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8월 부도를 내 금융권에 2000억 여원의 피해를 입혔다.
세월호 전신 세모그룹, 과거 한강유람선 침몰 사고에 오대양사건까지
사이비교주 유병언의 자산 최소 5600억 이상
청해진해운 실소유주 따로 있었다..자취 감춘 '세모 일가'는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 침몰된 세월호와 어떤 관계 사이비 종교'헉'
청해진 유병언회장, (주)세모 승계, '오대양 사건' 배후 인물
▶ 청해진해운, 1997년 부도낸 ㈜세모 승계한 회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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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6년 한강유람선 운영권 따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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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7년 8월 부도내 금융권에 2000억 여원의 피해 입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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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병언 회장, 기독교 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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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7년 ?'오대양 사건' '신도집단자살' 배후로 조사 받아?
지난 16일 진도 근해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1997년 부도를 낸 ㈜세모를 승계한 회사로 밝혀졌다.
특히 청해진해운을 지배하는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최대주주는
?
유병언(73) 전 세모 회장의 두 아들로 확인됐다.
유병언 전 회장은 기독교 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 목사로
지난 1987년 종말론을 내세우며
23명의 신도들이 집단 자살한 이른바 '오대양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검찰 수사를 받기도 한 인물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청해진해운은 조선업체인 천해지의 지배를 받고,
천해지는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유 전 회장의 장남 유대균, 차남 유혁기씨로
각각 19.44%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6.29%를 보유하고 있는 김혜경씨는 유 전 회장의 부인으로 알려졌다.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와 유씨 형제의 지분관계로 짜여진 계열사는
청해진해운과 천해지·다판다·문진미디어·온지구·아해·세모 등 모두 7개사다.
무역 오퍼상을 하던 유 전 회장은 1979년 ㈜세모를 설립했으며
1981년 장인 권신찬 목사와 함께 1981년 기독교 복음침례회를 창립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전 새마을본부중앙회장과 친분이
있던 그는
1986년 한강유람선 운영권을 따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유 전 회장은 1991년 8월
오대양 사건과 관련된 상습사기 혐의로 체포돼
이듬해 9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또, 병원사업과 조선 및 자동차 부품업 등에 대한 무리한 투자의 후유증 끝에
1997년 8월 부도를 내 금융권에 2000억 여원의 피해를 입혔다.
이번에 사고를 낸 청해진해운은 세모 부도 후인 1999년 설립돼
인천과 제주항로를 주로 운항해왔다.
청해진해운은 지난 2009년 20억원에 가까운 흑자를 냈지만,
최근 3년간 실적이 부진했고 특히 지난해 영업손실 7억 8500만원을 기록했다.
한편, 한국의 주요 개신교단들은 유병언 전 회장이 관련된
기독교 복음침례회를 이단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1985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1991년 예장 고신, 1992년 예장 통합,
2008년 예장 합동이 각각 이단으로 결의했다.
일각에선 청해진해운이 구원파 신도들이 관계한 회사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교회이단정보리소스센터 부설 <기독교포털뉴스> 16일자에 따르면,
구원파에 30여년간 몸담고 있다가 탈퇴한 A씨는 이 매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청해진해운은 구원파 신도들이 다수 관계된 회사"라며
"핵심 관계자들이 구원파 신도다"라고 밝혔다.
김도균(capa1954)
▲ 집단죽음의 변사체로 발견된 오대양 사전의 당시 사진.
‘오대양사건’ ‘청해진해운’ ‘유병언 회장’
지난 16일 진도 근해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1997년 부도를 낸 ㈜세모를 승계한 회사로 밝혀졌다. 특히 청해진해운을 지배하는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유병언(73) 전 세모 회장의 두 아들로 확인됐다.
유병언 전 회장은 기독교 복음침례회(세칭 구원파) 목사로 지난 1987년 종말론을 내세우며 32명의 신도들이 집단 자살?(실제로는 집단 학살)한 이른바 ‘오대양 사건’의 배후로 지목돼 검찰 수사를 받기도 한 인물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의하면 청해진해운은 조선업체인 천해지의 지배를 받고, 천해지는 지주회사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지배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최대주주는 유병언 전 회장의 장남 유대균, 차남 유혁기씨로 각각 19.44%의 지분을 차지하고 있다. 6.29%를 보유하고 있는 김혜경씨는 유병언 전 회장의 부인으로 알려졌다. 지주회사 격인 아이원아이홀딩스와 유씨 형제의 지분관계로 짜여진 계열사는 청해진해운과 천해지·다판다·문진미디어·온지구·아해·세모 등 모두 7개사다.
