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 미의 신화에 대한 변증법적 비평
- 의료사진과 신체 예술을 중심으로 -
김 석 원
들어가면서
1. 인체 미와 미술 해부학적 접근
2.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 연구
3. 성형수술과 의료사진
4. 디지털 수술과 신체 예술
나가면서
들어가면서
이 글을 쓸 때 중점을 둔 사항은 인체 미에 대한 접근방식에 있어서 르네상스 시대를 중심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hi, 1452~1519)’의 인체비례에 관한 연구와, 그에 따른 인체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한 인체 해부학과 함께, 같은 시기에 맥스 소렉(Max Thorek, 1880~1960)을 중심으로 성형수술이 공존했던 사실과, 그 후 현대에 와서 일반인들에게 미용을 목적으로 사용했던 성형수술이 생트 오를랑(Saint Orlan, 1947~)에 의해서 예술작품으로 전환하는데 인체가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지 밝히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접근방법을 제한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를 언급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다빈치의 연구가 미술사적으로 좋은 소재가 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다빈치의 예술행위와 함께 그가 관심을 가졌던 '해부학'과 '인체비례에 관한 연구'가 인체 연구에 있어서 도상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첫 번째와 다소 중복되는 얘기이기도 하겠지만, 르네상스 시대에서 인체에 대한 연구는 오늘날 우리 자신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글에 대한 단초는 왜 인체가 오늘날 문화적인 현상으로서 연구되며, 이런 사회적인 체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할 것인가를 미술사적인 연구를 통해서 풀어나가고자 하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1. 인체 미와 미술 해부학적 접근
‘인체 미’에 대한 관점은 동ㆍ서양이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고 과거와 현재를 포함해서 민족과 개인이 느끼는 관점 또한 다르다. 또한, 개인사적인 입장에서 생각해 볼 때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연령 대에 따라 인체 미를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체험을 통해서 알고 있다. 인류가 최초로 미술행위를 한 흔적을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것은 원시사회에 해당될 것이다. 인체는 외형적, 내면적으로 창작의 근원이 되었으며 원시미술에서 그리스를 지나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시대를 초월하여 미적표현의 주된 대상이 되어 왔다. 원시시대에 인체표현을 하기 위해서 사용한 재료는 주로 돌이나 동물의 뼈와 점토가 주된 재료로 사용되었는데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라고 불리는 나부상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 시기에 여성을 그린 그림은 주술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는데 이를테면 유방과 둔부는 과장되게 표현되고 얼굴, 팔, 다리는 생략되고 단순하게 묘사되었다. 이런 근거를 볼 때, 인체미의 주안점을 얼굴에만 제한적으로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원시공동사회에서 얼굴보다는 다산, 풍요, 안정을 위해서 외모가 풍만한 상태를 아름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고대에서 인체를 중요시했던 이유를 찾는다면 정신과 육체를 동일시하는 사고를 근거로 해서 신체를 완벽하게 다듬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었다.
이러한 주장이 나온 이유에 대해서 플라톤(Platon, B.C. 428/427~348/347)은 “만물은 제각기 이상적인 형태를 갖고 있는데 현상계의 여러 현상들은 그 형태의 불완전한 복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현상계가 아름답다는 것은 이데아(idea)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며 역으로 현상계의 아름다움부터 감각적인 것을 제거해 나감으로써 이데아에 도달할 수 있다.1)
라고 언급하였다. 초기의 원시시대에서 인체를 표현하는 관심의 시작은 그리스 시대에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다. 그들은 다른 시대에 비해서 독특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육체를 자랑스럽게 생각했으며 특히 벌거벗은 신체에 대해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이런 육체에 대한 신뢰는 그들의 철학 즉, 정신과 육체의 합일성을 중요시한 것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아름답고 절도 있는 조직체로서의 육체, 숭고한 인간의 영혼이 담겨져 있는 집 그리고 신적(神的)인 아름다움을 반영한 인체, 이러한 인체에 대한 숭배는 매우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그리스인의 인생관을 미술적으로 가장 잘 반영한 것이다.
그리스 미술에서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할 때, 작품에 신성함과 아름다움을 불어넣는데 필요한 근육의 연결이나 관절의 균형과 비례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인체의 해부에 대한 지식이 탁월해야만 나타낼 수 있는 실물감과 운동감을 작품 속에 나타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인체에 대한 표현은 미술해부학에 있어서 최소한의 근거를 제공해 주는 단초를 마련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그리스 시대에서는 인체해부가 금지되어 왔기 때문에 인체 해부학에 대한 지식이 빈약할 수밖에 없었다. 해부학(anatomy)의 시초는 인체를 자르는데서 시작하는데,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B.C. 300년경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헤로필로스(Herophilos, B.C. 335경~B.C. 280경)에 의해 처음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해부학의 지식은 특수 분야의 목적에 의해서 체계화된 응용 해부학으로 나누어질 수 있는데, 오늘날에 와서는 응용 해부학의 개념과 함께 범위가 다양화되었고 그 대표적인 예를 들 수 있는 것이 미술 해부학이다. 해부학 발생의 근원은 캐논(Canon)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규범, 규준, 아름다운, 마음에 드는 것, 감탄을 자아내고 시선을 사로잡는 모든 것이란 뜻을 함축적으로 지니고 있다. 미술 해부학을 회화에 도입한 이유는 우선 인체를 대상으로 작품을 제작하는 예술가들이 인체의 골격과 근육의 생김새와 작용을 이해한 다음 인체에 대한 미적 표현법을 습득하여 그 아름다움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도록 도와주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했다.
