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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3일(월) 맑음
08:20 콘도 출발
10:00 삼덕항 출항
11:06 욕지항 도착
11:10 버스 일주투어 시작
13:17~15:00 늘푸른고동어횟집/커피집
15:04~16:10 자부마을(김성우고문 마을과 댁)
16:35 욕지항 출발
17:30 삼덕항 도착
★욕지도 버스투어 코스 11:10~13:17
욕지항여객터미널 출발 ~ 근대어촌발상지 '좌부랑개마을', 왜인들의 집촌마을이였던 좌부랑개 마을소개 ~ 욕지도 하롱베이 감상 ~ 대송 닻포토존 하차 (11:33~47) ~ 도동마을, 강호동의 욕지도1박2일 & 백건우-윤정희부부 섬콘서트, 이만기 섬마을할매 촬영지 ~ 유동, 대한민국 최초의 참치 양식장 통과(12:00) ~ “욕지 삼여전망대 통과(영화 : <화려한 외출> 촬영지) (12:03)~ 욕지도 해맞이 새천년기념공원( 펠리칸바위 전망)(12:06~14) ~ 모노레일 하부역사 승강장통과 ~ 고레원도넛매점앞 하차: 욕지도 해금강 1경 펠리칸바위 (1호출렁다리에서 2호 출렁다리까지 둘레길 트레킹)(12:23~13:07) ~ 욕지항 늘푸른고등어횟집 도착(13:17)
상보***
해가 맑다. 바람이 분다고 해서 미륵산 케이블카 탑승은 하루 미루고 오전 10시 욕지도행 배편을 생각한 것. 종가집 김치에 계란과 라면을 먹고 8시20분 숙소를 나섰다. 버스 운행상황을 몰라 우왕좌왕하다 8시 45분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탔다. 10분도 채 걸리지 않고 봉평오거리에 이른다. 하차하여 횡단보도를 건너 삼덕항행 버스로 환승했다. 해변을 따라 충무교 아래로 돌아 남쪽으로 향한다. 미륵도와 통영이 일제강점기 해저터널로 연결되었다가 건설된 충무교(1967년). 그리고 멋진 아치의 통영대교(1998년)가 운하 높이 지나간다.
승객이 별로 없어 앉을수 있어 좋다. 시간밖에 없는 사람들 아닌가? 환승시간까지 45분밖에 안걸렸다. 9:30. 충분하다. 신분증을 보여주고 경로우대 승차권을 10장 끊었다. 6,000원(일반 7,600원) 559명 정원, 적재차량 58대의 욕지영동골드고속호. 두 척중 다른 한척은 이보다 조금 작은 욕지영동고속호(446명, 52대) 21.8km 1시간 소요.
욕지도행 카페리를 탔다. 성수기도 아니고 주말도 아니라서 승객이 얼마되지 않았다. 마루에 몇 명, 의자에 몇 명, 갑판에 몇 명. 559명 정원의 배라 듬성듬성하다. 여기 기웃, 저기 기웃 하다 갑판으로 올라가니 볕도 나고 바람도 적다. 주위에는 푸른 물위에 크고 작은 섬들이 사방에 떠있다.
안식구가 배멀미가 생겨 힘들어한다. 상희모친이 등을 쳐준다. 약사인 상희 모친에 따르면 배멀미는 배가 좌우, 상하로 움직이면 위가 놀래 아래로 굴절운동을 해야하는데 거꾸로 하기 때문에 먹은 것 이 위로 올라오려고 해 구역질이 나며 두통이 생긴다는 것이다. 중간 지나서부터 거의 다 갈 때까지 필자도 합류해 등을 두드려주었다.
배가 옹기같은 항구에 들어간다. 어쩌면 그렇게 안으로 콕 들어박혀있는지 모르겠다. 입구 양쪽으로 방파제를 만들어 놓으니 정말 아무리 큰 태풍이나 풍랑이 밀려와도 막아낼 것 같다. 천혜라는 말이 이런때 쓰라는 용어같다.
배에서 내리니 동백관광 3232번 마이크로 버스(25인승)가 기다리고 있다. 우리 다섯부부와 다른 여성들 일행이 버스를 꽉 채운다. 11:09 출발.
운전기사(‘56년생 토박이)가 해설사를 겸한단다. 입담이 걸출하다. 지난해 홍도에 가서도 아주 재미있었던 운전기사 겸 해설사와 겹쳐진다. 홍보대사 작위라도 주어야겠다고 말해주었었다. 선착장 주위가 번화가다. 면사무소, 파출서, 학교 등 관공서가 다 몰려있다.
행정구획상으로 욕지도는 중세기 이래 고성현에 속했으며, 광무 4년(1900), 이 고장이 고성(固城)에서 진남군(鎭南郡)으로 분리되자 가장 먼 바다 가운데의 대표적인 3개의 섬, 즉 욕지도·두미도·연화도가 위치해 있는 도서지역이라하여 진남군 원삼면(遠三面)이라 칭하게 되었다.
