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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원
광주광역시 출생. 국어국문학 전공.
중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
한국차문화협회 전문사범. 한국차문화협회 이사 역임.
전남 보성군 벌교읍에 거주.
e-mail : tjsduswk123@naver.com
나는 갯벌 가에 산다
십여 년 전에 벌교에 사는 언니 집에 놀러 왔다가,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집을 뜬금없이 사버렸다. 단지 이유라면 시골집 넓은 마당에 퍼지던 꽃향과 다채로운 화초들과 녹색의 나무들이 어우러진 봄날의 황홀한 정경 때문이었다. 도시의 삭막한 아파트에만 살던 나의 눈이 번쩍 뜨이고, ‘여기가 바로 행복의 땅이야’라는 직감이 들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낯설기만 한 시골생활을 선뜻 받아들이고 말았다. 이 즉흥적 결정은 우리 삶에 크나큰 변화를 가져왔다. 남편과 나는 처음 이삼 년간은 집 안에서 나무와 꽃을 가꾸고 바라보며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비록 자연과 친해지는 일이 서툴기만 하고, 시행착오의 연속이었지만 그마저도 그저 새롭고 신기해 바깥세상에까지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전원생활이 익숙해지면서 차츰 울타리 안의 생활이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시골의 자연은 어느 순간 그림 속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때론 나 자신도 그림 속 정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맨날 보는 자연 풍광이 지루하고 심신도 나른해졌다. 이사한 한참 후에 찾아오신 아흔이 넘은 친정엄마는 집을 둘러보고 기막혀 하셨다. 엄마는 도시에서 넓은 평수의 아파트에 살아야 잘 사는 것이란 일념이셨다.
“세상에 좋은 집을 내버리고 이게 뭔 일이다냐.”
엄마의 눈물어린 탄식을 들으면서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나 싶어 마음이 흔들렸다. 내 눈에 콩깍지를 씌운 것 같은 나의 직감에 의문이 생기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무료해지면 차를 타고 가까이에 있는 순천으로 달려가곤 하였다. 그곳에서 도시의 바람을 귀한 향기 맡듯 코를 킁킁거리며 실컷 맡고 돌아왔다.
몸살 앓듯이 적응해 나가던 어느 날 문득 소설 『태백산맥』이 생각 났다. 가슴 벅찬 감동을 받았던 이 소설의 배경이 벌교였다는 사실 이 전광석화처럼 떠올랐다. 갑자기 벌교가 궁금해졌다. 생각은 몸을 움직였다. 밖으로 나가 걷고 또 걸으면서 관광객처럼 길 따라 골목 따라 곳곳을 기웃거렸다. 중도방죽, 부용산, 태백산맥 문학관, 현부자집, 장터거리, 월곡 벽화마을, 보성여관, 갈대가 숲을 이룬 갯벌 등을 만났다. 그리고 사람들도 만났다. 이는 하나하나 보물을 찾아내며 탄성을 질러대는 보물찾기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시나브로 벌교의 문화와 역사, 자연을 알아가면서, 벌교를 바라보는 내 눈에는 애정이 어리기도 하였다. 전혀 섞일 것 같지 않은 이방인이었던 나는 가랑비에 옷 젖듯이 벌교의 공기에 서서히 스며들고 있었다. 무엇보다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과 이야기가 녹아있는 그곳에 내가 살고 있다는 것이 짜릿한 감격이었다.
소설의 공간적 배경이었던 벌교읍내는 건물들이 일제강점기 때의 점방 모습 그대로 남아있는 곳이 많다. 소설 속 시대적 배경을 그대 로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언젠가부터 멀리서 나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벌교를 은근히 자랑하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짧은 풍월로 나는 손님들을 안내하며 무자격 문화 해설가 노릇까지 하고 있다.
중도방죽은 해질 무렵 우리 부부의 산책길이다. 방죽 길은 드넓은 간척지 논과 반대편 갯벌이 있는 바닷물 사이를 가르고 동서로 곡선을 그리며 길게 뻗어 있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면 가끔 서편 하늘에서는 석양을, 동쪽 산봉우리 사이에 복스럽게 얼굴을 내미는 달을 동시에 보는 행운을 방죽 길에서 누리기도 한다. 산책길에 보이는 갯벌은 밀물 때는 바다가 되었다가 썰물 때는 육지가 된다. 신비한 자연 현상이다. 하루 두 번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 내는 기적이 갯벌이라 한다.
벌교로 거주지를 옮기고 한참 동안은 우리 집 지척에 있는 갯벌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차츰 갯벌에 살고 있는 다양한 생명체들이 눈에 들어왔다. 치열한 생존 싸움을 하는 재빠르고 바지런한 그들 의 왕성한 생명력에 빠져들었다. 칠게, 농게, 짱뚱어 등은 구멍을 파 서 집을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넓은 갯벌에 수를 헤아릴 수 없 는 크고 작은 구멍들을 파놓은 것은 독특한 풍경이다. 그 수많은 구 멍 중 하나인 집을 찾아드는 그들이 신통하기만 하다. 남편이 “왕년에 술에 취해 우리 아파트 호수를 잘못 찾아 헤매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 째깐한 놈들이 똑똑하네” 하기에 “이 애들은 술 취한 당신 같진 않아요” 하며 우리는 웃었다. 도요새, 갈매기, 저어새 등은 갯벌 위에서 먹이를 찾아 먹는 모습마저도 우아하다. 각종 미생물, 펄 속 깊은 곳에서 서식하는 낙지, 멸종 위기의 각종 철새들의 터전이자 생태계가 갯벌이다. 우리에게 귀한 먹거리인 생명체들이 사는 이런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공간이 우리 집 가까이에 있었다. 귀한 보물을 손에 쥐고 있는 부자처럼 뿌듯하다.
백로가 지났지만 늦은 오후가 되어도 습한 열기가 여전하다. 그래도 가을이다. 어둑어둑해지면 본격적으로 생명의 대합창이 시작된다. 풀숲에서 울려 퍼지는 여치, 귀뚜라미, 쓰르라미 등이 귀청 따갑게 울어대는 소리, 풀숲 옆으로 흐르는 개울물 소리, 새가 날개 퍼덕이며 나는 소리, 바닷물 위로 포물선을 그리며 뛰어 오르내리는 물고기의 생동감 넘치는 소리, 마을에서 들려오는 개짖는 소리 등이 합창 그 하모니에 나의 발걸음도 경쾌해진다. 물고기가 만드는 물 방울의 영롱한 포물선, 하늘에 수를 놓은 듯 반짝이는 별들, 주변의 그림 같은 야경을 취하듯 바라보며 가로등이 밝혀주는 빛 따라 황톳 길을 걷는다. 나도 자연의 일부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거미줄 한 줄 이 얼굴을 가로지르며 달라붙는다. 손으로 얼굴에 묻은 거미줄을 걷 어낸다. 대기의 기운이 충만한 가을 저녁이다. 나는 갯벌 가에 살고 있다. 내가 이곳에서 살아갈 이유가 되어버렸다.
茶향기에 반하다
11월 중순이다. 겨울이 칼칼한 바람을 타고 내려앉고 있다. 해를 숨겨버린 하늘은 뿌옇고 어두운 회색빛으로 가라앉아 있다. 소리 없이 비가 내렸는지 처마 끝에 유리알같이 알알이 맺혀있는 빗방울이 보이고, 얼마 전에 벼를 베어낸 빈 논이 축축하게 젖어 있다. 창밖으 로 보이는 을씨년스런 겨울 풍경에 목이 말라온다. 따뜻한 茶를 마시고 싶지만 기운이 없다. 감기 기운으로 혼몽한 가운데 코끝에 아련한 향기가 스쳐간다. 나의 손끝에서 태어난 십오 년도 넘은 기억 속의 그 차향이다.
