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메르와 기독 성서
- 아브라함은 수메르인
수메르인들의 기록과 연대는 성서의 아브라함 시대보다 수세기 앞서는 것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되기 훨씬 이전에 인간 세상에는 이미 고도로 발전된 문명이 자리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의 문명은 기원전 4천 년 전까지 올라가며, 이로써 성서고고학이 독점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
성서에 의하면, 유대인의 조상 아브라함은 수메르의 중요한 종교도시 '우르(Ur)'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나아갔다고 전한다. 그러니 본디 우르 사람이었던 그가 수메르 문명 아래서 60여 년을 살다가 가나안 땅으로 가서 살 적에 어느 나라 말을 사용했고, 그가 썼던 문자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자명해진다.
수메르에서 발견된 유적과 유물들을 판독해나가는 과정에서 성서에 등장하는 야훼의 창조 이야기, 에덴동산 설화, 노아홍수 이야기, 욥기, 아가서, 바벨탑사건 등 수많은 내용들이 수메르에 그 기원을 두고 있음이 밝혀지자, 성서학자들은 충격과 참담함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수메르인들이 가지고 있던 문명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급문명이며,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문명보다도 무려 1천 년 전의 문명이라는 데에 고고학자들은 당혹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수메르인들이 설형문자를 사용하고 직조기술을 사용해 옷을 물들여 입고 다닐 당시, 히브리인은 문자도 없었으며 동물가죽을 벗겨서 입고 다녔다.
성서학자들은 인류 최초의 문명 발상지가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여겼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디일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수메르유적(지금의 이라크에 위치함)의 발견은 그야말로 전세계 크리스트교의 본질을 뒤흔드는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수메르에는 이미 먼저 에덴동산 설화가 있었고 에덴동산과 남자 여자가 등장하며, 이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까지 성서와 너무나 흡사한 설화가 있었다. 그리고 노아의 홍수와 흡사한 이야기도 있었다. 다만 지아슈드라는 이름이 성서에선 노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전 세계인들이 보고 있는 성서가 슈메르 문자의 판독으로 이제 한낮 휴지조각에 처해지게 된 것에, 성서학자들은 참담함을 감출수 없는 것이다.
슈메르는 최초의 문명임에도 불구하고 건물 하나가 많게는 수백 개의 방이 있는 건물을 비롯해 굉장한 주거지역을 이루며 살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당시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상수도와 하수도를 만들었다. PVC나 스텐파이프는 아니고, 도자기를 구워서 상하수도 시설을 한 것이다. 인류 최초의 문명인들은 그저 원숭이 비슷한 존재들이 아니라, 이처럼 고도로 발달된 문명을 가지고 살았다.
우리나라조차도 상하수도 시설을 제대로 갖춘 것이 불과 수십 년 전이다. 그런데 인류 최초의 문명이 이미 완벽한 상하수도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문명에 대한 가장 놀라운 발견 중의 하나는 수메르 문자이다. 인류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자는 수메르 사람들이 쓰던 설형문자이다. 이를 기록한 수많은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수메르의 길가메시라는 족장이 기록한 서사시는 성서의 노아 홍수 이야기와 내용이 거의 같다. 인류 최초 문명의 기록에 노아의 홍수사건 기록이 나온다. 이는 최초의 문명 이전에 분명 노아의 홍수 사건이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수메르 문명이 홍수 이후에 생겨난 문명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대홍수는 실제로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야훼와는 무관한 것이다. 신석기 4기 빙하기가 끝날 무렵, 간빙기 기원전 1만 년경에 북반구의 빙하가 갑자기 대거 녹아내리면서 대홍수가 일어났고, 실제로 이 사건으로 고대의 저지대 문명은 대다수가 멸망했다. 이 대홍수 이야기는 수메르 신화에 적혀있고, 이후에 유태인들이 성서에 그것을 자기들의 일인양 기록한 것이다. 홍해의 갈라짐 현상은 현재도 지구 여러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과학적인 현상임이 입증되었다.
수메르 문명 발굴의 처음 목적이 성서를 증명하는 것이었다. 즉, 에덴의 전설을 증명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발굴 결과, 성서를 증명하는 게 아니라, 성서가 길가메시를 비롯한 수메르 신화를 카피한 쪽으로 결론이 났다.
