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대구동산병원 선교사 사택 인근에는 작은 돌계단이 여럿 있다. 대구읍성이 친일파 고위 관료에 의해 철거될 때 버려진 돌들이 선교사 사택 건축에 많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반듯한 돌은 서양식 건물 기초 석으로 사용되었고, 볼품없는 돌들은 크고 작은 계단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선교사 사택은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많은 관람객이 돌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그 중 어느 좁은 길목에는 몇 칸 안 되는 작은 돌계단이 하나 있다. 높이가 낮다 보니 보잘것없는 돌 몇 개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그 옆 작은 벽에는 어느 작업자가 역사 깊은 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붉은빛이 나는 돌 하나를 시멘트로 따로 고정해 놓았다.
2) 얼마 전에 네팔 히말라야 트레킹을 다녀왔다. 그중에도 제일 인기 많다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코스였다. 좋은 계절에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트레커들로 혼잡하다고 한다. 트레킹 종점까지 올라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돌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어떤 구간은 무려 3,000개 이상의 돌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구간도 있다. 트레커들은 돌계단을 힘들게 오르내리며 무념무상에 빠지기도 한다. 한평생을 살아가는데 굽이굽이 힘든 계단이 있는 것처럼 여기도 수많은 계단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많은 돌계단을 내 발로 하나하나 딛고 올라가야만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의 황홀한 일출 기운을 맛볼 수 있다.
3) 네팔에도 인도의 카스트제도 영향으로 네 단계의 계급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를 안내한 현지 매니저는 두 번째 계급(크샤트리아)의 후손이었다. 사귀던 여성이 아래 단계 계급의 자녀라 집안의 반대가 극심했지만 결혼했다고 한다. 그의 할머니는 증손자를 볼 때까지 손자며느리가 해주는 식사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옛날의 계급보다 경제적 능력에 따른 계급이 더 중요하다고 한다. 예전에는 계급에 따라 하는 일이 달랐지만 지금은 일하고 받는 보수에 따라 새로운 등급이 눈에 보이지 않게 나뉘어진다고 한다.
4) 히말라야 트레킹 도우미 중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13명인 우리 일행을 도와준 현지인은 무려 20명이나 되었다. 이들의 일하는 단계는 네가지로 구분되었다. 제일 상위는 네팔 최고 학부를 나와 석사 학위만 2개를 가진 매니저였다. 든든한 집안 형편에 명석한 두뇌로 대학교수 자리를 박차고 다수의 산행 경험과 외국어(한국어, 영어, 인도어)를 습득하여 젊은 나이에 여행사 매니저를 하고 있었다. 이번 트레킹도 기획 단계에서부터 진행까지 전 과정을 세심하게 준비하는 전문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산행 가이드, 쿠커 팀, 포터 팀 등의 인력을 원활하게 지휘 통괄하였다. 독학으로 터득한 한국말이 유창하였다.
5) 네 가지 단계의 역할은 명확했다. 매니저의 지시 아래 산행 가이드는 본인 배낭만 메고 트레커들 중간중간에 서서 안전한 산행을 하도록 도와주었다. 쿠커 팀은 무거운 식기류와 식재료를 머리에 지고 빨리 올라가 우리가 도착할 즈음이면 식사 준비 마치고 기다렸다. 포터 팀은 트레커들이 산중에서 일주일 동안 사용할 개인 짐을 지고 다음 롯지까지 운반하는 역할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이 받는 수고비는 노동의 고됨과는 반비례 됨을 볼 수 있었다. 기술이 필요한 쿠커와 산행 가이드를 하기 위해선 오랜 경험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한 계단 위의 직급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본인의 엄청난 열정이 동반되어야 한다.
6) 포터 팀은 일가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나이 든 여성 두 명이 포함된 포터 팀을 보니 처음에는 상당히 마음에 걸렸다. 보기에 마음이 애처로워 불편하다고 했다. 매니저는 그렇게 보지 마시고 저들에게 일거리를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그래야만 그들의 생계가 해결되는 것이다. 코로나19 시절에는 손님이 없어 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포터들이 지고 가는 카고 백 하나에 보통 15kg 정도인데 젊은 사람은 세 개씩 짊어지고 걷기도 힘든 돌계단을 묵묵히 올라갔다. 한집안 식구들이 팀을 이루어 짐을 배분하여 나르는 일을 하고 있었다. 산중에서 본인들 고유의 일을 하면서 짬짬이 포터 일을 해 자녀들 공부를 시킨다고 하였다. 그들의 희망은 포터 일을 하면서 요리를 배워 쿠커 팀으로 올라가고, 더 큰 바램은 산행 기술을 익혀 폼나는 가이드 일을 하는 것이라 했다.
7) 우리도 살면서 수많은 계단을 오르내리고 있다. 학교도 한 계단씩 올라가며 다녔고, 직장도 취직하여 한 단계씩 올라가기 위해서 불철주야 일했다. 우리의 부모들도 자식은 어떻게든 공부시켜 한 계단 위의 삶을 살기를 바라며 헌신했었다. 선교사 사택 근처에 살면서 그들을 돕던 사람 중에도 기도하며 자녀를 공부시켜 의과대학 교수로 만든 사람도 있었다. 일주일 동안 엄청난 돌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무수한 상념의 세계에 빠져들고는 했다. 인생길과 같은 돌계단 길에서 삶의 답을 찾는 심정이었을까. 수많은 계단과 계곡을 오르내린 후 4,130m 지점에서 만나는 장엄한 일출 장면이 더 환상적으로 느껴지듯 우리의 삶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