예술에 있어서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시대에는 인체 미를 평가하거나 재현하는 행위에 있어서 수학적인 비례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그런 이유는 정신적인 미를 위하여 육체적인 미를 평가 절하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 후, 르네상스 시대로 오면서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 되는 존재로 여겨지고, 인체 미의 기준은 경직성에서 유연성으로, 인위성에서 사실성으로 변화하는 계기를 가지게 되며, 근대에서는 우아함, 장엄한 화려함의 특징으로 사치생활, 성과 신체에 대한 자유로운 태도 등이 신체 미에 반영되어서 외모와 신체관리를 중시했다. 현대사회로 진입하면서 우리는 인체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욕망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의학에 의존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는데 있어서 미디어의 영향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밝힌 바와 같이 ‘인체 미’에 대한 관점은 결국, 보는 사람의 관점과 시대적인 미의 가치관에 따라서 기준이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류가 생존하는 그날까지 인체미의 관점은 조금씩 양상이 변할 것으로 생각되며, 인간의 신체에는 인류의 역사와 그 시대의 흔적이 담겨있는 것이다.
2.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체비례 연구
르네상스 시대(Renaissance, 14세기~16세기)는 문화 사상 전반에 이르는 대변혁 시기였다. 이 시기는 순수한 시각 미와 현실 세계에 대한 가치 평가가 재시도 되고 인간과 자연에 대한 인본주의적 자각이 중심사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신의 존재에 가리어졌던 인간이 모든 세상의 중심에 서게 되면서, 인간을 더욱 위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이 시기
의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hi, 1452~1519)는 인간을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르네상스의 사상을 그림으로 재현해서 보여준다. <다빈치의 인체비례>는 B.C. 1세기경 로마 건축가 ‘마르쿠스 비트루비우스 폴리오(Marcus vitruvius Pollio, ?~?)’의 『건축 10서』의 제 3권중 「신전건축」 에서 언급했던 ‘인체 비례’에 관한 글을 읽고 영향을 받아서 그림으로 제작한 것이다. 비트루비우스가 ‘인체 비례’에 기록한 내용을 살펴보면, “얼굴은 전체키의 1/10이 되어야 하고 머리는 1/8, 가슴길이는 1/4등으로 신체의 적절한 비율을 표현하였다.”2) 다빈치가 그린 <비트루비우스의 인체비례>에서 서 있는 남자의 모습은 인체의 비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자 한 것이다. 인체비례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B.C. 4세기경 그리스의 폴리클레이토스(Polycleitos, ?~?)는 ‘캐논(Canon)’에서는 인체의 아름다움은 인체의 구성요소의 균형이 아니라 모든 신체의 각 부분(팔, 다리, 몸)들의 균형에서 인체 비례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즉, “손가락과 손가락 전체, 모든 손가락에서 손바닥과 손목, 손목에서 팔뚝, 팔뚝에서 상박의 균형, 실제로 모든 것에서 그 밖의 모든 것의 균형에서 미가 발생 한다.”3)고 설명하였다. 이 부분을 좀더 보충해서 설명하면 ‘캐논’에서 의미하는 인체의 비례는 인체 측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1932~)의 설명에 의하면 “머리가 몸체에, 몸체가 다리에 비례하면 되었다. 기준은 유기적이었고, 각 부분의 비율은 신체의 움직임, 원근의 변화, 바라보는 사람의 위치와 관련”4)된다고 언급하였다. 또한, 이러한 지적은 그리스와 이집트의 인체 비례를 구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한다. 이집트의 인체 비례는 하나의 기준을 마련해 놓고 모든 부분의 기준에 대한 비율로 표시하는 반면, 그리스인들의 신체 미는 각 부위간의 대칭과 적당한 비례에 의존한다고 여겼다. 그리스의 미적 감각은 비례 미에 기초를 둔 것이었다. 다빈치 비례의 출발이 손가락의 굵기에서 시작해서 귀의 길이로 끝냈다면, 비트루비우스의 비례는 얼굴 길이와 신장의 비율에서 시작하여 가슴의 너비와 신장의 비율로 끝난다.5)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비트루비우스의 인체 비례에 대한 개념을 재해석한다. 그것은, 첫 번째, 인체에 직접 컴퍼스와 자를 대서 살아 있는 인체를 재구성한다. 방법론적으로는 등을 대고 누워있는 사람의 모습을 서있는 사람의 모습으로 바뀐 것이다.
