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數)는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해왔다.
더욱이 삶의 구조가 복잡해지면서 우리는 더 많은 숫자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자동차 번호, 휴대전화 번호는 우리의 존재를 확인하는 기본 수치가 되었고, 시시각각 변하는 경제지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 한다.
일상의 삶도 그렇지만 현대인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스포츠는 기록의 집합이고, 그 기록은 대개 수치에 의존해 작성된다. 따라서 우리는 복잡한 수치 속에서 해당 스포츠의 역사를 읽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그렇다면 타수를 따져 승부를 가리는 골프는 어떤 숫자들과 만나 우리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건네는 것일까. 통계의 스포츠라는 야구만큼은 아니지만 골프 기록을 살펴보면, 개인 기록과 성별·국가별·대륙별 기록, 그리고 해당 코스의 기록 등등 그야말로 무수한 가지치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록들은 세인들의 주목을 끌지 못한다.
하지만 탄성을 지르게 만드는 진기록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독특한 기록들이 그렇다.
몇 해 전 미국 펜실베이니아에 거주하는 한 프로 골퍼가 12시간 동안 무려 505홀을 도는 ‘스피드 골프’를 선보였다고 한다.
한 홀을 아웃하는 데 평균 1분 26초 정도가 걸렸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야말로 초스피드로 엄청난 홀을 돈 셈인데, 언뜻 보면 숫자
놀음을 위한 무모한 도전처럼 보이지만 자선기금 마련을 위한 이벤트였다니, 무의미한 돌출행동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런가 하면 미국의 한 아마추어 골퍼는 몽골의 대초원 230만 야드를 횡단하면서 파 1만 1,880타의 ‘세계 최대 골프 코스(?)’에
도전하고 있다고. 황당한 소식이긴 하지만 늘 라운드에 목말라하는 주말 골퍼들에게는 부러운 일이 아닐까 싶다.
그렇게 전인미답의 기록에 도전하는 기인들이 있는가 하면, 정규 라운드 에서 신기록을 거듭하고 있는 인물도 있다. ‘골프 황제’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천재답게 골프 기록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타이거 우즈가 바로 장본인이다. 이런저런 기록은 다 접어두더라도, 한 해 동안 주간 세계 골프랭킹 1위를 가장 오랜 기간 지킨 선수에게 주는 맥코맥상을 4년 연속 받았다(2002년)는 사실은 그의 위상을 말해주기에 적절한 기록이 아닐는지. 타이거 우즈의 기록이 공인된 정상 기록이라면, ‘믿거나 말거나식’의 기록이 제시되기도 한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4년 생애 첫 라운드 첫 홀에서 이글을 잡고 이후 5개 홀에서 홀인원을 해 모두 34타, 즉 38언더파를 기록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확인이 불가능하니 가타부타할 필요는 없지만, 아무튼 북한다운 기록임에는 틀림없다.
골프는 가장 적은 타수를 기록한 선수에게 승리가 돌아가는 방식의 경기다. 따라서 어떤 기록보다도 최저타수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북한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18홀 세계 최저타수 기록은 단연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몫이겠지만, 공인된 기록은 데이비드 듀발 등이 가지고 있는 59타다. 일본의 마루야마 시게키가 2000년 US오픈 예선 1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11개로 노보기 13언더파 58타를 기록했지만, 예선전 기록을 공인하지 않는 규칙 때문에 ‘비공인 세계기록’으로 남겨졌다. 하긴 PGA 투어 역사상 60타를 깬 공식기록은 단 세 차례뿐이다. 77년엔 알 가이버거가, 91년엔 칩백이 버디만 13개를 낚으면서 2번째 대기록을, 그리고 보브 호프 크라이슬러 클래식 마지막 라운드에서 데이비드 듀발이 12언더파 59타로 3번째 기록을 세웠다. 18홀 한 라운드의 기록이 그렇다면, 4라운드 합계로 성적을 매기는 프로 경기에서의 최저타수는 몇 타일까. 72홀 최저타수는 소니오픈에서 어니 엘스가 기록한 31언더파 261타라는 경이적인 스코어였다고. 이는 아마추어뿐만 아니라 프로들의 눈에도 그야말로 꿈의 타수라고 할 수 있다. 최저타수와 더불어 최저 퍼트수는 모든 골퍼가 갈망하는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국내엔 최저 퍼트수 기록이 없지만, 미 PGA의 경우 18홀 최저 퍼트수가 18번이라고. 칩인의 경우도 있었겠지만 거의 매 홀마다 원퍼트로 그린을 빠져나갔다는 얘긴데, 1라운드 18번 퍼팅 기록은 1992년 페더럴익스프레스 세인트주드 클래식 2라운드에서 짐 맥거번이 기록하는 등 총 5번이나 나왔다니 불가능의 기록은 아닌 듯싶다.