사십대 후반에 나는 茶를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다. 갱년기로 인해 불안장애와 우울감, 불면증 등으로 몹시도 힘들었던 그때, 동갑내기 친구가 가볼 만한 곳이 있다며 움츠리고 살던 내 손을 잡아끌었다. 시내에서 한참 벗어난 시골 동네에 있는 그 집은 평범한 농가를 감각적으로 손을 본 소박하고 정갈한 공간으로 도예공방과 찻집을 겸하고 있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코끝으로 스며드는 풋풋하면서도 구수한 차향에 매료되고 말았다. 온 공간을 감싸고도는 차향은 그 간 혼란에 빠져 있던 고통스런 내 마음을 은은하고 부드러운 바람결 처럼 어루만져 주었다. 드디어 안식처를 찾은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길쭉하고 여윈 손으로 우리에게 차를 우려내주는 주인 여자는 깊은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처럼 청아한 분위기로 나를 압도했다. 차 사범 이라는 그녀에게 차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래요, 아직은 저도 부족하지만 그럼 함께 차의 세계로 들어가 보시게요.”
그녀는 나의 첫 번째 다도 선생이 되었다. 어색하고 불편한 자세로 행다법을 배우면서 서서히 알게 되는 차는 과정과 기다림이 있어 나 를 돌아보는 시간을 주었다. 갱년기의 아픔도 찻물에 씻겨나가는지 심신이 시나브로 편해졌다.
매년 5월경이면 우리는 녹차를 만들러 하동으로 갔다. 나는 차나무 잎이 차로 변하는 과정이 마냥 신기했다. 혼자서 차를 만들어보고 싶은 의욕이 생겼다. 보성에 넓은 차밭을 가지고 있는 남편 지인에게 부탁해 그 집늬 찻잎을 따서 녹차를 덖어 왔다. 싸 가지고 온 녹차 보따리를 풀다가 퍼뜩 드는 생각이 있었다. 엄마가 식혜며 된장이며 고추장을 만들 때 발효를 시키던 것이 떠올랐다. 이 풋풋한 녹차를 발효시키면 어떨까. 녹차를 옥양목 천에 싸서 전기장판 위에 놓고 온도를 뭉근하게 조절한 다음 두꺼운 이불을 덮어씌운 채로 이틀 동안 그대로 두었다. 시간이 가면서 싱그럽던 녹차의 향기가 구수하면 서도 퀴퀴한 냄새로 바뀌어 온 방에 배이고 있었다. 엄마가 만들던 발효식품들에게서 나던 퀴퀴한 촌스런 냄새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잘못되었나 하는 불안에 전기장판의 불을 끄고 이불을 걷어보니 하얗던 옥양목은 짙은 갈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긴장하여 보따리를 끌러본 순간 확 코에 파고든 것은 촌스런 냄새가 아니라 찐 고구마, 찐 밤의 부드럽고 구수한 향과 풋풋하고 상큼한 사과향이 어우러 진 깊고 진한 향기였다. 마법 같았다. 평생 잊을 수 없을 차향이었다. 향기에 빠져 있다 찻잎을 보니 녹차의 녹색은 온데간데없고 진한 갈색으로 변신해 있었다. 남편을 불렀다. 찻잎의 향과 색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하다. 성공이었다.
그는 아직은 촉촉한 찻잎을 보더니 뭔가를 생각하다가 인연이 있는 하동 묘향네 집 처마 끝에 달아놓고 건조시켜 보자는 것이었다. 묘향은 섬진강가 산자락에 펼쳐진 야생 차밭 가운데에 자리 잡은 기와집에 살며 차를 만드는 차인이다. 우리는 주인 말은 들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이 보따리를 신주단지처럼 들고 전주에서 하동으로 달려 갔다. 그녀는 흔쾌히 가운데 마루 안쪽 대들보 밑에 걸어주었다. 비는 피하고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맑은 바람과 이슬을 머금은 아침햇 살과 차밭의 기운 그리고 시간이 이 차를 더 숙성시켜주고 건강한 찻잎으로 거듭나게 해줄 것이다.
몇 개월 뒤 초겨울로 들어가는 즈음에 하동에서 그 결실을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 기다림 끝의 결과물은 우리를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오늘처럼 찬바람이 부는 회색빛 날이었다. 다관에 찻잎을 넣고 끓인 물을 넣으니 묵직하고 구수한 향과 상큼한 향이 어우러져 피어오른다. 방안의 정경이 아늑해지고 한 잔의 차로도 몸이 따뜻해 진다. 추운 날씨에 제격이다. 이날 마신 차는 그 어떤 고급 차보다도 우릴 만족시켜 주었다. 최고였다.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고 몸이 으슬 으슬할 때 가장 생각나는 추억 속의 차로 남을 것이다.
몇 년이 흐르고 본격적으로 차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지금껏 내가 최고의 차라고 여겼던 그때 만든 차는 놀랍게도 6대 다류에 속한 황차로 그 제다법이 똑같았다. 녹차를 건조하기 전 열을 가해 발효시키는 과정이 황차에만 있는 ‘민황’이었다. 발효과정에서 쓰고 떫은맛을 내는 카테킨이 줄어들어 과일의 달콤한 맛이 감도는 독특한 맛을 낸다고 한다. 이 차는 보이차를 포함한 흑차처럼 후발효차다. 하동에서 매달아 놓은 몇 개월은 발효가 계속 이루어진 시간이었다. 차에 대한 공부가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좋아하는 의욕만으로 우연찮게 만들어낸 황차가 나에게는 지금도 특별하다. 이후 내가 하는 강의에서 가장 자신 있게 열변을 토하는 것이 황차 제다법이다. 남편은 가끔씩 그 차 한번 만들어보라 한다. 사실은 그 후 몇 년간 혼자서 온 정성을 다해 황차를 만들어 주변 지인들에게 나눔을 했지만 해가 지날수록 나처럼 이 차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생의 활력이 되는지 의문이었고 점점 의욕이 떨어졌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며, 힘도 열정도 빠져버린 나는 전문가가 만든 차를 사서 마시자고 맥없이 말한다. 이러는 나도 그 차의 맛과 향을 잊지를 못하고 있다.
이번 주 일요일은 나의 손을 잡고 차를 만나게 해준 전주 그 친구가 그의 남편과 함께 벌교 우리 집에 오기로 한 날이다. 네 사람이 마실 차는 운남의 전홍과 빙도 보이차, 보이홍차로 정했다. 설레며 일요일을 기다린다. 그 안에 감기를 떼어 버려야 할 텐데….
천막 안의 아이
오전반 수업이 끝나면 죽어라 뛰어 다니는 아이들로 운동장은 터 질 듯했다.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질러대는 함성은 모래바람에 뒤섞이어 하늘로 흩어졌다. 내가 섞여 있던 60 년대 초등학교 운동장의 하늘은 늘 뿌옇기만 하였다. 나는 함께 놀던 아이들의 손을 놓고 무리에서 빠져나와, 내팽개쳐져 있던 가방과 신발주머니를 탈탈 털어 메고서 나의 세상으로 갔다. 창극을 하는 일명 나이롱 극장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었다.
광주천 다리 아래 쳐놓은 천막 안에서는 애끓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 소리에 이끌리어 급한 걸음으로 자리를 찾아들었다. 들썩들썩한 천막 안은 늘 가마니 좌석에 앉아계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꽉 차 보였다. 쪼끄마한 나는 좁은 틈에 살짝 끼어 앉는다, 파도가 치는 바다 그림이 보이는 무대가 반갑다. 설렌다. 무대 위에 떠 있는 배 위에 가냘프게 서 있던 심청이가 바다로 몸을 던지는 장면이 한창이다. 할머니들의 탄식 소리는 심청이의 구슬픈 소리를 더 슬프게 하였다. 정신없이 빠져드는 나를 툭툭 치시며 옆의 할머니는 가제 수건을 힘들게 풀어 떡 한 쪽을 손에 쥐여주신다. 춘향전과 심청전은 언제 봐도 재밌다. 춘향이가 무거운 판자를 목에 걸고 노래를 구슬프게 목 놓아 부르던 장면이 창극과의 첫 만남이었다. 춘향이가 한없이 불쌍하고 처량했음에도 무대 위의 이야기 세상은 마냥 재밌었다. 그 후 나는 곳간 들락거리는 쥐처럼 이곳을 찾아들었다. 한참 동안 슬픈 가락에 빠져 있는 나에게 할머니께서 흔들었다.
“아가, 엄니가 기다리신께 인자 집에 가그라 잉.”