이러한 시도는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르네상스적 시각을 반영하였다는 점과, 비트루비우스의 도상학적 그림을 진보시켰다는 점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독창성의 결과로 풀이된다. 두 번째는, 비트루비우스가 자연이 정한 인체의 중심이 배꼽이라고 생각한 것에 비해서 다빈치는 남성의 성기를 중심으로 전체 신장의 중심에 자리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시도는 창조의 시작을 우주의 배꼽으로 생각했던 고대의 신앙이 소우주인 인체의 중심도 마찬가지로 배꼽이라는 등식이 성립된 결과로 볼 수 있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관점은 창조의 출발점을 남성의 성기로 옮겨놓은 것이다. 세 번째는 비트루비우스가 묘사한 인물이 수동적으로 누워있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다빈치의 인체비례도>는 비트루비우스의 그림과 마찬가지
레오나르도 다빈치, <인체 비례도>, 1492. 레오나르도 다빈치, <여성 해부도>, 1480.
로 2차원적인 평면에 그려졌음에도 불구하고 활동적인 인체의 움직이는 연속 동작을 느끼게 묘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움직임의 잔상을 희미하게 처리하지 않고 선명하게 표현해서 결과적으로는 팔과 다리가 각각 4개로 보이게 하였다. 또한, 다빈치는 비트루비우스의 글을 그림으로 옮기면서 두 가지 오류를 범한다. 첫 번째는 원안에 있는 누워있는 인체를 일으켜 세운데 있다. 비트루비우스의 원문에 의거해서 누운 자세로 인체를 재현한다면 배꼽을 중심으로 시점을 고정하고 볼 때 발등이 나란히 노출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배꼽에서 발가락 끝까지의 길이도 다빈치의 인체보다 더 길어져야 한다. <비트루비우스의 네모꼴 속의 인간>을 살펴보면, 발끝이 원에 내접하고 있지만 두 발바닥은 원안에서는 떨어져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봤을 때 두 발바닥을 원안에 완전하게 밀착시킨 다빈치의 <레오나르도의 인체비례>그림은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비트루비우스의 네모꼴 속의 인간>에서 원과 사각형의 도형이 일치하지 않는다는데 있다. 비트루비우스가 원과 사각형의 일치에 대해서 언급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두 도형이 반드시 일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도형은 인체비례에 대한 기준점을 제시해 주면서 다른 의미를 지닌다. 같은 길이의 수평선과 수직선을 각각 두 개씩 연결하여 이루어진 ‘정사각형 도형’은 좌우 두 팔을 수평으로 펼치고 두 다리를 수직으로 뻗은 인체의 모습을 보여준다. 정사각형 안에 있는 인체는 서있는 모습으로 보이고 원에 포함되어 있는 인체는 누워있는 모습이다. 비트루비우스는 누워있는 원은 신전의 평면도의 조건을 충족시키고, 정사각형은 신전의 입면도에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즉, 가장 완전한 형태의 톨로스(Tholos) 건축을 의도했던 것이다. 이런 시도는 입체적 사고를 가진 고대의 건축가 비트루비우스가 인체비례를 신전건축의 원리로 설명한 것을 평면적 사고에 익숙한 다빈치가 고대 건축론에 입각한 사고를 무시하고 르네상스적인 관점에서 재해석했기 때문이다.6)
하지만 다빈치의 인체상과 비트루비우스의 인체상이 다른 점이 있다면 ‘정사각형 도형’ 속의 ‘원’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원’이 회화의 중심이고 ‘영혼’이라고 생각했으며, 이 부분에 있어서 케네스 클락(Kenneth Clark)은 “사각형, 원, 그리고 황금 분할법에 의해 인체의 비례를 추상적 완벽성”7)으로 예증한다고 하였다. 또한, 비트루비우스의 방식에 따른다하더라도 아름다운 인체가 만들어진다는 보장은 사실 없다. 왜냐하면 엄격한 기하학적 입장에서 판단한다면, 고릴라가 인간보다 더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인체미를 만들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비례만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드러난 것은 1501년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의 판화에 의해서 나타난다. 뒤러는 인체 상에 대해서 고전적인 비례를 위해서 원과 정방형들을 사용하지 않고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Zeuxis, B.C. 500~430)가 그랬던 것처럼 이상적인 비례를 자연으로부터 연역(deduction)함으로서 하나의 대안을 보여준 듯하였지만, 판단기준의 애매모호함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그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최종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지상에는 아무도 없다. 하느님만이 그것을 알고 있다.”고 말해서 사실상 명확한 대안은 회피하고 있다 결국, 인체에 대한 개념이 분석이 가능한 비례에만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 것이다.
알브레히트 뒤러, 「인체 균형론」,1591.
한편, 다빈치는 현실 속에서 실제 존재하는 사람처럼 생명감을 지닌 인물을 창조하고자 원했기 때문에 그런 인체를 표현하려는 의지는 해부학에 관한 깊은 관심으로 이어졌다. 다빈치의 경우 르네상스 시대에 금지했었던 인체의 해부를 실행해서 정교한 인체 해부도를 작성
해 놓았다. 해부를 했던 주된 이유는 첫 번째, 물체의 구조와 동물의 신체 각 부분들이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알기 위해서였으며, 두 번째는 해부를 통해서 인간 생명의 본질과 그 재생의 비밀을 찾고자 했다. 좀더 자세히 언급을 한다면 다빈치는 자연 속에서 인간과 다른 유기체들에서 볼 수 있는 생명의 근원을 느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영향은 지질학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다빈치는 “대지는(생물체와 마찬가지로) 성장하려는 정신을 지니고 있다. 토양은 살이며, 산맥을 형성하는 바위 층은 뼈이며, 분출하는 물은 피다. 그리고 맥박에서 볼 수 있는 피의 증감에 해당하는 것은, 대지의 경우 바닷물의 간만에서 볼 수 있다.”8)이런 이유 때문에, 그의 그림 속 인물들은 해부학적으로 상당히 정교하고 과학적인 균형이 잡혀 있는 것이다.
