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부음을 청구하는 방법
믿음이 기름부음을 청구한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그리고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부어 주신 은사들과 부여 받은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들 기름부음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도우심(공급)을 주셨으며, 우리는 그것을 청구해야 한다. 당신이 기름부음을 청구하면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누리는 것이다. 치유와 기적은 이 기름부음을 청구하는 결과로 온다. 그래서 지식, 지혜, 계시와 예언을 하게 된다. 이 책은 하나님의 은사들을 청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한다.
1장. 기름부음을 청구하는 법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자가 예수의 뒤로 와서 그 겉옷가를 만지니--마9: 20
최근에 주님께서는 내게 기름부음을 청구(Demand, 요구, 수요—역자 주)하는 것의 중요성을 하나님의 사람들과 함께 나누도록 인식시켜 오셨다. 청구한다는 말은 구하는 것 또는 구함을 받는 상태를 의미한다. 혈루증을 가진 이 여인은 치유의 기름부음을 청구했고 자신의 이적을 받았다. 너무도 자주 하나님의 사람들은 기적과 치유를 받지 않고 있는데, 이는 이들이 기름부음을 청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역은사들(엡 4: 11에 있는 다섯 가지 목회은사--역자 주)에 임한 기름 부음과 그 내부에 있는 기름부음은 하나의 공급(도우심, SUPPLY)이다. 우리가 이 공급을 청구하는 법과 공급에서 뽑아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것이 너희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supply)으로 내 구원에 이르기 할 줄 아는 고로 -------빌1장 19절
모든 믿는 자에게는 성령의 공급(도우심,supply)이 가능하다. 공급이란 하나의 보관창고나 저수지이다. 내가 사역은사자들을 볼 때 나는 살아 있는 저수지인 사람을 보고 있는 것이다. 그 저수지 안에는 기름부음의 공급이 들어 있다. 주님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기 위하여 각 개인들 속에다 그의 기름부으심을 두셨다. 이 공급원에서 퍼내는 것(Draw)은 나의 사명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당신을 위한 이적, 계시와 축사를 이 저수지 안에 가지고 있다. 만일 당신이 이 저수지에 있는 기름부음을 청구한다면 이적이 이들에게서 나와서 당신에게로 흘러갈 것이다. 말하심(Utterance)이 그들에게서 나와서 당신에게로 흐를 것이다.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눅 6: 19
이 사람들은 기름부음을 청구하고 있었다. 능력이 예수께로부터 나왔는데 이는 사람들이 예수의 기름부음에서 뽑아 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예수를 만지려고 힘씀으로서 기름부음을 뽑아 냈던 것이다. 당신의 믿음을 사용하여 사역은사들에서 나오는 기름부음을 문자 그대로 빼낼 수 있다. 만일 이 사람들이 떨어져 앉아서 예수님이 해주기를---자기들에게 올려 놓기 만을--- 기다렸다면 아마 아무것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수 많은 믿는 자들은 그저 뒤로 깊숙이 앉아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무엇을 하기 주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이 무언가를 하기를 기다리신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공급을 주셨으며 우리는 그것을 청구(요구)해야 한다. 만일 청구가 없다면 공급은 없을 것이다.
공급과 수요
주님은 수요가 있을 때 공급이 항상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내 마음에다 말씀하셨다. 만일 마약에 대한 수요가 없다면 우리들의 도시에는 마약 문제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마약에 대한 수요가 있으므로 공급이 있게 된다. 기름부음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청구가 없다면 공급이 없을 것이다. 사역의 은사들을 청구하는 굶주린 성도들은 기름부음이라는 공급을 늘 받을 것이다.
나는 기름부음에 대해 갈급하며 목말라 있는 여러 교회에서 문자 그대로 능력을 내게서 바로 당길 때까지 사역하였다. 그러나 청구가 없는 다른 교회에서도 사역하였는데 그 결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저 깊숙이 앉아서 무엇이 일어나기를 기다렸으며 아무 일도 되지 않았다. 계시와 방언과 이적을 바라는 굶주림이나 기대가 없었던 것이다.
나는 목사로서 우리 교인들에게 우리들의 예배에서 일하는 사역은사들에게서 퍼내도록 가르친다. 나는 그들에게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전하는 자들, 목사들과 교사들 속에 있는 기름부음을 청구하도록 알려준다.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이런 은사들은 그 속에 공급이 있으며, 또 이 공급에서 퍼내는 것은 그들의 책임이라고 가르친다.
