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모독 [35]
7. 방화범들(3)
“그래, 임난우와는 잘 되어가고 있나?”
무심결인 듯 오성택을 향해 물었다.
“잘 돼 가냐고요?”
그는 헛김 빼듯 웃었다.
다 먹고 난 라면 그릇들은 한쪽으로 밀쳐진 채였고, 남았던 한 병의 소주도 이미 뚜껑이 열려져 있었다.
나는 입술을 축이듯 소주를 흘려 넣으며, 통화를 계속하면서 걸어가던 아내의 뒷모습과 그 공간을 울릴 듯이 깔깔거리던 웃음소리를 떠올렸다. 찰랑거리던 긴 코트 자락도 떠올렸다.
“왜? 잘 안 되는 거야?”
이미 처음부터 귀착점을 짐작하고 있었으면서도 나는 짐짓 그렇게 물었다.
“말도 마쇼. 생각만 해도 쩝, 뭐 그렇죠, 뭐.”
쩝쩝, 오성택은 다시 입맛까지 다시고, 뭔가 아쉽고도 공허하다는 듯 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오후의 햇빛은 거실 깊숙이까지 들이비쳤다. 탁자며 바닥에 반사되는 광선들이 유리판에서 반사되는 것처럼 눈이 부셨다. 동일 시간에 거실 창문으로 들이비치는 햇빛의 깊이가 점점 낮아질수록 겨울도 서서히 물러가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아직은 햇빛의 깊이가 깊었고, 겨울도 물러갈 기미가 없어보였다. 가끔씩 몰려오는 바람은 현관문 틈새에 걸려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울어댔고, 담배 따위를 사기 위해 아파트 단지 앞의 슈퍼마켓을 오가며 보노라면 건물의 그늘에 가려진 응달의 조금씩 패인 곳에 언 얼음은 하루 종일 녹지 않았으며, 아이들은 이미 깨어진 얼음을 콩콩 밟아 가루를 만들기라도 하듯 또 깨뜨리곤 했다.
소주가 담긴 컵을 만지작거렸다. 워낙 조금씩 느리게 마시는 탓인지 술기운은 올라오는 듯싶다가도 사라지고 또 올라오는 듯싶다가도 말곤 했다. 비록 실내이긴 하지만 부시도록 들이비치는 햇빛 속에서 소주잔이나 기울이고 있다는 것은 어딘지 비감스러운 느낌도 없잖았다. 더욱이 내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아내의 뒷모습과 찰랑거리던 코트 자락은 깊은 겨울밤 빈 들판 위의 만월(滿月)처럼 내 속을 쓸쓸하고도 아릿하게 저며 오고 있었다.
“무슨 일 있었구나. 그렇지?!”
머릿속에서 떠도는 아내의 모습을 떨어내기라도 할 양으로 다시 오성택을 향해 과장스럽게 큰 울림을 내며 물었다.
쩝쩝 입맛만 다시던 오성택은 절반쯤 남았던 소주 컵을 들어 단숨에 비워냈다. 몇 방울씩 입안에 흘려 넣곤 하는 나와는 달리 그는 벌써부터 술기운이 거나하게 올라와 얼굴이 불콰해진 모습이었다.
“그게 뭐……. 그렇지요…….”
말끝을 흐리며 뭔가를 망설이는 듯싶던 오성택은 다시 입을 열어 그동안의 일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정작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하여 라면에 소주병까지 사들고 나를 찾아왔을 것이었다.
