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쁨을 회복하자!
본 문 / 요한복음 15장 9∼12절
주 제 / 그리스도인은 일상에서 사랑으로 인한 기쁨으로 살아야 한다.
작성일 / 2020년 11월 8일. (№ 20-45)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12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요 15:9∼12)
Ⅰ 기쁨은 마음 건강의 척도 (빌 4:4)
지난주에는 개그우먼 ‘박 지선’씨가 어머니와 함께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어머니가 작성한 유서가 발견되었기에 자살로 추정하는 것 같다. 그래서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지 통계자료를 살펴보았다. 2016년에 13,836명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해에 ‘교통사고’, ‘추락사고’, ‘화재사고’ 등 각종 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8,053명이었다. 각종 사고로 사망한 사람보다 자살로 사망한 사람의 수가 1.7배나 되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가장 소중한 목숨을 스스로 포기할까? 세부적인 원인은 다양하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딱 한 가지이다. ‘기쁨’이 없기 때문이다. ‘기쁨’이 있으면 삶의 의지가 충만할 것인데, ‘기쁨’이 없으니 삶의 의지가 허약해지고 그래서 뭔가 큰 문제가 생기면 그 상황으로부터 도망치려고 죽음을 선택한다. ‘기쁨’은 ‘마음 건강의 척도’이다. 기쁨이 충만하면 마음이 건강한 것이므로 죽을 일이 없다. 그러나 기쁨이 없으면 마음이 병든 것이므로 죽음에 이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기쁨을 찾으려고 한다. ‘코미디’, ‘드라마’, ‘스포츠’, 그리고 최근에는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통해서 기쁨을 얻으려고 한다. 그런데 미디어(media)를 통해서 얻는 기쁨은 ‘인스턴트기쁨’이다. ‘순간의 기쁨’이다. 잠시 허기를 달래는 기쁨이 될 수는 있지만,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기쁨은 되지 못한다.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기쁨은 ‘자연스러운 기쁨’이다. ‘일상의 기쁨’이다. ‘가정생활’, ‘직장생활’, ‘신앙생활’ 등 일상생활을 통해 얻는 기쁨이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진짜기쁨’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약간의 수고가 요구되는 ‘일상의 기쁨’ 보다는,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인스턴트기쁨’을 찾고 있는 것이다.
저는 ‘텔레비전이 없는 시대’를 잠간 살아보았다. 코미디, 드라마, 스포츠, 전자게임, 미디어가 거의 없는 시대였다. 그러니 모든 즐거움은 주로 사람을 통해서 얻는 시대였다. 낮에는 친구들과 뛰어놀고, 밤에는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이 들었다. 쉬는 날이면 아버지와 아들이 바둑이나 장기를 둔다. 어머니는 아들을 응원하고, 딸은 아버지를 응원한다. 명절이 되면 삼촌 조카들이 둘러 앉아 화투놀이도 했다. 삼촌이 따면 돌려주고, 조카가 따면 용돈으로 간주했다. 모든 놀이가 사람과 사람이 마주하는 놀이었다. 자연스럽게 일상을 통해서 기쁨을 얻는 시대였다.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지만, 누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거의 듣지 못했다. 육체는 힘들었지만 교제를 통해 마음이 치유되는 시대였다.
바울이 말한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항상 기뻐하라’고 한다. ‘인스턴트기쁨’, ‘순간의 기쁨’말고,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일상의 기쁨’을 누리라는 뜻이다. ‘주 안에서’란 말은 ‘예수의 마음으로’란 뜻이다. 이웃과 교제할 때에 예수의 마음으로 교제하여서 일상의 기쁨을 누리라는 뜻이다.
Ⅱ 일상의 기쁨은 사랑을 통해 생성된다. (요 15:9∼12)
‘예수의 마음으로 교제함’이란 어떤 것일까? 오늘 본문의 예수님은 ‘사랑으로 교제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의 마음을 품고 교제하면, 즉 예수의 사랑으로 교제하면 일상의 기쁨을 회복하게 된다고 말씀하신다.
