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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학당] 진여와 열반 31강 - 유식학唯識學 개론(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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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와 열반 강의가 엄청난 강의입니다. 여기 함께해 주셔서 감사하고 이 진여와 열반이 참 나오기 힘든 강의인데 나온 거예요. 저도 애초에 이거를 이렇게 하려고 기획했던 강의가 아니에요. 예전부터 기획했던 강의가 아닙니다. 불경에 대해서는 제가 뭐 끝없이 강의해 드렸고 화엄경이니 뭐니 많이 해드렸지만 이런 진여와 열반 강의는요 불교 총정리입니다. 이건 어디 내놔도 총정리거든요. 팔만대장경의 총정리예요. 팔만대장경을 그냥 통으로 공부할 수도 있어요. 통으로 외우실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이걸 유기적으로 하나로 꿰서 이해한다는 건 어려운 겁니다. 비판할 것 비판하고 쳐낼 것 쳐내야 회통이 되거든요. 그런데 회통을 하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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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회통이 힘들어요. 예전 원효 스님이 우리나라에서 회통불교를 여셨어요.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요 원효 스님의 회통은 성종 상종 이런 공종 그리고 부파불교 초기불교를요 다 옳다고 하고 꿴 회통이에요. 이게 원효의 화쟁사상입니다. 이 화쟁사상은 모두가 옳다고 하고 평면적인 회통이에요, 제가 볼 때는. 제가 하는 회통은 완전 입체적이에요. 따라서 쳐낼 거 쳐내고 아닐 거 아니라고 하고 이건 부처님 말 아니라고 쳐야 되고 이건 후대에 누가 만든 거라고 해서 쳐내야 돼요. 원효 스님은 그게 없어요. 다 옳은 말로 보고 서로 입장 차이일 뿐이다라고 회통한 거예요. 이렇게 해 놓으면 지금 8지보살이 아라한이 되고 이런 문제가 생겨요. 회통이 되다 보니까 8지가 아라한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 중국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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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교학자들도 다 8지 그러면 소승에서는 아라한 대승에서는 8지 그래요. 둘 다 아집 떨어진 자리라고 똑같다고 봐요. 이런 식 회통은 지금 도움이 안 돼요. 어디 아라한이 8지예요. 이상하죠. 성유식론만 해도 아라한을 8지로 보고 얘기하고 이럽니다. 제가 그런 거 다 쳐낸 거예요. 말 안 되는 소리들. 지금 와가지고 훨씬 데이터도 많고 더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잖아요. 지금은 쳐낼 것 쳐내고 회통을 시키더라도 자명한 것들끼리 회통을 시켜야지 자명한 것 찜찜한 게 섞이면 안 돼요. 섞이면 죽도 밥도 안 되고 나중에도 도움이 안 됩니다. 이게 어려운 거예요, 회통이. 그런데 홍익학당은 어떻게 했죠? 진심으로 종교 회통시킨 데가 없죠. 진심으로 여러분 불자이면서 예수님을 존경하고 기독교인이면서 불경을 읽을 수 있는, 진심으로. 우리가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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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를 지향한다면서 그리고 지향만 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교리를 다 회통시켜 가지고 쳐낼 거 쳐내고 교통정리를 했기 때문에 여러분 학당 강의만 들으시면 편하게 조금도 찜찜한 거 없게 자기 종교 더 100배 200배 즐길 수 있습니다. 이게 가능해야 회통이거든요. 거죽만 회통한 건 아니에요. 종교인들이 옷 입고 나와서 서로 악수하고 회통된 게 아니에요. 속으로 다 딴 생각이에요. 마찬가지로 불교 안에서의 회통이라는 것도 쳐낼 것 쳐내고 하지 않으면 화쟁이 안 돼요. 화쟁이라는 건 단순히 입만 막아 놓은 거예요. 말 못하게. 쟤네도 부처님 가르침인데 부처님 가르침이 틀릴 리가 없잖아. 초기불교 가르침도 틀릴 리가 없잖아. 부처님 가르침인데. 이렇게 해서 평면적으로 놓고 합쳐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되는 거예요. 이제는 입체적으로 유기적으로 회통될 때가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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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적인 불교 회통론이 지금 처음 선보인 게 지금 이거예요, 제대로. 진여와 열반. 석가모니부터 경허까지 나아가 마지막 원불교까지 회통시킬 거예요. 원불교도 근본은 불교 부처님 교리에 대니까 하나로 회통시켜서 보여드릴 겁니다. 그래서 이게 참 제가 하면서도 의미 있는 작업이다. 이런 작업이 없었는데. 부처님 왔다 가신 지 한 2500년 만에 이런 의미 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이게 대단한 겁니다. 또 하늘이 도와서 이런 강의들을 할 수 있게 이런 자료들이 모였고 이런 자료들을 하나로 꿰서 지금 제가 설명을 드리게 돼서 저도 감개무량해요. 이걸 이 강의를 할 때마다 감개무량합니다. 어떻게 내가 이런 걸 알아가지고 여기에 참여하게 됐지? 이런 걸 하게 됐지? 정말 가슴 벅찬 일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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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좀 그렇게 알고 누려주시고 오늘 또 유식학으로 충격 받으시더라도 이런 마음으로 넓게 헤아려 주시고 “그래 회통이 원래 어려운 거야.” 이러면서 갑시다. 근데 지난번에 한 번 해가지고요. 할 얘기는 다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좀 어렵거나 좀 재미없는 부분이 나올 거예요. 뭐냐면 마음을 너무 정밀하게 분석하다 보니까 지루해요. 지루한 거 많이 들어낸 게 이겁니다. 지금 지루한 부분 다 들어내고 하는 게 이 정도라는 거 아셔야 돼요. 진짜 지루해질 수 있어요. 그런데 그걸 다 알 필요가 없거든요, 우리가. 자명하게 뼈대만 알면 돼요. 뼈대 위주로 해서 설명 드릴게요. 한번 가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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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식학은, 유식학은 이것만 기억하세요. 세 가지 자성이 있다, 유식학은. 유식학은 상종이죠. 공종 성종 상종 중에서는 지금 우리 공종은 지나왔어요. 반야경, 반야경 계통이 다 공종입니다. 공을 강조하는 철학. 왜 공을 강조하게 됐다고 그랬죠? 우리 청정광명심, 참나자리는 텅 비어 있으니까 이렇게 이해하셔야 돼요. 공, 왜 공을 강조했죠? 그러면 또 연기가 막 무상하고 이러면 안 돼요. 학당 강의 들은 분 아니에요. 유식학은 그 청정광명심에서 어떻게 우주가 나왔는가를 설명하는 거예요. 그래서 상종이라고 합니다. 어떻게 우주가 나왔는가? 그런데 이 유식학도 사실은 유식학도 사실은 공종이에요. 뭐냐 하면 공종보다 우리가 더 반야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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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잘할 거야 하고 나온 겁니다. 나름 어떻게 보면 공종이에요, 크게 보면. 그런데 상종으로 분류되게 된 거죠, 나와서는. 나올 때는요 중관학파가 너무 공종을 제대로 설명을 못한다고 보고 반야심경으로 대표되는 반야경을 우리가 더 설명 잘하겠다고 설명하다가 나온 거예요. 애초에. 왜 그런데 이걸 이래서 상종이 된 거예요. 그런데 공만 강조하는 것은 뭐라고 그랬죠? 삼무자성, 삼무자성만 강조하는 건 이건 반쪽짜리야라고 본 거예요. 공의 의미에서 공에만 빠지면 안 돼. 공을 적극적으로 풀다가 보니까 이제 공종에서 상종으로 나온 거예요. 자성이 있어. 자성이 왜 없어. 자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미료의(未了義)라 그랬죠. 이쪽이 료. 료(了)는요 궁극의 깨달음이에요. 완벽하게 파헤친 설명이면 이쪽은 미료(未了) 아직 궁극의 설명은 아니다. 방편의 설명이라는 거죠. 방편.
