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의 미덕
에베소서 6:5~9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본문은 에베소서 5:22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윤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성도의 윤리에 있어
첫째, 부부 관계(5:22-33)를 논하고
다음에 부자 관계(6:1-4)를 논했으며,
본문을 포함하고 있는 6:5-9 에서는 주종 관계를 논했는데, 여기에서 공통되는 윤리는 '순종' 입니다.
이 세 가지 권면 속에서 바울의 관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는 언제나 약자 편을 먼저 권면했습니다. 부부간에 있어서는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했고, 부자간에는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고 하였으며, 여기에서도 먼저 종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는 약자를 누르고 강자 편을 들기 위해 그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강자에 대한 교훈을 나중에 함으로 비중을 강자에게 더 두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1. 노예 제도의 실상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 3:22). 여기에서 '종'은 '노예'를 말합니다. 당시의 노예 제도는 가정 도덕상, 또는 사회 윤리상 실로 중대한 문제가 많았습니다. 로마 제국 내의 노예의 총수는 6천만이나 되어 실로 자유 시민의 4배나 되었고, 로마시에서만 65만 명의 노예가 있었다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기록에는 한 부호가 죽었을 때 그의 유산으로 4,116명의 노예를 남겼다고도 했습니다.
노예가 되는 원인은 첫째, 빈부 격차로 인하여 부채를 진 사람이 그 부채를 갚을 길이 없어 몸이 팔려 가는 경우이고, 둘째는 전쟁에서 진 백성이 노예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노예가 된 자들은 노예 시장을 통해 팔려 다니며 새로운 주인을 맞이하였습니다. 노예 한 명의 가격이 유대에서는 은 30세겔이었고 헬라 화폐로는 120드라크마였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보통 소 한 마리 값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싼값의 노예들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노예와 주인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적대적 관계가 상존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예는 상전에게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하나님꼐 하듯이 온전히 순종하라고 했습니다.
2. 노예 제도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대응
'이 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라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랴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안에서 상관된 네게라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무로 알진대 저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몬 1:16, 17).노예 제도는 확실히 초대 교회의 관심사였습니다. 성서 기록당시 노예의 생활은 실로 처참하였고 인격은 전혀 인정받지 못하였으며, 가축과 같이 살아 있는 상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주인에게 불복종하면 채찍질을 당하였고 심할 경우, 십자가에 달렸으며, 맹수에게 던져져 죽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본서를 쓰고 있는 무렵에 로마에서 원로원의 한 사람이 노예에게 피살당하였는데 그 형벌로서 그의 노예 400명이 한꺼번에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죄악상에 어찌 그리스도교가 외면하고 있었겠습니까? 바울이 세운 교회 중 에베소, 빌립보, 골로새, 고린도 교회에는 상당수의 노예 신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런 서신에서 그들에게 특별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롬 16장의 인명에는 노예의 이름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당시의 교회가 정면으로 노예 제도의 폐지를 들고 나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노예 제도를 개선코자 하는 분명한 의지를 품고 있었고 그것은 교회의 의지였다기보다 복음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레몬의 노예 오네시모를 자기의 아들이라고까지 말하며 그를 영접하기를 곧 나를 영접하는 것처럼 하라고 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예의 상전들은 하늘에 참 상전이 있음을 기억하고 노예들을 억울하게 대하지 말하고 했습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있는 주종 관계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9절).
상전들에 대하여서는 진정한 상전은 하나님이시고 단지 관리자라는 것을 인식 시키고 사랑으로 노예를 대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초대 교회는 노예 제도의 모순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도 사랑과 정의와 영적 평등의 정신을 고조하여 사회 개선에 앞선 정신 개조를 시도함으로써 노예 제도를 근본적으로 고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혁명적 방법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런 교회의 내적 감화는 주효하여 교회의 세력이 확대되고 콘스탄틴 대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후에는 이런 정신이 법률에 반영되어 노예 제도 폐지를 한걸음씩 전진했던 것입니다. 19세기 미국에서의 노예제 폐지도 큰 전쟁을 불러일으켰거늘 하물며 로마 시대에 있어서 그리스도교가 정면으로 대응했다면 노예 해방은커녕 교회 자신이 살아남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과 '사랑'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감화력은 결국 노예 제도의 개선을 가져오고야 말았습니다.
4. 오늘의 직장내에서 노사관계에 주는 교훈
오늘의 직장은 우리의 삶을 위하여 과거의 노예처럼 강제적인 방법으로 일터를 배정받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선택한 잍터로 서로의 계약에 의하여 일생 중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곳으로서 직장 나름의 질서와 절차가 합리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들이 주인 의식을 가지고 업무를 대하느냐? 아니면 피동적인 종의 의식으로, 또는 직장의 경영층을 적대적인 계급투쟁의 시각으로 보느냐? 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며 어떤 마음으로 일터에 임하느냐에 따라서 직장은 천국이 될수도 지옥이 될수도 있는 것입니다.
설립자이신 조태영 회장님은 “온 마음으로 일을 하는가? 반 마음으로 일을 하는가?”참으로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면서 일터 사랑과 헌신을 몸소 보여주셨습니다.
오늘 회장님의 소천 13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우리 일터의 주인으로 일터를 사랑하고 발전시켜 설립자 조회장님의 기대에 부응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나에게 부여한 소명을 잘 감당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죽어서 천국보다 이 땅에서 천국 연습을 하면서 살아갑시다. 그것은 바로 적대적 투쟁관계를 떠나 친화적인 화목관계로 일터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조회장님 소천 13주년을 맞이하여 지면으로나마 설교를 올립니다. 본 카페를 방문하여 본문을 읽으신 많은 분들이 서로 화목하는 일터에서 이 땅에서 천국을 체험하는 기회를 갖게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성람재단이 하나님보시기에 아름다운 발전이 이루어지게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024. 1. 8
박진성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