그후 1909년 용남군 원삼면, 그리고 일제강점기인 1914년 지방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이곳 원삼면과 인접한 사량면을 통합하여, 원삼면의「원(遠)」자와 사량면의「량(梁)」자를 따서 통영군 원량면(遠梁面)으로 개칭했다.
광복 후 1955년 다시 종전의 원삼면과 사량면으로 분면하여 원래의 원삼면은 가장 대표적인 섬 욕지도의 지명을 따서 통영군 욕지면으로 개칭했으며, 1995년 통영군과 충무시의 통합에 의해 통영시 욕지면이 되었다.
욕지면은 10개 유인도(욕지도, 연화도, 두미도, 상/하노대도, 우도, 봉도, 납도, 초도, 갈도)와 45개의 무인도 등 총 55개의 섬으로 이뤄졌다. 1915년경에는 내국인 20,800여명, 일본인 2,200여명 등 총 23,000여명이었으나 2023년 3월 현재 1,914명.
1926년 개교한 원량공립보통(초등)학교가 본도에 본교와 2개분교, 두미도에 2개분교, 노대도와 연화도에 각각 1개 분교가 있었는데 학령아동수가 줄어든 지금은 욕지도 본교와 연화도 분교 하나밖에 없다. 본교 16명, 분교 2명 등 초등생 총 18명에 유치원생 3명이 전부.
운전기사는 항구 북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처음 소개하는 곳이 욕지도 근대화 구역인 좌부랑개[자부]마을. 마을 뒷산 호람바위(虎巖, 165m)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산마루에 우뚝 솟아 있으며 이 산줄기 아래로 마을을 감싸고 있는 동미산은 동촌마을과 경계하고 또 곰비산줄기에서 시작된 커다란 방파제가 항구밖에서 밀려오는 파도를 막아주고 있으며 배산임수의 정남향 경사지다.
선창이 따로 없으며, 해안선이 오긋하게 포물선을 그으면서 마을앞 해안전체가 선창이다. 일제강점기부터 발달하여 우리나라 최초로 근대화된 마을이다.
좌부랑개 이름 관련 얘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1895년 도미우라(富浦)라는 일인이 욕지를 왕래하면서 이곳 수산물을 싸게 구입하여 일본에서 되팔아 많은 이익을 남겼다. 1900년부터 이곳 좌부랑개(座富浪浦)에 정착하여 욕지도 어민들 상대로 고리대금업을 시작하여 큰 부자가 된다. 1910년 한일병합이 됨으로서 도미우라는 좌부랑개에서 더욱 자기 세상을 만난다. 재력과 권력으로 자기 이름과 비슷한 좌부랑개를 지명으로 만든다. 좌(座)는 욕지사람의 발음상 꼭 같은 자(自)로 바꾸고 ’랑(浪)‘자는 빼고 자부포(自副浦)가 되어 자기 이름 도미우라(副浦)에 자(自)자를 앞에 놓은 것이 된다. 그 때부터 지금까지 이 마을은 원래 이름을 잃고 ’자부포‘라 불리고 있다. 도미우라가족이 살던 집터의 표지판도 서 있다.
욕지도 어부들은 낮에는 고등어잡이를 나가 저녁이면 만선으로 돌아와 이곳 자부랑개 마을 술집으로 들어가 술을 마시며 피로를 푼다. 그래서 고기잡이가 잘되던 때는 술집이 많았던 유흥가이기도 했다. 술집 40여곳에 120여명의 아가씨들이 있었다고...
김성우(金聖佑) 전 한국일보 논설고문이 이 마을 상단 폐교된 욕지중학교 자리에 집을 짓고 문패 <돌아오는배>를 달고 지난 2005년 정착해 수필, 시낭송등으로 욕지도를 홍보하고 노래하며 살고 있다.
’해당화 피고지는 섬마을에/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운전기사의 입에서는 노래가 저절로 흘러나온다.
해안을 돌아서니 해변에 직사각형의 양식장이 꽉차있다. 바다낚시 좌대도 있는 것 같다. 해안선을 북쪽으로 돌아서면 시야가 넓어지고 흰작살해수욕장이 나온다. 본도에는 6개의 해수욕장이 있는데 몽돌해수욕장이라고 한다. 도동, 덕동, 유동, 노작, 통단해수욕장. 흰작살이 제일 시원치 않은 것 같다.
목과항에는 가두리양식장이 넓게 펼쳐져있다. 태풍을 이겨낼수 있도록 내파성 가두리 양식장이란다. 고등어잡이는 옛말이고 이제는 양식으로 한다. 참돔, 우럭, 방어, 농어, 감성돔등도 양식한다. 그러나 비싼 사료값, 하수산한 시국이라 장사가 안되어 어부들이 울고 있단다. 홍보대사인 운전기사는 관광객들에게 관광 마치고 배삯, 차삯등 여비만 좀 남겨놓고 다 쓰고 가란다.
이번에는 닻(앵커)전망대다. 하차하란다. 조그만 SUV바퀴가 쳐박혀있다. 앵커는 엄청 크고 무겁다. 태풍이 불어도 욕지도를 끌고갈수 없도록하기 위해 2018년 자치사업으로 세워놓은 거란다. 인증샷을 찍고 가면 재물이 흩어지지않는다고 한마디.
