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선수로서 유일하게 본선 8강에 오른 최성원 선수는 이번 대회 가장 드라마틱한 경기들을 펼치며 전세계 당구팬들의 기억에 확실하게 자리잡았습니다. 최성원 선수의 8강 상대는 최근 무서운 경기력을 보이고 있는 에디 멕스 선수였습니다. 에디 멕스 선수는 몇년전 당뇨병으로 한동안 당구를 치지 못하다가 몸이 회복되어 다시 큐를 잡았습니다. 그리고는 공격 일변도의 당구 스타일에 큰 변화를 주었습니다. 상대방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바탕으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디펜스를 앞세워 철저히 이기는 경기를 하는 선수로 탈바꿈 하였습니다. 그 결과 전세계에서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운 선수가 되었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 이미 최고의 레벨에 올라있는 최성원 선수는 난구풀이에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기에 이 두 선수의 경기는 창과 방패의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되었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생각지 못한 변수가 등장하였습니다. 바로 테이블 컨디션이었습니다. 늘 최상의 컨디션을 자랑하던 AGIPI 경기장의 테이블이 그날 따라 유독 상태가 안좋았습니다. 테이블 수평이 잘 안맞은 부분도 있었고, 또 경기가 길어짐에 따라 공의 구름이 현격하게 안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경기 초반은 에디 멕스 선수가 압도하였습니다. 최성원 선수는 시작부터 긴장을 많이 한 탓에 아직 제대로 실력발휘를 못하고 있는 상태였고, 멕스 선수는 상대방의 빈틈을 놓치지 않고 점수차를 16점까지 벌려놓았습니다. 운 또한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간발의 차로 득점에 실패하거나 힘이 모자라 빨간공 바로 앞에서 멈추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최성원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중반 이후에 조금씩 점수를 좁혀가던 최성원 선수는 45:36으로 9점 뒤지고 있던 36이닝째 4득점으로 45:40을 만들었고, 멕스 선수가 득점에 실패한 틈을 타 다음 이닝에서 3점을 추가득점하였습니다(45:43). 다음 이닝에서 멕스 선수는 4득점을 하며 매치포인트를 만들었습니다. 멕스 선수의 마지막 포지션은 그다지 어렵지 않은 뒤로 돌려치기. 하지만 마지막 득점은 역시나 쉽지 않았습니다. 멕스 선수는 간발의 차로 득점에 실패하였고, 벼랑끝에서 마지막 기회를 잡은 최성원 선수는 침착하게 6득점을 하며 49:49 동점으로 역시나 매치포인트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120분동안 지루하던 경기는 한순간에 반전되었습니다. 최성원 선수의 마지막 공배치은 길게치기 포지션이었습니다. 큐볼이 멀어 브릿지가 힘든 위치였고, 익스텐션을 장착하는 동안 40초의 시간이 거의 다 흘러버렸습니다. 최성원 선수는 시간에 쫒겨 급하게 샷을 하였고 안타깝게도 1적구를 너무 얇게 맞아 득점에 실패하였습니다. 관중들은 다시 멕스 선수를 응원하였지만 멕스 선수는 이번에도 뒤돌려치기 포지션을 1mm 차이로 짧게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이제 두 선수 모두 극도로 긴장을 한 상태가 되었고 그 뒤로 두번의 찬스를 더 날렸습니다. 멕스 선수는 회심의 제각돌리기에서 마지막 남은 타임아웃까지 사용하며 신중하게 샷을 하였지만 이번에는 간발의 차로 길게 빠트렸습니다. 최성원 선수에게도 역시 제각돌리기 포지션이 나왔고, 침착하게 마무리하며 극적인 승리를 하였습니다.
나머지 세 경기에서도 예상치 못한 결과들이 나왔습니다. 프랑스 리그의 같은 AGIPI팀 소속인 프레드릭 코드롱 선수와 마르코 자네티 선수의 경기에서는 자네티 선수가 22이닝 만에 코드롱 선수를 제압하였고, 무서운 기세로 주니어 그룹에서 8강까지 올라온 팔라존 선수는 프랑스 챔피언 뷰리 선수에게 42:50으로 지고 말았습니다. 지난 3번의 AGIPI 대회에서 두번의 우승과 한번의 준우승을 기록한 야스퍼스 선수는 그리스의 필리포스 카시도 코스타스 선수에게 패하며 4년연속 결승 진출의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필리포스 선수는 경기 내내 야스퍼스 선수에게 뒤지고 있다가 29:39로 10점이나 뒤지고 있던 25이닝에서 무려 21점의 하이런을 기록하며 관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습니다.