“……그동안은 좀 바빴지요. 임난우 때문에 말입니다. 그래서 선배님한테 자주 연락도 드리지 못했고요. 아마, ‘푸른별’의 송인영 씨한테 이야기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고, 선배님 나름대로도 뭔가를 충분히 짐작하고 있었겠지만 얘기를 하자면 좀 길어요. 어쨌든 임난우 걔, 보면 볼수록 괜찮은 애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부터 어떻게 좀 해보려고 했던 것이지요. 헌데 여자를 사귀는데도 돈이 보통 드는 게 아닙디다. 열 번 만나자고 하면 한 번 만나 줄까말까 한데 그렇게 어렵게 만나서 손가락만 빨고 있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밥 먹어야지요, 술 한 잔 해야지요, 영화를 보든 연극을 관람하든 해야지요. 그런데 내가 백수인 주제에 무슨 돈이 있나요? 더군다나 백수가 백수라 할 수는 없고, 백수가 아닌 척 하려다보니 그게 또 사람 죽이는 일이더라고요. 그래도 무일푼은 아닌 척 하려다 보니 밥을 먹고 술을 마셔도 괜찮은 곳으로 가게 되더라 그 말입니다. 푸른별의 송인영 씨한테 갔을 때도 그렇습니다. 카드로 긁다가 정지 먹고, 그 때는 한참 꼬득이기 시작하던 때라 별 수 없이 그곳으로 찾아가 외상 긁었지요. 겸사해서 송인영 씨에게 지원사격이라도 좀 해달라고 부탁도 하고 말입니다. 그 때의 외상값은 아직도 갚지 못했습니다만…….”
“송인영은 처음부터 외상값 받을 생각은 하지 않았던 것 같던데.”
변죽 울리듯 웃으며 나는 그렇게 말했다.
“나도 압니다. 하지만 베룩이도 낯짝이 있지요. 언젠가는 꼭 갚을 겁니다.”
“언제? 궁둥이에 뿔나면?”
“두고 보십쇼. 꼭 갚을 테니까. 나도 언제까지 이렇게만 살겠습니까? 나도 뜻이 있고 원대한 포부가 있다는 말입니다.”
술기운 때문일까. 오성택은 목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하긴 그가 큰소리치고 허풍 떠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니었다.
껄껄 웃으며 나는 또 맞장구를 쳐주었다. 정작의 내 생각은 다른 데로 향하고 있었지만 그 생각의 끝을 잡아당겨 이쪽의 이야기에 잇대려 애쓰는 것이기도 했다.
“그래, 자네도 멋지게 한 번 성공해서 내로라하고 살아보라고. 자네 나이도 이제 삼십대 후반으로 들어서는데 언제까지 남의 집에 라면봉지나 사들고 가 끓여먹고 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또한 그래야만 여자를 얻어 장가를 가든지 말든지 할 것이고 말이야.”
“바로 그게 문제더라고요. 좋든 나쁘든 일정한 직업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까 이놈의 여자들이 끌려오는 듯싶다가도 죄다 달아나버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면서 오성택은 다시금 입맛을 쩝쩝 다셨다.
“요즘 여자들은 영악스럽고 계산적이어서 불알 두 쪽만 가지고 장가간다는 것은 생각도 못한다고.”
“글쎄 그게 그렇더라니까요. 임난우인지 임난초인지, 지가 난초처럼 빼어나고 깨끗한 척 합디다만, 그러면서도 머리칼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이고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은 내가 시대에 뒤쳐지고 구닥다리여서인지는 몰라도 영 그렇습니다만, 어쨌든 얼마 동안은 그런대로 잘 돼가나 싶었지요. 그래서 그걸 아예 붙들자는 마음에 방까지 얻었지 않습니까?”
“방을 얻었다고?”
그 말에 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오성택은 쪽방촌에 살다가 그마저도 방세를 내지 못해 쫓겨나 안면몰수하고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빌붙어 지낸 지 오래였다. 그리고 오래 그러다보니 그게 몸에 젖어서 어떻게 해 볼 생각 없이 그저 떠돌아다녔던 것이다. 그런 그가 방을 얻었다는 것은 무슨 수로 그럴 수 있었는지는 둘째 치고 좀 과장해서 천지가 개벽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여자를 얻으려면 적어도 방 하나는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었지요. 막말로 어떻게든 후려서 동거부터 시작을 하자 싶었지요. 그래서 미아동에 옥탑방 하나를 월세로 얻었지요. 처음부터 꿈 하나는 그럴 듯 했습니다. 방을 얻어놓고 여기저기서 가재도구를 하나씩 얻어다 번지르르하게 꾸며놨으니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헛물 한번 실컷 들이켠 것이지요. 그 옥탑방도 벌써 몇 달째 방세를 내지 못해 쫓겨날 판이지만 말입니다.”