우리 지교회에서 사역한 많은 사역자들은 그들이 흐르는 기름부음에 충격받는다. 이 일은 내가 사역자들에게서 기름부음을 퍼내도록 사람들을 가르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사역자들은 이런 형태의 분위기에서 사역하기를 좋아한다. 사람들이 당신을 가로막는 대신에, 그들에게서 퍼내고 있기 때문에 이 흐름은 훨씬 더 쉽다.
소경 둘이 길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마 20: 30,31
이 둘은 예수님께 청구하였다. 군중들이 조용히 하라며 이들을 꾸짖을 때조차도 소리질렀다. 이들은 이적을 받기 위해서 군중들의 반대를 지나 끼어 들어가야 했다. 만일 이들이 잠잠한 채로 있었더라면 아무런 이적도 받지 못했을 것이다. 이들은 기름부음을 청구해야 했다. 예수는 그 옆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만일 예수님의 기름부음을 청구하지 않았더라면, 예수는 이들을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이것은 마치 은행에서 돈을 인출하는 것과 같다. 인출전표를 가지고서 은행 출납원에게 가서 계좌를 청구해야 한다. 만일 계좌를 청구하지 않으면 계좌에서 아무 것도 인출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는 기름부음을 청구하지 않고서는 사역의 은사가 그들 가운데로 들어와서 가르치게 허락해서는 안된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케 하려 하심이라 ----눅 4: 18-19
예수님은 기름 부음 받았던 고향 나사렛에서 사람들에게 말씀하고 있었다. 그의 기름부음을 청구하는 것은 그들에게 달린 일이었다. 이들은 바로 그에게서 복음, 치유, 축사를 얻을 수 있었다. 그에게서 능력과 권세를 퍼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하지 않았다. 이들의 불신이 기름부음이 흐르는 것을 막아 버렸던 것이다. 이적은 커녕 아무 것도 받지 못했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친척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며 거기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실 수 없어 다만 소수의 병인에게 안수하여 고치실 뿐이었고------막6: 4-5
바로 자신들 가운데에 공급, 즉 기름부음의 저수지가 있었다. 이 저수지 안에는 구원, 치유, 축사와 이적들이 있었다. 예수는 걸어 다니는 기름부음의 저수지였다. 사람들은 그것을 청구하여 퍼낼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불신으로 인해 그러지 않았다. 그를 기름부음의 저수지로 보지 않고 하나의 목수, ‘마리아의 아들,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의 형’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보고서 그를 자연인으로 판단하여 버렸다. 그러나 만일 영으로 그를 보았더라면, 기름부음의 저수지나 풀장으로 보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에게서 나오는 이적과 치유를 퍼내었을 것이다.
우리는 사역 은사들을 영으로 보기 시작해야 한다. 당신의 목사를 걸어 다니는 기름부음의 저수지로 보아야 한다. 예수님에게 기름부음을 청구하여 이적을 퍼내어야 한다. 사역자들 자신이 자기가 무슨 기름부음을 받았는지를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만일 당신이 치유의 기름부음을 가졌다면 사람들에게 알려라. 그들이 그 기름부음을 퍼낼 기회를 주라. 만일 예언의 기름부음을 가졌다면, 사람들에게 알려라. 그들이 당신에게서 예언의 말을 퍼내게 하라. 만일 가르침의 기름부음을 가졌다면, 사람들에게 나타내라. 그들이 당신에게서 지식, 지혜와 계시를 퍼내도록 하라.
2장. 믿음이 기름부음을 청구한다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막 5: 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 찌어다-------막 5: 34
믿음은 기름부음을 내어 놓는다(Release). 불신은 기름부음을 가로 막는다. 혈루증 앓던 여인은 자기의 믿음으로 기름부음을 청구하였다. 믿음은 기름부음을 퍼내는 진공흡착기와도 같다. 예수는 기름부음을 가지고서 사역했을 뿐 아니라, 자기가 기름부음받은 것을 사람들에게 알리기도 했다(누가복음 4:18).