욕지도의 하롱베이라고 한단다. 300리 한려수도의 다도해.... 북쪽으로 맨앞에 욕지면에서 본섬 다음으로 큰 두미도가 오똑하게 서 있다. 원량초교 분교 2개가 있었는데 지금은 둘다 폐분교상태란다. 욕지면 최고봉인 두미도 천황산(470.5m)이 욕지도 천황산(393.5m)보다 높고, 통영 미륵산(461m), 사량도 지리망산(399.3m)보다 높다.
오른쪽으로는 상노대도와 하노대도 유인도다. 해오라기 노(鷺)자에 집터대(垈)인 노대(鷺垈). 해오라기, 왜가리, 백로등이 많이 사는모양이다. 이곳도 분교 하나 있다 폐교됐다. 멀리 유인도 납도와 봉도(쑥도)가 보인다.
해설사는 모친이 봉도에 살면서 아이를 11명을 낳았는데 한명도 죽지 않았단다. 쑥을 많이 먹어 그런 모양이란다. 봉도 아래는 조그만 무인도 둘이 모래톱으로 연결되어있다. 적도. 해설사는 여성의 브레이지어같단다. 정말 영락없는 브라다. 그 아래는 욕지면에서 욕지도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 연화도와 우도다. 둘 다 유인도. SUB는 119를 부른 상태. 수진 아빠는 주인이 운전석에 핸들을 잡고 뒤에서 몇 명이 조금만 들어주면 빠질수있었다고 아쉬워한다.
도동항
이번에는 서향의 해수욕장이 있는 도동이다. 울릉도의 주 항구와 동명이다. 2010년 2월 ’1박2일‘ 예능팀이 이곳 도동에 와 고등어잡이(?)를 한 것. 그해 3월 21일 방영된 KBS 2TV '해피선데이' 2부 '1박2일'에 출연한 강호동, 김C, 이수근, 엠씨몽(MC몽), 은지원, 이승기, 김종민이 그들. 이수근과 은지원이 배로 5분 걸려 고등어 양식장으로 가 사료 주고 몇 마리 잡아오는데 채 1시간이 걸리지 않았다는 것.
고등어는 직진만 하고 물밖으로 나오면 성질이 급해 금방 죽기 때문에 멀리에서는 회로 먹기가 힘든단다. 우선 양식을 하는데 그의 직진성때문에 가두리가 둥글게 되어있다. 그래야 머리를 처박아도 미끄러져 다치지 않는다. 양식에 성공하게 된 기본 이유란다.
이 도동에서는 2011년 10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배우이자 그의 부인인 윤정희가 <섬마을콘서트>를 열기도 한 곳이란다. 1,000여명 주민과 관광객들이 관람한 콘서트.
윤정희(’44년생)가 결혼직후 영화<화려한 외출, 1978년>을 촬영하느라고 1주일 이상 욕지도에 머물며 구석구석을 누벼 특별한 인연이 있던 곳. 파도소리, 바람소리, 피아노소리 그리고 윤정희.
문희, 남정임과 함께 '60~70년대 트리오 여배우였던 윤정희는 알츠하이머를 10년동안 겪다 2023년 1월 20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79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욕지도 특산 먹거리로는 국내 최초로 양식을 성공한 고등어로 뜬 회, 황등 황토흙같은 땅에 해풍받은 달짝지근한 밤고구마, 제주산 보다 맛이 있다는 감귤을 들고 있다. 일주 관광후 고등어회를 먹을 예정이다.
이만기 선수도 2021년 10월 이곳 도동에 와서 SBS <섬마을할매> 프로에 나와 고구마, 귤 수확을 도왔고 고등어 양식장에서 잡아온 고등어로 뜬 회, 졸임, 죽등을 먹으며 욕지도를 소개했다. 이 농가는 귤농사를 박정희대통령시절 시작했다고 전했다.
버스는 다시 고개를 넘어 덕동마을로 내려온다. 역시 해발 200m가 넘는 산이 둘러싸여있어 천혜의 항구이자 해수욕장이다. 그래도 방파제는 만들어 놓아 태풍 대비 철옹성을 만들어놓았다. 평화스러운 어촌마을. 바다는 쪽빛으로 청정 그 자체다. 그래서 통영 앞바다가 국내 최대 굴양식장이 된 것이다. 통영은 멸치잡이항이기도 하다.
해안선을 따라 남으로 내려가면 욕지도 최남단 혹처럼 달린 반도가 나오는데 오목한 곳이 유동해수욕장이다. 이곳이 우리나라 최초 참치(참다랑어) 양식 성공해역.
잘록한 부분에서 바로 동쪽으로 머리를 튼다. 삼여전망대는 그냥 지나친다. 텅 비어있다. 바로 아래가 <화려한 외출>에 나온 삼여도다. 1977년 제작, 1978년 3월10일 개봉한 <화려한 외출>의 촬영지다. 윤정희가 그 때 촬영차 욕지도에 첫발을 디딘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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