“방까지 구했다면 임난우하고 상당히 진척이 있었던 모양이군.”
“진척요? 말도 마십쇼. 물론 꽤 진척이 있었다고는 할 수 있겠죠. 요것이 얼마 동안은 꽤 순순하게 나오더라고요. 만나자고 하면 만나주고, 밥 먹자면 밥 먹어주고, 술 마시자면 술 마셔주고 말입니다. 그 옥탑방에도 몇 번 데리고 갔었지요. 데리고 갈 때마다 함께 살 꿈을 꾸면서 말입니다. 여기서부터 너와 함께 살기 시작한다, 잘 봐둬라, 그런 심사였지요. 남들이 보기에는 하찮게 보여도 옥탑방은 내 일생 최대의 집이었고, 가장 무리를 해서 구한 것이었고, 듣는 사람은 우습겠지만 모험을 한 것이었습니다. 임난우가 아니었다면, 한 여자를 맞아들이는 건지 후려 들이는 건지 그런 게 아니었다면 감히 엄두나 낼 수 있었겠습니까? 그런데 그게 나 혼자만의 망상으로 끝나 버렸다 그거 아닙니까. 몇 번 옥탑방에 데리고 갔을 때 거기서 때려눕히고 흔한 말대로 내 땅이다 하고 태극기 꽂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고 망설이기만 수 없이 하고 말았습니다. 하긴 요즘 여자들 태극기 꽂았다고 해서 내 땅이 되는 것도 아니고, 태극기를 몇 개씩 꽂고도 엉뚱한 놈들 만나 잘도 시집을 갑니다만 말입니다. 내 것이라고 침 발라 놔 봐야 소용없는 일이지요. 어쨌든 옥탑방에 데리고 갔을 때 가차 없이 때려눕히고 태극기를 꽂아야 하는데 망설이기만 했던 것이 잘못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중에 다른 놈한테 시집을 가든 말든 말입니다. 그럼에도 거기서 그러지 못했던 것은 만약 그렇게 덤비다가 나를 나쁘게 보면 어쩌나 하는 심약함 때문이었지요. 나중에 대한 설곈지 꿍꿍인지가 있으니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할 게 아닙니까. 허허……. 아무튼 뭐 그런대로 나가긴 했습니다.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돈을 빌려 주머니에 넣고 나가면 그게 내겐 수 억이고, 그 수 억이 깨지는 것을 생각하면 속이 쓰렸지만, 여자를 하나 얻자면 그보다 더한 일도 감수해야 된다고 자신을 타이르며, 대학로에 가 술도 마시고, 노래방도 가고, 노래방에서 서로 껴안기도 하고, 골목에서 키스도 하고, 술을 마시며 더듬기도 하고 그랬지요.”
“그만하면 잘 나갔네. 옥탑방 얻고, 수 억 원이 깨져도 그만한 가치는 있었어. 히히. 그런데 임난우가 키스를 허락하고 더듬는 것을 허락해?”
자신도 모르게 묘한 웃음소리가 나왔다. 이미 귀착점을 알고 있음에도 뭔가 호기심이 발동했다.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였지만 그의 얼굴을 보면 전혀 거짓말은 아닌 듯싶었다. 사실 그는 허풍이 좀 있기는 하지만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리고 거짓말을 하더라도 얼마 가지 못해 사실대로 털어놓곤 했다. 그러니까 어떤 면에서는 다른 어느 누구보다도 순수하고 순진한 사람이라 할 수 있었다.
오성택은 커흠, 기침을 토해내고서 남은 술잔을 비워내며 뜸을 들인 뒤 다시 입을 열었다.
고개를 바짝 들이밀었다. 그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내 머릿속 아내에 대한 생각도 어느새 저만큼 물러나 있었다.