그 말에 깜짝 놀라 가방을 챙겨 메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신발주머니 달랑달랑 흔들며 집으로 향한다. 한참을 걸어가야 하는 길에 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 있다. 재미있는 이야기보따리가 가득 쌓여있는 늘 가는 만화방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에 한참 빠져 있을 때 등짝을 치는 충격에 놀라 올려다보면 여지없이 영순이 언니다. 집에서 밥을 해 주는 언니인데 트랜지스터라디오로 함께 이미자 노래를 들을 때는 곰살궂게 친하다가도 찾으러 올 땐 무섭도록 쌀쌀맞았다.
집에 돌아오면 무용학원 다녀온 언니와 동생을 챙겨주고 계신 엄마의 잔소리가 들리지만 난 심청이 생각에 빠진다. 배에서 몸을 던지던 장면이 자꾸만 생각났다. 바다에 몸을 던진 후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스럽기만 하다.
“너는 왜 사내도 아닌 것이 허구한 날 동네 강아지같이 심난한 꼴로 싸돌아다니냐?”
엄마의 잔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불쌍한 심청이를 생각하다 잠이 들었다 두 살 터울 언니와 세 살 아래 여동생은 깜찍하고 예쁜 미모로 늘 사람들의 사랑과 시선을 받았다. 예쁘지 않은 나는 사람들이 오면 지레 혼자만의 공간으로 찾아들었다. 앙증맞게 머리를 양 갈래로 땋아 내린 언니와 동생은 상고머리를 한 나의 부러움과 시샘의 대상이었 고 어린 시절 내내 상고머리를 하게 한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외모와 재능을 파악하신 엄마는 언니는 발레를 동생에게는 한국 무용을 시켰다. 내가 아기였을 때 엄마는 나를 들쳐 업고 대인시장 2층 건물에 있는 학원에서 한춤을 배우셨다 한다. 엄마 등에서 풀려나 포대기에 싸인 채 엄마가 춤추는 걸 보며 나름 조기교육이 되었을 나를 제쳐 놓고. 예쁜 두 딸 앞세우고 무용학원으로, 대회장으로 엄마는 늘 바쁘셨다. 덕분에 나는 엄마 시하를 어느 정도 벗어나 동네 강아지처럼 쏘다니며 내가 좋아하고 재미난 것들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 언니와 동생이 무대 위에서 조명받으며 예쁜 재능을 뽐내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을 때, 나는 천막 안에서 애잔한 소리와 슬픈 이야기에 빠졌다.
그 시절 나에게 또 하나의 천막 안 세상이 있었다. 동네에 가끔씩 서커스가 들어와 골목골목 누비고 다니며, 와서 구경하라고 스피커 터지게 선전하며 다녔다. 그때부터가 나에겐 신나는 명절이었다. 나 는 동네 아이들과 울긋불긋한 서커스단 천막 안에서 놀았다. 서커스는 신기하고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내가 쏙 반한 건 따로 있 었다. 서커스 사이사이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불러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때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마이크 앞에 선 색동저고리와 남색 치마 를 입은 소녀 가수는 어린 가슴 속으로 쏙 들어와 버렸다. 선녀가 내려온 듯 했다. 선녀같이 예뻤지만 왠지 슬퍼보였던 소녀가 부르는 애조 뛴 가요는 철없는 아이의 가슴을 뭔지도 모를 서러움으로 물들여 놓았다.
대학 다닐 때 매달 문화 예술인들을 초청해 공연과 강연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타계하신 김소희 명창이 공연할 때였다. 하얀 한복을 입은 자그마한 당찬 체구로 춘향가를 토해내듯 절절하게 소리를 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옆의 친구가 의아해 보였는지 옆구리를 툭툭 쳤다. 어린 날 가슴 속에 담아둔 슬픈 소리를 하는 춘향이와 재회하는 감동이었다.
내가 다니는 대학교는 인사동을 거쳐 가야 했다. 강의 시간에 늦는 것쯤은 개의치 않던 화랑 순례는 잔잔한 감동을 즐길 수 있는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이었다. 선화랑에서 천경자 화백의 강렬한 그림 앞에 서 예술문화가 주는 충격의 전율로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원색적인 강렬한 여인의 눈매가 묘하게 슬프게 보였다. 순간 색동저고리를 입은 서커스단의 예쁘지만 슬픔이 묻어나온 소녀 가수 얼굴이 겹쳐 보였다. 신기했다. 이후 천화백의 수필을 나오는 대로 읽었다. 어느 날 읽은 수필집에서 한 글자를 발견했다. 한(恨)이었다. 내 마음 속에서 키우고 있었던 감성의 정체를 표현할 말을 찾은 것이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유난히 슬픈 감정에 빠지는 내 핏속에 恨의 정서가 흐른다고 스스로 단정을 해 버렸다. 어쩌면 천화백의 작품, 꽃 을 이고 있는 강렬한 여인의 슬픈 눈매에서 애조가 서린 노래를 하던 그 소녀가 아른거렸던 시선은 나의 감정이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중년이 되어서 나에겐 당치도 않을 것 같았던 한국무용을 배우면서 그 음악에, 몸이 그리는 선에 푹 빠져 한 세월을 보냈다. 지금 우리 형제들은 나를 천부적인 혜택은 별로 없어도 자신을 잘 가꾸어 만들어냈다고 입을 모은다. 위로인지 격려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함께 늙어가는 언니와 동생의 미모도 나이를 먹어 가는지 더 이상 나의 열등감을 자극하지 않는다. 비극은 희극보다 아름답다는 철학적 의미가 나에겐 참 매력적이다.
납월홍매, 다정도 하여라
첫 손주가 세상에 나오는 날이다. 아침,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손녀를 맞이할 설렘으로 어떠한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괜히 섣달 큰애기처럼 마음이 붕붕 떠다니고 있다. 심지어 집 앞 산봉우리에서 떠 오르는 붉은 해도 우리 집에만 비춰주는 것 같고, 눈부신 햇살은 가슴 속에서 환희로 일렁거린다. 일흔 살이 되기 전에는 꼭 손주를 봐야 한다는 우리의 간절한 소망을 기특하게도 들어주는 손녀가 아닌가. 태어날 날짜와 시간을 미리 정하고 수술로 분만하기로 하여, 그 시간을 기다리는데 오후가 되자 더욱 애가 탔다. 혼자 있을 수 없어 평소에 가깝게 지내는 영숙 언니에게 집에서 멀지 않은 금둔사에 가자고 청했다.
낙안읍성을 지나 한 굽이 돌아드니 오른쪽으로 ‘강마다 뜨는 달’ 이란 금둔사 찻집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따라 긴 장대 끝에 높다랗게 매달린 간판의 활자가 겨울 햇살을 받아서인지 뚜렷하게 빛나 보인다. 아마도 ‘월인천강지곡’에서 따온 이름인가 싶다. 천 개의 강에 달이 뜨듯이 오늘 태어날 새 생명인 우리 손녀에게도 밝고 은은 한 달빛을 비추어주면 좋겠다. 드디어 할머니가 되는 날이어서인지 무심한 간판을 보고도 바램이 생기나 보다. 이름값을 하리라는 기대 감으로 먼저 따끈한 차를 마시기로 하고 절로 들어가는 길을 지나쳐 찻집 주차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 발을 내딛자마자 우린 동시에 환호성을 질렀다. 이게 웬일인가.
“으르렁 콸콸”
우렁찬 포효 소리와 함께 뭉게뭉게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계곡의 물살이 폭포수처럼 가파르게 쏟아져 내리고 있지 않은가. 뜻밖의 놀라운 풍경에 우리는 감탄사만 연발 내뱉었다. 심장이 쿵쾅거릴 만큼 놀라운 풍경이다. 오랜 가뭄 끝이다. 하늘은 그동안 아껴두었던 비를 지난 이삼 일간 엄청나게 퍼부어 이런 장관을 만들어준 것이다. 나는 이제 곧 태어날 새 생명을 위해 대자연이 쏘아주는 축포라고 생각했다. 합장하고 고개를 숙였다.
