, 네가 노래를 부르는거야. 매일매일, 우리만의 노래를 만들자.”
에릭은 기타를 치는 시늉을 했다.
“사람들은 날 기다리지 않을 거야.”
혜성은 중얼거렸다.
“다들 날 미워했는걸....”
“널 미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널 사랑하던 사람도 있어. 아직 널 기다리는 사람들.”
“...... 아직도 전진 때문에 날 미워하는 사람이 있을 거야.”
혜성은 대중들의 반응이 아직도 무서웠다. 진과 혜성이 헤어지면서 대중들은 충격을 받았다. 에릭과 혜성의 관계가 세상에 드러나면서 동정표를 많이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더 이상 테니스를 치지 못하게 된 진과 헤어진 것은 꺼림칙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대중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이 무서워서 일부러 피하고 있었지만, 그 정도 반응쯤이야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혜성은 자신이 없었다. 사람들 앞에 다시 서고 싶지 않았다.
“그냥 너랑만 있을래...”
그 말에 에릭은 정말 기쁜 듯이 활짝 웃었다.
“최고야.”
“....?”
“나랑만 있겠다는 말, 정말 최고로 기쁜 말이야.”
에릭이 다정하게 웃었다. 혜성은 그런 에릭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하지만 널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내 말은, 위로가 아니라 사실이야.”
“.......”
“네 목소리는 한 번 들으면 절대 잊을 수 없는걸...”
“....... 그러면, 작곡 공부 해볼까?”
혜성이 은근슬쩍 물었다. 사실 이미 동완이 혜성에게 작곡 공부를 해보지 않겠냐며 책을 잔뜩 사들고 온 터였다. 만약 혜성이 흥미를 보이면 아예 작업실이라도 얻어줄 것처럼 굴었다. 네겐 새로 몰두할 것이 필요해. 동완은 그렇게 말하며 혜성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동완의 손길이 아직 무섭긴 했지만, 혜성은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동완도 그걸 알아차렸는지 손을 내렸다.
“작곡?”
에릭이 혜성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다시 웃었다.
“아, 김동완, 그 사람이 너한테 작곡공부 해보라고 한 거야?”
“근데 내 형인데...”
“나한테 형 소리 듣는 게 싫대. 김동완씨로 합의 보자더라고.”
에릭의 말에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동완이 에릭을 진심으로 마음에 들어할 일이 있을까 싶긴 했다.
“나는... 내가 남자라서 다행인 것 같애.”
혜성이 갑자기 말하자 에릭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는 것처럼 살짝 씁쓸한 표정을 했다.
“그렇다면 나도 혜성이 네가 남자라서 기뻐. 니가 좋다면 난 다 좋으니까.”
만약에 임신을 할 수 있는 몸이었다면, 근친의 죄가 구체적으로 들어날 수 있는 여자였다면 혜성은 에릭의 손을 선뜻 잡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원한 나락으로 떨어졌겠지. 하지만 제가 그럴 수 없다는 것은 혜성에게 묘한 위안과 도망칠 수 있는 구석을 남겨주었다. 나는 도망치기 선수니까... 혜성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에릭이 벽에 붙여준 사진을 바라보았다.
“인테리어도 생각해야 해. 우리끼리 정할 것들이 너무 많아. 신나지 않아?”
살짝 큰 하늘색 후드티를 입은 혜성은 선글라스를 낀 채 카페 구석 자리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커다란 카페엔 수많은 사람들이 환한 햇살을 받으며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혜성은 그런 사람들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었다. 아직 긴 팔을 입을 날씨는 아니지만, 몸이 많이 축난데다 에어컨 바람이 너무 춥게 느껴지는 혜성은 사람들의 옷차림과 상관없이 따뜻한 라떼까지 시켜서 앉아 있었다. 팔을 그은 후 처음으로 혼자 한 외출이었다. 아직도 가끔 팔뚝이 시린 느낌이 들었다. 혜성은 아주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왔다. 동완이 가지고 있던 핸드폰도 받았다. 핸드폰을 충전시키고 전원을 켰을 때, 혜성은 수많은 문자 메시지와 부재중 전화에 살짝 질려서 확인하지도 않고 전부 삭제해버렸다. 그리고, 타이밍 좋게 바로 걸려온 전화를 잠시 고민하다 받았다. 민우의 전화였다.