1. 서로 사랑하라. (요 15:9∼10, 12)
요한복음 15장 9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요 15:9).‘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즉 ‘예수의 사랑으로 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고 있으니 그리스도인도 역시 예수의 사랑으로 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의 사랑으로 산다는 것은 어떻게 사는 것일까? 요한복음 15장 10절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 15:10).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예수의 사랑으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으로 살고 계신다고 말씀하신다. 공식이다. 예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은, 그 삶이 예수의 사랑으로 사는 삶이되는 공식이다.
그렇다면 예수의 계명은 무엇일까? 요한복음 15장 12절이다.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요 15:12).예수님의 계명은 ‘서로 사랑’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웃 사랑’이 예수의 계명이다.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예수의 계명을 지키게 되고, 이웃 사랑으로 예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예수의 사랑으로 사는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집요할 정도로 사랑을 강조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사랑하듯 이웃을 사랑하라고 강조하신다.
2. 사랑은 기쁨을 생성한다. (요 15:11)
왜일까? 예수님은 왜 이렇게 사랑을 강조하실까? 요한복음 15장 11절이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예수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게 하시려고, 즉 우리 삶이 거룩한 기쁨으로 가득한 인생이 되게 하려고 사랑을 강조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영혼의 기쁨이 충만해진다. 이웃을 사랑하면 마음의 기쁨이 충만해진다. 이와 같은 거룩한 기쁨으로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사랑을 가르치신다. 기쁨을 생성하는 것은 사랑이다. 기쁘게 살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
가족이 서로 사랑하면, 그 가정에서는 기쁨이 생성된다. 동료가 서로 사랑하면 그 일터에서는 기쁨이 생성된다. 교우들이 서로 사랑하면 그 교회에서는 기쁨이 생성된다. 예수님은 그런 가정에서 살라고, 그런 일터에서 일하라고, 그런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라고 우리에게 사랑을 가르치신다. 사랑이 기쁨을 생성하기 때문이다.
Ⅲ 사랑은 주는 것, 그리고 용서하는 것
중요한 것은, 사랑은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에게 훨씬 큰 기쁨을 선물한다는 사실이다.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면 불평이 많아진다. “더 줄 수 있는데 왜 이것뿐이냐?” “갑순이는 열을 주고 나는 왜 다섯이냐?” 불평이 기쁨을 가로막는다. 그러니 사랑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에서 나의 역할은 ‘받는 역할’이 아니라 ‘주는 역할’이어야 한다.
‘돈이 곧 기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돈은 우리에게 큰 기쁨을 준다. 그런데 ‘받는 돈’보다, ‘주는 돈’이 더 큰 기쁨을 선물한다.
어떤 부자가 소출이 많아지자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지어서 곡식을 쌓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말한다. “… 내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눅 12:19). 돈을 많이 모았으니 이제 즐겁게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그때 하나님이 부자에게 말씀하신다. “…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눅 12:20).곳간에 쌓인 돈이 나에게 기쁨을 주지 못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남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어쩌라는 말씀일까? 곳간에 쌓인 돈은 지금 굶주리는 사람을 배부르게 할 수도 있고, 지금 헐벗은 사람을 입게도 할 수 있다. 죽어가는 사람 살릴 수도 있다. 돈이 곳간에 쌓여있지 않고 그렇게 살아 역사하게 하는 것이 훨씬 큰 기쁨을 선물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돈을 사랑의 도구로 삼아야 한다. 그러면 인생이 즐거워진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용서가 사랑의 시작이란 점이다. 사랑은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용서의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라. 용서하는 순간 미웠던 이웃이 측은하게 느껴진다. 내 허물도 보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웃의 손을 잡게 된다. 용서하면 진짜 사랑이 시작된다.
우리, ‘주는 사랑’, 그리고 ‘용서하는 사랑’으로 일상의 기쁨을 회복해 보자.
<기도> 하나님 우리가 믿음 안에 살면서도 일상의 기쁨을 누리지 못함은 우리에게 사랑이 없기 때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주는 사랑, 용서하는 사랑을 하게 하소서. 그래서 예수님의 기쁨을 일상에서 누리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