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히 생각을 해봐도 서울역에서 표를 끊어서 기차를 타 본 지가 얼마만인지 얼른 계산이 안된다. 20년은 족히 되나보다. 감개무량하다면 표현이 좀 과장된 건가? 열차로 가기로했던 당초 계획과는 달리 승용차로 가자는 우리 팀 조장 고동준의 제안을 마다하고 굳이 서울역으로 나온 나의 선택에 재삼 만족한다.
역(驛)이란 곧 여행을 뜻함이요, 인생 또한 여정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역내로 들어가는 入口를 쳐다보니, 그것은 어느새 인생이라는 이름의 커다란 고래가 먹이를 빨아 들이려고 입을 한껏 벌리고 있는 형상으로 변해져 있다. 바로 그 앞에는 인생의 집요함에 지쳐서 풀죽은 모습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있는 남자, 혼자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계속 지껄이고 있는 여자, 검문하는 경찰에 큰소리치며 무대뽀로 대드는 사람, 등등등. 역 밖에서는 이상하게도 이처럼 그늘진 구석에 눈길이 많이 쏠리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내가 역 밖에서 기웃거리기를 한참 하다보니 정신이 온전치 않은 듯 싶은 어느 노인 한 분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면서 나와 동무하자고 싱글거리면서 따라다닌다. 위험스럽지는 않게 보여서 무시하고 내 호기심 채우는 일에만 열중했지만 결국 이를 재미있다고 쳐다보는 남들의 눈길을 감당하지 못하고 역 안으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사진설명: 역 앞에는 직경 2미터 정도 크기의 원형 기념판이 바닥에 박혀 있었다.)
역 안으로 들어서니, 아니, 고래의 뱃속으로 들아가 보니, 이곳은 바깥과는 딴판이다. 고개숙인 사람은 찾아 볼 수가 없다. 고래 뱃속이 워낙 크다보니 이들은 자기들이 어디에 갇혀있는지조차 전혀 인식하지 못한 채, 모두들 자기 갈 길만 찾아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 뿐이다. 의자에 앉아서 TV를 보는 사람들도 전광판 안내를 보면서 연신 시간을 확인하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과 조명등에서 뿜어내는 열기에 나는 가져온 부채를 부치면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렸다.
나이 든 사람들이 대부분 TV를 보고 있는 반면 젊은이들은 역내 깊숙한 곳에 있는 무료PC방에서 게임을 즐기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그 뒤에 보이는 서점에 들어가서 컴퓨터, 여행, 베스트셀러 코너등을 돌면서 책들을 들척이다가 열차출발 10분전이 되서야 개찰구로 서둘러 갔다. 약 40분이나 되는 시간을 서울역에서 재미있게 보냈으니 이 또한 여행이 주는 즐거움 아닌가.
4번 트랙으로 내려가니 순천행 무궁화호열차가 시원스레 쭉 뻗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깨끗한 모습에 놀랐다.
자아, 출발이다. 여기 저기 빈 좌석이 많이 눈에 띈다. 영등포, 수원역을 지나면서 다 들어 차겠지... 함께 가기로 예정했던 친구들이 승용차편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서울역에서 탄 사람은 나 뿐이니 좀 허전한 생각이 든다. 수원에나 가야 상호가 합세하겠구나.
한강철교를 건너서 영등포를 지나고 수원에 도착하니....
상호가 열차내로 들어선다. 짜아식, 재수도 좋지, 어느 글래머 여성옆에 앉는다. 내옆에는 영등포역에서부터 어느 젊은이가 앉자마자 눈을 감고 꿈쩍을 안하고 있는데...
2시간 동안의 무궁화호 여행은 쾌적하고 즐거웠다. 이제부터는 기차여행을 더 자주하겠노라고 내심 다짐을 했다. 7시 30분 서대전역에 도착하니 길다람쥐가 눈이 감춰지는 특유의 웃음을 띄우고 마중을 나와줬다. 비는 연신 내리고 있었는데 역앞 도로교통사정이 않좋다고 조바심을 내는 황형이 봉고차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봉고차 뒤를 길다람쥐가 따라오고, 목적지로 가는 도중 어딘가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나종문차(고동준, 심오원) 그리고 이준노차와 합류했다. 도합 4대의 차량이 비상등을 켜고 어두운 빗길을 뚫고 도심을 벗어나 변두리길을 가다가 산속의 좁은 길을 궁금증이 솟을 만큼이나 한참 동안을 들어가더니 사면이 코앞의 산으로 막혀 있다고 산막골이라고 불려지는, 더 갈 데 없는 막다른 곳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 골짝 안에는 이웃이라고 해봐야 두 세 채밖에 없는 것 같았다.