무역 오퍼상을 하던 유병언 전 회장은 1979년 ㈜세모를 설립했으며 1981년 장인 권신찬 목사와 함께 1981년 기독교 복음침례회를 창립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동생인 전경환 전 새마을본부중앙회장과 친분이 있던 그는 1986년 한강유람선 운영권을 따내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유병언 전 회장은 1991년 8월 오대양 사건과 관련된 상습사기 혐의로 체포돼 이듬해 9월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4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또, 병원사업과 조선 및 자동차 부품업 등에 대한 무리한 투자의 후유증 끝에 1997년 8월 부도를 내 금융권에 2000억 여원의 피해를 입혔다.
이번에 사고를 낸 청해진해운은 세모 부도 후인 1999년 설립돼 인천과 제주항로를 주로 운항해왔다. 청해진해운은 지난 2009년 20억원에 가까운 흑자를 냈지만, 최근 3년간 실적이 부진했고 특히 지난해 영업손실 7억 8500만원을 기록했다.
한편, 한국의 주요 개신교단들은 유병언 전 회장이 관련된 기독교 복음침례회를 이단으로 규정하기도 했다. 1985년 기독교대한성결교회, 1991년 예장 고신, 1992년 예장 통합, 2008년 예장 합동이 각각 이단으로 결의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오대양집단자살? 사건 을 기억 하시나요????
오대양집단자살? 사건
1987년 8월 29일 경기도 용인시 남사면에 있는 오대양(주)의 공예품 공장 식당 천장에서
오대양 대표 박순자(朴順子)와 가족·종업원 등 신도 32명이
손이 묶이거나 목에 끈이 감긴 채 시체로 발견된 사건을 말한다.
수사 결과 오대양 대표이자 교주인 박순자는 1984년 공예품 제조업체인 오대양을 설립하고,
종말론을 내세우며 사교(邪敎) 교주로 행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박순자는 자신을 따르는 신도와 자녀들을 집단시설에 수용하고,
신도들로부터 170억 원에 이르는 거액의 사채를 빌린 뒤 원금을 갚지 않고 있던 중
돈을 받으러 간 신도의 가족을 집단 폭행하고 잠적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 사건이 발생했을 때에는 집단 자살의 원인이나 자세한 경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채 수사가 마무리되었다.
그러다가 1991년 7월 오대양 종교집단의 신도였던 김도현 등 6명이 경찰에 자수하면서
사건의 의문점들이 얼마간 밝혀졌다.
자수자들의 진술에 따라,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경찰이 추정하고 있던 오대양 총무 노순호와
기숙사 가정부 황숙자, 육아원 보모 조재선 등 3명이 자살사건 전에
이미 계율을 어겼다는 이유로 오대양 직원들에게 살해당한 뒤 암매장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사건이 전면 재조사에 들어갔지만,
이 사건이 경찰의 발표대로 집단자살극인가,
아니면 외부인이 개입된 집단 타살극인가에 대한 논의만 무성했을 뿐
진상은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부검 의사는 3구의 시체는 자살이 분명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교주 박순자를 포함한 나머지 사람들은 교살(絞殺)에 의한 질식사가 분명하며,
누군가에 의해 계획적으로 행해진 집단 타살극이라고 주장하였다.
1987년 8월29일 토요일, 가을을 재촉하는 빗줄기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 용인군 남서면 북리 주(주) 오대양 용인공장에서
남녀 시체 32구가 발견되어 전국민을 경악하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오대양 용인공장의 공장장 이강수는 대들보에 목을 매어 자살해 있었고
오대양의 사장이자 세칭 오대양교의 교주로 알려진 박신자를 비롯하여 31구의 시체는
식당겸 다용도실 천장 바닥에서 목을 맨 채 누워 있거나
2, 3구씩 포개진 시체로 죽어 있었다.
이들을 목맨 것은 바지나 스커트를 가늘고 길게 자른 천이었다.
경찰은 8월29일 오후부터 수원지검의 지휘를 받으며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이 가장 먼저 시작한 것은 현장감식.
감식반을 비롯해 강력계 형사들이 사진 촬영을 하면서 지문을 떠
신원을 확인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그 결과 32구 시체의 신원이 전부 확인되었다.
치안본부에서 유능한 감식반이 파견되었고
경기도경, 용인경찰서의 베테랑 형사들이 대대적으로 투입되었다.
이날은 아침부터 억센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는데 밤이 되자 폭우로 변해
현장 주변을 더욱 음산하게 했다. 마치 세상에 종말이 온 듯한 기분이었다.
매스컴은 취재 경쟁을 벌이면서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오대양의 베일이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세칭 (주)오대양 사장 박신자.
그녀는 당시 48세로 많은 사채를 끌어들여 공장을 설립하고 종말론으로 신도들을 현혹했다.