벅찬 감동을 안고 찻집으로 들어갔다. 따뜻한 차방에 앉아 천강월 잎차를 우려내 마신다. 토종 야생 찻잎을 구증구포하여 만든 차다. 은은한 향과 구수하고 싱그러운 감미가 입 안에 머물다 온몸으로 퍼진다. 마음이 안정되며 편안하다. 차의 맛과 향에 취해 오늘의 상황을 잠시 잊고 있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아들이다. 산모가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마취가 되지 않는다는 다급한 목소리에 괜찮을 거라고 아들을 안심 시키기는 했지만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태어날 날과 시간을 빼주던 철학관에서는 분명 길일이고, 정해준 시간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였는데, 순간 아찔했다. 다섯 시 이전까지는 사십 분 정도는 남아있다. 안심할 수 없는 시간이다. 차를 마시던 영숙 언니가 내 손을 잡고 절로 이끌었다. 찻집 뒤편으로 난 지름길을 걸어올라 경내로 들어서는데, 밥톨만 한 꽃망울들이 그나마 창백한 햇살을 받아 연한 붉은 빛을 발하고 있는 홍매가 눈앞을 가로막는다. 반갑지만 아는 척할 여유가 없다. 바쁜 걸음으로 앞장서 대웅 전에 들어간 언니를 뒤따라 들어섰다. 언니는 이미 부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있다. 늘 내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주는 언니의 엎드린 등을 바라보니 뭉클하다. 나는 겨우 삼배를 하고 법당을 나와 요사채 마루에 하릴없이 주저앉았다. 차가운 하늘만 바라보며 별일 없을 거라 마음을 달랠 수밖에 무슨 도리가 없었다. 무기력하다. 돌아 가신 엄마나 할머니는 집안에 아기가 태어나는 날에는 대문에 금줄도 걸고, 함께 힘을 써주며 직접 탯줄도 자르고 목욕을 시키고 미역국 끓여 산모에게 먹이는 등 경건한 의식처럼 새 생명을 받았는데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하늘에 계신 친정엄마가 불현듯 그립고 보고 싶다. 더구나 코로나19가 손주와의 첫 대면을 막아버렸다.
한참 후에 아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분만실에 들어간 지 10 분 만에 방금 출산을 했고, 산모도 아이도 건강하다고 한다. 좀 전에 나를 불안케 하던 잔뜩 겁먹은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들뜬 목소리 다. 인석이 아빠가 되었구나! 일단 가슴을 쓸어내렸다. 무엇보다 정해진 시간 안에 가까스로 해산을 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나도 할머니가 되었다! 울컥해진다. 아들은 곧바로 갓 태어난 손녀의 사진들을 보내왔다. 신기하고, 사랑스럽고, 벅차오르는 기쁨을 주체 할 수가 없다.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법당으로 가 부처님께 마음을 다하여 절을 올렸다. 그때까지 기도를 드리고 있는 고마운 영숙 언니에게 소식을 전하니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내 두 손을 꼭 잡아준다.
법당을 나와 신발을 신는데, 무심히 지나쳤던 홍매가 눈 한가득 들어온다. 홀리듯 홍매나무 곁으로 다가갔다. 지금은 음력 섣달, 즉 납월이다. 아직도 바람 끝이 매서운데, 자잘한 붉은 꽃송이송이를 피워내는 대견한 납월홍매에게도 할머니가 된 양 내 마음은 저절로 다정해진다. 음력 섣달에 겨울의 찬 기운을 이겨내고 어떠한 꽃보다 일찍 피어 봄기운 가득 머금고 남녘의 봄소식을 맨 먼저 알려주는 납월 홍매가 아닌가. 이 납월에 태어난 손녀와 홍매를 귀한 인연이라고 엮어놓고 보니 더욱 사랑스럽다. 가장 소중한 선물을 가슴 그득히 끌어안은 듯 감개무량하다.
금둔사 보살님을 찾아가 소식을 전하고, 절을 내려와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저녁 범종 소리가 울려 퍼진다.
“굉~~굉~~”
우주와 자연을 깨우는 묵직한 깊은 울림의 소리에 전율을 느끼며 두 손을 합장한다. 오늘 세상에 나온 손녀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축복의 소리이리라. 꽉 찬 오늘 하루를 싣고 어둑해지는 길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
참 쓸쓸하다
오늘도 나는 혼자다. 갈수록 혼자 있는 시간들이 많아진다. 그 시 간만큼 거름더미가 켜켜이 쌓여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처럼 나의 쓸쓸함도 발효하듯 깊어지고 있다. 성가실 만큼 울리던 전화벨도 무슨 일인지 요즘엔 입을 꼭 다물고 하루 종일 잠잠할 때도 있다. 간혹 오는 전화는 온갖 다난한 인간사를 겪어내느라 여유가 없다는 푸념과 한숨 섞인 하소연들이다. 사람 사는 인생 대개의 삶은 도긴 개긴이다. 나도 하소연을 한다. 인간사가 고달프다는 그들에게는 염 장 지르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스스로 자처하는 고립무원의 은둔형 외톨이 신세를 “너는 정말 모를 거야”라는 말을 곁들여서 늘어놓는 다. 하지만 전화를 내려놓는 순간 허함이 밀려온다. 쓸쓸함의 두께 가 더해지고 만다.
남편은 아침 일찍 장거리 출장을 떠났다. 혹 일이 오늘 마무리가 안 되면 일박을 할 수도 있다 한다. 특히 출장을 갈 때면 잔소리의 극치 를 보여준다. 집에 혼자 남아있을 생활의 무능력자가 안심이 안 되어 구구절절 주의사항을 읊어댄다. 이에 익숙한 나는 “응, 응” 하지만 헛 들으면서 “얼릉 가” 부스스한 꼴을 한 나는 그를 내보낸다. 그가 떠나고 온전히 혼자가 된 해방감도 잠시 온 집 안에 정적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참 쓸쓸하다. 이를 떨쳐내려는 나의 몸부림이 시 작된다.
책상에 책을 펼쳐 놓고 제목부터 음미한다. 다음엔 목차를 꼼꼼히 훑어보고 내용과 줄거리를 짐작하고 나면 거의 다 읽은 느낌이다. 그래도 자세를 곧추고 책장을 넘기며 읽어나가지만 무겁기만 한 정적은 쉽게도 나의 집중력을 흩어 놓고 만다. 정서가 불안정해져 한자리에 앉아있는 것이 힘들어진다.
바로 책을 놓아버리고 방 안을 서성거리다 문득 우리 집에 터를 잡고 산 들고양이가 궁금해졌다. 현관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가니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난다. 늘 그들이 있었던 평상 마루 밑부터 허리를 깊이 굽혀 살펴보지만 새끼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새끼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 집의 주인인 양 당당하게 살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우리를 집사 취급을 하는지 식탁이 있는 창문 쪽 에서 밥 달라고 두 마리가 “야옹, 야옹” 성화다. 한 두어 달 아옹다옹 잘 살다가 한 마리가 사라지더니 혼자 남아있던 다른 한 마리마저 사나흘 전부터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마당이 텅 빈 것처럼 적막 하다, 함께 있다 혼자가 된 고양이는 많이 외롭고 허전했나보다. 이 두 마리에게 마음을 주었던 우리 역시 텅 빈 속이다. 고양이 두 마리 가 활발하게 뛰어놀던 화단과 잔디 마당은 누렇게 퇴색이 되어 스산하고 생기라고는 없어 보인다. 올려다보는 하늘도 해가 어슬어슬하고 먹색 구름조각들이 떠다니는 우울한 색조다. 답답함이 내리누르 는 것만 같다. 휑하니 비어있는 듯 황량한 겨울 풍경 속에서 무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의 모습이 어린다.