그가 기름부음받은 것을 사람들이 들을 때, 그걸 믿고 받아 들이는 것은 자신들의 책임이었다.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의 기름부음을 믿지 않았으며 따라서 거기서 퍼낼 수 없었다. 사람들의 불신으로 예수는 나사렛에서는 아무런 능력도 행할 수 없었다. 만일 믿었더라면 그의 기름부음에서 퍼낼 수 있었을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로마서 10: 17). 이것이 우리가 기름부음을 들어야 하는 이유이다. 기름부음에 대한 가르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기름부음이란 무엇인가?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부음(Unction)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요일 2:20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부음(Anointing)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요일 2: 27
여기 Unction과 Anointing두 단어는 동일한 헬라어 카리스마(Charisma)에서 왔다. 이것은 고약이나 기름 바른다(기름을 바르는 것을 상징하는)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또 성령의 능력을 부여받음(Empowerment)을 뜻한다. 능력 부여란 성령의 은사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능 혹은 능력이다. 은사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능력 부여나 이적 행하는 능력들). 기름 부음에서 퍼낸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사나 능력으로부터 받는 것이다. 당신은 치유, 축사와 이적들을 이런 방식으로 받을 수 있다.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주신 기름부음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은혜로 자기들이 받은 능력부여와 이적 행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능력부여는 성도들의 유익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은사들과 능력부여를 청구해야 한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게 손을 댄 자가 있도다 이는 내게서 능력이 나간 줄 알 앎이로다 하신대-------눅8: 46
예수는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것을 감지했다.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자기의 믿음으로 예수님에게서 능력을 퍼내었다. 이 능력(VIRTURE)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듀나미스(Dunamis)로 능력, 가능성, 강력함, 위엄을 뜻한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막 5: 27
이 여인은 예수를 소문으로 들었다. 예수에게 임한 치유의 기름부음에 대해 들었다. 하나님의 선지자가 이스라엘에서 사역하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
사람들이 기름부음에 대해 들을 때 이 분야에서 그들의 믿음이 성장할 것이고, 그때서야 기름부음을 청구하는 지식과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우리는 사도의 기름부음, 선지자의 기름부음, 복음전하는 자의 기름부음, 목사의 기름부음, 교사의 기름부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우리는 치유의 기름부음과 이적의 기름부음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성령이 주시는 특별한 기름 부음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기름부음에 대해서 듣고 가르침을 받는 일이 더 많아질수록, 이들 기름부음을 청구하는 자들의 용량이 더 커질 것이다. 지교회의 목사로서 나는 교인들에게 각종 은사들과 기름부음에 대해 가르친다. 이것이 바로 이 분야에서 이들의 믿음을 세워 준다. 사역자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사역하면, 나는 우리 교인들에게 그 사역자 개인의 생애에 임한 기름부음을 가르친다. 그러면 우리 교인들은 자기 믿음으로 그 기름부음에서 퍼내고 또 기름부음을 청구하는 사명을 갖게 된다.
우리는 수동적이 되어서는 안되며 이들 은사로부터 받을 것을 기대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믿음을 갖고서 적극적이어야 한다. 수동적이고 냉담한 성도들은 기름부음에서 받지 못하다. 나는 여러 곳에서 사역하면서 첫 며칠밤은 사람들이 자기 믿음을 활성화하도록 하는데 보내야 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나의 삶에 있는 기름부음을 청구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성령의 일들에 대해 굶주리며 목말라 해야 한다. 굶주린 영혼은 항상 기름부음에서 퍼낼 것이다.
보블리오의 부친이 열병과 이질에 걸려 누웠거늘 바울이 들어가서 기도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낫게 하매 이러므로 섬 가운데 다른 병든 사람들이 와서 고침을 받고 후한 예로 우리를 대접하고 떠날 때에 우리 쓸 것을 배에 올리더라--------행28: 8-10
보블리오의 부친이 치유받은 후 멜리섬 전체가 치유받게 되었다. 그들은 바울의 생애 속에 있는 기름부음을 청구했다. 이들이 바울을 많이 존경했다는 것을 주목하라. 하나님의 종을 존경하는 것이 그 개인의 생애 속에 있는 기름부음으로부터 받는 열쇠인 것이다.
성경은 사람들이 왔다고 말한다. 이들은 병든 사람들을 데리고 와서 치유받을 것을 기대했다. 이들은 믿음에다 행동을 하며 나온 것이다. 예수에게서 이적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은 예수에게 스스로 나아 왔거나 끌려 왔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를 간절히 원하였던 것이다.
