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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회]
그들은 청룡채에서 하룻밤을 묵고 길을 떠나었다. 그들은 떠나기 전에 시신을 한데 모아 화장을 했다.
또한 청룡채도 깨끗이 불에 때웠다. 다른 산적들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용중산을 넘어서부터는 모든 일이 순조로웠다. 특별히 그들을 막아서는 자들도 없었고 일정에 차질을 받을만한 일들도 없었다.
덕분에 그들은 무림맹이 자리 잡고 있는 의창까지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의창(宜昌)은 장강의 본류에 의치한 곳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무림맹이 들어서면서 급속도로 덩치가 커졌다.
덕분에 무림맹이 들어선 이후에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천하대회의가 열린다는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는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 중 태반이 바로 무림인이었다.
무림인들은 실로 오랜만에 열리는 천하대회의를 참관하기 위해 중원각지에서 몰려들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하대회의에 참관할 수 없겟지만 그들은 이번 기회에 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유명한 무인들을 보기를 원했다.
제 아무리 대륙십강이 유명하더라도 그들의 얼굴을 직접 본 사람들은 얼마 없었다. 그들은 실로 구름 속에 숨은 신룡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지금 의창은 수십 년 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이했다.
비록 천하대회의가 열리려면 아직도 한 달 이상이 남아 있었지만 그들은 미리부터 의창에 모여 축제분위기를 즐겼다.
그렇게 의창이 한참 시끄러울 때 신황 일행은 의창에 들어섰다.
신황이나 초풍영등 몇 명을 제외한 표사들은 무림맹이 있는 의창에 왔다는 시살 하나만으로 기분이 들떠 있었다.
그들 같은 일반 무인들에게 있어 무림맹은 꿈의 이상향이었기 때문이다.
일행은 일단 객잔에서 하루 묵고 다음날 무림맹으로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의창의 객잔은 모두 최대의 호황을 누리고 있었기에 빈방을 잡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발품을 판 보람이 있었는지 그들은 해가 지기 전에 한 객잔의 후원을 통째로 빌릴 수 있었다.
“으하핫~! 드디어 무림맹이 있는 이곳에 왔단 말이야.”
“하하하! 내가 표사 생활을 하면서 또 언제 이곳에 와볼까? 오늘은 정말 내 인생에 있어 최대의 날이야.”
표사들은 무사히 목적지인 의창에 도착했다는 기쁨에 도착한 순간부터 술을 퍼마셨다.
목유환 역시 표사들의 노고를 알기에 표물을 지킬 인원 몇 명을 빼놓고 나머지 사람들에게 음주를 허락했다.
신황과 나머지 사람들도 탁자 하나를 잡고 앉아 음식을 주문했다.
실로 오랜만에 제대로 된 객잔에서 음식을 먹고 사람들 또한 부적거리니 살맛이 나는 것 같았다.
주위에서 술을 마시고 떠드는 사람들 대부분이 몸에 병장기 하나쯤은 휴대한 것으로 봐서는 무림인이었다.
“이거 정말 여기가 무림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는데요.”
초풍영은 이런 분위기가 마음에 드는지 연신 웃음을 터트리며 술잔을 들었다.
“맞아요! 난 내가 무림인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이렇게 많은 무인들을 보니 내가 무림의 사람이라는 것이 실감나요.”
대부분의 시간을 무당산에서 지냈던 초풍영이나 만화장의 밀실에서만 생활했던 홍염화, 두 사람에게는 이런 광경이 너무나 낮설면서도 왠지 그리운 그런 분위기였다.
덕분에 두 사람의 기분은 무척 고무되었다.초관염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특유의 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그의 눈 속에 떠오른 긴장의 빛마저 숨길 수는 없었다.
좋든 싫든 이미 호랑이 굴에 들어왔다. 그는 어떻게 하든 무림맹에 당문의 일을 보고해서 공론화를 시켜야 했고, 당문은 당연히 못하게 막을 것이다.
그리고 무림맹은........미지수였다. 그들이 어찌 행동할지는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시작한 일, 어떻게든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그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오직 신만이 알 것이다.
신황이 그런 초관염의 마음을 누치 챘는지 그에게 술잔을 권하면서 말을 했다.
“아직 닥치지 않은 일 미리 걱정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오늘은 술이나 들면서 긴장을 푸십시오.”
“허허~! 내가 자내라면 좋겠네. 다른 사람들이야 자네의 장점이 무공뿐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내가 보기엔 자네의 가장 큰 장점은 집요한 성격과 치밀한 두뇌야.
자네는 항상 준비하고 대비하지. 그리고 적기라고 생각되면 마치 폭풍처럼 몰아붙이지. 휴~! 이렇게 긴장이 되는 때는 나도 자네 같은 성격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번 해본다네.
그러면 조금 덜 긴장하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어찌 사람이 똑같을 수 있겠습니까? 어르신은 지금 모습이 제일 좋습니다.”
“이런 딸기코의 늙은이가 좋을 게 무에 있어? 하지만 빈말이라도 듣기는 좋구만. 허허허~!”
초관염은 신황과 대화를 하면서 한결 긴장이 풀렸는지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도 신황이 같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위안이 되는지 모른다. 그가 있기에 이곳까지 올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때문에 그는 신황에게 감사를 했다. 그가 없었다면 결코 이 자리에 올수 없었을 것이기에.그는 신황에게 술을 권했다.
“한잔 하게나. 오늘은 내가 한잔 사겠네, 자네 덕분에 이곳에 무사히 도착한데 대한 보답이네. 보답이 보잘 것 없어도 이해하게나. 자네도 알다시피 내 수중에는 돈이 얼마 없어서 말이네.”
“후후~! 이정도면 충분합니다.”
초관염의 말에 신항이 예의 흐릿한 웃음을 지었다.
그가 돈이 없다는 것은 그간 신황이 옆에서 지켜보았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강호제일의 신의가 빈털터리라고 한다면 누가 봐도 웃을 것이다.
그가 손짓만 하면 돈을 보따리로 싸들고 찾아올 환자가 수도 없을 테니. 그러나 이제까지 신황이 지켜본 초관염은 의술을 행함에 있어 돈을 구하지 않았다
그 예로 저번에 팽가의 가주인 팽만우에게도 단지 여비조로 얼마간의 돈을 받았을 뿐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지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만했다.
신황은 초관염이 따라주는 술잔을 정말 맛있게 들이켰다. 초관염은 그런 신황을 미소를 짓고 바라봤다. 그리고 미소를 짓는 사람은 또 한명 있었다.
‘내가 도대체 왜 이러지냐? 눈에 콩깍지라도 씌운 건까? 저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멋있어 보이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홍염화는 주인의 의지를 무시하고 자꾸만 올라가는 입 꼬리를 원상태로 복귀시키느라 무지 애를 써야했다. 덕분에 그녀의 얼굴은 무척이나 부자연스러운 상태로 일그러져야 했다.
“넌 어디 아프냐? 아까부터 얼굴표정이 그게 뭐냐? 꼭 약 먹은 강아지마냥 요상하게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내가 뭘? 오라버니는 그냥 술이나 들어. 괜히 남의 얼굴까지 신경쓰지 말고.”
이제는 제법 친하게 되어 말까지 놓게 된 초풍영과 홍염화였다.초풍영은 홍염화의 말에 괜히 머쓱해져서 술잔을 훌짝 거렸다.
“누가 뭐랬냐? 술만맛 좋네.”
“칫~!”