마당에서 맥없이 서성이는데 우측 돌담 아래 서 있는 나목이 된 늙은 감나무 세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죽어 있는 것 같은 벌거벗은 까만 잔가지들이 하늘을 배경으로 가느다란 혈관처럼 뻗쳐있다. 지금은 가장 단출한 모습으로 혹독한 계절을 묵묵히 견디고 이겨내는 나 목이지만 봄이 오면 연두색 새잎을 틔우고, 여름이 지나면 순박하고 여린 우윳빛 연노랑 꽃을 터뜨릴 것이다. 그리고 가을이 되면 남은 에너지를 다 쏟아 부어 결정체로 내놓은 탐스럽고 단단한 감이 가지 마다 열려 풍요를 선사할 것이다. 매서운 추위에도 꿋꿋하게 서 있는 늙은 나목이 왠지 근엄하고 자비로워 보인다. 감나무는 나약하기만 한 나의 어깨를 힘내라고 토닥토닥 다독여주는 듯하다. 위로받는 마 음이 된다. 감나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발길을 돌리니 남쪽의 오후 햇살을 받고 있는 다실의 넓은 창문이 보인다. 감나무가 내게 준 힘 을 받고 다실 문을 여니 방 공기가 달리 느껴진다. 자연이 우리의 영 원한 스승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난방을 하니 바닥은 금방 따뜻해지지만 공기는 냉하기만 하다. 물이 끓어오르는 물주전자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와 창문에 비쳐 드는 햇빛이 냉기를 밀쳐내니 방안이 아늑해지고 몸도 편안해진다. 혼자 마시는 차는 오랜만이다. 보이차를 우려내니 그 향이 온 방안에 퍼진다. 온기와 차향이 감도는 방에서 오로지 나만을 위한, 나에 대 한 대접으로 차를 우려내 찻잔에 따른다. 그 움직임이 고요하기 이를 데 없다. 이래서 혼자 마시는 차는 신령스럽다 하나보다. 그간 숱한 사람들을 마주하고 차를 대접하느라 차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그 사람들의 내면의 소리가 가득했던 이 공간은 오늘 이 시간만큼 은 오로지 내 마음의 소리로 채워지고 있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 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만 내 삶의 의미와 나를 찾으려했다. 혼 자 있는 시간이 낯설고 두렵기까지 한 이유다. 오래전에 구입했던 책 『吾友我(오우아)』 ‘나는 나를 벗 삼는다’의 의미를 오롯이 혼자 있는 이 시간에 비로소 알겠다. 나의 주인도 나고, 내 친구도 나다. 쓸쓸했던 마음이 풀어진다. 나와 마주하게 하는 차를 마시니 한없이 평화롭다. 그윽한 차의 풍미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차향에 취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귀하다.
모처럼 누리는 나의 평화를 방해하는 전화벨이 울린다. 윗집에 사는 영미엄마다.
“언니 피망을 대문에 걸어났으니 올리브유에 볶아서 드세요.”
자그마한 체구에 농사를 야무지게 잘 짓는 그녀는 매년 양배추며 파프리카 등을 튼실하게 잘 키워내 우리 집 대문에 걸어둔다. 그녀의 남편은 우리 남편과 친한 갑장이었는데, 올봄에 저세상으로 가고 말았다. 그런데도 올해도 여전히 농사를 지어내다니 나이가 몇 살 많은 나로서도 도저히 따라가기 힘든 정신력이고 생활력이다. 시골에 묻혀 살면서도 텃밭을 일구고 채소를 키워내는 작은 손길도 없이 시간의 무료함만 크게 생각하는 게으른 자신이 부끄럽다. 그녀의 강인함 에 새삼 정신이 바짝 든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밤 12시경에는 도착할 것 같으니 먼저 자라 한다. 그럴 리가요. 그가 오는 시간에 맞춰 외등도 켜 놔야 하고 그가 풀어놓는 이야기보따리도 들어야 한다. 나의 적적하고 심심했던 오늘 하루를 이렇게라도 보상받아야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만 같아서다.
작가 노트
도전하는 삶은 아름답다고들 한다. 나에게는 60대 중반에 어렵게 받아들인 글쓰기가 새로운 도전이었고, 황송하게도 수필작가라는 타이틀까지 주어졌다. 그리고 지금은 글을 쓸 수 있는 길도 활짝 열려 있다.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이전의 나로서는 믿기지 않을 일이지만 글을 쓰게 되면서부터 나만의 내밀한 기쁨을 가슴 두근거릴 만큼 누리고 있다. 예전의 나에게 있어 글쓰기는 내 키로는 닿지 못할 시렁 위에 놓인 꿀단지처럼 선뜻 다가서지는 못하지만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왠지 글로 표현하는 일은 부끄럽고, 무엇보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일부 러 외면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글쓰기를 내외하듯 멀리했던 이유가 분명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보았다. 초등학생 때 나는 동화책을 보기보다는 이미 대학을 졸업하거나 다니던 언니들이 보던 두꺼운 책이나 잡지들의 내용을 알거나 모르거나 무조건 읽었다. 그냥 활자로 채워져 있는 책장을 넘기는 재미였는지도 모른다. 여러 문학서적, 세계일주 기행문이나 타임지, 월간 조선 같은 잡지, 동아일보 등은 나의 심심한 시간들을 호기심이나 흥미로 메꾸어 주는 역할도 톡톡히 했다. 그때 나는 수많은 책장을 넘기며 신기하고 다양한 세상 과 사람들과 자연을 보았다. 특히 우리 시대의 지성인인 작가 이어령의 여러 권으로 묶어진 전집은 지금껏 기억 속에 살아있다.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는 아이의 정서에 깊은 울림을 준 글이었고 작가를 존경하는 첫 마음이 일었다. 특히나 책 첫장에 시골길, 흙먼지바람, 짚 차. 흰 한복 입으신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할머니 발에서 벗겨져 나온 흰 고무신짝을 피사체로 담아낸 흑백사진의 단상은 그 글과 함께 내내 나의 뇌리에 남아 있다. 나이에 걸맞지 않은 책읽기는 글이 어렵다는 사실을 암암리에 나의 무의식에 심어주었다고 애써 추론해본다. 어쨌든 글쓰기를 가까이 할 수 없었던 이유 아닌 이유를 찾아내 보니 어쭙잖은 변명으로밖에 생각이 안 된다. 그래도 어렸을 적의 마구잡이 독서의 경험은 내가 지금 쓰고 있는 수필의 토양이 되어주고, 나의 정서의 소중한 바탕을 이루었다고 조심스레 생각한다.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가슴에 켜켜이 쌓기만 하고 이를 거풍시킬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이 나이를 먹어버렸다.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이제라도 나는 나와 마주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를 수필을 통해 얻게 되었다. 참으로 다행한 일이다. 무엇보다 수필과 함께 하면서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해지고, 무심코 지나치던 소소한 것에까지 관심과 애정을 보이는 나의 감성에 탄력이 생겼다. 오늘도 나는 글을 쓰고 있다.
이제는 닿지 않던 시렁 위의 꿀단지에 손이 닿고 있다. 놀라운 변화에 감사할 뿐이다. 이제는 내가 살아온 세월을 반추하며 마디마디 삶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어 글로 펼쳐 내는 멋진 도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이는 나를 재 발견하고 살아온 삶의 궤적을 돌아보고 정리해 볼 수 있는 의미 깊은 길이 되리라 믿는다. 욕심 부리지 않고 뚜벅뚜벅 나아가고 싶다.
수필을 쓰면서 뜻하지 않게 경험하는 카타르시스와 희열이 앞으로 도 내내 나의 생의 활력소가 되길 바라며, 부족한 저에게 자리를 내어주신 에세이스트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선수원 론
나는 에세이스트다
이상열
향이 있다면 짙고, 맛이 있다면 진맛, 수필이 이런 것이다. 수필만의 문학적 차별성 때문이다. 글 속에 인격이 배제되지 않은 문학, 진짜 삶에 가장 가까운 장르라서 그렇다. 사람의 존재 방식은 다양하 듯 수필도 그러하다. 우열이 의미가 없다. 언어적 미학 자체로 평가 를 할 수 있겠으나 내용에 관한 한 각기 다를 뿐, 좋고 나쁨은 존재하 지 않는다. 글을 안정적으로 부릴 줄 안다면 삶의 내용이 담긴 모든 수필은 인생만큼 고귀하다.
인간은 천상의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지상에 산다. 지상이 수필의 자리다. 때론 시장터에, 뒷골목에, 광주천 다리 천막 안에, 벌교의 갯 벌가에, 삶의 피 터지는 현장이 수필이 사는 곳이다. 그래서 수필은 이상만 추구하지 않는다. 수필의 미학적 성취는 자질구레한 삶을 떠나서 생각할 수 없다. 실제 안에서 찾아야 한다.