많은 미국 사람들은 어째서 외국에서 이적이 그렇게도 많이 일어나는지 의아해 한다. 외국에서 하는 십자군에 참여하는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하려고 수 마일을 걸어서 온다. 어떤 이들은 여러 날을 여행한다. 이것이 기름부음을 청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치유와 이적들이 일어난다. 미국 내 많은 신자들은 두개 블럭도 여행하지 않는다-----그리고는 어째서 이적을 받지 못하는지 의아해 한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뉘우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림자라도 뉘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근읍 허다한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행 5장 14-16절
여기 ‘예루살렘 근읍’에서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보게 된다. 청구가 있는 곳에 공급이 있었다. 모든 사람을 치유해 줄 수 있는 충분한 기름부음이 있었다. 이 사람들은 사도들에게서 흘러 나오는 기름부음을 청구하였다. 때로는 사람들이 먼 거리에서 집회에 와서 은사를 청구할 때 이적을 받을 것이다.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눅 5: 17
여기서 능력(Power)이라는 것은 듀나미스DUNAMIS로 누가복음 8장 46절에서 능력(Virture) 과 같은 단어이다. 혈루증을 가진 여인은 자기의 믿음으로 예수의 몸에서 능력을 끌어냈다. 그래서 예수님이 가르칠 때 그 집에 치유하는 능력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치유능력(기름부음)이 나타날 때 우리는 자기의 믿음을 사용하여 기름부음을 청구할 수 있다. 그때에 비로소 치유가 풀려날 것이다.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붕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니 예수께서 저희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눅 5: 18-20
사람들이 믿음을 통해서 그 방에 나타난 기름부음을 청구한 것이다. 그 결과 치유능력이 풀려나서 그가 중풍병을 치유받았다. 주님의 임재가 예배 중에 구름처럼 두터울 때가 많이 있다. 기름부음이 이 정도로 나타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란 믿음을 사용하여 이것을 청구하는 것이 전부이다. 치유와 이적은 기름부음을 청구한 결과로 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의 믿음으로 기름부음을 청구한다. 주님은 이 목적을 위해서 믿음이라는 은사를 우리에게 주셨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은사들을 청구(회수)하기를 바라신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 목적을 위해서 자기의 믿음을 써 본 적이 없다.
믿음 안에서 세워진 회중들은 하나님의 은사들을 받는데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가질 것이다. 믿음은 기름부음이 흘러가는 통로이다. 믿음은 전기가 흐르게 하는 전등 스위치와 같다. 믿음은 엔진을 돌리는 힘을 점화시키는 차의 시동키와 같다. 믿음은 하나님의 폭발적 능력을 점화시키는 불꽃이다. 믿음은 믿음, 치유, 이적이라는 능력 은사들을 점화시킨다.
믿음은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영분별이라는 계시의 은사들을 점화시킨다. 믿음은 방언, 통역, 예언이라는 말하는 은사들을 점화시킨다. 믿음은 사도, 선지자,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라는 사역 은사들을 점화시킨다.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사들에 대해 많이 들으면 들을수록 그것들에서 더 많은 믿음을 퍼낼 것이다. 나는 성령의 여러 가지 운행과 다스림에 대해서 가르친다.
나는 목사로써 여러 가지 기름부음과 다스림을 가지고서 사람들을 풀어내어(Release) 가르친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들 은사들에 대해 가르치며 이들을 풀어내어 이 은사들을 청구하도록 자신의 믿음을 사용하게 한다.
가르침과 풀어냄을 통해 조성된 분위기에서 사역자들이 사역을 매우 깊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때 사람들은 자기의 믿음을 사용하여 사역자들에게서 바로 나오는 기름부음을 뽑아내며 그 흐름이 너무 커서 다음 예배 때까지 일부러 그걸 닫아 두어야 할 정도이다.