“흐흐~! 그런데 너 이렇게 오랫동안 연락을 안 해도 되냐? 너 별다른 연락도 없이 환영루를 나왔잖어. 네 사부님 화 많이 났을 것 같은데.”
“헤헤~! 사실은 그 일 때문에 걱정이야. 연락을 하긴 해야 되는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아무런 대책 없이 나온 홍염화였다.
“너 연락할 방법은 있는 거냐?”
“오라버니는 내가 어디 출신인지 벌써 잊었나보네. 천하의 기루가 모두 환영루의 영향력 하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야.
그러니 이곳 의창에 있는 기루 중 한 곳에 들어가서 연락만 하면 되. 그러면 비상 연락망을 통해서 이틀정도면 사부님의 귀에 들어가게 될껄.”
개방이 방대하기로는 제일이나 정보의 질이나 깊이로는 환영루를 쫒아갈 수 없다. 천하에 기녀가 없는 곳은 없었고, 그들은 거지들보다 훨씬 고급정보를 접하니까.
어쩌면 이미 사부는 홍염화가 이곳에 있는지 벌서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뭐 어쨌거나 이곳의 정보도 얻을 겸해서 한번 들어가 보기는 해야겠네. 혼나는 것은 나중에 생각해야지.”
그때 신황이 홍염화의 말에 꼬리를 달았다.
“그때 나도 같이 가지. 나도 이곳에 알고 싶은 것이 있으니까.”
“에~! 신가가도 기루에요?”
신황의 말에 홍염화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신황은 아무 생각 없이 한말이지만 그녀는 엉뚱한 것까지 상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얼굴을 수습하며 대답을 했다.
“물론 신가가께서 같이 가셔도 상관없어요. 사부가 이미 신가가에 한해서 만큼은 정보를 얼마든지 제공해주라고 명을 내리셨으니까요.”
“그런가? 고맙군!”
“뭘요! 사부님은 오히려 신가가에게 고마워하던데요.”
이미 환영루에서는 신황이 부탁하는 일은 모두 협조하라는 명이 내려졌다. 앞으로도 신황은 알고 싶은 정보가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루를 통해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의 중요성을 잘 아는 신황은 홍연후가 얼마나 자신을 배려해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때 밑에서부터 웅성거리를 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떠드는 소리에 금세 객잔이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소리의 근원지는 곧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의 시선을 확 휘어잡으며 모습을 드러낸 이남이녀, 마치 몸에서 후광이 나는 듯 비범한 풍모가 돋보이는 젊은이들이었다.
신황 등이 앉아 있는 식당도 금세 시끄러워졌다. 식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이 그들의 정체를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삼웅(三雄)중 한명인 남궁영 공자다.”
“역시 같은 삼웅의 소림사의 광불(狂佛)도 있어.”
“사화(四花)의 일인인 혁련혜 소저와 남궁영 공자의 동생인 남궁유선 소저다.”
식당안의 사람들은 동경 섞인 눈초리로 그렇게 외치며 남궁영을 비롯한 일행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도영은 당연했다. 지금 강호에서 저들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도 비중이거니와 그들의 후광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하기 때문이다.
젊은 후기지수들 중 가장 뛰어난 세 명을 일컫는 말이 바로 삼웅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 광불은 소림사의 젊은 무승으로 소림사에 출가했을 때부터 그 뛰어난 재능으로 장래 소림의 호법승으로 지명 받을 만큼 뛰어난 재능과 무공을 자랑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벌서 소림의 칠십이 신공 중 다섯 가지를 자유자재로 펼칠 수 있다고 하였다.
이어 또 다른 삼웅의 일인이 바로 남궁세가의 남궁영이었다. 그는 남궁세가의 장자로 잘생긴 용모와 뛰어난 무공으로 뭇 여인들의 방심을 한눈에 흔들어놓는 인물이었다.
또한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남궁세가의 가주인 남궁무학으로부터 가주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인 제왕검형(帝王劍形)을 전수받고 있다고 하였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에는 없지만 삼웅의 일각을 차지하는 사람은 바로 초풍영의 사형인 홍화검(紅華劍) 서문수였다.
그는 워낙 무당산 아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단지 대부당의 중령제자란 이유만으로도 삼웅안에 든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가 얼마나 강한지는 누구보다 초풍영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빙화(氷花) 혁련혜는 강호사화(江湖四花)중 일인으로 후기지수중 미모와 무공이 가장 출중하다고 일컬어지고 있었다.
또한 그녀의 아버지는 바로 대륙십강 중 이선(二仙)에 속하는 마선(魔仙) 혁련후였다. 사정이 그러하니 인물이나 배경이나 강호의 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여인이었다.
거기에다 남궁영의 동생으로 남궁세가의 사랑을 한 몸에 듬뿍받는 남궁유선이 같은 자리에 있다.
실로 한자리에서 보기 힘든 강호 다음세대의 선두주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시선에 제법 익숙한지 의연한 얼굴로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들이 자리에 앉자 점소이가 황홀한 눈빛으로 그들에게 다가와 주문을 받았다.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대답은 남궁유선이 했다.
“이곳에서 제일 잘하는 음식 여서 일곱 가지만 갖다 줘요. 그리고 좋은 술도 두병만 가져와요.”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황급히 자리를 뜬 후 남궁유선은 일행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한 달 후에 천하대회의가 열린다니 연일 의창으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네요. 이젠 어지간한 객잔에는 자리를 잡기가 힘이 드니 말이예요.”
“후후~! 우리야 별상관이 있느냐? 무림맹에서 좋은 숙소를 제공해 주는데, 단지 강호에 이름난 무인들을 보겠다고 몰려드는 일반무인들이나 구경꾼들이 고달파질 뿐이지.”
남궁유선의 말에 남궁영이 오연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대답했다.
이미 태어날 때부터 일반 사람들하고 다른 길을 걸어온 그였다.
강호 오대세가 중 늘 첫 손가락 안에 꼽히는 남궁세가의 장자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벌모세수를 하고 개정대법을 통해 내공을 비약적으로 늘려 놨다.
더구나 오성조차 뛰어나 젊은 신진들 중에서는 그들 당할 상대가 거의 없다는 것이 강호의 중론이었다.
그렇게 어렸을 대부터 떠받듦을 받고 자라다보니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무의식중에 오만함이 배어 있었다.
물론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으나 그는 별로 고칠 생각이 없었다. 그러기에는 그는 너무나 고귀하게 자랐다.
광불이 오연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남궁영에게 말을 건넸다.
“그나저나 천하대회의가 확실히 큰 행사이긴 한 모양입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다니.”
“그렇습니다. 이제까지의 무림맹이야 유명무실한 존재였으니 많은 문파들이 무시했으나 이제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지요.
그러고보면 이번 무림맹주인 백무광 대협이 대단하긴 한 모양입니다. 불과 이십년 만에 이정도의 규모로 키웠으니까요.”
남궁영의 말에 광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이곳 의창에 와보니 당금 무림맹의 위세가 어떤지 실감이 났다.
조직은 잘 정비되어 있었고, 기강 또한 훌륭하게 잡혀 있는데다가 제법 잘 단련된 고수들이 눈에 많이 들어왔다.
진짜 고수들은 모습을 거의 안 드러낸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진정한 고수들은 더 많은 것이다. 이 모두가 백무광이 무림맹주가 된지 이십 년 만에 일궈놓은 업적이었다.