“오래 기다렸냐?”
사람들 구경에 여념이 없던 혜성의 앞에 커피 한 잔이 털썩 놓였다. 깜짝 놀란 혜성이 앞을 바라보았다. 민우는 더운지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혜성의 앞에 앉았다. 혜성은 민우의 아메리카노 안에 얼음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까만 나시티를 입은 민우는 입고 온 체크남방을 대충 옆자리에 걸쳐놓고 빨대로 얼음을 마구 휘젓더니 쭉쭉 빨아먹기 시작했다. 혜성은 그런 민우를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알고 지냈던 사람인데도, 마치 아주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다가 만난, 신기한 느낌이 들었다.
“너 오니까 사람들이 다 쳐다봐...”
혜성이 중얼거렸다. 혜성 혼자 구석에 쳐박혀 있을 땐 이쪽을 의식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어느덧 사람들이 이쪽을 흘끔거리고 있었다. 민우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 연예인 느낌이 나는 것이다. 민우는 피식 웃었다.
“아직도 그런 거 신경쓰냐? 이 짓이 몇 년짼데.”
“.......”
“내가 보자고 해 놓고,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
민우가 시계를 흘끗 보면서 말했다. 혜성은 핸드폰 시계를 바라보았다. 약속시간 5분 전이었다. 할 일 없는 혜성이 일찍 나와있었던 것 뿐인데, 민우가 제게 사과하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민우는 절대 그런 성격이 아니었다.
“너한테 사과할 거, 또 있어.”
민우가 혜성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 해명할 건 해명하고, 사과할 건 사과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만나자고 했다.”
“응.”
“너 이번에 에릭이랑 바람났다는 그 루머.... 그거 내가 어느정도 일조한 게 있어서.”
“.......”
“내가 너랑 에릭이 같이 있는 사진을 찍었었거든. 그걸 내가 인터넷에 올렸었어.”
“괜찮아.”
혜성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예전엔 그런 것들에 다 하나하나 상처받았었는데, 어느새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 되어버렸다. 어차피 나는 떠날 거야. 혜성은 그렇게 생각하며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민우가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그 전에... 너 싸구려니 막 그런 루머 돌 때... 그 루머는 나랑 전혀 상관 없다.”
“.....?”
“니가 나로 오해하고 있는 건 알았는데, 내가 뭐... 그런 건 안 했어. 나도 양심이 있지, 야...”
왠지 쭈뼛거리고 있는 민우의 모습에 혜성은 다시 한 번 고개를 갸웃했다. 그거야말로 민우인 줄 알았는데. 그것 때문에 민우에게 뾰족하게 화를 낸 적도 있었던 혜성은 괜히 미안해하는 민우의 모습에 저도 마음이 살짝 불편해졌다.
“그건 진짜 나 아냐.”
“...... 오해해서 미안.”
“아니, 그렇다고 바로 그렇게 사과하란 뜻은 아니었고...”
“.....”
“아, 씨발, 나도 내가 뭐 하자고 너 만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근데, 마음이 그냥 좀 그래서. 너랑... 에릭이 형제사이인 것도 몰랐고. 예전에 에릭이 나한테 너랑 친한 줄 알고 잠깐 들이댄 적 있었거든. 난 그 때도 에릭이 너한테 흑심같은 거 있나 이렇게 생각했지 그런 건 꿈에도 생각 못 했어. 내가 너 망하길 바란 적은 많은데... 니가 죽길 바란 적은 없었어.”