해부학에 대한 관심은 대우주와 소우주라는 경험을 통해서 인간을 우주와 동일시하려는 르네상스시대의 세계관을 증명하는 행위였으며, 이런 다빈치의 해부학에 대한 지식이 드러난 것으로 <모나리자(Mona Lisa)>(1503~1505년경)를 들 수 있다. 이 그림을 보면 <모나리자>의 모델이 된 '리자'라는 여인이 놀라울 만큼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실감에 있다. 그녀는 실제로 우리를 쳐다보는 것처럼 느껴지고 그 여인의 마음속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한 사실적 특성을 처음으로 기록한 사람은 동시대에 살았던 최초의 예술사학자 바사리(Giorgio Vasari, 1511~1574)는 모나리자가 완성한 직후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자연을 재현하는데 미술이 얼마나 놀라운 기적을 이루는지 알고 싶다면 <모나리자>의 아름다운 얼굴을 감상하라. 촉촉한 물기가 고인 두 눈에는 광채가 살아있어 마치 살아있는 사람을 보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눈가에는 매우 섬세한 연보랏빛 음영이 드리워져 있고 지극히 세밀하고 정교한 붓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코의 생김새와 그 발그스름한 콧구멍은 살아서 숨을 쉬는 듯하고, 입술가장자리가 살포시 부풀어 있어, 여기에서 입술의 붉은 색조와 뺨의 살색이 만난다. 이런 이유로 이 여인이 붓으로 그려졌다기보다는 마치 피와 살로 빚어진 창조물처럼 보인다. 목 아래 패인 곳을 유심히 바라보면 여인의 맥박이 살아 뛰는 것을 느낄 수 있다.”9)바사리가 이처럼 극찬을 한 이유는 과거에 재현기술을 습득한 미술가들에 대해서 빠짐없이 찬사를 보냈던 그의 언급을 통해서 구체화 된 것이다.10)이처럼,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은 대상의 모습을 정확하게 평면으로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였는데, 다빈치의 사실적으로 보이는 그림은 현실의 모습을 단순하게 그대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성적으로 인식한 후, 대상을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이게 재해석 했다는데 의미를 들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모나리자」, 나무에 유채, 76.9×53.3cm, 1503.
3. 성형수술과 의료사진
현대 사회에서 외모에 대한 판단은 나 혼자 만의 문제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외모는 타인에 의해서 나의 모습에 대한 가치 판단인 동시에, 나 역시 타인을 외모를 기준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는 시각적인 판단에 의해서 보고 보여야 한다는 사회적인 요구의 중심에 있다. 이런 현상은 자신의 가치보다는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평가받는다는 것과 같은 의미다. 오늘날 외모가 중시되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자신이 없거나, 외모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은 성형외과 의사들에게 의존하는 현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사회적 분위기는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르네상스 시대에 외과 의사들이 미용수술(Beauty surgery)에 대해서 언급을 하기 시작했으며, 19세기 초반에 이르러서 용모에 관련한 일체의 수술을 성형수술이라고 하였다. 이 용어는 1798년 피에르 조세프 드소(1744~1795)가 기형을 교정하고 기능의 결손을 고치는 수술에 대한 명칭으로 성형수술(Plastic surgery)이란 표현을 제안했다. 그 후, 성형이라는 용어는 카를 페르디난도 폰 그래페(1787~1849)가 코 재건을 논의한 자신의 논문을 비 성형술(1818)로 이름붙인 이후 일반화되었다.
이처럼, 인간의 외모에 대한 집착은 현대에 와서 다양한 분야에 이르기까지 고르게 발전되어 왔다. 성형 수술이 영화의 중요한 주제로 작용한 2002년에 개봉한 한국영화 <재밌는 영화(Fun Movie)>를 살펴보자. 2002년 한ㆍ일 월드컵 공동개최를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서 일본의 극우세력인 천군파는 월드컵 공동개최를 방해하는 사건을 계획한다. 혹독한 훈련을 거쳐서 선발된 천군파의 지휘관은 무라카미와 냉정한 저격수 하나코. 그들은 한일 월드컵 방해공작을 펴기 위해 서울에 파견된다. 하지만 하나코는 천군파의 핵심 요원인데 한국에 침투하려고 계획 중이었지만, 이미 한국의 KP팀들은 하나코의 얼굴과 신상정보에 대해서 알고 있는 상태다. 하나코는 자신의 얼굴을 감추기 위한 목적으로 성형수술을 한다. 영화에서는 하나코의 역할로 처음에 박경림이 등장하였다가 성형 수술 후 김정은으로 얼굴이 바뀐다. <재밌는 영화>에서 성형수술의 효과가 지나치게 극단적으로 묘사하긴 했지만, 이런 묘사가 <재밌는 영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에 ‘델머 데이브스(Delmer Daves)’ 감독의 <다크 패시지(Dark Passage>(1947)에서 주인공이 성형 수술을 한 장면이 나왔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 빈센트(험프리 보가트)는 부인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게 되었고 종신형을 선고받게 된다. 그는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고자 감옥을 탈옥하게 되는데 자신의 얼굴이 많이 알려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성형수술을 한다. <재밌는 영화>와 <다크 패시지>가 틀린 점은<다크 패시지>에서는 수술하기 이전의 장면들이 빈센트의 시선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가 사랑하는 예술가(로런 버콜)의 아파트에서 깨어나는 순간에 최초로 보게 된다. 즉, 관객들은 성형수술하기 전 빈센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형수술을 통해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가 있다.
