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 문학을 입히면
조 흥 제
언제나 철이 드나. ‘자연에 문학을 입히면’으로 글을 쓰고 싶어 썼더니 이
제는 ‘삶에 문학을 입히면’으로 쓰라고 내 안에서 강력히 명령한다. 이게 말
이 되는 소린가. 범위가 얼마나 넓은데. 철없는 애들도 아니고. 하지만 쓰라
고 명령할 때 안 쓰면 병이 나는 못된 성품을 가졌으니 어쩌겠는가. 명령을
따를 수밖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제일 필요한 것은 의식주(衣食住)다. 그것만 가지고는
안 된다. 마음이 평화로워야 한다. 그러한 상태를 행복으로 본다. 이상적인
삶은 행복하게 살다 고통 없이 죽는 것이다.
의식주는 갖추어도 일만 하고 먹고 자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거기에 따
뜻한 바람을 넣어 주는 것이 취미 생활이다. 그 중엔 여행과 예술을 즐기는
것도 있다. 자기가 사는 곳을 벗어나 다른 곳을 다니면서 자연, 인심, 음식을
음미하면 지루함이 없어지고 새로운 힘이 솟는다. 등산, 운동도 몸과 마음을
튼튼하게 한다. 음악, 무용, 미술, 건축, 공예, 문학 등도 우리를 기쁘게 한
다. 이를 통틀어 문화라고 한다.
그 중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게 문학이다. 문학은 마음의 발로다. 예쁜
걸 보면 갖고 싶고, 착한 걸 보면 순수해 지고, 슬픈 걸 보면 눈물이 나는데
그걸 문자로 표현한 것이 문학이다. 방법에는 시, 소설, 수필, 시나리오가 있
다.
사물을 보고 느낌을 산문으로 쓴 것이 수필, 운문으로 쓴 것이 시다. 소설
은 사건을 만들고 거기에 작가의 주관을 넣은 것이고 그걸 무대에 올리기
위하여 대화체로 만든 것이 시나리오다. 시에 곡조를 붙인 것이 노래다. 요
즘 트로트가 인기다. 이 모든 것을 한데 모은 종합예술이 생겼다. 영화다. 영
화에는 예술이 다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종합예술이라고 한다. 텔레비전 속
에도 종합예술이 들어 있다. 요즘은 들고 다니는 손바닥만 한 것에 온 세상
이 담겨 있다. 그래서 전화 거는 핸드폰에서 여러 가지 기능이 있는 스마트
폰이 됐다. 음악, 영화, 신문, 책, 전화, 지도, 편지지도 있다. 미국에 있는 사
람과도, 유럽에 있는 친구와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즉시 편지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백과사전도 있다. 요즘 일상생활에 쓰는 외래어가 많아 노인
들은 불편하다. 그걸 들고 다니는 사전이 해결해 준다. 참 좋은 기기다.
하지만 전자기기(器機)는 전기가 있어야 가능하다. 우리나라에 전기가 농촌
까지 들어간 것은 1960년대 후반이다. 텔레비전도 대중화 된 것은 70년대
이후다. 권투 선수 김기수가 세계챔피언을 딸 때가 66년이었는데 그 경기를
보러 다방에 갔었다. 사람이 많아 꼼짝을 할 수 없어 차도 못 마셨다. 김일
의 레슬링 경기를 라디오로 중계하였다. 라디오 중계는 텔레비전 중계보다
더 재미있다. 상상을 불어 넣기 때문이다.
오랜 세상을 밝혀 온 건 책이다. 책은 종이로 만들었다. 종이가 없을 때
는 가죽으로, 가죽이 없을 때는 풀잎으로 만들었다. 그걸 파피루스라고 했다.
그리스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내용은 문학, 철학, 수학 또는 종교에 대한 것
이 많다.
책에는 학문을 다룬 딱딱한 것도 많지만 부드러운 문학서적도 많다. 문학
서적은 소설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우리네 삶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
야기다. 소설은 우리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준다. 미국의 남북전쟁 때 스토
어 부인이 쓴『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큰 영향을 미쳤다. 흑인 노예의 삶을
다룬 소설로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에 큰 도움이 되었다. 전쟁이 끝난 후
링컨대통령이 스토어 부인을 찾아 가 전쟁을 이긴 것은 부인의 덕이라고 치
하했다.
소설에는 작가가 의도하는 사상이 들어 있다. 기쁜 것도 있지만 슬픈 것이
더 많다. 심청전은 효도, 장화홍련전은 전처 자식과 서모와의 갈등, 흥부전은
권선징악, 홍길동전은 혁명. 이렇게 소설 속에는 작가가 의도하는 바가 들어
있다. 고등학생 때 배운 국어교과서에 소설가를 구도자(求道者)라고도 했다.
유진오 선생이 쓴 소설론으로 기억한다. 구도자는 산속 컴컴한 굴속에서 명
상하는 사람으로 알았는데 소설가를 구도자라고 하니 이해가 안갔지만 지
금 와서 생각하니 맞는 것 같다. 소설이 인생학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본 것
이다. 도사가 많이 사는 곳이 계룡산이 아니라 출근 시간 버스 칸에 탄 직
장인이라고 한 글도 읽었다. 한 분야에서 몇 십 년 종사한 사람도 있으니 그
분야에 도사가 아니고 무엇이냐고 했다. 그 이론도 맞는 것 같다. 소설에는
다양한 삶을 그려 넣어 독자는 간접 체험한다.
일기는 매일매일 써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간다. 그래서 하루도 빼놓지 않
고 쓸 수는 없다. 나도 일기를 쓰다 바쁜 세상에 어떻게 매일 쓰나. 그래서
부담 갖지 않고 생각날 때마다 썼다. 하지만 일기를 쓰면 생각도 깊어지고
체계적으로 쓰는 습관이 생긴다. 작가 중 일기가 습작에 도움이 됐다는 글을
많이 보았다.
여행 하고 와서는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것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89년도에 중국에 갔었다. 회사에서 단체로 보내 주어 사원 17명과 함께였다.
공산주의 중국은 어떨까? 호기심을 잔뜩 가지고 갔다. 중국과는 국교가 안
되어 일본을 통하여 갔었다. 중국은 우리나라 60년대 수준이었다. 화장실에
문 없는 곳이 많고 노래방에 가서 놀다 화장실에 안내되어 가는데 질척질척
한 진흙바닥을 지나야 갈 수 있었다. 백두산 천지 건너 북한 땅을 보면서 서
울에서 가져 간 진로 소주와 오징어포를 놓고 산제(山祭)를 지낼 때의 벅찬
가슴, 대한민국 만세를 부르니 중국 가이드가 못 부르게 했다. 두만강에서
황량한 북한 땅을 볼 때의 안타까움, 그 기록을 볼 때마다 어제 일 같이 생
생난다.
놓친 것이 많은 것 같아 불안하다. 하지만 딱히 손에 잡히지 않으니 어떻
게 고치는가.