3장. 은사를 불 붙이려면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불일 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딤후 1: 16
하나님의 사역자들이여,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은사를 불 붙이는 것은 당신의 사명이다. 당신이 가진 은사를 청구하는 것은 사람들이 할 일이다. 수동적인 태도는 어느 방법이든 기름부음의 흐름을 방해할 수 있다. 어떤 사역은사들은 매우 수동적이다. 이들은 너무 게을러서 은사를 불 붙이지 못한다. 이들은 자기 은사를 잠재워 두거나, 아니면 영적으로 조그만 저항을 만나면 후퇴해 버린다. 어떤 회중들은 매우 수동적이다. 이들은 의자 깊숙히 앉아서는 하나님의 종이 모든 것을 하여 주기를 기다린다. 이들은 자기의 믿음을 실행하여 은사를 청구하는 것을 하고 있지 않다. 사역자와 교인들은 수동적 태도에 저항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은사로부터 완전히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자기 맡은 역할을 해야 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세 해 여섯 달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 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 뿐이니라---------눅 4:25-27
기름부음 받은 이 두 하나님의 사람은 수년간 이스라엘사람 가운데 있었다. 엘리야를 통해서 이적을 받을 수 있었던 과부들이 많았지만, 단지 한 사람만이 받았는데 그는 이방인이었다. 다른 과부들은 기름부음을 청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문둥병자들은 엘리사를 통해서 치유받을 수 있었지만, 다른 문둥병자들은 청구하지 않았고 오직 나아만 뿐이었다. 엘리야와 엘리사는 이적과 치유의 기름부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적들과 치유가 가능했던 것이다. 이들은 기름부음의 저수지를 걷고 있었지만 아무도 두레박을 던져서 기름부음의 풀장에서 떠내려 하지 않았다. 아무도 믿음을 사용하여 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서 받으려 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종들을 존경하기
예수님은 이 사람들에게 존경이 없다고 말했다. 존경(HONOR)이란 가치(VALUE), 존중(ESTEEM), 귀중함(PRECIOUS)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이 하나님의 사람들은 가치있게 여김받지 못했으며 존경받지도 못했다. 이들에게 임한 기름부음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가치있게 여겨지지 않았고 존중히 여겨지지도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들을 가치있게 여기고 존경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기름부음이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기름부음은 값으로 칠 수가 없다. 당신이 살 수가 없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 우리는 사역은사들을 존경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사역은사들을 욕되게 하면 그 안에 있는 기름부음을 축복으로 받지 못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엘리야와 엘리사를 존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의 사역을 거절하며 멸시했다. 그 결과, 많은 과부들이 기근 때에 멸망되었으며 많은 문둥이들이 문둥병으로 죽어갔다. 이것은 결코 주님의 뜻이 아니었다. 이들이 건짐 받는 것이 주님의 뜻이었다.
배나 존경하기
잘 다스리는 장로들을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을 더 할 것이니라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하였느니라----------딤전 5: 17-18
존경이라는 것은 가치(VALUE)를 뜻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하나님이 여러분 가운데 두신 사역자들을 얼마나 가치있게 여기고 있는가? 바울은 여기서 사역을 돕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여기서 존경한다는 것은 재정적으로 드리고 돕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사역자들을 재정적으로 축복하지 않는 회중들은 사역자들을 욕되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런 방법으로 사역자들을 존경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들이 가진 기름부음에서 아무것도 받을 수 가 없는 것이다. 당신이 이들에게 무엇을 드림으로 존경한다면, 하나님의 사람들 속에 있는 기름부음으로부터 더 많이 받을 것이다.
엘리야가 죽으매 장사하였더니 해가 바뀌매 모압적당이 지경을 범한지라 마침 사람을 장사하는 자들이 그 적당을 보고 그 시체를 엘리사의 묘실에 들이던지매 시체가 엘리사의 뼈에 닿자 곧 회생하여 일어 섰더라---------왕하 13: 20-21
죽은 자가 살아날 만큼 강력한 기름부음이 엘리사의 뼈에 있었다. 그가 살았을 때 이스라엘에는 기름부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이스라엘인들은 그가 살아있을 동안에 기름부음을 청구하지 않았으므로 필요한 이적들을 받지 못했다. 이스라엘의 모든 문둥이는 이적이 필요했다. 주님은 자비로이 그런 필요를 아시고 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기름부음을 주셨다. 이것을 청구하는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달린 일이었다. 그러나 청구하지 않았으므로 이들의 필요는 채워지지 않았다. 믿음이 없었던 것이다. 존경이 없었던 것이다. 만일 이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존경했더라면 치유를 받았을 것이다. 기름부음은 있었다. 충분히 강력했다. 그러나 청구하지 않았던 것이다. 청구가 없었으므로 공급도 없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대로 수요가 없는 곳에는 공급도 없는 것이다.
4장. 겉옷(Mantle)을 만져라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마 9: 21
로더햄(ROTHERHAM)역에는 ‘만일 내가 그의 겉옷을 만지기만 한다면’으로 되어 있다. 겉옷(Mantle)은 기름부음을 나타낸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서 떨어진 겉옷을 취했다(왕하 2:13). 그리고는 그것으로 물을 쳤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부르실 때 엘리야를 사용하셔서 자신의 겉옷을 엘리사에게 던져 주도록 하셨다(왕상 19:19). 이것은 기름부음이 그에게 와서 선지자의 직무를 맡게 된 것을 나타낸다. 이것을 선지자의 겉옷이라 부른다.