[* 해심밀경解深密經의 무성교無性敎(반야부)의 종지 풀이
: 3세기경 경전 제2전법륜의 가르침인 무성교는 제3전법륜의 가르침인 요의교了義敎에 비해 궁극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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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여기 보시면 제3세기경 앞부분에 해심밀경(解深密經)의 무성교(無性敎) 종지풀이 그랬죠. 이 공종을 뭐라고 공격했죠? 무성교. 여기는 자성 없음만 강조하는 무성교다. 그리고 소승을요? 소승교라고 그랬죠. 기존의 소승교를 무성교로 극복했는데 무성교마저 극복한 게 뭐다? 이쪽 요의교(了義敎)라고 하잖아요. 여기 보시면 맨 윗줄에 검은 진한 글씨 있죠. 3세기 때 경전인데 해심밀경이 2전 법륜, 부처님이 두 번째 법륜을 펴신 가르침이 무성교, 반야경 계통에 대해서 3전법론의 가르침인 요의교(了義敎)가 더 궁극의 가르침이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여기를 궁극의 가르침인 요의교라고 부르는 겁니다. 완벽히 파헤쳐 설명했다. 결국은 마지막은 뭐였어요?
[7) 제1전법륜의 가르침인 ‘소승교’는 ‘아공법유我空法有’의 ‘유교有敎’이며, 제2전법륜의 가르침인 ‘무성교’는 ‘아공법공我空法空’의 ‘공교空敎’이다.]
소승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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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였죠. 유, 아공법유, 아공. 소승은 아공은 인정하죠. 개체적 자아는 없는데 그 자아를 구성하는 오온이라고 하는 법은 있다는 거예요. 아니 법이 있으니까 법이 뭉쳐서 나라는 걸 만들어냈을 거 아니에요. 법이 뭉친 것, 이 법들이 일종의 새끼줄의 새끼죠. 이 법이 뭉친 게 뭐예요? 새끼줄이죠. 그걸 보고 나라고 하는 망상이 생겨났다는 거죠. “이게 나네” 하고. “너가 뭐야?” 그러면 “생각 감정 오감.” 그러면 “생각이 너야? 감정이 너야? 오감이 너야?” 보니까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아공이에요. 그런데 뭐는 있어요? 생각 감정 오감이 있다는 거예요. 생각 감정 오감은 연기하면서 계속 굴러가고 있는데, 일정한 생각 감정 오감의 다발을 나라고 부른다는 거예요. 우리가 이걸 나라고 여긴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나라는 게 영원하지가 않잖아요. “생각 감정 오감이 계속 무상하게 변해 가는데 영원한 너가 어디 있어?” 그래서 아공에서 이 아는요 여기서 비판하는 참나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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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영원한 참다운 불변의 영원한 불변의 에고를 말해요. 에고성이 에고가 없지 않냐? 그러니까 너라고 하는 게 없지 않냐 이거예요. 영원한 너가 있어? 생각 감정 오감이 너라는데 그게 다 변해 가잖아. 고정된 너가 없잖아. 이거죠. 고정된 너가 없잖아. 아공법유(我空法有)를 주장해서 유교(有敎)예요. 이쪽은요? 무성교(無性敎)는요? 아공만 주장하는 게 아니라 법공이죠. 나니 남이니 하는 게 다 공이다. 일체가 공하다 그런데 공에만 강조했다는 거예요, 유식학은. 우리는 무성교가 아니다. 자성이 있다고 보는 거다. 무성도 방편이었다. 이 말도 맞는데 궁극의 가르침은 아니었다. 진짜 궁극의 가르침은 세 번째 전한 법륜인 자성이 있다. 불성이 있다. 이 가르침이 진정한 가르침이다. 이게 유식학의 주장이었어요. 그래서 유식학은 진여 불성을 강조하는 겁니다. 단 진여불성을 제대로 강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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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종에 비해서는 뭘 강조하게 돼요? 유식학은 아뢰야식을 강조해요. 아뢰야식, 8식이라고 하는 아뢰야식. 그래서 이 삼자성 삼무자성을 다 이 8식의 작용 속에서 설명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 8식을 구체적으로 하면 이 세 가지 식이 포인트면 돼요. 8식 7식 6식 요 세 가지 식이 핵심이에요. 그래서 식에서 세 가지, 자성에서 세 가지, 무자성에서 세 가지, 여기서 6식 안에요, 6식 안에 5식이 들어가요. 그걸 전5식(前五識)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이걸 이렇게 이해하시면 돼요. 의식에는 8식이 있다 그러면 8개의 식을 말하죠. 그런데 제8식 그러면 아뢰야식이에요. 제를 붙여요. 제7식 그러면 이거는 말라식(末那識)이고요. 제6식 그러면 의식(意識)이고요. 전5식 그러면 오감을 말해요. 그냥 6식 그러면 얘들을 통합해서 6식이라고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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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가지 의식이라는 뜻이 있고 6식 그러면 여섯 가지 의식이라는 건지? 그렇죠. 6번째 의식을 말하는지? 이걸 구분하셔야 돼요. 그래서 총 8식이 있다고 하면 여덟 가지 의식이 있다는 얘기예요. 그런데 제8식 그러면 아뢰야식만을 말해요. 됐죠. 그래서 제6식은 우리가 아는 의식이고요. 7식은 말라식이라고 그래요. 말라식 마나스(manas)라는 게 원래 의랑 뜻이 같아요. 근데 마나스라는 인도 인도 말을 그대로 쓴 거예요. 둘 다 의식이 돼 버리니까. 그렇잖아요. 이걸 번역해버리면 둘 다 의식 의식이 되잖아요. 의의 번역 인도 말인 마나스를 말라식 해서 여기다 넣어버린 거예요. 그래서 이 말라식이랑 결국은 다 결국 생각인데 나의 에고에 집착하는 생각을 특별히 말라식, 오감을 가지고 생각 감정을 일으키는 의식을 의식, 제8식이 이 모든 의식을 만들어낸 주체인 8식. 그래서 8식 7식 6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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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심왕(心王)이에요. 식 자체는 심왕이에요. 심왕(心王)에는 신하들이 따라요. 그걸 심소(心所)라 그래요. 그 마음이 소유(所由)의 줄임말이죠. 심소유(心所有) 마음이 소유한 작용들이에요. 마음의 작용들. 그래서 여덟 가지 마음이 있으면 마음의 각각의 작용들이 있겠죠. 여기까지. 여기 비워둔 이유는 물어볼 거예요. 