오늘 선수원의 글이 그렇다. 작품마다 다르다. 개성이 있다는 말이다. 기막힌 맛이라고 똑같은 메뉴를 한 달 동안 먹으라면 먹겠는가. 서로 다르니 제맛인 것이다. 사람이 어떻게 늘 같을 수 있겠는가. 차 향에 빠진 자도, 천막 안에 있었던 아이도, 첫 손수를 보았던 할머니도, 갯벌 가를 걷고 있었던 여인도, 쓸쓸함을 느껴 마당을 서성이는 여자도 다 선수원이다. 삶이 그랬고, 글이 그랬다.
차향기에 반하다
-텍스트를 넘은 예술적 가치
40대 후반 갱년기 고비를 힘겹게 넘고 있을 무렵, 차(茶)를 만난다. 금 세 차의 매력에 빠지고 중년의 지친 심신이 치유되기 시작했다. 혼자서 차를 만들었고 온 열정을 쏟는다. 차 강의까지 하는 높은 수준에 이른 다. 그러던 중 문득 스치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나의 ‘차가 다른 사람 들에게도 생의 활력이 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후 차에 대한 열정도 식어갔다. 그럼에도 작가는 차에 대한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한 계기를 만든다. 자신의 손을 잡고 차를 만나게 해준 전주 그 친구와의 만남이 주는 설렘이다.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네 사람이 마실 차는 운남의 전홍과 빙도 보이차, 보이홍차로 정했다. 설레며 일요일을 기다린다.’ 이 작품은 한 사람이 차를 만난 이야기나, 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글 이 아니다. 차를 만나고, 차의 매력에 빠져가는 작가의 태도를 주목하 고 싶다. 차의 맛과 향, 차를 만드는 행위뿐만 아니라, 차를 대하는 전 과정에 특별한 의미를 두었다. 차는 곧 그의 정체성이었다. 대상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 아니고서는 다른 것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이것이 작가가 글을 대하는 방식이다. 수필 장르의 뚜렷한 특징은 언어와 사람의 인접성이다. 수필가의 글을 통해서 그의 삶을 보고, 그의 삶을 보면서 글이 예상된다. 선수원 작가의 수필을 지배하는 원 자재가 그의 삶과 삶의 태도이다. 몇 문장을 보자.
➀사십 후반에 나는 차를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다.
②온 공간을 감싸고도는 차향은 고통스런 혼란에 빠져있던 그간의 내 마음을 은은하고 부드러운
바람결처럼 어루만져 주었 다.
③방안의 정경이 아늑해지고 한 잔의 차로도 몸이 따뜻해진다.
차와의 만남이 이토록 진지하다. 실제 차를 만나 인연을 맺은 것도 작가이고, 마음이 부드러워진 것도 작가요, 몸이 따뜻해진 이도 작가다. 차를 사랑하는 작중 인물은 실제 작가다. 그의 작품을 통해 비친 작가의 삶과 캐릭터는 실제 인격과 동일시된다. 이것은 수필을 쓴다는 것과 수필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일치를 이룬다는 의미다. 작품의 내용과 수필가의 삶은 분리될 수 없기에 비전환적 이야기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그래서 결코 허구적 영역이 아닌 수필은 예술적 가치를 작가의 인격이나 격조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점에서 독특한 글쓰기인 셈이다. 언어가 풍기는 분위기는 어떤가. 작가의 언어 자체가 뿜 어내는 품격도 곧 작가다. 차를 사랑하는 자의 언어가 거칠고 투박 하겠는가. 참 신기한 것은 그의 언어 속에서 차향이 나듯 작가의 언어는 다도처럼 차분하고 정갈하다.
그럼, 작가의 언어를 보자. 쉬운 언어다. 그렇다고 가볍지 않다. 삶이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차를 대하는 작가는 누구보다 진중하다.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삶을 앞세웠다. 삶을 앞세우면 감정은 따라오 지만, 감정만 앞세우면, 언어도, 삶도, 진짜 감정도 사라진다. 그래서 그의 언어의 흐름은 ‘쓰기’에 있지 않고 ‘삶’에 있었다. 그렇게 볼 때, 한 편의 수필 안에 오직 텍스트를 통해 예술적 수준을 결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작가의 인격과 개성이 작품을 한 단계 높여줄 수 있 다는 점을 이 작품에서 보았다.
천막 안의 아이
-수필에서 시대상 보여주기
독서 후에도 추억의 몇 장면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마치 옴니버스같은 수필 형식을 띠었다. 여러 화소가 나열되었지만 네 장면이 시선을 끈다. 첫 번째 장면은 광주천 다리 아래, 창극이 열리는 천막 안이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작가는 천막에서 열리는 심청전과 춘향전에 심취한다. 두 번째 장면은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또 하나의 천막이다. 곧, 서커스가 열리는 천막이다. 잊히지 않는 모습이 있다. 색동저고리와 남색 치마를 입고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소녀였다. 세 번째 장면은 대학 시절에 보았던 김소희 명창의 공연이다. 창을 듣다가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네 번째 장면은 인사동의 어느 화랑에서다. 그곳에서 천경자 화백의 그림을 만난다. 작가는 전율을 느낀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네 장면이 작가의 내면 깊숙이 박혀있 다. 하나같이 묘하게 슬프다. 왜일까. 작가는 그 원인을 한(恨)이었다고 말한다. ‘어린아이답지 않게 유난히 슬픈 감정에 빠지는 내 핏속의 정서, 恨’이었다. 작가는 恨의 시대를 살았다. 그래서 선수원의 수필은 이렇게 恨의 시대상을 보여준다. 당시는 그랬다. 가난과 거친 세 상살이에서 오는 모든 억압들 속에서 가열하고도 모진 정신적 산물을 낳았다. 그게 恨이다. 작가는 그때를 살았으니 이렇게 시대적 수 필을 낳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산증인으로서 시대를 보여주는 글은 수필의 또 하나의 가치라 할 수 있겠다.
다음은 시제의 쓰임과 구성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다양한 시제들 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시점이 서로 다른 과거의 몇몇 장면들 이 절묘하게 넘나들며 입체적 분위기를 연출했다는 것이다. 유년기 두 장면, 청년기 두 장면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전략적인 연결이 그렇다. 장면 배치가 기술적이라는 말이다.
➀광주천 다리 아래 쳐놓은 천막 안에서는 애끓는 소리라 울려 퍼 지고 있다.
➁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마이크 앞에 선 색동저고리와 남색 치마 를 입은 소녀.
➂하얀 한복을 입은 자그마한 당찬 체구로 춘향가를 토해내듯 절 절하게 소리를 하시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➃선 화랑에서 천경자 화백의 강렬한 그림 앞에서 예술문화가 주는 충격의 전율로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던 적이 있었다.
분명 네 장면은 시점이 다르고, 인물이 다르고, 장소가 다르다. 근데 공통점이 있다. 무드다. 강렬하면서도 슬픔이 깃든 독특한 분위기는 서로 일치하여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이런 구조와 구성적인 면에서 미학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묘사가 생기 있고, 화소들이 안정감 있게 결속되었으며, 주제가 전체 구조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다. 결국 문학의 궁극적인 필요는 소통이 아닌가. 선수원의 「천막 안의 아이」를 통해서 우리는 그때 그 사람들과 소통했고, 그때 그 한 (恨)의 정서를 느꼈다.
작가는 이렇게 장면들만을 예술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렇지 않은가. 모든 예술이 주체와 대상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수필도 마찬가지다. 수필 창작 환경은 주체와 대상의 관계다. 주체는 ‘작가’요, 대상은 ‘텍스트’다. 작가가 대상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가 중요하다. 윤리적 시선보다 미적 시선으로 봐야 한다. 문학은 예술이다. 예술의 본령이 미 학이라면 수필 또한 예술적이어야 한다. 예술은 설명하고 가르치는 것 이 아니라 보여주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독자를 앞에 앉혀놓고 회초리를 들어서는 안 된다. 작가는 독자의 위에 존재하는 자가 아닌, 독자 아 래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자다. 격동했던 그 시절을 차분하게 보여 준 몇 편의 장면을 통해 마음이 그지없이 뭉클하다.
