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주는 사람
2017. 10. 1(주일낮예배) 시편 144:12-15
여러분의 삶에는 웃을 일이 많이 있는가? 안면 피드백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윌리엄 제임스가 주창한 이 이론은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웃기 때문에 행복하다는 말로 우리에게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래서 오늘날 행복특강이라는 곳을 가면 강사가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따라해 보세요 하면서 하하하 하고 웃는다. 그리고 청중들이 웃으면 이번에는 손뼉을 치면서 손뼉을 치면서 박장대소하고 억지로 웃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모두 손뼉을 치면서 웃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억지로 웃는 것이 우리 삶에 유익이 되겠는가? 독일의 심리학자 프리츠 스트랙은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하여 실험을 하였다. A집단에게는 볼펜을 이로 물고 재미있는 만화책을 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B집단에게는 볼펜을 입술로 물고 재미있는 만화책을 보게 하였다. 그리고 난 후 만화책의 내용이 얼마나 재미있었는가?를 질문했다. 이 질문에 볼펜을 이로 물고 읽었던 사람들은 정말 재미있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반면에 볼펜을 입술로 물고 읽었던 사람들은 별로 였다는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왜 같은 내용의 만화책을 읽었는데 그 결과는 다르겠는가? 볼펜을 이로 물면 입꼬리가 위로 올라가서 웃는 표정이 된다. 그런데 볼펜을 입술로 물면 입꼬리가 아래로 쳐지면서 불만 있는 얼굴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웃는 얼굴로 만화책을 보면 그것이 굉장히 재미있게 받아드려 지는데, 불만어린 얼굴로 만화책을 읽으면 재미있는 만화도 별로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 실험의 결과를 도출한 프리츠 스트랙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의 뇌는 표정에 근거해서 그 상황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데, 억지로라도 밝은 표정을 지으면 뇌는 그 상황을 즐겁게 받아들인다.
프리츠 스트랙은 우리 뇌는 사람의 표정을 근거로 해서 상황을 판단하므로 스스로 웃는 얼굴을 하면 뇌는 기쁘고 즐거운 상황 속에서 사물을 판단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말 기쁘게 살고 싶으면 인상을 쓰지 말고, 환하게 웃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그렇게 웃는 얼굴을 하고 살면 우리 뇌가 나는 행복하다는 기준으로 상황을 판단해서 즐거움이 더 많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한 삶을 위하여 억지로 웃고 있는 얼굴이 서글퍼 보이지 않는가? 우리 주위에는 웃을 일이 많이 있다. 사진 몇 장을 보기 바란다. <월드마켓 어린이 사진> 여러분은 저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오지 않는가? 사실 가을 하늘을 봐도 너무 아름답고, 또 들에 핀 꽃을 자세히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동이 흘러나온다.
그런데 손자도 없고, 또 가을하늘을 보면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하기만 하신 분이 있는가? 이런 분도 오늘 본문을 보면 행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이제 오늘 본문을 보시기 바란다.
(시 144:12-15)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13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14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15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우리 아들들은 장성한 나무같이 되고, 딸들을 궁전의 아름다운 모퉁이돌이 되고, 곳간에는 곡식이 가득하고, 들에는 양들이 가득하고, 원수가 감히 침범하지 못하는복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다는 말씀이다.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자에게는 하나님이 이렇게 복을 더하여 주시는 것이다. 이것이 시편 144편의 내용이다. 그리고 시편 145편의 시작은 찬양이다.
왕이신 나의 하나님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시편 145편은 하나님을 왕으로 삼아서 자녀들이 복을 받고, 곳간에 양식이 가득하며, 들에는 양이 가득하고, 원수가 침범하지 못하는 평안을 누리기를 소망하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 가지는 모습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오는 그 백성에게 반드시 복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시간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우리의 왕되신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런데 요즘은 이렇게 설교하면 아멘하는 성도보다 지금 저 설교는 기복신앙이야! 하는 눈으로 보는 성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기복신앙을 조작하는 내용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이 반드시 소망해야 할 내용이다.
왜 우리가 오늘 본문을 소망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인 시편 144편은 2개의 문단으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문단인 1-12절은 고난의 묘사이다. 시편 144편의 저자인 다윗은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한다. 그렇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다윗에게 다가온 것은 의외였다. 하나님을 찬양하기 때문에 그에게 엄청난 기쁨과 복이 흘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3절을 보면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는 질문을 한다.
여러분은 언제 사람이 무엇이기에 라는 질문을 하는가? 제가 아는 집사님 중에 담도암으로 고생하는 분이 있다. 암판명을 받아서 서울에 큰병원에서 수술을 받기로 하였다. 그런데 수술하기 전날에 갑자기 몸에 열이 나고 상태가 나빠져서 수술을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병원에서 이제 수술은 할 수 없고, 약물 치료밖에 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한 것이다. 그 말은 의학적으로 그 병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사님은 민간요법에 따라서 병을 고치려고 자신의 모든 정보력을 다 동원했다. 그래서 일본에서 사용된 민간요법이 효과가 좋다는 것을 사실을 알고 지금 그 방법으로 치료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분은 하나님께 살려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이번 명절이 지난 후에 심방을 가야 한다는 것이다.