혜성은 그런 민우를 바라보다가 다시 손목이 시큰해졌다. 그리고 민우가 왜 저에게 전화해서 이렇게 저자세로 사과하고 있는지 알아챘다. 혜성이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민우는 한숨을 쉬었다.
“아무한테도 말 안 해. 그냥... 요새 이쪽에 소문이 돌긴 하는데... 아마 니네 형이 막아주고 있으니까 그런 게 기사로 나진 않을 거야. 하지만 오늘 보니까, 너 긴 팔 입고 나온 거 하며 소매 사이로 슬쩍 보이는 거 하며.... 내가 너 그렇게 몬 데 일조한 것 같아서 마음이 정말 안 좋더라. 나는 진짜, 너 싫어했고 너 망하길 바란 건 사실이지만 니가 그런 짓을 하길 원한 적은 없어.”
“...... 너랑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혜성이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그 주제가 자꾸 나오는 건 불편했다.
“그래도... 아 씨, 몰라. 나는 니가 막... 아무 고생도 안 해보고 그런 도련님인 줄 알았어. 그래서 너한테 열등감 느꼈었고... 세상이 정말 공평하다면 나처럼 가진 거 없이 노력만 죽어라 하는 놈이 너같은 놈을 이겨야 한다고 생각했거든. 니 가정사나 뭐 그런... 건 나도 몰랐었어.”
“..... 뭐?”
“어?”
혜성이 정말 모르겠다는 듯이 묻자 오히려 민우가 당황해했다. 혜성은 살짝 얼굴을 찡그리고 민우를 바라보았다. 가정사?
“에릭이 기자회견 하고 나서... 너네 가정사가 좀 털린 건 있잖냐... 그거.”
“...... 어떤 내용으로?”
“뭐... 니네 아버지가 어떻다든가, 어머니가 그래서 뭐.... 자세한 건 아니고, 그냥 그 배경 정도만...?”
민우가 혜성의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혜성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동완이 있는데 자세하게 나올 것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대략적으로 나왔겠지. 혜성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려고 했다. 어차피 나는 떠날 거야. 예쁜 집이 기다리고 있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혜성은 라떼를 마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민우가 혜성을 흘끔 보았다.
“괜찮아?”
“..... 응.”
“......”
“나, 떠나.”
혜성의 말에 민우가 깜짝 놀랐는지 컥, 하고 숨을 내뱉었다.
“어!?”
“나, 떠나. 그러니까 괜찮아.”
“야, 니가 그렇게 말하면... 아니, 떠나다니. 어디로?”
“나폴리.”
“나폴리? 야, 잠깐만. 너 그러니까, 아예 뜬다고? 여길?”
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민우가 황당한 듯 혜성을 바라보았다.
“야, 그렇다고 아예 떠버리면....”
“가서 작곡 공부 할거야.”
“...... 아예 놓는 건 아니구나? 다행이다.”
민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춤 연습은 안 하냐?”
“...... 안 해.”
“다행이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둘 다 살가운 성격은 아닌 탓이다. 혜성은 평소보다 더 말이 없어졌고, 민우는 원래 혜성에게 살갑게 말을 거는 성격은 아니었다. 어쨌든 용건 전달이 끝나자 둘 사이에 말이 없어졌다. 혜성은 말없이 라떼를 마시며 다시 사람들 구경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민우는 그런 혜성을 흘끔흘끔 바라보기만 했다.
“담에 너 다시 오면... 그 땐 진짜 듀엣 한 번 하자.”
민우가 어렵게 말을 꺼냈다. 혜성은 민우를 바라보았다.
“그 땐, 너 싫다고 안 할게.”
민우가 그렇게 말하고 일어섰다. 혜성은 말없이 떠나는 민우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민우는 머쓱하게 인사하고는 떠나버렸다. 카페에 혼자 남은 혜성은 아직 반이나 남아 있는 라떼잔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 때, 타이밍 좋게 혜성의 핸드폰 전화벨이 울렸다. 에릭이었다. 혜성은 에릭의 이름을 빤히 바라보다가, 전화를 받았다.