인기척에 개 짖는 소리가 한 마리에서 여러 마리로 퍼지면서 코러스를 이룬다. 널찍한 홀에 노래방 음향기기가 한 쪽이 보이고 그 옆에는 우리가 숙박할 룸이 2개가 보였다. 홀의 창문은 커다란 통유리 몇 개로 이루어져서 바깥이 잘 보이도록 지어져서 밖을 내다보는 내 눈이 다 시원하다. 창밖엔 크지 않은 삼각산이 지척에 서 있었지만 밤비 탓에 흐미하게 보일 뿐이고 텃밭위로는 줄기차게 내리는 빗줄기만이 가로등 불빛에 비추어져서 을씨년스럽다. 쉬 그칠 비가 아니로세. 미리 준비를 해놓고 있었는지 음식이 곧 차려졌다. 첫 잔을 부어 '자~, 반갑습니다.' 힘차게 건배를 올렸다.
한 상엔 동충하초 오리고기 전골이, 다른 한 상에는 영양탕이 준비됐는데, 서로들 맛이 좋다며 손놀림이 빨라진다. 개고기에 대해 다소 편견이 있는 나도 맛있게 포식했다. 집에 가면 밤톨이가 나를 어찌 대할 지 은근히 신경이 쓰이긴 했다. 일 차분을 다 먹은 다음에 메뉴를 서로 맞바꿔서 주문을 더 했는데 그마저 역시 알뜰이 먹어 없애는 식성들을 과시한다.
육구사영 입학 첫 모임에서 '나, 종문이요.' 라고 자기소개하던 이 친구 돈욕심 만큼이나 식탐이 대단하네...
'저 풍선이 언제 터지려나...' 위태스러워서 비껴선 듯한 포즈의 심형 뒤로 가로등불이 평화롭다. 참, 올까 말까 몇번인가를 망설이던 조평화는 결국 무슨 생각을 가졌기에 안오기로 결심을 한 걸까...?
그렇게들 처먹었으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있으랴. 우중에 우산을 바쳐들고 옥상으로 올라 갔다가 내려와서는 산보를 하겠다고 길을 나선다.
깜깜한 산중 초행길에 웬 산보? 몇걸음 못가서 되돌아 오는 수 밖에 없었다. 텃밭 고추밭을 향해서 일렬로 서서 오줌발 시합도 했다. 황형이 자기가 1등이라고 큰 소리를 치는게 아마 십리 밖에서도 들렸을 게다.
오른 쪽의 빨간 우의를 입고 있는 분은, 잘은 모르겠지만, 왼쪽에 보이는 트럭을 미루어 봐서 이 집에 고기 등을 납품하는 업자로 보이는데 길다람쥐와는 전부터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보인다. ㅎㅎㅎ, 미안...
무뎌져 가는 머리와 팔 근육을 단련시키기 위해서 '가다서다'게임을 펼쳤는데, 이 게임을 시작한 이후로 2분기 정기모임에 상정한 의제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서로 호언장담하던 이 게임에서는 심형이 단연 돋보였다. 길다람쥐와 나는 바둑판을 펼쳐 놓고 수담을 나눴는데 종문이가 판세가 여의치 않은지 바둑팀으로 와서는 접바둑에 훈수를 놓곤 해서 급기야는 나와 단판을 붙게 되었다. 왔다 갔다 하면 집중력이 떨어지는 법, 초반에 대마가 잡히자 얼른 불계를 선언하고 '가다서다' 부대로 복귀한다. 새벽 3시 반이 되서야 게임종료. 그리고 4시가 조금 지나니 각 방에서 코고는 소리가 요란해지기 시작한다.