광불과 남궁영이 그렇게 무림맹주인 백무광에 대한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혁련혜는 주위를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
특별히 누굴 찾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남자들의 대화는 너무 고리타분하였기 때문에 그녀들은 그렇게 아무의미 없이 자신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대부분 동경이나 부러움을 듬뿍 담아 뜨거운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 개중에는 혁련혜나 남궁유선의 미모에 혹해 음심이 담긴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이런 경우는 너무 흔한 일이었기에 그리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이런 시선에 일일이 반응하기에는 그녀의 감각은 너무나 무뎌졌다고 볼 수 있었다.
‘응?’
어느 순간 혁련혜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녀의 눈에 들어온 광경, 다른 이들은 모두 자신들에게 은밀하든 노골적이든 시선을 던지는데 단 한 무리만큼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들끼리 술잔을 들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딸기코의 노인도 있고, 젊은 무인도 보였다.
그리고 비록 자신들에 비해 미모는 떨어지지만 생동감 있는 얼굴 표정으로 활기를 불어넣는 여인도.
그들은 자신들 쪽으로 시선조차 주지 않고 자신들끼리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며 가끔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보기 좋았다.그때 멍하니 한곳을 주시하는 그녀에게 남궁유선이 말을 걸었다.
“언니! 뭘 그렇게 뚫어지게 쳐다보세요?”
“아....아니야! 그런데 왜?”
“음식 나왔어요.”
“그래? 알았어!”
어느새 탁자위에는 한상 가득 음식이 놓여 있었다.
비록 남궁유선은 여서 일곱 가지만 시켰지만 그 음식에 딸려서 또 다른 음식이 나왔기에 가짓수는 배 이상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들은 탁자위에 가득 차려진 음식을 먹기 시작햇다.
소림사 출신인 광불은 오로지 채소로 되어 있는 음식에만 젓가락질을 하였고 나머지 사람들도 이것저것 조금씩 깨작거리기만 하였다.
늘 풍요롭게 음식을 먹는 남궁영 등에게 있어 음식의 양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음식의 맛이었고, 또한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절대 몇 점 이상은 먹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의 습관이었다. 때문에 상에 차려진 음식은 대부분이 원상태를 유지하고 있었고 단지 주위부분이 조금씩만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이 매우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대부분 어이없다는 빛이 떠올라 있었다.
아무리 이들이 무림의 후기지수중에 최고를 달리고 있는 인물들이긴 하지만 저것은 너무나 낭비벽이 심한 것이 아닌가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그들의 위세에 밀려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게 그렇듯 꼭 삐딱선을 타는 인물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삐딱선을 타는 인물이 있었다.
“캬아악~! 퉷!”
누군가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바닥에 가래침을 뱉었다. 그는 이어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말을 했다.
“내참 더러워서~! 어떤 사람은 한 끼 식사도 감지덕지 먹는데 어떤 사람은 아예 탁자에 금전으로 도배를 하며 지랄을 하네.
이것을 의창의 빈민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차라리 그 음식을 지나가는 개에게 던져주면 개라도 호강을 할 텐데.”
순간 남궁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건 누가 봐도 자신을 겨냥해서 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광불이나 혁련혜 등은 얼굴을 살짝 붉혔다.
어차피 자신들이 사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무런 생각 없이 음식을 들었는데 확실히 이야기를 들으니 자신들이 너무 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반해 남궁영이나 남궁유선의 얼굴에는 노기가 떠오르고 있었다.
탁!
남궁영이 탁자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소면을 앞에 놓고 독한 화주를 마시는 초라한 차림의 소년이 있었다.
이제 갓 열일곱 정도 되었을까? 비록 거지처럼 남루한 복장이지만 소년의 얼굴에는 굳은 의지와 함께 별빛처럼 반짝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소년을 더욱 인상 깊게 만들었다.
소년은 화주가 독하지도 않은지 큰 대접으로 벌컥벌컥 들이키고 있었다.남궁영은 싸늘한 표정으로 소년에게 말을 했다.
“소형제가 지금 나에게 시비를 건 것이오?”
“시비는 무슨 시비? 그저 할 말을 한 것뿐이오.”
“그럼 조금 전에 한말이 나에게 한말이 맞다는 것이군.”
순간 남궁영의 눈가에 스산한 살기가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소년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이곳 의창에 빈민이 얼만지나 아시오? 허울 좋은 무림맹의 주위에 거적때기 하나로 추운 겨울을 나는 사람만 수백이 넘소.
그런 사람들이 하루에 한 기라도 제대로 먹는 줄 압니까? 아니오! 같은 거지라도 개방의 거지들하고도 급수가 틀려 구걸초자 하지도 못하는 이들이오.
그런 이들이 당신들의 탁자를 보면 뭐라 하겠소. 당신들이 먹은 음식 값 정도면 그런 사람들 이십여 명이 몇 일은 배가 부르도록 먹을 수 있소.”
“그래서 내가 잘못했다는 것이냐?”
“당신 돈으로 당신이 먹겠다는데 내가 뭐 할 말이 있겠소? 내 말은 음식을 시켰으면 감사하며 먹으란 말이오.
남들 앞에서 자랑이나 하지 말고 말이오. 당신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축복을 받고 태어났는지 모르고 있소.”
“노옴~!”
순간 남궁영은 들끓어 오르는 살심을 가라앉히느라 무단히도 애를 써야했다.
거지나 다름없는 행색의 소년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지만 이곳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남궁영은 잠시 분노를 삭인 후 소년에게 다시 말을 건넸다.
“소형제의 이름이 무엇인가?”
“내 이름은 장사우요.”
소년은 떳떳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쏟아져 나왔다.
“아~!”
“빈민가의 성자(聖子).”
“저 소년이 빈민가의 성자란 말인가?”
장사우. 그의 존재는 매우 특이했다. 분명 무공도 없고 학식도 그리 높지 않았지만 이곳 의창에 있는 빈민들을 위해 온몸을 다바쳐 희생하는 인물이었다.
빈만가의 인물들을 위해 약초를 마련하고 비록 서툰 솜씨로나마 어깨너머 익힌 의술로 빈민들을 치료하며 그렇게 의창에서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무림맹이나 관에서도 하지 않는 일을 이제 열일곱 소년이 혼자 몸으로 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빈민가의 사람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나이가 어린 이 소년에게 무한한 신뢰와 존경을 보내고 있었다.
남궁영은 주위사람들의 반응으로 눈앞의 소년이 꽤나 유명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그는 짐짓 호탕한 얼굴로 장사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하하~! 이거 내 오늘 소형제에게 매우 큰 가르침을 받았네 .
내 소형제의 말을 명심하지. 내 자네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가로 이걸 기부하겠네. 빈민가의 사람들에게 자네가 알아서 쓰게나.”
이어 그가 던져 준 것은 꽤나 묵직한 전낭이었다.
장사우는 잠시 인상을 찡그리더니 거침없이 전낭을 받아들었다.
“고맙소이다. 이돈, 쓰라고 준거니 잘 쓰겠소.”
“하하~! 음식 값도 내가 낼 테니 알아서 마시고 가게나.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남궁영은 호탕한 웃음과 함께 자리로 돌아왔다.그 모습을 보며 사람들이 수근 거렸다.
“역시 남궁가의 장자로군. 저런 아량이라니.”
“그러게 오대세가의 수위는 아무나 차지하는지 알아. 저런 인물들이 태어나니까 다른 세가들을 누르는 것이라고.”
“정말 남궁세가에 용이 났군 나라면 아무리 빈민가의 성자라도 뺨이라도 날릴 텐데 말이야.”
사람들은 남궁영의 대해 같은 아량을 칭찬했다.
