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크 신앙교육서 60문
제 60문: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義)로워집니까?
답: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해 무겁게 범죄했다고 또 그 중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고 고발하지만 또 내가 항상 모든 악을 향하여 기울이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아무런 공로없이 은혜로 완전한 보상, 그리스도의 義와 거룩성을 나에게 선사하시고 마치 내가 죄를 한번도 범하지 않았던 것 처럼, 또 항상 스스로 순종했던 것 처럼 즉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순종하신 것처럼 순종한 것으로 여기심을 통해서 입니다. 만일 내가 믿는 마음으로 그의 구원사역을 받아 들이면 하나님은 그와 같이 나를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
-Quomodo iustus es coram Deo?
-Sola fide in Iesum Christum: adeo ut, licet me mea conscientia accuset, adversus omnia mandata Dei graviter peccaverim, nec ullum eorum seruaverim adhaec etiamnum ad omne malum propensus sim: nihilominus tamen, (modo hec beneficia vera animi 랴여챰 amplectar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나 예수께서 내게 성령을 보내심
나는 예수를 붙잡음
(참고성경구절)
사 45:22-24; 롬 3:23-24, 28; 롬 5:1-2; 빌 3:8-9; 고후 5:21
(해설) 以信稱義論(이신칭의론)
제 60문은 칭의론의 핵심 부분을 다루고 있다. 위의 도식(圖式)은 죄인이 의인이 되는데 일정한 법적인 절차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 칭의론은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이 전제된다. 말하자면 죄인을 구원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 전제되는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라는 이신칭의(以信稱義) 사상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어떤 종교에도 이런 진리가 없다. 이것을 정확하게 모르면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다. 이렇게 중요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간과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 교회가 그 정체성을 상실한 원인 중에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이 중요한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샤마니즘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들의 관심이 현세에서의 만사형통 또는 번영을 추구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칭의론을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무속 신앙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칭의론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지 않는다. 이신칭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변화시키는 자기의 구원의 장치인 것이다.
巫俗 신앙적으로 칭의론을 이해하는 경우 내가 믿음으로 모든 죄를 주님께 맡기었으니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도 구원은 확보해 놓았다. 따라서 인생을 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즐기자는 식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巫俗 신자가 돈을 주고 무당을 사서 자기의 모든 종교 생활도 그에게 일임하고 자기는 자기 마음대로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 버리는 것과 유사하다. 여기에는 신자 당사자와 하나님 사이에 인격적인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 여기에는 숙명론적인 사고방식이 작용한다. 한국교회가 사회윤리적인 면에서 실패한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칭의론을 간과한 데 있다. 칭의론을 간과하게 되면 기독교는 토속종교에 동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칭의론은 서로 원수되었던 두 인격이(하나님과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화해되어 새로운 인격적인 관계를 수립하고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생명을 받아 그 실존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해가는 삶 전체를 포함한다. 따라서 칭의론은 인간이 참으로 행복하게 되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러면 이 칭의 사건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신칭의론(以信稱義論)는 ‘인간이 구원을 얻을 때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다’는 시각으로 보면 이 가르침을 매우 제한시키게 된다. 물론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교리를 관계적인 시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범신론 또는 이원론적인 시각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범신론적 내지 이원론적인 시각으로 이 가르침을 해석했다.
I. 칭의사건의 과정
1. 흔히 사람들은 이 사건을 법정사건과 연관시켜 이해한다.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고(시 50:6; 사 1:18) 피고는 하나님을 거역한 불순종의 아들들이던 죄인들이다(삼하 12:7). 원고는 그 사람의 양심이다(롬 2:15; 요 5:45). 죄인의 양심이 원고가 될 수 있는 전제조건은 그가 율법을 통해 눈을 떠서 죄인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양심의 고소내용은 “나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해 무겁게 범죄했고 이 계명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또 나는 항상 모든 악한 것을 범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이다(롬 3:23; 약 2:10; 롬 7:14,21-23). 증인은 인간의 범죄를 통해 침해를 받은 하나님의 계명과 자신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이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심문을 당할 때 피고된 죄인은 자신을 의롭게 여길 수 없고 잘못했다고 못한다(욥 9:23; 눅 18:13).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의하면 죄인은 영원한 죽음으로 정죄를 받았다. 즉 하나님의 생명을 전혀 맛보지 못하는 영원한 사망의 상태속에서 머물도록 정죄를 받았다(겔 18:20). 이 사망을 맛보는 인간은 지상에서는 죽은 행실(온갖 범죄)을 하다가 죽은 뒤에는 영원한 지옥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와 더불어 인간은 그렇게 되도록 선고를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하나의 ‘구원의 장치’(義)를 마련하시고 그것으로 인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한시는 것이 이신칭의론의 핵심이다.