“허락하다 뿐입니까. 오히려 제가 더 적극적이더라고요. 키스를 하면 제가 먼저 혀를 밀어 넣어오고, 제가 더 더듬고, 껴안으면 제가 더 몸을 밀착시켜 오는 것으로도 모자라 볼록한 치골까지 들이밀고 말입니다. 그래서 내가 되레 놀랐다니까요. 혹시 이거 보통 경험이 많은 거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아니, 보통 경험이 아니면 그러지는 못하겠지요. 내가 주춤 물러서야 할 지경이었으니까요. 아무튼 그렇게 나오자 한편으로는 실망스럽기도 했지요. 여간 놀아나고 닳아빠진 게 아니구나 싶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잘 됐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경험이 많든 없든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리게 생겼습니까. 찬밥이라면 오히려 먹기가 더 쉽고, 쉽게쉽게 될 수도 있다아, 그런 생각이었지요.”
“임난우 그거, 그래 봬도 보통은 넘는다 싶었는데…….”
나는 다시 한 번 변죽을 울려주었다.
그러자 오성택은 갈증이 나는지 남은 소주를 입 안에 털어 넣고는 말했다.
“보통이 넘는 정도가 아니라 몇 단은 되더라고요.”
“그런데 왜 파국이 온 건가?”
“글쎄, 그게 말입니다. 여자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거 아닙니까. 하루는 벼르고 별러서 날을 잡아 술을 좀 먹이며 잔뜩 분위기를 잡았지요. 아마, 꽤 마시게 했을 겁니다. 취해서 비틀거리는 걸 부축해야 될 정도였으니까요. 여관으로 갈까 하다가 주머니 사정도 그렇고 하여 옥탑방으로 끌고 갔지요. 거기 갔을 때는 웬만큼 술이 깨이기도 했지요. 그러니까 내가 억지로 끌고 들어간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뭐, 골목에서부터 서로 끌어안고, 키스하고, 더듬었으니까 새삼스레 분위기를 잡을 필요도 없이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지요. 들어가자마자 거의 불이 붙어버렸습니다. 끌어안고 뒹굴고, 팬티 한 장만 빼고는 다 벗고서 빨고 핥고, 할 짓은 거의 다 한 셈이지요. 그런데 마지막 그걸 하려는 순간 안 된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처음에는 그래도 여자라고 내숭을 떠나보다 했지요. 헌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손바닥보다도 더 작은 팬티를 벗기려 하자 죽어도 안 된다는 거였고, 그것만은 절대 안 된다는 거였어요. 그냥 내숭이 아니었지요. 아무리 완력으로 하려 해도 소용없었어요.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원…….”
오성택은 공허한 웃음과 함께 한숨을 길게 토해냈다.
“그래서 그걸로 그만이었다, 이건가?”
“그럼 그만이지 뭘 어쩌겠습니까.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여자들의 머릿속은 도통 이해를 못하겠더라니까요. 즐길 건 다 즐겨놓고 마지막 그것만은 안 된다는 게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말입니다. 심본지 똥본지 아무튼 그렇게 죽어라 안 된다고 버둥대더니 일어나 옷을 주워 입고는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옷을 탈탈 떨며 나가더라니까요, 글쎄. 나는 그저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지 뭡니까. 붙잡을 힘도, 뭐라 말할 건더기도 없었으니까.”
“그것으로 끝이야?”
“끝이죠 뭐. 저도 나도 그 날 이후로는 연락을 끊었으니까. 며칠 뒤 전화를 넣어 봤더니 시큰둥한 반응이더라고요. 나한테 자신을 맡길 수 없다나, 뭐라나. 그게 내가 백수건달이라 안 된다는 얘기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말았죠, 뭐. 그럴 바에야 처음부터 싫다고 했으면 헛물 키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어쨌든 고년 덕분에 그 날 괜히 헛힘만 빼다가 한참 동안 술도 못 먹고 병원에만 다녔지 뭐겠습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병원은 또 뭐고?”
“임난우가 그렇게 나간 뒤 공허감을 견딜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옷 입고 나와 그 길로 거리의 여자를 사러 갔지요. 정낭이 차오를 대로 차올라 금방 터질 것 같고 자꾸만 근질거리는데 어쩌겠습니까. 임난우를 만날 때마다 쓰려고 꼬불쳐 둔 돈을 박박 긁어 여자 하나를 사서 그 짓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만 임질인지 지랄인지가 걸렸지 뭡니까.”