어떤 이들은 아예 남궁세가 전체를 칭송하기도 했다. 단 한번 보여준 아량으로 남궁영은 자신의 존재감을 만천하에 펼친 것이다.
장사우는 남궁영이 던져준 전낭을 품속에 넣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몸이 간지러운 것이 이상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들렸다.
“애야! 잠시 이리 와 보거라.”
아무런 감정도 없는 무심한 음성 장사우의 시선이 목소리의 주인에게 향했다.
그 순간 그는 보았다. 고양이 한 마리가 어깨위에 올려놓은 무심한 표정의 남자를.
그가 다시 말했다.
“이리 와 보거라.”
장사우는 잠시 당혹한 눈빛으로 자신을 부른 남자를 봤다.
초면에 다짜고짜 와보라니, 하지만 그의 음성에는 왠지 거역하기 힘든 힘이 담겨 있었다.
더구나 무심하기는 했지만 자신을 해칠 것 같지는 않기에 그는 주춤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장사우를 부른 남자, 신황은 그가 자신의 앞에 다가오자 그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봤다.
신황이 도대체 왜 거지같은 소년을 부른 것인지 영문을 알지 못하는 초풍영과 홍염화는 그저 멀뚱멀뚱한 눈으로 장사우를 바라봤다.
“절 왜 불.......렀습니까?”
남궁영에게도 거침없이 말을 놓아던 장사우였지만 신황에게는 그러지 못했다. 왠지 눈앞의 남자에게는 말을 놓아선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장사우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신황은 그의 가슴에 손을 갔다 대었다.
쏴~아!
흠칫하는 장사우, 그러나 그는 순간 갑갑하던 가슴이 시원해져옴을 느꼈다.
신황의 손에서 시작된 한줄기 청량한 기운이 조금 전부터 그의 가슴을 갑갑하게 만들던 거북스런 기운을 깨끗이 씻어가 버린 것이다.
그제야 장사우는 신황이 자신을 도와준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대협!”
“음!”
신황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의 눈은 눈앞의 장사우를 보고 있지 않았다. 그의 눈은 조금 전 장사우의 곁에 있었던 남궁영을 향해 있었다.
흠칫~!
이제까지 신황이 하는 모양을 보고 얼굴을 일그러트리던 남궁영이 자신을 보는 신황의 무심한 눈빛에 가슴이 철렁였다.
사실 조금 전 그는 장사우에게 가죽전낭을 넘기며 그의 몸에 한 가닥 음한지기(陰寒之氣)를 심어 놨다.
지금 당장은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겠지만 음한지기는 시간이 흐를수록 장사우의 생명을 갉아먹을 것이다. 그리고 종국에는 시름시름 앓다가 죽고 말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남궁영식의 복수였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힌 거지소년을 결코 좋게 내버려둘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어떻게 알았는지 신황이 나서 그가 장사우에게 펼친 수법을 해소한 것이다. 더구나 남궁영 자신을 보는 눈빛이라니.
비록 아무런 의미도, 어떠한 감정도 찾아볼 수 없는 눈빛이었지만 신황의 눈빛은 그의 가슴속을 모두 꿰뜷어 보는 것 같았다.
“이익~!”
남궁영의 입에서 앓는 듯한 소리가 세어 나왔다.
마치 북풍한설에 벌거벗고 서있는 듯한 느낌이 전신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신항은 그렇게 남궁영을 쳐다보다 곧 시선을 돌렸다. 그에 따라 남궁영을 지배하던 한기도 눈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제야 남궁영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 무서운 고수다. 단지 눈빛만으로 오감을 지배할 수 있다니.’
그는 자신의 손에 어느덧 땀이 흥건히 고인 것을 깨달았다. 그의 머리보다 몸이 먼저 공포를 느꼈던 것이다.
“오빠, 왜 그래?”
옆에서 사정을 모르는 남궁유선이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지만 남궁영은 쉽게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때 광불이 신황을 보며 불호를 외었다.
“아미타불! 저렇게 완벽하게 감정을 가둔 눈을 가지고 있다니.”
그는 조금 전 남궁영을 보는 신황의 눈동자에서 어떤 감정의 빛도 읽지 못했다. 그것은 그가 도저히 신황의 생각을 읽지 못했다는 말이기도 했다.
더구나 신황이 시선을 주기 전까지 그는 신황이란 존재가 이곳에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했다. 만약 신황이 나서지 않았다면 그는 영원히 신황이란 존재를 모르고 넘어갔을 것이다.
그때 혁련혜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남궁소협이 큰 실수를 한 것 같군요.”
“..........”
혁련혜의 질책 섞인 말에도 남궁영은 아무런 말도 못했다. 그것은 그가 인정을 해서가 아니다.
딴에는 은밀히 손을 썼다고 생각했는데 광불이나 혁련혜가 그것을 눈치 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신황의 눈빛에 얼었던 것도 잠시 그의 얼굴에 은은한 노기가 떠올랐다.
물론 초인적인 인내력으로 꾹꾹 화를 눌러 참았지만, 그의 자존심에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남고 말았다.
‘제......기랄!’
장사우는 뻘쭘한 모습으로 신황의 일행 앞에 서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모르지만 가슴이 갑갑한 것이 해소된 것은 좋았으나 다음에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할지 감을 못 잡았기 때문이다.
그때 그의 마음을 알았는지 초관염이 딸기코 얼굴 가득 한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네가 의술을 안다고 하였느냐?”
처음 보는 노인의 뜬금없는 질문에도 장사후는 공손히 대답했다.
“의술이라 할 것도 없습니다. 그게 오다가다 들은 것 몇 가지로 몇 분 보살펴 드렸던 것뿐입니다. 만약 제대로 된 약이라도 있었다면 그런 모험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대상이 빈만가의 사람들이라고?”
“그들에게는 저의 보잘 것 없는 의술도 절실해 합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장사우의 얼굴에는 자랑스러운 빛이라거나 자신의 공을 내세우려는 표정 따위는 전혀 없었다.
그저 당연한 일을 했다는 그 얼굴에 초관염은 매우 흡족한 얼굴을 하였다. 그리고 또 물었다.
“부모님은 무엇을 하느냐?”
“빈민가의 사람들이 모두 아버지고 어머니지요.”
전혀 부끄러움이 없는 떳떳한 목소리, 장사우의 목소리에는 거침이 없었다.
그는 고아다. 평생 이곳 빈민가에서 벗어나 본적이 없는 고아가 바로 그였다. 그를 키운 사람들이 바로 빈민가의 사람들이었다.
때문에 그는 빈민가 사람들을 위해서 오다가다 주워들은 민간요법으로 민빈가의 사람들을 돌봤다.
비록 방법이야 서투르고 모자랐지만 워낙 지극정성으로 사람을 대했기에 빈민가의 성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것을 매우 부끄러워했지만.
오늘도 그는 한 사람을 묻고 오는 길이다.
망자를 보내고 오는 길은 언제나 타는 듯한 갈증이 나기에 있는 돈을 모두 털어 이객잔에서 술을 마셨고, 그 와중에 조금 전의 일이 일어난 것이다.
초관염은 그 사정을 모두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스런 미소가 어렸다.
“넌 의술을 배워볼 생각이 있느냐?”
“예?”
뜻밖의 말에 장사우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초관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대로 된 의술을 배워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의술을 말.....입니까? 물론 배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왜 그런지 장사우는 말을 더듬으며 끝까지 잇지 못했다.
“왜 그러느냐? 의술을 배우기 싫으냐!”
“그...게 아니라 제가 이곳을 떠나면 이곳 사람들이....”