지금부터 얘기하는 것은 추론적인 가설에 해당되는데 영화 속에서 빈센트가 결백하고 성형수술이 결백을 증명할 수 있는 역할을 했다면 만약에, ‘진짜 범죄자’가 자신의 모습을 위장해서 자신이 범죄자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목적으로 성형수술이 악용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재밌는 영화>로 관심을 집중하면, 만약에 이 영화에서 성형외과 의사가 하나코(박경림)의 성형수술 하기 전의 모습과 성형수술 후의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했다면 이 영화에서 김정은의 모습으로 변한 하나코가 성형외과 의사에게 불만을 드러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실에서 의사가 환자들의 성형수술 전후 모습을 사진으로 촬영했던 사람이 있었을까? 역사적으로 그런 사람이 존재했었는데, 시카고에 살았던 의사 맥스 소렉(Max Thorek, 1880~1960)이란 사람이다. 소렉은 사진작가이면서 성형외과 의사였던 것이다. 소렉은 환자가 ‘성형수술 전후’에 바뀐 자신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을 삼기 위해서 사진을 이용하였는데 이 부분에서 흥미를 끄는 것은 <재밌는 영화>에서는 김정은이 자신의 바뀐 모습에 불만을 토로하지만 소렉의 경우는 환자들이 바뀐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 만족감을 느끼고 동시에 행복해 보였다는 점이다. ‘성형수술 전후 사진’은 환자의 외모를 바꾸는 기능을 하면서 동시에 환자의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이미지 기록사진인 것이다.11)
아울러, 성형 수술 후 환자들이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성형외과 의사의 입장에서도 수술을 하는 목적이 환자와 똑같이 ‘행복’을 언급하였다는 것인데 이런 사고는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주장한 공리주의적 행복 개념이다. 그것은, 개인의 자율권을 정의 하면서 행복을 포함시켰는데, 인간은 세계 안에서 행동하기 때문에 스스로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자율성은 성형외과가 기틀을 잡는데 중심적인 원칙으로 자리 잡았다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다.12) 성형수술의 가장 중요한 목적인 행복의 추구는 스스로를 변형시킬 수 있는 개인의 자율권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토머스 제퍼슨(Thomas Jefferson, 1743~1826)이 자율적 시민의 이상적 목표를 언급한 계몽주의적 목록에 행복을 추구를 포함했던 사실과 함께, 근대 서구만의 고유한 관념이었으며 19세기 후반 성형외과 의사가 환자들의 불행을 치료해줄 수 있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생겨났던 것이다.13)
또한, 엘리자베스 모건(Elizabeth Morgan)에 의하면 다음과 같은 예 즉, 얼굴이 귀여운 소녀는 자신의 귀를 수술하기 전에는 불안한 표정을 보였지만 수술 후에는 그녀의 귀만 고친 것이 아니라, 환자의 안정된 성격을 고친 것과 같은 착각을 주도록 촬영했다는 것이다. ‘성형수술 전후’ 사진이 환자들에게 자신의 바뀐 모습에 대해서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환자의 성격까지도 바꿔 준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성형수술 전후’ 사진이 환자의 달라진 신체를 증명하는 것과 동시에 환자의 개조된 정신 상태를 묘사하는데 있어서 의사가 개입한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성형외과 의사를 예술가로서의 위상을 부여해주는 추가된 증거이다.14)
맥스 소렉(Max Thorek, 1880~1960)의 성형수술 사진,suspense.