'세상이 말세가 되었는데 오대양을 믿어야 구원을 받는다'
'전세계 오대양은 내가 주관한다' '오대양을 떠나면 죽음의 재앙을 받는다'라고 설파하여
신도들이 자신을 하느님처럼 숭배하게 만들었다.
박신자는 오대양의 신도들을 집단으로 합숙생활을 하게 했으며
배신자는 가혹하게 린치를 가하는 등 강력한 카리스마로 신도들 위에 군림했다.
박신자는 많은 사채를 끌어들이고 채권자들에게 빛을 갚지 않아 물의를 일으켰다.
187년 8월16일 주유소를 경영하는 이상열(가명)이 박신자에게 빌려준 5억원을 받으러 갔다가
오대양 직원들에 11시간 동안이나 감금을 당하면서
돈을 포기하라는 각서를 강요당한 뒤에 풀어준 사건이 발생했다.
이상열은 즉시 경찰에 신고하여 이상열을 폭행한 오대양 직원 13명을 구속했고
박신자를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으나 조사를 받는 도중 실신을 하여 병원으로 옮겼으나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오대양에서 근무하는 직원과 학생, 유아원생 등 1백여명도 종적을 감추었다.
이때 박신자가 경찰의 조사를 받는다는 사실이 신문에 보도되면서
박신자에게 돈을 꾸어주었다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 채권자가 수십 명에 이르렀고
채권액도 80억원을 넘게 되었다.
이상열의 단순 폭행사건에서 거액 사기사건으로 발전한 것이다.
경찰은 박신자의 행방을 집중적으로 추적하기 시작했다.
8월28일 한 채권자가 오대양 용인공장에 잠적되었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제보를 했다.
충남 경찰은 오대양 공장을 기습하여 어린이 19명 등 49명을 발견하
대전으로 데리고 왔으나 천장에 숨어 있던 박신자 등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이 사건의 미스터리는 여기에 있다.
오대양 공장을 기습한 경찰이 천장에 있었던 것으로
경찰이 추정한 박신자 등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므로 박신자를 비롯한 31구의 시체가 외부에서 옮겨졌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언론에서는 오대양사건을 집단자살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사실상 명백한 살인사건이었다.
경찰의 추정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교주인 박신자는 집단 도피가 한계에 이르렀고 자살을 하자고 충동을 한 뒤에
먼저 자살을 하고 나머지 신도들이 뒤따라 자살을 동의했다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31구의 시신이 전혀 반항한 흔적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도 맞지 않는다.
천장에서 발견된 31구의 시신은 대부분 손발이 묶여 있었기 때문에
자의로 죽음에 동의했다고 볼 수도 없었다.
참고로 양손이 묶여 있는 시신이 5구, 양손과 양다리가 묶여 있던 시신이 3구,
양다리만 묶여 있던 시신이 여러 구였다.
치안본부 감식반은 박신자가 죽은 뒤에 박신자의 두 아들(24세, 22세)이 차례로
이들을 살해하고 자신들은 목을 매어 자살했다고 보았다.
그들의 목을 맨 상처가 가장 깊었기 때문에 대들보에 목을 매었다고 보는 것이다.
오대양의 공장장 이강수는 이들의 시체를 천장으로 옮긴 뒤에
자신은 대들보에 목을 맨 것으로 추정했다.
물론 이강수도 31명의 사람들 중 상당한 숫자를 살해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없다.
하지만 오대양 사건은 미스터리다.
어쩌면 건국이래 가장 큰 미스터리의 하나라고 볼 수도 있다.
31명의 추종자들이 사장, 또는 교주의 지시로 자살,
또는 자살에 동의했다는 것은 한국판 '인민사원' 사건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막대한 자금의 행방, 권력층과의 연계설이 나돌았고
두 아들이 박신자를 따라다니고 있었으나
충남도청에서 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던 남편이 무관하다는 경찰의 발표를 국민들은 믿지 않았다.
채권자들의 빛 독촉과 경찰의 추적이 동기라고 볼 수도 있으나 석연치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오대양 사건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사이비 종교 집단...
유병언·이요한·박옥수 구원파는 왜 이단인가?