그제야 이유를 깨달은 초관염이 더욱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네가 원한다면 이곳에 있어도 된다. 처음부터 고급의 의술을 알려줄 생각은 없다. 난 단지 네가 의술을 배울 기반만 만들어줄 뿐이다. 그래도 좋다면 나를 따르거라.”
“어........르신은 누구십니까? 누구신데 저에게 의술을........”
“내가 성수신의(聖手神醫)다.”
“어...르신이 서..성수신의라구요?”
“그렇다! 내가 성수신의다.”
장사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찌 모를까? 의술에 뜻을 둔 자라면 그 누구라도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이 바로 성수신의 초관염이다. 강호 제일의 의술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돈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
필요한 사람에게는 의술을 베풀고 대가를 원하지 않는다. 의술이 인술이란 말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 바로 초관염이었다.
웅성웅성~
객잔 전체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제까지 사태가 돌아가는 상황을 보던 사람들은 성수신의 존재에 경악을 하며 떠들기 시작했다.
비록 남궁영 일행이 후기지수중 최고의 명성을 얻고 있는 인물이나 초관염에 비할 수는 없었다. 그만큼 초관염은 존경받는 사람이었다.
초관염은 장내의 술렁거림에 상관없이 장사우에게 물었다.
“어찌 할 생각이냐?”
“가르쳐 주십시오. 성심으로 배우겠습니다.”
“구배를 하거라.”
장사우는 망설임 없이 그에게 구배지례를 올렸다.
초관염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파격적인 일이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이제까지 제대로 된 제자 한명 두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지닌바 재질보다 의원으로써의 마음을 보고 사람을 골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각박하게 변해 의원은 인술을 베푸는 것보다 가진 돈가 지위로 사람들을 대했다. 때문에 이제까지 변변한 제자 하나 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의원으로써의 마음을 갖춘 장사우를 만났으니 어찌 마음이 흐뭇하지 않을까!
이제 무림맹으로 가면 어떤 위험이 그를 기다리고 있을지 몰랐다. 그는 그전에 장사우라는 소년에게 자신의 의술이 맥을 끊이지 않도록 전수하고 싶었다.
장사우가 붉게 상기된 얼굴로 일어서자 초풍영이 그에게 인사를 했다.
“숙부님의 제자가 된 걸 축하해! 비록 엉뚱하긴 하지만 그래도 돌팔이는 아니니까 배워두면 많은 쓸모가 있을 거야.
난 무당파의 삼제자인 삼절검 초풍영이라고 해.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 무림의 배분으로 봐도 그게 맞을 거야.”
“혀....형님! 잘부탁드리겠습니다.”
얼떨결에 인사하는 장사우,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반가워! 난 홍염화라고 해. 잘부탁해! 초 오라버니하고는 친남매처럼 지내니까 누나라고 불러.”
“반...갑습니다. 누님!”
“호호~! 제법 귀여운 동생인걸.”
장사우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얼굴을 수습하며 신황을 바라봤다. 이제 탁자에는 오직 신황만 남았기 때문이다.
신황은 잠시 장사우의 얼굴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신황이다.”
“아~!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장사우는 아무것도 모른 채 꾸벅 고개를 숙였으나, 순간 장내는 지독한 정적이 감돌았다.
객잔에 있던 사람들은 순간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신황이라니?
요 근래 강호에서 제일 유명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한번 손을 쓰면 피를 반드시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고 피를 보기 전에는 결코 멈추지 않는 남자, 그가 바로 신황이었다.
더구나 이제까지 그가 상대한 사람들을 보면 그야말로 입이 딱 벌어진다.
천산파와 당문, 서안에서 수많은 무인들, 그리고 은밀하게 퍼져가는 소문이지만 팽가에서도 그가 혈겁을 일으켰다고 했다.
그리고 어떻게 밖으로 새어나갔는지 모르지만 팽가의 가주인 팽만우도 꺾었다고 소문이 나고 있었다.
그 때문에 무림에서는 일광(一狂), 이선(二仙), 삼존(三?), 사제(四帝)로 대변되는 대륙십강에 신황의 칭호인 명왕을 더해 일왕(一王)이라 부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륙십강과 동등한 명성, 아니 손속의 잔인함이나 처절한 수법 때문에 그들보다 몇 배는 더 흉악한 살명(殺名)을 날리고 있었다.
그런 신황이 지금 자신들과 같은 자리에 있다니, 사신과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그 사실을 몰랐다니, 그들은 마치 가시방석위에 앉은 기분이었다.
“꿀~꺽!”
누군가의 입에서 마른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만약 섣불리 입을 열었다가 신황의 비위를 건드리기라도 한다면 어떤 후환이 다가올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남궁영의 얼굴은 보기 싫게 일그러져 있었다.
‘젠....장! 하필 명왕이라니.’
꼴이 우습게 되었다. 감히 명왕을 앞에 두고 술수를 썼으니,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한편 불광과 혁련혜의 얼굴에도 경악의 빛이 떠올랐다. 분명 고수일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명왕이라니.
반대로 신황의 명성을 아직 모르는 남궁유선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이런 호들갑을 떠는가하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지독한 침묵에 흽싸인 객잔, 침묵을 깨뜨린 것은 설아였다.
크르릉~!
설아는 이제까지 자리 잡았던 신황의 어깨에서 내려와 낮게 울었다.
“휴~!”
“아!”
그제야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왜인지 모르지만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기점으로 숨을 쉬어도 될 것 같았다.
장사우는 사람들이 왜 그런지 이유를 모르기에 그저 쑥스러운 듯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초관염은 그런 장사우를 보며 말했다.
“의자에 앉거라.”
“예! 스승님”
장사우는 매우 예의 바른 모습으로 초풍영 옆의 빈 의자에 앉았다.그때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그들에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하하하~! 어르신께서 출중한 제자를 얻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오늘은 제가 한턱 거하게 낼 테니 마음껏 드십시오.
마침 어르신하고 신대협에게 무언가 보답하고 싶었는데 잘되었습니다.”
바로 옆 탁자에서 표사들과 같이 술을 마시던 목유환이었다. 그는 이제까지 표사들과 조용히 술을 마시다 초관염이 제자를 얻자 자신의 일처럼 기뻤다.
“하하~! 고맙네. 마침 주머니속의 돈이 딸랑거려 슬슬 걱정이 되던 차였는데, 내 고맙게 얻어먹겠네.”
“무슨 말씀을요. 부족한 게 있으면 말만 하십시오.”
“하하하! 알겠네.!”
그렇게 예정에 없던 일행이 하나 늘었다.
이제 남궁영 일행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비록 남궁영 일행이 명성이 대단하다고 하나 어디까지나 후기지수 중에서였다.
그에 비해 신황 일행은 무게감이나 존재감에서 남궁영 일행에 비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그런 사람들의 관심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조용히 잔을 나눴다.
그때 신황 일행을 향해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로 남궁영 일행이었다.남궁영은 어색한 얼굴로 신황에게 인사를 했다.
“반....갑습니다. 신대협! 평소 대협을 흠모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저는 남궁세가의 남궁영이라고 합니다.”
이에 광불과 혁련혜 등이 줄줄이 인사를 했다.
“아미타불! 천하에 이름이 높은 신대협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전 소림의 광불입니다.”
“전 혁련헤라고 해요. 마선(魔仙) 혁련후 대협께서 저의 아법님이죠.”
“남궁유선입니다.”
줄줄이 인사를 하며 자신을 소개하는 남궁영과 사람들, 그러나 그들을 바라보는 신황의 시선은 무심하기만 하였다.