제가 이 분을 만나면 무슨 말씀을 전해야 하겠는가? 성경에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 믿으면 나사로를 다시 살아난 것처럼 집사님도 살아날 수 있다고 설교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집사님이 굉장히 좋아할 것이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설교하기로 했다.
사람은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관심은 얼마나 오래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하루를 살아도 우리는 주를 위하여 살아야 하고, 하나님은 그 삶을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제가 왜 이렇게 설교해야 하는가? 시편 144편의 다윗의 상태는 허무함이었다. 솔로몬이 자기 인생을 돌아보며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고백했던 것처럼 다윗은 오늘 본문 4절에서 사람은 헛것이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다윗은 이렇게 헛된 세상 가운데서 많은 질투와 고통을 받고 사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다윗이 고난을 이겨내는 방법이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베풀어주실 구원을 소망하며,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찬양을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만 소망한 다윗에게 하나님은 어떤 일을 행하셨는가?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눈여겨 볼 것이 몇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오늘 본문인 시 144:12-15절은 모두 수동태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원수들로 인하여 고통하는 다윗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몸부림칠 때 자식들이 잘되고, 곳간에 곡식이 가득하고, 들에는 양이 가득하며, 원수가 물러가는 것이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 가운데 인생의 허무함을 느끼고 있을 그때에도 하나님만 바라보았더니 하나님께서 이 모든 복을 이루어주었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우리가 하나님만을 소망하고 바랄 때 우리의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을 믿고 확신하는가?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면서 기뻐해야 할 이유이다. 저와 여러분이 이 세상을 살면서 기뻐해야 할 이유는 삶의 형편이 넉넉하고 형통해서가 아니다. 어렵고 힘든 순간에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면 그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삶에 복을 주실 것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허무한 삶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 할 부분이 있다. 시편 144편의 1문단인 1-11절은 1인칭 단수로 되어져 있다. 그래서 고통 가운데 있었던 다윗은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이여 라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나를 이방인의 손에서 구원하소서 하며 부르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인 2문단인 12-15절은 1인칭 복수를 사용한다. 그래서 우리 아들들은, 우리 딸들은, 우리의 곳간에는, 우리의 양은 하면서 모두 우리를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15절에서는 그 우리가 아니라, 백성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다.
무슨 말인가? 고난 가운데 있었던 것은 다윗이었다. 그런데 그 다윗이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소망하며 살 때에 하나님은 그 복을 다윗에게만 주는 것이 아니라, 다윗과 함께한 모든 자에게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그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자리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고난가운데 우리가 하나님만을 바라고 소망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 아니겠는가? 이것이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는 이유이다. 저와 여러분이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그로 인하여 나의 문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한 우리 가정과 또 자여공동체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주신 소명임을 기억해서 여러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이 임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이제 말씀을 맺는다.
로버트 기요사키라는 분이 쓴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라는 책이 있다. 일본계 미국인 4세로 태어난 로버트 기요사키는 2명의 아버지가 있었다. 한명의 아버지는 공부는 많이 했지만 가난했던 친아버지였고, 또 한분은 교육을 많이 받지 않았지만 많은 돈을 가지고 있었던 친구 아버지였다. 그런데 기요사키는 이 2명의 아버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자라났다. 그리고 해양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해병대에 자원하여 베트남전에 잠전하여 무장헬리콥터 조정사로 복무하였다. 그리고 전역한 후에는 제록스 회사 하와이 지점에서 세일즈맨으로 일하다가 30세에 자기 사업을 시작하여 4년 후인 34세 때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때 만난 사람이 자기계발 분야의 선구자인 벅민스터 R. 퓰러박사였다. 퓰러박사를 만난 기요사키는 돈을 쫓는 인생이 아니라, 사명을 따르는 인생으로 자기 인생의 전환점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기요사키는 부자 아빠와 가난한 아빠라는 책을 썼다. 이 책에서 기요사키는 돈이 없었던 아버지를 부자아빠라고 하고, 돈이 많았던 친구 아빠를 가난한 아빠라고 하였다. 왜냐하면 친구 아빠는 공부를 많이 하여서 좋은 직장을 구하라고 하였다. 그래서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삶을 살라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런데 기요사키는 그 친구 아버지의 말씀처럼 공부를 열심히 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서 월급을 많이 받았지만, 늘 월급을 받으면 카드빚 갚기에 허덕거리는 삶을 살아야 했다. 그런데 가난했던 아버지는 돈에 얽매이는 것은 악의 원인이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아버지는 돈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던 것이다. 그런데 퓰러박사는 자신이 책을 쓸 때에 돈에 얽매이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친 아버지는 부자아빠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어디에 얽매여 있는가? 우리가 나의 문제와 상황에 얽매여 있다면 그 사람은 정말 허망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문제와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을 소망하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일을 꿈꾸며 사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은혜로 다가오실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복을 자기 혼자만 받아 누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함께 누리게 될 것이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하나님을 소망하므로 고난가운데서 승리하며, 주의 백성과 함께 그 복을 누릴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