일요일 아침 6시가 조금 지나니 하나 둘 부시시 일어났다가 피곤에 못이겨 다시 잠자리로 가서 눕는다. 이준노는 일어난 김에 약속이 있다면서 아직 자고 있는 친구들에게 작별을 전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나도 2시간을 채 못 잤기에 잠자리에 가서 비몽사몽으로 1시간 반 정도를 더 뒤척인 후에야 일어났다. 나는 그 상황에서도 아침 밥맛이 좋아서 반 그릇을 더 시켜먹었다. 길다람쥐도 마찬가지....
말만 듣던 장태산 휴양림을 산책하니 깨끗한 산냄새 풀냄새 나무냄새가 머리를 맑게 해준다. 길 난대로 조금 걸으니 어느덧 정자가 있는 전망대에 오른다. 물은 흙탕물이지만 수목은 물을 흠뻑 먹고나서인지 생기발랄한 모습니다. 공기가 맑아서 멀리까지도 잘 보인다.
장태산 산보는 1시간밖에 안걸린다. 다시 구봉산으로 이동해서 산행할 계획이지만, 나종문과 고동준은 늦을 수록 고속도로에 차가 밀릴 것이라면서 먼저 귀경한다고 한다. 그래서 헤어지기 전에 기념사진 한 장 찰칵.
정자에는 '장태산에서'라는 제목의 싯귀가 새겨진 현판이 걸려있는데, 내용인 즉슨,
▒▒연록색 떡갈나무 입사귀가 / 골 보다 이뻐 보이던 날 / 나는 비로소 작은 산을 보았네 ▒▒ 먼발치에 동양화 한 폭을 내려다보며 / 푸르디 푸른 수면위로 / 백로 몇 마리쯤 띄여놓고 / 우뚝 선 정자위에서 가야금소리 듣네 ▒▒ 여기 저기 눌러 앉은 / 방갈로를 부러워하며 / 찌든 가슴위에 소나기 한 줄금 내린다면 더욱 좋지! ▒▒ 온갖 잡놈들이 와도 산은 말이 없고 / 그저 넉넉한 산자락을 펼쳐 보이며 / 보고 싶을 때 오고 / 가고 싶을 때 가라네! ▒▒ 울퉁불퉁 생겨먹은 산이라도 / 나는 산과 더불어 살리 / 산을 바라보며 살다가 / 끝내는 산의 품속으로 / 나는 찾아 가겠네!▒▒ (글: 조근호)
장태산은 어느 개인이 별 볼일 없던 이 산에 하늘로 쭉쭉 뻗어서 시원해 보이는 '메다세꼬야'라는 외국산 수종을 식구들을 총동원해서 수 십년간을 공들여 심고 가꿔오다가 숙박, 오락 시설들을 투자해서 수익을 보려 하다가 실패하고 결국엔 대전시에 넘겨지게된 안타까운 사연이 있는 곳이란다.
장태산에서 되돌아 나오는 길에 기성중학교에 잠시 들렀다. 조경에 관심이 많은 심형에게 황교장이 본인의 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모습이다. 운동장과 화단 여기 저기에 들꽃들이 피어 있어 언뜻 보기에는 관리를 소홀히 한다는 지적도 있으나 들꽃들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황교장님의 주장이 이채롭다.
물끄러미 교정을 내려다 보고 있는 이 분도 교장선생님이 무척 되고 싶은 모양이다.
갈 사람 가고, 남은 사람끼리 구봉산으로 갔다. 상호는 잠이 부족해서 차에 남아 한 숨이라도 더 자겠다고 해서 나머지 네명만이 구봉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모두들 수면부족으로 피곤한 상태이기 때문에 세 봉우리만 넘기로 했다. 들머리 초입부터 기분 좋은 코스가 나타난다. 좌우에 소나무가 빽빽하고 길은 완만하면서 꼬불길이기 때문이다. 황형 말따나 심은 나무를 고려하지 않고 비교해 본다면 장태산은 상놈에 지나지 않고 구봉산은 양반산이라는 얘기가 틀리지 않다는 것을 오르면서 실감하게 된다.