무심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신황, 단지 그것뿐인데 그들의 등 뒤로 한줄기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그때 홍염하가 껴들지 않았다면 그들은 계속 엉거주춤 서있어야 했을지 몰랐다.
“신가가! 인사를 하러 온 사람한테 왜 그래요? 대답이라도 해줘야 예의죠.”
그녀의 재촉 때문인지 아니면 원래부터 말을 할 생각이었는지 신황의 눈빛을 차갑게 빛내며 입을 열었다.
“우선 인사를 해야 할 사람을 잘못 고른 게 아닌가? 우리 일행 중 가장 연장자는 바로 초 어르신이다. 강호상에서의 명성이나 배분도 그렇고.”
순간 남궁영과 사람들이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신황은 마치 강호에서의 명성만 쫒아 신황에게만 아는 채를 하는 자신들을 비웃고 있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들은 서두러 초관염에게 분분히 인사를 했다.
그들의 인사를 받으며 초관염은 그제 웃었다. 그들의 결례가 분명했으나 제자를 얻은 자리에서 굳이 문제 삼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난 괜찮으니 자리에들 앉게나. 그나저나 대단들하군, 남궁가의 첫째 공자와 고명딸, 소림사의 다음 대 수호승으로 꼽히고 있는 사람과 마선 혁련후 대협의 고명딸이라니, 허허~!?
말은 그렇게 하지만 그리 놀라는 눈치가 아니다.광불이 합장을 하며 말했다.
“그저 속세에서 붙여준 허명입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하하하~! 소림의 다음 대 수호승이 허명이라면 누가 있어 이름을 내세울 수 있겠는가?”
그나마 광불은 웃으며 말했지만 남궁유선의 표정은 그야말로 걸레를 씹은 듯한 표정 그 자체였다.
대단한 가문에서 떠받들만 받고 자란 이 철부지의 아가씨는 자신을 무시하는 신황의 태도에 크게 마음이 상한 것이다.
때문에 자연 그녀의 표정은 좋지가 않았다. 다만 일행들이 모두 신황이란 사람을 어려워하는 것 같았기에 말을 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네들도 천하대회의 때문에 왔는가?”
“그렇습니다. 사문에서도 견문을 넓혀 주기 위해 허락한 일입니다. 그리고 덕분에 어르신하고 신대협을 볼 수 있으니 헛된 발걸음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그의 눈은 신황을 향해 있었다.
아무리 많이 봐도 서른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신황의 명성은 강호의 최정상을 달리고 있었다. 자신과 불과 몇 살밖에 차이나지 않는 나이에 말이다.
아마 다른 대륙십강의 인물들 역시 신황과 같은 나이에 이런 명성을 얻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볼수록 신황에게 경외심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주저하며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너무나 무심한 신황의 태도 때문이다.
결국 대화는 오래 이어지지 못하고 광불과 남궁영 등은 몇 마디 말도 못하고 다시 자리로 돌아와야 했다.
상황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하필 남궁영이 장사우에게 암수를 썼고, 또 그 암수를 신황이 눈치 챘고, 장사우가 다시 초관염의 제자로 들어갔으니.
이것은 처음부터 꼬여도 너무 꼬였다. 도대체 어떻게 손을 써볼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서 남궁유선은 나직이 분노를 터트렸다.
“아니 자신이 강하면 얼마나 강하다고 저 유세에요? 나 참 기가 막혀서.”
언제 이렇게 철저하게 외면을 당해봤을까? 생각할수록 기가 차는 남궁유선이었다.
하지만 남궁유선과는 반대로 혁련혜의 표정에는 흥미로운 빛이 떠올라 있었다.
‘이제 삼십대 초반의 나이로 대륙십강의 반열이라.........’
그녀는 신황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을 느꼇다.
그리고 그런 혁련혜의 마음을 눈치 챘는지 남궁영의 얼굴에는 질투의 빛이 떠올라 있었다.
신황은 장사우를 잠시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들어가려는가?”
“제가 이곳에 있어봐야 사람들만 힘들어할 것 같군요."
초관염의 말에 신황이 주위를 둘러보며 대답했다.
지금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은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있었다.
행여나 무의식중에 재채기라도 나올까 입을 다물고 있는 상황, 수많은 사람들이 오직 신황의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그제서야 주위상황을 눈치 챈 초염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네! 그럼 먼저 들어가서 쉬게나. 난 제자아이와 함께 더 술을 마시다 들어가겠네.”
“천천히 들어오십시오.”
신황은 초관염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도요. 나도 같이 들어가요.”
그때 홍염하가 외치며 신황의 걸음걸이를 같이했다.
무심한 신황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홍염화는 신황의 옆에 바짝 붙어서 안으로 들어갔다.
“휴우~!”
“하~아!”
그제야 여기저기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신황이 사라지자 장내를 억누르고 있던 지독한 기운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명왕이라더니! 정말 명불허전이구만.”
“난 숨이 콱 막혀 죽는 줄 알았어.”
“이제야 겨우 살 것 같구만.”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탄식이 터졌다. 그들은 신황이 사라진 곳을 보며 자신들이 신황을 봤다는 사실을 안주삼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들 같은 평범한 무인들에게 있어 신황과 같은 무인을 만나는 일은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었다.
아마 오늘 신황을 만난 일은 다시 재생산 되어 다른 친구들과의 술자리에 안주로 오를 것이다. 오늘은 그들 생애 최고의 날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상관없이 초관염은 홍염화의 이야기를 했다.
“허~! 저 아이가 무이 백부에게 정을 주고 있는 모양이구나.”
“뭐, 잘 어울리지 않습니까? 형님처럼 무심한 사람 옆에는 염화같은 아이가 어울린다고 봅니다.
솔직히 염화 같은 성격 아니면 누가 형님 옆에 있으려고 하겠습니까? 어떤 때는 나도 살이 떨리는데요.”
“그거야 그렇지만 저 아이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겁이 나는구나. 무이 백부가 좀 무심해야지.”
초관염의 걱정 섞인 음성에 초풍영이 술잔을 확 들이키며 말했다.
“캬하~! 좋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숙부님. 혹시 압니까? 염화 덕분에 형님의 성격이 좀 부드러워질지.”
“허허~! 설마.”
“하하하~! 그건 좀 아니지요.”
자신이 말해 놓고도 쑥스러운지 초풍영은 웃음을 터트렸다.
만약 신황이 여자 때문에 마음이 약해진다거나 결정을 번복한다면 그는 더 이상 신황이 아닐 것이다. 그것은 신황의 존재 자체를 스스로 거부하는 것이니까.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술이나 마시자. 사우는 조금만 마시거라. 네 나이 때 너무 많이 술을 마시면 뇌가 빨리 노화한다.”
“예! 스승님.”
초관염의 말에 장사우는 공손히 대답했다.
지금 장사우의 얼굴에는 얼떨떨함과 초관염에 대한 존경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누가 알았을까? 의창의 빈민가에 사는 자신이 강호제일의 신의라는 초관염의 제자가 되리라고 그는 이 뜻밖의 행운이 꼭 자신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너의 고생길도 훤하구나. 정말 내 숙부라서가 아니라 저 양반 성격, 정말 장난 아니거든.
넌 분명 숙부님의 제자가 된 걸 후회할 날이 올 거야. 그때 후회해봐야 늦었으니 잘 생각하라고. 지금이 물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
“예?”
초풍영의 주절거림에 그만 입을 벌리는 장사우, 그 순가 초관염이 혀를 차며 초풍영의 뒷통수를 때렸다.