퀴즈. 여기 새로 설명 드리는 거예요. 어때요? 이 정도면 지금 유식학은 이게 다라니까요. 그러니까 쉽죠? 자 한번 가볼까요. 얼마나 기억하시는지? 삼자성(三自性) 자 뭐 있습니까? 밑에서부터 가죠. 이거예요. 새끼가 있습니다. 새끼를 엮어서 새끼줄을 만들어 놨어요. 그걸 보고 뱀인 줄 알았어요. 3단계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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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새끼가 있어요. 하나만 그려놓을게요. 이놈들의 다발이 지금 밧줄이에요. 그렇죠. 그러면 이게 위에 해당하는 게 원래 실에 해당되는 게 뭐죠? 원성실성(圓成實性), 원만하게 이루어진 진실한 성품. 이미 이루어져 있어요. 원만하게 이루어져 있는 성품이에요. 이게 진여입니다. 진여불성이에요. 이 성이 있고 자성이 있고 진여불성도 자성이죠. 그래서 자성청정심이에요. 자성이 청정한 마음이잖아요, 정광명이. 정광명의 마음에. 정광명의 마음을 말해요. 그 성질을 원성실성. 그다음에 이 새끼로 인해서 어떤 밧줄이 만들어졌어요. 이게 우리가 경험의 세계죠. 여기는 영원한 세계면 이게 경험의 세계예요. 진여의 세계면 경험의 세계에 나타나면 의타기성(依他起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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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할 의(依)입니다. 의타(依他) 남의 의지해가지고 일어난다. 연기 이게(의타) 연(緣)이죠. 연기(緣起)에서 연이 조건이잖아요. 조건에 의지해서 일어난다는 거니까 의타기성이라고 불렀어요. 연기를 의타기(依他起)라고 불러본 겁니다. 의타기성. 연기성이에요. 연기하는 성질. 연기하는 성질은 뭐예요? 핵심이? 부처님이 연기를 얘기할 때 하신 얘기가 있어요. “이것이 있어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어 이것이 있다.” 그렇죠. 과거가 있으니까 미래가 있죠. 과거랑 미래는 쌍생쌍멸합니다. 과거만 있고 미래가 없다는 것 상상이 되세요. 미래라는 개념이 없는 과거. 말이 안 되죠. 과거라는 개념이 있으면 미래라는 개념도 있어야 돼요. 이게 연기예요. 이게 있으면 이게 있어야 돼요. 서로가 규정해 줘요. 미래가 과거를 규정해 주고 과거가 미래를 또 규정해요. 이게 연기입니다. 이것이 있어 저게 있는 거예요. 이게 인과예요. 인과. 원인이 있어서 결과가 있는 거죠. 결과가 있으니까 그 원인이 성립하는 거예요. 내가 누군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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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이 되려면 결과물이 있어야죠. 결과가 없는데 내가 원인일 수는 없잖아요. 서로 상호의존성입니다. 이게 다른 말로 상호의존성. 상호의존적이에요. 그래서 따라서 홀로 존재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다른 것에 의지해서 내가 서는 거예요. 여러분이 존재하려면 타자가 있어야 돼요. 타자가 있어야 에고가 성립하거든요. 나라는 게 성립하려면 남이 있어야 돼요. 남이 없는데 뭘 나라 그래요. 그래서 참나는 내가 아닌 거예요. 나이면서 내가 아닌 거예요. 남이 없기 때문에. 남이 없는 나를 참나라고 해야 되는데 여기 지금 소승불교에서 비판한 참나는 나인데 영원하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에 대한 고집이죠. 그래서 아집이라고 해요. 나에 대한 고집이 없는 거예요. 아공이라는 건 내가 고집부릴 나라는 게 없더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내가 나라고 여기는 게 생각 감정 오감, 오온일 뿐인데 오온이 자체가 무상한데 어디서 나를 찾아요. 영원한 나를? 영원한 내가 없다니까 그러면 내가 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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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다는 거냐? 아니에요. 부처님은 내가 없다. 내가 있다. 둘 다 극단적 견해라고 공격합니다. 내가 있는데 무상하게 있다는 거예요. 부처님 이해되시죠. 그러면 내가 없습니까? 그러면 그것도 극단적인 견해라고 그래요. 그렇죠. 상견(常見) 단견(斷見) 그래서 영원한 내가 있다. 나는 상견 영원할 상(常)자. 끊어질 단(斷)자. 내가 없다는 건 단견. 중도를 걸으라고 그랬어요. 그러면 어쩌라는 거야? 난 있는데 무상하게 변해 가면서 있는 거예요. 그걸 아공법유(我空法有)라고 해요. 나는 공한데 법들은 굴러가고 있다. 그 법들은 어떻게 생겨요? 의타기성으로 원성실성 의탁기성. 그다음. 그런데 이걸 뱀으로 착각했네요. 이건 망상의 세계입니다. 망상의 세계는 변계(遍計) 거기 한자로 있죠? 교재에. 어디 있는지 나중에 찾아보시고.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 두루 계산해서 두루 계산해서 집착하는 성질. 그래서 이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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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 법집의 세계예요. 아집 법집의 세계. 자 보세요. 여기는 아집과 법집의 세계입니다. 망상의 세계입니다. 의타기성은요 가아(假我), 가법(假法)의 세계예요. 임시적인 자아, 임시적인 법이 있습니다. 왜 연기하니까 생겨요. 연기하면 아와 법이 생겨요, 실제로. 왜 그런지 아세요? 세상 신기한 게 여러분, 여러분이 우주를 관찰하는 그 인식 주관이 있다는 겁니다. 알아차리는 자가 있다는 게 세상 신기한 거예요. 여러분 각자가 우주를 알아차리는 주체잖아요. 솔직히 여러분 왜 다른 존재가 있다는 거 확실히 할 수 있어요. 몰라요. 오감의 대상일 뿐이거든요. 내가 아무리 사랑하는 존재도 오감의 대상일 뿐이에요. 알 수 없어요. 즉 내 의식에서는 대상일 뿐이라고요. 모든 의식에는 두 개가 나뉘어요, 주객이. 알아차리는 자와 알아차려지는 대상이 나뉘어요. 이게 아와 법입니다. 그래서 가아와 가법이 의타기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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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겨나는 게 에고가 있으면 대상이 생겨요. 보는 자가 있으면 보여지는 대상이 생겨요. 의식이 6식 7식 8식이 구르다 보면 식(識)이 전변(轉變)한다고 그래요. 구르다 보면 반드시 생겨나는 게 주체와 객체가 생겨나요. 이 주체와 객체를 가아, 가법이라는 겁니다. 임시적인 자아, 임시적인 법이 생겨요. 왜? 가아라고 하면 계속 무상하게 변해가기 때문에. 고정된 아와 법이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데 분명히 주관과 객관은 생겨요. 그래서 의타기(依他起) 서로 의지해가지고 생겨요. 얘네들끼리 의지해서 생겨요. 얘가 있어서 얘가 있고 예가 있어서 얘가 있어요. 바라보는 자가 있으니까 지금 보여지는 손이 있고요. 보여지는 대상이 있으니까 바라보는 자라는 게 성립하는 거예요. 여기까지 이해되시죠? 그런데 바라보는 나한테 집착을 해요. 이게 아집입니다. 보여지는 대상에 집착을 해요. 이게 영원할 거다. 내가 영원할 거다. 이렇게 집착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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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我執) 법집(法執)이라고 그래요. 