4. 디지털 수술과 육체 예술
현대사회에서 몸15)은 모든 영역의 생산과 소비의 중심에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에 의하면 자본주의의 ‘소비사회’16) 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호는 몸이라고 한다. 일상생활 속에서 몸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소비되며, 사회적 담론을 형성한다. 그렇다면 몸의 담론은 사회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형성되었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 현대의 이론가들이 생각하는 몸의 사회학적 관심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거시적인 의미로서의 문화는 몸을 통해 구현된다. 우리는 몸이란 단어에서 문화 참여라는 상징과 의미를 통해 일상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들은 몸을 다양한 의미를 통해 기존의 담론에 저항하거나 순응하기도 한다. 이러한 인식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819~1868)에 의해서 나타난다. 그는 초기 저서에서 17, 18세기 사상의 역사적인 변화 즉, 노동자들을 최대한 이용하기 위해서 신체 훈련을 포함하여 교육, 감옥 제도와 같은 통제의 체제 속에서 신체를 유순하게 만드는 현상에 대하여 설명한다. 또한, 그는 인간의 몸을 ‘유순한 몸’과 ‘유용한 몸’으로 구분하였는데, 우선 ‘유순한 몸’이란 문화적 생활규범에 의해 규제된 몸을 의미한다. 일상생활에서의 규칙, 예절, 행동 등으로 인하여 우리들의 몸은 조직과 규율 속에서 훈련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용한 몸’을 단순하게 언급한다면 사회적으로 적응된 몸을 의미한다. 즉, 푸코는 여성의 신체를 예를 들어 설명하면서 자신의 몸을 축소시키는 방법을 통해서 이상적인 모습이 된 상태를 의미한다.17)
페미니스트적인 사고에서는 여성들의 신체가 사회적인 훈육에 복종하도록 유도하였으며, 여성들 스스로가 자신의 육체를 유순하게 만들어가면서 사회적인 규범에 순응하도록 강요하는 사회적 현상을 지적한 부분에 대하여 깊이 공감하였다. 아래에 언급하는 생트 오를랑(Saint Orlan, 1947~)이란 작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불평등과 남성주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고정된 여성의 신체 미와 정체성에 대한 문제의 시발점에서 자신의 작업을 시작한다.
프랑스 출신의 예술가 오를랑은 자신의 얼굴을 화가들이 사용하는 캠퍼스처럼 활용하여 성형 수술을 통해 예술 작업을 하는 여성작가다. 그녀가 자신의 얼굴을 수술할 아이디어를 성형외과 의사들에게 제공하면 의사들은 수술을 통해서 ‘육체 예술(Carnal Art)’을 하는 것이다. 1990년 5월 이후 10년간 ‘성 오를랑의 환생’이란 제목으로 아홉 차례에 걸친 성형수술로 자신의 얼굴을 미술사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남자 예술가들이 규정한 5가지 여성적 아름다움의 기준에 맞추어서 바꿔나가기 시작했다. 즉, “이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서, 턱은 보티첼리의 〈비너스〉에서, 눈은 퐁텐브로 파의 〈다이아나〉에서, 목은 구스타프 모로의 〈유로파〉에서, 코는 장 레옹 제롬의 〈프시케〉에서 이미지”18)를 옮겨왔다.
이렇게 미술사에서 선택된 미의 이상적 특징들로 조합해서 오를랑의 얼굴은 합성 신체가 되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명화 속에 등장하는 미인들의 가장 좋은 부분만을 본 떠서
오를랑이 자신의 성형수술부위를 설명해주는 사진
성형 수술을 했기 때문에 오를랑은 완벽에 가까운 이상적인 얼굴이 되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녀의 이런 행위는 이상적인 여성미의 기준이 남성들의 시각에 의해서 규정되었으며, 그런 규정에 부합하는 시도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노력이라는 것과 함께, 객관적인 이상미를 인공적인 방법을 동원하여 만들고자 한다는 것이 얼마나 우스운 결과로 보일 수 있다는 사실을 관람자에게 인식시킨다. 결국, 자본의 논리와 함께 남성 중심적 시각과 결탁한 여성미의 기준을 거부하는 시도로 보여 진다.
현대미술에 있어서 성형수술을 예술적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상당히 기이한 일이다. 오를랑은 예술이라는 미명 하에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해체한 것이다. 그녀의 일반적인 방법에서 벗어난 시도는 관람객들의 흥미를 만족시켰다. 이런 시도는 오를랑이 현재 아름다움에 대한 담론과, 개인이 아름다움을 성취하기 위해 받아들이는 성형수술에 대한 시도에 대한 담론을 어느 정도 이끌어낸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를랑의 육체 예술은 우리 시대의 기술로 형상화된 것이다. 오를랑은 성형수술은 1993년 이후부터는 실제 수술을 하지 않고 ‘디지털 수술’을 통해서 우리의 몸이 변형되고 부분적으로 바뀌는 현재의 기술적, 의학적으로 발달된 문명을 찬미하고 있다. 그녀는 기독교주의와, 몸은 신성하다는 생각에 대해 표면적으로 대항하고 있다. 그녀는 현대의 기술이 발달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타고난 자기 자신의 모습에 순응하는 것을 원시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고, 아울러 자연은 복종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오를랑은 그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그녀의 작품을 ‘페미니즘의 이상(理想)’으로 생각한다.
그렇다면 오를랑은 왜 이런 작품을 시도한 것인가? 새로운 시대에 몸을 변형하는 기술을 믿기 때문인가? 아니면 이 시대의 기술을 통해 이상적 아름다움에 대한 유혹에 저항하는 것인가? 오를랑은 두 가지를 모두 염두에 둔 것 같다. 오를랑의 의도가 유쾌하지 않은 것은 그녀가 자신의 신체를 이용한 괴상한 작품을 통해 유명인의 자리를 얻으려는 그녀의 열망에 있다. 그것은, 그녀 자신이 환자와, 관찰자(observer)의 역할이 되는 성형수술을 시도하는 것 자체에 대해서 의문점을 제기하려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부분은 그녀의 작업 의도를 과연 순수한 목적에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는가에 있다. 왜냐하면, 그녀의 행위 모든 것이 돈과 대중성에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중매체의 산물이며 그녀 자신이 스스로를 상업적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작품을 이루는 모든 것들 즉, 사진, 비디
오를랑,「자기교배」, 콜롬버스 발견 이전,1998, 디지털
이미지에 합성한 시바크롬인화, 1668,116cm.