따~악!
“크~아! 숙부님”
“시끄러웟! 녀석아. 그게 애보고 할 소리냐? 하여간 영약 먹여 키워놓았더니 술주정이나 부리고.”
“무슨 술주정........”
“하여간 무당파가 망할 날도 멀지 않았어. 이런 주정뱅이가 무당파의 삼제라리.”
“숙부님!”
“술이나 마셔. 이놈아!”
“크으~!”
그렇게 두 사람이 투닥거리고 있을 때 반대편 탁자에 있던 혁련혜의 시선은 신황이 사라진 문을 향해 있었다.
“홍...염화라? 확실히 잘난 사람에게는 계집이 따라붙는군. 뭐, 상관은 없겠지만.”
이제까지 그녀는 자신이 욕심낸 것은 모두 소유했었다. 그것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말이다.
마선(魔仙) 혁련후. 혁련혜의 아버지이자 대륙십강에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절대무인은 그녀의 소원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들어줬으니까.
“뭐, 나중에 두고 보면 알겠지. 홍염화라....”
그녀는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술잔을 들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보는 남궁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무림맹 자소청, 무림맹의 문상인 제갈문의 거처에 몇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제갈문은 자신의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별다른 표정이 없던 제잘문의 얼굴은 요즘 들어 더 한기가 돌았다.
때문에 그의 측근들마저도 그에게 쉽게 말을 못 붙이는 상황이 계속됐다.
지금도 제갈문의 부하들은 그런 제갈문의 분위기에 억눌려 쉽게 말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제갈문의 말문이 열린 것은 한참후의 일이었다.
“경과는?”
“열다섯 군데 중에 열 군데에서 성공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열 군데라........생각보다 실패한 곳이 많군.”
“그들도 위약금 때문에 상당히 신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은 눈치 챘을 것이고, 그래서 대비를 했겠지. 여하튼 이제 숨통이 좀 트이겠군.”
제갈문은 자신의 비밀 정보조직인 비각(?閣)의 각주 비영의 보고를 받으며 나직이 중얼거렸다.
이제 열 군데에서 위약금이 들어온다면 무림맹의 운용에도 숨통이 트일 것이다.
“뭐, 파산하는 표국들에겐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지. 당장 우리 코가 석자니 말이야.”
사실 요즘 무림맹의 재정은 말이 아니었다. 들어가는 돈은 많은데 들어오는 돈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제갈문은 특단의 조취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황주상단이란 신흥상단 덕분에 요즘 무림맹이 직접 운영하는 무령상단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었다.
예산이 정해져 있는 무령상단에 비해 황주상단은 거의 무제한에 가깝게 돈을 뿌리고 다녔다. 덕분에 이제까지 무령상단과 무림맹은 자금의 압박을 심하게 받고 있었다.
그 타개책으로 제갈문이 생각해낸 것이 바로 표국을 이용한 돈벌이였다.
얼마 전 그들은 심혈을 기울인 끝에 강소성의 어느 무덤에서 그들이 원하는 물건을 찾을 수 있었다.
무림맹의 재정난을 해결하면서도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는 일석이조의 방법, 그것이 바로 중원의 중소표국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무림맹과의 안정적인 계약이 조건이라면 비록 조건이 무리하다 싶을지라도 거절할 수 있는 중소표국은 얼마 안된다.
그렇게 제갈문의 미끼에 걸려든 중소표국에 무덤에서 출토된 물건이 인계되었고, 다시 그것을 무림맹의 비밀조직이 빼앗았다.
그리고 물건을 빼앗긴 중소표국들에게 남은 것은 방대한 계약금과 파산뿐이었다.
“규모가 큰 표국들이 안 걸려든 것이 아깝군.”
이름있는 큰 표국들은 이번 제갈문의 음모에 걸려들지 않았다.
그들은 나름대로 정보조직을 굴리고 있었기에 이번 무림맹의 계약에 무언가 의혹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덕분에 아무런 정보력도 없는 중소표국들만 무림맹의 제의에 얼씨구나 하고 달려들었다 파산이란 날벼락을 맞게 되었다.
“그럼 물건은 모두 회수되었나?”
“우리가 뺏앗은 것이 열 개, 그리고 표국의 손을 거쳐 들어온 것이 네 개, 남은 것은 한 개인데 그것도 내일이면 회수될 것으로 보입니다.
마지막 물건을 가진 표국이 오늘 의창에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런가?”
제갈문의 말에 비각주 비영은 잠시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제갈문은 시간이 흘러도 비영의 이야기가 없자 제갈문이 뒤를 돌아봤다.
“왜 그러는가?”
“저...그게!”
“자네답지 않게 왜 그러는가? 속 시원히 말해보게.”
“그...그것이....마지막 물건을 가져온 표국과 함게 명왕이 들어왔습니다.”
“...........”
순식간에 방안에 냉기가 흘렀다.
제갈문의 얼굴은 냉혹하게 변했고, 그 기세에 사람들은 숨을 죽인 채 그의 눈치만 살폈다.
한동안 말이 없던 제갈문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입을 열었다.
“그가 이곳에 들어왔단 말인가?”
“지금 의창의 한 객잔에서 표국의 인물들과 같이 머무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아마 내일쯤 무림맹으로 들어오지 않을까 추측이 됩니다.”
“신.....항. 감히 겁도 없이 이곳에 기어들어 오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제갈문이 이빨을 뿌득 갈았다.
자신의 딸을 죽인 원수가 감히 자신의 앞마당에 들어오다니,
이것을 겁이 없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그만큼 자신이 있다고 봐야하나? 그는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는 것을 느꼈다.
“크큭~! 신항, 잘 됐군! 그렇지 않아도 무언가 미진하다 생각했는데 제 발로 이곳까지 기어들어오다니.”
“..........”
혼자서 키득거리는 제갈문의 모습에 비영은 등 뒤로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평상시 고고하고 냉철한 모습만 보여주던 제갈문이다.
그러나 지금 제갈문의 모습에서는 그런 이지적인 모습 따위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상처를 입어 광기를 뿌리는 짐승이 있다면 지금 제갈문의 모습일 것이다. 그만큼 제갈문의 모습은 사람을 섬뜩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비영은 한참이 지난 후에야 어렵게 말문을 열었다.
“지금 그를 치시겠습니까?”
“아니다! 일단 놔둔다. 지금은 천하대회의가 우선이니까.”
“알겠습니다.”
제갈문의 얼굴에는 섬뜩한 빛이 감돌았다.
“천하대회의가 끝나는 순간 가장 처참하게 그를 사냥한다. 그때까지 방안을 강구해 보도록.”
“알겠습니다.”
“신황! 이곳에 들어온 것을 후회하게 될 것이다. 피눈물을 흘리며 후회하게 만들어주마.”
제갈문은 마치 미친 사람처럼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 광기어린 모스에 중인들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마치 바위처럼 굳어있어야 했다.
다음날, 북로표국과 목유환등은 무림맹 내부로 들어갔다. 표물을 전해주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초관염과 초풍영은 간밤에 과음을 한 덕분에 시체처럼 쓰러져 일어나지를 못했다.
때문에 신황은 그들을 그냥 놔둔채 홍염화, 장사우와 함께 객잔을 나섰다.
신황이 향한 곳은 의창의 번화가에 있는 한 기루였다.
춘영루(春榮樓), 의창에서 제일 규모가 크고 미모의 기녀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최소한 이곳 의창에서만큼은 사내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바로 춘영루였다.