“응.... 끝났어...”
결국 에릭의 해피엔딩으로 끝이 납니다. 근데 전 진이가 제일 부러워요. 돈 엄청 많은 백수... ㅠ
지금 별따 끝나고 차기작 고민중이에요.
피폐물도 있고... 깐셩조폭물도 있고... 이번엔 가상 사극으로 한 번 더 해졸까 싶기도 하고요 ㅋㅋㅋㅋ
근데 뭐가 되었든 추워지면 다시 올 것 같아용ㅋㅋㅋ 여러분들하고 밀당하려고요!!!! ㅋㅋㅋㅋ
내일이 완결인데, 내일 제가 서울로 아침 일찍 출발해야 되서 못 올릴지도 몰라요 ㅠㅠㅠ
동완오빠 뮤지컬도 볼 겸 해서 무박 2일로 올라가는거라서 내일 만약 아침에 못 올리면 금요일 밤에나.... ㅠ
첫댓글 네?!!!!!!!!!!!!!!!!!!!!ㅇ0ㅇ!!!!!!!!!!!!!!!!1
완결이라구요?!!!!!!!!!!!!!!! 내일 이 완결이라구요?!!!!!!!!!!!!!!!!!!!!!!!!!!!!!!!
진이는 혜성이의 앞날을 걱정하며 떠나는군요~
민우와 혜성이사이도 밝아진분위기에
정혁이 원하는대로 혜성이를 주물주물 가지게 되었네요
혜성이 아픔을 씻고 정혁과 행복하고 사랑받는 앞날이 되었네요!
흑흑흑흑 저는 피폐물에 약해서 깐셩조폭물이 왠지 끌리네요 >_< 깐셩이 형님소리 들으면서 나오는건가요? 캭
주물주물 가진다는 말이 왜 이렇게 귀엽죠? ㅋㅋㅋㅋ 깐셩이 당연히 형님이죠!! 만약 연재하게 된다면 이번엔 혜성오빠 보스 시켜주려고요ㅋㅋㅋ
진이는결국 혜성이를떠나네요.떠나면서도 혜성일 걱정하네요.민우랑도 사이가좋아진거같구.다음편이결말이라니 아쉬워요.다음작품은피폐물보고싶은데요.서울잘다녀오세요.달빛님^^
사랑해서 떠나준다의 결정판입니다!! 진이 입장에선 정말 혜성이에게 처음이자 마지막 배려와 희생이 되겠네요ㅠ 피폐물은 결말도 피폐해서 고민중이에요ㅠ
달빛님의차기작 벌써 기다려지네요! 별따 해피엔딩으로 끝나서 좋아요!
해피엔딩!! ㅋㅋㅋㅋ 차기작을 벌써 기다려주시다니ㅠ 고맙습니당!
내일이면 별따도 바이 ㅠㅠ 너무너무 아쉬워요 ㅠㅠ 그래도 혜성이를 미친듯이 사랑해주는걸로 둘이 위안을 얻기를.. 저도 진이 부럽네요.. 돈 많은 백수!! 내 인생에도 있을까요?? ㅋㅋ 민우는 나쁜 사람은 아니고 단지 혜성이랑 쫌 안맞는 사이.. 다음전에 듀엣하면 좋겠어요 ㅎㅎ
달빛님 ㅠㅠ 우리랑 밀당 하지말아요 ㅠㅠ 얼른 빨리 다음 작품 보고싶어요!!!! 그치만 쫌 쉬셔야하니까 엄청 기다리고 있을께요 ㅎㅎ 서울여행 잘 갔다오세요^^ 비조심하세요~~
민우는 정말 혜성이랑 맞지 않는 사이죠ㅋㅋㅋ 사실 밀당도 밀당이지만 바빠서 시간적 여유가 부족해졌어요ㅠ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써놓고 연재해야죠!!