녀석의 임질이란 소리에 나는 괜히 몸이 움찔거려졌다.
“장화는 안 신었어?”
“설마 했던 것이지요. 거 참…….”
오성택은 허공에 대고 한숨만 내쉬었다.
“그럼, 임난우와는 더 이상 연락이 없고?”
“연락할 게 뭐 있습니까. 괜히 헛물만 켜다 임질만 걸리고 만 꼴이죠. 히히.”
오성택은 기묘한 소리로 웃었다.
갑자기 이야기가 끊기자 먹먹한 기분이 들었다. 실내의 공기도 바스락바스락 부서질 것처럼 말라 콧속이 다 뻑뻑한 느낌이었다. 두 병의 소주는 이미 바닥이 난 뒤였다. 오성택은 이미 술기운이 꽤 올라와 있었음에도 뭐가 아쉬운지 빈병을 기울여 보지만 제가 모세도 아닌 마당에 호렙산 반석을 쳐서 샘물을 솟아나게 하듯 빈병을 기울이고 비틀어 짜서 소주가 나오게 할 턱이 없었다.
나가서 소주 한 병만 더 사 올까요? 하고 오성택이 물었다.
에이, 하고 나는 손을 내저으며 그만하자고 말했다.
그러자 그는 쩝쩝 입맛만 다시다가 사타구니가 근질거리는지 손바닥으로 주물럭거렸다. 혹시 임질이 다 낫지 않았는가 싶어 나는 께름칙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던 모양이었는데, 그걸 놓치지 않고 본 오성택은 핀잔 투로 말했다.
“어따, 그러지 마십쇼. 다 나은 지 한참 돼서 깨끗하니까.”
“누가 뭐라나…….”
그 사이 해도 많이 기울었는지 베란다 창틀의 그림자는 거실 바닥에 사선으로 길게 가로누워 있었다. 그리고 창문 밖 저 아래에서는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가느다랗게 들려왔다.
한참의 시간이 흘러서 소주 대신 이제는 커피를 끓여 마시던 오성택이 문득 고개를 들어 올리더니 입을 열었다.
“저어, 그런데 말입니다…….”
하지만 그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얼른 말꼬리를 감추었다. 그리고 내가 빤히 쳐다보았음에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뭔데 말을 하려다가 마는 거야?”
내가 다그치듯 묻자 그는 얼버무렸다.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이 사람이. 그러니까 더 궁금하잖아. 뭔데 그래?”
“아무것도 아니라니까요.”
“글쎄, 아무것도 아니긴 뭐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거야. 내가 알면 안 되는 일이라도 있나?”
그러자 그는 한참 동안 무엇인가 생각에 잠기는 듯싶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어,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걱정이 돼서 이야기를 꺼내긴 했습니다만…….”
“뭔데 그래? 걱정이라는 것은 또 뭐고?”
“며칠 전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형수님을 봤지 뭡니까.”
“형수님? 내 아내 말인가?”
“예.”
“그런데 그게 왜?”
“글쎄요.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형수님을 발견하고는 반가워서 얼른 다가가려 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몇 발짝 떼어놓지 않아서 걸음이 절로 멈춰지더라고요. 형수님 모습이 뭔가 심상치 않아 보였지요. 창밖으로 고개를 돌린 채 전혀 움직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더욱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가만히 살펴보니 울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울다니? 내 아내가 카페에서 울고 있더란 말인가?”
그렇게 물으면서도 뜻밖의 그 이야기에 나는 어리둥절한 기분이었고, 또한 믿어지지가 않았다.
오성택은 계속했다.
“예. 오늘 선배님을 찾아온 정작의 이유도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릅니다. 내내 망설이고 있었긴 했지만 말입니다. ……. 어쨌든 너무나도 뜻밖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소리 없이 울고 있다는 것도 그렇고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것도 그렇고……. 물론 우는 것이야 그럴 수도 있다고 할 수가 있겠지만 뭔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는 것은 자꾸만 마음에 걸렸습니다. 어떻게든 다가가 아는 척이라도 하며 그 분위기를 환기시키려 했지만 그럴만한 기회도 좀체 엿보이질 않았고……. 아무튼 도저히 다가가 아는 체 할 수 없는 모습이었습니다. 얼굴에 가득한 어둠의 그림자, 침통함, 눈물, 그리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버리거나 아주 사라져버릴 것 같은 모습, 그런 거 있잖습니까. 그래서 나도 그곳을 나오지 못하고 지켜보고만 있었지요. 뭔가 걱정이 되어서 말입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나자 남자 하나가 나타나 형수님과 마주앉더라고요.”