그럼, 작가의 서술 위치에 대해서 보자. 한마디로 한 사람의 살았던 이야기다. 이야기의 골격만으로 재밌다. 삶 자체가 진짜인데 장면 장면이 흥미가 있다. 글감만으로 이미 새로운 것. 이 작품이다. 수필에서 주로 활용하는 시점은 1인칭 주인공 시점과 1인칭 관찰자 시점이다. 전자는 작가가 작품의 전면에 나서서 내 이야기를 직접 서술하는 경우를 말하고, 후자는 타인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관찰하듯 서술하는 방식이다. 내가 관찰자가 되면 글이 차분하다. 그러나 감흥 은 떨어진다. 반면 내가 주인공이 되면 감흥은 고조될 수 있으나 자칫 마음이 들떠 과욕을 부릴 수 있다. 여기에서 화자의 서술 위치가 중요하다. 서술자가 어느 위치에 서 있는가. 타자를 어디에 세울 것인가의 문제는 독창성을 높이는데 중요한 전략이다.
이 작품에서 시점은 주인공이면서 위치는 관찰자다. 즉, 내 이야기를 남 얘기하는 분위기다. 분명 작가는 1인칭 주인공인데, 마치 내가 나의 육체에서 빠져나와 밖에서 나를 관찰하듯 서술했다. 제목부터 ‘천막 안의 아이’ 어떤 아이일까 싶다. 작가 본인이다. 60대 시대상을 관찰하듯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유체이탈 화법이랄까. 객관적 사실 앞에서 작가는 흥분하지 않았다. 심미적 거리를 두고 지그 시 관찰할 뿐이다.
이게 독자를 끄는 힘이다. 작가가 과하게 느끼면 독자는 덜 느낀다. 소재의 중앙에 있지만 마치 타인처럼 되는 기술과 그 긴장성, 독자 는 애간장이 탄다. 이때 독자는 두 가지로 반응한다. 열광하든지, 욕 하든지. 뿌리는 하나다. 글이 먹혔다는 거다. 독자를 자극했다는 거다. 그때의 나처럼 지금의 독자에게 소녀의 감성을 심었다는 것이다.
납월홍매, 다정도 하여라.
-수필의 이야기 다루는 방식
첫 손주를 보는 날이다. 어지간히 좋은 날, 설렘이 불안한 감정으로 바귀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금둔사다. ‘강마다 뜨는 달’이라는 금둔사 찻집 간판을 보며 태어날 손녀를 생각했고, ‘으르렁 콸콸’ 흐르는 계곡의 물살을 ‘새 생명을 위해 대자연이 쏘아주는 축포’로 여긴다. 그리고 받은 아들의 전화다. 순산했다는 소식이다. 이제야 한숨이 놓인다. 법당을 나오면서 작가의 눈에 포착된 장면 하나, 납월의 홍매다. 납월에 태어난 손녀와 홍매를 귀한 연으로 여긴다. 굉~범종 소리가 들린다. 이 소리 또한 가만 놔둘 작가가 아니다. 의미를 이렇 게 부여한다.
우주와 자연을 깨우는 묵직한 깊은 울림의 소리에 전율을 느끼며 두 손을 합장한다.
오늘 세상에 나온 손녀를 따뜻하게 감싸주는 축 복의 소리이리라.
모든 것의 중심에 손녀가 있다. 오직 아이 하나를 위해 쓴 수필인 것처럼. 단어 하나, 문장과 문단, 사용한 소재, 문체, 흐름, 구성, 등, 수필적 장치는 한 아이를 위해 동원된 것들이다. 작가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면서 수필의 창작기법이 흔들리지 않았다. 서사의 완성도가 높다. 손주가 태어날, 금둔사를 방문했던 이유, 찻집 간판, 계곡의 물흐름 소리, 아들의 전화, 납월 홍매의 발견, 범종 소리 등, 군더더기가 없고, 모든 장면 장면의 결속이 매끄럽고, 짜임새가 견고하다. 엮은 이야기에 디테일이 있고, 무드는 현실성이 짙다. 특히 통일 성 측면에서 보자면, 화소들이 하나의 몸처럼 잘 연결되어 있다. 유기 체와 같은 수필이라 해 두자. 이게 수필에서 이야기의 힘이다. 수필적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서사를 엮는 기술이다. 소설에서 이야기와 수필의 이야기는 다르다. 장황하지 않으면서 전달력이 있어야 하며, 간결하면서도 임팩트가 있어야 한다.
별 것 아닌 것에 관심을 갖고, 그 미세한 내부에 눈길을 주는 것이 작가의 힘이다. 무미한 일상에서 흥미있는 이야기를 끌어내는 작가의 사물을 바라보는 능력이 돋보인다. 전체 구조 안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서 독자의 시선을 끌만한 장면을 포착해서 보여준다. 예상할 수 있는 범위를 넘기는 깜짝 묘미가 작품의 도처에서 발견된다. 가령, ‘으르렁 콸 콸’‘굉굉’이다. ‘으르렁 콸콸’이 긴장감의 고조라면, ‘굉굉’은 긴장감의 해소를 의미하지 않겠나. 그 인상적인 곳에서 의성어로 표현했다. 굳이 긴 부연 없이 단번에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독자는 이런 긴장과 이완을 경 험하면서 글의 흥취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무엇이었을까. 작가가 구성한 플롯 때문이다. 시간순대로의 나열이 아닌 이야기를 위해 작가의 시선에 포착되는 장면을 전략적으로 배치했다. 금둔사 여정 속에서 작가가 경험한 많은 장면이 있었을 것이다. 이 사건들을 다 진열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이야기를 위해서 불필요한 장면을 의도적으로 탈락시킨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수원은 이야기 만들기 귀재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 보자. ‘이야기’와 ‘만들기’는 서로 모순이 된다. 이야기는 원래 존재했던 원 재료라면, 만들기는 글로 엮는 행위이다. 원래 있었던 사실을 그대로 진 술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로 재구성하는 기술이다. 다시 말해 원석이라 는 ‘이야기’를 연마해서 보석으로 ‘만드는 것’이다. 실제 사건을 재창조 하는 과정은 독특하고 능수능란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선수원 작가 는 이야기의 창조자가 아닌, 이야기의 엮는 기술을 가진 자다.
나는 갯벌가에 산다.
-수필의 맛, 엉뚱한 生이야기
작가는 벌교에 사는 언니 집에 놀러 갔다가 시골집 하나를 사 버 렸다. 즉흥적 결정이다. 처음 만족했던 전원생활도 어느덧 무료함을 느낀다. 그 무렵, 소설 태백산맥의 배경이 벌교였다는 사실을 생각했고, 벌교가 궁금해졌다. 더 자세히 벌교를 탐험하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중도방죽이라는 길을 산책하면서 길가로 뻗은 갯벌에 매료된다. 작가의 고백 같은 말을 들어보자.
나도 자연의 일부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거미줄 한 줄이 얼굴을 가로지르며 달라붙는다.
손으로 얼굴에 묻은 거미줄을 걷어낸다. 대기 의 기운이 충만한 가을 저녁이다.
갯벌을 품고 있는 자연과 혼연일체가 되는 순간이다. 역동적이고 풍요로운 공간, 생태계의 갯벌에 서서히 깃드는 장면이다. 어찌 보면 한 사람의 가족사다. 바쁜 독자들이 사적 개인사에 시선이나 줄까. 달리 생각해 볼 수 있다.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보편 적’이다. 나만이 마주하는 삶, 다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내 삶을 진솔하게 살아낼 때, 가장 개인적이며, 창의적이며 동시에 보편성 을 확보한다. 그 개인의 이야기가 나와 정서적 접점을 이루는 순간 그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된다. 시선들은 개인을 찾는다.
그런 점에서 이 개인의 이야기는 처음에는 퍽 뚱딴지같은 전개였다. 도시에 살던 작가가 뜬금없이 시골로 이사를 왔다. 그것도 갯벌 가로. 이 자체로 충분히 화젯거리가 된다. 엉뚱하다. 근데, 엉뚱해야 문학이 된다. 사회적인 통념이나 반듯한 질서, 혹은 인간의 보편적 심리의 흐름에 따라가는 수필적 전개야말로 무슨 이야깃거리가 되겠는가.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기정사실이나 평범함을 넘어서야 수필 적 미학에 도달할 수 있다.
