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 한 장
하늘은 내 마음을 아는지 잔뜩 찌푸리고 있다. 동가식 서가숙하며 돌아칠 때는 몰랐는데, 집에서 머물러 있자니 마음이 우울하다. 하릴없이 집에서 빈둥빈둥 댄다는 게 고통이다. 삶이 고통이라고 느껴지자 언뜻 생각나는 이가 있다. 젊은 날 고시원에서 함께 공부하던 이가 떠올랐다. 그는 어느 날 메모 한 장 달랑 남기고 사라졌다. 그 심정을 헤아리면서 어디론가 떠나려던 참에 전화벨 소리다. 택배회사 직원이다. 구름카페(농원 이름) 주소로 물건이 왔는데 아무도 없다는 연락이다. 무슨 물건이냐고 되물으니, 강원도에서 보내온 감자 세 상자란다.
정말 묘한 일이다. 내가 떠올린 이가 바로 그였다. 그는 가끔 곰취, 감자, 옥수수, 무청 시래기 등 맛보라고 보내왔다. 상자를 열어보니 메모 한 장이 들어있다. 현직에서 물러나서 무료하게 지내지 말고, 감자 농사를 지어보라는 쪽지다. 씨감자를 보내온 것이다. 지난 연말 통화 끝에 요즘 뭘 하느냐고 묻기에 백수로 지낸다고 했더니 보낸 모양이다.
추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가슴속에서 수많은 꽃이 피고 질 때다. 그를 고시원에서 만났다. 함께 공부하고 위로하며 서로 의지하던 사이였다. 그가 고시에 낙방하여 괴로워할 때다. 그를 위로한답시고 낙원상가 골목에 포장마차로 끌고 가서 술 한잔 나누었다. 그런데 다음 날 그가 없어졌다. 평소 내가 학원에 다녀오면 옆자리에서 구시렁구시렁하면서 법전을 뒤졌는데 책상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떠났다. 책상 위에 ‘삶이 고통이다.’라는 메모 한 장만 남겨놓았다. 몹시 궁금했으나 알 길이 없었다. 그의 연락처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고시원은 잠시 스쳐 가는 곳이라서 서로 깊이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를 수소문하였으나 찾지 못하여 잊고 지냈다. 강산이 몇 번 바뀐 후, 그가 난데없이 나타나서 놀랐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내 모습이 보여서 반가웠다며 사무실로 찾아온 것이다. 이산가족 만난 것처럼 흥분되었다. 그와 밤을 지새우며 지난날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당시 그는 시국사건에 연루되어 수배 중으로 급히 피신한 것이었다, 그가 남긴 메모에 무식한 답을 달아 보았다.
“삶이 고통이라면 죽으면 해결되겠소.”
그는 미혹의 세계를 넘어섰다. 고개를 한참 주억거리더니 아니란다.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감사’뿐이라고 한마디 툭 던지더니 침묵이다. 그의 표정 속에서 자신의 삶에 만족스러움이 우러나왔다.
아침마다 구름카페로 향한다. 감자 심을 터를 마련하고 씨감자의 눈을 하나씩 갈랐다. 그늘에서 며칠 지나자 감자 싹이 빼꼼히 나온다. 땅에 구멍을 파고 하나씩 정성 들여 심었다. 감자가 멀리 오느라 고단했는지 달포나 잠에 빠졌다. 삼월이 되자, 여기저기서 싹이 올라오고 하루가 다르게 커간다. 순식간에 키가 허리춤에 와 닿았다. 감자꽃이 만발하여 꽃박람회를 방불케 한다. 사월의 비닐하우스 안은 대장간처럼 열기로 가득하다. 목에 땀수건을 두르고 물을 마셔가며 온종일 감자를 캤다. 포기마다 주먹만 한 감자가 네댓 개씩 매달려 나온다. 밭고랑에 누런 감자가 탐스럽게 줄지어 있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흐뭇했다.
못생긴 감자는 내 몫이다. 감자 크기에 따라서‘왕 특, 특, 대, 중, 소’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경매시장에 보냈다. 얼추 칠십여 상자다.
“사십칠만 육천 원입니다.”
새벽에 농수산물 시장에서 경매한 가격을 알려왔다. 시장 사람들은 가성비만 따지는 것 같다. 생산자의 품값은 안중에 없다. 상자 가격 상하 차비 운반비 구전 비까지 떼고 나니, 석 달 품값이 하루 강의 수당만도 못하다.
아무튼, 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생각이 짧았다. 나도 모르게 농사는 가성비가 낮다고 투덜거렸다. 그가 대뜸 속물근성이 있다며 가성비만 좋으면 뭐하냐고 한다. 경매를 도와준 이는 물론 감자탕집 주인에게까지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행복할 거란다. 문득, 갈릴리 호수에 갔던 기억이 스쳤다. 텔아비브에 출장 갔다가 주말이 무료하여 성지순례 버스에 올랐다. 나사렛 마을을 지나자 바로 갈릴리 호수가 나온다. 갈릴리 성지에 있는 신부의 안내를 받으며 교회를 둘러 보고 호수 주변을 거닐었다. 그늘이 시원한 겨자 숲에 이르자 순례자들이 연신 감사하다는 말을 읊조리고, 신부는 겨자 숲 그늘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며 감사기도다. 겨자 숲에 감사를 표하던 이들과 그가 비슷해 보였다.
그의 메모를 곱씹어본다. 부자가 되고 명예를 얻으면 그것을 지키느라 삶이 고통이다. 누구나 세끼 먹으면 사는데 부질없는 욕심 때문에, 삶의 고통을 키운다며 매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라는 충고였다. 감자 농사는 내게 일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뿐 아니다. 작물이 자라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흐뭇하고 여럿이 나누어 먹는 모습을 상상하며 즐거웠다. 곰곰이 생각하니 감사를 모르고 살았다. 필시 살아 있음에 감사하지 못하고 복에 겨워서 고통이라고 투정 부렸는지 모르겠다.
세상사 가성비만 따질 일 아니다. 농사는 가성비가 낮으나 가심비가 높다. 심리적인 만족감을 채워서 주웠기 때문이다. 가을 씨감자를 구하러 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