예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행하며 사역했다. 그는 선지자의 겉옷을 입고서 사역했던 것이다. 이 겉옷은 치유와 이적도 포함했다. 혈루증을 가진 여인이 예수의 겉옷을 만지려고 군중들 사이를 밀치며 들어 왔다. 이 여인은 예수님이 가진 선지자의 겉옷을 청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여인은 이적을 받았다. 사람마다 주어지는 겉옷이 다르다. 만일 당신이 특별한 직무의 겉옷을 만지면 그 기름부음으로부터 능력과 권능을 이끌어 낼 것이다. 나는 여기서 사람을 물리적으로 만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퍼내는 것을 말하고 있다. 믿음이야말로 당신이 기름부음을 이끌어 내는 통로가 된다. 이것은 하나의 송수관이다.
그 곳 사람들이 예수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와서 다만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마 14: 35,36
몽고메리역(Mongomery)에는 사람들이 ‘그에게 계속 애걸하였다’로 되어 있다.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계속 애걸하는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있는가? 그는 당신에게 무엇인가를 청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기름부음을 청구하는 방법을 보여 준다. 웹스터 사전에는 간구한다(BESEECH)는 것은 ‘황급히 또는 애타게 요구한다, 진심으로 요청한다, 애걸복걸한다, 탄원한다’를 의미한다. 이것은 찾는 것이다(Seek). 자만심을 옆에다 벗어버리는 것이다. 당신의 필요를 인정하고 도움을 줄 능력을 가진 누군가를 간구하시요. 만약에 당신에게 기름부음이 결핍된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또 기름부음에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 기름부음을 절대 청구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마을이나 도시나 촌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의 옷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막 6: 56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기름부음을 청구하였다. 예수님에게 옷을 만지게 허락해 주도록 간청했다. 사람들은 그에게서 치유와 이적을 이끌어 냈다. 당신은 이것을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역사이기 때문에 모든 마을에서 다 일어났다고 말할지 모른다. 사람들이 이 일과는 상관이 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그의 고향 나사렛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사렛에서는 사람들이 그에게 만지기를 허락해 주도록 간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이적들은 나사렛에서는 기름부음을 청구하지 않았으므로 일어나지 않았다. 다른 마을이나 도시에서는 사람들이 청구하였고 그래서 성함을 얻었다.
가르치는 겉옷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앉으사 배에서 무리를 가르치시더니------눅 5: 1,3
가르침의 은사를 청구하려면, 당신은 지식에 대한 소원을 가져야 한다. 새영어본(New English)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그에게로 모여 들었다고 한다. 이들은 가르침의 은사들을 청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무리들을 가르치기 위하여 시몬의 배를 빌릴 정도로 커다란 청구가 있었던 것이다. 가르침을 듣기 위해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가? 말씀에 굶주린 자들만이 들으려고 밀고 들어 갈 것이다. 이들이 하나님의 것들에 굶주려 있다는 사실이 하나님의 은사자들을 청구하게 할 것이다.
예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것들에 굶주린 것을 통해서 청구하는 자들에게 늘 응답해 주셨다. 아무도 빈손으로 돌려 보내지 않으셨다. 나는 여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역하면서 지역마다 영적 기근의 정도가 다른 것을 파악한다. 어떤 이들은 말씀을 들으려고 밀치고 올 것이다. 이런 이들은 곧바로 당신에게서 계시를 뽑아 낼 것이다. 이런 이들의 굶주림 때문에 당신은 더 높은 기름부음의 수준에서 가르치게 될 것이다.
나는 말씀에 굶주려 있지 않는 자들은 가르치고 싶지 않다. 어떤 곳에서는 사람들이 그저 앉아서 당신을 쳐다보기만 할 것이다. 이 사람들은 실제로 하나님에게서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배고픔이 없으면 밀치는 것도 없는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자리를 잡으려고 일찍 와야 한다면 당신은 거기서 이런 이들을 못 볼 것이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영적원리는 내가 공급과 수요(청구)의 법칙이라 부르는 것이다. 수요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냉담하고 수동적인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은사자들로부터 많이 받지는 못할 것이다.