그게 깨지면 그러니까 뭔가 우주에 독자적인 내가 있는 것 같고, 우주에 독자적인 펜이 있는 것 같은데, 의타기적으로 바라보면 진실은 뭐예요? 그건 망상이었다는 거예요. “그건 뱀을 본 거야. 너가. 진실을 봐.” 밧줄을 보면 이게 뭐로 보여요? 8식의 작용으로, 8식의 작용으로 보여지는 펜도 의식에서 나타나고, 8식의 작용으로 나타나고. 보여지는 것도 8식이 만들어요. 보는 놈도 8식이 만들어요. 의식의 작용이었을 뿐이에요. 8식7식이 의식을 이렇게 굴려가지고 만들어낸 거예요. 8식에서 견분(見分)과 상분(相分)을 만들어요. 보는 자와 보여지는 걸 만들어요. 이게 견분과 상분입니다, 8식의. 견분과 상분이 만들어지는데 이 견분을 나라고 집착하는 게 7식이에요. “이게 나야. 이게 나고 너는 남이야. 이게 나야.” 집착이 일어나죠, 7식에서. 그래서 6식에서 실제로 이 남을 오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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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감으로 이해한 다음 거기에 대해서 생각 감정을 붙여서 판단하고 행위도 일으켜요. 생각 감정과 이제 행위까지 일으켜요. 의식이 오감 차원에서 행위를 일으킨다고요. 그래서 생각 감정 오감이 같이 작동하면 여기에서 업을 지어요. 이 업은 선과 악이 갈립니다. 7식은요 선악이 없어요. 이건 선악이 없을 때는 여러분 그냥 무기(無記)라고 하면 돼요. 무기. 아닌 거예요. 선도 악도 아닌 상태를 무기. 없을 무(無)자에 기록할 기(記)자 해서 무기(無記). 여기까지 오셨죠. 그래서 아무것도 기억이 없는 상태에 명상하다가 빠지면 무기공(無記空)이라고 하죠. 기억이 없다 예요. 그런데 이거는 여러 의미로 쓰이는데 선도 악도 아니다는 의미로 많이 씁니다. 선도 악도 아닌 무기 상태. 그래서 제가 얘기하는 게 아집 법집은 어디서 생기냐면 7식에서 생겨요. 7식에서 이미 생겨요. 8식에서 8식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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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과 객관을 만들어내면 7식이 그거를 나라고 집착하는 거예요. 그래서 7식, 6식이 쫙 펼쳐지거든요. 이 펼쳐지는 과정에서 8식이 만들어내는 견분을, 견분과 상분을 지금 가아(假我) 가법(假法)이라고 하는 거예요. 원성실성이 텅 빈 진여불성이었다면 이게 아뢰야식의 본성에 해당됩니다. 그러면 아뢰야식이 견분과 상분을 만들어내면 의타기성의 세계로 진입해요. 나와 남이 찢어져요. 우리 의식에서 펼쳐져요. 그때 나라고 집착이 일어나는 게 변계소집(遍計所執)해가지고 이 집착을 일으키는 게 7식을 일으킵니다. 7식이 에고 의식이에요. 그래서 나와 남이 딱 찢어져요, 그때. 이것 나 저것 남. 이렇게 여러분 의식에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지금 이해되세요, 여기까지? 그래서 이 세 가지 식과 세 가지 자성, 이 세 가지 무자성까지만 알면 유식학은 다 아신 거예요. 사실 유식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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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론만 해달라고 그러면 여기까지만 제가 하고 끝내면 돼요. 더 들어가실 필요가 없어요. 좀 아쉽게도 들어갈 겁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이해돼요? 이게 좀 이해가 돼야 진도를 나갈 수 있어요. 제가 8식은 아뢰야식인데 8식이 진여불성은 아니에요. 8식은요. 아이 또 기분 좋았는데 다시 왜... 진여불성은 아뢰야식의, 아뢰야식의 그 본성을 말하는 거고요. 아뢰야식 자체는요, 지금 유식학에서 강조한 아뢰야식이라는 8식은 생멸심(生滅心)이에요. 진여불성은 생멸이 없잖아요. 그래서 달라요. 생멸이 없는 것이 아뢰야식의 본성이라는 거예요. 본성, 유식성(唯識性)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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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요. 유식의 본성. 근데 이 아뢰야식 8식부터 쫙 8식이 생기면 7식 6식이 펼쳐질 거 아니에요. 이거를 유식상(唯識相)이라고 그래요. 유식의 형상. 그래서 법상종(法相宗)이라는 종파도 생기고 이 유식학을 상종(相宗)이라고 부르게 돼요. 여기도 성(性)을 강조하죠. 본성을 강조하긴 하지만 우주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누구예요? 본성이 아니에요. 본성은 청정광명심으로 우리 안에 내재돼 있는 잠재력이고, 실제 우주를 굴리는 본체는 뭐예요? 8식이라는 아뢰야식인데 생멸심(生滅心)이라는 게 계속 마음이 일어나요. 일어나고 사라지고. 그런데 안 끊어져요. 이게 영원히 불멸해요. 그런데 물론 8식이라는 이름 자체는 끊어집니다. 이게 나중에 이게 만약에 이러지만 어떤 무루(無漏), 오염성이 사라지면 이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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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경지라고 하는 지혜로 바뀌어요. 무구식(無垢識) 그때는 무구식이라고 불러요. 8식 자체가 이름이 바뀌어요. 왜냐하면 8식일 때는 오염된 종자들을 많이 갖고 있거든요. 여러분이 악업을 저지르면 악업의 종자가 어디 관리되죠? 8식이에요. 이 8식의 선악의 종자, 선악 특히 악의 종자들 선의 종자들 다 관리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오염돼 있다고요. 이걸 오염된 8식이면 청정8식으로 바뀌어요. 그럼 이름도 이제 이름이 바뀝니다. 더 이상 8식이라고 안 하고 아뢰야식이라고 안 하고 청정무구식이라고 그래요. 청정한. 왜냐하면, 여기에는 뭐만 들어가겠어요? 선의 종자밖에 안 남아 있죠. 악의 종자가 다 사라져요. 저는 이건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 인간이 쉽게 이렇게 호락호락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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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리에 들어갈 것 같으세요? “야! 불지다” 하다가 나올 겁니다. “아싸 불지! 내 밑으로 다 뒤졌어.” 에고가 완전히 끊어져야 돼요. 그러니까 제가 이걸 여기는 개체성이 없어야 돼요. 그러면 여기는 7식도 없죠. 6식도 없어요. 다 바뀌어요. 자타일여(自他一如)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는 평등성지로 바뀌고 6식은요 5식도 사라지고 여기는 지금 다 오염된 의식들이었거든요. 청정해져요. 다 청정해져요. 그러면 6식은 묘관찰지(妙觀察智) 신묘하게 관찰하는 지혜로 바뀌고요. 이쪽은 평등한, 자타일여죠 나와 남을 평등하게 보는 그런 본성의 지혜로 바뀌고요. 5식은 전지전능해져요. 오감을 자유자재로 만들어내요. 성소작지(成所作智). 즉 내가 이루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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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작(직접 작업), 만들려고 하는 건 다 만들어낼 수 있는 지혜, 전지전능이에요. 