2. 바로 이 구원의 장치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구원의 장치는 우리의 보증인으로서 자기를 담보하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셨다. 이때 그는 자기의 완전한 義, 거룩함 그리고 완전한 보상(Genugtuung)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 그의 구원사역의 중심되는 내용은 이 ‘보상’(만족성)으로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지고 있는 빚을 모두 청산하고 율법을 완전히 이루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되 우리 범죄에 대한 형벌을 자신이 당하시므로 모든 빚을 지불하신 것이다.(롬 5:19; 고후 5:17; 벧전 2:22-24; 요 17:1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pro nobis)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빌 2:5-) 성부 하나님에 의해 수동적으로 보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었다.
3. 무죄선고: 우리 인간의 범한 죄와 죄책은 너무나 커서 인간 편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할 수 없다. 하나님이 심판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우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마치 우리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는 듯이 여기신 것이다. 인간 편에서 아무런 공로도 없이 무죄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순전히 은혜로 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공로를 아버지께 내어 보이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시는 한편 아버지 하나님은 자기의 자비하심에 호소하시는 그리스도 곧 우리의 보증인을 고려하여 우리를 무죄로 선고하시는 것이다.(롬 3:24; 고후 5:19-20; 롬 5:20; 사 1;18).
4. 무죄선고를 우리 마음에 선포하시고 수행하시는 이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은혜받은 죄인들의 마음속에 칭의의 확신을 주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었슴과 우리는 저주받은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슴을 증거하시면서 인치신다(롬 8:15-16).
II. 칭의의 은혜는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나?
1. 하나님은 우리 죄인이 마치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는 듯이 우리를 의롭게 보시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순종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이루신 義를 우리에게 전가(轉嫁)시키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 편에서 아무런 공로도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신 것을 가리켜 은혜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누구에게든지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믿음으로 이 은혜를 받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손을 펴게 만드시면 이 손으로 이 그리스도의 義를 받게 되는데 이 義를 지닌자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칭하는 것이다. 이 칭의와 더불어 인간은 하나님의 백성 또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성령이 그의 마음을 추진하여 성령에 따라 살게 만드시는 것이다.
이 칭의의 은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믿고 회개하는 자를 위한 것이다. 이 칭의를 내가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내게도 적용된다(롬 10:10; 3:26).
2. 칭의를 받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⑴ 그는 그리스도의 보상의 은혜가 죄인인 자기에게 꼭 필요하고 또 그것이 완전함을 인정한다(행 4:12; 히 7:25). 이런 사람은 인간의 무능과 실존을 잘 이해한다.
⑵ 그는 하나님 앞에서 효력이 있는 義에 주리고 목말라한다(마 5:6). 말하자면 그는 실제적인 인간이다. 허황한 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막연하게 인생을 사는 자는 허황하게 살고 있다.
⑶ 그는 그리스도의 보상의 은혜를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다(사 53:4-5). 그는 죄인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피난처를 중요하게 여긴다.
⑷ 그는 이렇게 의롭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자랑한다(롬 8:31-34). 이와 더불어 그에게 참된 평안이 임하기 때문이다.
3. 칭의의 과정을 칼빈이 정립한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론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승귀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시고,
②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거나 성경공부를 하고 있던 내게 이 성령의 사역하면,
③ 내게 믿음이 발생하게 되는데(롬 10:17),
④ 이 믿음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예수를 향해 나아가 그를 꽉 붙잡는다.
⑤ 이와 더불어 나와 예수 사이에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진다.
⑥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예수와 연합된 나를 예수처럼 보시기 때문에 나를 의(義)롭다고 선언하신다.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믿음 죄인 설교, 성경
제 60문: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義)로워집니까?
답: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믿음을 통해서 입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해 무겁게 범죄했다고 또 그 중에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고 고발하지만 또 내가 항상 모든 악을 향하여 기울이지만 하나님께서 나의 아무런 공로없이 은혜로 완전한 보상, 그리스도의 義와 거룩성을 나에게 선사하시고 마치 내가 죄를 한번도 범하지 않았던 것 처럼, 또 항상 스스로 순종했던 것 처럼 즉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순종하신 것처럼 순종한 것으로 여기심을 통해서 입니다. 만일 내가 믿는 마음으로 그의 구원사역을 받아 들이면 하나님은 그와 같이 나를 의롭다고 말씀하십니다.
-Quomodo iustus es coram Deo?