오, 의상은 수집가들이 많은 돈을 내고 사간다. 심지어 그녀는 수술하는 동안 “그녀의 몸에서 나온 잘린 살점과 지방세포를 부패방지 처리한 후 작품으로 판매한다.”19) 그녀의 의상은 세계적으로 알려진 디자이너 -이세이 미야케, 파코라반- 에 의해 모두 기획되었고, 일곱 번의 수술이 끝나고 나면 광고회사는 그녀에게 오를랑을 대신할 새 이름을 붙일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중요한 논점은 오를랑이 그녀의 작품을 판매하는 것에 회의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20)
아울러 오를랑의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그녀가 성형 수술을 한 부위가 신체 중에서 얼굴에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얼굴을 성형 수술한 이유가 이상화된 아름다운 얼굴을 얻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다. 그 이유는 첫 번째, 미술사에 등장하는 다른 사람의 얼굴을 도용한 이유를 “인물의 이면에 존재하는 역사이지 인물의 얼굴이 아니다”21)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두 번째는, 얼굴의 성형을 통해서 새로운 ‘페르소나(persona)21)’를 탄생시키려고 하였다. 방법론적으로는 “새로운 얼굴이 증빙된 신분 증명서류들을 승인해 줄 것을 정부에 청원”21)하려고 하였다. 이런 행위는 법 체제에 도전하고 완전한 정체성의 변화를 시도하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진다.
그리고, 오를랑의 ‘합성 신체’에 대해서 살펴보면, 이 개념은 미술사와 성형수술의 역사에서 낯설지 않은 주제다.『회화론』을 쓴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의 저서를 보면 완벽하고 이상적인 미인이 탄생한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 화가 제욱시스는 크로톤 섬의 헤라 신전을 장식할 ‘미인(트로이의 헬레네)’상을 주문받지만 절세미인의 모델을 찾을 수 없어서 다섯 명의 아름다운 미녀를 고른 다음 이들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들을 조합해서 완벽한 인조 미인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판단 기준을 가지고 다섯 명의 처녀들의 각 부분(팔, 목, 유방)을 도용했거나 그렇지 않은가에 있다.
또한, 이런 효과는 기술적인 방법에 있어서 영화와 사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의 경우는 ‘몽타주(montage)’ 효과를 사용하여 각각 다른 사람들의 신체 부위를 찍어서 한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게 할 수 있었으며, 사진의 경우 마찬가지로 몽타주 효과가 적용된다. 하지만 영화와 사진에서 몽타주 효과를 사용할 때는 꾸며낸 상황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주기 위한 목적에서 출발한다.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볼 때 제욱시스가 만들고자 했던 미인상과는 차이를 드러낸다. 즉, 다른 사람인체의 각 부분을 조합해서 독립적인 한 사람의 모습으로 보이게 하려는 것이 다른 것이다.
한편, 오를랑의 작품에서 사진의 역할을 살펴보면, 자신의 수술과정을 ‘기록(Document)’하는 역할을 하고 수술 후의 모습과 수술 전의 모습을 비교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해준다. 소렉의 경우 환자의 모습이 ‘성형수술 전후’ 에 바뀐 자신의 달라진 외모를 비교하기 위한 기준으로 삼기 위한 목적으로 사진을 찍은 것과는 다르게 오를랑은 그녀의 달라진 외모를 기록한 사진이 예술작품으로 기능을 하며 관객들은 그녀의 변신한 모습을 사진을 통해서 재확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제기할 것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긴밀한 연구를 했던 19세기의 과학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신체 구조를 바꿀 수 없다 -예외적인 경우는 제외하고- 는 일반적인 사실을 인정했다는 것을 염두에 둘 때, 성형수술을 진정한 의학으로 생각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고칠 수 없는 것을 고치려는 행위는 개인의 실체를 위장하는 것이다. “자신을 바꾸면 바꿀수록 나의 가치, 나의 진정성 그리고 당신의 비진정성에 대해 점점 더 잘 알게 된다. 당신은 진짜(real thing)처럼 행세하는 복사물에 지나지 않는다.”22)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계몽주의 정신에 입각하여 성형 수술을 통해서 자신을 개조하고 행복을 추구하려는 사고와 역행하는 것이며 또한, 오를랑이 남성 중심적인 외모에서 일탈을 시도했다고 해서 이 시대 여성의 지위와 신체가 해방되었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몸은 우리시대 하나의 우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가면서
서양미술은 2천년의 역사를 거쳐 인체를 둘러싼 수많은 담론들을 생산해 내었고, 이는 현대에 와서 예술, 문화, 해부학, 매스미디어 등 우리 삶의 모든 분야 속에서 다시 조합되고 반복되며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인체는 조각되고 그려지는 감상의 대상이 되었다. 그 이유는 인체가 조형예술의 기본적인 모태가 되면서 사실적 묘사, 응용, 변형을 거치면서 표현범위와 영역을 계속 확장하기 때문인 것이다.