유대인의 시조라는 아브라함은 수메르의 우르 출신으로, 우르에서 이집트로 이주한 소위 '불법 체류자'였다. 수메르 문자 해독으로 성서는 수메르,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 여러 설화들을 섞어서 만든 것임을 입증한 셈이다.
- 기원이 밝혀지지 않은 신비의 민족
수메르인들은 대략 기원전 4500~4000년 경에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이 흐르는 메소포타미아 평야에 나타나 살기 시작하였다. 도구로 시대를 구분하는 통상적인 시대구분법에 따르면 이때는 목축과 농경 생활이 막 시작된 신석기시대였다. 메소포타미아 평야지대에는 수메르인들이 들어오기 이전에 셈어족과 인도유럽어족 계통의 여러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수메르인들은 이들보다 우월한 문화를 지니고 이주해 와서, 이내 이들을 압도하고 이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다.
수메르인들이 어디에서 기원한 민족인지, 이들의 초기역사가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분명한 정설이 없다. 이들의 기원이 매우 불명확한 반면, 이들이 남긴 문화유산이 너무나 두드러지기 때문에 세간에는 수메르인들과 관련하여 여러 신비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이런 이야기가 실려있는 책도 있다.
"수메르 문헌의 제시된 증거에 기초해 볼 때, 기자의 피라미드는 시나이 사막에 위치한 우주기지에서 끝나는, 우주 관제센터의 착륙복도 일부로서 외계인들에 의해 유도장치로 쓰일 목적으로 건설된 듯하다"
이 글의 저자에 따르면 고대 수메르인들은 태양계의 일곱 번째 행성인 지구를 행성간 버스정거장으로 사용했던 우주여행자들의 자손으로, 이들이 이집트 기자의 대피라미드를 건설했다는 것이다. 수메르인의 문화 유산은 너무나 엄청난 것이라서 당시 석기를 사용하던 원시적인 인간들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고, 고도의 문명을 갖고 외계에서 이주해온 우주인들이라고 생각해야 합리적으로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수메르인들의 업적이 매우 뛰어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느날 갑자기 완성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부단한 과정을 거치면 발전되어 온 것이다.
- 교착어를 사용한 검은 머리의 사람들
수메르인들은 자신들이 사는 땅을 수메르(Sumer)라고 부르면서 자신을 "검은 머리의 사람들"(black-headed people)이라고 했다. 유럽어족의 여러 민족들과는 매우 달랐던 수메르인들은 이런 모습을 강조하여, 자신들을 주위 민족들과 구분해 불렀다.
이들의 언어 역시 주변 민족들이 사용하던 것과 매우 달랐다. 그들의 언어는 명사에 토씨를 바꿔서 주어나 목적어로 표현하는 교착어(agglutinative)이며, 이것은 지금 우리말이 속한 우랄 알타이어의 큰 특징이다.
수메르인들이 검은 머리카락을 지니고 있었고, 교착어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오늘날 동양의 일부 학자들은 이들을 동아시아 민족들과 연관시킨 학설들을 제시하고 있다. 수메르인을 한민족과 연관시키는 주장도 많이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에 따르면 단군 이전에 한민족이 세운 12개의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에 수밀이(須密爾)이라는 나라가 있었다고 한다. 재야학자들은 이 수밀이가 바로 메소포타미아에 있던 수메르라고 한다.
한편 수메르 역사를 연구하는 서양학자들은 수메르의 기원을 동아시아 민족과 연계시키는데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사무엘 크레이머는 수메르인들은 처음부터 메소포타미아에 태어나 그곳에서 살아온 것으로 믿었다고 말한다.
저명한 아랍사학자 히티(Philip K. Hitti)는 수메르어가 터키어, 헝가리어, 핀란드어 등에서 발견되는 교착어적 성격을 지니고 있지만, 그외에는 다른 어떤 특성도 우랄알타이어나 몽고어와 비슷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는 각종 부조물에 나타난 수메르인들의 생김새로 보아 그들이 긴 머리의 지중해 인종과, 넓은 이마의 북동부 산악지대 아르메니아족과의 혼혈로 보인고 말하고 있다.