-Sola fide in Iesum Christum: adeo ut, licet me mea conscientia accuset, adversus omnia mandata Dei graviter peccaverim, nec ullum eorum seruaverim adhaec etiamnum ad omne malum propensus sim: nihilominus tamen, (modo hec beneficia vera animi 랴여챰 amplectar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
나 예수께서 내게 성령을 보내심
나는 예수를 붙잡음
(참고성경구절)
사 45:22-24; 롬 3:23-24, 28; 롬 5:1-2; 빌 3:8-9; 고후 5:21
(해설) 以信稱義論(이신칭의론)
제 60문은 칭의론의 핵심 부분을 다루고 있다. 위의 도식(圖式)은 죄인이 의인이 되는데 일정한 법적인 절차가 필요함을 보여준다. 이 칭의론은 신론, 인간론, 기독론, 성령론이 전제된다. 말하자면 죄인을 구원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과 인간에 대한 지식이 전제되는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는다”라는 이신칭의(以信稱義) 사상은 기독교 복음의 핵심부분을 차지한다. 다른 어떤 종교에도 이런 진리가 없다. 이것을 정확하게 모르면 기독교인이라 할 수 없다. 이렇게 중요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한국교회가 간과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개신교 교회가 그 정체성을 상실한 원인 중에 가장 중요한 원인은 이 중요한 교리를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한국교회 목회자들이 샤마니즘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들의 관심이 현세에서의 만사형통 또는 번영을 추구하는데 급급했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칭의론을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무속 신앙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성경이 말하는 칭의론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지 않는다. 이신칭의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변화시키는 자기의 구원의 장치인 것이다.
巫俗 신앙적으로 칭의론을 이해하는 경우 내가 믿음으로 모든 죄를 주님께 맡기었으니 이제 내 마음대로 살아도 구원은 확보해 놓았다. 따라서 인생을 이 세상적인 방법으로 즐기자는 식으로 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巫俗 신자가 돈을 주고 무당을 사서 자기의 모든 종교 생활도 그에게 일임하고 자기는 자기 마음대로 육체의 정욕대로 살아 버리는 것과 유사하다. 여기에는 신자 당사자와 하나님 사이에 인격적인 아무런 관계가 없다. 또 여기에는 숙명론적인 사고방식이 작용한다. 한국교회가 사회윤리적인 면에서 실패한 원인을 여러 곳에서 찾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칭의론을 간과한 데 있다. 칭의론을 간과하게 되면 기독교는 토속종교에 동화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칭의론은 서로 원수되었던 두 인격이(하나님과 인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화해되어 새로운 인격적인 관계를 수립하고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생명을 받아 그 실존이 새로운 피조물로 변해가는 삶 전체를 포함한다. 따라서 칭의론은 인간이 참으로 행복하게 되는 길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그러면 이 칭의 사건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이신칭의론(以信稱義論)는 ‘인간이 구원을 얻을 때 행위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다’는 시각으로 보면 이 가르침을 매우 제한시키게 된다. 물론 이 말은 틀린 말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교리를 관계적인 시각으로 볼 것인가 아니면, 범신론 또는 이원론적인 시각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 교회는 범신론적 내지 이원론적인 시각으로 이 가르침을 해석했다.
I. 칭의사건의 과정
1. 흔히 사람들은 이 사건을 법정사건과 연관시켜 이해한다. 심판하시는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고(시 50:6; 사 1:18) 피고는 하나님을 거역한 불순종의 아들들이던 죄인들이다(삼하 12:7). 원고는 그 사람의 양심이다(롬 2:15; 요 5:45). 죄인의 양심이 원고가 될 수 있는 전제조건은 그가 율법을 통해 눈을 떠서 죄인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양심의 고소내용은 “나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에 대해 무겁게 범죄했고 이 계명을 한 번도 지키지 못했다. 또 나는 항상 모든 악한 것을 범하려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이다(롬 3:23; 약 2:10; 롬 7:14,21-23). 증인은 인간의 범죄를 통해 침해를 받은 하나님의 계명과 자신의 생각, 말 그리고 행동이다. 하나님의 법정에서 심문을 당할 때 피고된 죄인은 자신을 의롭게 여길 수 없고 잘못했다고 못한다(욥 9:23; 눅 18:13).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에 의하면 죄인은 영원한 죽음으로 정죄를 받았다. 즉 하나님의 생명을 전혀 맛보지 못하는 영원한 사망의 상태속에서 머물도록 정죄를 받았다(겔 18:20). 이 사망을 맛보는 인간은 지상에서는 죽은 행실(온갖 범죄)을 하다가 죽은 뒤에는 영원한 지옥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아담의 범죄와 더불어 인간은 그렇게 되도록 선고를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하나의 ‘구원의 장치’(義)를 마련하시고 그것으로 인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한시는 것이 이신칭의론의 핵심이다.