춘영루의 정문에 들어서자 문을 지키고 있던 남자가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
그도 그럴 것이 해가 뜰 무렵부터 기루를 찾는 것도 그랬고, 또한 찾아온 일행이 웬 무심하게 생긴 남자와 제법 예쁘장하게 생긴 여인, 그리고 아직 수염도 안 난 소년이다.
“무슨 일입니까? 아침부터는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그 순간 나선 사람은 홍염화였다.
차륵~!
소매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남자의 눈앞에 보이는 홍염화, 남자의 안색이 대번 바뀌었다.
그녀가 꺼내 보인 것은 조그만 방울이었다. 은색에 몇 가지 문양이 들어간 조그만 방울, 그것은 바로 홍염화의 신분을 증면해주는 신물이었다.
“총사님을 뵙니다.”
쿠~웅!
남자가 무릎을 꿇으며 그녀를 맞았다.
홍염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를 안으로 안내해요. 그리고 이곳의 책임자 들어오라고 전해요.”
“존명~!”
남자는 대답과 함께 일어나 공소한 태도로 홍염화와 일행을 안내했다.
그가 안내한 곳은 이곳 춘영루에서도 제일 화려한 객실로 귀빈을 맞이할 때만 특별히 이용하는 곳이었다.
일행을 안내한 남자가 물러간 후 신황이 입을 열었다.
“총사라.....그것은 네가 맡고 있는 지위냐?”
“일단은요. 전 귀찮다고 했는데 사부님이 억지로 떠맞긴 거에요. 하지만 이제까지 한 번도 일을 해본적은 없는데 오늘 요긴하게 쓰이네요. 헤헤~!”
홍염화가 쑥스러운 듯 자신의 머리를 긁적였다.
한편 기루를 처음 들어와 본 장사우는 방안의 장식이 신기한 듯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제까지 빈민가에서 대부분의 삶을 살아온 그가 언제 이런 화려한 곳을 구경했을까? 그에게 이곳은 그야말로 별천지나 마찬가지였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문밖에 누군가의 인기척이 들렸다.
“총관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세요.”
낮선 남자의 목소리에 홍염화가 사뭇 위험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러자 조심스럽게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방안으로 들어오자 홍염화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했다.
“미리 연락을 주시지 않아 영접하는 것이 늦었습니다. 총사님! 전 이곳 춘영루의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남문용이라고 합니다.”
전 중원의 기루에서 총사의 신분은 하늘이나 마찬가지였다. 감히 일개 기루의 총관은 감히 얼굴도 올려다보지 못할 만큼 지고한 신분인 것이다.
때문에 그의 태도는 극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홍염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리에 앉으세요.”
그녀의 말에 남용문이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그런 남문용을 보는 홍염화의 얼굴엔 뜻밖이란 빛이 떠올라 있었다. 원래 기루의 총관이라는 역할은 일선에서 물러난 나이든 기녀들이 맡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곳 의창처럼 중요한 곳일수록 노련한 기녀가 맡게 된다. 그래야 여러 가지 일들을 원활하게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남자가 이곳 의창에서 총관을 맡았다면 그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남문용이 자리에 앉자 신황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어렸다. 뜻밖의 신황의 웃음에 홍염화가 영문을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곧 밝혀졌다.
신황이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오. 남형!”
“아~!”
순간 남문용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그는 신황에게 인사를 하며 말했다.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는지요? 그런데 무이는 어디 있습니까? 어째서 신대협 혼자서만..........”
“그 아이는 자기의 외가에서 잘 지내고 있소. 얼굴을 보니 병은 다 낫은 것 같구려.”
“덕분에 모두 완치 되었습니다. 소루주님께서 신경을 써주시던 덕분에 병도 모두 낫고 이곳에서 총관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모두 신대협 덕분입니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남문용, 그는 예전 신황이 서안에서 머물렀을 때 환영루의 지보인 만화미인첩 사건에 휘말렸던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위해 만화미인첩을 훔쳤다. 군웅들에 의해 처참하게 살해됐고, 그 역시 위험에 쳐했었다. 그런 그를 살려준 것이 신황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목숨을 구원 받아 이곳 환영루의 기루 중 한곳을 운영하며 살 수 있었다.
때문에 그는 신황을 자신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었다.홍염화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의외란 듯 말했다.
“에~! 두 사람 아는 사이였어요? 그럼 잘 됐네요.”
“제가 신대협에게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제생명의 은인이십니다.”
“아~! 그렇구나. 또 그런 인연이 있었네.”
홍염화가 감탄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남문용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침부터 이곳을 찾으셨으면 필경 급한 일 때문에 찾으신 것 같습니다.”
“아~! 그렇게 급한 것은 아니고 몇 가지 알아볼게 있어서 왔어요. 신가가~!”
홍염화는 신황에게 다음 말을 떠넘겼다. 신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어 말했다.
“몇 가지 알고 싶어 이곳으로 왔소. 우선 무림맹과 계약한 표국들의 사정을 알고 싶소.”
“그렇지 않아도 그 문제 때문에 만화장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무림맹에서 계약한 표국들이 요즘 습격을 당해 큰 손해를 입었더군요.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주느라 도산하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때문에 저희도 사건에 의구심을 갖고 정보를 추적하고 있습니다.
만약 무언가 밝혀내는 게 있다면 제일 먼저 신대협에게 알려드리겠습니다.”
남자들의 입은 여자들 앞에서 무엇보다 가볍게 변한다. 특히 마주하는 여인이 미모를 갔췄다면 더 말 할 나위 없다. 덕분에 이곳에는 늘 정보로 넘쳐난다.
신황은 예의 흐릿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무림맹 내부의 동향을 알고 싶소. 최근 무림맹의 움직임과 내부사정을 자세히.”
신황의 말에 남문용이 홍염화를 바라보았다. 지금 신황이 말하는 것은 황영루에서도 특급기밀에 속하는 것으로 홍염화 정도 되는 인물만 볼 수 있는 정보다.
때문에 그가 아무리 신황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하더라도 함부로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홍염화에게 눈으로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홍염화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모두 알려드리세요. 사부님의 뜻입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지금까지 본루에서 파악한 것을 책자로 정리해서 신대협이 계신 곳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
“고맙소!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갈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데 그의 습관부터 출신, 무공수위, 성격까지 모두.”
신황의 말에 남문용이 난처한 얼굴로 말을 했다.
“지금 말씀하시는 게 무림맹의 문상인 제갈문이라면 좀 곤란합니다. 그는 매우 용의주도한 인물로 빈틈이 없습니다.
절대 외인이 접근할 틈을 주지 않습니다. 또한 정보를 철저히 통제하기 때문에 저희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일반적인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저희가 알고 있는 것은 그저 그가 제갈세가의 인물이라는 것 정도입니다..”
“그런가?”
남문용의 말에 신황이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그때 장사우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제갈문상에 관한 것이라면 제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네가 말이냐?”
“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그분이 우리들이 사는 구역에 은밀히 나타난다는 말이 있어요.
이제까지야 관심이 없어서 신경을 안 썼지만 신대협이 알고 싶다면 제가 아이들한테 당부를 해놓겠습니다.”
빈민가의 사람들은 모두 장사우를 따른다. 그들의 실질적인 정신적 지주가 바로 장사우였기 때문이다.
신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부탁을 하마. 단 아이들이 위험하지 않게 조심하도록 당부 하거라.”
“알겠습니다.”
신황의 입가에 서린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비록 상대가 무림맹이란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있지만 분명히 어딘가에 틈이 있을 것이다.
신황은 그 틈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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