2013년 06월 05일 (수) 교회와신앙 webmaster@amennews.com
본 글은 지난 5월 30일 사이비종교피해대책연맹(종피맹)이 개최한 ‘이단반증 사경회-3주차 강의: 구원파’에서 정동섭 교수가 발표한 논문입니다. 저자의 허락을 얻어 전문을 게재합니다. 한 때 구원파에 미혹된 바 있는 정 교수는 이날 “구원파는 정통침례교가 주장하는 구원, 거듭남, 죄 사함과 같은 표현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순진한 성도들이 미혹되기 쉽다”며 “순진한 양들은 이단에서 성경용어를 표리부동하게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는 것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구원파가 진리와 흡사한 어떤 거짓을 전하고 있는지 간결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편집자주>
정동섭 교수 /
가족관계연구소장, 사이비종교피해자대책연맹 총재, 한동대 외래교수
구원파는 1960년대 초에 시작된 사이비기독교운동을 총칭하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이 이단집단이 한국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난 이단운동으로 알고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구원파는 미국과 네델란드 등지에서 파송된 자칭 선교사들에 의해서 수입된 이단이라 할 수 있다. 현재 구원파는 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세 계열로 나뉘어 활동하고 있다.
세 분파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대략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1. 구원파 분파현황
세칭 구원파는 크게 유병언(권신찬) 계열, 이요한(본명 이복칠) 계열, 박옥수 계열 등 3개 파로 분류할 수 있고, 윤방무(Peter Yoon), 서달석 등 유사한 교리와 사상을 가진 인사와 무리들이 다수 있다.
1) 유병언, 권신찬 계열(기독교복음침례회)
오대양 사건과 ㈜세모, 녹색회와 관련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유병언과 권신찬의 기독교복음침례회는 모든 구원파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다. 권신찬(1923~1986)은 예장 통합측 장로교 목사로 활동하다가 네델란드 자칭 선교사 케이스 글라스(길기수: Case Glass)의 영향으로 1961년 11월 “죄사함을 깨달아” 침례를 받음으로 총회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아 목사면직을 받은 인물이다.
미국인 독립선교사 딕 욕(Dick York)의 영향으로 “복음을 깨달았다”는 유병언은 권신찬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장인사위의 관계를 맺었다. 유병언은 박옥수와 함께 1960년대 초 외국인 독립선교사들이 운영하던 대구성경학교에서 6개월간 성경을 공부한 적이 있으나 1963년부터 선교사들과 관계를 끊고 독자노선을 구축, 1969년부터 1981년까지는 “평신도복음선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1971년 서울 약수동 성동교회에서 구원파의 교리에 미혹된 선교사 3명과 한국인 목사 2명으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았다. 1981년 11월부터는 “기독교복음침례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거듭남, 죄사함, 복음을 깨달았다”는 표현에 미혹된 미국국제복음주의동맹선교회(TEAM, 현 극동방송을 설립한 선교단체)는 유병언을 극동방송 부국장에 임명했고, 그의 장인 권신찬을 방송부장으로 임명하였다. 권신찬은 1969년부터 1974년 극동방송국에서 쫓겨나기까지 <은혜의 아침>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하여 기존교회의 “예배행위, 십일조 헌금, 장로집사 제도, 새벽기도,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등을 종교로 규정하고 “종교와 율법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설교했다. 정통교단은 그의 이단사상에 항의하여 극동방송 청취거부 운동을 벌이기에 이르렀고, 팀선교회는 1974년 구원파 소속 직원들을 모두 해고하였다.
권신찬은 사위 유병언을 “하나님의 입”이라며 신격화하였고, 교인들은 유병언을 ‘모세’에, 권신찬을 ‘아론’에 비유하기도 했다.
유병언은 교제의 구심점이 필요하다며 1974년 ‘삼우트레이딩’이라는 회사를 인수, 교인들의 헌금으로 운영하면서 교인들로부터 “사장”으로 추앙받았다. 1980년대에는 ㈜세모라는 이름으로 스쿠알렌, 컴퓨터, 조선, 유람선 등의 사업에 전념하였다. 오대양 사건과 연관되어 4년을 복역하고 나온 후에는 유 회장으로 통하고 있다.
유병언은 “우리는 천국의 스파이”라고 자처하면서, 자신의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고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고 말하곤 했는데, 그의 이러한 사상에 따라 자신의 정체를 은폐하기 위해 유병언은 자신을 ‘자선사업가, 새마을 운동가, 환경보호운동가, 권투프로모터’로 부각시키기도 했다.
위장술에 뛰어난 유병언은 1982년 자연보호운동을 기치로 내세우며 한국녹색회(회장 정윤재)라는 단체를 만들어 2002년부터는 경북 청송군 현서면 일대의 임야를 매입하여 집단촌을 형성하여 환경친화적인 유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공동생활을 하는 이른바 ‘청녹마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송군민들은 “한국녹색회 추방운동”을 벌이고 있다. 청송 외에도 유병언은 안성과 제주도에 농장을 운영하면서 폐쇄적인 집단생활을 유도하고 있다.