그 다음 안식일에는 온 성이 거의 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행 13: 44
개인들만이 기름부음을 청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도시 사람들도 할 수 있다. 이 구절은 전체 도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다는 가능성 때문에 나는 흥분된다. 나는 주님이 이 마지막 시대에 여러 도시 속에 있는 굶주림을 통해 사람들이 말씀을 듣게 만드실 것으로 믿는다. 사역 은사자들이 도시에 들어 오면 사람들이 모여 와서 이 은사들을 청구할 것이다. 과거에는 이 일들이 조금 일어났으나 오늘날은 주님이 성령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시므로 더욱 크게 일어날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의 안디옥에서 사역할 때 이들의 사도적 은사를 청구한 것은 바로 이방인들이었다. 유대인들은 마음을 굳게 하기 시작했다. 구원의 좋은 소식을 듣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이방인들에게로 향하기 시작했다. 사역 은사들은 요구가 있는 곳에는 어디서 늘 있을 것이다. 굶주린 자들은 이방인들이었다. 하나님의 은사들은 이들을 위해서 흘러 나왔다. 그 결과 이들이 구원, 치유, 축사를 받았던 것이다.
주의 말씀이 그 지방에 두루 퍼지니라- ---------행 13: 49
여러 도시가 말씀을 들으려고 나아오는 것이 흥분되는 것처럼, 여러 지역(사방)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전된다는 것은 더욱 흥분할 일이다! 그 도시에는 굶주림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은사들이 그 결과로 풀려났기 때문에 사방이 영향을 받았다. 나는 내가 있는 도시에만 하나님을 받아 들이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나의 지역(Region)에 영향을 끼치고 싶다! 한 도시가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려 있을 때는 그 전지역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가르침, 이적 그리고 치유를 위한 기름부음은 전체 지역 속으로 흘러 나갈 수 있다. 한번 기름부음이 청구되면 그것은 전체 도시와 지역을 위하여 풀려 나갈 것이다.
청구(요구)를 일으켜라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온 동네가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막1: 26,28,32-34
사람들이 그에게 들으려고 나왔는데 이는 그가 사람들을 자유케 함으로써 청구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이적에 대해 들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함께 모일 것이다. 이들은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나아와서 하나님의 종의 기름부음에서 퍼낼 것이다. 이적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적이 사람들의 마음에 굶주림이 들어오게 만들 것이다. 굶주린 마음들은 늘 함께 모여 기름부음을 청구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굶주린 사람들을 원한다면 이적이 있어야 한다. 어떤 교회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무관심하며 하나님 섬기는 것에 냉담한지 의아해 한다. 사람들이 예배에 끌려 간다. 어떤 목사들은 사람들을 자극시키려고 온갖 종류의 프로그램으로 애를 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일을 하는 것 외에 다른 대체할 만한 것은 없다. 이적이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그들의 믿음의 수준이 더 높아질 것이고 더 큰 믿음을 얻으려고 기름부음을 청구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막 2: 2
사람들이 말씀을 들으려고 모이자 충분한 공간이 없었다. 이는 ‘그의 소문이 온 갈릴리 사방에 두루 퍼진’ 결과이다 나는 사람들이 가득찬 집에서 사역하기를 좋아한다. 교회가 가득차면 사람들 가운데 기대와 믿음의 수준이 더 높아진다. 그러나 교회가 반정도 비면 사역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교회건축에는 기름부음이 필요하지만 교회를 채우는데도 역시 기름부음이 필요하다. 나는 1,000명이 앉은 교회와 겨우 100명이 나온 교회를 가 보았다.
어떤 이들은 목사가 오라고 하니까 오기도 하며 그저 교회 가는 습관으로 오기도 한다. 이렇게 되면 이적, 예언, 치유는 하나님의 종으로부터 수요가 있는 곳에서 나오는 정도까지 흘러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사역자가 하나님의 은사들을 불 붙일 수 있고 믿음으로 사역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믿음이 높아질 때 사역하기가 훨씬 쉽다. 예수는 그의 고향 마을에서 고향 사람들의 불신 때문에 큰 일을 할 수가 없었다. 불신은 기름부음이 흐르는 것을 방해한다. 그러나 믿음은 이 흐름을 풀어 놓는다. 불신자들은 기름부음을 청구하지 않을 것이지만 신자들은 청구할 것이다.