다음날 벌어진 최성원 선수의 4강 경기는 더욱 극적이었습니다. 최성원 선수는 4강전에서도 불안한 출발을 보인 반면 필리포스 선수는 첫 3이닝에 15점을 득점하며 무서운 득점행진을 시작하였습니다. 경기 중반까지 최성원 선수의 컨디션은 살아나지 않았고 점수차는 16점까지 벌어졌습니다. 최성원 선수는 이번에도 조금씩 점수차를 좁히며 끈질기게 따라붙었고 22이닝째 5득점을 하며 처음으로 역전을 하였습니다(41:40). 이때부터 박빙의 승부가 연출되었습니다. 최성원 선수는 29이닝째 49점에 먼저 도달하였지만 마지막 1점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공격권을 내줬습니다. 최성원 선수가 매치포인트를 연속 4번 놓치는 동안 필리포스 선수도 결국 49점 동점을 만들었고, 마지막 회심의 빗겨치기를 시도했지만, 두시간의 경기로 짧아진 테이블은 야속하게도 필리포스에게 득점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최성원 선수에게 주어진 포지션은 짧은 뒤돌려치기. 하지만 수구가 쿠션에 거의 붙어있어 두께 조절이 쉽지 않았습니다. 아니나다를까, 겨냥했던 것보다 얇게 맞아 2적구의 앞쪽으로 길게 빠져버렸습니다. 그런데 테이블을 한바퀴 돌아나온 수구는 5쿠션으로 정확하게 2적구를 향해 돌진했고, 2시간에 걸친 긴 승부는 마지막 행운의 득점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저녁때 벌어진 다른 4강전 경기에서는 뷰리 선수가 자네티 선수를 24이닝만에 꺾고 결승에 진출하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뷰리선수 또한 프랑스 리그 AGIPI팀의 선수인데, 3번 선수(뷰리)가 2번 선수(자네티)를, 2번 선수(자네티)가 1번 선수(코드롱)를 이기는 진풍경이 연출되었습니다.
대망의 결승전은 일요일 오후 9시에 시작되었습니다. 최성원 선수는 래그에서 이겨 초구를 잡았고, 첫 이닝에 12점 하이런을 기록하며 뷰리 선수를 상대로 확실하게 기선을 제압하였습니다. 뷰리 선수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고 첫 이닝은 무득점으로 넘겼습니다. 하지만 최성원 선수는 초반 좋은 흐름을 오래 끌고가지 못하고 조금씩 추격을 허용했습니다. 결국 21이닝째 36:35로 역전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 뷰리 선수는 흐름을 타기 시작했고 먼저 40점 고지를 넘어섰습니다. 뷰리 선수는 26이닝째 48점까지 올라섰고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뷰리 선수르 실수로 다시 공격권이 최성원 선수에게 넘어왔고, 최성원 선수는 곧바로 6점을 받아치며 48:48 동점을 만들었습니다. 최성원 선수는 49점째 득점을 키스로 실패하며 뷰리 선수에게 다시 찬스를 주었지만, 뷰리 선수 또한 긴장을 한 탓인지 두께조절에 실패하여 뒤로돌려치기를 길게 빠트렸습니다. 28이닝째, 최성원 선수는 제각돌리기 대회전으로 49점 매치포인트를 만들었고, 적절한 힘조절로 다시한번 제각돌리기 대회전을 만든 최성원 선수는 마지막 챔피언 포인트를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4개월에 걸친 대장정의 마침표를 우승으로 장식했습니다.
운도 많이 따라줬지만 무엇보다 최성원 선수의 승부 능력과 집중력이 돋보였던 대회였습니다. 최성원 선수 개인적으로는 당구 인생의 가장 큰 업적이 되었고, 8강부터의 극적인 모든 경기가 유럽 전역에 생중계되면서 전세계 당구팬들에게 최성원 이름 석자를 확실하게 각인시켰습니다. 또한 한국 당구의 위상을 다시 한번 전세계에 알린 좋은 계기가 되었습니다.
세계 최고 선수들의 수준높은 경기들이 가득했던 2011년 AGIPI Billiard Masters는 이렇게 한국의 최성원 선수의 우승으로 흐뭇하게 마무리 되었고, 내년 2012년 대회도 올해와 같은 포맷으로 11월에 첫 예선이 시작됩니다. 내년에는 더 많은 한국 선수들이 본선에 진출하며 좋은 성적을 올려주기를 기대해 봅니다.
* 사진은 곧 업데이트 하겠습니다.
Posted by 매드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