작가는 자신의 생각과 의식을 다 드러낸다. 그냥 生이야기다. 배짱도 용기도 아니다. 살아가는 이야기다. 자신을 열면 열수록 시선의 족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시선에서 자유한다는 것을 작가는 알아버 렸다. 가령, 집을 샀다. 옷도 아니요, 차도 아닌 집을, 그것도 즉흥적으로, 근데 집을 샀다는 것은 나의 삶의 터전을 그곳으로 옮기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렇게 도심에서 시골로 옮겼다. 문화를, 시선을, 생활 습관을 옮겼다는 게다. 그리고 얼마 후 지루해졌다. 얼마나 아찔하면서도 암담한가. 휴... 점3개만 있으면 다 되는 이런 무언부호가 있어 다행이다. 그래서 글은 지루해지지 않았다. 100%의 진정성이 주는 끌림 때문이다.
글의 진정성을 얻기 위해 ‘사실’ 이외에 갖춰야 할 요소들이 많다. 수필이라는 장르 특성상 경험을 언어로 환원하는데는 언어 선택이 가장 중요하다. 즉, 진심의 문체! 그러나 모든 작가에서 현란함이 유혹이 될 수 있다. 작가는 이겨냈다. 글솜씨에서 말솜씨가 보였다. 진정성은 여기에서 나온다. 목성균의 [고모부]란 글이 있다. 밥상에 단 란하게 둘러앉은 가족, 그렇게도 좋으신지 할머니의 감정이 북받친다. 그리고 한숨처럼 조용히 토해낸 할머니의 감탄사다. “참 좋다.” 이 분위기에 어휘를 치렁치렁 달면 안 된다. 문장과 글자가 아니라, 무드로 읽혀야 한다. 초반부의 느낌은 적막한 시골의 ‘답답하고, 지루하고, 나른’한 분위기다. 내면의 심정을 전환 없이 답답하고, 지루하고, 나른하다고 직설했다. 이 모든 마음의 변화와 의식을 수렴하여 함축한 문장 하나가 결미에 나온다. ‘나는 갯벌 가에 살고 있다.’ 진정성 100%의 함축이다.
참 쓸쓸하다
-진심은 독자를 감염시킨다
작가는 지금 쓸쓸하다. 집에 혼자 남았다. 남편이 출장을 떠났기 때문이다. 쓸쓸함을 극복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거나, 방안을 서성거 린다거나, 잔디 마당에 하늘을 보기도 한다. 그리고 결심이라도 한 듯 다시 방에 들어와 차분히 앉았다. 작가 선수원의 차(茶)예식이 시작 되었다. 우려내고, 따르고, 입으로 가져간다. 쓸쓸했던 마음이 풀어 진다. 그리고 생각의 전환이 이루어지며 고백하길 ‘혼자 있는 시간이 귀하다.’ 쓸쓸한 시간에서 ‘귀한’ 시간으로의 전환이다.
그럼, 쓸쓸함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부재요, 빈자리다. 즉, 빈곳 의 경험이다. 남편의 자리가 비었다는 것, 이것은 인간의 실존적 외로움이다. 그렇다. 인간의 삶이란 원래가 비어있었다. 성서 욥기에 이런 대목이 있다. ‘적신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여기서 적신이란 ‘발가벗은 몸’이란 뜻이다. 원래가 빈 것, 인간은 처음부터 적신이라는 소름 돋는 사실을 작가를 통해서 기억하게 된다. 즉, 쓸쓸함이란 빈 것의 기억이다. 비고 또 비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이 쓸쓸함의 근원이다. 그러나 작가는 쓸쓸함에 대해 저항하고 극복을 시도했다. 곧, 혼자 있는 시간으로 승화시켰다. 피동적인 상황을 능동적으로 오롯이 자 신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죽은 시간이 살아 있는 시간으로 바꾸었 다. 얼마나 창조적인가. 그리고 혼자만의 시간을 만든다는 것은 쓸쓸함을 극복하려는 내면의 시도다. 그렇다면 더 현실적인 시도가 있다면 윗집 영미씨의 등장이다. 정적인 무드에서 동적인 무드로 전환 된다. 생기가 돈다.
그럼, 작가의 자기표현 방식을 보자. 생각, 감정, 창작기법과 이전의 삶까지. 감정을 다 표현했다. 이것은 신변이 아니라, ‘생각’을 두고 하 는 말이다. 쓸쓸함이라는 느낌, 생각. 에세이 장르에서 자신을 드러 내지 못하는 몇 가지가 이유가 있다. 용기가 없거나, 삶이 없거나, 철학이 없거나. 진짜는 숨긴다. 두려워서다. 쏟아놓는 대부분의 말은 미화된 진실이다. 작가 선수원은 그 진실을, 진짜 생각을 말했다. 쓸 쓸하다고. 타인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냥 쓸쓸하다.
누군가가 ‘책은 도끼다’라고 했다. 말마따나 책은 도끼 맞다. 하지만 어설픈 도끼에 찍혔다간 인생 큰일 난다. 생각이 깨져야지, 인생 이상한 쪽으로 깨지면 안 된다. 모든 글이 진리는 아니기 때문이다. 진실을 담은 글이 도끼다. 신변이 아닌, 생각의 진실을 말한다. 일상 그 자체를 ‘사실’이라고 한다면, 생각의 진실을 ‘진심’이라 한다. 진심은 독자를 감염시킨다. 그러니 작가가 쓸쓸하면 독자도 쓸쓸한 것이다.
전반부에는 자아에 몰입하지만 중반부, 후반부에 갈수록 자신에게서 한발 물러선다. 타인의 이야기처럼 관조하듯 옮겨놓는다. 이때 글은 내 몫이 되어 명치에 걸린다. 어떻게 물러섰나. 결정적 순간에 감정을 유보한다. 작가는 여기서 다른 표현 방식을 시도한다. 빈자리가 주는 상징성 있는 장치들을 이용했다. 고양이, 누렇게 퇴색된 화단, 잔디, 하늘, 거울속의 자신, 마당에 늙은 감나무 3그루다. 쓸쓸한 자신의 직접적 감정 표출을 잠시 유보하고 주변 사물에다 감성을 간접적으로 옮겨놓았다. 그 사물들 속에서 나를 본다. 세상에 내 얘기 아닌 게 어딨겠나. 독자는 자신의 쓸쓸함을 발견한다.
맺는 말
수필은 어느 장르보다 ‘나’라는 인격적 주체가 뚜렷이 드러나는 글쓰기다. 여기에 ‘내’가 이렇게 많은데, 글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는가. 개성의 상실을 두려워야 해야 한다. 개성은 개인의 세계관을 반영한다. 사람은 어떤 세계관을 가지느냐에 따라 생각하고, 말하고, 살고, 쓴다. 내가 수필에 대한 분명한 ‘어떤 관점’을 가지느냐가 글쓰기의 시작점이며 방향이다.
위험한 것 두 가지가 있다. 나의 글쓰기관이 없거나 고정되거나. 나의 글쓰기관이 없다는 것은 내가 없다는 것이고, 고정된다는 말은 문학의 본성과 거리가 멀어졌다는 말이다. 판에 박힌 형식 앞에 ‘나 는 나’, ‘나는 나처럼 쓴다.’ 이런 글쓰기의 패기 하나쯤 가지고 써야 하지 않겠나.
이런 점에서 내가 반영된 한 편의 수필은 문학적 진위를 떠나서 ‘유일한 글’이다. 세상에서 ‘나’는 유일한, 고유한 나이다. 나 같은 삶은 나 외에 없기에, 내 삶이 한 번밖에 없기에 그렇다. 그러니 수필을 쓰는 자는 하나의 든든한 배후를 가진 자다. 말마따나 ‘에세이스트’ 라는 자의식이다. 짐작한다. 앞으로 작가 선수원은 자신의 삶이 유일 하듯, 무엇을 쓰든 유일한 글이 될 것이다. 차향기에 반하고, 천막 안에 슬픈 감정을 지닌 한 아이를 글로 달래며, 납월에 손녀를 얻은 평범한 할머니로, 벌교 갯벌 가에 살며 중도방죽을 걷는 자로, 쓸쓸하면 쓸쓸한 대로, 그렇게 살면서 그렇게 쓰게 될 것이다. 이렇게 수필 의 길을 숙명처럼 여기며 사는 것이다. 그러면서 선수원은 마음으로 무수히 되뇌었던 말 한마디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에세이스트다.’
love2060@hanmail.net
2013년 영주신춘문예 당선.
2017 에세이스트 올해의 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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