5장. 기름부음에서 떠내는 일
사람들이 기름부음을 청구하는 것에 관련된 다른 성경 구절들이 아래에 있다.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소경하나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막 8 : 22
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에 붙들린지라 사람이 저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눅 4: 38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막 7: 32
포도주가 모자란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못하였나이다 그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 2:3-5
마리아가 예수님께 청구했을 때 예수님은 ‘그것이 나와 네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Lamsa역) ‘아직 내가 행할 시간이 아니다’(Goodspeed역)고 응답하셨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예수가 이적을 흘러 보낼 때가 아직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어머니가 그에게 청구하였기 때문에 이적을 행하셨던 것이다. 이것은 만일 우리가 기름부음을 청구한다면 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마리아는 예수께 청구함으로써 그 이적을 예수에게서 떠내었던 것이다. 마리아는 자기의 필요를 예수께 나타내었고 예수는 비록 자기가 일할 시간이 아니었지만 응답하셨던 것이다.
예수께서 이 처음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 - - ---요 2: 11
이것이 예수님이 이적사역을 시작한 일이다. 그의 모친이 그에게 포도주가 필요함을 나타내었기에 그 모든 것이 시작된 것이다. 사역할 때 나는 종종 청구를 감지하기 때문에 예언, 이적이나 치유의 속으로 흐르는 일을 시작하게 된다. 사람들은 사역자인 당신에게서 이적이 흘러 나오도록 유도를 일으키는 방법으로 이러한 자기의 필요를 나타내는 수가 있다. 이것은 펌프를 처음 유도하는 것과 같다. 물이 한번 흐르기 시작하면 계속 밖으로 쏟아져 나온다. 예수는 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흐름이 시작되게 하는 것이 전부이다. 이 일은 청구가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될 것이다. 한 번 시작되면 모든 필요가 채워질 때까지 계속해서 흐를 것이다.
기름 부음받은 그릇에서 떠내기
거기 유대인의 결레를 따라 두 세통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구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은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요2:6-10
갈릴리 가나에서 예수가 행하신 첫 이적내용은 예언적인 것이다. 6개의 돌로 된 물 항아리는 주님이 쓰시는 흙으로 된 그릇을 나타낸다(고전 4: 7). 6은 인간의 수이다. 여섯째 날에 인간이 창조되었다. 예수님은 물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고 명하셨다. 물은 말씀을 나타낸다(엡 5: 26). 하나님의 종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질 필요가 있다. 사도들, 선지자들, 복음전하는 자들, 목사들, 교사들은 말씀으로 채워지게 된다. 주님은 당신을 말씀으로 채우셔서 다른 이들이 당신에게서 떠낼 수 있게 하실 것이다.
그런 다음 예수께서는 물 항아리에서 떠내도록(퍼내도록, 뽑아 내도록Draw---역자 주) 말하셨다. 떠 냈을 때 물은 포도주로 변해져 있었다. 포도주는 성령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사역 은사자들에게서 떠낼 것이다. 떠낸다는 것은 헬라어로 안틀레오(Antleo)란 말로써 양동이나 물주전자에다 물을 담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양동이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말씀으로 채우신 흙으로 빚은 그릇에서 떠내게 된다. 내가 기름 부음받은 사역 은사자들을 생각할 때 내 양동이는 밖에 있고 나는 떠낼 준비가 된다. 주님의 그릇들이 교회로 들어오면 우리는 그들에게서 떠내게 된다. 우리가 부족하니까 떠내는 것이다.
예수의 모친이 예수께 ‘저희에게 포도주가 없다‘(3절)고 했다. 피로연에서 포도주가 부족했다. 성령의 기름부음과 흐름이 부족할 때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흙으로 된 그릇에서 떠내야 한다. 부족할 때는 우리의 믿음을 사용하여 떠내야 한다.
사역 은사자들은 말씀을 가득 채우는데 시간을 보내야 한다. 사역자인 우리는 주님이 우리 그릇에다 말씀의 물로 가득히 채우시도록 허락해야 한다. 우리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우리에게서 떠내게 두어야 한다. 필요를 가진 사람들이 너무도 많다. 이들은 우리에게서 흘러가는 성령의 포도주를 필요로 한다. 진실로 성령을 가득 채우든지 아니면 퍼내든지 간에 삶에서 흐르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내가 여기서 함께 나눈 계시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놀랍게 축복하여 하나님의 각종 은사의 충만함을 그리스도의 몸에 풍성히 받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