2. 바로 이 구원의 장치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예수 그리스도이다. 이 구원의 장치는 우리의 보증인으로서 자기를 담보하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셨다. 이때 그는 자기의 완전한 義, 거룩함 그리고 완전한 보상(Genugtuung)을 가지고 그렇게 했다. 그의 구원사역의 중심되는 내용은 이 ‘보상’(만족성)으로 인간이 하나님에 대하여 지고 있는 빚을 모두 청산하고 율법을 완전히 이루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되 우리 범죄에 대한 형벌을 자신이 당하시므로 모든 빚을 지불하신 것이다.(롬 5:19; 고후 5:17; 벧전 2:22-24; 요 17:10).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pro nobis)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빌 2:5-) 성부 하나님에 의해 수동적으로 보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능동적으로 자신을 희생제물로 내어주었다.
3. 무죄선고: 우리 인간의 범한 죄와 죄책은 너무나 커서 인간 편에서 아무리 노력해도 보상할 수 없다. 하나님이 심판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우리에게 무죄를 선고하여 마치 우리에게는 아무런 죄도 없는 듯이 여기신 것이다. 인간 편에서 아무런 공로도 없이 무죄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순전히 은혜로 된 것이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공로를 아버지께 내어 보이시며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하시는 한편 아버지 하나님은 자기의 자비하심에 호소하시는 그리스도 곧 우리의 보증인을 고려하여 우리를 무죄로 선고하시는 것이다.(롬 3:24; 고후 5:19-20; 롬 5:20; 사 1;18).
4. 무죄선고를 우리 마음에 선포하시고 수행하시는 이는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은혜받은 죄인들의 마음속에 칭의의 확신을 주며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었슴과 우리는 저주받은 죄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슴을 증거하시면서 인치신다(롬 8:15-16).
II. 칭의의 은혜는 어떤 사람에게 주어지나?
1. 하나님은 우리 죄인이 마치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는 듯이 우리를 의롭게 보시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가 순종과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시고 이루신 義를 우리에게 전가(轉嫁)시키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간 편에서 아무런 공로도 없는데 예수 그리스도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신 것을 가리켜 은혜라고 부른다.
하나님은 이 은혜를 누구에게든지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믿음으로 이 은혜를 받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손을 펴게 만드시면 이 손으로 이 그리스도의 義를 받게 되는데 이 義를 지닌자를 하나님은 의롭다고 칭하는 것이다. 이 칭의와 더불어 인간은 하나님의 백성 또는 새로운 피조물로서 살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부터 성령이 그의 마음을 추진하여 성령에 따라 살게 만드시는 것이다.
이 칭의의 은혜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고 믿고 회개하는 자를 위한 것이다. 이 칭의를 내가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내게도 적용된다(롬 10:10; 3:26).
2. 칭의를 받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⑴ 그는 그리스도의 보상의 은혜가 죄인인 자기에게 꼭 필요하고 또 그것이 완전함을 인정한다(행 4:12; 히 7:25). 이런 사람은 인간의 무능과 실존을 잘 이해한다.
⑵ 그는 하나님 앞에서 효력이 있는 義에 주리고 목말라한다(마 5:6). 말하자면 그는 실제적인 인간이다. 허황한 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막연하게 인생을 사는 자는 허황하게 살고 있다.
⑶ 그는 그리스도의 보상의 은혜를 자신의 피난처로 삼는다(사 53:4-5). 그는 죄인은 모두 하나님의 진노를 피하지 못함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피난처를 중요하게 여긴다.
⑷ 그는 이렇게 의롭게 된 것을 기뻐하고 자랑한다(롬 8:31-34). 이와 더불어 그에게 참된 평안이 임하기 때문이다.
3. 칭의의 과정을 칼빈이 정립한 ‘그리스도와의 신비한 연합’이론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① 승귀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시고,
② 성경을 읽거나 설교를 듣거나 성경공부를 하고 있던 내게 이 성령의 사역하면,
③ 내게 믿음이 발생하게 되는데(롬 10:17),
④ 이 믿음은 가만히 있지 못하고 예수를 향해 나아가 그를 꽉 붙잡는다.
⑤ 이와 더불어 나와 예수 사이에 신비한 연합이 이루어진다.
⑥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예수와 연합된 나를 예수처럼 보시기 때문에 나를 의(義)롭다고 선언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