여기까지가 전지(全知)고 이거는 이것도 전지이면서 이게 전능을 나타내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래서 부처는 전지전능한 개체성을 초월한 존재가 됩니다. 대원경지(大圓鏡智)는 이 우주를 크게 원만한 거울로 비춰보는 경지. 투명한 빛이 되고요. 여러분의 아뢰야식은 투명한 빛이 되고. 그러니까 진여불성을 온전히 구현해내겠죠, 8식이. 우주를 경영하는 의식이 청정해진 거예요. 하느님 자리입니다. 거기에서이 7식이 바뀌어서 평등성지(平等性智)가 돼서 작동하고. 해서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요. 묘관찰, 모든 것을 그냥 다 꿰뚫어 보고요. 뭐든지 원하는 걸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럼 이런 발상이 유식학에서 나온 거거든요. 이 유식학은 근본적으로 6식 5식 7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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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식을 이것도 아실 수 있어요. 기본적으로 8식 7식 6식 5식의 의식작용을 무명(無明)으로 보고 있지 않은 거예요. 아는 거예요. 이해되세요. 대승기신론과의 차이가 대승기신론은 8식부터 무명으로 봅니다. 8식에 무명이 껴가지고 우주가 나타났다는 거예요. 우주가 나타나면 안 되는데. 그래서 대승기신론을 제가 비판하는 부분이 그거예요. 유식학이 더 나은 부분은요 8식 7식 6식 5식의 작용을 청정한 걸로 봐요. 기본적으로 우주가 펼쳐지는 걸 청정한 것으로 본다니까요. 탐진치만 안 부리면 청정하다고 본다니까요. 그러면 청정한 에고 작용도 가능하다고 본 거예요. 묘관찰지. 평등성지. 나와 남을 둘로만 안 보면 되는 거 아니냐 이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6식 작용이 똑같이 오감을 파악할 때 신묘하게 관찰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냐.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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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좋은데 또 들어가 보시면 개체성이 사라져야 되거든요, 불지는. 그런데 7식 6식 5식을 쓰려면 개체성이 있어야 되죠. 그래서 모순에 빠집니다. 근본적으로 모순된 얘기예요. 개체성이 없는데 자타일여가 왜 필요하죠? 평등성지가? 그러니까 7식을 굳이 전변시켜서 지혜로 안고 가려면 에고가 있어야, 전제가 에고가 있어야 되거든요. 나와 남이 평등하다는 건 일단 나와 남이 있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이것들이 결국은 개체성을 초월한 상태에서도 7식 6식 5식을 신묘하게 갖춘다라고 보는 이론인 거예요. 즉 개체성을 초월한 부처도 힌두교처럼 시바신은, 보세요, 힌두교의 모순입니다. 시바신은 우주의 브라마 시바 비슈슈는 우주의 거의 창조자급들이죠. 브라마가 창조하고 우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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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를 비슈누가 하고 파괴를 시바가 하잖아요. 우주의 인격을 초월한, 개체성을 초월한 존재들인데 다 보면 자기 마누라까지 다 있어요. 새끼도 있고. 인격화돼 버리죠. 그런 전통 속에서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부처가 개체성을 완전히 초월하면 사실 신이에요. 청정광명 대원경지로 진여를 구현하고 있으면 신이에요. 어떤 개체성도 없어요. 원하면 개체성을 가지고 나타나서 평등, 나와 남을 평등하게 보면서 사물을 잘 관찰하면서 신통도 부리고 다 한다는 거예요. 이것을 일원화해 놓은 겁니다. 따라서 부처가 신이 돼서 시바신처럼 오히려 또 온 우주를 돌아다니면서 화신을 나퉈서 아바타를 나퉈가지고 우주를 구제한다는 이런 기본적인 힌두 신앙과 통하는 입장에 서 있는 거예요. 결론이 이렇게 나누면 이 부분들에 대해서는 제가 많이 비판했었죠. 개체성이 있든지 없든지 해야지 이렇게 적당히 섞어 놓으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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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비판한 부분이지만 일단 유식학 이론은 이러니까 아셔야죠. 그래서 유식학에서는 이 8식에 대해서 이 8식은 생멸심이에요. 그러니까 진여불성 자체는 아니에요. 이 진여불성이 우리가 그동안 탐구해 온 청정광명심은요, 청정광명심은 진여불성만을 말합니다. 원성실성만을 말해요. 원성실, 청정광명심이 무분별지죠. 무분별지가 뭘 알아차리죠? 진여의 진리를 알아차려요. 무분별지는 지혜고 진여는 진리죠. 진리가 지혜를 알아차리는 태극 같은 상태. 지가 지를 알아차리는 상태, 이 상태가 원성실성이거든요. 이 원성실성이 청정광명심이죠. 왜? 무분별지니까 여기가. 그런데 무분별지가 아뢰야식 자체는 아니에요. 아뢰야식의 본체 같은 거예요. 본성이에요. 아뢰야식의 본체 같은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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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본체 같다고 하는 것은 딱 또 이 본질이다, 본체라 할 때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입장이 갈리니까. 8식의 본체라고 생각하세요. 우리 입장에서는. 8식의 본질, 본체인데 우주를 만들어내는 건 8식이 만들어낸다고 하는 건 인도식 논리에 또 제가 얘기하는 유식학도 변계소질성에 걸려 있다고요. 진여불성은 생멸이 없잖아요. 보세요. 참되다는 것은 무루(無漏)예요. 여(如)라는 것은요, 무위(無爲)예요. 왜냐하면, 여여(如如) 항상 똑같아야 되거든요. 상주불변(常住不變)하는 건 현상계에 없어요. 생멸이 없고 참된 세계예요. 그런데 그러면 생멸이 없고 참된 세계에서 어떻게 우주가 나와요? 텅 빈 공성에서 진여불성에서 어떻게 우주가 나와요? 유식학에서는 못 나온다고 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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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에서는 변화가 못 나온다고 본 거예요, 유식학은. 이해되시죠. 유식학을 이해해 주세요. 그 사람들은 그렇게 봤어요. 따라서 변화의 주체는 변화해야 돼요. 따라서 8식은 생멸심입니다. 변화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 우주에 변화를 일으키는 거예요. 그래서 이 8식이 온 우주를 다 만들어요. 7식 6식 이거밖에 없어요, 우주는. 8 7 6 이해되세요? 청정광명심과 분리가 됩니다. 그래서 만약에 8식이 나중에 불지가 돼서 청정해지면 여기 들어 있는 온갖 악법의 종자들이 다 지워져서 선만 남으면 그때는 무구식(無垢識)이라 그래요. 청정무구식, 대원경지가 되는데 자 이거 구분하세요. 청정무구식이 그대로 청정광명심은 아닙니다. 청정광명심을 온전히 드러내는 생멸심이죠. 이해되세요? 생멸심이에요, 기본적으로 8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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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포수처럼 의식이 흐르는데 끊어지지 않고 흐르는데 폭포수가 정지되어 있지 않죠. 엄청나게 흐르고 있어요. 다만 절대 멈추지 않아요. 