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 내내 내가 알고 있었던 - 책을 통해 얻었던 지식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다.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의심없이 받아들였던 지식. 교과서에 실려 있으니까, 오래 전부터 그렇게 알고 있었으니까, 믿음이 가는 선생님이나 저자가 그렇게 말하니까 등의 이유로 당연한 듯 받아들이지 않았었나 자문해 본다. 유튜브의 편파적인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듣다가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해서 편협한 사고를 내뱉는 사람들이 떠오른 건 어쩌면 자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좋은 책의 의미가 사고의 확장과 전환을 꾀하는 것이라면 이 책은 좋은 책이다.
갈릴레오가 종교 재판 "마지막 장면에 "그래도 지구는 돈다"같은 중얼거림은 없었다. 정말 그랬다면 더 멋져 보였겠지만, 그러지 않았다. 굳이 '기록'같은 것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p.98)
"극단적인 예가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하고 사형당하는 것조차 감수했다는 이야기 말이다. 한국의 군사독재정권에서는 이 이야기를 인용하며 학교에서 준법정신을 가르쳤다." (p.146)
"그런데 소크라테스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 그 사실을 밝힌 강정인과 권창은의 논문 두 편이 1993년에 발표되었고 언론에서도 크게 다뤘지만, 교과서에서 그 내용을 삭제하라는 헌번재판소의 권고는 2004년 11월에야 내려졌다." (p.147)
<책의 정신>(2002. 북바이북)은 우리게게 끊임없이 질문을 한다. "당신이 알고 있는 지식은 어디까지 진실일까요" 우리 세대의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소크라테스가 죽으면서 "악법도 법이다"라고 말했고, 갈릴레이는 종교재판을 하고 나오면서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학교와 위인전에서 그렇게 배웠는데 내용 수정의 업그레이드할 기회를 만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장점은 그런 우리의 오해를 바로 잡아준다. 그것도 "에밀리 뒤 샤틀레가 썼다는 <프린키피아>의 해설서처럼 아주 쉽게"말이다.
이 책은 2013년 출판되었던 <책의 정신>의 개정증보판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총 다섯 개의 큰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대답을 찾아간다. 목차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좋은 책은 어떤 것인가" - "포르노소설과 프랑스 대혁명"
"무엇이 그런(프랑스 대혁명 같은) 혁명적 생각의 기원이 되었을까?" - "아무도 읽지 않은 책"
"고전은 정말 위대한가?"- "고전을 리모델링해드립니다"
"과학혁명 이후 현대사회를 규정한 과학은 어떤 것이었을까?" - "객관성의 칼날에 상처 입은 인간에 대한 오해"
"책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 "책의 학살, 그 전통의 폭발"
과거 기득권자이 저자들에게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저자가 가지는 가치관이 어떤 형태로 책 속에 녹아 있는가?가 아니라 저자의 글이 자신들의 권익에 도전적이냐, 아니냐였던 것 같다. "갈리레오가 쓴 <두 우주 체계에 대한 대화>는 코페르니쿠스의 이론을 일반인도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쓰였다. 그것도 라틴어가 아니라 이탈리아어로! 학술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속어로 썼다는 것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였다." (p.89)
동.서양을 막론하고 기득권자들은 정보의 대중화보다는 독식을 원했던 것 같다. 정보를 갖는다는 것은 동일한 선상에서 경쟁을 한다는 것인데 기득권자들은 자신들과 대중들이 동일선에 서 있는 것 자체를 불쾌해 했다.
이 책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이 참인지, 거짓인지 궁금한 사람,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접근한 책에 대한 정보를 알고 싶은 사람, 자신의 분야와 다른 글을 읽고 싶은 사람, 세계사를 공부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리고 책 속에서 말한 책들을 찾아 읽으며 저자의 말에 동조하기도 하고, 반론을 제기해 보는 시간을 가져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