“남자?”
“예.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누구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이나 잡지, 그런 데서 본 것 같은 느낌 있잖습니까. 작가나 화가나 음악가나, 뭐 예술을 하는 사람 같긴 하던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누군지는 모르겠더라고요. 얼굴은 긴 편이면서도 사각형이고, 덥수룩한 턱수염에 구레나룻도 까맣고…”
“그래서?”
그쯤에서 나는 말을 잘랐다. 오성택이 말하고 있는 남자는 조은식일 것임에 틀림없었다.
오성택은 이리저리 쑤석거리고 돌아다니는 탓에 작가나 화가 등을 꽤 많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작사가인 조은식은 알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 점이 다행이라면 다행일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 예. 마주앉은 두 사람, 마치 벙어리들처럼 한참 동안이나 아무 말이 없더라고요. 그 남자가 다가가 마주앉아도 형수님은 고정된 마네킹처럼 움직이지 않은 채 창밖을 내다보기만 했고, 그 남자 역시 주문한 찻잔만 이따금씩 들어 올릴 뿐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고요. 마치 무슨 약속이나 한 것 같았죠.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남자가 뭔가를 조금씩 이야기하기 시작했어요. 무슨 이야긴가 들어보려고 아무리 귀를 기울여도 거리가 멀어 들리지 않았고요. 하지만 형수님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고 어떤 이야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그 남자는 마치 벽에다 대고 하는 것처럼 간간히 몇 마디씩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었지요. 그렇게 얼마가 지나자 남자는 일어나더니 형수님을 그대로 놔둔 채 돌아갔습니다. 남자가 돌아갈 때도 형수님은 고개 한 번 돌리지 않았고요. 그리고 남자가 돌아가고 난 후에도 형수님은 내내 그 모습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형수님이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그렇게 거의 한 시간 가까이나 지나서였습니다. 카페를 나서는데 금방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이었고, 걸음걸이는 마치 허공을 딛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안 되겠다 싶어 멀찍이 떨어져서 뒤따라갔습니다. 뭔가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지요. 왠지 그런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차 하면 달려들어 형수님을 붙잡아야 된다는 생각이었고요. ……. 아무튼 거리로 나서서도 형수님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곳에선가 멈추어 서고, 나도 멈추어 서서 지켜보고, 그런데 지나가는 택시를 잡더니 그걸 타고 가 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더 이상 뒤쫓아 갈 수가 없었지요. 그러면서도 뭔가 일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떨쳐지지 않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고요. ……. 내가 전화를 하면서 맨 처음 형수님이 집에 있는지 물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
오성택의 이야기에 나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뭔가 계속되는 그의 이야기도 내 귀에는 잘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현관을 나서서 걸어가던 아내의 뒷모습만 눈앞에 어른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과 오성택이 이야기하는 모습과는 대체 어떻게 연결시켜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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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울~횟님들~월요일부터~변동되는.춘날씨에~건강하시고~행복하세요???
남녀와~사랑으로~즐겁게키스하시고~무언가~기대하기~보다는~
주어도~아깝지~않을~예쁜그련울님~인연이었으면~좋겠습니다???
눈부신~아침은~하루에두번~오지않습니다???
찬란한~우리젊음도~일생에두번다시~오지않지요???
꿈이있는한~이세상은~도전해볼만기에~어떠한
일이 있어도~꿈을 잃지않고~희망을버리지 않는
사람에게~사랑을주어집니다~우리님들도~
하루하루작품을~만들어가는~삶을살수있길소망합니다???
잘 읽으면서 즐감하고 갑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인생살이에 대한 글 감사합니다
고맙고 감사
잘보고갑니다.
고맙습니다.
반가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