수메르 유적발굴에 지대한 공을 세운 고고학자 레오나드 울리(Leonard Woolley), 독일 고고학자 세람(C. W. Ceram) 등은 수메르인들이 계단 모양의 신전을 만들어 그곳에 신을 모신 것을 보면, 산악지대가 그들의 고향이며 신들은 높은 언덕 위에 산다고 생각했으며, 수메르 축조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 목조건물 양식에 따라 지어진 점으로 보아 나무가 무성한 고지대가 그들의 발원지였을 것으로 본다. 반면 영국 인류학자 아더 케이트(Arthur Kate)는 인더스강 계곡이 수메르인들의 발원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거나 인류 최고(最古)의 문명을 이룩한 수메르민족이 중동 원주민들과 같은 뿌리를 가진 민족이 아니고, 우리 민족과 관련이 깊을 수 있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 수메르인은 한겨레이다
<역사는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History Begins at Sumer)>의 저자인 사뮤엘크레머 교수는 최초의 창조설화를 비롯한 교육제도, 사법제도 등 인류 최초의 39개 사건이 모두 수메르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즉 인류문명의 전파는 수메르문명 -> 에게문명 -> 이집트, 그리스 문명으로 전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라크(메소포타미아) 지역과 한국은 멀리 있지만 같은 언어로 분류된다. 특히 조사를 사용해 문장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은 교착어의 특징이다. ~로, ~가, ~의 , ~를 등의 조사를 사용하는 언어는 교착어가 유일하다. 그리고 교착어를 쓰는 종족은 전세계적으로 동이족 계열뿐이다.
터키도 어순체계가 약간 다르지만 교착어를 쓴다. 터키에는 지금도 한국을 형제국이라고 가르치고 있으며, 터키 역사교과서에는 한국과 터키는 같은 민족이었다고 나온다. 터키는 수메르문명 부근으로 돌궐(투르크)족의 일부가 이동하여 생긴 나라이다. 그 지역 종족들과 혼형이 되어 지금 외모는 많이 다르다. 하지만 돌궐은 한겨레의 방계민족으로, <삼국유사>에 나오는 호랑이족으로 추정된다.
그외 지구촌에서 교착어를 쓰는 종족으로는 중국의 묘족, 아메리카 인디언 등이 있다. 묘족은 동이(東夷)계열 민족이며, 미주인디언은 고대한국 시대에 만주와 시베리아 지역에서 이동한 것으로 밝혀졌다.
수메르어(발음)[ 뜻] | 한국어 발음[단어 뜻] | 수메르발음[단어뜻] | 한국어 발음[단어 뜻] |
아누(Annu)[최고 신] | 하느님 [하느님,上帝] | Bad 바드 [ 밭 ] | 밭 (Bat) [밭, 田 ] |
안 (An) [天] | 하늘 (ha) [ 하늘, 天 ] | Na 나 [나 1인칭] | 나 Na [ 나,我 ] |
기르(Gir) | 길 (Gil) [路] | Ge 그 [3인칭 ] | 그 Ge [ 3인칭 ] |
라 (Ra) [~ 에서 ] | 로 (Ro) [ 조사 ] | I 이 [1 인칭 ] | 이 [지시대명사] |
아비 Abi [ 아버지 ] | 아비 (Bo) [ 夫 ] | Uhma 움마[엄마 母] | 엄마 Uhma [엄마 母] |
니므 Nim [ 님 任 ] | 님 (Nim) [ 사람 任] |
- 수메르의 하느님, 안누
수메르의 주신은 안누(Annu)로, 최고신을 뜻한다(위 표 참조). 우리말의 하느님, 하늘님, 한울님과 같은 의미이다. 중세 이전에 쓰던 한눌님으로 기준하면 이 단어는 전부 같은 발음이 된다(고대 한국어에서 한, 안은 같은 말로 쓰였음).
하(아)가 뜻하는 것이 하늘, 위, 남성적인 것이라면, 느가 뜻하는 것은 땅, 아래, 여성적인 것이다. 누리(땅), 누이(누나) 등의 말도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고 며느리, 마누라도 이 어원에서 나온 말로 여자를 지칭한다.
하느님이라는 말은 하늘과 땅 즉 천지를 부모로 떠받들며, 모든 사람은 천지부모의 자식이란 뜻이 언어에 담겨있다. 이것은 우리민족의 신도사상이다.
