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에 대한 감각이 이리 곤두선 적이 있었던가. 돈버는 일을 안 한 지 1년 차, 작년까지는 실업급여로 어떻게든 버텼는데 올해는 저금해 둔 돈이 없어 잔고의 바닥이 보인다. 돈도 없으면서 하고 싶은 건 많아 여기저기 달마나 하는 프로그램을 신청했더니 적어도 일주일에 이틀에서 삼일 이상은 일해야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알바몬에 들어가 스크롤을 내린다. 하루에 18만 원을 벌게 해주겠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쿠팡, 11만 원을 벌게 해주겠다는 쿠팡보다는 솔직한 마켓컬리, 육회 집 서빙, 프렌차이즈 카페, 시급 3만 원의 모던 bar 등등…. 비건 지향을 하며 육식 업과 관련된 일도, 쓰레기를 많이 생산하는 일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조건들을 포기하더라도 일할 수 있는 요일이 유동적이라 알바를 구할 수가 없다. 고민하다가 당근마켓을 켜 단기 알바를 검색했다.
처음으로 일하게 된 곳은 디퓨저 포장 알바를 하는 곳이었다. 일을 하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라 손에 땀이 삐질삐질 나는 것이 느껴진다. 내가 맡은 일은 디퓨저 박스에 표시 사항 스티커를 붙이고 디퓨저 뚜껑에 ‘개봉을 하면 환불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스티커를 붙이는 일. 아주 쉬운 일이지만 반복 작업이다 보니 스티커를 붙이는 인간 기계가 된 기분이다. 어느새 나는 같이 온 알바분들을 의식하며 그들보다 뒤처지지 않도록 손을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다음 주에도 일을 확보하려면 최대한 좋은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생각에 속도가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결국 그토록 원하던 다음 주에도 와달라는 말을 듣고 인간 디퓨저가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으며 속옷까지 디퓨저 향이 배었다는 걸 알았을 때 그 컨테이너에 환풍기도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디퓨저와 향수의 인공 향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기사가 생각나며 다른 일을 알아보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로 일한 곳은 집에서 15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대형 카페였다. 홀 알바라고 뜬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내가 하는 일은 손님이 계산한 빵을 오븐에 데우고 접시에 옮기는 일과 빵을 포장하는 일이었다. 손님들은 끊임없이 왔다. 어떤 빵은 데워서 나가야 하고 어떤 빵은 데우지 않은 채 나가야 하는지 몰라 처음에는 애를 먹었다. 6시가 되자 직원들이 홀에 나온 빵을 모두 포장하기 시작했다. 이제 곧 마감이라 그런가 생각했지만, 그저 빨리 빨리 팔기 위한 전략이었다. 손님들이 포장된 빵을 갖고 와 먹고 간다고 하면 나는 불과 몇 분 전에 한 포장을 뜯어 그릇에 놓았다. ‘아니 이럴 거면 왜 포장을 하는 거지?’ ‘왜 비닐로 꽁꽁 싸놓고 또 종이봉투에 넣는 거야.’ ‘빵이랑 음료를 저렇게 남긴다고? 아깝다….’ 제로웨이스트 카페에서 일하다가 쓰레기가 많이 나오는 카페에서 일하니 속에서 열불이 났다. 결국 다음 주에 일해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가상의 결혼식을 만들어 거절했다.
이외에도 여러 알바를 했지만, 단기 알바는 딱 정해둔 시간 동안만 사람을 쓰는 일이니 그만큼 업무 강도도 높다는 걸 깨달았다. 힘든 일을 해도 이 정도의 돈만 받아야한다니…. 차라리 그럴 거면 더 힘들게 일하고 조금 더 돈을 주는 곳이 낫지 않을까. 그렇게 쿠팡보다는 처우도 노동강도도 더 낫다는 마켓컬리 단기 알바를 신청했다.
마켓컬리는 딱 예상만큼 힘들었다. 블로그 후기에 올라온 절대 100퍼센트의 효율로 일하지 말라는 조언대로 디퓨저 포장 때와는 다르게 70퍼센트 정도로만 일을 했다. 내가 맡은 일은 박스에서 송장을 꺼내고 테이프로 패킹하고 송장을 붙여 컨베이어벨트로 보내는 일이었다. 작업 자체는 쉬웠지만 안전화가 너무 딱딱해 발이 부서질 것 같았고 허리가 아파왔다. 반복 작업을 하며 어느새 영혼은 사라져 있었고 밥을 먹은 뒤 마지막 타임에는 쉬는 시간 없이 4시간을 일해야 했다. 디퓨저 포장일을 할 때는 스몰토크도 하고 K-pop 노동요도 들으며 일했는데 이곳은 모든 소통이 차단되어 일했다. 완전히 기계가 된 기분. 쉼 없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오는 박스를 처리하며 사람이 기계의 속도에 맞춰 일을 해야 하는 것에 또 열불이 났다. 마켓컬리 사장이 와서 꼭 물류 일을 해봐야 한다고, 아니 모든 대기업 사장이 자신의 회사에서 하는 가장 힘든 노동을 반나절이라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절대 물류 노동자를 4시간 반 동안 쉬는 시간 없이 굴리는 발상을 할 수 없을 텐데. 다리와 허리, 발바닥을 모두 잃은 채 집으로 가는 길. 다신 마켓컬리 일은 안 하리라 다짐했다. 집으로 오니 시간은 새벽 2시가 넘어있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마켓컬리를 신청했다. 텃밭 회비와 생태 교육 한달 프로그램 참가비를 한 번에 내야 해서 출혈이 컸다. 일을 할 수 있는 요일이 유동적인 나에게 일을 시켜주는 곳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다. 언제나 돈이 문제다. 내가 지향하는 삶과 정반대의 일. 자본주의의 하나의 태엽이 되어 굴려지는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지구를 파괴하고 사회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마켓컬리를 통해 번 돈으로 지구를 회복하고 사회의 속도를 느리게 하는 일에 쓴다는 모순에 조금 자괴감이 든다.
한편 마켓컬리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나름 그 속에서 관계를, 보람을 만들어갔다. 일터로 가는 셔틀 버스안은버스안은 서로의 안부를 나누는 소리에 시끌벅적했다. 내 앞에서 일하던 분은 말없이 나에게 사탕을 챙겨주었다. 일을 마치자, 한마디도 나누지 않은 사람들에게 8시간 동안 노동을 함께 했다는 이유로 왠지 모를 동료애를 느꼈다. 마치 몇만 개의 상자와의 전쟁을 치른 동료들같이. 심지어 "빨리"를 외쳤던 밉상 관리자도 퇴근 시간이 되자 동료처럼 느껴졌다. 앞으로 다른 일을 찾기 전까지는 물류 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될 것 같다.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어야 할지, 벌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동자에게도 지구에도 지속 가능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