그렇다면 아마추어 골퍼들이 흔히 말하는 ‘버디 값’을 하지 않고 ‘줄버디(연속 버디)’를 한 기록은 얼마나 될까. 1961년 피츠버그 오픈 4라운드에서 미국의 밥 골비가 기록하는 등 이제까지 3명의 선수가 8개의 줄버디를 잡아 신기록의 주인공이 됐다고. 이글과 관련해서는 유럽 PGA 투어에서 미코 일로넨이 세운 ‘한 라운드 4개의 이글’이 주목할 만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에스파니아 카나리아오픈 2라운드에서 무려 4개의 이글을 잡은 것인데, 미 PGA 투어 기록은 파 5홀에서 3개의 이글을 뽑아낸 데이비스 러브 3세가 갖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한 라운드 ‘2홀 연속 이글’ 역시 흔치 않은 기록으로 지난 2003년 애니카 소렌스탐과 전미정이 작성한 바 있다. 파보다 3타를 적게 쳐야 하는 알바트로스는 홀인원보다 더욱 작성하기 힘든 대기록으로, 세계에서 최장거리 알바트로스를 기록한 한 미국인은 무려 647야드의 파 5홀을 단 2타 만에 홀인시켰다고 한다.수많은 골퍼가 일생에 단 한 번도 하기 어렵다는 홀인원은 그야말로 기록의 보고에 속한다. 한 골프 전문지의 통계에 따르면, 확률적으로 한 골프장에 4개의 파 3홀이 있다고 치고 일주일에 한 번 라운드를 한다면 96년을 쳐야 한 번의 홀인원을 기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실 데이비스라는 프로 골퍼는 모두 50번의 홀인원을 기록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최장거리 홀인원은 447야드의 파 4홀을 그대로 한 번의 샷에 성공한 경우이고, 파 3홀을 포함한 연속 홀인원은 10차례 있었으며, 파 4홀에서 연속 홀인원을 한 경우도 한 차례 기록돼 있다. 국내에서는 얼마 전 한 아마추어 주부 골퍼가 하루에 두 차례나 홀인원을 기록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 하루에 홀인원을 2번 기록할 확률은 6,700만 분의 1이라고. 뿐만 아니라 홀인원을 기념하기 위한 라운드에서 다시 홀인원의 행운을 잡은 골퍼가 있는 걸 보면 확률은 그저 확률에 지나지 않는 모양이다. 행운이 특정인에게 몰려 찾아드는 것처럼 골프장 역시 그런 것일까. 2003년 8월 9일 로얄CC에서는 개장 이후 31년 만에 하루에 홀인원 5개가 쏟아지는 진기록이 세워지기도 했고, 아시아나CC는 5일에 한 번꼴로 홀인원이 나와 3년 연속 홀인원 최다 골프장으로 기록됐다.
골프의 기록이 단순히 타수와 연관된 것만은 아니다. 프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수치화한 것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사실들과 만나게 된다. 예를 들어 페어웨이 정확도(2000년 68.3%)는 지난 20년 동안 6.0%의 증가를 보였는데, 끊임없는 드라이버 개발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1980년부터 1992년 사이의 증가분이고 최근 8년 동안에는 단 0.4%밖에 증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목을 끈다.
반면에 드라이버의 평균 비거리는 255야드(1968년 PGA투어 평균)에서 278.5야드(2001년)로, 33년 동안 23.5야드가 늘었음을 알 수 있는데, 증가분 가운데 14.3야드(증가분의 60.8%)가 최근 6년 사이에 늘어난 것이라고. 한편 라운드당 퍼팅 수(2002년 29.15)는 0.65타가 줄어 그만큼 어프로치 샷의 기술이 발달하고 퍼팅 실력이 평준화됐다는 사실을 대변해준다. 첨단장비의 개발과 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프로 선수들의 평균 타수가 1968년 라운드당 71.9타에서 2001년 70.88타로 지난 30여 년 동안 불과 1.02타밖에 줄어들지 않았다는 건 숫자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첫댓글 알면 알수록 머리 아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