슈메르어에서 안(An)은 하느님을 뜻한다. 이 안(An)은 제정일치 사회에서 군왕의 표상이 되었다. 고대 한국에서 제왕은 우주의 최고신을 대신하여 이 땅을 다스리는 성인을 말한다. 고대에는 당대 최고의 지혜와 덕을 갖춘 성인(선인)을 왕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세습제로 바뀌게 되자, 여러 가지 폐해가 일어나게 되었다. 원래 왕조는 세습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선출방식에서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고 강력한 중앙집권이 필요하자 세습제로 바뀌게 된다.
한민족은 하늘 땅의 민족이고 천손(하늘 자손) 민족이라는 의미이다. 제왕은 원래 솔선수범하여 스스로를 희생하고 백성들을 보살피는 존재이다. 또 지혜와 덕을 갖추고 새 문명을 일으켜 모든 백성을 살기 좋고 이롭게 해주는 존재이다.
또한 수메르인들이 사용했던 12궁도와 우리의 12간지, 60진법과 60천간, 흑해 홍해와 황해의 오행(5行) 흔적, 12환국 중에 수밀이(須密爾)와 수메르는 같은 뿌리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연구가는 '수밀이'란 원래 '소머리'라는 말이라 한다. 만주 우수하(牛首河)가 원래 소머리강인 것처럼, 소머리 -> 수메르가 된 것이라 한다.
언어 이외에도 수메르 연원의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지구라트이다. 지구라트는 벽돌로 쌓은 인조탑으로 피라미드의 유래이며, 구약성서 바벨탑의 전신이기도 하다.
그밖에 수메르와 한국은 묘장제도, 순장제도, 60진법, 최고지도자의 상징을 봉황으로 삼는 점 등에 있어서 많은 유사성이 발견되었다. 이에 따라 검은 머리(Black Headed People) 한겨레가 고도의 문명을 가지고 들어와 수메르문명을 세웠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기독교와 유대교의 유일신 '여호와'나 이슬람교의 유일신 '알라'의 연원은 바로 수메르의 '안누'이다. 그리고 이는 다시 한겨레의 '하느님'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참고; 뉴스웨이브 2008/03/02)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 기독교와 수메르 문명
1830년대에 처음으로 이라크에서 수메르 문자가 발견되면서 가장 충격을 받은 곳은 기독교였다. 왜냐하면 가장 최초의 사건이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겼을 것이라 여겨 왔고, 에덴동산도 그 지역 어디일 것이라 믿어 오던 터에 창세기의 창조설화와 홍수설화 등이 수메르의 토판 속에 그대로 그 원형이 기록돼 있었기 때문이다.
에덴동산에 남자와 여자가 있었고, 동산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금기, 그런데 수메르에서는 여자가 아닌 남자가 먼저 따먹는다는 둥 그리고 홍수로 사람들이 다 죽는데 지아슈드라는 의인이 있어서 배를 만들어 사람들은 구제한다는 둥 놀라울 정도로 유사한 기록들이 쏟아져 나왔다.
여기서부터 성서학자들은 기독교를 보는 눈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기독교 안에서도 성서의 역사를 다시 쓰자는 주장과 그것을 반대하는 주장으로 나뉘게 되었다. 한국의 기독교 장로교(기장)과 예수교 장로교(예장) 등이 갈라지는 이유도 바로 성서를 보는 이런 시각의 차이 때문이다. 기장은 고고학의 발견을 수용하는 입장이고, 예장은 그렇지 않는 입장이었다. 이것이 1950년대 한국 교회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수메르의 유산을 성서의 한 유산으로 수용하지 않을 수 없다. 고급문화 수메르에 대하여, 히브리 문화는 저급문화로 분류한다. 서양문명은 그리스의 합리적 이성과 히브리의 감성적 신앙이라는 두 물줄기로 이루어진다. 이 두 물줄기는 고대 수메르 문명에서 만난다.
기원전 2000년경 수메르 우르 남무 왕국이 멸망하면서 슈메르 문명은 두 갈래로 갈라지고 만다. 그리스 올림푸스 신전의 원형이 수메르 딜문 동산의 그것이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며, 히브리인들의 정신적 유산은 그대로 수메르의 것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글; 김상일 교수(전 한신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