첫 봉우리에 오르니 저 아래 아파트 단지가 내려다 보이는데, 오른쪽에 선명히 보이는 단지의 중앙쯤에 황형이 형수님과 알콩달콩 살고 있단다. 그 아파트에서 이 곳 구봉산의 구봉각(정자이름)이 내다 보이고, 기성중핵교 교장실에서도 역시 구봉각이 보인단다. 상대방이 그리울 때 心力을 쏟아 이 구봉각으로 氣를 쏘아 보내면 서로의 그리움이 부딛혀 쌍무지개가 생긴다나 어쩐다나.... 아무튼 이때 돋은 닭살이 아직도 완전히 가라앉질 않는다.
이게 바로 구봉각이다. 안타깝게도 쌍무지게는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질 않는다.
구봉각에서 보는 경치 또한 일품이다. 지금 바라보고 있는 쪽이 장태산 방향이고...,
이곳은 그 반대 방향으로 아파트들이 들어서 있다. 지명과 주변지역들에 대해서 황형의 자세한 설명이 있었긴 하지만 지금 내 머리속에는 하나도 안남아 있다.
구봉각에서 보는 경관의 압권은 바로 이 곳이다. 장태산 방향으로 구봉산 바로 아래에 펼쳐진 모습인데 말굽쇠 모양의 하천이 굽이 돌아가는 모습이 마치 하회마을의 그 것을 옮겨 놓은 듯 하지 않은가? 지금은 지명을 잊었지만 독일의 라인강을 따라 여행할 때도 어느 산날맹이에 있는 유명한 관광지의 식당에서 내려다 보이던 강줄기가 이와 흡사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장태산을 내려와서 우리가 올라갔던 봉우리들이 보이도록 찍은 사진이다. 왼쪽에서 세 번째 봉우리에 구봉각이 작게 보인다. 구봉산은 봉우리가 아홉 개라는 뜻이 아니고 아홉 구(九)자는 옛부터 많다는 뜻을 의미한다고 해서 봉우리가 많다는 뜻으로 구봉산이라 명명하였는데 실제는 열 여섯 봉우리가 있다고 한다. 열 여섯 봉우리를 완주하는데 2시간 정도면 충분하다고 한다. 2주 후에 이곳에 다시 내려와서 완주하기로 약속했다. 앗 무지개가 보이네!!! 형수님이 기다림에 지쳐서 심력을 쓰시고 있나 보다.
이 도라지 꽃을 나만 착각을 해서 핀잔을 들었다. 그러나 이내 우엉을 나만 맞춰서 본전을 찾았다. 사진으로는 보는 것 보다 실제로 보는 도라지꽃의 보라색과 백색의 아름다움운 어울림은 훨씬 보기 좋다.
구봉산을 내려와서 점심은 황형이 한 턱 썼다. 소문난 추어탕집의 분점이라는데 황형은 기성중핵교 앞의 그 집보다 못하다고 불평했지만 우리는 맛만 있었다. 미꾸라지 튀김 한 접시로도 양이 제법 많았는데 탕까지 말끔히 먹어치우니 배터지기 직전이라. 다시 비가 슬슬 뿌리기 시작하고 황형과 아쉬운 작별을 했다. 황형! 철도파업으로 2번씩이나 신경쓰고 준비하시느라 고생 많으셨수. 고맙수. 앞으로 오줌발이 더 쎄지기를 바랍니다.
오후 3시에 출발하였는데 고속도로는 예상보다 아주 잘 뚫렸다. 다만, 기사들(길다람쥐를 대신해서 상호가 한 구간 운전함)이 졸음을 못이겨서 3번이나 휴식을 취하느라 죽전 톨게이트를 5시 40분쯤에 지났다. 30분정도 휴식을 제하면 2시간 10분 정도밖에 안걸린 셈이니 횡재를 만난 듯 기쁘다. 피곤한 가운데서도 안전운전 해준 길과 문에게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한다.
(사진설명 : 어느 휴게소에선가 추어탕점심으로 배가 아직도 많이 부른데 상호가 호도빵과 호떡을 사들고 같이 먹자고 한다. 아무래도 잠이 부족해서 제정신이 아니라고 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이 글을 읽을 때 쯤이면 제정신으로 돌아와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