그리고 모든 업을 쥐고 있어야 돼요. 부처가 된 뒤에도 사실은 이름이 바뀌는 거지 8식의 본체가 절대 안 사라지는 이유는 8식의, 그냥 8식체가, 여기서 본체라는 말이 있으니까 헷갈리실까 봐, 8식의 당체라고 할게요, 8식이라는 자체는 안 사라지는 이유가요 업보 저장하는 것은 부처가 돼서도 계속 유지돼야 되거든요. 여러분 부처될 때 업보 아이템 다 날아가면 어떡해요? 다 모아놨는데 부처 딱 통과할 때 아이템 딱 떨어지면 여기 온갖 애들이 와서 아이템 주워가겠죠. 부처가 돼도 아이템을 갖고 있어야죠. 아니 육바라밀의 공덕을 쌓고 쌓아서 부처가 된 거예요. 부처가 되는데 공덕이 사라지면 중생 구제를 뭘로 해요, 내가? 부처가 된 뒤에도 계속 업은 유지돼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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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8식은 절대 안 사라져요. 이름이 바뀌는 거예요. 아뢰야식이라는 8식이라는 이름이 바뀐 거예요. 뭐로 바뀌느냐? 대원경지, 무구식 이렇게 바뀌는 것뿐이에요. 이거 이해되시죠. 부처가 돼도 내 거 사라진다고 생각하면 식은땀 나시죠. 그런데 이상하잖아요. 개체성이 사라져야 되는데 내가 지은 업은 또 갖고 있어야 돼요. 그래서 모순에 항상 빠지는 겁니다. 부처 영역을 가면 모순에 빠지게 돼요. 개체성은 사라져야 되는데 또 업이 있어야 이 모든 일을 다 할 수 있거든요. 부처가 돼도 절대 업은 사라지면 안 되니까 대원경지라는 걸 마련해 가지고 업을 계속 가져가는 겁니다. 그래서 이게 8식이에요. 그래서 8식은 생멸심이라는 거 아셔야 돼요. 8식을 생멸심이라고 하면 제가 이렇게 구분 드릴게요. 8식은 무의식이고요 진여불성이 초의식이에요. 구분 좀 되세요. 무의식 작용이에요. 여러분 업보를 관리하고 여러분이 우주를, 계속 지금 보고 있는 이 현상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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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볼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의식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이게 초의우식의 작용이죠. 무의식이 초의식의 작용인데 초의식의 작용이라, 이 무의식 자체가 사실은 초의식인데 구분을 해 볼게요. 진정한 초의식은 불변해야 되는데 얘는 변한다고 하잖아요. 그러니까 무의식에다 놓고 볼게요. 사실상 초의식인데. 아니 업보 관리를 우리 일반 무의식이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초의식의 작용인데 초의식에 무의식적 작용이라고 볼게요. 그래서 둘을 구분해 볼게요. 정광명인 초의식의 작용입니다. 그런데 무의식적으로 우리 내부에서 작용하는데 저 의식은 생멸해요. 왜냐하면, 계속해서 업을 알아차리고 있어요. 내가 가진 업들을 알아차리면서 반응을 일으키고 있는, 미묘하게 일어나고 있는 생멸한 의식이에요. 이게 달라이 라마가 그렇게 강조하는 연기적 의식 연속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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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니다. 달라이 라마가 강조하는, 달라이 라마는 이걸 청정광명심을 이렇게 보려고 하잖아요. 그 차이 아시겠죠. 청정광명심을 이렇게 보려고 했는데 원래 유식학에서 8식을 설명하는 개념이에요. 그래서 중관학파는 아뢰야식은 안 가져가요. 아뢰야식을 가져가면 내가 보는 펜도 내 의식 작용해야 되거든요. 중관학파는 이 펜은 실재하다고 보기 때문에 아뢰야식은 배제합니다. 업보 관리는 아뢰야식 아니라도 우리 내부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 이렇게 쳐버리고 중관학파는 청정광명심을 연기적 의식 연속체라고 해서 무상한 것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러니까 초의식을 끌어내려서 무의식처럼 취급하는 거죠, 중관학파는. 대신에 유식학파는 8식을 무의식으로, 청정광명심인 원성실성은 초의식으로 해가지고 설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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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시원하게 성종으로 못 가는 이유입니다. 논리에 치우쳐서, 불변이 어떻게 변화를 만들었느냐의 감정에 빠져서, 불변 따로 변화 따로 이런 거예요. 본성은 불변이지만 아뢰야식 자체는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아뢰야식은 청정해져야 돼요, 결국은. 아뢰야식도. 그래서 아뢰야식이 청정해지면 무구식이 됨으로써 전체가 청정광명심의 초의식이 되는 거죠. 그래서 초의식의 작용이 온전하게 이제 초의식의 작용이 되는 거죠. 이런 느낌으로 이해를 하시는 게 더 좋아요. 그래서 결국은 유식학파한테는 청정한 아뢰야식은요 우리가 불지가 됐을 때 도달하는 경지예요. 그러니까 잠재력, 본성만 청정광명하지 우리의 8식은 오염됐다고 보는 거예요. 여기서 또 하나 퀴즈. 8식에는 선악 종자, 선악이며 무기까지 같이 항상 세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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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의 종자를 다 갖고 있겠죠. 그러면 이 아뢰야식은 자체는 본성이 선일까요? 악일까요? 무기일까요? 무기예요. 무기. 왜? 만약에 그런데 여기는 무루가 돼 버리잖아요. 대원경지는 무구식이잖아요. 여기는 악의 종자가 없잖아요. 여기서는 이 무구식의 성질은 선성입니다. 선만 있어요. 아뢰야식은 무기성이에요. 성질이 달라요. 그래서 아뢰야식이 8식이 단절된다는 말을 하는 겁니다. 부처가 되면 끊어진다, 이제. 왜? 무기성이거든요. 무기성이 사라지는 거예요. 이거 이해하시겠어요? 왜? 악의 종자도 품어야 되니까. 만약에 이 아뢰야식이 순수선이라면 악의 종자를 못 품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악을 해야 되는데 악의 종자가 어디 저장돼요? 그럼 아뢰야식이 해 줘야죠. 아니 해주셔야지 어떻게 악이라고 안 해주면 어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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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죠. 오히려 아뢰야식이 악에 민감한 것 같지 않아요, 우리 잘한 것보다. 못한 거 항상 기억했다가 탁 벌 줄 때 예리한 것 같잖아요. 그러면 이 양반은 무기다 이거예요. 무기. 여기까지 논리적으로 따라오신 거 어떠세요? 여러분의 아뢰야식, 무의식에 대해서 좀 더 이해하시게 된 거죠. 일반 프로이드가 말한 무의식은 아니에요. 깊은 무의식이고 거의 초의식이죠. 초의식이 현상계에 작용을 일으킨다는 의미로 무의식이라고 한 거예요. 그래서 뭘 하냐? 업보 관리하면서 우리 몸을 나타나게 해 주고 몸 밖의 세계, 환경이 나타나게 해 줘요. 주객이 다 작동되게 해 줘요. 내 에고가 존재하게 해 줘요. 8식이 하는 일이 엄청납니다. 이런 역할을 다 하는데 계속 현상계 안에서 작용을 해야 되니까. 생멸심이라고 보는 것뿐이에요. 그래서 연기하는 의식연속체라고 보는 거예요. 왜냐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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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8식은 또 7식 6식과 계속 의타기가 돼가지고 작동해요. 