현재 유병언은 매주 토요일 안성농장에 있는 선교센터에서 주로 종말론을 주제로 설교를 하면서 아들 유혁기에게 설교연습을 시키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세미나를 인도하면서 장세척 기기를 팔고 교인들에게 “인샤워, 인클린”을 시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2) 이요한(이복칠) 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이요한은 중학교 졸업 후 6.25 동란 중 대구임시신학교에서 권신찬에게서 사사받은 것이 교육배경의 전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구원파 초창기인 1960년대 중반부터 목포를 중심으로 활동하다가 1971년에 권신찬에게 목사안수를 받았다. 전남 목포에서 ‘평신도복음전도회’라는 간판을 걸고 활동하며 정통교회를 비판하고 시한부종말론을 설교하였다.
1974년말 유병언은 부도위기에 놓인 삼우트레이딩을 매입하여, 교인들의 헌금으로 사업을 확장해 나갔는데, 이요한은 1983년 교회헌금을 사업에 전용하는 것을 문제 삼아 사업으로부터 “복음을 수호한다”는 유인물을 배포했다. 이요한은 유인물을 통해 유병언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고 나섰으며 귄신찬은 유병언을 옹호하고 나섬으로 교회는 분열되었다. 유병언 측에서는 이요한을 집단 구타해 대전에서 5명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결국 이요한은 “교회와 사업은 분리되어야한다”는 성명을 내고,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대한예수교침례회”를 설립하였다. 1995년에는 경기도 안양의 인덕원에 1천여 평의 대지를 마련하고 예배당을 건축하여 서울중앙교회라는 간판아래 활동하고 있다.
정통교회와 달리 일정한 예배형식이 없고 집회식으로 1시간 30분에서 2시간씩 성경을 강해한다. 저녁에는 예배대신 교제를 나누면서 각 부서에서 봉사하던 사람들이 모여 교육도 받고 서로의 얘기를 나눈다. 1년에 4차례 “성경강연회”를 가지며 1년에 한 번은 공주에 있는 갈릴리수양관에서 전체수양회를 갖는다.
예배형식과 기도 등 정통교회를 흉내 내고 있으나 십일조와 기타 연보, 기도, 예배를 율법과 종교로 간주하던 그의 스승 권신찬의 근본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에 100여개의 지 교회를 두고 있으며 4만 명의 추종자가 있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이요한 계열은 금전적으로 무리해서 교회를 건축하고 있는 것으로 이탈자들이 전하고 있는데, 수십억 공사를 하고 “은행융자의 원금은 갚지 않아도 된다. 주님 재림 때까지 교인들의 헌금으로 이자만 갚으면 된다”는 사상을 고취시키고 있다고 한다.
정기간행물로 월간지 <생명의 빛>이 발행되고 있으며, 포교를 위해 진리의말씀출판사와 영생의말씀사를 운영하고 있다.
3) 박옥수 계열(대한예수교침례회 기쁜소식선교회: IYF)
박옥수는 경북 선산군에서 1944년 6월 출생하여 중학교 3학년을 중퇴한 후 네델란드 선교사 길기수의 금오산 집회에서 감화를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1962년 10월 7일, 내 모든 죄가 눈처럼 희게 씻어진 것이 믿어진 그날, 내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눈처럼 희어졌다고 믿어진 그날, 영원히 잊을 수 없는 그날! 저에게는 그날이 1962년 10월 7일 새벽이었습니다”라고 박옥수는 고백하고 있다.
그 후 외국에 선교사로 나가기 위해 합천 산골에서 훈련을 받다가 군에 입대하였다. 1968년 전역 후 김천에서 전도하기 시작, 딕욕 선교사에게 목사안수를 받았다. 대구 계명대 앞에서 중앙교회라는 간판아래 활동하다가 1980년대 말에 활동무대를 대전으로 옮겨 한밭중앙교회를 담임하다가 2005년 서울 서초동 양재동에 있는 기쁜소식강남교회를 중심으로 IYF와 기쁜소식선교회를 이끌고 있다.
4ㆍ19 혁명 직후 딕욕 선교사는 대구로 와서 YWCA홀을 빌려 일주일에 한번 정도 전도집회를 하면서 삼덕동에 있는 일식집 하나를 빌려 선교학교를 시작했는데 박옥수는 이 선교학교를 졸업하고 6년 후 딕욕이 한국을 떠나면서 박옥수가 선교학교를 맡아 운영하였다고 한다.
1983년 기쁜소식선교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세력 확장에 나섰는데 “죄사함, 거듭남의 비밀”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전국 대도시의 체육관을 빌려 세력과시를 하며 성경강연회를 인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쁜 소식>이라는 정기간행물이 있지만 MBC·SBS와 같은 방송은 물론 조선·중앙·동아일보와 같은 일간신문을 통해 대대적인 광고를 하고 있으며, 월간중앙·월간동아 등에서는 박옥수 목사를 영향력 있는 기독교지도자인 것처럼 대담기사를 게재한 적도 있다.