지금까지 인체에 대한 문제는 인체 미술에 관련한 역사와 함께 인류의 역사가 공존하면서 지속적인 노력의 결과로 이루어져서 조형 예술의 한 분야를 형성하고 있다. 인체는 수많은 예술가들에 의해서 끊임없이 연구의 대상이 되어왔다. 특히, 서양 문명사에서 인체는 예술가들에게는 한번씩 대상화된 모델이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이 글에서는 서양미술사 중에서 르네상스 시대를 중심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hi, 1452~1519)’의 인체비례에 관한 연구와 인체 해부학과 함께, 같은 시기에 맥스 소렉(Max Thorek, 1880~1960)을 중심으로 한 성형수술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그 후 현대에서 일반인들에게 미용을 목적으로 사용했던 성형수술은 생트 오를랑(Saint Orlan, 1947~)에 의해서 ‘육체 예술’로 전환되는 과정에 있어서 인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살펴보았다.
아울러, 오를랑의 작품은 인체를 바라보는 관람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이상적인 인체미가 객관적인 기준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이 판단이 도입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작가의 신체가 예술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가와 대상과의 관계에서 작가 자신이 작품의 모델이 된 것은 오를랑이 처음은 아니다.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의 경우가 그러한데, 다른 점이 있다면 신디 셔먼과 오를랑이 똑같이 자신의 정체성이 유동적으로 변화는 모습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방법을 선택했다는데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점으로 들 수 있는 것은 신디 셔먼이 의상과, 조명, 분장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변형시켜 타인화시키는 간접적인 방법을 선택했다면, 오를랑은 자신의 신체에 직접 성형 수술을 시도함으로서 자신의 이미지를 해체시키고 바꿔버렸다는 것이다.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예술작품을 만드는 데 두 가지 상반된 동기가 있다고 하였다. 첫 번째는 단순히 존재하기 위해서 만들어지는 경우와 두 번째는, 남에게 감상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을 들 수 있다. 이런 행위를 하는 직접적인 이유는 예술가들이 자신의 작업에서 심미적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즉, 표현 행위에서 즐거움이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인데, 표현의 내용이나 양식은 시대와 사회, 사람에 따라 달라지더라도 예술가들의 창조 활동은 '자기 충족적(Self-contained)' 욕구에 전념할 때 자신의 역할을 가장 효율적으로 수행할 것이다. 그렇다면, 두 번째의 경우에 해당되는 사항을 오를랑의 작품과 비교해서 얘기해 볼 때 여전히 문제가 되는 것은, 관람자가 무엇 때문에 어떤 목적을 가지고 성형수술을 하는 장면을 감상하는가에 있다. 단적으로 얘기를 한다면 그런 행위를 지켜보는 관람자는 예술 작품이라고 느끼고 감상할 수 있을까? 현대미술은 다양한 포용력을 앞세워 미술의 제도권 하에서 작가들에게 많은 자유를 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예술작품의 감상은 궁극적으로 주관적인 성격이 강하다. 좀더 집적적인 이유를 찾아보면, 진정한 이상적 주관이 형성되기까지는 문화라고 하는 거대한 유형, 무형의 교육적인 뒷받침을 통해서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련의 요소들이 수용됨으로써 진정한 감상에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감상자의 주관적 시각은 교육, 지식, 민족 성, 자연조건 등에서 비롯되어지는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의미를 되새기면서 오를랑의 작품을 볼 때, 객관적인 당위성을 획득하기 어렵고 작품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비평가들의 입장이 조금씩 다른 이유는, 감상자들이 사회적인 체제에서 공적인 교육을 통해서 습득한 것 즉, 이상적인 미에 대해서 배우고 학습해서 알고 있는 객관적인 사실을 순식간에 전복하려는 시도 때문에 일어난다. 이 질문의 화살은 다시 작가 자신에게 돌아온다. 그것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이상적인 인체 미는 잘못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아름다운 인체, 이상적인 미에 대한 지식은 누가 만들었다는 말인가? 결국, 오를랑이 자신의 작품을 감상자에게 이해시키려면 작가와 감상자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이상적인 인체 미’에 대한 논의와 인식을 거친 후에, 작품이 감상자에 의해서 어떻게 평가되는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 석 원(金 錫 原, 1966∼)
이력 사항
ㆍ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사진학과 및 동대학원 사진학과 졸업
ㆍ동국대학교 영상대학원 영화영상학과 박사과정 수료예정
ㆍ석사학위 논문 : 「여인의 방」
ㆍ학술 논문 : 「다큐먼트와 다큐멘터리 사진의 재고」
「관찰자의 시점과 카메라 옵스큐라와 카메라」
「스테레오스코프(Stereoscope)와 키네토스코프(Kinetoscope)의
영상이미지에 대한 연구」
「사마리아(Samaria)와 소녀(少女)」
「베르메르와 드가에 나타난 사진적 시각에 관한 연구」
ㆍ저서 : 『영화가 사랑한 사진』, 아트북스, 2005. 11.
ㆍ기타경력 : 한국사진학회ㆍ한국다큐멘타리사진학회ㆍ영화학회ㆍ한국기술학회ㆍ영 상 비평가 모임 회원, 경기문화재단 지원사업 심층모니터닝 그룹 회원
ㆍ현재 : 공주영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