그래서 다시 돌아와 보면 원성실성은 진여불성만을 말하고요. 의타기성에 뭐가 해당될까요? 8식 7식 6식이 다 의타기성이에요. 이제 아시겠죠. 그리고 거기에 대해서 아집 법집이 생긴 것을 변계소집성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만 더 하면요 이 의타기성이 그러면 저기 중관학파가 늘 강조하는 연기공과 같은가요? 다른가요? 연기하니까 공하다 할 때 그 연기와 의타기성은 같은가요 다른가요? 달라요. 중관학파도 하도 여럿이 있는데, 유가행파랑 대비해서 보면 유식학이랑 대비해서 보면요 유식학은 연기에 어떤 의미까지 들어가냐면 8식 7식 6식 작용도 다 연기인 거예요. 따라서 이 펜 하나도 내 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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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용이라는 걸 전제하고 의타기를 얘기합니다. 이 펜도 지금 연기를 통해서 내 마음에 나타난 거예요. 이 펜이 등장한 것 자체도 의타기라고요, 내 마음에. 내 마음의 작용으로써 펜이 나타난 거예요. 8식 7식 6식이 전변해서 나타난 거예요. 내 의식의 작용으로 기본적으로 보면서 의타기를 논합니다. 따라서 일체가 내 의식의 작용이니까 의타기니까 공하다라고 말한다면요 일체가 내 의식의 작용이니까 공하다는 얘기예요. 연기하니까 공하다는 중관 이론은 내 의식의 작용이라는 개념이 빠집니다. 그냥 무상하게 연기하니까 공하다는 거예요. 연기하니까 영원한 자성이 없다는 거예요. 이쪽의 입장에서 의타기성은 내 의식의 작용으로써 연기한다는 게 들어가요. 왜 이 얘기를 하느냐? 보세요. 여기까지 가면 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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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참으시면 끝이 보입니다. 다시 끝이 보여요. 지금 감격하실 거예요. 내가 이거를 얼추 이해하다니 이렇게 이 변계소집성은 무자성의 측면에서 보면 공의 측면이에요. 공성의 측면에서 보면 변계소집성은 왜 공하죠? 이 세 개의 입장이 다 다르다고 본 거예요. 그러니까 유식학이 훨씬 치밀하게 공을 분석한 겁니다, 공종의 입장에서. 그러니까 공의 결론을 내리면서 상종으로 넘어간 거예요. 공의 결론을 잘 내렸어요. 세 가지 공을 정확히 설명합니다. 저기 중관학파는 주로 의타기로서 공을 설명하잖아요. 연기하니까 공하다. 그런데 보세요. 공 하나 더 설명합니다. 변계소집하니까 공하다도 설명해요. 그러면 이거는 상무자성(相無自性)입니다. 왜냐하면, 망상이거든요. 망상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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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성이 없다 예요. 그 상에 자성이 없다. 왜 뱀이란 원래 없는 거니까 뱀이 원래 없는데 뱀이라고 집착했으니 아지법집으로 생긴 것들은 다 이 상 자체가 망상이기 때문에 무자성입니다. 그 상이 무자성이에요. 자성이 없어요. 이 말은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상이 무자성인 이유는요 실재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무자성의 이유가 다르죠. 중관학파는 무조건 연기하니까 무상하니까 영원한 고정불변의 실체가 없다는 무자성만 얘기했어요. 그런데 지금 유식학은요 망상이니까 실재하지 않아서 무자성 이렇게 나갑니다. 이해되시죠. 만약에 여러분 기억하고 있는 뱀을 봤다 치죠. 뱀을 봐도요 우리가 뱀이라고 말하면 이거는 벌써 망상이 붙어요. 뱀, 내 우주 밖에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뱀이 있는 것 같잖아요. 우리가 이름 불러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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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뱀이라고 하는 순간 얘는 영원히 뱀이어야 될 것 같고, 영원한 뱀의 자성을 지닌 존재해야 될 것 같고, 그렇죠. 그런데 얘가 조금 있으면 죽는단 말이에요. 그때는 뱀이라고 부를 수 있나? 그러니까 지금 당장 우리가 무상한 것들에 대해서 되게 영원한 이름을 붙여요. 우리가 그리고 영원한 존재를 상상합니다. 그렇죠. 그러면 언어화될 때 이미 망상이 일어나거든요. 언어화하면 망상이 일어나요. 그러니까 우리 망상 줄일 때 뭘 해요? 이름 짓지 마시고 펜을 그냥 알아차리십시오. 그래요. 남방 불교 수행은 간단해요. 언어화 안 시키는 거예요. 몸에 일어나는 오감의 작용을 알아차리기만 하는 거예요. 최대한 언어화를 배제하고 그래야 실상을 만난다는 거예요. 그러면 깨어나거든요. 언어화 안 하고 알아차리고 있다. 보면 깨어나거든요. 언어화를 하다 보면 계속 분별망상 변계소집성에 끌려가요. 존재하지 않는 것들에 집착하다가 실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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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친다는 거예요. 그런데 만약에 위빠사나도 똑같아요. 이름 안 붙이고 변계소집성이 안 빠지고 일어나는 모든 감각들을 알아차리고만 있으면 그게 거기서 느껴지는 게 의타기성이죠. 이게 무상 고 무아이면서 인연 따라 계속 일어나고 사라지는 거예요. 그것만 관찰되죠. 그래서 그게 의타기성인데 의타기성이 결국 또 의타기성도 무자성이라고 말하려면 자성이 없어라고 말하려면 얘는 생무자성(生無自性)이에요. 생겨나는 게 따로 없다는 거예요. 독자적으로 생겨나는 게 없다는 거예요. 의타기성은 일체 존재하는 모든 것은 뭐예요? 아뢰야식의 전변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단순히 의타기가 연기라고 했으니까 연기하니까 무자성하고 또 다르다고요. 중관학파식 무자성과는 달라요. 연기한다는 것 자체가 의식의 전변이라는 게 전제돼 있어요. 일체가 의식의 전변으로써 연기하고 있으니까 독자적으로 생겨난 게 없다. 느낌이 좀 다릅니다. 중관학파식 해석은요 상호의존적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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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독자적인 게 없다는 거죠. 남에 의해서 내가 규정된다는 거는 나 혼자로 있을 때 불완전하다는 거잖아요. 독자적으로 누구도 전제할 수 없으니까 무자성이다. 이렇게만 얘기한다면, 비슷한데 다른 게요 의타기성은 상호의존적으로 존재하는 성질이라서 무자성이다 하지만 그래서 따로 자연, 스스로 힘으로 생겨난 게 없다. 그래서 대개 일견 중관학파랑 비슷해 보이면서 다르다는 거예요. 스스로 힘으로 생겨난 게 없다면 중관학파도 인정할 수 있죠. “그렇지 의존적으로 생겨난 거니까.” 통하는 부분도 있으면서 동시에 다른 부분은 뭐냐 하면 일체를 의식의 작용으로 보고 있다는 점은 다르다는 거예요. 일체 의식의 작용이라서 따로 생겨난 게 없다는 것도 전제돼 있다는 거예요, 유식학파에는. 여기까지만 원성실성은요? 여기서 승의는 궁극의 무자성이 있습니다. 왜? 여기에는 아니 법이니 하는 게 아예 없거든요. 가와 가법 여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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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집 법집이면 가아 가법이면 여기(원성실성)는 아공 법공이에요. 