박옥수는 최근 국제청소년연합(IYF)이라는 묘한 단체를 만들어 각 대학과 중고등학교에 침투하고 있다. 전 세계 35국에 지부와 회원을 두고 있다. 대학교에서는 영어말하기대회, 창조과학세미나, 영어교육, 컴퓨터교육, 연극교육, 자원봉사자모집, 사진전시회 등으로 교묘히 위장하여 학생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2001년 초 사단법인으로 등록이 되었고, 특히 이들이 매년 주최하는 “IYF세계대회”는 MBC·조선일보·YTN 등 일반 주요 매스컴에 소개된 바 있다.
2. 구원파의 공통적인 문제점과 차이점
위의 세 계파 지도자들은 모두 자칭 독립선교사인 딕욕과 길기수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은 이들로서, 기존 정통교회에는 구원이 없다는 기본전제 아래, “죄사함을 깨달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거짓된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성경을 우화적, 풍유적으로 억지로 해석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세 계파는 모두 하나님관(신관), 인죄론, 구원론, 종말론 등 모든 분야에서 성경과 정통 기독교의 범주를 이탈하고 있다. 그 이유 중에 하나는 이들이 모두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다는 데 있다.
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모두 고등학교 이하의 학력을 지녔으며, 체계적인 신학교육을 받은 적이 없이 극단적인 세대주의적 종말론에 입각해 성경을 영해하는 성향이 있다는 것도 이들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구원파 지도자들은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가정들을 온통 무너뜨리던”(딛 1:11) 할례당과 같은 이단집단으로서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그 사상과 교리, 그리고 행위로 주님을 부인하는 가증한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딛 1:16).
이들은 정통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에게 “선생님은 거듭나셨습니까?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모든 죄가 용서되었습니까?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것을 확신합니까?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와 같은 질문으로 접근하여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에 회의를 갖게 한 후에 죄사함을 깨달음으로 구원받았음을 확신하게 하는 접근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또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칭의론은 “교회가 서고 넘어짐을 결정하는 항목”이다. 옥스퍼드 대학의 앨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기독교적이고 기독교적이 아닌 것 사이의 구분은 이신칭의 교리를 받아들이는가 받아들이지 않는가에 있는 것이 아니다. 정통과 이단의 차이는 일단 이 교리를 수용한 이후에 이 교리를 어떻게 이해하는가에서 드러난다. 이단은 기본적으로 이 교리를 받아들이면서 그 의미를 내적 일관성 없는 모순된 방식으로 해석함으로 생기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이신칭의(justification by faith)의 교리는 “교회가 서게 할 수도 있고 쓰러지게 할 수도 있는 교리”다. 기독교의 성패가 이 교리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신칭의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칭의(稱義)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기초로 율법의 모든 요구가 총족되었다고 죄인에 대해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법적인 행위”이다(벌코프, 765). 칭의는 우주적인 차원에서 하나님이 죄인에게 언도를 내려 그의 신분이나 상태를 바꾸어주는 법적인 행위이다. 이를 테면, 재판관이 재판 때 무죄를 선고하면 그 죄인의 내면에 변화가 생기는 것이 아니고 그의 신분의 상태가 변하는 것이다.
칭의의 근거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이다. 구원파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인들을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기 위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부활하셨다는 것을 힘주어 가르친다(롬 3:24). 문제는 구원파에서 죄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죄를 인간 속에 존재하는 물질과 같은 그 무엇으로 이해한다는 것이다.
“나는 죄악으로 뭉쳐졌기 때문에…나 자체가 죄악덩어리라는 것”이다(박옥수, <회개와 믿음>, p.166).
“죄 덩어리인 여러분이 받을 형벌을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다 받았다는 것입니다”(박옥수).
정통 개신교회에서는 죄를 관계론적으로 이해하고 있다. 즉 죄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불신, 반항, 불순종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칭의론을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구원파의 칭의론은 죄사함을 깨닫는 순간 죄인이 의인이 된다는 것이다. 죄를 존재론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따라서 구원에 대한 가르침에 있어서 유병언, 이요한, 박옥수 등 구원파의 여러 계파는 다음과 같은 공통된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있다:
△ 회개와 믿음이 빠진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 회개를 계속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증거라고 한다.
△ 죄사함을 받은 이후에 스스로 죄인이라고 고백하면 지옥으로 간다고 한다.
△ 정통교회의 제도(장로/집사)와 예배형식, 주일성수, 십일조, 새벽기도, 철야기도, 축도를 무시한다. 종교와 복음, 기독교인과 그리스도인, 종교생활과 신앙생활을 구분하여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1) 회개와 믿음이 빠진 “깨달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다고 한다.