에릭이 무섭고 미친것은 맞지만 그래도 혜성이를 다치게 하거나 아프게 하지는 않을 사람이니까 또 혜성이 곁에는 에릭이 꼭 필요하니까... 둘이 나폴리로 떠나 행복하길. 진이는 스스로 에릭만큼 혜성이를 사랑할수 없다했는데 그래도 진 나름으로 혜성을 진정 사랑했네요. 진이도 돈 많은 백수로 마음껏 누리며 행복하길.그런데 진이가 진짜 부럽네요!!
뎅드윅 재미있게 잘 보고 오세요.
진이 나름대론 혜성일 사랑했죠ㅠ 다만 혜성이가 필요한만큼 곁에 있어주지 못해서 결국 이렇게 된 거죠ㅠ 뎅드윅 기대되요!ㄱㅋ
결국 릭셩행쇼네요 ㅠㅜ 저도 달빛님처럼 진이 완전 부러워요 ㅠㅠ 돈 많은 백수..... ㄸㄹㄹ... ㅠㅠㅠㅠ 뎅드윅 잘 보고 오세요~ ^_^
+) 차기작은 좀 가벼운 작품이었음 싶은 갠적인 바람이 있습니다.. ㅠ 피폐물도 좋지만... 요즘 너무 감정적으로 기빨리는건 피하게 되더라구요 ㅠㅠ 어떤작품이 되든 전 볼거만... ^_^
가볍게 시작해도 무겁게 끝나는게 제 스타일이라 걱정이ㅠㅠ 저 셋 중에서 그나마 가벼운 걸 고르라면 사실 사극입니다ㅋㅋㅋ 중이었던 정혁일 속세의 혜성이가 살살 꼬시는 스토리거든요ㅋㅋ
@달빛머금은 중이요....???? +_+♥ 세속과 거리가 있는 정혁이라니... 생각지도 못했던 캐릭터 ㅋㅋㅋ 중이랑 제일 안어울리는 인물중 하나가 (멤버중에) 큰오빠라고 생각했는데... ㅋㅋㅋ 달빛님 부연설명을 들으니 급 보고싶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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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ㅋ 연발 재밌더라구요... 못보겠어ㅠ 이러면서 티저에서 뽀뽀하는 거 보고 그랬는데 막상 시작하니까 엄청 재밌었던... ㅋㅋㅋ
끝나기 전엔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떠올라요. 그냥 이대로 릭셩만큼은 행복하길ㅜㅜ
그리고 민우 비중이 적어서 요번 화에 등장해주지 않을까 했는데 역시 뙇!
완결엔 앤디도 나와요!!ㅋㅋㅋ 주말에나 볼 수 있겠지만요ㅠㅠ
ㅠㅠㅠㅠㅠ혜성이..행복하겠죠? 에릭이 다른건몰라도 혜성이엄청아끼니깐 ㅠㅠ
으아!!!!! 드디어 완결이 코앞에!!! 나폴리 신혼집에서 행복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어요 ㅠㅠ 진이....부럽다.....돈많은백수라니 ㅜㅜ 민우랑도 화해해서 다행이에요! 깐셩조폭물!!!!! 귀여운 조폭물도 재밌겠어요 ㅋㅋㅋㅋㅋ 진지한거려나?!
오오오! 해피엔딩이다ㅠㅠ 진이 너도행복해지려무나ㅠㅠ 혜성이가살짝 아직불안하지만 다 잘되길바래요ㅎㅎㅎㅎ
으아 릭셩을 바랬지만 떠나는 지니지니를 보니 또 마음이 짠하네요 ㅠㅠㅠㅜㅜㅜㅜㅜ 흡 차기작...피폐물은 ㅠㅠㅜ 힘들어서 피폐해도 끝이 좋으면 괜찮은데........ 어쨌든 뭐라도 감사히 ㅋㅋㅋㅋㅋ 달빛님글은 뭐라도 좋아요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