나도 없고 남도 없어요. 이 자리에는 어떤 특정한 어떤 존재도 없어요. 텅 비어 있어요. 텅 비어 있다는 측면만 보자면. 그래서 승의는 궁극의 무자성. 이 세 가지 구분되세요. 뱀은 왜 없죠? 없어서 없어요. 뱀은 자성이 없습니다. 스스로의 성질이 없어요. 왜요? 없는 거거든요, 원래. 됐죠 그런데 그래서 아집과 법집은요 아직과 법집에 빠져서 보는 세계는요 원래 진실이 아니라서 무자성인 거고요. 주관과 객관이 인연 따라 생겨나는 건요 그거는 주관과 객관이 생겨나지만 사실 생겨난 게 없어요. 다 의식의 작용이거든요. 그래서 자성이 없어요. 그다음 원성실성. 애초에 진여불성 자리에는 나와 남 자체가 없어요. 그래서 무자성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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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떠세요? 반야심경의 오온개공을 이렇게 세 가지로 분석해야 맞다니까요. 그러니까 오온개공, 오온은 오온이라는 그 이름은 실체가 없어요. 그거는 무자성이에요. 오온은 연기해서 생긴 거예요. 의식이 전변해서 생긴 거란 말이에요. 무자성이에요. 스스로 힘으로 생겨난 게 없다고요. 그런데 뭔 자성이 있어요? 스스로 힘으로 생겨난 게 아닌데. 인연 따라 생겨난 거지. 의식의 작용으로. 그런데 의식의 제일 본체 자리 가면 거기는 애초에 나와 남이 없어요. 자성이 없어요. 독자적인 차별상이 없어요. 거기는. 나니 남이니가. 부처님이 얘기하셨잖아요. 청정광명 의식 상태에서는 오온도 4대도 다 없다. 이원성도 없다. 이래서 없어요. 오온개공을 3단계로 분석한 거예요, 유식학이. 그러니까 공종에서도요 공종의 결정판이라니까요. 유식학이. 그러니까 원래 공종을 공격하려고 나온 거예요. 너네 무자성 얘기하는데 무자성도 우리보다 몰라. 그리고 무자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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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네들이 다 알아도 자성을 몰라. 이렇게 공격한 거예요. 자성이 있어. 왜 없어? 망상을 일으키는 자성이 있고 현상계를 일으키는 자성이 있고 진여불성의 자성이 있어. 왜 자성이 없어? 이렇게 해서 우주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8식 7식 6식이 우주를 다 만들어. 하지만 본성은 진여불성의 원성실성이야. 일체는 팔칠육의 생멸상들이 펼쳐지는 아뢰야식이 주체가 돼서 만든 것뿐이야. 자 마지막 실낱같은 집중력을 다시 붙잡으세요. 이 얘기만 드리고 잠깐 쉴게요. 그런데 성종에 넘어오면 뭐가 다를까요? 자 공종은 공만 강조했어요. 상종은 아뢰야식의 상을 강조했어요. 성종에 오면요? 진여는 불성이고 불변인데 아뢰야식은 지금 무의식은 생멸심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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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주 만물이 다 나온단 말이에요. 생멸은 여기에서 시작되고 불변은 이쪽에 있어요. 대승기신론에 오면 어떻게 돼요? 진여문과 심진여문 심생멸문 해서 다 한마음의 작용이다. 끝. 무의식, 여기 있는 이 무의식도 초의식의 작용. 끝. 그냥 하나야. 끝. 이게 성종이에요. 여러분이 성종이 제일 편하실 거예요. 그 이질감 느껴져요. 공종 상종 가면 낯선 게 그 이유가 여러분은 지금 모든 한국 불교는 성종에 기반하고 있거든요, 기본적으로. 요즘 남방 불교 때문에 소승교도 생기겠지만, 이 기준으로 보면 공종 아니면 상종 성종이 예전에 싸우다가 성종이 지금 다 통합했거든요. 원효도 성종의 입장이죠. 다. 이해되시죠. 당나라 현종이 일으킨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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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종(法相宗)이에요. 상종, 유식종을 가지고 상종을 일으켰어요. 그런데 결국은 성종이 다 뭔가 좀 통일했다고 봐야죠. 기본적으로. 그래서 성종하고 상종이 싸우면 이렇게 돼요. 불변의 세계에서 어떻게 변화가 나옵니까?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니네가 한마음을 모르는구나. 이렇게. 한마음은 그거 다 해. 그래서 한마음이야. 대화가 안 돼요. 둘이는. 둘이 대화하면 대화가 안 됩니다. 그래서 구분유식설이라고 아뢰야식 안에는 이 불변의 요소와 변화의 요소가 다 있다. 애초에. 그래서 이렇게 되면 아뢰야식이 진여, 청정광명심이 돼 버려요. 그래서 후대로 오면 아뢰야식이 그냥 청정광명심입니다. 하나가 돼 버립니다. 거기까지만 갈까요? 방금 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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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상종 지론, 섭론종(攝論宗)이 있고 지론종(地論宗)이 있어요. 이게 다 달라요. 지금 뭐냐면 생멸심이 있고요 불변하는 세계가 있는데, 8식은 기본적으로 생멸심이라고 보는 게 법상종이면요. 이 부분은 8식이면 청정광명심에 해당되는 불변의 요소를 9식이라고 보자가 섭론종이에요. 별개로 보자. 법상종은 반대예요. 8식이 본래 청정하다니까. 8식이 본래 청정한데 오염된 종자들이 들어와 가지고 지금 오염돼 보이는 거지 본래 청정하다니까. 그래서 종자만 선해지면 이게 그대로 청정광명심에 작용이 된다니까 라고 주장하는 거예요. 8식으로 해결하려는 거예요. 더 안 들어가려는 게 법상종이면 섭론종은 그냥 별개의 식으로 보자니까 청정광명심이 있고 생멸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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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식이 있고. 지론종은 그냥 9식 전체를요 그냥 아뢰야식으로 보자는 거예요. 아뢰야식의 본체와 작용으로. 그냥 아뢰야식이 아뢰야식을 진식으로 봐버리자. 진식은 청정식으로 봐버리자. 아뢰야식의 본체가 있고 아뢰야식의 작용이 있다고 보죠. 이쪽이 성종이랑 성종 철학이랑 연결되죠. 섭논종은 8식 9식을 끊어버립니다. 이쪽은 어떻게든 8식으로 다 풀라고 그래요. 8식 하나로. 그래서 무의식 안에 초의식이 있다. 여기는 초의식과 무의식을 별개의 식으로 보자. 무의식 초의식.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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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의식으로 보자. 초의식의 본체 초의식의 작용. 어때요? 이 이상 알 필요도 없고 아뢰야식에 대해서 이 정도 아시면 대충 됐죠. 유식학 개론은 일단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 한 구절 한 구절 들어가 보면서 읽어보시면 방금 들으신 내용이 이제 더 정밀해지실 거예요. 10분 쉬고 다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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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녹취) [홍익학당] 진여와 열반 31강 - 유식학唯識學 개론(55:30) (홍익학당) | 작성자 수호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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