권신찬이 “이미 기록된 말씀을 계시에 의해서 깨닫는 것”, “내가 깨달은 진리”, “죄사함을 깨닫고”, 유병언이 “복음을 깨닫고”, 이요한이 “중생을 경험하고”, 박옥수가 “거듭난 체험”을 했다는 것을 모두 같은 뜻으로 “주님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를 깨닫고 구원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유병언은 “몇 대째 장로교인으로 율법에 얽매인 종교생활을 하다가 1962년 4월 7일에 복음을 깨달았다”(영혼을 묶는 사슬)고 고백하고 있다. 이요한은 “‘영접한다’즉 ‘믿는다’는 것은 교회에 다니거나 열심히 종교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말씀을 듣고 그 모든 죄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흘리신 피로 나의 죄를 영원히 정결케 하셨다는 것을 깨닫고 주님을 나의 구주로 마음에 믿는 것”(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 p.28)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권신찬은 “깨닫는다는 것은…말씀에 의해서 죄가 해결되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인류역사와 하나님의 사랑>, p.43)고 쓰고 있다. 권신찬은 또 “진리를 깨닫고 죄가 해결되면 영이 살아나는데 그것이 영의 구원이며 거듭나는 것이며 양심의 해방인 것이다”고 주장한다(세칭 구원파란?, p.24.).
따라서 이들은 한결같이 “복음이 믿어졌다”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데, 의지적인 결단으로서의 믿음이 빠져있다는 것이 이들의 깨달음 교리의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정통교회에서 “주님을 따른다. 믿기로 결심했다, 영접했다”는 등 적극적인 선택으로서의 믿음을 말할 때, 이들은 “깨달았다, 믿어졌다”는 식으로 수동적인 깨달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구원파의 문제는 죄를 잘못 이해한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박옥수는 원죄와 자범죄로 구분하지 않고 죄와 범죄를 구분해서 설교하고 있다. 박옥수가 말하는 죄란 정통신학에서 말하는 원죄와 자범죄 모두를 포함한다(내 죄벌이, p.143). 그는 오히려 죄와 범죄를 구분한다. 다른 말로 죄와 범죄는 죄와 죄의 증상으로 구분한다(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I, p.34, 36). 그는 원죄가 인간의 실존을 지배하는 힘 있는 세력임을 모르고 존재론적으로 이해한다.
그는 인간을 죄의 종, 사탄의 종으로 표현한다(내 죄벌이 중하여, p.160).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인간, 죄 덩어리로 뭉쳐진 인간(죄사함, 거듭남의 비밀 I, p.37)이라고 하면서 인간의 마음에는 죄가 흐르고 있다고 표현한다(내 죄벌이, p.2020). 원죄와 자범죄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그렇게 된 것 같다. 원죄란 아담이 범죄한 후 인류의 삶을 옭아매며 인간으로 하여금 계속 범죄 하도록 만드는 힘 있는 그 무엇이다. 그리고 자범죄는 이 힘에 의해서 범한 악행을 의미한다.
아래 출처에서 일부 발췌
[참고서적]
정동섭·이영애, <구원파를 왜 이단이라 하는가>, 죠이선교회, 2004.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이단사이비연구보고집>, 한국장로교출판사, 2001.
연세대"늦었지만 이한열 열사 정신 따르리"시국선언에 동참,
(87년 이한열 열사의 최류탄 피격 당시 사진이다.)
1987년 7월 5일 연세대앞에서 최루탄을 맞고 절명한 사건이 일어나자
정국은 하루앞도 알수 없는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되었고
이 와중에 1987년 8월 29일일어난 오대양 사건이라는 사이비 종교집단에서 벌어진 참극은 (국민들의 호기심을 충족 시키기 위한 무려 800건이 넘는 기사들을 연일 쏟아내며 ) 모든 방송매체들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들을 마치 블랙홀처럼 빨아드리며 정국은 수습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당시
올림픽 행사를 앞두고 있었던 정부로서는 대내외 적으로
쿠테타로 집권한 군사 독재 정권이라는
이미지를 쇄신할 자구책을 강구해야 할 입장 이엇고
또한 혼란한 정국을 수습할 절대 절명의 시기였음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자명한 것이었다.
이 와중에 일어난 오대양 사건의 수사에서 드러난 미스터리한
의문점들이 덮혀진채로 무려 27년 만에 또댜시
그 당시 의문의 배후인물의 당사자로 지목되어 오던 유병언 일가
소유의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이다.
