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4. 가스 충전소

[달개비/박종섭]

4. 가스 충전소

1982년 제대 한 해 겨울. 서울 테헤란로 가스 충전소에서 숙식이 제공되는 조건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종각에 있는 컴퓨터 학원을 다녔다. 컴퓨터 학원은 실무 위주의 교육으로 기업의 업무에 빠른 적응력을 길러 주었고 취업도 알선해 주었다. 마치 입대 전에 다니던 학교의 담당교수가 그 컴퓨터 학원 부원장으로 계신 덕분에 장학금도 받고 열심히 공부 할 수 있었다. 그야 말로 주경야독의 세월로 인생을 다져가고 있던 어느 날 택시에 충전하는 가스 값의 자율화가 실시 되기 하루 전날 밤에 별안간 이백 대가 넘는 택시가 물밀듯이 충전소로 밀려 들었다. 내일이면 가스 값이 오른다는 소식에 난리가 난 것이다. 추운 겨울 택시의 가스 주입구에 충전 가스총을 꽂았다 뺏다 정신 없이 하는 데 성질 급한 기사 아저씨는 계산하는 도중에 가스총을 택시에 꽂은 채 출발을 한다. 깜짝 놀라 큰 소리로 “아저씨!!” 외쳐대고 떠나던 택시는 급정거를 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가스폭발 대형 사고가 날 뻔했다. 얼이 나간 상황에도 택시의 숫자는 줄지를 않고 대기행렬은 계속되는데 이제는 꽂았다 뺏다 숙련이 되었지만 순간순간 새어 나오는 가스는 나의 손을 동상으로 몰아갔고 갑작스런 운동에 허리가 마비가 되는 것 같았다. 몇 푼이나 아끼는 지는 별로 계산 해 보지도 않고 가스 값이 오른다는 소식에 너도 나도 덩달아 채우고 보자는 부화뇌동 [附和雷同] 의 국민성은 일찍부터 유전자적으로 전이 된 것을 어찌 하겠는가?

EDPS과정 6개월을 마치면 1개월 OJT(On the Job Training)과정을 거쳐서 성적순에 의해 기업에 추천을 하고 기업 전산실 실무시험에 합격하면 취업이 되는 것이다. 경기도 이천에 있는 제일축산에서 합격통지가 왔지만 이천에서 생활하는 것이 불편해서 취업을 포기하고 서울 여의도 증권거래소 전산소 1차 시험에 합격하여 2차 면접 대기 중에 삼성그룹인 전주제지에도 동시에 합격을 했다. 고민을 하다가 삼성그룹이라는 안정성을 택하기로 했다. 약수동 시장 골목의 기어 들어가는 후미진 단칸방에서 자취하는 친동생에게 잠시 얹혀 살기로 하고 첫 직장 생활을 시작 하였다. 쉬는 날엔 장충동을 지나 남산으로 소풍도 가고 약수 시장에서 배추를 사다가 소금에 살짝 절여서 씻어내고 손수 김치를 담는다. 통마늘 가늘게 편을 내고 작은 파 동동 띄운 물 김치는 나의 전공이다. 어쩌다 생강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동생은 고래고래 소리 지른다. 그 때 먹은 생강 덕분에 여태껏 강심장으로 잘 살아 가는 모양이다.

3개월의 OJT 과정이 끝나고 전주공장 전산실 근무 희망자 신청을 했다. 어차피 3년 후에 교대를 할 것이라면 미리 갔다 오는 것이 나을 것 같고 공장 가면 기숙사와 식당이 있어서 숙식을 제공하니 좋았다.

딱딱한 콘크리트 빌딩 숲 속에서 숨 막혀 사는 것 보다 넓은 공간에 탁 트인 공장 정원을 보며 점심시간에는 식권 따 먹기 족구 시합도 하고 근무 후에는 정원 한 구석 조류장의 장끼며 까투리, 공작과 대화하는 자유를 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