또다시 반복되는 의문점 투성이의 미스테리한 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과 전세계 사람들의 시각은 의혹투성이의 사건의 숨겨진 인물이
새롭게 부각됨으로서 새로운 양상을 보이고 있기 ?문이고
과거 미스터리한 오대양 사건의 무리한 수습과정에서 파생된 의혹들과
이번 사건의 연관성을 연일 보도되어 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작금의 시기역시
지방선거를 불과 한달여를 앞둔 시점이고
국정원과 국방부등의 대선 부정선거 연루설이 해소되지 않은 시점이며
국정원과 검찰의 서울시 공무원 간첩 공작사건의 무혐의 판결과
국정원장의 사과등 현 정권의 부도덕성에 대한 후유증 등으로
대선에 악영향을 끼칠 개연성이 명백한 가운데 일어난 사건이라는 점이
국민들이 의혹의 시선으로 이변 사건을 바라보는 이유일 것이다.
(세월호 침몰사고 생방송중 스쳐가는 자막 기사중 검찰이
유우성의 간첩입증 증거를 또다시 확보 했다는 기사를 보며.)
국민들 앞에서 대국민 사과를 한 국정원장의 사과 해명에는
과연 진정성이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번 간첩조작사건 등으로 조직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국정원과 검찰의 진정한 자존심회복을 위한
유일한 대안은 공명정대함 과 더불어 진실과 정의를 바탕으로 한
올바른 양심에 따른 업무 수행만이 진정한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유일한 길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려되는점은
벌써부터 이번사건의 배후의 인물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묻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보도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세월호 참변의 실체인 몸통은 그대로 둔 채로
또다시 꼬리자르기식 수사로 종결시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희대의 만행이자 참변의 실체인 배후를 제대로 수사하지 못한 체
형식적인 수사에 그친다면
수백명의 죄없는 ?생들과 시민들의 희생을 희생양 삼아
또한번 혼란스러운 정국을 일시에 수습하고
다가오는 대선에서의 승리를 위한 잔인무도하고
부도덕한 사이비 교주와 정권과의 유착의혹과 더불어
대한민국 헌정 역사상 또 한번의 치욕스헙고 잔혹한
미체사건으로 남겨질까 우려가 된다는 점이다..
세월호의 실 소유주가 과거에도 5-6공의 실세와의 친분관계가 두터웠던점,
그후 한강유람선과 오세훈시장시절 한강수상택시 사업등을 볼때
항상 정권의 실세와 유착을 통해 잔혹하고 파렴치한 방볍으로
부를 축적해 왔던 점,
오대양 학살(32명 희생)사건과 한강유람선 침몰사건(14명 희생)과 더불어
이번 세월호 참사 사건(300여명 희생?)의 배후 인물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집행되지 않고 과거처럼 꼬리자르기 식으로
넘어가서는 결코 안될 것이다.
세번의 사건 모두 수많은 인명이 희생되었던 사건이고
연이은 의문의 사건 이후에도 건재 했던것은 정권 실세와의
끈끈한 유착 ?문 이었음을
대한민국 모든 언론들이 한입으로 동의하는 바 임에도
이번사건의 수사가 과거처럼 현 정권의 위기국면 에서 벗어나기 위한
이미 정해진 각본대로 연출된 수사로 종결되어 진다면
현정권의 도덕성과 정통성은 심각한 위기국면에 처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는 이변사건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정서가 이미 정부를 향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태에서 벌어진 사건이고 사건이후에 사건해결을 위한
정부의 미온적이고 형식적인 대책을 보면서 국민들의 마음속에 싹튼 정권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더군다나 이번사건의 배후의 실세가 과거 정권 실세와의 유착을 통해 수 차례에 걸쳐서 수 많은 인명을 희생 시켰음에도 막대한 재산을 축적하고 대를 이어 잘 살고 있다는 사실이 힘들게 살아가는 국민들의 감정과 정서에 마치 불난집에 기름을 붓는 듯한 격한 감정적인 집단 트라우마를 생겨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세월호 참사 사건이 결코 (지방선거를 한달 여를 앞둔 시점에서)
국정원과 국방부의 대선 부정개입 사건과 국정원과 검찰등의 간첩조작사건
등과 같은 정치적이고 사회적으로 정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시기에
(무인기 사건에 대한 의혹등과 같은) 국면 전환용이나 정치적인
위기극복을 위한 수단등으로 이용되어 진다면
이번 사건으로 희생된 수백명의 죄없는 무고한 어린 학생들과
시민들의, 부모, 형제, 가족들 뿐만 아니라 전국민들이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러한 이유 등이 이번 세월호 참사 사건에 대한 수사가
어떻게 진행 되어 지고 어떻게 종결 되어 지는지를
유심히 살펴 보아야 하는 이유가 될 것이다.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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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한번
세월호침몰 사건 생존자들의 무사귀환과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